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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컴번트 자전거의 억울한 역사 본문

자전거/자전거과학

리컴번트 자전거의 억울한 역사

샛솔 2006. 7. 6. 16:56

리컴번트 이반젤리스트를 자처하며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열광하는 것을 다른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가 봅니다.   저나 아내 역시 요지음 리컴번트에 흠씬 빠져  리컴의 좋은 점을  많이 알리려 잔차를 타다 만나는 이들에게 이 자전거를 선전합니다.  저의처럼 몰랐기 때문에 자전거 자체를 포기해야 했던 이나 또는 지금도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이들을 위해서  이 자전거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컴번트의 장점은

 

1. 리컴번트 자전거는 효율이 아주 좋습니다.  이것은 동력측정장치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힘을 적게 들이고 긴 거리를 갈 수 있습니다. 

 

2. 리컴번트 자전거는 빠릅니다.  이미 세계기록을 모두 리컴번트 자전거가 깨었습니다.

 

3. 리컴번트 자전거는 안전합니다.  리컴번트 자전거는 무게 중심이 낮고 뒤로 쳐저 있어 충돌시 머리가 먼저 나가는 일이 없으며 또 무게 중심이 낮아 땅으로 떨어 져도 그 충격이 적습니다.

 

4. 리컴번트 자전거는 편안합니다.  웅크린 자세가 아니라 폐가 펴 있어 호흡이 원활하며 누운 자세이기 때문에 체중이 바닥과 등바지로 고르게  퍼져 있어몸의 어느 부위도 압박하는 일이 없습니다.  핸들에 무게가 실리자 않아 손목이 편안합니다.  뒤로 누운 자세로 전방을 보기 때문에 직립자전거의 웅크린 자세에서 오는 황새목 자세가 없습니다.  따라서 목디스크에 걸릴 일이 없습니다.  또 웅크린 자세에서 오는 back-pain 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자전거가 왜 빛을 못 보았을까요. 

 

그것은 이기적인 몇 사람이 내린 잘 못된 결정으로 자전거 문화와 역사를 왜곡 시켜 긴 세월 동안 리컴번트를 모른채 지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억울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이 리컴번트 자전거를 알리고 선전하고 싶어 지는지 모릅니다.  

리컴번트 자전거의 역사를 보면 그 억울한 사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 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사람 Mochet 가 리컴번트 자전거를 재발견하고 제작 판매하면서 리컴번트자전거가 세상에 많이 알려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 자전거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Francis Faure  라는 2류 사이클리스트를 국제 사이클 연맹에서 주관하는 경주에 출전 시켰습니다. 그 누구도 Faure 가 우승하리라고 생각 못했지만 그는 우승하였고 직립 자전거로 새운 각종 기록을 모두 깨어 버립니다.    이에 직립자전거를 타는 1류 사이클리스트와 직립자전거의 이해가 달린 국제 사이클연맹이 이 자전거를 견제하는 데에서 일이 벌어 집니다.

 

비극적 역사는 1934년 2월 3일 열린 제 58차 국제 사이클연맹 대회, UCI (Union Cycliste International)에서 일어 납니다.

 

당시 리컴번트 자전거를 타고 세운 Faure 의 기록을 인정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난 끝에 58 대 46의 표결로 리컴번트 자전거를 국제 사이클 연맹이 인가하는 자전거 경주에서 금지시킬 것을 결정합니다.   그 때까지  자전거의 정의가 없었던 것을 자전거는 아래와 같은 규격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1. 바텀브라켓(BB, 페달 축)은 땅위에서 24cm 와 30cm 사이에 있어야 한다.
2. 안장의 앞부분은 바텀브라켓에서 12cm 이상 뒤에 있으면 안된다.
3. 앞바퀴축과 바텀브라켓 사이의 거리는 58cm 와 75 cm 사이에 있어야 한다.

 

(1. The bottom bracket had to be between 24 and 30 centimeters above the ground.
2. The front of the saddle could only be 12 centimeters behind the bottom bracket.
3. The distance from the bottom bracket to the axle of the front wheel had to be between 58 and 75 centimeters. )
 
이 규격은 한마디로 리컴번트 자전거를 제외하기 위해서 정한 인위적이고 고의적인 규정이였던 셈입니다.

 

당시의 소문은 리컴번트 자전거를 자전거 경주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운동경기적 측면보다는 직립자전거 제조업자와 프로 사이클리스트(직립자전거)가  국제 사이클 연맹과 갖는 유착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한 강력한 로비의 결과 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Rumors at the time were that the decision "banning" recumbents had less to do with sportsmanship than with economics: The upright bicycle manufacturers and professional riders had money and contacts and together formed a powerful lobbing force. )


 
리컴번트 자전거를 생산하고 이를 보급하려던 Mochet 는 국제 사이클 연맹에 탄원했지만 마이동풍이요  Mochet 의 회사는 문을 닫게 되고 리컴번트 자전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렇게 좋은 자전거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은 모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사회에 참가 했던 영국 대표는 리컴번트 자전거야 말로 미래의 자전거라고 극찬 했건만 이 결정으로 인해서 자전거의 자연스런 진화(evolution)의 길은 막혀 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많은 사이클리스트가 당시 연맹이사들의  "장난"으로  어깨에 병이 들고 팔목을 다치고 목디스크에 걸리고  배통을 호소하고 전립선을 상하고 급기야 자전거를 포기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사이클 사고로 사망한 많은 불운의 사이클리스트의 수도 훨씬 줄었을 것입니다.

 

60 살 된 어느 미국 사이클리스트는 평생을 자전거를 타면서 즐기고 살았는데 의사의 권고로 사이클을 더 이상 타지 못하게 되자 실의에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리컴번트를 발견하고  인생을 되 찾았다는 환호하는 글을 쓴 것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최근 리컴번트 자전거의 부흥은 이런 비극적인 결정이 내린후 반세기가 지난 다음 미국 MIT 기계공학 교수인  David Gordon Wilson  과 그의 제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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