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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의 판결 - 안희정 판결을 보고

 

 

사람이 80을 넘게 살면 별아별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다.

 

우리가 겪은 첫번 째 "송사"는 1980년 지금 살고 있는 집터에 단독주택을 지을 때였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교수 부부가 집을 지으려니 결국 소송에까지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변호사비는 변호사비 대로 엄청 들었고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 때 우리가 선임했던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유명한 변호사가 소송이나 판결에 대해서 "Apporximate Jutice" 라는 말을 써서 우리를 위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송사는 최근에 겪은 송사다.    그 것 역시 부동산관련 소송이다.  첫번째 송사도 끝날 때까지 한 2년 걸렸고 두 번째송사도 2015년에 시작해서 몇달전에 끝났으니 거의 3년 걸렸다.

 

최근의 3 건의 소송은 모두 우리 집과 관계되는 소송이었고 두 건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재판을 대행시켰지만 마지막 한 건은 부동산 소개를 한다는 컨설팅회사의 부당한 수수료 요구로 합의가 되지 않자 상대방이 역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액수가 3000만원 이하이면 소액재판이라 해서 대부분 대리인 없이도 재판을 한다.   이런 경우 대리인을 선임하면 변호사비가 자칫 솟가(소송청구액)를 넘기도 해서 내가 직접 소송을 진행했다.  

 

앞선 두 사건도 변호사가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하면 의뢰인이에게 최종 확인을 받으니까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준비서면 작성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아마춰가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하면 법리에 맞는 주장을 하기보단 감정적 호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전혀 채택 될 수 없는 변론이 된다.    이번 우리의 소송에서 변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많이 배웠다.

 

어떤 법리로 내 주장을 펼 것인가 상대방 변호사도 그렇지만 판사도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법리에 따라서 판결문에 명시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 주장을 펴기 위한 법조항을 찾아 내야 한다.  그래서 지난 3년 생각지도 않은 법공부를 많이 했다.     

 

소액재판은 내가 직접 준비서면을 작성했고 증거물도 일일이 챙겼다.     내가 개발한 법리와 증거로 재판은 우리 편의 완승으로 끝났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재판전에 제시한 합의금액정도를 지불할 각오로 판결을 기다렸지만 원고 청구의 기각으로 끝이 난 것이다.  원고는 재판을 걸어와 우리가 제시했던 금액도 받지 못하고 물러났다. 

 

내가 고3이던 1953년은 갓 수복한 서울이라 반파된 교사에서 고3  공부를 시작했다.   피난 갔던 선생님들도 다 돌아 오지 않어서 예저기 땜빵 수업을 했다.  

 

그 때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출강하셨는데 미공보원 과장으로 서울 법대를 나오신 분이었다.  토요일 마다 나오셔서  영작문과 "공민"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는데 영작도 그랬지만 공민과목은 시험문제로 "xxx 에 대해서 논해라" 식 문제를 내었다.  요즘 같으면 논술 시험 같은 것이었는데 그 때도 책 읽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줄줄 많이 써 댔다.

 

나중에 내 진로에 대해서 물은 일이 있었다. "물리학"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신 것이다.   선생님은 당연히 법대를 지망하는 줄 알고 계셨다.

 

송사에 휘말려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할 때 그런 생각이 나곤 한다.  그 때 내가 법대에 가서 판사나 변호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요즘 인기리에 끝난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재미 있게 봤다.  현직 판사가 직접 쓴 원작을 드라마화 했으니 어느 정도 판사들을 미화한 면이 있겠지만 현실감 있는 드라마였다.

 

내 경험으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그랬지만 판사의 판결이 완전히 중립적이라 할 수 없다.  성장과정이나 배경에서 형성된 의식구조가 최종 판결을 결정한다.  

 

물론 초임 판사들이야 어떻게든 선입견을 배제히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결을 내리려고 애쓰겠지만 이번 안희정 재판과 같은 경우는 증거라는 것도 별로 없고 법리라는 것도 모호하고 밀실에서 일어 난 남녀간의 문제이니 결국은 판사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의식이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컨데  어떤 판사가 경상도의 어느 집성촌에서 우리 문중에 신동 났네하고 추켜 세워져 자라서 서울의 명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다면 그런 판사의 의식구조는 대강 짐작이 간다.

 

옛날에 박인수사건이라는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1955년  경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카사노바로 이름을 날린 "박인수"라는 젊은이가 해군 대위를 사칭하고 70 여명의 부녀자를 농락해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었다.

 

그 때 이 재판의 판결문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기억된다.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

 

이 문구는 당시 명판결이라고 추켜 세워져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안희정 재판의 판사는 이 판결문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궁금해 진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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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6 09:03 신고

    요즈음 사법농단 사태까지 있어 사법불신이 만연해지니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나 봅니다. 어느 미래학자가 없어질 직업에 판사도 포함시켰는데 공감이 갑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7 01:45 신고

      벌써 많은 연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0% 까지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사람판사가 내린 판결과 일치하는 데까지 왔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판결을 내리면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없어질 것 같습니다.

"애희의 정조(貞操)는 깨어지고 말았다."- 안희정판결을 보고

 

1948년이나 1949년경에 내가 읽었던 방인근의 소설 "마도(魔都)의 향(香)불"이란 소설의 한 구절이다.    그 옛날에 읽었던 소설의 이 한 구절을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중학교 1,2학년 시절 어머니의 신부름으로 이화동 입구의 세책방에서 책을 빌릴 때 내가 보고 싶은 소설도 함께 빌려서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쓴 일이 있다. (2014/03/31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어렸을 땐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난 아직 생물학적으로 완전한 남자가 되기 전이었지마 이 소설을 읽을 때 몸에 전률을 느끼는 야릇한 감정을 경험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글귀가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던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같으면 그런 정도의 표현이 무엇이라고 야릇한 감정을 느끼냐하겠지만 그 당시 그런 표현이 소설에 들어 간다는 자체가 소설을 포르노 수준으로 만들 때였다.     

 

 

"마도의 향불"

이 책 제목자체가 이 뭔가 음탕한 느낌은 준다.

 

 

소설의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이 장면은 신분이 높은 한 남자가 그 아래사람인 "애희"라는 처녀를 유혹해 어느 온천장 여관으로 데려가 반 강제의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서술했던 것 아닌가 싶다.    어쩌면 회사의 사장쯤 되는 남자가 회사의 경리사원쯤 되는 처녀를 유혹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조가 깨어졌다"라는 말은 성관계를 했다는 은유적 표현이지만 이런 류의 표현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당시라면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금서로 지정되었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몰래 금서를 읽었던 것이다.

 

요즘이야 어른 소설에 이런 은유적 표현을 쓸 만큼 섹스를 숨기지 않는다.    내가 20년전 쯤이라고 생각되는 옛날에 대학로 극장에서 본 "바지나"라는 모노드라마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그대로 썼다. (2016/04/18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섹스에 대한 단상)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여배우는 그 극중에서 그 비속어를 수백번 썼는데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관객에게 미리 그 낱말은 공공연한 곳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기에 관객의 거부감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연극이 시작하기 전 관객에게 그 낱말 "x지"를 몇차례 외치라고 주문했다.   처음엔 모기소리 같이 나오던 말이 나중에는 극장이 찌렁찌렁 울리게 큰소리로 "x지"를 외첬던 것 같다.

 

 

 

Monlogue Vargina

이 드라마의 내용은 여성의 Vargina의 수난과 학대와 피폭(성폭행당함)의 고발이었다.

이 것을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적라라하게 고발한 것이다.

"미투"운동의 선구자 연극이었다.

 

 

그런데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정조"라는 낱말을 듣게 되었다.   오늘 안희정 전지사의 재판 판결이 공표되었다.   안전지사의 모든 혐의가 무죄란다.   피해자인 김아무개씨가 "판사가 재판에서 정조(貞操)운운할 때 판결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원래 성폭행 범죄의 처벌은 "정조의 보호"라는 낡은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라 한다.   지금은 법의 취지가 진화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판사가 어떤 취지로 "정조"라는 낱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법률적 취지였다면 피해여성으로는 분했을 것이다.

 

"정조"라는 말에는 "순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정조의 보호라는 원천적의미에 무게를 두었다면 정조가 깨어진 여성은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피해여성이 처녀였다면 판결이 달리 나왔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내가 여성의 날에 쓴 글귀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왜곡된 인습에 의하여 상처 받고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어려서는 부모에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 을 따르라고 가르친 옛 도덕율(삼종지도).
칠거지악이니 하여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유교적 전통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여성은 한없이 구박 받고 속앓이 하였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누나들이 또 아내와 딸들이 그런 대우 를 받은 것이다.  아직도 그 인습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98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정조라는 낡은 낱말도 이젠 사라졌으면 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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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5 10:08 신고

    주제와는 다른 얘기지만, 그당시 소설책 표지를 보니 그때까지도 문체가 우에서 좌로 된것이 놀랍습니다. 설마 속 내용도 그렇게 쓴 것을 읽으시진 않으셨겠지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5 10:53 신고

      속 내용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 쓰기로 나왔을 겁니다. 일어 책은 아직도 세로 쓰기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줄이 진행합니다. 최근 까지도 가지고 있던 한 옛날 한글 소설은 그런 세로쓰기 책이었습니다.

손가락위에서 쉬고 가는 잠자리



2006년 9월 10일, 그러니까 한 12년전에 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검색을 해서 찾은 포스팅같은데 사진이 없으니 황당했을 것이다.  (2006/09/10 - [일상, 단상/잡문] - 손가락위에서 쉬어 가는 잠자리 )


원래 네이버 카베 "자줄사"의 "나누고 싶은 풍경"에 올렸던 내가 찍은 사진을 내 블로그에 담아 온 것인데  주 내용인 사진이 따라 오지 않은 것이다. (https://cafe.naver.com/bikecity/104309)


포스팅 넘버가 76 번으로 되어 있으니까 블로그 개설하고 초기에 올렸던 글일 것이다.


그 포스팅은 검색에는 걸리긴 해도 수정하거나 재 편집할 수 없는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포스팅이다.  10여  년 전에 올린 글은 어쩌면 최신 편집기가 접근할 수 없는 구식 포맷으로 죽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글을 수정해서 사진을 올리려 해도 불가능하다.


여기에 그 때 자출사 포스팅을 다시 잡아 왔다.   사진도  함께




원문 


**********************


지난 금요일.
 
탄천 잔전거길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손가락 위에 살짝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잠자리.
 
가을 하늘을 나는데도 손가락 주인만큼 힘이 드나 보다. 





****************************



아마도 오른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찍었떤 사진 같다.    어렸을때는 이럴 때 날개를 살작 잡아서 자잠리리를 잡아 장난을 치곤 했던 생각이 난다.   



조용필의 "고추 잠자리" 생각이 난다.  내가 좋아 하는 노래다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싶지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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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08 20:11 신고

    얼핏 보기에 다른이가 자출사에 올린 사진을 인용하셨다는 뜻인줄 알았더니. 그게아니고 선생님 손가락 위에 잠자리가 앉은 것이군요. 참 신기하고 멋있는 한 컷입니다.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08 22:27 신고

    가슴에 달린 케이스에서 카메라를 꺼내는데도 날아 가지 않아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발이 시리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발이 시리기 시작했다.   꽤 오래 된 것 같다.   돌침대를 드려 오기 전까지는 겨울이면 발열 패드를 뜯어서 발치에 넣고 잤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고 그 중에서도 신진대사가 느리게 된다.  심장에서 먼 발에 충분한 연료를 제 때에 보내지 못해서 연료가 부족한 발은 충분한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겨울이면 열을 빼앗기는 발을 충분히 데워 주지 못해 시리곤 하는 것

 

돌 침대에 자기 시작하면서 발을 데워주기 위해 저녁에 침대에 전원을 넣었다.  지난 5월까지 전기를 켜고 잤다.   온도는 36, 35도, ...로 점차 낮추고 "외출" 모드로 해서 온기만 남게 해 두면 적당히 발이 뜨뜻했다.

 

문제는 여행중이었다.    제주도 겨울 여행은 잘 때에도 실내 온도를 적당히 여름 실내 온도에 맞추어 놓고 자면 발 시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수면 양말을 신고 잤다.  

 

대만 겨울 여행 기간에는 우리가 묵은 호텔은 냉난방 겸용 방식이라 온기가 천정에서 오기 때문에 침대는 추웠다.   다행이 히트패드를 살 수 있어 그걸 침대에 넣고 잤다.

문제는 암스테르담 여행이다.   밤에는  20 도 아래로 내려 간다.    20 도 이상은  유지되어야 발 시림이  없다.    여긴 여름에 난방을 해 주지 않는다.

 

늘 두꺼운 수면 양말을 신고 잤지만 완전한 시림을 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여름에 "히트패드"를 파는 곳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usb 온열 방석을 팔고 있었다.

 

올해는 그것을 사가지고 와서 침대 발치에 깔고 자고 있다.  그래도 수면양말은 신고 자지만 아주 두꺼운 것은 아니다.      이번 여름 암스테르담 여행의 최고의 히트 여행 준비물이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여름에도 밤에는 20 도 아래로 내려 간다.

 

 

 

이 건 겨울 야외에서 외장 배터리로 데워서 따뜻하게 깔고앉으라고 만든 방석이다.

 

 

 

침대에 깔고 USB 연장 케이블로 이어서

 

 

 

USB 전원에 연결해서 발을 데워 주고 있다.

이 번 여행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다.

늘 가지고 다니던 멀티탭을 USB 전원이 있는 탭으로 개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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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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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7.22 09:20 신고

    방석이 용도에 맞지는 않지만 딱 안성맞춤인 것 같습니다. 잘 찾아내셨습니다. ㅋ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7.22 14:09 신고

      약간 power가 모자라긴 해도 그 편이 났습니다. 항시 전원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화재라도 날까 걱정인데 그 염려는 없으니깐요. 또 저온화상도 걱정이 없구요. 여기에도 과유불급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명예교수 간담회 2018

 

오늘이 스승의 날이다.   이 때 쯤 되면 서울대에서는 총장이 명예교수 간담회를 열어 학교의 현황을 보고하고 음대 졸업생이나 학생들의 공연도 보여 주고 점심도 낸다.

 

해마다 참석하지 못했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참석했다.    전에 교수회관이었던 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컨벤션 센타라고 이름 지어 새로 내 놨다.   전 보다 훨씬 멋 있고 호화로웠다.

 

평균 수명이 늘어 나면서 명예교수 숫자도 만만치 않게 늘어 났다.   960명이라던가 이 번 가을 정년퇴직하는 교수가 가세하면 올해 1000 명을 넘을 것이란 명예교수 협의회 회장의 말이다.

 

현직교수의 거의 반에 육박하는숫자다.   작년 부터 내가 처음 부임해서 가르쳤던 1 학년생이 정년퇴임해서 명예교수 반열에 끼었으니 나는 명예교수 가운데에서도 꽤 연장자가 되었다.  

 

나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아직 많이 살아 있긴 해도 관악 캠퍼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컨벤션센터에까지 와서 참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참가자중에서 내 또래가 가장 연장자였다.  나보다 더 연장자는 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여서 따져 보면 나와 비슷하거나 4,5 년 후배들이다.    다 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내 나이로는 내가 젊어 보인다고 느끼니 자기도취증이 있나?

 

점심은 한식으로 갈비찜을 제외하고는 다 먹었다.  

 

50년대에 다닌 학교이고 60년대 말에 부임하여 21세기가 시작하던 해에 떠났으니 서울대학교는 내겐 고향집 같다.  

 

 

 

 

 

58년 전 내 대학 졸업사진 1959년 2월 쯤 될 것 같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된 옛 서울대 문리과 대학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왼쪽 어깨위에 "대" 자가 보이는 뒷줄 왼쪽에서 네번 째 졸업생이 58년전 내 모습이다.

1970년 난 여기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관악캠퍼스로 이사 갈 때 까지 5년 남짓 이곳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마로니에 공원엔 대학 본부 건물 하나만 남아 있고 옛 건물들은 다 사라졌다.

단지 남은 것은 마로니에 나무 몇 구루다.



출처:http://boris-satsol.tistory.com/1518[지구별에서-MyLifeStory]

 

 

 

간담회 순서와 점심 메뉴

 

 

 

음대 중창단의 공연

 

 

 

나시스트의 셀카

 

 

 

스페셜 죽

 

 

 

수삼 냉채 샐러드

 

 

 

곁반찬

 

 

 

삼색전유화

 

 

 

갈비찜

 

 

 

진지와 해물 된장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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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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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7.06 16:59

    비밀댓글입니다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날

 

1953년 7월 27일 난 고 3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에 "학도호국단" 이란 것을 만들어 교련을 받도록 하고 툭 하면 관제 데모에 동원했다.

 

전쟁고아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 난  혼자 대학진학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을지로 어느 학원에서 시사 영어 Time지 강좌를 청강하고 있었다. 

 

저녁 한 대여섯시쯤 되었던 것 같다.   갑자기 거리가 시끄러워져 강의를 듣다 말고 거리에 나갔었다.   신문 "호외"가 나왔던 것 같다.    그 중에는 미군을 위한 영자 신문도 섞여 있었다.    아직도 전쟁중이었으니까 서울시내에도 미군이 주둔한 곳이 많았다. 그래서 을지로 쯤 되는 거리에는 미군이 많이 눈에 띄였다.  그러니까 미군을 위한 영자 신문 "Stars and Stripes" 한국판이 호외로 거리의 미군 병사들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영어를 읽는 한국사람들을 위해 호외를 돌렸는지 모른다. 

 

그 호외는 단 두 줄 두 단어 "TRUCE SIGNED" 가 전부였다.  뒷면에는 해설 기사가 있었겠지만 8절지의 한면만 보면 신문 전체가 단 두 단어였던 셈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런 크기의 신문 활자를 본 일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 때 그 신문의 다음날자 판이 나왔다. 

 

그 날 이후 65년이 흘렀다.  여러가지 이유로 휴전은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잔뜩 무장한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군역의 멍에를 지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도 사라졌고 한국전쟁때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 군대와 치열한 전쟁을 한 중국과도 평화로운 외교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데 동족인 북한과는 65년전과 마찬가지로 이를 들어내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후면  그 휴전 협정을 조인했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휴전을 종식시키는 길의 첫 발을 딛으려고 한다.   

 

그 두 사람 모두 1953년에는 이 세상에는 나오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적대관계는 대물림한 것이다.

 

이 무슨 야릇한 한반도의 운명인가?

 

평화여 오라.     그리고 남북한 모두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자.

 

 

 

 

1953년 7월 27일 저녁 대여섯시쯤 내가 본 호외의 앞면

 

 

 

이 건 그 다음날 조간

 

 

 

학도호국단은 여자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툭하면 "정(휴)전반대, 북진통일"의 관제 데모에 동원되었다.

정전을 반대한 이승만 정권은 정전회담에 참석도 하지 않고 조인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다. 정전을 끝내고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미국의 몫이다.

그 때를 살지 않은 사람은 그 사실조차 잘 모를 것이다.

전에 샀던 "서울 타임캡슐을 열다" 에서 핸폰 스캐너로 스캔해 온 것이다

(그저께 MBC TV 를 보는데 "서울, 타임캡슐을 열다" 라는 표지 화면이 나오고  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  옛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관제 데모 행렬을 하는 장면도 비추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337 [지구별에서-MyLifeStory])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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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교리서

일상, 단상 2018.04.20 20:58

화란교리서

 

80년초 내가 카토릭에 입교할 때쯤  엄청히 많은 종교 관련 서적을 읽었다.  카토릭 책 말고도 개신교 신학책도 많이 읽었다.   성당에서 만난 젊은이가 있었다.    캐토릭 신학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일반 회사를 다니는 젊은이었다.  어찌어찌하다 신학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 읽고 있던 Harvy Cox 책 이야기를 하니까 깜짝 놀라하던 생각이 난다.  물리학 교수가 그런 신학책을 다 읽다니.. 하고.

 

종이책을 버리는 과정에서 종교관련 책도 다 쓸어 버렸다. Brittanica 가 폐지로 나갈 판이니 종교관련 책, 그것도 한글 아니면 대부분 영문책 복사본었던 그런 책이니 미련 없이 버렸다.(한글책은 쉽게 다시 구할 수 있고 해적판은 지니고 있는 것 자체가 꺼림직했다.)   아마도 신학대학 교재 아니면 참고서로 쓰이던 영어서적 복사판(해적판)이 버젓이 서점에서 팔릴 때였다.  영어책이라 해도 해적판은 값도 싸니까 책방에 가서는 이것 저것 서너권씩 사가지고 오면 금방 서가가 가득 메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난 것이 화란 교리서라는 카토릭 교리책이었다.  이 건 한글 번역판이었는데 누군가가 권해서 한 권 사서 읽었던 책이다.

 

이 건 가히 충격적인 책이었다.   카토릭교리서에 진화론이 나온다니..    그것도 진화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인용한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서술에서 진화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인용한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분도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된 교리서였다.

 

그런데 그 책도 정리할 때 함께 버렸던 같다.   찾을 수 없다.   

 

그책은 도미니꼬회 소속 네델란드 Nijmegen 대학 신학교수인 Edward Schillebeeckx 신부가 주 저자이고  Nijmegen 대학 신학교수 Piet Schoonenberg 가 공동 저자로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은 10여개의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100만부 이상 팔린 million seller가 되었다.

 

진화론의 본산인 분자생물학자가 진화론을 옹호하면서 카토릭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카토록 대상을 받는 시대(과학과 신앙)인 오늘에서 보더라도 진보적이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책이라 해도  당시(1966)에는 카토릭계에는 폭발적인 사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위 인용글의 주인공인 Kenneth Miller 교수의 수상소식(과학과 신앙)을 듣고 그 때 읽었던 기억을 곱씹어 보고 싶어 책을 다시 살 수 있나 검색해 보아도 그 어디에도 파는 곳이 없었다.

 

이 책에는 진화론말고도 카토릭의 정통교리와는 다른 이야기들이 많아 끊임 없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출판허가가 취소되기도 했다.  그 이후 이 책은 거의 금서에 가까운 처우를 받고 재출판은 고사하고 연구목적이 아니라면 쉽게 구해 보기 힘든 희귀본으로 사라진 것 같다.  여름마다 가는 암스테르담에서도 고서점에 가면 있을려나 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영어번역판은 그런 곳에 있을 리 없었다.

 

기회가있으면 온라인에서 검색을 하곤 했지만 그 책의 해설이라든가 비판서 같은 종류이지 원서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제주 여행때 미국 아마존에서 헌 책이 하나 나온 것을 발견했다. 읽은 만한 상태라고 했고 값은 10불 미만이라 송료가 가장 낮은 방법으로 책을 주문했다.     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돌아 와 보니 그 희귀서가 집에 와 있었다.

 

어제는 그 책을 ebook화 했다.  책 자체가 낡아서 그 냥 읽으면 파손될 것 같기도 하고 또 활자가 작아서 읽을 수 없을 뿐 더러 아이패드로만 독서를 하는 요즘 내 독서습관으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값은 $8.12 로 나왔는데 송료가 책값보다 더 들었다.

 

 

 

내가 구한 화란 교리서

최초엔 교황청에서 수정 명령을 내렸지만 책을 수정하는 대신 저자들은 수정명령을 받은 부분을 부록으로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원 저작품을 그대로 유지했다.

 

 

 

책을 펼치자 마자 두 부분으로 갈라졌다.

ebook화하지 않으면 그대로는 읽을 수 없다.

 

 

 

조금씩 낙서도 보였다.

 

 

 

1966년에도 화란 교리서에 진화론을 수용했는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창조과학을 믿는 박아무개 교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http://boris-satsol.tistory.com/1555)

 

이 책을 돌이켜 보면 세상에는 반세기를 앞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무지에 길을 내는 사람을 영어로는 trailblazer 라고 한다.   이 책의 주저자인  trailblazer Schillebeeckx 신부는 2009년에 9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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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창 - 내원 4일 째

 

등창은 등에 난 종기이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완전한 사각지점(blind spot)다.   궁금증이 많은 나는 보호자인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중에 보기 위해서였다.

 

등에서 느끼는 촉간만으로 의사가 시술하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것은 확실히 눈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내원 4일째인 오늘은 더 이상 고름을 뽑아내지 않았다.  대신 푸른색 거즈를 뽑아 내고 그 속에서 끝이 둥글뭉특한 금속봉으로 고름을 긁어 내는 대신 붉은 색의 소독약을 상당히 많이 주입하고 씻어내고 다시 새 푸른 색 거즈를 삽입했다.

 

절개된 구멍안은 엄청히 큰 공간이 생성되어 있는 듯 했다.  사진으로 봐서 5cc 쯤 되는 소독액을 여러 방향으로 주입하고 흘려 냈다고 한다,  적어도 한번에 5cc 넘는 소독액을 주입해서 씻어 내기를 5번 이상 했다고 한다.  아마 일자로 절개한 구멍안이 꽤 넓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푸른 거즈띠를 2cm 정도 일자 절개 구멍에 금속 봉으로 밀어 넣어 유착되어 막히는 것을 막고 거즈를 통해 소독액과 고름 찌거기가 스며 나오게 조치했다. 그리고 그 위에 높은 흰 거즈층을 만들고 테입으로 고정시켰다.   나중에 간호사가 그 목적은 등으로 누우면 거즈층이 등창 부위를 압박해서 고름을 푸른 거즈로 빼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은 등창부위가 아팠기 때문에 바로 눕지 못하고 업드리거나 옆으로 누어 잤는데 그거 아니었던 것이다.

 

 

 

 

등창 치료를 받은 강남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시술하기 전 상태

 

 

 

붉으스로한 소독액

세척겸 소독이라는 것 같다.

그 것이 고름과 셖여서

높게 쌓아 붙인 거즈에 새어 나오는 것 같다.

 

 

 

한번에 5cc 는 넘게 주사기를 써서 일자형 절개 구멍 속에 주입했다.

 

 

 

계속 주입

 

 

 

또 다른 각도로 주입

 

 

 

또 다른 각도

 

 

 

마지막으로 절개된 일자구멍에 푸른 색 두꺼운 거즈를 바세린 갈은 것을 발라 쇠꼬챙이로 밀어 넣었다.

 

 

시술이 끝나고 주사실에 가서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이젠 매일 오지 않고 하루 건너 내원하라고 한다.   더 이상 긁어 낼 고름은 없고 아무는 과정을 관찰할 것 같다.

 

현대의학중에서 외과술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치료법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수긍이 간다.

 

마취, 항생제 멸균 소독등 시술도구등이 사람을 살린다.   조선왕들이 무서워 했던 그 등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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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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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학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4.13 16:31 신고

    쾌차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4.14 12:56

    비밀댓글입니다

  3.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4.17 08:32 신고

    고생이시네요.
    잘 치료 받으시고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4. 시루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4.26 17:39 신고

    건강하세요. 오늘 우연히 뭘 찾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배울 것이 많아서 자주 찿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소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3 14:41 신고

    덕분에 등창 잘 알고 갑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3 17:40 신고

      저도 이번에 등창을 앓고 나서야 등창이 무서운 병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 고생을 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일종의 "투병기"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방문해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창이 재발

 

등창이 무서운 병이란 걸 실감했다.

 

3월 20일(2018) 동네의원에 가서 바늘로 찔러 고름을 짜면서 항생제를 주사맞고 일주일 다녔더니 차도가 있었다  (2018/03/28 - [일상, 단상/노년, 건강] - 등창

 

그러나 매일 항생제 맞는 것이 부담이되어 1주일후엔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집에서 섭생을 했다.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라 마음을 놓고 아무 등받이지도 하지 않고 잤더니 환부가 압박이 되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는지 다시 곪았다.

 

2주후인 어제 (4월8일)는 다시 통증도 나타나고 오늘 아침에 환부를 사진 찍어 보니 다시 고름이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네 병원(가정의)에서의 치료에는 한계가 있어 전문 병원을 가야하는데 마땅히 찾아 갈 병원을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외과에서 칼로 절개하고 괴사한 내피부세포를 제거해야 회복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1차 진료 외과를 찾으려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또 칼을 대는 것은 마취와  감염등 위험요소가 많아 상급병원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3차병원은 1,2차의원의 진료 의뢰가 있거나 뭔가 이유를 대야 하고 또 설혹 예약에 되어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망설여진다.

 

강남역 근방에 외과 1차진료 병원이 있어 등창진료를 문의했더니 당장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권고 한다.

 

그래서 제일 가까운 강남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은 일단 입원을 전제하기때문에 기본이 7만원이다.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수액을 맞고 있으려니 외과 의사와 피부과 의사가 다녀 갔다.  피부과로 올라가서 째고 고름(괴사한 세포 포함)을 긁어 냈다.   국부 피부 마취를 하고 속을 긁어 냈다.  그 금속 도구가 덜 마취된 부위에 닿을 땐 통증을 준다.  그래도 동네의원에서 마취 없이 손으로 눌러 짤 때 보단 덜 아팠다.

 

또 항생제 주사를 맞고 3일분의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 받아 경구 투입약을 사가지고 돌아 왔다.

 

등창이 심해지면 피부괴양이 생기고 욕창이 된다.  그 염증이 패혈증(혈액의 감염)까지일으키면 온 몸으로 염증이 퍼져 사망에 까지 이르게 된다.    조선왕들중에 이렇게 등창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몇몇 있었던 것 같다. 

 

등창을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다.  

 

 

 

 

병원에 가기 전에 찍어 둔 사진

 

 

  

길이 약 1cm 정도를 자르고 금속 도구로 고름과 죽은 피부 세포를 긁어 내고

그 속에 거즈와 액체(무슨 액체인지 모르지만) 를 주입했다. 

거즈(gauze)의 일부를 밖으로 내어 놨다. 내일 속을 다시 검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샆다.

 

 

응급실에 돌아와 초진한 의사가 조치결과를 기록하기 위하여 드레싱 거제(바깥)를 제거하고 사진을 찍을 때 나를 따라 온 보호자도 함께 찍었다.   내가  뭐던지 궁금해 하는 것을 잘 아는 보호자가 알아 차리고 찍어 준 것이다.

 

여기에 이어서 진행상황을 기록하기로 했다.

 

PS 4월 10일

 

 

4월 10일 강남세브란스에 다시 가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고름을 짜기 위해 거즈를 뽑았을 때 찍은 사진

화농이 심해서 며칠 계속 다니면서 고름을 짜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거즈를 제거한 다음 고름을 짜고 다시 거즈를 삽입했다.

거즈를 삽입한 이유를 알았다. 절개한 틈이 아물어  유착하는 것을 방지하고

거즈에 고름을 흡착시켜 제거할 목적이었던 같다.

마취를 안하고 고름을 짜겠다고 하기에 펄쩍 뛰었다.

마취를 하고 고름을 짰다.  그래도 일부 마취가 안된 곳은 아팠다.

마취비는 환자부담이 25000원 정도 된다. 그것이  1주일이 될지 열흘이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마취비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마취를 않고 짜겠다고 한 것 같다.

마취비까지 55000원을 내고 왔다.

3차진료기관이라 비싸기는 비싸다.

 

고름이란 침입한 균과 균과 싸우다 죽은 백혈구의 사체와 괴사한 피부세포조각과 혈청등이 뒤섞인 탁한 액체인데 이것을 제거해야지 상처가 아물지 그냥 끼고 있으면 계속 화농이 지속된다.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짜내야 한다.

 

조선시대 같았다면 난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이 갑자기 늘어 난 이유를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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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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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4.10 20:20 신고

    등창이 생각보다 무서운 병이군요. 이번에는 완치될 때까지 꾸준히 치료하셔야 되겠습니다. 얼른 쾌차하시길 빕니다..

  2.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4.17 08:35 신고

    잘 지내시나 궁금해서 들어왔습니다.
    3차 진료기관으로 가시기를 잘 하셨습니다...

  3. 소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3 14:40 신고

    진짜 예전에는 답없이 죽었다니...

도시까치의 집 - 내 옥상에서 가져간 건축자재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와 옥상정원을 보면 뭔가 허술하고 많이 빠진 듯한 느낌이 난다.   내가 자주 쫓아 내던 까치가 옥상의 나무에서 꺾어 가져간 가지를 가지고 둥지를 튼 것 같다.

 

우리집 옥상 정원에 자주 와서 똥을 싸고 가서 늘 어디에서 사는 새인가 궁금했는데 코니의 침실 바로 창밖 2,3 미터 떨어진 전주위에 둥지를 지어 놨다.   한전에 연락했는데 알을 까고 새끼가 자라서 나가면 빈 둥지를 치우겠다고 한다.

 

까치가 정원을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날아 갈 때 배설하고 가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쫓아 내지만 당할 수 없다.   같이 살아야 한다.

 

도시까치가 어디에서 사나 하는 궁금증은 풀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까치의 지능은 6살 정도의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 한다.  포유류 빼고는 "거울"속의 이미지가 자신이란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존중해 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나무가지 꺾어 간 것도 무혐의 처분하기로 했다.  대기에서 탄산가스를 마시고 햇볕을 보고 자란 나무를 내 것이라 우기는 것도 나무의 "공개념" 에 위배하는 주장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둥지엔 두 마리가 산다.  아마도 암수 한 쌍일 것이다.

한마리의 꼬리만 보인다.

 

 

 

옥상 얼개를 덮었던 나무가 엉성해졌다.

가만히 보니까 가느다란 연한 가지만 꺾어 간 것 같다.

 

 

 

건축재와 둥지가 가까우니 집짓기 쉬었을 것이다.

이 것도 이 새가 약아서 그랬을 것이다.

 

 

 

까치는 거울에 비친 새가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포유류밖의 종으로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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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28 20:57 신고

    나뭇가지 가져간건 무혐의처분이 되지만, 배설물은 유죄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ㅎ
    (제 집이 아파트 5층인데 난간에 걸린 에어컨실외기에 새 배설물이 있어서 가끔 청소하느라..)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3.29 16:31 신고

      새가 날기 전에 배설하는 습성은 진화과정에서 습득한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니 그것도 무혐의처분해야겠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