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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여행을 위해 삼성 노트북 9 Always 를 샀다.

화면이 가장 크고 무게는 가장 가벼운 스림 노트다.   재어 보니 1 Kg이 안된다. 

여행지에서 노트북의 목적은 블로깅과 TV 보기다.  

 


 

 

코니의 식재료 재는 저울로 재어 보니 그야말로 서브 킬로(sub Kilo) 다.

 

 

이 모델은 키보드와 스크린이 분리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터치스크린 기능도 생략되었다.   그런데 노트북 윈도우즈에서는 터치스크린은 별 쓸모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터치로 확장된 창은 메뉴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축소시키고 메뉴를 작동해야하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여행중에 블로깅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고픈 마음이 일 땐 그래도 PC 가 좋다.   아이패드용 tistory 도 써 보고 Adobe Slate (2015/05/12 - [해외여행기/일본 오사카2015] - 고야산 기행) 도 써 봤지만 포맷이 아무래도 tistory 용은 아니다.    사진을 올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두 번째는 심심할 때 동영상을 보는 것인데 서울에서 보던 드라마라든가 뉴스라든가를 시청하는 것인데 에이서스의 스윗치10 (2014/06/12 - [IT 와 새로운 것들] - 아스파이어 스위치 10 개봉기) 은 화면이 넘 작다.  대만 여행 때엔 객실의 TV에 HDMI 포트가 열려 있어서 TV 화면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나 암스테르담에서는 호텔 TV는 그런 포트를 막아 놨기 때문에 아스파이어 스위치10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번에 산 삼성노트북 9는 아스파이어 스위치10 보다 훨씬 크다. 

 

 

 

두 노트북의 크기 차이

무게는 삼성이 훨씬 가볍다.  아스파이어는 1.125 Kg 이었다.

(2014/06/12 - [IT 와 새로운 것들] - 아스파이어 스위치 10 개봉기

 

문제는 애용하던 TV 콘텐츠를 보는 conting 이란 서비스가 다운로드 메뉴를 없애 버린 것이다.   스트리밍만 가능하고 다운로드해서 보는 서비스는 제작사의 요구로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호텔 wifi는 속도도 느리지만 서울의 서버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스트리밍은 자주 끊겨서 볼 수가 없다.    자는 동안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두었다가 다음날 보는 것인데 이것을 없애버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애플파일"이란 사이트가 있어 유료 다운 받을 수 있는 동영상 컨텐츠가 많이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문제는 값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물론 아주 오래 된 건텐츠는 싼 값이 지만 최근의 인기 있는 TV 프로는 1시간 짜리가 편당 전오백 내지 2천원 까지 한다.

 

문제는 그 것도 외국에서는 돈을 지불할 방법이 없다.   외국에서는 한국 신용카드를 온라인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은 페이팰 뿐인데 한국 판매자 대부분은 paypal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볼 만한 프로그램을 서울에서  다운 받아가고 어느 정도의 캐쉬를 충전해 가지고 가기로 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서비스라 제대로 작동할지 모르겠다.    돈만 날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는 자전거가방을 다 쌌다.    얼마전에 산 Vincita 가방이다.

 

 

 

경량화과정에서 펜더를 모두 제거 했더니 가방에 자리가 많이 남는다.

"뽁뽁이"를 한 아름 사다가 주변을 완충 중전했다.

암스테르담에 가서 열어 볼 때 사진을 올리게로 한다.

 

 

이 것으로 2017 여름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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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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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7.03 09:15 신고

    저 화면에 1kg 이하라니 정말 가볍습니다. 여행가셔서 새로운 PC로 여행기 많이 올려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ㅎ

  2. 메이데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7.05 13:23 신고

    지금쯤이면 무사히 도착하셨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 모쪼록 건강하게 지내시다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탈부착이 가능한 일체형 고글헬멧 - 여의도에서 아침 피크닉

 

 

지난 주 반포대교에 아침 피크닉에 갔다가 중년부인 라이더 서너분을 만났다.  하나 같이 고글 일체형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델에 대해 알아 보고 브랜드 이름이 박힌 부분을 사진을 찍어 와 찾아 보기로 했다.    SVR 사의  SKY 라는 헬맷이었다.

 

우리가 본 헬멧은 탈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 헬멧처럼 올리거나 내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금년에 새로 나운 SKY2에서는 고글이 아주 분리되어 탈 부착하도록 되어 있다.   자석을 써서 불이고 떼게 되어 있다.

 

오늘 그 헬멧을 쓰고 여의도 아침 피크닉을 나갔다.

 

일요일이라 돌아 오는 길은 분볐다.   시마노 STEPS ( 꿈의 자전거,    시마노 전자동 전동장치(STEPS) 사용법 ) 덕에 우리의 자전거 능력이 월등 업그레이드 되었다.  

 

내 주엔 하트코스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의도 ELAND CRUISE 앞에서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좋다.

탈착식 일체형 고글은 일반 안경 위에도 쓸 수 있어

좋다.

 

 

 

SVR SKY2 헬멧

 

 

 

장착한 모양

 

 

 

탈착해서 위에 올려 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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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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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2 09:27 신고

    두분 모습이 정답습니다..^^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2 10:54 신고

    탈부착이 가능한 일체형 고글헬멧.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참 편리할 것 같습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6.18 16:06 신고

      요즘 쓰고 다니는데 편리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고글을 거치지 않고 맨 안경 눈으로 핸폰 지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입니다. 전에는 고글을 벗어야 했습니다. 특히 날이 밝은 날에는 그랬습니다.

  3. brupri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4 00:50 신고

    요사이는 미세먼지가 줄어들어서 자전거 타기가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과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보리스님, 코니님 여름이 오고 있는데, 더위에 유의하시고 좋은 곳 많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4.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8 16:09 신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벌써 아침도 만만찮게 더워졌습니다. 삼륜은 해외여행에 동반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전에는 두 번이나 항공 여행을 했는데 한 번은 허리를 다쳤기 때문에 더 이상 3륜 항공 여행은 꿈도 못 꿉니다.

한국의 4류 분야는 정치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얼마전 한국의 4류 분야는 "정치"만이란 글을 올린 일이 있다. (김부겸이 대구 무지랭이에게 호통을 쳤다.)

 

그런데 오늘 난 잊고 있던 한국의 4류 분야를 재 발결했다.

 

내가 계속해서 서울시의 도로 교통행정에 대한 비판을 해 왔다.   

2011/09/15 - [분류 전체보기] - 지속가능한 도시

2011/09/13 - [잔차일기] - 팔당대교를 건너 봤다.

2011/04/19 - [잔차일기] - 자동차위주의 도로행정

2009/06/06 - [잔차일기] - 선진국과 후진국의 자전거도로 개선 도시행정의 차이

 

또 서초역 사거리 이야기도 올린 일이 있다. 

 

****************

그대로 대법원 뒷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2호선 서초역으로 나왔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았다.   전날 서초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엘리베이터 입구를 Daum 지도의  로드뷰에서 찾아 보았다. 

1번 출구옆에 있었다.  그러나 서초역사거리엔 횡단보도가 없다.   엘리베이터는 단 하나인데 지상으로는 1번 출구쪽으로 건너 갈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휠체어를 위해 만든 엘리베이터는 방배동 쪽에서 나오는 장애인은 서초역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온 휠체어 장애인은 대법원이나 방배동으로 건너 갈 방법이 없다.

지하철 출입구는 지하철을 승객을 위한 것이지 보행자의 횡단 보도로 쓰라고 지은 것은 아닐테다. 

할 수 없어 5번 출구를 이용해서 지하로 내려 가는데 한층은 에스카레이터로 내려 갈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아래 두층은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야  개찰구가 있는 지하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차도를 건너 다니라고?    차가 잘 빠지려면 보행자는 고생좀 하라 그건가?  

이건 그 4거리에  위엄을 뽑내며 서 있는 대법원과 대검찰청사의 높은 자리에 앉은이들과는 관계가 없는 걸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471 [지구별에서-MyLifeStory]

***************************************

 

오늘 또 다시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전 한 자전거 블로거가 쓴 포시팅에서 영등포공원에 3륜 자전거를 타고 간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그 공원이 바로 옛날 OB 맥주 공장 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영등포는 나에게 625 전쟁 당시 아프고 괴로웠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고 OB 맥주공장은 나무 몽댕이를 든 미군 십장에게 닥달을 당하면서 미군 보급품 하역 노동을 했던 곳이다.   그러기 때문에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거기에 가 보고 싶었다.  (2010/06/25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전쟁이란 무엇인가 - 625 전쟁의 생존기 )

 

가 보고 싶어도 난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몇년전 자전거로 샛강을 건너 영등포 일대를 포터링한 일이 있다.   그 글에서도 OB 맥주 공장터에 대해서 궁금증을 내비친 일이 있다. (2013/10/26 - [잔차일기/서울 근교] - 영등포)

 

그런데 그 3륜자전거 블로거가 영등포공원이 내가 궁금해 하던 바로 OB 맥주 공장터라고 가르쳐 준 것이다.  

 

STEPS Gekko 삼륜도 고쳤겠다 그 정도 거리는 3륜으로 왕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공원에 3륜 나들이를 해 보기로 생각을 굳혔다.

 

네이버 지도의 길찾기 메뉴를 써서 자전거 길을 물으니 가르쳐 주긴 주는데 아무리 거리뷰를 보고 연구를 거듭해도 가르쳐 준 길이 명확하지가 않다.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여의도 공원으로 들어서 공원 남쪽끝에서 공원 밖으로 나가 여의대로를 따라 서울교 위로 샛강을 건너 영등포역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여의도공원 밖에서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고 인도인지 차도를 타고 가야한다.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길은 평면에 그려져 있어 이 차도와 고가도로가 엉켜 있는 이 지역은 2차원 평면지도에서는 위로 가야 할지 아래길로 가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3륜은 링코도 어렵고 택시에 싣고 올 수도 없다.   확실한 길을 모르면 포터링 기분으로 갈 수가 없다.  

 

아무래도 뚜벅이 모드로 답사해 보는 수 밖에 없다.   한 번 궁금증이 일면 오래 참지를 못한다.   오늘은 아침을 먹자 마자 한티역에서 461번 버스를 타고 반을 졸고 반은 명상을 하면서 여의도 역까지 갔다.

 

5, 7호선 여의도 역 근방에 내려서 여의도 공원에 들어 섰다.  거기서 네이버 길찾기의 자전거 길을 걸어서 따라가 봤다.  한 마디로 자전거는 고사하고 걷기도 힘든 길이었다.   도시는 자동차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 길을 건너려면 한 참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건널목이 나온다.   

 

서울의 길은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람은 저 뒤로 밀려 났다.    대부분 한 사람씩 탄 자동차가 그 넓다란 길을 다 차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건널목을 아주 인색하게 만들어 빤히 보이는 건너편에 가자면 100 미터 이상 위아래로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한다. 

 

또 지하도로 내려가거나 고가 도로로 울라 서거나 해야만 한는데 그것이 모두 계단을 걸어 내리거나 올라가게 되어 있다.  자동차에게만 단차가 없는 매끄러운 길을 만들어 주었다.     

 

막힘이 없는 차도 구간 자동차는 제한 속도를 어기고 달리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어두어지는 갓길도 없는 지하차도를 3륜으로 주행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직선 거리로는 몇 백 미터밖에 안되는 곳을 여기 저기 건널목을 찾아 건너 다니고 계단 자하차도를 건너서 영등포 공원에 도착은 했다.

 

그런데 그 곳에는 30 대는 들어 갈 만한 주차장이 있었다.   차를 가지고 공원에 오라.   공원에는 영등포 구민만을 위한 공원이 아니라고 서울시의 모든 구의 이름을 줄줄이 새겨놨다.    그러니까 모두 차를 가지고 영등포 공원에 오라고 공원을 만들었다?   

 

언젠가 어느 방송인지 밀착 카메라에서 공원은 있는데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공원을 소개한 것을 본 일이 있다.  영등포 공원도 그 근방 주민 아니면 걸어서는 갈 수 없게 도로가 설계되어 있었다.

 

또 하나 기가 막힌 것을 발견했다.  여의도 공원에서 나와서 여의대로와 서울교를 건너는 부분이 자전거도로는 말할것 없고 인도마져 공사 판막이로 가로 막혀 있었다.       사실은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어서 뚜벅이 모드로 답사를 해 본 것이다.

 

난 이 공사가 궁금했다.     공원을 단장하는 공사라면 지금쯤은 끝났을 수도 있겠다 싶어 가 본 것이다.   그런데 놀랄 일은 이 공사가 무엇인지 어디에도 표지판이 붙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 공사 일꾼인 듯 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직접 물어 봤다.   경인 고속도로의 지하고속도로 만드는 중이란다.       지상에 차가 넘쳐 나니까 이젠 차를 땅 속으로 밀어 넣겠다고? 

 

신월 IC 에서 여의도까지 7.5 km를  폭 75 m 의 지하 고속도로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은 자동차가 주범이다.    

 

뉴욕 시장이 그랬다.   뉴욕의 고질적 도로 정체를 해소시키기 위해 고속도로와 다리를 짓고 지어 보았지만 고속도로와 다리가 늘어 나면 늘어 날 수록 자동차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이명박,  오세훈은 골통들이니 그렇다치고 박원순은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앞선 골통 두 시장 저리 가라다.   이런 시장들이 서울의 행정을 맡는 한 서울의 도로행정은 4류에 머믈 수 밖에 없다.

 

 

 

 

걸어 다닌 길

 

 

5호선 여의역 근방에서 461 버스에서 내려 여의동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안 자전거길은 일방통으로 나사가 풀리는 방향으로 나 있다.

그래서 일단 공원으로 가로 질러 서쪽방향으로 갔다.

공원 동쪽 여의 대로쪽은 공사 차벽을 세워 놓아 인도도 없앴다.

외국에서는 공사를 하려면 인도이건 저전거도로인건

우회도로를 만들어 주고 인도를 막아 놓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에서는 공사가 위주라 도보인이나 자전거인은 다니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막아 놓는다.

시장이나 그 밑의 공무원들이나 차만 타고 다니니까 중하류의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 건 Move 란 앱이 기록한 자릿길이다.

여의도 공원 서남쪽 모퉁이로 나와 더번의 건널목을 건너 생각 북안 길로 들어 섰다.  

기특하게도 차도 옆에 자전거길이 나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다.

여의대로에 나오기 전에 자전거 길은 끊어져 있었다.

2륜이야 내려서 인도로 들어 올리면 되겠지만 3륜이라면 좁은 차도를 그냥 달려야 한다.

지각 없는 운전자는 경적을 울리며 3륜을 위협한다. 

 

 

 

 

영등포 공원은 표면 철로와 붙어 있었다.   북쪽에서 왔다면 지하차도나 지하 인도로 건너와야 한다.

 

 

 

 빌딩 숲에는 그럴 듯하게 조경도 잘 해 놨지만 어디까지나

대형 빌딩군이 있는 곳 만이다. 

 

 

 

여의도 공원 표지판도 건물군이 있는 곳에서만 그럴 듯하게 꾸며 놓았다.

 

 

 

공원안은 이른 아침이라 인적이 드믈었다.

 

 

 

공사판을 벌여 놓고 길을 막아 놨다.

어디에도 무슨 공사인지 표시한 곳이 없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하고 검색해서 알아 냈다.  이 공사는 감추고 싶어

숨겨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제 4 출입구로 나갔다.

 

 

 

여기도 막아 놓고 공사내용도 없고 우회도로도 만들지 않았다.

공원 산책로 출입구라도 표시했어야 했다.

이 건 MBC 가 지적했듯이 도둑공사였다.

알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 같았다.

 

 

 

어찌 어찌 해서 샛강 북안 길에 올라 섰다.

잔차길이 차도옆에 나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중간에서 끊겼다.

 

 

 

우회전 하는 차에 방해가 될가 잔차길을 쌍둥 잘라 놨다.

경적을 울려 대는 차를 피하려면 인도로 들어 올려야 한다.

3륜은 불가능하다.

 

 

 

인도로 올라서 오른쪽으로 꺾이면 서울교에 들어 설 수 있다.

아무래도 공사가 궁금해서 다시 돌아가 봤다.

마침 공사 일꾼인 듯 한 사람이 나와 있어 물어 봤다.

무슨 공사예요?

경인 지하 고속도로 공사란다.

처음 듣는 소리다,

지하에 고속도로를 짓는다고?

 

 

 

서울교로 샛강을 건너니 이렇게 건널목이 나온다.  서부간선도로에서 나오는 나들목을 또 건너야 한다.

 

 

 

그 나들목 건널목을 건너니 인도는 다리 아래로 이어져 있다.

 

 

 

내려다 보니 계단이다.

자전거는 끌바를 하도록 철판 홈을 만들어 놨다.

이렇게 가파른 곳에서 끌고 내려가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일본에도 다리나 고가도로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자전거도로가 있지만 대부분 스윗치 백이나 나선형으로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어 놨다.

그래서 자전거나 휠체어가 안전하게 통과하게 설계하고 있다.

이게 바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도시계획공무원의 의식수준의 차이다.

4 류!

내가 세계의 많은 다리를 자전거로 건너 봤지만 서울 같은 곳은 한 곳도 본 일이 없다.

 

 

 

지하차도에도 인도를 만들어 놨다.

3륜이 어떻게 진입 할 수 있나도 문제이지만 가지고 다니는 줄 자로 재어 보니

벽과 펜스의 간격이 약 90 cm 였다

우리 3륜의 차폭은 88 cm 이지만 사이드 미러등 돌출부가 있어 90 cm 가 조금 넘는다.

통과 불가다.

서울시 도로 설계자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인색하다.

 

 

 

이런 인도를 지나니

 

 

 

또 건널목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나온 교차로엔 보행자 도로가 없었다.

한 참 위로 올라가니  교차로가 나오고 신호등이 달려 있었다.

여기에 보행자 도로가 있었다.

자동차를 위한 신호등을 달 때

보행자 도로와 보행자 신호등을 덤으로 달아 놓은 것이다.

 

 

 

영등포 공원 직전에 노면 철로를 밑으로 지나가게

지하 차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인도는 그 옆에 따라 계단식으로 만들어 놨다.

 

 

 

차도 옆에 난 보행자 도로

자전거는 한쪽에서만 끌 수 있게 홈을 달아 놨다.

도로 양쪽에 좌측 통행을 강요하고 있다.

오른 쪽에서는 차도와 나란히 내려 갈 수 없고

차도 왼쪽에 난 계단 통로에만 좌측통행을 해서 계단을 오를 수 있게 해 놨다.

자전거를 끌 때에는 좌측 통행을 하란 말인가?

일관성도 없는 설계

 

 

 

영등포 공원 북단의 나들목

정말 야릇한 출입구다.

 

 

 

공원에 들어 와 남쪽을 보니 2,30대 크기의 주차장이 보인다.

 

 

 

 

 

 

 

이게 이 공원이 오비맥주 공장터란 심볼이다.

오비 맥주의 솥은 아니고 다른

 

 

오비 맥주 공장터를 서울시가 산 것 같다.  기증이란 말은 없다.

담금솥은 맥아와 홉을 끓이는데 사용되는 대형솥이라는데 담금솥 기증이라고 되어 있다.

오비가 기증했다는 것인지 담금솥이란 다른 회사가 기증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공원의 심볼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면에서 한 컷

 

 

 

후면에서 한 컷

 

 

 

영등포 공원 정문

여기 쯤이 내가 밤새워 노동을 하고 쌀 한되를 임금으로 받아 나오던 데가 아닌가 싶다.

 

 

 

입구에서 주차장을 바라 보며

 

 

여기까지가 영등포 공원 뚜벅이 답사기다.    결론은 자전거로 올 만한 곳이 아니다.   아니 걸어서도 올만한 곳이 아니다.   아니 차를 몰고도 올 만한 곳이 아니다. 

 

 

 

******************  제물포 터널 공사에 대해서 ****************

 

네이버 지도에서 자전거길 찾기를 했을 때 여의도 공원 남동쪽 일부가 공사장 차벽으로 둘러 싸여 있어 매우 궁금했었다.   

 

 

 

이 거리뷰는 2017년 4월이니 최신이다.  불과 2달 전이다.

그런데 이런 대형 공사인도 그 주변 어디에도 공사 내용이 표시된 것이 없다.

보통 이런 공사장에는 공사 내용과 공사기간등이 표시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긴 깜깜 절벽이다.

공사 일꾼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 보고서야 그게 제물포 지하 고속도로란 것을 알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정확한 내용을 검색하지 않는 한 걸리는 것이 없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다.

 

 

 

경인 고속도로를 시내부분을 지하화하는 공사였다.

신월 IC 에서 여의도 공원 부근까지 땅속에 묻겠다는 계획이고 공사현장이다.

 

 

왜 이런 엄청난 공사를 숨기고 깜깜이로 진행하는가?

 

 

 

두개의 거대한 환풍구를 만들어 지하고속도로에서 뿜어 대는 매연을 그 주변에다 뿜어 대겠다는 것

 

 

 

 박원순 시장왈 2016년에 완공되면 살기 좋아 진단다.

시장님 제발 지속가능한 도시  를 만드세요.

 

 

출처 "말 많은 땅속 도로"   http://m.blog.naver.com/nasci/220918026295

 

 

자동차는 볼나방 같아서 고속도로란 불이 밝으면 밝을 수록 모여 든다.   2026년이면 더 많은 자동차가 몰려 들어 더 길이 막힌다.   이미 뉴욕이 경험한 케이스다.

 

세계의 대도시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나려고 용을 쓰고 있는데 박원순 시장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

 

미국의 대도시의 변화하고 있는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한다.

 

San Francisco 의 <지속가능한 도시>로 향한  계획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의하면  지속가능한 도시의 계획중에 교통편은

 

 

San Francisco

궁국적으로 사람이 도시안에서 이동할 때 거의 대부분 대중교통,  도보,  자전거에 의존한다  (Ultimately, in a sustainable San Francisco, almost all trips to and within the City will be on public transit, foot or bicycle ) 계획이다 .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755 [지구별에서-MyLifeStory]

 

 

New York

 

 

 

뉴욕시 교통청장(Transport commisioner) Janette Sadik-Khan

New York 을 미국의 제일 친자전거 시(bike friendly city)로 바꾼 인물 

2016 년 3월 Guardian 지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cities/2016/mar/11/cycling-fights-new-york-mean-streets-janette-sadik-khan

 

그는 작년에 "거리싸움(Street Fight)" 라는 책을 출판했다.

 

 


도시 혁명의 지침서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냈다.

당신이 미래의 도시를 걱정한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으세요.


Janette Sadik-Khan transformed New York City s streets to make room for pedestrians, bikers, buses, and green spaces. Describing the battles she fought to enact change, Streetfight imparts wisdom and practical advice that other cities can follow to make heir own streets safer and more vibrant.

 

자넷 사디크-칸은 뉴욕시의 거리를 보행인과 잔차인과 버스와 녹지공간으로 바꿔 놨다.  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싸워왔던 싸움을 서술하면서 다른 도시도 뉴욕의 변화의 길을 따를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뉴욕의 Red Zone 표지판

서울시도

땅속 도로를 만들 것이 아니라 도심에는 차가 들어 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Chicago

 

 

 

2016년 9월 시카고 트리뷴지 기사

(http://www.chicagotribune.com/news/local/breaking/)

에 의하면 시카고고 뉴욕을 제치고 미국 최고의 친자전거시로 승급했다고 한다.

자세한 기사 내용은 위의 url 을 참조

 

 

Los Angeles

 

2016년 Newsweek 는 로스앤젤레스의 젊은 시장의 기사를 실었다.

 

 

 

http://www.newsweek.com/2016/01/22/los-angeles-mayor-eric-garcetti-traffic-cars-gridlock-sidewalks-414912.html

 

 

 

마흔 네살의  3 년차 LA 시장 에릭 가세티는 지난 반세게 제3세계의 독재자처럼 군림해온 자동차를 몰아 내고 도시를 첫번째 "포스트 모던" 도시로 탈 바꿈시키겠다고 한다.

네바퀴의 짐승(forur-wheeled beast) 를 잘 길들여서 LA 시민이 걷고 자전거타고 대중 교통을 쓰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포부다.

 

 

미국과 같이 자동차문화로 건설된 도시에서 자동차를 몰아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데 박원순 시장을 뭘 하겠다는 건가?

 

자넷 사디크-칸의 "Street Fight" 를 읽어 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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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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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1 09:20 신고

    영등포공원은 철로변이어서 접근성이 매우 나쁩니다. 굳이 갈때는 영등포역 롯데백화점에서 가게됩니다. 애초에 공원하기에는 입지조건이 맞지않은 곳입니다. 제물포터널은 서울로 진출입하는 인천 차량들을 위해 민자로 건설중인데 환기구 등 설치문제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서 공사표지판을 안붙이고 하는 것 같습니다.
    더운날 고생 하셨지만 3륜 전에 미리 도보 답사하시길 참 잘하셨습니다..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1 11:37 신고

    서울시의 공원은 모두 입지조건이 나쁩니다. 좋았던 곳도 주변 위주로 개발하다 보면 나빠집니다. 저의 동네 도곡 공원 매봉산도 좋은 등산로가 있었습니다 주변 아파트들이 다 막아버렸기 때문이 나빠진 겁니다. 영등포 노면 철도야말로 자하화 해야 합니다. 대도시의 노면 철도는 대부분 지하화하고 있습니다. 철도는 전철화 되었기 때문에 매연 걱정은 없습니다 . 제물포터널 뚫기 보단 노면 철도 지하화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진보이건 보수인건 시장이란 작자들이 뭔가 보여 주어야 그걸 발판 삼아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정이 전시위주로 흘러 갑니다. 정치를 몰아 내야 국민이 삽니다. 숨을 쉴 수 있습니다. 3기의 뉴욕시장을 지낸 블름버그는 민주 공화 양당에서 대권 주자로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했습나다. 뉴욕을 그린화 한 것은 대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3.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2 09:26 신고

    좋은 지적이십니다.
    자전거와 보행자 위주의 도로를 우리도 만들어야지요.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6.18 16:01 신고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너무 뒤졌습니다. 행정공무원의 의식수준도 문제지만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금연주의자의 고백

 

지난 토요일 늘 보는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 "이난영"씨의 "다방의 푸른 꿈" 이란 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그 노랫말의 첫 머리에 "담배연기"란 말이 나온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추억...

 

멋 있는 가사다.   

 

 

 

담배의 명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의  라스트 신이다.    

 

 

 

Joseph Cotton 주연의 1949년 영국 영화 "The Third Man"  의 마지막 장면 

Greham Greenee 원작의 이 영화는 1999년 영국 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가 영국 영화 역대 최고의 작품

(greatest British film of all time.)으로 선정했다.

https://youtu.be/X7bInqjmEN4

 

 

 

옛날에는 담배는 이처럼 멋이 있었다.

 

담배 연기하면 나도 추억이 있다.    극렬한 금연주의자인 나도 한 때 담배를 피웠다.

 

2년에 한 번씩 공단 건강검진 문진표를 작성하다 보면 옛날에 내가 지은 죄를 고백하게 만든다.   담배를 언제 얼마동안 하루에 몇가치 피웠는가를 되새기게 한다.   아 2년전에도 물었는데 또 이걸 묻네....

 

이 문진표의 답을 미리 말하면 난 스물 한 두살때 부터 마흔이 되기 한, 두해 전까지 하루 반갑 (열가치) 정도의 양을 피웠다.

 

내가 담배를 배울 땐 담배의 해독에 대해서 알려진 것도 없었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멋을 부리는 것과 비슷하게 받아 들였다.

 

남자가 술 담배 못하면 뭣에 쓰노?  할 만큼 남자면 술 담배 정도는 해야 남자라 불릴 수 있다는 식이었다.

 

1956년 내가 대학 2,3 학년 무렵에 쓴 일기장엔 담배연기를 자연(紫煙 보라빛 연기)이란 낱말로  멋을 부려 표현했다.

 

 

 

1956년 3월 18일 (일요일) 에 쓴 내 일기장의 일부

Viceroy는 그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양담배 이름이다.

 

 

내가 담배를 배우게 된 계기는 내가 대학생 때 가정교사를 하고 나서였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혜화동 일대에서는 쪽집게 A급 가정교사로 소문이 났었다.  (2007/08/04 - [일상, 단상] - 강남엄마 따라잡기 - 쪽집게 과외선생)

 

그 때 그 글에서도 내가 담배를 배우게 된 동기를 간략하게 쓴 일이 있다.     과외를 맡긴 엄마들이 과외비를 낼 때가 되면  날 찾아와선 과외비와 함께 당시로는 최고의 선물인 양담배를 한 두 보루(10갑)씩  대 주었다.  자연히 담배를 자꾸 피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1959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양담배를 대 놓고 피게 되었던 것이다.    Chesterfield 와 Philip Morris 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 종류를 잘 갖다 주었다.   일기장에 적힌 Viceroy 도 한 동안 그 logo 가 한국 공군 마크를 닮았다해서 "공군담배"라는 닉네임이 붙어서 뜨던 담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는데 군대에서는 "화랑" 담배를 대 주었다. 화랑담배는 그냥 보통 종이 포장이라 배급을 받을 때면 담배는 바짝 마른 풀가루였다.   연기가 너무 매워서 담배를 꺼꾸러 물고 입김으로 적셔서 불을 붙이곤 했다.   훈련소에서 노는 시간에 할 일 이 없으니 담배 피우는 일이 휴식의 전부였다.  화랑 담배를 꺼꾸러 물고 입김을 불어 넣던 생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대하고 419 가 났고 그 해 8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 다음 해 아내와 결혼했지만 담배 피우는 습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60 년 초반에 담배의 유해성 공방이 처음 일었다.   미국의 담배 회사와 보건 담국이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담배갑에 담배 유해성 경고를 넣어야 하느니 마느니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막강한 자금을 동원한 담배회사들은 로비와 광고,  사이비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반격이 만만찮았다.

 

내가 박사논문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론물리 전공 대학원 학생은 Annex 라고 불렀던 물리학과 뒷켠 목조 건물에 연구실을 배당 받았다.    그 연구실을 쓰던 대학원생 대부분은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내 office mate 인 Nori 만 담배를 피웠다.   그래서 자연히 우리는 담배 피는 Office mate 끼리 방하나를 나눠 쓰게 되었다.

 

우린 대부분 올빼미족이었다.   낮에는 시끄러워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저녁을 먹고 다시 연구실에 와서 밤샘 공부들을 했다.   자정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고 두시 세시에 집에 돌아 갔다.   자연 다음날은 늦잠을 자고 10시 아니면 11시에 학교에 왔다.  

 

그러다 보니 자정 쯤 되면 출출해져서 캠퍼스에서 1 마일은 떨어 진 45가의 "Rainbow" 라는 Tavern (피맥)에 가선 피자를 사 먹곤 했다.     다시 연구실에 돌아 가지 않을 땐 생맥주도 한 두잔 했다.

 

그 때 옆방의 Ed Fizet 라는 친구는 의자 팔거리에 걸친 내 오른 손 손가락사이에 끼운 담배와  왼 손으로 잡은 맥주 Pitcher의 포즈를 쳐다 보고는  멋 있는 "Classic pose" 라고 칭찬해 주곤 했다.

 

난 그저 무심히 자연스럽게 취한 포즈인데 그 친구의 "classic pose" 라는 칭찬이 아직도 귓가에 맴 돈다.

 

담배는 내겐 그런 멋이었다.

 

1964 년경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이던 물리학과 선배 한 분이 UW 에 연수를 오셨다.    물리학과 선배이기 때문에 같이 많이 다녔는데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다.  

 

내 담배 피는 모양을 사진 찍어 준 것이 있다.   아마도 멋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앨범에 붙어 있었던 같아 찾아 보니 있었다.

 

캐나다 Vancouver의 UBC 에서 포닥(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에도 금연을 못하고 담배를 피울 때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양담배를 금지하였고 공무원이 양담배를 피우다 들키면 엄중한 처벌을 내렸다.    그 땐 전매청에서 팔 던 최고품 담배는 "백양"이었는데 "청자"가 최고품으로 대체되던 시기였다.   전매청 담배는 양담배에 비하면 값도 만만찮은데 질은 형편 없었다. 

 

내 옆방에 내 동갑내기 교수가 있었는데 우리는 둘이 이 참에 담배를 끊자고 제안했다.  둘이서 끊으면 서로 격려하면서 감독하면서 금연이 용이하지 않을까 해서 였다.   그러니까 70년대 초에 내 최초의 금연 노력이 시작되었다.

 

"금연" 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금연 다시 흡연등 여러번 끊고 피우고를 반복하다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이사 간 다음엔 완전히 끊었다.      그러니까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싯적" 못된 버릇을 청산한 셈이다.

 

1977 - 78 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USC 에서 방문교수로 1년 지낼 때 미국의 금연상황은 굉장히 발전해 있었다.     그래도 Semiar 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 둘 있었지만 재털이는 치운 상태라 담배갑에 재를 터는 궁상을 떨었다.    

 

1965-66 년 Brown 대학에 1년 방문했을 땐 물리학과 건물 자체가 금연 빌딩이었다. 

 

작년에 노벨상을 탄 Kosterlitz교수가 추운 겨울에도 건물 밖 현관에서 떨면서 담배를 피던 딱한 모습이 떠 오른다.(2016/10/04 - [일상, 단상/잡문] - 2016년 물리학 노벨상)

 

 

 

.................

 

 

 

 

과외 선생을 할 때 엄다들이 갖다 주던 Chesterfield 담배

아마 이 담배로 담배를 배우지 않았나 싶다.

 

 

 

공군 담배로 닉네임이 붙었던 양 담배

Viceroy

1956 년 일기장에 썼던

Viceroy 의 자연(보라빛 연기) 주인공

 

 

 

1963년이나 64년 무렵 담배에 불을 붙이던 내 모습

Seattle 에서

당시 UW 에 연수왔던 경북대 L교수가 찍어 준 사진

당시엔 크루컷(Crew Cut)이 유행이라 나도 한 동안 크루컷 머리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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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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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07 08:29 신고

    건강검진시 금연한 지 10년쯤 되고 아직도 100% 금연은 아닌 저는 사실대로 기재합니다만, 금연하신지 40년이 지나셨으면 건강 검진시 이실직고(?) 하시지 말고 평생 안피우신 걸로 간단 작성하셔도 검진에 영향이 없으실 듯합니다. ㅋ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6.07 11:37 신고

      감사합니다. 문항이 있으니까 항상 옛날 기억을 되 살려 주는 거지요. 담배라는 게 원래 인다안들은 의식으로만 피웠다던데 백인들이 그 악습을 달리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그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도가니로 밀어 넣게 된 거지요. 안타깝습니다.

  2.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2 09:24 신고

    담배는 멋으로 피웠던 시기가 제게도 있었지요.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커피와 담배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친구이자 필수품이었지요..^^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6.18 15:58 신고

      감사합니다. 수문장님도 흡연 경력이 있으셨군요. 전에는 담배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지금은 그 해악이 그 만큼 알려졌는데도 금연운동은 상대적으로 미약합니다. 좀 더 강력해 져야 할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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