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MyLifeStory :: '이것저것/일본 대중문화'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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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끊이지 않아 꿀꿀하던 참에 케이블 티비에서 일본영화 <토쿄 타워>를 봤다.

 

영화의 끝 장면에 나오는 삽입곡   <Forever mine> 이 지난 번에 올렸던 <장미 없는 꽃집>의 주제곡인 야마시타 타츠로오의 <즛또 잇쇼사 (ずっと一緒さ)> (영원히 함께) 와 너무 흡사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역시 야마시타츠로오의 작사 작곡한 노래였다.  그 분위기도 노래말도 흡사해서 같은 노래인가 착각이 들 정도 였다.

 

여기 그 노래와 가사를 올릴다. 

 

한글로 번역해 봤다.

 

 

 

 

 

 

作詞:山下達郎 作曲:山下達郎

 

僕だけが
あなたを守れる
この世界でひとり

僕だけが
あなたを愛せる
他のどんな誰より

絹の雨に濡れながら
夜明けまでずっと
抱きしめていたい
このまま

※さあ
僕の胸で
腕の中で
忘れていた
夢の続きを

さあ
呼びさまして
溶けて行こう
僕と
本当の愛の静寂(しじま)へ※

いつだって
あなたを見ていた
いくじなしの黄昏

強がりと
孤独なプライド
全てはもう幻

二度と
目覚めなくていい
美しい横顔に
崩れ去ってしまえる

さあ
時の中へ
あなたは今
ありのままの
自分に還(もど)る

△さあ
くちづけして
墜ちて行こう
僕と
永遠の愛の静寂(しじま)へ△

悲しみを強さに変え
暗闇に虹を灯す
いつか

絹の雨に濡れながら
夜明けまでずっと
抱きしめていたい
このまま
FOREVER MINE

(※くり返し)

(△くり返し)


本当の愛の静寂(しじま)へ

FROM NOW ON
YOU'RE MINE, YOU'RE MINE
AND FOREVER MINE

 

****************************

 

나만이
당신을 지킬 수 있어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이

 

나만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그 누구 보다도

 

비단 비에 젖어가며
새벽이 올 때까지 죽
꼭 껴 안은채 있고 싶어
이대로

 

※자
내 가슴에
내 팔에 안겨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꿔요

 


불러 깨어나
녹아 들어 가요
나하고 함께
진정한 사랑의 정적속으로※

 

언제고 힘없이
당신을 바라보던
철 없던 시절

 

강한 척 했던것,
고독했던 프라이드
이젠 모두 지나간 환영

 

두번 다시
깨 나지 않아도 좋아
아름다운 옆얼굴에
무너져 내려도 좋아

 


시간을 초월해
당신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 가는 거야

 

△자
입맞춤 한채
파묻혀 버려요
나와 함께
영원한 사랑의 정적속으로△

 

언젠가는
슬픔을 힘으로 딛고 일어나
어둠에 영롱한  빛을 비출꺼야

 

비단 비에 젖어 가며
새벽이 올 때까지 죽
꼭 껴 안은 채 있고 싶어
이 대로
FOREVER MINE

 

(※부분 반복)
(△부분 반복)
진정한 사랑의 정적속으로

 

FROM NOW ON
YOU'RE MINE, YOU'RE MINE
AND FOREVER MINE

 

 

 

 


 



P Boris-Satsol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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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리

 

10대와 소통하려면 10대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쓰는 말에 <가히리>라는 낱말이 있었다.   

 

가히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른다.  그러니까 "<가히리>가 뭐예요?" 하고 묻는 사람도 없다.   

 

다 아는 듯 소통하고 있었다.  

 

내가 이 낱말을 얻어 들은 사이트에서 짐작한 것은 일본 망가(만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일본 만화와 연관된 이름이라는 것 정도는 추측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새로 나온 일본 만화의 이름인가 아니면 인기 있는 일본 만화의 한 캐랙터인가 추측해 보았다.

 

그리고 일본 구글에 가서 일어로 가히리(がひり)를 넣고 두들겨 보았다.   당연히 나오는 것이 없다.

 

일본 만화 <가정교사히트맨리본>은 안다.  

 

몇 달 지나면 문자 그대로 틴이 되는 손녀가 얼마전에 핸폰을 보여 주며 자기의 관심거리를 한 참 설명할 때 들은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 나오는 캐랙터인가 하고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을 찍다 보니 "아하"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줄임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정교사>에서 <가>, <히트맨>에서 <히>,  <리본>에서 <리>를 따 온 것이다.  

 

한시간 남짓 헤메다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가히리>는 일본에서 엄청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망가다.  

 

아마노 아키라(天野明) 원작의 만화로 2004에 일본 소년 잡지 인 <주간소년 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에 연재시작한 것이 2010 3월 현재 단행본 으로 28권까지 출간되었다 한다.

 

2006년에는 <에니메>로 제작되어 토쿄텔레비에서 아직도 방영 중이다.

 

일어 원명은 <家庭教師ヒットマンREBORN!>(かてきょーヒットマンリボーン)인데 <카테이쿄시(家庭教師)>라 발음하지 않고 <카테쿄>로 발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일어 원명은 <카테쿄힛토망리봉>이고 줄여서는 <리봉>이라 부른다.  그러니 우리말 <가히리>와는 엄청 차이 나는 이름이다.

 

2004년에서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만화와 에니메이션판은 그것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 인기도가 어떤가 가늠할 수 있다.  그 영향력 또한 대단한 것이다.

 

에니메이션에 그치지 않고 게임으로도 만들어졌고 소설로도 쓰여졌다.

 

<코스플레>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캐럭터로 각광받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1-2편을 봤다.   오늘 코니와 함께 벅스에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코니도 관심을 보여 <다음 TV팟>에 올라온 에피소드 한 두편을 아이폰으로 봤다.  재밌단다.   TV <판도라>에서 볼 수 있다고 했더니 시간이 나면 1편부터 보겠단다.

 

코니가 그런 <에니>를 재밌다고 보겠단 것은 의외다.  

 

중학교 1년생이 주인공이다.

 

공부고 운동이고 다 잘 하지 못하는 사와다 츠나요시(沢田綱吉(通称ダメツナ ))에게 애기 가정교사 리본(Reborn!) 이 온다.

그 가정교사는 다메츠나(빈충이 츠나요시라는 뜻)를 이태리 <봉골레(Vongola)>라는 마피마가문의 10대 보스로 교육시킨다는 임무를 띄고 나타난다.

 

그야말로 팬타지 에니다.

 

우리 세대는 망가에 대해 부정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망가란 글씨로 된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를 하고 나서는 망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가셨다.  교육조차도 그림과 에니메이션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글을 계속 써 오고 있다.    <나비>에서 한 강연 <아티스트와 나>   도 그런 내용이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요.  백견이 불여 일행이라는 말이 옛부터 있어 왔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고 백번 보는 것 보다 한번 해보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다. 한번 해 보는 것은 에니메이션도 그 중의 하나다.   에니메이션은 1초당 12번에서 30번 새 그림(프레임)을 보는 것이니 정지된 그림을 3초 보는 동안 에니메이션은 3초 보면 100장의 그림을 보는 것과 맞먹는다.  1행(行)이 불여 100견(見)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내가 블로그에 열심히 그림을 올리고 가능하면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정교사히트맨 리본

 

 

 

봉골레가의 10대 보스로 교육 받는 <다메츠나>

 


 

 

이런 반지들이 초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반지를 만들어 팔고

청소년들은 이런 반지를 사서 모은다.

 

 


 

주인공이 좋아 하는 소녀

<사사가와 쿄코>

가히리 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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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비또-요(戀人よ)  - 일본의 대중가요

요지음 비가 자주 오고 날씨도 더워 다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를 탈 땐 우리가 가입한 유료 음악사이트에서 팝송을 들으면서 달린다.  주로 옛 팝송들인데 가끔 일본 노래와 중국노래도 섞여 있다.   

가끔 들었던 일본 팝송엔 <고이비또-요>란 노래가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애절하다.   그래서 검색을 해 봤더니 일본 가수 이츠와 마유미(五輪眞弓)가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였다.

1980년에 데뷔곡으로 부른 곡이라는데 일본 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등지에서도 대 힛트를 하고 중국어로도 번역되어 리메이크되었다는데 그 때 우린 나라엔 들어 오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엔 일본 대중 문화가 개방된 것이 얼마 안된다.    이유는 아직도 대일 감정이 나빴던 당시 일본 문화를 연다는 것은 부담이라는 것이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 영화 음악 방송등 모든 면에서 일본 대중문화에 압도된다는 걱정이 더 큰 이유였다.  

오늘날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었어도 생각보다 그 영향이 크지 않다.   내가 일본 영화나 일본 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그것은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어릴 때 살았다는 특별한 이유가 일본 문화에 끌리게 하는 탓이라 생각된다.   

<고이비또-요>는 떠난 애인을 못 잊어 땅꺼미 지는 초겨울 저녁 비바람에 다 망가진 공원 벤치에서 애인이 돌아 오기를 꿈꾸며 부르는 노래다.

가사가 하도 애절해서 우리말로 바꿔 봤다.

 

연인이여

가랑잎 지는 저녁 어둠은 다가오는 추위를 말해 주네.

비에 헐은 벤치엔 속삭이는 사랑노랜 사라졌네

사랑하는 당신 내 곁으로 돌아와 얼어 붙은 내 몸 녹여줘요.

헤어지잔 그 말 장난으로 했던 거라 웃으면서 말해 줘요.

 

저녁 조깅 나온 남자가 자갈길을 뛰어 가네

다 잊어 버리고 달려 보라고 서 있는 나를 부르는 것 같네.  

사랑하는 당신 안녕,  계절은 돌고 돌겠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밤하늘에 빛났다 사라지는 유성, 무정한 꿈인가요,

사랑하는 당신 내 곁으로 돌아와 얼어 붙은 내 몸 녹여줘요.

헤어지잔 그 말 장난으로 했던 거라 웃으면서 말해 줘요.

 

 


 

 

원문

가레하치루 유구레와 구루히노 사무사오 모노 가타리

枯葉散る 夕暮れは 來る日の 寒さを ものがたり

아메니 고와레타 벤치니와 아이오 사사야쿠 우따모나이

雨に 壞れたベンチには 愛を ささやく 歌もない

고이비또요 소바니이떼 고고에루 와따시노 소바니이떼요

戀人よ そばにいて こごえる 私の そばにいてよ

소시떼 히또고또 고노와까레 바나시가 죠당다요또 와랏데 호시이

そしてひとこと この別ればなしが じょうだんだよと 笑ってほしい

자리미찌오 가께아시데 마라손 히또가 유끼스기루

砂利路を 驅け足で マラソン 人が 行き過ぎる

마루데 보갸쿠노조무요우니 도마루 와타시오 사솟데이루

まるで 忘却のぞむように 止まる私を誘 っている

고이비또요 사요나라 기세쓰와 메굿데 구루께도

戀人よ さようなら 季節はめぐって くるけど

아노히노 후따리 요이노 나가레보시 히깟데와 기에루 무죠노 유메요

あの日の 二人 よいの流れ星 光っては 消える 無情の夢よ

고이비또요 소바니이떼 고고에루 와따시노 소바니이떼요

戀人よ そばにいて こごえる 私の そばにいてよ

소시떼 히또고또 고노와까레 바나시가 죠당다요또 와랏데 호시이

そしてひとこと この別ればなしが じょうだんだよと 笑ってほ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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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初雪の恋, Virgin snow)


한일 합작영화가 자주 만들어 지는 것 같다.   돈벌이?  문화교류?  


2007년 11월 초에 개봉한 한일 합작 영화 <첫눈>을 봤다.    두나라의 인기 배우를 캐스팅하여 양쪽 나라에서 관객을 끌어 모으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합작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만든 영화 같다.  너무 줄거리가 인위적이다. 


이준기도 좋아하는 배우이고 일본 여우 미야자키 아오이도 좋아하는 배우이기에 봤지만 그 것 이외엔?  글쎄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여기에 가면 영문 자막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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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란 항상 신선하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실험을 하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Indie's Movie Festival (아쉽게 작년10회로 끝남)이라는 것이 있어 전문가가 아니라 관객이 대상작품을 뽑는다 한다.


인디스무비페스티벌 2006년 개막작인 "좋아해(好きだ)" 는 대상을 받진 못했지만 몬트리얼에서 열린 New Montreal Film Festival 경쟁부문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이시다 히로시(石川寛)가 감독하고 촬영하고 편집한 이 영화에는 꽤 이름 있는 배우들이 나온다. 


17년의 시간 간격으로 나누어 두편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남녀역을 각각 다른 배우들이 맡았다.


고등학교 한반 친구인 17세의 두 남녀 "요스케"와 "유"는 각각 에이타(瑛太)와 미야자키 아오이(宮﨑あおい)가 맡았고
17년 후의  34 살 남녀는 니시지마 히데토시(西島秀俊) 와 나가사쿠히로미(永作博美)가 맡았다. 


서로 좋아하면서 (난 너를) "좋아해" 란 이 말 한 마디를 끝내 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17년 세월이 흘러 간다.  


그리고 우연한 재회.


다쳐 누워 있는 병상을 지켜 보는 "유"는 처음으로 "좋아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입모냥을 그리며 소리 없이 "좋아해" 를 다시 되네인다.  그제서야 "요스케"도 "나도 좋아해" 라고 답한다. 


영상의 미학,  무언의 미학,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 시와 같은 영화다.  


마음이 급한 사람은 결코 보지 못한다.  차 한잔을 마시는데 한시간을 쓰고 스로우모션의 "노"춤을 발전시킨 일본 감독이 아니고는 또 그런 관객이 아니고는 결코 즐길 수 없는 영화다.


여기에 가면 한글자막이 나오는 이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좋아해> 포스터






<유>역의 미야자키 아오이




<요스케>역의 에이타







34세의 <요스케>역의 시시지마 히데토시






34세 <유>역의 나가사쿠 히로미





<유> 언니역의 오야마다 사유리(小山田 さゆり)





고등학교 선생님역의 오오모리 나오(大森 南朋)





술취해 쓸어졌던 여자 역의 노나미 호호(野波 麻帆)






지나치는 남자역의 가세 료(加瀬亮)






2006 년 6 월 압구정 스폰지하우스에서 "좋아해"  기자시사회를 하고





2006 년 6 월 압구정 스폰지하우스에서 "좋아해" 
기자시사회를 하고 기자회견





이 영화에 나오는 뚝길




이 영화에나오는 고등학교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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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대하 드라마 <아츠히메>를 보고 나서

10여년전 은퇴하기 얼마전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한 대학에서 연 학술 대회에 참가한 일이 있다. 후쿠오카와 그 주변에서 일주간을 보냈다.  

그 때 일본의 한 노교수가 고조노 츠키(荒城の月)를 부르는 것을 듣고 놀라웠다는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 후쿠오카에 머므는 동안 어느날 후쿠오카 해안가에  세워진 높은 조망 타워가 있어 올라 가 본 일이 있다.  밤시간이었기에 내륙쪽 후쿠오카시내 야경만 보았지만 청명한 날 낮에는 바다 넘어로 한반도가 보인다고 했다.

흔히 일본은 우리의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이란 말을 쓴다.   옷띠 하나를 가로 놓은 물 정도 사이의 가까운 이웃이란 뜻이다.   

단지 지리적으로만 가까울 뿐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수천년 끊임 없이 교류해 왔다.  청명한 날에 서로의 땅이 보일 정도라면 얼마나 자주 왕래했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겐 일본과의 우호선린 관계에 있던 기억은 별로 없고 모두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아 있다.  

왜구,  임진왜란,  일제강점등등....

오늘날에도 계속 우리에겐 나쁜 이미지만 전파하는 매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변화,  우익들이 만든 역사 교과서, 위안부 존재 부인,  독도 영유권 주장등...

툭하면 일본 정치인들의 우익편향 언동이 우리 매체들은 신경질적으로 방응하게 한다.  흔히 "망언"이니 하고 매도하고 태평양전쟁 A 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정치인 참배하는 것을 대서 특필하고 비난한다.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 의식 깊은 곳엔 반일감정이 배이게 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일어 날 때마다 일부 반일 네티즌들은 일본을 매도하는 패로디물들을 만들어 유통시키지만 과연 올바른 대응일까?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고 싫어 하면 일본 역시 마찬 가지의 반한, 염한 반응을 보인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 웹사이트를 브라우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도 마찬가지의 반한 염한 사이트가 많이 있다.  일본 우익들의 사이트들이다.  결코 유쾌한 사이트는 아니다.  

이렇게 비 이성적인 상호 비방 공격하는 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임진왜란같은 조선사에서 가장 극렬한 전쟁을 치루고 많은 문화재를 빼앗기고 소실하고 많은 국민이 잡혀가고 하는 국난을 겪었지만  전쟁후 도쿠가와 막부와는 200 년 이상 조선 통신사라는 우호 사절단을 보내고 선린 친선관계를 유지했던 때도 있었다.

아이로닉하게도 우리 집은은 그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내 9대 할아버지의 후손 집이건만 일본 강점과 더불어 그것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쇄락하였다.    

그 이야기도 이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

일제 강점의 아픈 기억도 이젠 그 시대를 체험한 생존자들 점점 줄어 들어 얼마 남지 않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 가려 한다.

그 과거사와 그 과거사의 찌거기들에 발목잡혀  일의대수의 이웃나라와 선린친선관계를 해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현안 문제는 이성적으로 해결하고 무조건 비방하는 대응은 삼가야 할 것이다.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대중 문화의 상호 교류야말로 현대판 선린친선우호사절단이라고 본다.

우리의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 보내는 현대판 "조선 통신사"이고  일본 드라마 <아츠히메>는 그 답례로 보내는 "일본 통신사"로 맞으면 어떻겠는가!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단상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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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篤姫(あつひめ)>

 

2008년 1월 6일 부터  같은 해 12월 14일까지 방송된 47번째 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는 미야오 토미코(宮尾登美子)의 원작 <덴쇼인 아츠히메(天璋院篤姫)>를 다부치 꾸미코(田渕久美子)가 각색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에도막부말기 (江戸幕府末期) 쇄국정책을 고수해 온 일본이 서양 여러나라의 위협을 받으며 동란의 극에 달한 시대에 역사의 그늘에서 활약안 주인공 <아츠히메>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에 초점을 둔 홈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드라마다. 

 

부부라든가 가정의 일상과 주인공 아츠히메가 스스로 자신의 가정이라 여긴 막부 오오오쿠(大奥  막부 궁성의 내전, 노녀(老女), 시녀 하녀등의 여성 계급 사회)의 여성들을 최후까지 지키며 평화를 염원하는 활약상을 그렸다.

 

이 드라마는 막부사극은 인기가 없어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징크스를 깨고 여성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대하드라마에서는 처음 있는 본방송 기간에 앵콜 재방까지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막부 대하드라마에서 최고 시청률은 물론 과거 10년간의 대하드라중에서도 가장 높은 50회 평균 시청률 24.5%를 기록했다.

 

또 주연엔 대하드라마 사상 최연소 여우 미야자키(宮﨑) 아오이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첫 출연 당시 아오이의 나이는 불과 22세 였다.

 

또 이 드라마는 에도 막부가 끝나고 명치유신으로 이어지는 일본 근대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일본 근대사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2006년에 방영된 <공명의 갈림길>이 도꾸가와 막부의 탄생을 그린 여성 주인공의 대하드라마였다면 이 드라마는 바로 이 도쿠가와 막부가 종연을 고하는 역사 드라마인 셈이다.

 

또 미야자키 아오이는  <순정반짝>에서 주연을 맡았고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ただ、君を愛してる)>에서 주연을 맡아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여우로서 이 드라마의 열연으로  일본의 Elan D'or 신인상을 받았다.

 

한글 자막이 나오는 50회 전편을 Satsol's Channel 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대하 드라마는 등장인물이 많아 기억하기 힘들다.  아래에 중요 등장 인물을 모아 보았다.   





아츠히메역의 미야자키 아오이(宮崎あおい)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아츠히메(篤姫)는 사츠마(薩摩)의 시마즈(島津)가의 분가에 오까즈(於一)란 이름으로 탄생하여 에도 막부(江戸幕府)의 제 13대 쇼군(第13代将軍)이 된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의 정실이 된 여성이다.

병약했던 이에사다는 아츠히메가 시집와서 불과 1년반이 지나자 세상을 떠 23 살의 젊은 나이에 아츠히메는 과부가 되어 덴쇼인(天璋院)이라 불리게 된다.

쇼군의 후계자를 둘러 싼 막부내의 치열한 싸움,  또 아츠히메의 고향인 사츠마를 중심으로한 반막부운동(反幕府運動)의 격화될 때 오오오쿠(大奥)†의 총수(総帥) 로서 아츠히메의 역할이 두드러 지게 된다.  

아츠히메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의  격동기에 시(媤)가인 도쿠가와종가(徳川宗家)를 위해서 그리고 일본을 위해서 힘을 다한다.

또한 고향인 사츠마번(薩摩藩)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군에도 협력하여 에도의 무혈입성을 실혈시키는 큰 역할도 했다. 

명치유신이후엔 도쿠가와종가를 계승한 이에사도(家達)등의 교육에 전념해 미래의 일본의 기둥이 될 인재를 육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오오오쿠(大奥)란  에도성에 있던 쇼군가의 자녀나 정실, 시녀들의 사는 거소를 말한다.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 역의 다카하시 히데끼(高橋英樹)

 아츠히메의 양부 시마즈가 (島津家)(사츠마((薩摩)번)의 28대 당주.  막부를 대표하는 명군으로 이름을 날린 나리아키라는 아츠히메의 천부의 재능을 일찍이 간파하고 양녀로 삼는다.   마침내 아츠히메를 제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家定)의 미다이도코로(御台所 - 정실)로 오오오쿠에 보낸다.  이로 인해 일본의 운명도 바뀐다.  이런 연으로 나리아키는 명치유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사실은 나리아키라가 아츠히메를 막부로 들여 보낸 것은 막부정치에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멀리 내다 볼 책략이기도 했다.  아츠히메는 어느날 양부의 이 책략을 깨닫게 된다.



히사히메(英姫) 역의 요 키미코(余貴美子)

나리아키라의 정실 도쿠가와의 지파중의 하나인 히토츠바시가(一橋家) 출신의 프라이드가 강한 여자.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종두 자국이 남아 항상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만날 때에도 발을 가리고 만나곤 한다.  처음 아츠히메를 대할 때에도 시마즈가의 한 작은 분가출신인 주제에 언감생심 쇼군가의 미다이도고로(쇼군의정실)자리를 넘보느냐고 냉소한다.   남편 나리아키라가 병석에 눕게 되자 불철주야 쾌유를 빈다.  본심은 매우 부드러운 여성. 나중에 아츠히메가 시집가는 날 복면을 벗고 맨 얼굴을 보여 주며 양모로서 처음 따뜻한 말을 해 준다.


시마즈 나리오키(島津斉興) 역의 나가토 히로유키(長門裕之)

시마즈가의 27대 당주로 가노인 즈쇼히로사토(調所広郷(ずしょひろさと))와 함께 사츠마번 재정을 재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장남 나리아키라(斉彬)가 난을 좋아하는 취미가 낭비로 보여 쉽게 당주자리를 내어 주지 않자 이복동생을 당주로 옹립하려는 세력과 시마즈가의 최대의 소동이 일어 나기도 했다.

 


시마즈 히사미츠(島津久光,  처음엔 타다유키(忠教)) 역의 야가구치 유이치로오(山口祐一郎)

시마즈가의 29대 당주 시마즈 타다요시(忠義)의 아버지.   배다른 형 나리아키라와는 당주자리를 놓고 라이벌이 되기도 했으나 대결은 피했다.  형의 사후엔 형의 유지를 받들어 나오고로오(尚五郎)라든가 오쿠보(大久保)등을 중용해 명치유신을 이루는 데 견인역을 했다.  히사미츠의 저택은 아츠히메의 생가 이마와즈미가와 가까운 이웃이었고   히사미츠의 딸도 아츠히메와 함께 쇼군가의 미다이도코로후보(将軍御台所候補)로 라이벌이 되는 등 아츠히메와 깊은 인연이 있다.




기모츠키 나오고로오(肝付尚五郎)역의 에이타(瑛太)

 아츠히메와 같은 해 태어난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소꼽친구가 된다.  자라면서 아츠히메를 연모하며 다가가지만 운명은 둘을 맺어 주지 못한다.  젊은 나이에 사츠마번가노(薩摩藩家老)가 되어 사츠마의 반막부 세력의 선봉인 사이고(西郷)와 오오쿠보(大久保)의 뒤를 봐 준다. 사츠마번의 당주의 당주 나리아키라의 명을 받아 코마츠 키요미치(小松清猷)의 누이동생 오치카(お近)와 결혼하고 코마츠가의 후계자가 된다.  따라서 성도 이름도 갈고 고마츠 다테와키(小松帯刀)가 된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도 깊은 우정을 나누며 삿쵸도메이(薩長同盟 사츠마와 쵸슈번(長州藩)사이에 맺은 정치-군사 동맹)을 맺는등 사츠마번을 명치유신의 리더로 떠 올리는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첫사랑인 아츠히메에 칼을 겨누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오치카(お近) 역의 토모사카 리에(友坂理恵)

코마츠 키요미치(小松清猷)의 누이동생으로 7살 연하의  기모츠키 나오고로오(肝付尚五郎)의 아내. 
몸이 약해 나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향도(香道)를 가르쳤다.  얌전한 성격이나 조금 우직스런 남편을 야단을 쳐 격려하기도 한다.   



사이고 키치노스케(西郷吉之助,  나중에 타카모리(隆盛)) 역의 오자와 유키요시(小澤征悦)

명치유신의 최대 공로자중의 하나.  사츠마번의 하급무사계급으로 태어 났으나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에 눈에 띄어 발탁된다.   아츠히메와 쇼군 이에사다(家定)의 혼례를 주관하느라 또 히토츠바시(一橋,나중에 도쿠가와) 요시노부(慶喜)를 차기 쇼군으로 옹립하는 등 분주하게 활약한다.  나중에 에도 총공격을 할 때 관군의 대표가 된 사이고는 예전에 자신이 혼례를 주관했던 바로 아츠히메와 대치하는 상황에 까지 이른다.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역의 에모리 토오루(江守 徹)

미도 도쿠가와게(水戸徳川家) 의 전 번주로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요시노부(徳川慶喜)의 생부.  쇄국정책을 강력히 주장하고 돈을 많이 쓴다고 오오쿠(大奥)를 비판했기 때문에 오오쿠에게서는 미움을 샀다.   페리호가 래항했을 때는 해상방위를 위해 막부정치에 참가했으며  대단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고노에 타다히로(近衛忠熙) 역의 슌부우 타테꼬아사(春風亭小朝)

 

고노에가의 당주(近衛家当主).  5개 명문가의 우두머리격인 고노에가는 멀리 후지와라가의 후예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명문가.  타다히로의 정실은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의 누나로 시마즈 나리아키라와는 처남 매형간.  따라서 나리아키라와는 막역한 사이였다.  아츠히메는 나리아키라의 양녀가 된후 다시 타다히로의 양녀가 되어 쇼군 이에사다에 시집간다.  따라서 아츠히메에게는 세번째 아버지인 셈이다.

나중에 타다히로는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에 시집온 황녀 카즈노미야(和宮)(고메이천황의 누이동생)와 함께 공무합체(公武合体)를 추진한다.  공무합체란 조정의 귀족과 막부아래의 무가를 합쳐 막부권력의 강화를 목표로 정책을 말한다.   이런 연유로 타다히로는 하츠히메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계속해서 미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역의 사카이 마사토(堺 雅人)

아츠히메의 남편.  도쿠가와 제13대 쇼군.  태생부터 병약하고 여러 기행(奇行)을 일삼았다고 알려 졌지만 사실은 그가 물려 받을 막중한 책임과 막부의 경직한 일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행한 일종의 도피행각이었다.   이에사다는 아츠히메를 만나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나 그녀와의 이별의 날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 역의 마츠다 쇼타(松田翔太)

에도막부 제14대 쇼군 원 키슈의 번주 원 이름은 도쿠가와 요사모토(徳川慶福)였다.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대를 이어 제14대 쇼군에 취임한다.  이에사다의 사촌으로 혈통적으로 이에사다에 가장 가깝다. 어렸을 때 부터 주위사람을 배려하고 아랫사람에도 자비를 갖고 대해 군주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아츠히메가 처음 접견할 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쇼군이 되고 황녀(고메이천황의 여동생) 카즈노미야를 정실로 맞는다.

쇄국정책(양이론(攘夷論))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닫고 조정을 설득하기 위해 경도로 상경한다.  그러나 조정의 강경한 양이론을 번복시키지 못하고 돌아 온다.  죠수번(長州藩)의 반란시 출병을 결단하고 스스로 지휘를 맞는다.  오사카죠(大坂城)에서 병에 걸려 쓰러져 덴쇼인(天璋院 = 아츠히메)과 카즈노미야가 어의를 급파했으나 보람도 없이 죽는다.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역의 히라 타케히라(平 岳大)

막부 제 15대 쇼군 원 히토츠바시가의 당주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미도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의 칠남.  미도의 존황사상(尊皇思想)에 크게 영향을 받아 자신도 열성적인 존황가다.  영명하다고 알려져 아버지 나리아키나 사츠마번의 나리아키라들에 의해 이에사다의 쇼군 후계자 후보로 천거되었으나 아버지 나리아키가 오오쿠(내전)에 미움을 사 후계자의 기회가 없는 알았다.   아츠히메와 첫대면 때에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여 아츠히메에게 나쁜 인상만 남겼다.

이에모치가 급서하자 위급상황임을 내세워 쇼군직에 추대되어 취임한다. 고마츠 다테와키(小松帯刀)의 제언으로 열후회의(列侯会議)를 주최하지만 쇼군의 위엄만 내 세우고 영주들을 무시하는 언동을 하자 회의는 분열하고 만다.

 


아리마 신시치(有馬新七) 역의 마토바 코오지(的場浩司)

 사이고, 오오쿠보와 고향친구.  나중에 세에츄구미(精忠組)라는 조직을 만들어 사이고 오오쿠보에 명치유신을 낳게 한 존왕 사상(尊王思想)에 불씨를 당겼다.  술을 좋아하고 과격한 성격으로 거사를 획책했으나 히사미츠가 중지 명령을 내렸다.  결국은 동료에게 자살(刺殺)당했다.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역의 쿠사카리 마사오(草刈正雄)

막부의 가노(家老)중 수좌(首座).  나리아키라(斉彬)와 친분이 두터워 아츠히메를 쇼군 정실로 맺어 주는데 힘을 많이 썼다.   토자마다이묘(外様大名 = 주종관계가 느슨한 다이묘)들의 힘을 규합하여 외국의 침략에 일본을 지켜 보려 했다.   빼어난 용모로 오오쿠(大奥)의 시녀들에게 비상한 인기를 받았다고 전해 진다.  

 


오오쿠보 쇼우스케(大久保正助, 나중에 토시미치(利通)) 역의 하라다 타이죠(原田泰造)

 사츠마번의 하급무사가에서 태어난 사이고(西郷)와 호형호제하며 자란 사이.  사츠마번의 집안싸움에 휘말려 젊은 시절 한때는 근신생활을 했으나 시마즈 히사미츠에 발탁되어 명치유신을 이끄는데 대활약을 한다.    사츠마시절엔 아츠히메, 나오고로오,  사이고들과 함께 청춘을 함께 보내며  친구로  우정의 깊은 인연을 맺는다.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역의 나카무라 바이자쿠(中村梅雀)

 막부의 대노(大老).  전통과 핏줄을 중히 여겨 이에모찌(家茂)를 쇼군(14대)에 밀었다.  대노 취임후에는 일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또한 요시노부(慶喜) 옹립을 획책한 히토츠바시(一橋)파를 엄벌했다.  이 때문에 존황의 개혁파에 표적이 되어 사쿠라다몬(桜田門) 밖에서 저격당한다.

 

코메이 텐노(孝明天皇) 역의 도오기 히데키(東儀秀樹)

 
 

121대 천황 외국을 매우 싫어해 쇄국청책 고수를 염원했다.  처음은 누이동생 가즈노미야(和宮)의 무가과의 혼인을 반대했으나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 에게 쇄국정책을 실현시킬 조건으로 혼인을 승락했다. 그후 막부와의 관계도 좋아 졌다.  그러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쇼군에 취임한지 얼마 안돼 남편을 잃은 카즈노미야를 안타깝게 여기며 급서한다.  

 


카즈노미야(和宮) 역의 호리키타 마키(堀北 真希)

고메이텐노(孝明天皇)의 누이동생으로 제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의 미다이도꼬로(정실부인)가 된다. 원래 딴 약혼남이 있었으나 막부에서 이에모치의 신부감으로 요청이 있어 에도로 간다.  강하게 거절의 뜻을 보이지 못하고 고메이천황이 <일본국을 위해>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눈물을 먹음고 승락했다.

이에모치가 병사하자 삭발하고 세이칸인노미야(静寛院宮)가 되었다. 한때 아츠히메에 적대감을 갖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다이쇼인(아츠히메)의 씩씩한 모습에 감동되어 도쿠가와사람으로 살아 갈 것을 결심한다.

 


존 만지로(万次郎) 역의 카츠시료(勝地涼 )

 도사국출신의 표류민 고기잡이 나갔다 표류되어 미국포경선에 구조되어 미국을 둘러 보고 귀국한다.  구미 제국과 일본의 기술력의 차이를 역설하고 사츠마내의 포대 건설에 조력한다.  미국의 자유연애사상도 이야기 하며 나오고지로에게 아츠히메에게 사랑고백을 해보라고 권고한다. 

 



이쿠시마(幾島)역의 마츠자카 케이코(松坂慶子 )

원래는 시마즈가의 노녀(老女 = 시녀)로 코노에가로 시집간 나리아키라의 누이의 노녀였으나 주인이 죽자 다시 시마즈가로 돌아와 아츠히메의 노녀가 되어 쇼군가의 오오쿠에 딸아가 아츠히메를 모신다.  무도 예도, 예법에 능통 재녀(才女)다.  시마즈가의 충성으로 끝까지 주인 나리아키라의 밀명을 아츠히메에게 압박한다.
덴쇼인이 도쿠가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하자 은퇴하고 교토로 돌아 간다.


 


혼쥬인(本寿院) 역의 타카하타 아추코(高畑 淳子)

이에사다의 선친의 측실로 이에사다의 생모. 따라서 아츠히메의 시어머니.  오오쿠의 검약을 강조한 미도의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와 그 아들 하토츠바시 요시노부를 극도로 혐오해 이에사다 후계자로 요시모토를 강력하게 밀어 아츠히메와 극도의 대립을 한다.



타키야마(滝山)역의 이나모리(稲森)이즈미

천명이 넘는 오오쿠(내전)의 총책임자.  항상 흩어짐이 없는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  
한 때 이에사다 후계자 문제로 아츠히메와 대립했지만 이이(井伊) 나오스케 대로(大老) 취임때에 간접적 지지를 받은 덕에 아츠히메에게 동정적이 된다.  카즈노미야가 오오쿠에 들어왔을 땐 오오쿠의 무가 전통을 의연하게 고수하며 경도의 요구를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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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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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의 갈림길은 볼 만한 드라마다. 


일본 NHK 시청율도 평균20% 가 상회했다는데 일본은 채널이 많아 이 정도면 최강 시청율이라 한다.


단순히 재미 위주가 아니라 무언가 생각하게 해 주는 드라마다.    드라마 마지막에는 본편의 내용과 관계되는 유적 답사하는 안내가 나오는데 인상적이다. 




 


제1화 서편을 캡쳐해 놓았다.



판도라 tv 에 가입해서 "공명의 갈림길"을 한번에 볼 수 있게 Playlist 를 만들어 놓았다. 


아래 주소에 들어 가면 필자가 만든 플래이리스트가 나온다.  모두 49회분인데 순서가 조금 바뀐 부분이 있으므로 주의하기 바란다. 


Satsol's Channel  (http://www.pandora.tv/626331942) 에 가서 플레이리스트를 클릭하면 왼쪽 컬럼의 공명의갈림길(49) 가 나온다.  이것을 클린하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온다.  (화면이 깨져 있으면 클릭해서 큰 창에서 보면 된다. )



오른쪽의 항목을 클릭하면 드라마 화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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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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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 중요 등장 인물

 

장장 49회의 일본 역사 대하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을 보자면 등장 인물이 엄청 많고 또 일본 역사 인물도 우리에겐 낯설어 중요 등장 인물에 대한 요약이나 해설이 있었으면 좋겠 생각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TV.co.kr 인 곳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 해설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중요 등장인물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배역만 적어 넣고 해설은 회원 각자가 붙이게 되어 있었다.  미흡한 것도 있고 아예 빠진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을 보완하여 여기에 올린다.  

미흡하고 빠진 것은 일본측 위키피다아 功名が辻 (NHK大河ドラマ) 에 의거해 그곳에 링크된 페이지를 찾아가며 보완했다.

이 역사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얼굴

이름

배우

설명

야마우치 카즈토요 [山内一豊] 카미카와 타카야 1545~1605. 전국시대의 무장. 토사번의 번주. 아버지인 모리토요(盛豊)는 오와리국 岩倉 織田家의 가로였는데, 오다가와 오다 노부나가와의 대립이 원인이 되었다. 岩倉城이 오다 노부나가에 의하여 멸망되고, 그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고 방랑의 몸이 되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원수인 오다 노부나가와 우연히 만나고,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삼겠다고 결심하였다. 히데요시에게 신임을 얻고, 그 후 히데요시와 함께 많은 전쟁에 참전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에도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계속 활약하여 1583년 시즈가타케의 전투, 1590년 오다와라의 전투 등지에서 공을 세운다.
창술 한 가지로 마음을 기울이고 일처리가 서투른 편이지만 정직한 생활태도로 일관한다. 정쟁에는 능하지 못하였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치요의 기지로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신임을 얻어, 그 후 토사의 24만석을 얻고 1601년 영주가 되고, 코치성을 축성한다.
이토록 히데요시의 총애를 입던 토요토미가의 직신이었지만 히데요시 사후 토쿠가와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로 토요토미가의 중신들에게 압박을 가할때 선두에 서서 이에야스의 편에 섰던, 처세에 아주 능숙한 인물이었다.

치요 [千代] 나카마 유키에 (仲間由紀恵 )

야마우치 치요의동상(高知(고치)県高知市高知城 소재)

미노(美濃)의 郡上八幡城(구죠하치만죠)엔토모리가즈의 딸

야마우치가즈토요(山内一豊)의 아내가 되어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지참금으로 남편 가즈토요가 탐내는 명마를 사 주어 주군 오다노부나가의 말퍼레이드에서 남편을 돋보이게 해주는 등 남편의 출세에 내조의공이 큰 아내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드라마의 원저자 시마료타로는 "치요가 없었다면 야마우치가즈토요가 일국의 영지를 다스리는 다이묘(大名)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치요의내조를 칭찬하고 "공명의 갈림길(원제 功名が辻)"도 바로 치요로 인해 가즈토요가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뜻으로 쓴 것이라 한다.

야마우치 야스토요(山内康豊 玉木宏

가즈토요의 동생

노부나가를 섬기는 형에 반발하여 집을 나가나 나중에는 화해하고 형을 따르게 된다.

고린(小りん) 나가사와 마사미(長澤まさみ) 고가의 닌자  카즈토요와 하루 밤을 같이 자고 가즈토요를 쫓아 다니나 결국카즈토요에게 거절당한다.

 

 후와 이치노죠 (不破市之丞)

 츠가와마사히코(津川雅彦 )

 치요의 양아버지로 이모부에 해당한다. 전란으로 부모를 잃은 치요를 기르고 승마를 가르쳤다. 미노의 4인방 중 한 사람으로서, 노부나가가 미노를 공격할 때에 불타는 성에서 치요와 야마우치가즈또요의 혼인을 허락한다.

 

 호슈니(法秀尼)

 사쿠마 요시코 (佐久間良子 )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어머니. 남편 모리토요가 노부나가의 군사에 의하여 살해당한 이래로, 지인(知人)의 대저택 구석에 연결된 암자에서 한거(閑居)하였다. 카즈토요 선친의 아내로서, 말하자면 야마우치 가문을 통솔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아직 어리고 부모를 잃은 치요가 미노로 피신하기 전에 카즈토요가 데리고 온 것을 며칠동안 맡아 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고, 치요의 천성이 명랑한 것을 보배와 같이 여겼다. 치요와 카즈토요의 결혼을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이후에도 치요를 계속 지원하여 야마우치 가문의 부활을 위하여 음으로 노력한다.

 

 

키누(きぬ)

 타키가와유미(多岐川裕美)

 치요의 이모(치요의 어머니 토모의 언니)로 치요가 미노로 피신할 때부터 길러 준 양어머니.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 후와 이치노죠와 함께 치요를 사랑으로 길러준다. 키누의 입장에서는, 치요가 밝게 자란 것이 기쁜 일이지만, 치요가 말을 타고 돌아 다니는 것이 말괄량이의 모습으로 보여서, 시집갈 곳이 있을까하는 것이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치요가 카즈토요와 결혼한 이후, 치요의 상담상대가 된다.

 

 고도 키치베에(五藤吉兵衛)

 타케다 테츠야 (武田鉄矢 )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부하로, 아버지인 모리토요 때부터 야마다가에서 가신으로 일했다. 카즈토요가 어릴 때부터 그의 뒤를 보살펴 주었고, 카즈토요가 아버지를 잃고 방랑할 때에도 따라 다녔다. 카즈토요가 노부나가를 섬기고 나서 카즈토요와 함께 많은 전투에 참가한다. 치요가 시집오고 나서 문장의 의미를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소후에신우에몬(祖父江新一郎)

 마에다 긴(前田吟 )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가신. 아버지를 잃은 카즈토요를 고도 키치베에와 함께 키웠다는 자부심이 있다. 카즈토요의 진솔한 면모를 좋아하여, 카즈토요에게 주군으로서 해야할 행동을 가르쳤다. 고령으로 팔이 둔해져서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제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의한다. 이후 카즈토요와 치요의 상담상대가 되어 마에다 가문을 받들고 있다.

 

 소후에신이치로(

 하마다 마나부(浜田学 )

 소후에 신우에몬의 장남. 아버지가 전투의 제일선에서 물러난 후에, 그 뒤를 이어받아 카즈토요의 오른팔이 된다. 토사입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야마다 가문을 융성시켜서, 자신의 입지를 부동의 것으로 만든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타치 히로시(舘ひろし )

 선경지명이 있는 장수이지만 잔인한 면도 있었다.   미츠히데, 히데요시 등과 함께 노부나가 군단을 조직한다. 기존의 권위를 허용하지 않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였다. 이는 야마우치 카즈토요를 등용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온화한 성격의 미츠히데와 자주 대립했다. 마침내 혼노지(本能寺)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습격을 받고 자살하였다. 키노시타 토키치로에게 히데요시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노우()

 와쿠이에미(和久井映見 )

 오다 노부나가의 아내로, 미노(美濃)에 있는 사이토 도산(齊藤道三)의 딸. 본명은 키쵸(歸蝶)라고도 한다. 노부나가의 고독감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있다. 아케치 미츠히데와는 사촌의 관계로, 어렸을 때부터 교분을 가졌다. 그런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신하로서 따르고자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는다. 혼노사의 변이 일어나서 미츠히데의 군대에게 공격을 받을 때에 노부나가의 앞에서 장도를 손에 들고 나타나서, 미츠히데 군과 싸워 노부나가의 아내로서 자랑스러운 일을 다하였다.

 

 이치()

 다이치 마오(大地真央 )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上洛(주, 죠라쿠, 지방에서 교토로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부나가의 뜻을 받고, 얼굴도 모르는 近江, 오다니성주인 아자이 나가마사(에노키 타카아키 맡음)에게 시집가기로 하는데... 시집가기 전 치요가 네네를 위하여 만든 옷을 가져간 것을 계기로 치요와 친해지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아자이 가문이 노부나가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결하자 자신의 자녀들을 데리고 성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아들인 만부쿠마루가 노부나가의 명과 히데요시의 배신으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한다.
혼노지(本能寺)의 변 이후 시바타 카츠이에와 결혼하고, 히데요시가 시바타 카츠이에와 전투를 벌이고 성을 함락할 때에 자녀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남편과 같이 자결하였다. 전국시대 여성의 운명을 꿋꿋이 견디고 살아간 가인(佳人)이었다.

시바타카츠이에(柴田勝家) 카츠노 히로시 (勝野洋)

오다(織田)의 가신 노부나가의 아비 노부히데가 죽자 하야시 미치카츠 (林通勝)와 함께 노부나가의 아우 노부가츠(信勝)를 옹립하려다 노부나가와 싸워 패하자 삭발하고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  노부나가의 명에 따라 노부까츠의 아들은 가츠이에가 양육하기로 한다.

 

 

 하야시 미치카츠 (林通勝)

카리야 슌스케(苅谷俊介 )

 오다(織田)의 중신 - 노부나가의 아비 노부히데가 죽자 노부나가의 아우 노부가츠를 옹립하려다 노부나가와 싸워 패하지만 다시 용서 받고 가노(家老 원로중신)이 된다.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타와라기 토타 (俵木藤汰 )

 오다가의 중신 노부나가의 아비가 죽어 상속문제가 대두될 때 노부나가의 편을 들어 모반하는 세력과 싸워 승리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어 노부나가 가신단의 우두머리격이 된다.

그러나 나중에 노부나가의 변덕에 의해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니와나가히데(丹羽長秀)

 나다카 타츠오 (名高達男 )

 비교적 다재다능했던 인재로 전투 · 정치 · 조략 등 모든 면에서 활약, 오다가에 있어서 빠뜨릴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의미로「미고로 자(米五郞左)」이라고 불려 노부나가의 성공을 그늘에서 지탱했다. 「귀신 고로 사에몬(鬼米五郞左衛門)」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용맹하고 날카로운 대장을 맡은 적도 있지만, 보통 온화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배후자의 일을 묵묵히 처리해, 반드시 약속한 기한 시간에 늦지 않게 했다고 한다. 노부나가를 섬기어 15년째에 그의 양녀에 장가갔고, 적자 · 나가노리(長重) 또한 노부나가의 4녀와 결혼이 약속되었다. 2대에 걸쳐서 노부나가가 딸을 준 예는 없었고, 이에 그가 노부나가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반도 미츠고로 (坂東三津五郎 )

 아사쿠라가를 섬기고 있을 때, 마침 도움을 청해 온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접근 해,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와 함께 요시아키의 상경을 획책. 그 후 노부나가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하자 노부나가에게 발탁, 에찌젠, 가가 공략전 등에 참가. 1571년에는 오미 시가군(滋賀郡) 5만석을 받아, 노부나가의 가신으로서는 처음 성을 소유한 영주가 되어 사카모토 성에 들어갔으며, 무로마치 막부 멸망 후는 단바(丹波) 공략의 총대장을 맡는다..
단바 평정 후는 동국을 증가해서 카메야마(龜山) 성주가 되었으며, 1582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상경 시에는 그 접대역을 맡았지만, 그 도중에서 쥬고쿠 공략의 응원 명령을 받아 군을 인솔해 쥬고쿠로 향했으나 그 도중인 6월 2일, 진로를 변경해 쿄토 혼노지(本能寺)에 숙박중의 노부나가를 급습한다. 노부나가는 전투에 진후 자결하는데 이 모반을 혼노지의 변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역시 히데요시의 「쥬고쿠대반환」에 이은 13일의 야마사키 전투에서의 대패, 미쓰히데는 자신의 거성 · 사카모토성으로 도망치던 중에 쿄토에서 토착주민에게 살해된다.

학문이나 와카(和歌)를 통해 옛 식전례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진, 그야 말로 오다가 안에서도 가장 교양이 높은 사람 중의 하나라고 전해진다.

 

 가라샤(타마)

 하세가와 쿄코 (長谷川京子)

 아케치 미츠히데의 세째 딸로 태어났다. 이 드라마에서는 어렸을 때에 기후성 아래에서 치요와 만난다라고 설정되어 있다. 장성한 후에는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던 호소카와 후지타카(콘도 마사오미 맡음)의 적자(嫡子)인 타다오키(이노 마나부 맡음)의 부인이 된다. 혼노사에서 노부나가를 타도한 미츠히데는, 호소카와 가문에 대하여, 아군으로 가세하여 줄 것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호소카와 부자는 이를 거부하고, 타마를 역적의 딸로 취급하여 유폐시킨다. 그런 고난을 당하던 중에 타마는 카톨릭에 귀의하고, 예수회 신부에게 세례를 받아, ガラシャ(Gratia, 라틴어로 신의 은혜라는 의미임)라는 이름을 받는다. 그 후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에, 오자카에서 군사를 일으킨 이시다 미츠나리는 토쿠가와 이에야스에 복종하는 무장의 처자식에게 오자카성에 들어 오라고 명령한다. 그 때에 타마는 인질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기거하던 저택(屋敷)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그의 삶의 모습은, 치요를 비롯한 동군(東軍)의 아내들에게 용기를 주게 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에모토 아키라(柄本明 )

 키노시타 토오키치로(木下藤吉郞),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노부나가 집안에서 그 밝음으로 인기가 있는 한편, 적도 많다. 아내 네네를 사랑하는 한편 비길 데 없이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 창술에 약해 카즈토요의 창술에 반해, 그 곧은 마음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카즈토요에 있어서는 수수께끼가 많아 가끔 벽이 되는「상사」. 타고난「사람을 달래는」재주로 적을 조략하여 두각을 나타내, 마침내 관백(關白)·태합(太閤, 타이코우)에. 요도에 대한 총애, 한국 출병, 아들 히데요리(秀賴)에 대한 총애 등, 권력에 대한 맹신과 집착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해 수많은 드라마를 낳는다.

 

 네네(寧々)

 아사노유우코(浅野ゆう子)

 히데요시의 정실이다.

노우(오다 노부나가의 처) 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성격의 인물이다.

히데요시의 조강지처 의 공적으로 발언권이 커지고 정치력을 발휘한다.  자신은 개종하지 않았지만 예수회선교사들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주기도 했다.

히데요시가 관백취임후에는 여러 다이묘 앞에서 히데요시와 오와리(尾張)사투리로 입씨름을 할 정도로 기가 센 여자로 전해진다.

 

 요도(淀)

 나가사쿠 히로미 (永作博美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이다

본명은 키쿠꼬(菊子)로 차차(茶々)로고도 불린다.

아사이나가마사(浅井長政)와 오다노부나가의여동생 이치()와의 사이에 태어난 노부나가의 조카딸인 셈이다.

히데요시가 57세 때 아들 히데요리(秀頼)를 낳고 히데요시 사후엔 히데요리의 후견인이 된다,

 

 아사히(旭)

 마츠모토 아키코 (松本明子 )

 히데요시의 누이동생(일설에는 애비가 다른).

오와리의 농부에 시집가나 히데요시에게 온후 전쟁에서 죽고 다시 소에다 요시나리(副田 吉成 ,일명 진베에(甚兵衛))와 재혼한다.  그러나 도꾸가와가와 화친하기 위해 다시 강제이혼시키고 도꾸고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후처(정실)로 시집보낸다.

 

 토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

 나리미야 히로키 (成宮寛貴)

 히데요시의 누이 도모의 아들로 히도요시의 생질.

나중에 히도요시는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아 관백직까지 넘겨 준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전권을 넘겨 준 것이 아니라 조선전쟁을 관리하느라 내치만 맡겼다.

아들 히데요리가 태어나자 괄시를 받고 마침내 히데요시에게서 추방된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나카무라 하시노스케 (中村橋之助)

 아즈치 모모야마 (安土 桃山) 시대의 무장(1560 - 1600. 11. 06)
오오미국(近江國 坂田郡 石田村) 출신, 현재의 시가현 나가하마(長浜)시 이시다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부장이었을 때 나가하마에 갔는데. 어느 절에서 심부름을 하는 어린 이시다가 차를 마음에 들게 끓여줘서 데리고 왔다. 장성하여 문관으로 임용되어 풍신수길의 측근에서 총애를 받았다. 1572년 13세의 나이로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섬기기 시작하여 그에게 중용되면서 1590년 사와야마(佐和山) 성(시가현 히코네시 도리이모토) 성주가 되었다. 이무(吏務)에 능했던 그는 조일전쟁 직전에 선봉행에 임명되어 히젠 나고야성(肥前 名護屋:사가현 카라츠시 친제이쵸)에 머무르면서 도항하는 부대를 수송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1592년 침략이 시작되자 6월에 오오타니 요시츠구(大谷吉継), 미스다 나가모리(増田長盛 ) 등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가서 봉행으로서 총수인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를 보좌하면서 제장(諸將)을 독려하기도 하였다.벽제관 싸움에서는 고바야가와 다카카게와 함께 역전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나, 1593년 행주산성 전투에서는 권율 장군에게 대패하였고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명나라 군대와의 사이에 화평 교섭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정유재란이 일어난 뒤 1598년에 히데요시가 죽자 아사노 나가마사 (浅野長政)와 함께 하카타(현 후쿠오카)에 나아가 조선으로부터의 일본군의 철수를 주도하였다.2년 후인 1600년, 문치파와 무단파로 나뉘어진 세키가하라(関ヶ原:기후현 후와군 세키가하라쵸) 전투에서 패한 미츠나리는 전장에서 탈출했다 동년 10월 21일 사로잡혀 그 해 쿄토 로크죠가와라(六条河原)에서 도쿠카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에게 41살의 나이로 처형되었다.
묘는 쿄토 대덕사의 산겐인(京都 大德寺 三玄院) 에 있다.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츠츠이 미치타카(筒井道隆)

 1544~1579. 성명은 타케나카 시게하루(竹中 重治).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천재적인 군사(軍師, 작전참모에 해당(?)). 노부나가의 군대가 미노를 공격할 때, 미노측에서 그 지략을 발휘하여 노부나가 측을 괴롭힌다. 후와 이치노죠와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전 치요와도 교분이 있었다. 아직 노부나가 측과 대립하고 있을 때에 카즈토요와 히데요시가 찾아오지만 미노 측을 배신할 수 없다며 히데요시의 제의를 거절하기도 하였다. 결국, 히데요시를 천하의 그릇이라 생각하고 그의 참모가 된다. 미키성(三木城, 현재 효고현 미키시에 있음.)공격의 무렵에 자신의 뜻을 이루는 도중 지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호리오 요시하루(堀尾吉晴)

 나마세 카츠히사(生瀬勝久 )

토요토미 정권의 삼중노(산쭈로(三中老))중의 하나.

처음 오다노부나가를 섬겼으나 나중에 히데요시 밑으로 들어 온다. 빗츄고꾸 다까마츠죠(高松城) 공략시 공을 세운다.

나중에 다이묘의 지위에 오른다.

 

 이토

 미하라 준코(三原じゅん子)

 호리오 요시하루의 아내. 나카무라 카즈우지의 아내와 함께 치요와 친분을 갖는다. 네네에게서 남편의 출세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느라 여념이 없다. 낭비벽이 심한 편이고, 생활이 어려운데도 좋은 옷을 사는 습관이 있으나, 남편의 장래를 생각하는 심정은 치요와 다를 바 없다

 

 나까무라 카즈우지

 타무라 아츠시(田村淳)

 토요토미 정권의 삼중노(산쭈로(三中老))중의 하나

야마자자끼 전투(山崎) 시즈가타케의 전투(賤ヶ岳) 등에서 공울 세웠다.

 

 토시

 오토하(乙葉)

나카무라 카즈우지의 아내. 이토와 더불어 치요와 가까이 지내고 이토와 마찬가지로 네네를 통하여 남편의 소식을 알아보고 있다. 호기심이 왕성한 편이며 성안의 소문을 거의 다 퍼뜨리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에노쇼우에몬 (前野将右衛門)

 이시쿠라 사부로(石倉三郎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하치스가 코로쿠와 함께 木曽川의 수운 등을 주름잡는 카와나미슈(川並衆)로서 활약하여, 히데요시와 친교를 맺고 이전부터 그의 신하가 되었다. 카즈토요의 입장에서는 '선배'인 셈이다. 토요토미의 군대에서는 항상 그가 모습을 보이고, 자주 히데요시를 보좌하였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관백(関白)인 秀次의 배척을 꾀하는 가운데, 아들이 秀次에게 忠誠을 서약하기로 하고 연판장에 서명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연좌(連座)의 죄를 추궁당한 마에노는 나카무라 카즈우지의 지배하에 맡겨져{元へ預けられ}, 카즈토요 등이 해명하라고 권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치스카 코로쿠 (蜂須賀小六)

 타카야마 요시히로(高山善廣)

 본명은 하치스카 마사카츠(蜂須賀正勝)

하치츠카가는 오와리근방의 작은 나라 영주였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낭인시절 야하기가와(矢作川)에서 하치스카 마사카츠를 만났다 한다. 오다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 가기전에 하치스카가에 들어 갔다고 하는 설도 있다.  히데요시의 젊은시절 상사였던 셈이다.

 

 토쿠가와 이에야스 (徳川家康)

  니시다 토시유키(西田敏行)

 미카와(三河)의 오카자키(岡崎)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廣忠)의 장남. 잘 알려진 대로 전국시대의 최후 권력자이자 토쿠가와 막부의 초대 쇼군. 젊었을 때부터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전쟁에 함께 참가한다. 혼노사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에, 관백이 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上洛 요청을 묵살하고 신하로서 따를 것을 거부하였다. 小牧.長久手의 전투에서 히데요시군과 국지전을 벌여 승리하여 강화를 맺고, 히데요시의 누이인 아사히(旭)를 정실로 맞이하고, 히데요시의 어머니 大政所를 인질로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신하로서 따른다. 그 사이에 치요나 카즈토요 부부와는 인간관계를 맺는다. 히데요시의 사후에는, 이시다 미츠나리와 대립한다.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미타니 코키(三谷幸喜)

 무로마치바쿠후(室町幕府)의 15대 쇼군(将軍)

1573년 오다노부나가에게 교토에서 추방되고 무로마치 막부시대의 종연을 고한다.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1588년 관백 히데요시밑에 들어가 충성을 맹세할 때 까지는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 직위는 유지했다고 한다.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

 에모리 토오루(江守徹 )

 1519년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5남으로 태어나다. 일본 명문호족의후예로 본성은 겐지(源氏)

스루가(駿河)의 이마가와(今川)가의 9대 당주.

2만 5천의 군사를 끌고 노부나가의 오와리에 쳐 들어 가나 오께하지마(桶狭間)전투에서 오다노부나가에 크게 패하고 패망의 길로 들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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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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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극을 좋아 하지도 않지만 더더욱 일본 사극을 볼 생각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케이블 TV Channel J 에서 "풍림화산" 마지막 몇회를 보고 이어서 방영되는 "공명의 갈림길" 이란 대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풍신수길의 천하통일 이전 풍신수길이 섬겼던 오다 노부나가의 대두가 드라마의 서편이다. 


쇼군가의 몰락과 지방 각지의 영주(다이묘)들의 패권 다툼으로 일본 천지가 정쟁의 소용돌이의 몰려 있을 때의 사무라이들과 그 가솔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 내용이다.   


툭하면 출진하는 사무라이의 아낙들은 언제나 남편의 죽음을 곁에 끼고 산다.  그런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난세의 여인들의 숙명으로 여기며 받아 드린다. 


channel J 에서 매일 하는 방송은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또 감질도 나기에 전펀이 다 공개된 일본 드라마 사이트에서 몇펀을 한꺼번에 내려 받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인터넷 드라마 다시 보기엔 매편 그 내용과 관계되는 사적 답사 안내가 따른다.   옛 싸움터였던 고성의 유적들을 보여 주고 방문하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격전지였던 성의 흔적,  싸움터였던  강과 산의 오늘의 풍경을 보여 준다.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답다.   깨끗한 거리에 한 모퉁이에 작은 돌비석이 서 있고 그 지점에 바로 옛 성곽, 옛 절터등임을 표시해 놨다.


그 얼마나 허무한 싸움들이었던가!   그들은 전쟁을 저의 나라 뿐만 아니라 조선에 까지 끌고와 임진왜란이란 비극적인 역사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전쟁을 얼마되지 지난 날에도 또 되풀이 했다.  바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들이다.  


난 그런 전쟁의 한 가운데 일본에서 태어 났다.  그리고 그 비참한 일본 아낙네들을 내 눈으로 봤다.  


내가 태어나 얼마 안되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국만학교에 들어 갈 지음엔 태평양 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전쟁이 점점 불리해 지면서 일본의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에 불려 나갔다.  그 불려 나가는 남자들을 위해 아낙네들은 길거리에 나서서  센닌바리(千人針)을 동냥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운장구(武運長久)라는 글자를 천사람에게서 한 바늘씩 떠 받아 수를 놔 전쟁테에 나가는 남편, 아들 오빠 동생들의 머리띠를 만들어 주려는 일본 여인들의 비원의 바느질 동냥이었다.


천사람의 여인의 비원이 남정네의 무운을 불러 줄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1945 년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리고 평화헌법을 만들어 다신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다고 다짐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아래에서 대단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우린 그들의 침략과 전쟁의 간접적 결과로 남북이 분단되고 뼈 아픈 전쟁을 치뤄야 했다.  얼마나 아니로닉한 일인가!

 
그러나 누굴 탓하랴.   다 우리의 잘못이요 못난 탓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일본의 우익들은 이 평화 헌법을 깨고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있는 길을 열자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그 옛날의 전쟁을 그리워 하고 있단다.  


또 다시 일본의 아낙들에게 센닌바리를 뜨게 하려는 건가!   전국시대의 그 허망한 전쟁과 불과 반세기 전의 그 무서운 전쟁을 또 잊었는지?


공명의 갈림길에 나오는 그 일본 아낙들을 보면서 떠 오르는 감회가 그렇다. 



 

 

우직한 사무라이 야마우치 카츠데요의 아내 치요는
전쟁이 싫단다.  그러나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 빌고
"공명(功名)이란 살아 돌아 오는 거" 라고 남편에게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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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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