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2018/03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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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ita 브롬톤 가방

 

이 번 여름 여행을 위해 브롬톤 가방을 또 샀다.   Vincita 가방인데 작년에 산 것은 Brompton 용이 아니라 너무 컸다.    또 앞뒤면에 커다란 자전거 로고가 있어서 항공 카운터에서 화물을 위탁할 때 자전거라고 보고 웃돈을 요구하는 승강이를 벌이기 일수라  자전거 로고가 없는 가방을 사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방에 올려다 놓은 Vincita 자전거 가방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36 [지구별에서-MyLifeStory]

 

작년에 암스테르담에 가서 검정 마크펜으로 로고를 지우려 했지만 잘 지워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브롬톤 전용이 아니라 크기가 너무 컸다.

 

그런데 Vincita 에서도 작은 Brompton 전용가방이 있는데 그것도 자전거로고가 접은 형태가 하니라 쫙 편 형태로 찍혀 있어 항공사 카운터에서 또 말썽을 부릴 것 같아 어떻게 지울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고민은 나만이 아니었다.   Vincita 가방 광고 요튜브에 어떤 이가 로고가 있어 항공사 카운터에서 extra charge 를 한다고 불평을 쓴 것을 읽은 일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번 새로 나온 Brompton 전용 항공 수화물 가방에는 옵션으로 로고가 없는 것도 판매하고 있었다.

 

자전거 로고를 검정 스프레이로 지울까 어떨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옛다 질러라.  오늘 두 번째 가방이 왔다.   200불이 넘으면 관세가 붙기 때문에 두개를 하나씩 따로 따로 주문했다.

 

값은 $139.90 USD 이고 운송료는 16불 정도였다.  타이제품이라 타이 본사에서 직접 주문했고 페이펠로 결제했다.  두 번째 것은 지난 토요일에 주문했으니까 딱 1주일 걸렸다. 

 

 

 

B132H Soft Transport Bag for Brompton Bike with wheels

Dimension

  • Width 64 cm
  • Depth 30.5 cm
  • Height 64 cm
  • Volume 125 L
  • Weight 4.6 kg

항공 위탁수화물 크기 규정 158cm/62in 을 5mm 초과한다.

 

 

값은 $139.90 USD 이고 운송료는 16불 정도였다.  타이제품이라 타이 본사에서 직접 주문했고 페이펠로 결제했다.  두 번째 것은 지난 토요일에 주문했으니까 딱 1주일 걸렸다. 

 

 

 

 

빈치타 가방 접혀서 우송되었다.

 

 

 

두 개를 따로 따로 샀다.

 

 

 

파퀴 발의 무게가 1.68 kg

 

 

 

바퀴 달린 가방의 무게

4.470 Kg

 

 

 

메고만 다닌다면 굳이 바퀴를 달지 않아도 된다.

 

 

 

바퀴는 찍찍이로 붙이게 되어 있다.

 

 

 

가방에 붙어 있는 찍찍이 암면을 바퀴의 숫면에 부착시키고

가방에 부착되어 있는 덮게를 덮게 되어 있어 단단히 부착된다.

 

 

 

찍찍이가 바닥과 덮게 두면에서 바퀴를 감싸 안고 있어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다.

 

 

 

두개를 모두 접어 두면 가방을 갈무리하기 쉽고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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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5.14 14:53

    비밀댓글입니다

제주도 2018 -  제주도 켄싱턴호텔 한식당 돌미롱

 

지난 겨울 제주도에 머므는 동안 자주 갔던 호텔 식당은 켄싱턴 호텔의 한식당 "돌미롱"이었다.

 

생맥주가 있어서 좋았다.  

 

처음엔 코니가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해서 검색하다 돌미롱에 한방간장게장 메뉴가 있어서 갔는데 그 밖에도 점심 특별 메뉴로 성계미역국과 돌문어 비빔밥이 먹음직 스러워 서너번 갔다.

 

한식당인데도 생맥주를 팔았고 또 거기까지 걸어 가는 길이 조금 멀어도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좋은 산책길이라 좋았다.

 

한 번은 눈이 녹지 않아 등산폴을 가지고 가면서 짚고 다녔다.  서귀포 중문단지에서 눈이 쌓이 길이 얼어 붙은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 나오는 애피타이저였던 것 같은 데 오래 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식당에서 내다 보이는 내정

 

 

 

첫 번 갔을 땐 손님이 없었는데 나중에 갔을 땐 이런 안쪽까지 안내 받지못했다.

 

 

 

한식당에서도 생맥주를 판다.

가격은 500 ml 가 안된 것 같은데 만원 가까웠던 같다.

호텔 값이다.

 

 

 

곁드려 나오는 요리든

 

 

 

한방간장게장

 

 

 

곁반찬

 

 

 

이 건 다른 날 사진 같다.

 

 

 

전채

 

 

 

돌 문어 비빔밤

 

 

 

간장 계장

 

 

 

돌문어

 

 

 

밑반찬

 

 

 

후식

 

 

 

후식

 

 

간장 게장은 점심값이 5만원이나 6만원 했던 것 같고 돌문어는 4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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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까치의 집 - 내 옥상에서 가져간 건축자재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와 옥상정원을 보면 뭔가 허술하고 많이 빠진 듯한 느낌이 난다.   내가 자주 쫓아 내던 까치가 옥상의 나무에서 꺾어 가져간 가지를 가지고 둥지를 튼 것 같다.

 

우리집 옥상 정원에 자주 와서 똥을 싸고 가서 늘 어디에서 사는 새인가 궁금했는데 코니의 침실 바로 창밖 2,3 미터 떨어진 전주위에 둥지를 지어 놨다.   한전에 연락했는데 알을 까고 새끼가 자라서 나가면 빈 둥지를 치우겠다고 한다.

 

까치가 정원을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날아 갈 때 배설하고 가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쫓아 내지만 당할 수 없다.   같이 살아야 한다.

 

도시까치가 어디에서 사나 하는 궁금증은 풀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까치의 지능은 6살 정도의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 한다.  포유류 빼고는 "거울"속의 이미지가 자신이란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존중해 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나무가지 꺾어 간 것도 무혐의 처분하기로 했다.  대기에서 탄산가스를 마시고 햇볕을 보고 자란 나무를 내 것이라 우기는 것도 나무의 "공개념" 에 위배하는 주장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둥지엔 두 마리가 산다.  아마도 암수 한 쌍일 것이다.

한마리의 꼬리만 보인다.

 

 

 

옥상 얼개를 덮었던 나무가 엉성해졌다.

가만히 보니까 가느다란 연한 가지만 꺾어 간 것 같다.

 

 

 

건축재와 둥지가 가까우니 집짓기 쉬었을 것이다.

이 것도 이 새가 약아서 그랬을 것이다.

 

 

 

까치는 거울에 비친 새가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포유류밖의 종으로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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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28 20:57 신고

    나뭇가지 가져간건 무혐의처분이 되지만, 배설물은 유죄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ㅎ
    (제 집이 아파트 5층인데 난간에 걸린 에어컨실외기에 새 배설물이 있어서 가끔 청소하느라..)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3.29 16:31 신고

      새가 날기 전에 배설하는 습성은 진화과정에서 습득한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니 그것도 무혐의처분해야겠죠. ㅎㅎ

등창

 

조선왕들이 가장 무서워 했다는 등창이 나서 거의 한달 가까이 고생을 했다.

 

리모델링, 이사등의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진 틈에 화농이 심해져 결국 한 열흘 동네 의원에 다니며 째고 고름을 빼고 항생제를 맞고 항생제도 먹고 겨우 가라앉혔다.

 

오늘 아침에 셀카봉으로 등창을 찍어 보니 아직도 지름 한 3cm 부위가 자주색이다.  다 사라지려면 몇주 걸릴지 모른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는 바로 누어 자는 잠버릇인데 등창으로 바로 눕지 못하니 잠을 설치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스틸녹스(졸피뎀)를 끊고 나서 잠들기가 힘든데 데 등창까지 더 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열도 나고 몸살기까지 났다.  보통은 그냥 가라앉기를 기다리는데 견딜 수 없어 가까운 가정의학 의원에 가서 고름을 짠 것이다.   이틀은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는데 병원에서 어른이 소리지르는 것이 창피해서 사흘째 부터는 손수건을 입에 물고 이를 악물었다.

 

 

 

오늘 아침 셀카봉으로 찍은 등창

거울로는 볼 수가 없으니 셀카봉을 이용해서 등창의 진행을 관찰했었다.

셀카봉이 이런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등창이 아물지 않고 재발했다.

http://boris-satsol.tistory.com/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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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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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28 20:47 신고

    많이 나으신 상태인데도 크기가 저 정도이니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얼른 쾌차하시길 빕니다.

  2. 소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3 14:34 신고

    우아....장난아니네요.
    방금 조선 왕사인들을 보고 고름때문에 사람이 죽는다고?
    라는 생각했는데...장난아니네요

구역질 나는 정치의 계절

 

또 다시 가장 혐오스런 정치의 계절이 왔다.  선거가 무슨 스포츠 게임이나 되는 듯 한가하게 613 지방선거 관전포인트 뭐니 하는 뉴스도 올라 오지만 미친개, 정치공작, 사냥개, 들개하면서 구역질 나는 말들을 하는 것을 듣자면 역겹다.  (6ㆍ13 지방선거 7대 관전 포인트)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아담스처럼 정치가 진화해서 정치를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가 (2017/04/24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생각해 보지만 그건 어림없는 소리고 정치는 날로 퇴화하고 있다.

 

정치가 퇴화하는 것은 퇴화라기 보다 기술문명의 진화에 정치가 따라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Technology will make today’s government obsolete and that’s good )

 

정치는 산업혁명이 일어난 19세기 초반의 제도에서 별로 진화한 것이 없는데 사회는 이미 제2기계시대에서 제3 기계시대 AI-Robot 시대로 진입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도 말했다.  21세기에는 민주주의는 소멸된다.  왜냐하면 넘쳐나는 데이터를 정당이나 의회가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다.

 

in the twenty-first century, democracy might decline and even disappear. As both the volume and speed of data increase, venerable institutions like elections, political parties and parliaments might become obsolete – not because they are unethical, but because they can’t process data efficiently enough.

Harari, Yuval Noah (2017-02-21).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p. 373). HarperCollins. Kindle Edition.

 

지식과 데이터는 넘쳐 흐르는데 그것을 처리할 만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지금의 정치인이라는 것은 그런 분야에 전혀 훈련받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준표대표나 장제원대변인이 발악하듯 소리지르는 것을 보면 알만한 하다

 

앞에 인용한 글에서 그랬다.

 

Industrial age government, information age world

Already today, the private sector is deploying cutting-edge technology as soon as practicable while the public sector struggles to implement turn-of-the-century solutions to seemingly straightforward tasks.

 

산업혁명시대의 정부가 정보혁명시대에서 뭘 하려니 그 괴리가 점점 벌어지고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JTBC 밀착카메라가 취재 보도하는 이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 해결해야 할 행정당국의 변명을 들어 보면 요즘은 돈(예산)이 없어서가 아니고  법령이 미비해서 손 쓰지 못한다는 경우가 더 많다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데 그런 법령을 고치고 입법해야 하는 국회라는 것이 매일 한다는 것이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지수함수적으로 발전하면 따라서 고쳐야 할 제도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정부나 국회가 무얼 할 생각은 않고 툭하면 장외투쟁한다고 국회를 비워 놓고 나가기 일 수다.

 

정보 기술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실업" 즉 "일자리" 문제다.     정부는 "일자리"문제를 제1우선 순위로 두고 있지만 방향이 전혀 틀렸다.

 

영국의 공공기관의 일자리는 2030년이 되면  85만개가 없어진다는 Deloitte 와 Oxford 대학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공공기관의 일자리엔 행정기관의 행정직과 학교 교사와 경찰등이 포함된다.

 

A 2016 study by Deloitte and Oxford University found that up to 850,000 jobs in the United Kingdom’s public sector could be lost as a result of automation by 2030, in administrative roles as well as jobs for teachers and police officers.



 

Government public servants such as police could be replaced by automation within 15 years. A police robot responds to a dangerous criminal incident in this still from the 2015 film Chappie, written and directed by Neill Blomkamp. (Handout) 

 

15년안에 경찰도 로보캅으로 대치된다.

2015년 영화 "Chappie" 중에서

 

그러니까 공무원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공공부분의 일자리나 만들고 노조나 강화하자고 하니 10년이나 15년후엔 어떻게 하자는 계획인지 모른다.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라 정부야 말로 파괴적 혁신이 무르익은 분야다. 

 

15년후면 나는 아마도 이 변화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지 모르지만 지금 막 사회에 진입하려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툭하면 철지난 이념타령이나 하는 "홍준표"나 "장제원"같은 “obsolete”한 무리들이 이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 쫓겨 나는 것을 생전에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이 파괴가 더 빨리 올지 모른다.  빨리 와서 “obsolete하고 혐오스런 정치인들이 쓰레기장으로 떠 밀려 나가기를 학수 고대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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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25 10:56 신고

    요즘의 추세로 보면 변화가 더 빨리 올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주도 2018 - Vadada2HearianHotel

 

 

지난 제주도 겨울 여행은 눈으로 갇혔던 여행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해리안 호텔은 천제연로의 중문 소방소근방으로 거의 고개 꼭대기에 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나 내리막길이라 눈이 오면 미끄럽다.   등산폴을 기지고 와서 한 두번은 등산폴을 들고 나가기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중문의 눈보라

 

 

아무리 눈이 와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 호텔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길건너 해성마트에서 뭐던지 사 먹을 수 있고 조금 걸으면 식당이 즐비한 천제로이니 그 근방만 다녀도 점심 먹을 곳이 있다.   

 

길이 미끄러워 조금도 걷기 싫으면 호텔 1층의 "도담"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랬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뭐던지 지나간 날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지금 이 순간도 얼마 안 있어 지나간 추억이 된다.

 

그래도 날씨가 좋고 걸어 다닐만 하면 자주 갔던 곳이 "바다다"다.  Vadada 는 갈 때에는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서 느긋하게 칵테일과 우리가 좋아하는 바다다 시그네쳐 새우버거를 사 먹었다.   돌아 올 때에는 호텔까지 아주 좋은 산책로가 있어 그걸 이용했다.

 

바다다에서 차가 나가는 방향으로 걸으면 월드컵보조경기장이 나오고 거기에서 "주상절리" 주차장까지 아주 좋은 산책로가 나 있다.   다리가 아프면 주상절리 주차장에서 관관객을 싣고 들어 오는 택시를 타고 돌아 올 수 있다.  

 

기분이 내키면 주상절리 서쪽 입구까지 걸어 갈 수도 있다.  우린 경로라 신분증만 보이면 경내로 들어 갈 수 있어 그 점은 편리했다.

 

주상절리 서쪽 입구는 바로 씨에스 호텔에 이어져 있는데 거기엔 작년 군 고구마를 사려고 자주 왔던 곳이다. 군고구마는 올해도 팔고 있었다.  지난 가을 에어프라이어를 사서 호텔에 맡겨 놓고 온게 있어 그것으로 날 고구마를 사서 구어 먹었다. 굳이 군고구마를 사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리가 아프면 카누푸스 카페에서 차 한잔 하고 앉아 있다 올 수도 있다.

 

씨에스 호텔에서 나와 중문관광로에 올라서서 조금 서진하면  올레8길 오르막길이 나온다.  가파른 등산로이지만 나무 계단이 잘 되어 있어 오르기 어렵지 않다.   올레8길은 천제연로 산책로와 만나 아스팔트길로 나오게 되어 있지만 천제연폭포 경내로 들어 갈 수 있다.   물론 입장료를 내어야 하는 경내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경로 무료인 경우에만 이 길을 이용할 수 있다.     계속 경내 안내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천제연폭포 동쪽 입구가 나온다.   주차장을 지나 천제연로로 나와 몇미터 동진하면 해성마트와 해리안 호텔이 나온다.

 

아래 지도는 직선으로 그렸기 때문에 실제 거리는 꼬불꼬불하기 때문에 6 킬로에 육박한다. 

 

 

 

개념도

중간 중간 직선을 그었기 때문에 3.6 Km 로 나왔지만

직선 구간이 구불구불 하기 때문에 실제 거리는 6 Km 넘는다.

 

 

대포포구 왼쪽에 바다다가 있고

중문 119센터 옆이 해리안 호텔이다.

 

 

 

appetizer로 마기리타를 자주 주문했다.

 

 

 

이 집 시그네쳐 메뉴인 새우버거를 먹었다.

 

 

 

후식주로 "Kiss of Fire" 를 시켰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칵테일이 아니었다.

네델란드에서 마셨던 "Kiss of Fire"는

 

 

 

코니의 후식 "Kiss of Fire"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41?category=612282 [지구별에서-MyLifeStory]

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레시피가 나온다.

 

 

 

"코인트로"는 오렌지향의 "리큐어(liqueur)" 다.

주로 후식주로 마신다.

 

 

바다다의 "Kiss of Fire"는 본격적인 식전 칵테일이다.    똑 같은 이름의 칵테일이 둘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식후주를 잘못 시켰으니 다시 디저트로 티라무스를 한 조각 시켜서 나눠 먹었다.

그날 점심 총계는 10만원이 넘었다.

"바다다"에서 한 번에 10 만원 넘는 점심을 먹어 보기는 그 날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이 날 이후에도 여러번 다시 왔었고 떠나기 전날도 여기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타고 온 택시기사에 부탁해서 다음날 공항행을 예약했었다.

 

 

 

오는 길에 씨엔에스 호텔의 카페 카누푸스를 지나 왔다.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중문 관광로에서 을라서는 올레8길 입구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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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21 09:56 신고

    중문 관광로에서 올라서는 올레8길 입구 사진은 액자에 끼워 벽에 걸어두고 싶을 만큼 참 멋있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3.21 11:11 신고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전거길은 형편없이 망가졌는데 올레길은 참 잘 가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길 망가진 것은 렌터카가 너무 많아진 것도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차도와 나란히 난 자전거길(환상로)를 타는 헬멧 쓴 잔차인을 가끔 보는데 안스럽습니다. 10여년전 Hopper 로 일주했던 기억이 그리워집니다.

iRobot Braava 물걸레로봇

 

제주도에서 귀국한지 한 달이 넘었다.    아직도 몸이 지쁘듯하다.   원래 이사를 한다든가 하는 큰 일을 치르면 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법인데 이사 플러스 리모델링까지 했으니 그 스트레스는 말이 아니다.  물론 며느리가 대행을 했지만 돌아 와서 정리하는 것 까지 며느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내게 돌아 오는 스트레스 몫도 적잖다.   아직도 다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그냥 천천히 할 생각이다.

 

7,8년 다니던 도우미 가정부도 바꿨다.   일은 빠른데 그 대신 거칠어서 사고가 잦다.  새 집에 흠집을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바꾼 것이다.    새 도우미 가정부는 일은 얌전한 대신 느리다.  내 서재까지 오후 4시간 안에 청소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내 서재의 청소를 하기로 하고 작은 진공 청소기와 물걸레 로봇을 하나 구입했다.

 

아이로봇이란 회사에서 만든 Braava 라는 물걸레 로봇을 샀다.

 

아이로봇 회사는 전에 포스팅했던 알파고 이야기에서 잠간 언급했던 MIT 교수출인 Rodney Brooks가 공동 창립한 회사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search/마음의 미래 [지구별에서-MyLifeStory]

 

 

iRobot는 원래 청소로봇을 개발하려고 만든 회사는 아니고 이 청소로봇도 다른 스타트업이 개발한 설계를 사 들여 iRobot 회사 이름으로 판다고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이 청소로봇을 산 것은 아이로봇 이름 때문이었으니까 개발한 스타트업체가 자기 이름으로 팔았다면 성공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브랜드" 라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가있는지 알 수 있다.

 

 

 

네이버 쇼핑에서 특급 배송비 100,000(십만)원으로 직구했다.

3일만에 온 것 같다.

 

 

 

청소로봇과 Northstar  Navigator, 충전 거치대, 걸레 마른것 하나와 젖은 것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거치대에서 충전하면 두시간 안 걸려 충전된다.

 

 

 

네이비게이터는 천장이 모두 보이는 곳에 놓도로 되어 있다.

천장을 향해 신호를 쏘면 청소로봇이 상대 위치를 파악하는 것 같다.

로봇 앞면에도 센서가 있어 장애물 여부를 감지하는 것 같다.

 

 

 

물걸레를 할 때에는 물을 채워 주어 걸레가 마르지 않게 조금씩 물을 흘려 준다.

 

 

 

아이로봇 걸레

이 걸레는 양옆이 찍찍이가 되는 걸레면 굳이 이 회사 제품을 사서 쓰지 않아도 된다.

 

 

 

청소 끝난 걸레

원래 깨끗했던 바닥이라 별로 더러워지지 않았다.

검은 반점들은 오물이 아니라 물기가 많은 곳뿐이다.

 

 

 

아직도 정리가 끝나지 않아서 상자에서 마구 집어 넣었던 것이 그냥 남아 있다.

니이가 들어서 힘이 너무 들기 때문에 천천히 하려고 한다.

 

네비와 걸레 로봇과의 작동원리에 대해 알아 보려 했지만

이 것이 핵심기술인지라 어디에도 상세히 설명한 곳이 없었다.

아이디아만 안다면 쉽게 모방할 것이다.


 

새 도우미를 하루 더 쓸 수도 있지만 이 로봇이 훨씬 경제적이다.

 

 도우미 아주머니 일자리 하나를 로봇이 대치한 셈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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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없다. - 정부는 GM Korea 에 돈 붓지 말라


The former vice chairman of GM just predicted the car industry’s future: it has no future


 

며칠 전 아내 코니가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80세가 넘었기 때문에 5년만 갱신해 준다.  5년후에 다시 검사를 하고 갱신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거다.   좋은 정책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까지 운전을 할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다.   다음 운전 면허를 갱산할 때 까지 레벨 5 의 자율차가 나올까?   레벨5 자율차는 완전자율차다.  우리가 기다리는 소식은 Yes 라는 답이다.  그러기 때문에 난 계속 자동차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알아 낸 것은 자동차 산업은 5년 안에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겪을 거란 이야기다.

 

 

 

지금 파괴적 기술혁신이 무르익은 산업 하나를 꼽으라면 그 건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The future of the modern car is actually digital

 

피괴적 혁신이란 한 산업의 근간 기술이 완전히 새 근간 기술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가장 좋은 보기가 광화학필림 사진기술이 디지털 사진 기술로 바뀐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학필림 사진 산업의 대명사라 했던 이스트만 코닥회사는 망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20년전만 해도 서울의 구멍가게에서 Kodak 로고와 "현상, 인화"라는 표지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12 년에 Kodak 회사는 파산을 하고 화학 필림 사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94 [지구별에서-MyLifeStory] )

 

산업이 파괴적 혁신의 과정을 겪게 되면 거대 그로벌 회사는 망하게 되어 있다.   그 혁신이 짧은 기간에 일어 나기 때문에 쉽게 변신을 못하는 것이다.

 

자산이었던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부채로 바뀌는 것이다.  생산시설, 인력, 투자금등이 모두 부채로 돌아 온다.    새 기술로 바꾸기 이전에 부채로 돌아 오는 것이다.  이스트만 코닥도 디지털 사진 산업으로 변신하려고 용을 썼다.  디지털 카메라도 만들고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려 했지만 가볍고 발 빠른 스타트 업체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산업에 파괴적 혁신이 오면 공룡은 죽게 마련이다.

 

자동차산업이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이다.

 

GM의 전부회장이 작년 11월 7일에 말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미래는 없다.

 

The former vice chairman of GM just predicted the car industry’s future: it has no future

 

자동차업계에서 평생을 바친 내가 자동차시대의 종언을 말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5년안에 자동차 소유주는 자기차를 고철로 팔거나 반자율차로 바꾸거나 할 것이다.   20년안에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길에 나올 수 없으며 Lyft, Uber Goodle 이나 이와 비슷한 테크회사들이 현재 Detroit, 독일 또는 일본에 몰려 있던 산업을 모두 대신하게 된다.  

 

 

오늘의 차들은 5년안에 대부분 고철로 팔릴 것이다.

 

“It saddens me to say it, but we are approaching the end of the automotive era,” he writes this month for Automotive News. Our daily travel, he predicts, will migrate to standardized passenger modules as the demolition of the traditional auto industry accelerates. Within five years, he expects, people will start selling their cars for scrap or trade them in for autonomous passenger modules as self-driving cars take over transportation. Within 20 years, human-driven vehicles will be legislated off highways. Companies like Lyft, Uber, Google, and other technology companies will take charge of an industry now centered in Detroit, Germany, and Japan.

 

부르면 부른 곳에 차가 대령하고 올라타서 목적지를 입력하면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이 것이 미래의 개인 이동 수단이 된다.

 

“The end state will be the fully autonomous module with no capability for the driver to exercise command,” he writes. “You will call for it, it will arrive at your location, you’ll get in, input your destination and go to the freeway.”

 

자동차의 비소유경향은 몇주전에 올린 포스팅에 소개했던 “기계, 프랫폼, 군중 - 디지털 미래를 어떻게 길들이나(”Machine, Platform, Crowd: Harnessing Our Digital Future by McAfee, Andrew and Brynjolfsson, Erik")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94 [지구별에서-MyLifeStory]) 의 책에도 이미 언급되었다. 

 

"미국의 도시 거주장중에서 젊은 층에는 자동차의 소유자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이 건 스마트폰 사용연령층과 일치하는데 Uber 라든가 다른 O2O(Online to Offline) 자동차서비스 프랫폼을 선호하는 연령층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There are already signs that car ownership is in decline among younger US city dwellers. By 2013, people born in the 1980s or 1990s owned 13% fewer cars than the generation before them when they were the same age. These people represent exactly the smartphone-having demographic we would expect to be using Uber and other O2O automobile platforms."

McAfee, Andrew; Brynjolfsson, Erik (2017-06-27). Machine, Platform, Crowd: Harnessing Our Digital Future (p. 197). W. W. Norton & Company. Kindle Edition.

 

20년 안에 자동차는 디지털 머신으로 변신한다.

 

 

 

20년후의 자동차는 오늘의 눈으로 보면 자동차가 아니다.

디지털 머신이다.

모든 도로위의 자동치는 연결되고 이미 입력된 지도와 센서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음직이고 동력은 모두 전기가 된다. 인간과 차는 스마트 모빌리티에 의해서 연결된다.

그 바탕에는 엄청난 양의 컴퓨터(실리콘)와 실시간의 빅데이터를 처리하고 운영하는 엄청난 무른모가 뒤에서 돌아 간다.

 

How the auto industry is preparing for the car of the future

 

그런데 여겨서 예측은 지금 이 시점에서 예측인데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현실은 항상 예측보다 빨리 왔다.     

 

GM 전 부회장이 지금의 자동차는 끝났다고 했으면 끝난 것이다.   Detroit 는 사라지고 Silicon Valley 로 간다면 그런 것이다.  

 

GM이 사라지는 것은 20년까지도 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미래의 개인 교통은 필요에 따라 차종을 선택하고 부르면 대령한다.

올라 타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내려 준다.

주차장을 찾으려 길을 헤멜 필요도 없고 1년에 한 두 번 캠핑을 가자고 SUV 를 살 필요도 없다.

차를 몰고 싶은 사람은 레이싱 카 트랙에 가서 취미에 맞는 차를 골라 운전하면 된다.

아니 어쩌면 가상 현실에서 운전하는 경험을 현실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peak car ownership - Rocky Mountain Institute

 

 

그래도 GM Korea 에 돈을 붓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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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16 08:51 신고

    정부가 GM korea 를 지원하는 것은 여러모로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성의 날과 미투

 

어제가 여성의 날이었다고 한다.  그런게 있는 줄도 몰랐다.  미투운동과 맞물려 여러가지 행사가 있었던 것 같다.

 

"여인"하면 가슴이 아프다.   난 왜 여성하면 가슴아프고 눈물이 날까? 

 

내가 내 생전 가까웠던 여성은 모두 비운의 여인들이었다.

 

내가 처음 가장 좋아했던 여성은 할머니였다.  내게 "귀먹어리 세 할멈" 이란 구전 동화를 불러 주시고 불러주셨던 그 할머니다.  (2014/04/08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세 귀머거리 할멈 이야기 - 내 할머니가 들려 주신 구전동화)

 

 

"내 할머니는 고종 계유 (윤 6월 13일) 생으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어 추산해 보니 1873년에 태어 나셨다. 1943 경 돌아 가셨으니 한 70년 사신 것이다.   나하고는 8년동안 이 세상을 함께 지내셨는데 마지막은 오사카 집 이층 다다미방에 병환으로 누어 계셨다. 

 

병환나시기 전까지 내가 너댓살쯤 되었을 때 할머니는 내게 많은 한국의 구전 동화를 들려 주셨다.  할머니의 이야기 주머니는 엄청 컸다.   무진장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는 자기는 얘기는 잘 못하는 데 할머니는 이야기도 많이 알고 이야기도 잘 하신다고 칭찬을 하곤 하셨다.

 

할머니는 우리와 아무 혈연이 없다.    익헌공 종가집은 증조할아버지때 혈손은 끊어지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모두 그 윗대의 후손집에서 양자로 들어와 종가를 이어 왔다.   그런데 오사카에서 같이 산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3취로 첫번째 두번째 할머니가 모두 손 없이 돌아 가셨고  이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얼마 살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잃은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이 할머니는 할아버지 사후 양아들인 아버지가 어머니로 모신 분이다.

 

파평 윤씨로 가난한 양반 집안이라는 것만 난 알고 있다.   어머니의 이야기로는 가난하니까 부자집 덕좀 보려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 3취로 시집 보냈다고 하셨다.   난 할어버지를 뵌 적도 없고 어머니 말씀으로 기억할 뿐이다.  할아버지 사후 아버지가 나이 많은 사촌의 빚보증을 섰다가 가산을 모든 날리고 말 그대로 우리집은 망했다.   할머니 친정은 덕은 보기는 커녕 나이많은 할아버지의 삼취로 보내서 자손도 못보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사후엔 집안이 망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의 부양으로 살다가 돌아 가신 조선조 말기의 비운의 여인이었다. "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153?category=380860 [지구별에서-MyLifeStory]

 

내 어머니는 말할 것 없이 내겐 가장 소중하고 귀한 여인이었다.

 

한말에 태어나 가장 험난했던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가셨다.   625때 6남매중 둘을 북쪽으로 보내 생이별을 했고 막내딸, 내겐 4살 터울의 손윗 누이는 생사도 모른다.   1997년 1월   그 막내딸에게 금비녀 하나와 지폐 20만원을 돌돌 말아 유언장과 함께 나에게 남기고 가셨다. (비극의 유산 ---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우리 어머니 ------- )

"유품을 정리하던 나는 어머니의 낯익은 필적을 발견합니다.  내가 씨애틀에 살 때 푸른 봉함엽서에  "... 보 거라"  로 시작하며 보내셨던 안부 편지.  글씨와 글씨가 이어지는 옛날 붓 글씨체로 세로 쓰기 했던 그 필적. 지폐 스무 장(이십만원)과 금비녀를 함께 쌌던 그 유서에는 "내가 K가 시집 갈 때 아무것도 못 해 줬는데 나중에 K를 보면 이것이라도 전해 주어라..."

언제 쓰신 유서인지 모릅니다.  아마도 교통사고 이전이라고 추측 됩니다.  어떻게 K 가 살아 있다고 생각 하셨을까?  그리고 시집갔다고 생각하셨을까?   나에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조선 근대사의 비극을 몸으로 살다간 우리 어머니 창녕 성씨는 그 마지막 장을 마감하지 못한 채 떠나 갔습니다.   그 마지막 장을 나에게 남긴 채.

나는 생각합니다. 이 비극의 마지막 장을 내 생전에 보게 될는지.....  그리고 어머니의 비원을 이뤄 드릴 수 있을지.......
아 어머니...."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91 [지구별에서-MyLifeStory]

 

 

내 6남매중 위의 4남매는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 집안이 망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중에 세 누님은 내게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첫째 누님은 내가 태평양전쟁때 오사카에 소카이(피난)와야 할 때 날 맡아 키워 주셨다.  그런데 625때 큰 매형은 1950년 가을 수복해 들어 온 국군뒤에 따라 온 서북청년단 같은 반공단체가 "치안대"라 자처하며 조금이라도 인공치하에서 나섰던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 폭행하고 죽이고 했다.   매형도 이 치안대라는 테러집단에 잡혀가 폭행당하고 결국 살해당했다.  이 누님은 남편의 시신도 찾치 못했다. 30대 중반에 과부가 되어 외로운 여생을 살다 기셨다.

 

두째 누님은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돌봐 주셨고 내가 그 누님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다.  그 누님이 가장 오래 사셨다. (두째 누님의 부고)

 

 내가 전에 쓴 "늙음은 더욱 아름다워라)의 주인공이다.

 

젊었을누님은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있는 누님 또한 아름다왔습니다.  누님을625전쟁피난길에서 얼굴전체에화상을입어자국이아직도남아있습니다. 시대의모든땅의여인이그랬듯누님역시인고의생을살았습니다. 그럼에도여전히아름다운여인으로남아있는누님을나는송원스님이말한늙음의아름다움을생각해 봅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87 [지구별에서-MyLifeStory]

 

"내가 좋아 했던 형수님은 형과 약혼했을 때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선화국민학교 전학을 도와 주셨다.  아버지가 하시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1946년경이다. 

 

그 형수님이야 말로 내가 좋아했던 여인중에서 가장 비극적 삶을 살다 가셨다.  결혼한지 5년이 채 안 되었을 때 625가 터졌고 형은 25살의 새 색시와 년년생 두 아들을 남겨 두고 인민군이 패주할 때 북으로 따라 갔다. 자발적이었는지 반 강제였는지 그 건 알 수 없다.

 

"14 후퇴로 서울이 다시 인민군치하에 돌아 왔을 때에도 형은 형수나 아들을 데리려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형수는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형이 안오면 자기가 아들 둘 데리고 남편을 찾으려 북으로 갈 결심을 한다.

 
 
어머니는 그 자랑스러워한 조선 갑반의 종부 답게 종부와 종손을 젊은 며느리의 손에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며느리와 손자 둘을 따라 월북을 결심한다.
 
 
 
나와 어머니에게는 행운이요 형수에겐 불운하게도 십리도 못가 미군의 폭격에 형수의 뒷굼치에 부상을 입는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뒤굼치가 아믈 때엔 이미 서울은 다시 미군과 국군이 들어 왔을 때였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중3인 어린 나이에 난 어머니와 생이별하는 전쟁고아가 될 번 했다.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형수는 끝내 독수 공방 외로은 삶을 살다 세상을 뜬 것이다.   이민 가서 살고 있는 두 아들이 있는 Los Angeles 에서 재작년에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했다."
 

 

내가 은퇴하고 LA 에 자주 갔을 때  "데련님"에서 "서방님"으로 호칭이 바뀐 나에게 한국에서 이산가족 상봉이야기가 나올 때면 "서방님, 형님 소식 못 들으셨어요" 하곤 묻곤 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가슴 아프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135 [지구별에서-MyLifeStory]

 

 

어머니의 비원의 대상인 K 누나는 나와 4살차이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6남매중에서도 같은 "세대"에 속한다.   위의 누님들이 어머니 같았다면 K누나는 내 진짜 동기같은 누나다.   손이 귀한 집에서 오시카에 와서도 또 딸을 낳았으니 어머니의 실망은 컸을 것이다.    그리고 막내로 내가 태어났으니 내가 얼마나 귀여움을 독차지 했을까는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그 K누나에게 못되게 굴었을 까도 상상이 간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 가 처음 여름방학을 맞았다. 한 달 방학동안을 팡팡 놀다 개학 하루전에 방학 숙제가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난 울고불고 떼를 썼을 것이다.   내 한달 방학 숙제를 K누나가 대신 다 해 주었다.

 

그러니까 K 누나는 내 "밥"이었던 셈이다. K누나도 못된 동생이긴 해도 위의 4남매와는 달리 세대가 같은 나를 오사카에서 태어난 유일한 혈육 남매같은 의식이 있었을 지 모른다.  난 원남동의 셋째 누님집에 학교를 다녔고  K누나는 혜화동의 두째 누님집에서 가사를 도우며 살았다.  가끔 혜화동 두째 누님집에 가면 그 동안 생겼던 사탕 같은 것을 모았다가 날 주곤 했다.

 

625가 나자 인민군의 노력동원에 징발되어 나갔다 오곤 했다.   나가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서울대 부속병원이 가까이 었었으니 인민군 부상병을 치료하는 간호보조일 같은 걸 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인민군의 패색이 짙어 가던 9월 어느날 노력동원이 끌려 나갔던 K누나는 끝내 집에 돌아 오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928 수복이 되고 세상은 또 한번 뒤집혔다.

 

"나중에 나는 이태씨가 쓴 다큐소설 "남부군"을 읽었습니다.  남쪽에 있던 인민군은 인천상륙으로 퇴로가 차단되어 지리산에 집결하여 남부군으로 재편합니다. 그리하여 몇 년간 빨치산으로 전쟁을 계속합니다.  우리에게는 "공비" 라 불리는 저주와 토벌이 대상이 되었던 빨치산이지요.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아 끝내 소멸하고 만 남부군이었지요.  

거기에는 서울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인민군을 따라 나선 한 처녀가 등장합니다.  열 아홉의 나이입니다.  K  누나가 인민군을 따라 나섰을 때 나이가 바로 열 아홉 살이었습니다.  이 처녀 역시 타의에 의하여 지리산 의 여자 빨치산이 되어 종래에는 피아골의 외로운 혼령으로 사라집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K 누나 였는지 모른다고요."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91 [지구별에서-MyLifeStory] 

 

은퇴후 어느 봄날 지리산 한화 호텔에 며칠 머믄 일이 있다.    그 때 그 아픈 이름의 피아골에 올라 가 본 일이 있다.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갈라져 싸운 그 전장의 골짜기, 그 날은 유난히 봄바람이 세차기 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세찬 바람이었다.

 

난 그 무서운 바람소리가 50여년전 피아골에서 스러져 간 젊은이들의 울부짖음 같이 들렸다.   

 

내 구원의 연인 아내도 자칫 비련의 주인공이 될 뻔 했었다.

 

1960년 말 미국 시애틀에서 아내를 만나 열애에 빠지고 마침내 결혼을 결정하고 서울의 양가에 알렸을 때 우리가 동성동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반대의 구실엔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양가 모두에게 해당되고  우리들 자신에게도 미치는 심각한 결혼 장애 요인이었다.    우리는 동성 동본이었다.   우리는 모두 전주 이씨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 족보를 보면 나는 세종대왕의 23대 직계 후손이고 아내는 태조가 추존한 태조의 할아버지 때에서 갈라져 온 후손으로 27대에서 갈라진 동성동본이다.   

 

1960년 한국의 민법에는 동성동본 금혼이 규정되어 있었고 사회통념상으로도 결혼은 불가였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아내는 집안에서는 다른 이유를 더 대어 봐야 먹혀 들지 않으므로 동성동본을 들먹거리면서 한국에 오면 결혼신고도 할 수 없다고 위협을 하였다.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조항은  여성에게는 엄청난 불평등 조항이었다.  결혼은 하되 결혼신고가 되지 않으면 아내는 단순히 내연의 처가 될 뿐이다.   내가 맘을 달리 먹고 다른 여자와 다시 결혼한다 하여도 아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아이를 낳아도 내 호적에 입적시키면 "모"가 등재되지 않은 호적에선 자기 자식에 대한 친권을 주장할 아무 법적 근거가 없다.   삐뚤어진 문화와 몽매한 인습으로 한국에서 태어 난 여성들이 받는 갖가지 고통중의 하나였다.

 

이 조항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동성동본 결혼부부가 고통을 받았겠는가.  끝내 결혼을 반대하여 남자가 결혼을 무효화하는 순간 아내는 그냥 쫓겨 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다른 여자와 버젓이 결혼해도 아내는 아무 주장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한국의 민법 실정이었다.  

 

우리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우린 고려시대의 친척이었던 사람들의 후손인데도 한 왕조(조선조)가 서고 망한 20세기에서까지 결혼을 금하고 있는 민법이었던 셈이었다.  "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375 [지구별에서-MyLifeStory]

 

동성동본 금혼 조항을 개정하는 데 반 세기가 넘게 걸렸다.  

 

 

"그러나 상상해 보라 우리가 혜화동에서 만났다면 과연 우리는 백년 해로의 맺음에까지 이어졌겠는가.  그것은 비극의 인연으로 끝나 버렸을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설혹  어찌어찌 맺어졌다 하여도 우리들이 겪었을 고통과 시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맺어지기 보다도 못한 비극이었을 것이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375 [지구별에서-MyLifeStory]

 

 

이 글을 쓰면서 난 연신 눈물을 닦아 냈다.   특히 K누나를 회고하면 계속 눈물이 난다.  

 

왜 내 주변엔 슬픈 여인들 뿐인가?

 

아니 내 주변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조선의 여인들이 아팠고 슬펐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왜곡된 인습에 의하여 상처 받고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어려서는 부모에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 을 따르라고 가르친 옛 도덕율.
칠거지악이니 하여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유교적 전통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여성은 한없이 구박 받고 속앓이 하였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누나들이 또 아내와 딸들이 그런 대우 를 받은 것이다.  아직도 그 인습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84 [지구별에서-MyLifeStory]  (인생, 만남, 부부)

 

오는 세상에서는 이 땅의 여성이 더 이상 아프고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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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upri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12 01:02 신고

    한 밤중에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ㅠ ㅠ
    통일 보다 우선 남북간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념, 경제와
    상관없이..가족끼리 생사도 모르고 지낸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점점 연세가 들고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보리스님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겠습니다.
    보리스님, 코니님...일교차가 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_ _)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3.12 12:01 신고

      감사합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휴전이 된지 6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휴전상태라니 이 것은 너무 한 것입니다. 안타깝네요. 공감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 황성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14 15:41 신고

    눈물이......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한 비극이었군요.

  3. 히브리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17 14:37 신고

    탈북자인데, 교수님의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저의 부친의 사촌누님도 해방전에 남쪽으로 시집간 후 38선이 막혀서 영영 만나지 못하고 생사도 모르고 살았다는 얘기를 북에 있을 때 들었습니다. 남쪽분들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반도에 또 다시 전쟁이 날 것인가?

 

 

오늘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가 평양에 갔다고 한다.

 

내겐 가슴속에서 지울 수 없는 625전쟁의 비극이 다시 떠 오른다. ( 2010/06/25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전쟁이란 무엇인가 - 625 전쟁의 생존기 )  이것은  내게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다.    전쟁이 난지 반세기 + 18년이 지났다.

 

지금 또 다시 전쟁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오늘 생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625전쟁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문대통령도 비록 흥남철수에서 월남한 부모를 두었지만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다.

 

한 반도에서 전쟁이 또 다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측이거나 신념일 뿐이다.

 

전쟁이 난다면 그건 미국이 일으킬 것이란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핵 보유국의 지위에 올랐다고 으스대고 있지만 625 전쟁과 같이 전쟁을 먼저 시작할 만한 능력은 없다.

 

몇년전 타임지에서 아래의 사진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타임지에서 본 것 같은데 오늘 검색해 보니

http://metro.co.uk/2013/03/12/gallery-kim-jong-un-tries-to-look-aggressive-at-military-inspection-3539106/editors-note-restricted-to-editori-3/#

로 나온다.

아마도 Time 지에서 옮겨 왔거나 Time지도 AFP 에서 이 사진을 샀거나 했을 것이다.

Kim Jong-un is pushed away in a boat from Wolnae Islet (AFP/Getty)

 2013 3월

 

 

그런데도 한심한 것은 조선일보같은 신문의 논조다.   

 

핵과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적화통일"용이란다.    그런 정신나간 늙은이의 인터뷰기사였다.

 

"적화통일",  "고려연방제" 같은  철지난 낱말을 아직도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 용어가 위협이 되던 때도 있었다.  

 

625전쟁도 김일성이 남침을 하면 이에 호응해서 남노당이 궐기하여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리고 남한에 공산국가가 서고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통일국가가 탄생한다는 믿음에서 시작했다.  이듬해 14후퇴때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서울은 텅 비었었다.  난 박완서의 소설 "그남자의 집"의 주인공처럼(박완서님 자신도) 텅 빈 서울을 본 일이 있다. (2014/03/13 - [책] -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그 때 중공군이 그랬단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인민이 이반한 남쪽에 사회주의국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김일성을 힐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다음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이 더디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한편 북한은 휴전 10여년만에 전후복구와 경제 부흥을 이룩하고 사회주국가의 보범사례가 되었다.  내가 귀국한 다음 자주 갔던 명동 광명서점 책방에서  산 미국의 청소년용 백과사전 "Worldbook"의 북한 항목에는 북한이 인구당 GNP(당시엔 GDP 대신 Gross National Product를 썼다.)가 남한을 앞 섰다고 쓰여 있었다.    60년대 말 아니면 70년대 초의 통계였을 것이다.

 

여기에 김일성은 자신을 얻어 "고려연방제"같은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적화통일은 고려연방제에서 비롯한 구호다.  체재를 그대로 둔 채 느슨한 연방제를 해서 2차적으로 자연스레 같은 체재로 통일을 한다는 것이다. 625이전 남노당의 전략과 비슷해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체재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미국의 원조로 연명하던 그 당시엔 이 전략이 먹힐 것 같아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적화통일 전략이라고 무섭게 반대했던 것이다.

 

오늘날 국력이 10배가 넘고 경제 기술면에서 압도적인 남한국민이 북한의 체재로 따라 올것이라 믿는다면 70년대의 망령을 가진 사람뿐일 것이다. 

 

거기다 공산주의 종주국이 사라졌고 중국도 이미 시장경제로 갔는데 사회주의 통제시템의 북한에 동화된다고 믿는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믿는 종북좌빨도 간혹 있을지 모르지만 극단적인 좌빨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극단적인 골통 우익인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시대착오적인 정신나간 사람도 있다.  이걸 버젓한 “주류”신문에 대서특필 하는 것은 더욱 놀랍다.

 

한반도는 정치적으로 동북아의 지진대에 있다.  항상 뭔가가 깨질 것 같은 위험에 놓여 있다. 미일의 태평양세력판(plate)과 러시아 중국의 대륙판이 만나는 점이다.

 

대륙으로는 몽골의 침략과 병자호란을 겪었고 일본으로는 임진란과 일제강점을 경험했다.

 

환원주의 시각에서 보면 필연의 결과다.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런 전란은 일어난다.   근대에 와서는 아메리칸 인디안을 몰살하고 태평양연안까지 진출한 미국은 하와이를 병탐하고 필립핀을 점령하는등 제국주의국가로 변신했고 그 과정에서 태평양국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포함외교로 일본의 문을 열었고 한반도에도 셔만호를 보내 통상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을 도와 러일 전쟁을 부추겼다.

 

그 와중에 한국은 미국의 비호를 받는 일본에 의해 강점되었다. 태평양 전쟁전까지는 일본은 미국의 졸개였다.  러시아의 동방정책을 저지하는 데 유용하게 썼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을 배신한 것이다.  한반도 병탐까지는 용인했는데 만주까지 침공하고 석유와 고무등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에까지 손을 뻗었다.  태평양세력의 종주국인 미국이 좌시 하지 않았다.  원자탄 두방으로 까부러대는 일본을 다시 태평양 세력의 졸개로 복속시켰다.   


그러자 쏘련이 동서냉전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 올랐다.  태평양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으로 쏘련을 태평양전쟁의 막판에 끌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한반도를 양분하여 38선 이북의 진주권을 주기로 쏘련에게 약속을 한 것이다.  

 

한국민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분단역사의 시작이 된 것이다. 쏘련은 뼈만 남은 일본 관동군과 며칠 싸움같지 않은 싸움을 하고 한반도의 반쪽을 횡재한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미국의 이 전략은 일본 군벌의 실수였다.   내가 일본 홋카이도를 여행하던 2012년 여름 삿뽀로에서 광복절을 맞았다.   일본사람을 815를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전쟁이 끝난 날이란 뜻이다.

 

그 때 NHK 방송은 1945년 815 전후의 일본의 종전이 되던 역사를 되짚어 해설하고 있었다. 히로히토 일왕이나 군국주의 군벌이나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은 바닥에 떨어져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번의 어전회의에서 미국이 계속 요구하는  "무조건 항복"이란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때 NHK는 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을 막지 못했는가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두 번의 어전회의를 무산시키지 않았어도 수십만명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국민을 살릴 수 있었다는 당시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인용하며 설명했다.

 

그 때 난 비로소 한국 분단의 주범은 이놈들이구나하고 깨달은 것이다.   그 때 이 한줌의 일본 군벌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을 했더라민 미국이 굳이 쏘련의 참전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거고 미국은 전쟁도 하지 않은 쏘련에게 북한의 진주권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2/09/11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역사란 무엇인가 - 한일 문제를 생각하며)

 

그러니까 한국분단의 단초는 일본의 히로히토와 군벌들의 비겁한 행동때문이었다.   자기 국민 수십만명을 원자탄으로 죽이고 한국에는 분단의 단초를 제공하여 625전쟁의 불씨를 심었던 셈이다.

 

그런데 환원주위 시각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진행이다.  그 진행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북특사가 어떤 메시지를 들고 오건 관계 없이 한반도의 운명은 백악관의 몇사람의 결정권자가 가지고 있다.

 

우리가 동북아의 지진대에 있고 태평양판의 움직임은 미국의 지도부에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 믿음은 한 반도에서 625와 같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 "감"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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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06 13:24 신고

    북한이 10년 이내에 와해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소망과 함께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julie fras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06 15:52 신고

    아주 간단명료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무대뒤에서 일반인들이 보는 유명인사, 정치인들을 안보이게 조정하는 세력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지요. 미국의 가장 주력 사업이 전쟁과 금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 perpetual war 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요. 이 세력권이 싫어하는 트럼프가 아마 전쟁광인것 처럼 행동하다 미군철수를 경비가 많이든다는 이유로 하고--- 그뒤 서서히 통일로 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트럼프는 일극 패권을 버리고 다극 패권으로 가는걸 유도하고 있는데 이것이 군산, 금융세력들의 불만이지요. 일본이 미국의 colony 에서 벗어나야 동북아에서의 평화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미국 main stream media 는 propaganda 방송인것 같아요. 한국의 기성세력이 이 안보를 핑계로 정권/권력을 유지하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을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막연하게 느끼는"감" 은 더많은 사람들이 께어나서 전쟁은 안나지 쉽습니다. 절대로 나서는 안되지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3.07 03:22 신고

      좋은 말씀입니다. 미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도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또 정중하게 워싱톤에 요청해 미군을 일본에서 내 보내고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권고 한다. 그런 다음 자기 나라를 자기가 지킨다는 원칙으로 헌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아시아서 고립되고 세계속에서 존경을 받을 수 없고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경고를 하고 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search/족쇄 [지구별에서-MyLife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