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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인 우리가 사는 법

 

 

얼마 전 밖에 나갔다가 택시를 타고 돌아 오는 길이었다.   우리 부부는 택시 안에서 무언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난 택시 안에서 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택시기사가 엿듣게 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이야기인지 꽤 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맛 집 이야기 아니면 자전거 이야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것이다.

 

우리 둘은 늘 모든 것을 같이 하니까 당연히 이야기 거리가 많다.

 

거의 24시간 붙어 사니까 그 사이에 이야기가 많다.  

 

거의 집에 도착할 때쯤 되니까 택시 기사가 그런다.   우리 같은 노부부를 처음 본다는 것이다.  노부부는 대화를 안 한다는 것이다.   노부인끼리 또는 노인남자끼리는 이야기를 해도 부부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투는 이야기가 아니고 오곤조곤 낮은 소리로 대화를 하는 것은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Gekko FX를 타다가 한강 자전거길 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목을 축이고 있는데 역시 나이 든 잔차인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우리 자전거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묻더니 우리가 부부냐고 묻는다. 

 

 

흔하지 않은 똑 같이 생긴 외제 3륜 자전거를 탔으니 오다 가다 자전거 길에서 만난 노인 남녀라고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굳이 우리가 부부냐고 묻는 것은 우리 나이 또래의 노부부가 자전거를 같이 타고 한강 자전거 길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한강 여의도에서 아침 피크닉

 

 

 

 

하긴 우리는 특이한 노부부임에는 틀림 없다.  

 

우리 집에서 거의 10년 일했던 도우미 아줌마는 많은 노부부 집에 일을 다녔어도 우리 같은 노부부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오누이 사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라고 싸우지 않고 살진 않았다.   시간을 열개로 쪼개면 한 두 번은 다퉜다.   두 인격체가 똑같이 맘에 드는 일만 골라 할 수는 없고 상대가 자기 맘에 안 드는 일을 하면 나무라거나 신경질을 부린다.   또 상대가 그 말을 들으면 부아를 돋우게 되고 말 싸움이 시작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회수가 줄어 든다.   전에  연인사이 같은 부부관계

 

어쩌면 해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이 스스로들을 관대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라고 쓴 일이 있다.

 

평균수명을 넘긴 우리 나이쯤 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다툴 만큼 중요한 일이 되겠는가!  

 

그걸 깨달으면 자연 다툴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프지 않고 눈 감는 날까지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노부부가 대화를 하는 것은 뇌 건강에도 유익하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뇌도 퇴화되어 젊었을 때와 같은 기능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그 중에서도 기억력이 떨어진다. 

 

근력이 떨어지면 운동을 해서 근육을 강화하듯 뇌도 계속 사용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  대화는 아주 좋은 뇌 강화방법이다.

 

 

옛날 기억은 어떤 때에는 아주 상세하게 떠 올릴 수 있는데 최근에 경험한 기억은 쉽게 잊는 경우가 많다.   몇 시간전의 일을 떠 올리는데 한참 애 쓸 때도 많다. 

 

내가 이 블로그를 열심히 쓰는 이유중의 하나는 내 기억강화도 그 목적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인터넷 연구를 해서 알아낸 여러 지식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쉽기 때문에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 이 블로그에 적어 두는 것이다.

 

그런데 소소한 일상적인 것은 쉽게 잊기가 일쑤다.  물론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떠 올리지 않아도 될 때가 많지만 갑갑할 때가 많다.

 

 

TV 화면을 보다가 어떤 연예인을 보면 아 저 남자 누구지?” 알듯 모를 듯 할 때 아내가 기억해 낼 때도 있고 아내가 기억 못하는 것을 내가 기억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기억을 공유하는 교류기억장치(transactive memory device)가 되는 셈이다.

 

교류기억에 대해서는 전에 아래의 글에서 설명을 한 일이 있다.

 

나이와 더불어 감퇴하는 기억력에 대하여 - 교류기억과 외장 두뇌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07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이처럼 노부부가 대화를 하면 메모리 용량이 배가하는 것이다.

 

물론 둘 다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된다.

 

인터넷에는 정말 엄청난 양의 사소한 정보가 들어 있다.

 

난 그래서 검색의 명수가 되었다.   뭐던지 찾아 낼 수 있다.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인터넷 정보를 검색해서 다 기억해 낸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 중에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이야기다. 

 

유 산소 운동은 혈액 순환을 왕성하게 하여 뇌에 많은 피(산소)를 보내 뇌의 노화를 막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치매를 예방할 뿐 아니라 치매에 걸렸다 해도 그 진행을 늦추는 효과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우리가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육체와 정신의 노화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또 노년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바법중의 하나는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에 이 블로그에 소개했던

 

 

 

최근에 읽은 알츠하이머 예방법에 관한 책

Jean Carper 가 쓴

·"100 Simple things you can do to prevent Alzheimer's"

ebook 을 만들고 나서 문구점에서 다시 제본을 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423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에 있듯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다니지 않은 길을 찾아 다니고 새로운 물건들을 사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은 역시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나는 나 대로 새로운 물건이나 어른 장난감을 검색해서 사기도 하고 뭔가 우리 자전거 생활에 유익한 새 제품에 대해서 계속 구입하여 시험해 보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다.

 

아내는 아내대로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쿠킹을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아 내어 시험해 본다.  오늘도 밖에 나가는 대신 집에서 쌀 피자를만들어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고 오후엔 손자손녀가 좋아하고 우리도 간식으로 먹는 시나몬 오트밀 쿠기를 구웠다.

 

아내의 취미는 끊임 없이 새 쿠킹 웨어를 사고 버리고 사고 버리고 하는 일이다. 

 

오늘 아내가 만든 음식들은

 

 

 

 

 

 

 

 

현미 잡곡 누룽지 피자

코니가 즐겨 찾는 Jenny 의 간단한 요리 리시피 중에

밀가루 피자판 대신 Cauliflower 로 피자판을 만들어

피자를 굽는 건강식을 응용했다

 컬리프라워 대신 현미잡곡밥을 누룽지화해서 깔고 피자를 만들었다.

밀가루 보다 건강식이다.

맛도 좋다.

밥 햄버거도 있으니 밥 피자도 누군가 개발해 볼 법하다.

 

 

 

 

 

Oatmill Cinamon chocolate coo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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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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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0.16 19:51 신고

    맞습니다. 노부부는 대화를 잘 안합니다. 선생님 부부는 젊은 부부입니다. ㅎ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10.17 17:03 신고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대화를 하려면 같은 취미생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4시간 붙어 있으면 말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되지요.

어머니들의 비원 - 33년전에 썼던 글

 

오늘 옛날 노트를 뒤지다 우연히 33년전에 썼던 글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 쓴 글인 것 갈다.

 

1985년 전후에 쓴 것 같은데 전두환 정부 때 일 일 것이다.  예나 자금이나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어머니들의 한 맺힌 비원까지도 저들의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거 아닌가 싶다.

 

그 때 블로그가 있었다면 블로그에 올릴 법도 했던 글이라 여기 스캔해서 올린다.

 

 

 

2018년10월09일15시14분17초.pdf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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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0.09 18:05 신고

    33년 전에 쓰신 글인데 지금도 같은 상황입니다. 언제나 이 매듭이 풀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더 늦기전에 김정은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반도의 미래를 꿈꾼다.

 

가을 장마가 내리고 있다.     3차 남북 회담이 끝나고 연일 흥분의 남북회담의 소식을 듣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우리의 미래는?  한반도의 미래는?

 

나는 한반도에는 평화의 봄이 올 것을 거의 확신한다.

 

올 해 초 한국이 방북특사를 보낼 때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확신을 피력한 바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것인가? )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는 없어도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는 외연(extrapolation)을 해 볼 수는 있다.  꿈꿀 수 있다.

 

외연이란 지금 일어 나고 있는 상태의 관성, 모멘텀(momentum)으로 비추어 가까운 장래에 대한 일어 날 수 있는 것을 예측하는 것이다.

 

뉴턴 역학의 제 1 법칙이다. 

 

남북 관계는 이제는 돌이 킬 수 없는 평화의 길로 달리고 있다. 

 

아직도 김성태나 손학규가 야당이라고 뭐라고 깎아 내리려는 발언을 하지만 그 건 그것도 안 하면 야당으로 존립가치를 상실할 까 걱정해서일 것이다.

 

개 짓는 소리 정도로 시끄럽고 귀찮은 소음으로 감내하면 된다.  세상에는 앞서 가는 사람이 있으면 뒤쳐지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진화에서 뒤쳐진 숫캐 정도의 의식 수준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숫캐도 보이지 않는 물위의 가상적 선위에 오줌을 깔기진 않는다. (은원을 넘어서야 - 우린 아직 고작 숫캐의 수준인가)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의 정세는 아주 미묘하다.

 

트럼프의 재선을 막으려는 야당인 민주당과 트럼프를 문제아로 보고 있는 진보 언론은 북핵 문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에 내심 달갑게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불신을 씻어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보수나 미국의 보수나 마찬가지다.   거기에다 자신들의 이익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는 반공 냉전으로 밥 먹고 살았으니 남북이 화해하면 저들의 밥줄이 끊어진다.  한국의 보수는 개 짓는 소리 정도의 영향력밖에 없지만 미국은 큰 문제다.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위협만 없으면 한국민이 희생되는 것은 큰 문제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를 울렸던 국사책 )

 

최근에도 그런 소리를 한 사람이 있다.  밥 우드워드의 공포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면 수백만의 서울시민이 죽을 지 모른다.  그러자 매파의 그래함은 그렇다 해도 서울사람이 죽지 우리 국민이 죽는 건 아니 잖나…”

 

Very complicated,” he said. “They can kill a million people in Seoul with conventional artillery. That’s what makes it so hard.” Graham offered a hawkish view: “If a million people are going to die, they’re going to die over there, not here.”

 

Woodward, Bob (2018-09-11).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 (p. 105). Simon & Schuster. Kindle Edition. “

 

그냥 해 본 말이라도 이렇게 말해도 되는가?

 

Lindsey Graham South Carolina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미국은 한 반도에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여 한국과 일본을 안보라는 이름으로 복속시켜 지정학적 태평양지각판(plate)의 패권을 추구해 왔다.  그런데 남북이 화해하여 긴장이 없어지면 그것을 팔아 한국과 일본을 복속시키기 어렵게 된다.

 

일본의 아베로 하여금 헌법을 개정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적나라도 만들어 유사시에 미군을 도와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데 동원시킬 수 있다.  이런 계획에 차질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저항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결국 한반도 평화구축에 동참하리라고 본다.  

 

핵이 앞에 있는 한 적당한 긴장을 조성하여 북한을 가두어 두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북아다. 

 

일본과 중국이 문제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이 보인 행태라든가 일본 아베가 계속 집권하면서 일본을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나 모두 한국 평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북아에도 봄이 올 것이다.  그 건 역사 진행의 순방향이기 때문이다.

 

옛날 안중근의사가 동북아 공동체론을 피력한 바 있다.   한 중 일의 청년이 모두 자국어 말고 한중일중 한 개의 언어를 더 배우면 우리는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침략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이젠 언어를 안 배워도 우리가 대중 문화를 교류하는 것 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는 피가 많이 섞인 같은 조상과 뿌리를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아베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은 미국이 키운 현상이란 것을 밝힌 바가 있다. (아베의 야스쿠니행은 미국이 키운 현상)

 

멀지 않아 시모노세키와 부산사이에 해저 터널이 뚫리고 신칸센이 서울을 거쳐 평양에 가고 그 넘어 신의주를 거쳐 베이징에 가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일본이 육로로 대륙에 연결되는 날이 오면 일본은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니게 된다.

 

2015년 네델란드 Maastricht 에서 Segway를 탄 일이 있다.  독일 Achen 에 사는 독일 사람이 30킬로 떨어진 네델란드 도시 Maastricht 에서 Segway 관광 가이드 숍을 운영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Segway에 태우고 벨기에의 이웃 동네까지 데려가고 옛날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를 아무 자의식 없이 관광객에 설명한다.   거기엔 국경을 긋는 줄 조차 없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기에 있는 운하(Albert Canal) 의 다리중의 하나인 The Bridge of Vroenhoven 에 얼킨 역사였다.    이 다리는 2차 세계 대전 개전 초기에 독일군의 공수부대의 공격을  받아 디리를 지키던 벨기에 군대가 크게 희생을 했던 격전지였다는 것이다.  

 

그 때 희생자의 이름이 새계진 기념비가 서 있었다.    벨기에 국기와 영국기가 양쪽에 그려져 있어서 가이드에 물어 보니 영국이 독일군에서 벨기에를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에 새겨진 것이라 한다.

 

70년도 지난 역사이지만 유럽도 많은 전쟁을 치뤘다

 

이 과거의 역사를 거울 삼아 평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유럽 연합이 탄생하였다유럽은 이젠 한 나라로 되어 가고 있다.      이 것이 역사의 순 방향이다.   우리는 언제 교훈을 배우려나?  

 

이 모든 역사 이야기를 해 준 우리 가이드는 뜻밖에도 독일 사람이었다.  “  

 

 

 

 

 

 

Pimpernelleke 아이스림집에서

Segway 주인장 Segway 주인장 Helmut Reis 과 함께.

Pimpernelleke 아이스크림집 아저씨를 물론 잘 안다.

우리 이야기를 한참 해 댄다.

Segway 주인장은 독일 사람이고 독일 Achen 에서 산단다

내가 기차에서 보낸 이메일을 아헨에서 받았다고 했다.

2차대전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를 하듯 해서

코니가 당신이 독일사람이라면 벨기에 사람이 미워하지 않냐니카

우린 모두 유럽사람이란다.

독일에서 살면서 네델란드에서 일하고 벨기에를 투어코스 일부로 해서 2차대전 격전지까지 데리고 다닌다.

역사는 역사일 뿐 이젠 네델란드인, 벨기에인 독일인 모두 유럽연합사람들이란다.

 

 

 

다시 Segwway 숍으로 돌아 왔다.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린

4시 58분 차를 타느라 바삐 Maastricght 역으로 향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355?category=503708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동북아 공동체가 오면 우리도 패스포트 없이 오사카에도 가고 샹하이에도 가게 되지 않을가

 

Passport 없는 꿈꾸며

 

 

 

 

동북아 평화의 초석이 되길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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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9.22 09:20 신고

    어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평안한 추석명절 보내십시요.

60년전의 판결 - 안희정 판결을 보고

 

 

사람이 80을 넘게 살면 별아별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다.

 

우리가 겪은 첫번 째 "송사"는 1980년 지금 살고 있는 집터에 단독주택을 지을 때였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교수 부부가 집을 지으려니 결국 소송에까지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변호사비는 변호사비 대로 엄청 들었고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 때 우리가 선임했던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유명한 변호사가 소송이나 판결에 대해서 "Apporximate Jutice" 라는 말을 써서 우리를 위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송사는 최근에 겪은 송사다.    그 것 역시 부동산관련 소송이다.  첫번째 송사도 끝날 때까지 한 2년 걸렸고 두 번째송사도 2015년에 시작해서 몇달전에 끝났으니 거의 3년 걸렸다.

 

최근의 3 건의 소송은 모두 우리 집과 관계되는 소송이었고 두 건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재판을 대행시켰지만 마지막 한 건은 부동산 소개를 한다는 컨설팅회사의 부당한 수수료 요구로 합의가 되지 않자 상대방이 역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액수가 3000만원 이하이면 소액재판이라 해서 대부분 대리인 없이도 재판을 한다.   이런 경우 대리인을 선임하면 변호사비가 자칫 솟가(소송청구액)를 넘기도 해서 내가 직접 소송을 진행했다.  

 

앞선 두 사건도 변호사가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하면 의뢰인이에게 최종 확인을 받으니까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준비서면 작성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아마춰가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하면 법리에 맞는 주장을 하기보단 감정적 호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전혀 인용될 수 없는 변론이 된다.    이번 우리의 소송에서 변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많이 배웠다.

 

어떤 법리로 내 주장을 펼 것인가 상대방 변호사도 그렇지만 판사도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법리에 따라서 판결문에 명시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 주장을 펴기 위한 법조항을 찾아 내야 한다.  그래서 지난 3년 생각지도 않은 법공부를 많이 했다.     

 

소액재판은 내가 직접 준비서면을 작성했고 증거물도 일일이 챙겼다.     내가 개발한 법리와 증거로 재판은 우리 편의 완승으로 끝났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재판전에 제시한 합의금액정도를 지불할 각오로 판결을 기다렸지만 원고 청구의 기각으로 끝이 난 것이다.  원고는 재판을 걸어와 우리가 제시했던 금액도 받지 못하고 물러났다. 

 

내가 고3이던 1953년은 갓 수복한 서울이라 반파된 교사에서 고3  공부를 시작했다.   피난 갔던 선생님들도 다 돌아 오지 않어서 예저기 땜빵 수업을 했다.  

 

그 때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출강하셨는데 미공보원 과장으로 서울 법대를 나오신 분이었다.  토요일 마다 나오셔서  영작문과 "공민"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는데 영작도 그랬지만 공민과목은 시험문제로 "xxx 에 대해서 논해라" 식 문제를 내었다.  요즘 같으면 논술 시험 같은 것이었는데 그 때도 책 읽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줄줄 많이 써 댔다.

 

나중에 내 진로에 대해서 물은 일이 있었다. "물리학"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신 것이다.   선생님은 당연히 법대를 지망하는 줄 알고 계셨다.

 

송사에 휘말려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할 때 그런 생각이 나곤 한다.  그 때 내가 법대에 가서 판사나 변호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요즘 인기리에 끝난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재미 있게 봤다.  현직 판사가 직접 쓴 원작을 드라마화 했으니 어느 정도 판사들을 미화한 면이 있겠지만 현실감 있는 드라마였다.

 

내 경험으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그랬지만 판사의 판결이 완전히 중립적이라 할 수 없다.  성장과정이나 배경에서 형성된 의식구조가 최종 판결을 결정한다.  

 

물론 초임 판사들이야 어떻게든 선입견을 배제히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결을 내리려고 애쓰겠지만 이번 안희정 재판과 같은 경우는 증거라는 것도 별로 없고 법리라는 것도 모호하고 밀실에서 일어 난 남녀간의 문제이니 결국은 판사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의식이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컨데  어떤 판사가 경상도의 어느 집성촌에서 우리 문중에 신동 났네하고 추켜 세워져 자라서 서울의 명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다면 그런 판사의 의식구조는 대강 짐작이 간다.

 

옛날에 박인수사건이라는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1955년  경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카사노바로 이름을 날린 "박인수"라는 젊은이가 해군 대위를 사칭하고 70 여명의 부녀자를 농락해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었다.

 

그 때 이 재판의 판결문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기억된다.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

 

이 문구는 당시 명판결이라고 추켜 세워져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안희정 재판의 판사는 이 판결문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궁금해 진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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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6 09:03 신고

    요즈음 사법농단 사태까지 있어 사법불신이 만연해지니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나 봅니다. 어느 미래학자가 없어질 직업에 판사도 포함시켰는데 공감이 갑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7 01:45 신고

      벌써 많은 연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0% 까지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사람판사가 내린 판결과 일치하는 데까지 왔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판결을 내리면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없어질 것 같습니다.

"애희의 정조(貞操)는 깨어지고 말았다."- 안희정판결을 보고

 

1948년이나 1949년경에 내가 읽었던 방인근의 소설 "마도(魔都)의 향(香)불"이란 소설의 한 구절이다.    그 옛날에 읽었던 소설의 이 한 구절을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중학교 1,2학년 시절 어머니의 신부름으로 이화동 입구의 세책방에서 책을 빌릴 때 내가 보고 싶은 소설도 함께 빌려서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쓴 일이 있다. (2014/03/31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어렸을 땐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난 아직 생물학적으로 완전한 남자가 되기 전이었지마 이 소설을 읽을 때 몸에 전률을 느끼는 야릇한 감정을 경험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글귀가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던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같으면 그런 정도의 표현이 무엇이라고 야릇한 감정을 느끼냐하겠지만 그 당시 그런 표현이 소설에 들어 간다는 자체가 소설을 포르노 수준으로 만들 때였다.     

 

 

"마도의 향불"

이 책 제목자체가 이 뭔가 음탕한 느낌은 준다.

 

 

소설의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이 장면은 신분이 높은 한 남자가 그 아래사람인 "애희"라는 처녀를 유혹해 어느 온천장 여관으로 데려가 반 강제의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서술했던 것 아닌가 싶다.    어쩌면 회사의 사장쯤 되는 남자가 회사의 경리사원쯤 되는 처녀를 유혹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조가 깨어졌다"라는 말은 성관계를 했다는 은유적 표현이지만 이런 류의 표현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당시라면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금서로 지정되었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몰래 금서를 읽었던 것이다.

 

요즘이야 어른 소설에 이런 은유적 표현을 쓸 만큼 섹스를 숨기지 않는다.    내가 20년전 쯤이라고 생각되는 옛날에 대학로 극장에서 본 "바지나"라는 모노드라마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그대로 썼다. (2016/04/18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섹스에 대한 단상)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여배우는 그 극중에서 그 비속어를 수백번 썼는데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관객에게 미리 그 낱말은 공공연한 곳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기에 관객의 거부감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연극이 시작하기 전 관객에게 그 낱말 "x지"를 몇차례 외치라고 주문했다.   처음엔 모기소리 같이 나오던 말이 나중에는 극장이 찌렁찌렁 울리게 큰소리로 "x지"를 외첬던 것 같다.

 

 

 

Monlogue Vargina

이 드라마의 내용은 여성의 Vargina의 수난과 학대와 피폭(성폭행당함)의 고발이었다.

이 것을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적라라하게 고발한 것이다.

"미투"운동의 선구자 연극이었다.

 

 

그런데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정조"라는 낱말을 듣게 되었다.   오늘 안희정 전지사의 재판 판결이 공표되었다.   안전지사의 모든 혐의가 무죄란다.   피해자인 김아무개씨가 "판사가 재판에서 정조(貞操)운운할 때 판결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원래 성폭행 범죄의 처벌은 "정조의 보호"라는 낡은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라 한다.   지금은 법의 취지가 진화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판사가 어떤 취지로 "정조"라는 낱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법률적 취지였다면 피해여성으로는 분했을 것이다.

 

"정조"라는 말에는 "순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정조의 보호라는 원천적의미에 무게를 두었다면 정조가 깨어진 여성은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피해여성이 처녀였다면 판결이 달리 나왔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내가 여성의 날에 쓴 글귀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왜곡된 인습에 의하여 상처 받고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어려서는 부모에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 을 따르라고 가르친 옛 도덕율(삼종지도).
칠거지악이니 하여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유교적 전통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여성은 한없이 구박 받고 속앓이 하였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누나들이 또 아내와 딸들이 그런 대우 를 받은 것이다.  아직도 그 인습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98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정조라는 낡은 낱말도 이젠 사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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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5 10:08 신고

    주제와는 다른 얘기지만, 그당시 소설책 표지를 보니 그때까지도 문체가 우에서 좌로 된것이 놀랍습니다. 설마 속 내용도 그렇게 쓴 것을 읽으시진 않으셨겠지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5 10:53 신고

      속 내용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 쓰기로 나왔을 겁니다. 일어 책은 아직도 세로 쓰기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줄이 진행합니다. 최근 까지도 가지고 있던 한 옛날 한글 소설은 그런 세로쓰기 책이었습니다.

손가락위에서 쉬고 가는 잠자리



2006년 9월 10일, 그러니까 한 12년전에 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검색을 해서 찾은 포스팅같은데 사진이 없으니 황당했을 것이다.  (2006/09/10 - [일상, 단상/잡문] - 손가락위에서 쉬어 가는 잠자리 )


원래 네이버 카베 "자줄사"의 "나누고 싶은 풍경"에 올렸던 내가 찍은 사진을 내 블로그에 담아 온 것인데  주 내용인 사진이 따라 오지 않은 것이다. (https://cafe.naver.com/bikecity/104309)


포스팅 넘버가 76 번으로 되어 있으니까 블로그 개설하고 초기에 올렸던 글일 것이다.


그 포스팅은 검색에는 걸리긴 해도 수정하거나 재 편집할 수 없는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포스팅이다.  10여  년 전에 올린 글은 어쩌면 최신 편집기가 접근할 수 없는 구식 포맷으로 죽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글을 수정해서 사진을 올리려 해도 불가능하다.


여기에 그 때 자출사 포스팅을 다시 잡아 왔다.   사진도  함께




원문 


**********************


지난 금요일.
 
탄천 잔전거길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손가락 위에 살짝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잠자리.
 
가을 하늘을 나는데도 손가락 주인만큼 힘이 드나 보다. 





****************************



아마도 오른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찍었떤 사진 같다.    어렸을때는 이럴 때 날개를 살작 잡아서 자잠리리를 잡아 장난을 치곤 했던 생각이 난다.   



조용필의 "고추 잠자리" 생각이 난다.  내가 좋아 하는 노래다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싶지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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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08 20:11 신고

    얼핏 보기에 다른이가 자출사에 올린 사진을 인용하셨다는 뜻인줄 알았더니. 그게아니고 선생님 손가락 위에 잠자리가 앉은 것이군요. 참 신기하고 멋있는 한 컷입니다.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08 22:27 신고

    가슴에 달린 케이스에서 카메라를 꺼내는데도 날아 가지 않아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발이 시리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발이 시리기 시작했다.   꽤 오래 된 것 같다.   돌침대를 드려 오기 전까지는 겨울이면 발열 패드를 뜯어서 발치에 넣고 잤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고 그 중에서도 신진대사가 느리게 된다.  심장에서 먼 발에 충분한 연료를 제 때에 보내지 못해서 연료가 부족한 발은 충분한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겨울이면 열을 빼앗기는 발을 충분히 데워 주지 못해 시리곤 하는 것

 

돌 침대에 자기 시작하면서 발을 데워주기 위해 저녁에 침대에 전원을 넣었다.  지난 5월까지 전기를 켜고 잤다.   온도는 36, 35도, ...로 점차 낮추고 "외출" 모드로 해서 온기만 남게 해 두면 적당히 발이 뜨뜻했다.

 

문제는 여행중이었다.    제주도 겨울 여행은 잘 때에도 실내 온도를 적당히 여름 실내 온도에 맞추어 놓고 자면 발 시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수면 양말을 신고 잤다.  

 

대만 겨울 여행 기간에는 우리가 묵은 호텔은 냉난방 겸용 방식이라 온기가 천정에서 오기 때문에 침대는 추웠다.   다행이 히트패드를 살 수 있어 그걸 침대에 넣고 잤다.

문제는 암스테르담 여행이다.   밤에는  20 도 아래로 내려 간다.    20 도 이상은  유지되어야 발 시림이  없다.    여긴 여름에 난방을 해 주지 않는다.

 

늘 두꺼운 수면 양말을 신고 잤지만 완전한 시림을 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여름에 "히트패드"를 파는 곳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usb 온열 방석을 팔고 있었다.

 

올해는 그것을 사가지고 와서 침대 발치에 깔고 자고 있다.  그래도 수면양말은 신고 자지만 아주 두꺼운 것은 아니다.      이번 여름 암스테르담 여행의 최고의 히트 여행 준비물이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여름에도 밤에는 20 도 아래로 내려 간다.

 

 

 

이 건 겨울 야외에서 외장 배터리로 데워서 따뜻하게 깔고앉으라고 만든 방석이다.

 

 

 

침대에 깔고 USB 연장 케이블로 이어서

 

 

 

USB 전원에 연결해서 발을 데워 주고 있다.

이 번 여행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다.

늘 가지고 다니던 멀티탭을 USB 전원이 있는 탭으로 개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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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7.22 09:20 신고

    방석이 용도에 맞지는 않지만 딱 안성맞춤인 것 같습니다. 잘 찾아내셨습니다. ㅋ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7.22 14:09 신고

      약간 power가 모자라긴 해도 그 편이 났습니다. 항시 전원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화재라도 날까 걱정인데 그 염려는 없으니깐요. 또 저온화상도 걱정이 없구요. 여기에도 과유불급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2. 수탉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0.16 04:17 신고

    저온화상 주의하세요.

명예교수 간담회 2018

 

오늘이 스승의 날이다.   이 때 쯤 되면 서울대에서는 총장이 명예교수 간담회를 열어 학교의 현황을 보고하고 음대 졸업생이나 학생들의 공연도 보여 주고 점심도 낸다.

 

해마다 참석하지 못했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참석했다.    전에 교수회관이었던 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컨벤션 센타라고 이름 지어 새로 내 놨다.   전 보다 훨씬 멋 있고 호화로웠다.

 

평균 수명이 늘어 나면서 명예교수 숫자도 만만치 않게 늘어 났다.   960명이라던가 이 번 가을 정년퇴직하는 교수가 가세하면 올해 1000 명을 넘을 것이란 명예교수 협의회 회장의 말이다.

 

현직교수의 거의 반에 육박하는숫자다.   작년 부터 내가 처음 부임해서 가르쳤던 1 학년생이 정년퇴임해서 명예교수 반열에 끼었으니 나는 명예교수 가운데에서도 꽤 연장자가 되었다.  

 

나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아직 많이 살아 있긴 해도 관악 캠퍼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컨벤션센터에까지 와서 참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참가자중에서 내 또래가 가장 연장자였다.  나보다 더 연장자는 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여서 따져 보면 나와 비슷하거나 4,5 년 후배들이다.    다 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내 나이로는 내가 젊어 보인다고 느끼니 자기도취증이 있나?

 

점심은 한식으로 갈비찜을 제외하고는 다 먹었다.  

 

50년대에 다닌 학교이고 60년대 말에 부임하여 21세기가 시작하던 해에 떠났으니 서울대학교는 내겐 고향집 같다.  

 

 

 

 

 

58년 전 내 대학 졸업사진 1959년 2월 쯤 될 것 같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된 옛 서울대 문리과 대학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왼쪽 어깨위에 "대" 자가 보이는 뒷줄 왼쪽에서 네번 째 졸업생이 58년전 내 모습이다.

1970년 난 여기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관악캠퍼스로 이사 갈 때 까지 5년 남짓 이곳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마로니에 공원엔 대학 본부 건물 하나만 남아 있고 옛 건물들은 다 사라졌다.

단지 남은 것은 마로니에 나무 몇 구루다.



출처:http://boris-satsol.tistory.com/1518[지구별에서-MyLifeStory]

 

 

 

간담회 순서와 점심 메뉴

 

 

 

음대 중창단의 공연

 

 

 

나시스트의 셀카

 

 

 

스페셜 죽

 

 

 

수삼 냉채 샐러드

 

 

 

곁반찬

 

 

 

삼색전유화

 

 

 

갈비찜

 

 

 

진지와 해물 된장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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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7.06 16:59

    비밀댓글입니다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날

 

1953년 7월 27일 난 고 3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에 "학도호국단" 이란 것을 만들어 교련을 받도록 하고 툭 하면 관제 데모에 동원했다.

 

전쟁고아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 난  혼자 대학진학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을지로 어느 학원에서 시사 영어 Time지 강좌를 청강하고 있었다. 

 

저녁 한 대여섯시쯤 되었던 것 같다.   갑자기 거리가 시끄러워져 강의를 듣다 말고 거리에 나갔었다.   신문 "호외"가 나왔던 것 같다.    그 중에는 미군을 위한 영자 신문도 섞여 있었다.    아직도 전쟁중이었으니까 서울시내에도 미군이 주둔한 곳이 많았다. 그래서 을지로 쯤 되는 거리에는 미군이 많이 눈에 띄였다.  그러니까 미군을 위한 영자 신문 "Stars and Stripes" 한국판이 호외로 거리의 미군 병사들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영어를 읽는 한국사람들을 위해 호외를 돌렸는지 모른다. 

 

그 호외는 단 두 줄 두 단어 "TRUCE SIGNED" 가 전부였다.  뒷면에는 해설 기사가 있었겠지만 8절지의 한면만 보면 신문 전체가 단 두 단어였던 셈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런 크기의 신문 활자를 본 일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 때 그 신문의 다음날자 판이 나왔다. 

 

그 날 이후 65년이 흘렀다.  여러가지 이유로 휴전은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잔뜩 무장한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군역의 멍에를 지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도 사라졌고 한국전쟁때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 군대와 치열한 전쟁을 한 중국과도 평화로운 외교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데 동족인 북한과는 65년전과 마찬가지로 이를 들어내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후면  그 휴전 협정을 조인했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휴전을 종식시키는 길의 첫 발을 딛으려고 한다.   

 

그 두 사람 모두 1953년에는 이 세상에는 나오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적대관계는 대물림한 것이다.

 

이 무슨 야릇한 한반도의 운명인가?

 

평화여 오라.     그리고 남북한 모두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자.

 

 

 

 

1953년 7월 27일 저녁 대여섯시쯤 내가 본 호외의 앞면

 

 

 

이 건 그 다음날 조간

 

 

 

학도호국단은 여자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툭하면 "정(휴)전반대, 북진통일"의 관제 데모에 동원되었다.

정전을 반대한 이승만 정권은 정전회담에 참석도 하지 않고 조인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다. 정전을 끝내고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미국의 몫이다.

그 때를 살지 않은 사람은 그 사실조차 잘 모를 것이다.

전에 샀던 "서울 타임캡슐을 열다" 에서 핸폰 스캐너로 스캔해 온 것이다

(그저께 MBC TV 를 보는데 "서울, 타임캡슐을 열다" 라는 표지 화면이 나오고  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  옛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관제 데모 행렬을 하는 장면도 비추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337 [지구별에서-MyLif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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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교리서

일상, 단상 2018.04.20 20:58

화란교리서

 

80년초 내가 카토릭에 입교할 때쯤  엄청히 많은 종교 관련 서적을 읽었다.  카토릭 책 말고도 개신교 신학책도 많이 읽었다.   성당에서 만난 젊은이가 있었다.    캐토릭 신학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일반 회사를 다니는 젊은이었다.  어찌어찌하다 신학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 읽고 있던 Harvy Cox 책 이야기를 하니까 깜짝 놀라하던 생각이 난다.  물리학 교수가 그런 신학책을 다 읽다니.. 하고.

 

종이책을 버리는 과정에서 종교관련 책도 다 쓸어 버렸다. Brittanica 가 폐지로 나갈 판이니 종교관련 책, 그것도 한글 아니면 대부분 영문책 복사본었던 그런 책이니 미련 없이 버렸다.(한글책은 쉽게 다시 구할 수 있고 해적판은 지니고 있는 것 자체가 꺼림직했다.)   아마도 신학대학 교재 아니면 참고서로 쓰이던 영어서적 복사판(해적판)이 버젓이 서점에서 팔릴 때였다.  영어책이라 해도 해적판은 값도 싸니까 책방에 가서는 이것 저것 서너권씩 사가지고 오면 금방 서가가 가득 메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난 것이 화란 교리서라는 카토릭 교리책이었다.  이 건 한글 번역판이었는데 누군가가 권해서 한 권 사서 읽었던 책이다.

 

이 건 가히 충격적인 책이었다.   카토릭교리서에 진화론이 나온다니..    그것도 진화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인용한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서술에서 진화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인용한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분도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된 교리서였다.

 

그런데 그 책도 정리할 때 함께 버렸던 같다.   찾을 수 없다.   

 

그책은 도미니꼬회 소속 네델란드 Nijmegen 대학 신학교수인 Edward Schillebeeckx 신부가 주 저자이고  Nijmegen 대학 신학교수 Piet Schoonenberg 가 공동 저자로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은 10여개의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100만부 이상 팔린 million seller가 되었다.

 

진화론의 본산인 분자생물학자가 진화론을 옹호하면서 카토릭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카토록 대상을 받는 시대(과학과 신앙)인 오늘에서 보더라도 진보적이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책이라 해도  당시(1966)에는 카토릭계에는 폭발적인 사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위 인용글의 주인공인 Kenneth Miller 교수의 수상소식(과학과 신앙)을 듣고 그 때 읽었던 기억을 곱씹어 보고 싶어 책을 다시 살 수 있나 검색해 보아도 그 어디에도 파는 곳이 없었다.

 

이 책에는 진화론말고도 카토릭의 정통교리와는 다른 이야기들이 많아 끊임 없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출판허가가 취소되기도 했다.  그 이후 이 책은 거의 금서에 가까운 처우를 받고 재출판은 고사하고 연구목적이 아니라면 쉽게 구해 보기 힘든 희귀본으로 사라진 것 같다.  여름마다 가는 암스테르담에서도 고서점에 가면 있을려나 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영어번역판은 그런 곳에 있을 리 없었다.

 

기회가있으면 온라인에서 검색을 하곤 했지만 그 책의 해설이라든가 비판서 같은 종류이지 원서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제주 여행때 미국 아마존에서 헌 책이 하나 나온 것을 발견했다. 읽은 만한 상태라고 했고 값은 10불 미만이라 송료가 가장 낮은 방법으로 책을 주문했다.     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돌아 와 보니 그 희귀서가 집에 와 있었다.

 

어제는 그 책을 ebook화 했다.  책 자체가 낡아서 그 냥 읽으면 파손될 것 같기도 하고 또 활자가 작아서 읽을 수 없을 뿐 더러 아이패드로만 독서를 하는 요즘 내 독서습관으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값은 $8.12 로 나왔는데 송료가 책값보다 더 들었다.

 

 

 

내가 구한 화란 교리서

최초엔 교황청에서 수정 명령을 내렸지만 책을 수정하는 대신 저자들은 수정명령을 받은 부분을 부록으로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원 저작품을 그대로 유지했다.

 

 

 

책을 펼치자 마자 두 부분으로 갈라졌다.

ebook화하지 않으면 그대로는 읽을 수 없다.

 

 

 

조금씩 낙서도 보였다.

 

 

 

1966년에도 화란 교리서에 진화론을 수용했는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창조과학을 믿는 박아무개 교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http://boris-satsol.tistory.com/1555)

 

이 책을 돌이켜 보면 세상에는 반세기를 앞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무지에 길을 내는 사람을 영어로는 trailblazer 라고 한다.   이 책의 주저자인  trailblazer Schillebeeckx 신부는 2009년에 9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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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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