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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잡문

중학생을 잡아라

샛솔 2004. 5. 14. 07:35

아래 글은 서울대 BK21 물리연구단  뉴스레터 2004 3월호에 제가 기고한 "중학생을 잡아라" 라는 제목의 물리학 칼람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http://phya.snu.ac.kr/bk21/newsletter/vol_4/main3.html#)

 

 

                      중학생을 잡아라

    서울대 물리학부 명예교수 이구철

나는 어렸을 때 수학을 무척 좋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625 전쟁이 났는데 피난 가서 단칸방에 가족들이 모두 함께 살 때 사과 괴짝을 놓고 "그랜빌"과 "러브"의 미적분학 책을 혼자 공부하면서 수학에 매료되었던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때에는 미분방정식이나 함수론 책을 헌 책방에서 구해서 잘 이해가 안되어 낑낑 거리면서도 높은 수준의 수학을 혼자 할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만족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생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 동북대 교수가 쓴 "물리학 통론"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이제까지의 그 아름다운 수학이 물리학을 기술하는데 쓰인다는 사실에 감탄을 했다. 그래서 물리학을 전공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 한 때 방황한 적이 있다. 학문을 다만 탐미적 목적으로 해도 되는가? 프란시스 베이콘은 인류에 공헌하지 않는 학문(신이 주신 이성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톨스토이도 "과학을 위한 과학"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학문의 유용성에 이의를 제기한 것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학문의 유용성이란 도덕적인 유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내게 위안과 확신을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앙리 푸앙까레였다. 그는 "과학과 방법"이라는 책에 톨스토이를 반박하면서 말하였다.

"과학자는 유용성을 위해서 자연을 연구하지 않는다.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아릅답기 때문이다. (The scientist does not study nature because it is useful to do so. He studies it because he takes pleasure in it, and he takes pleasure because it is beutiful.) 

 

학문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경제적 측면에서 도전을 받아 왔다. 파라데이가 전자유도 현상을 발견하고 영국왕립학회에서 발표할 때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그래드스톤이 물었다. "그 새 발견이 어디에 쓰일 수 있습니까?" 그러자 파라데이는  "당신은 애기가 태어 났을 때 아기가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고 묻습니까?" 그리고는 "언젠가는 당신이나 당신의 후계자가 이로 인해 세금을 걷어 들이게 될겁니다." 라고 되 받았다.

 

내가 서두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과연 오늘날에도 이런 낭만적 동기로 물리학을 선택하는 젊은 학생이 있을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이다.  이제는 물리학을 함으로서 얼마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직업으로서의 유용성이 하나 더 더해 졌다.  경제에 기여하고 자신의 직업과 수입에 대해 묻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세태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젊은이가 물리학에 오지 않고 경제, 금융, 경영과 같은 비자연과학으로 몰리고 있다고 영국의 물리잡지 "Physics World"는 지적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푸앙까레의 경구는 유효하도고 본다. 물리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학문이다. 뿐만 아니라 좋아 하더라도 수학적 재능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학문이다. 절대 쉬운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지음처럼 이공계를 기피하는 추세에서 무엇으로 물리를 전공할 후계자를 끌 수 있는가? 요지음 웃기는 처방 중에는 이공계출신의 공직자를 늘리는 방안이 입에 오르 내리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공직이나 경영자로 변신하는 것은 우수한 인재가 넘쳐 흘러 거기에서 훌륭한 공직자나 경영자가 생겨 나야하는 것이지 그것을 미끼로 이공계 전공자를 끌어 들이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것이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 관심이 있는 중을 기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처방은 단 한가지이다. 아직 세태에 덜 물든 중학교 2-3년생에게 늦게는 고등학교 저학년 학생에게 일찌감치 수학과 물리에 매료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학과 물리는 언어와 같은 것이어서 이를 수록 좋다. 일단 이 연령층에서 수학과 물리에 매혹되어야 나중에 부모나 교사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물리를 하게 될 인재가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수한 어린 싹을 물리로 끌어 들일 수 있는가? 그것은 교육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능한 교사의 태부족이다. 물리를 제대로 가르칠 만한 유능한 교사는 중등 또는 고등학교 교사로 많이 남아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능성이 보인다.

 

훌륭한 교육 무른모(Educational Software) 의 개발과 원격교육(Distance Learning)의 보급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도 없다. 초고속전산망의 보급에 있어서 세계 최강이라 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중학생 연령층의 90% 이상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조금만 정부와 관계당국이 지원해 준다다면 99% 의 어린이가 고속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수한 교육용 무른모를 개발하고 우수한 동영상 교육자료를 고속전산망을 통해 보급하는 것이다.  한사람의 우수한 교사가 전국의 어린이에 물리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 2년 가까이 "물리로 배우는 플래시"라는 강좌 시리즈를 인터넷에 연재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남달리 많이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은 우리나라는 인터넷 콘텐츠는 너무 초라하고 빈곤하다는 것이다. 오직 상업용 컨텐츠만 판을 치고 있다. 고급 정보는 거의 전무 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에 미숙한 청소년이 영어로 된 고급 정보를 소화하기에는 힘에 겨운 일이다.

 

왜 이처럼 인터넷의 컨텐츠가 빈약한가? 그것은 그 제공자가 거의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트를 운영하고 정보를 창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고급정보 특히 이공계통의 컨텐츠는 전문가가 아니고는 제작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대학에서 교수가 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학 교수가 그런 사이트를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일은 오늘의 여건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하물며 많은 시간을 들여 깊이 있는 교육용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봉사의 차원에서 동영상강의를 올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몇사람의 교수나 교사등 개개인에게 맡길 일이 못된다.  

 

교사, 교수, 물리교육전공자, 컴퓨터 전문가가 모여 머리를 짜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참여자의 사명감과 헌신, 정부나 기타 유관기관의 재정적 지원, 그러한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 마지막으로 물리학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새싹을 잡지 못하면 이제 10년후엔 물리를 계승할 후계자는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물리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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