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MyLifeStory :: '해외여행기/네덜란드 2014'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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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의 국립공원 주드켄넨머란드 - Nationaal Park Zuid-Kennemerland 기행

 

모든 지나간 과거엔 그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엔 미래를 볼 수 없다.   그 땐 오늘을 볼 수 없다.   Zuid-KennenmerLand 국립공원을 방문한  8월 4일과 5일 그날이  네델란드여행에서 자전거 타기의 마지막 날이 될 줄은 몰랐었다.   

 

서울 날자로 8월 4일과 5일이란 뜻이다.   내 카메라에 입력되어 있는 날자가 서울 날자(시간)로 되어 있기 때문에 네델란드의 국립공원에 갔던 날이 이틀에 걸쳐 있다.

 

그 날 이후엔 내가 조금 아팠고 며칠 지나자 가을 장마가 왔다.   매일 조금씩 비가 왔다.   여기 비는 잠간은 폭우가 오고 언제 비가 왔느냐싶게 푸른 하늘이 나오곤 또 검은 구름이 몰려 와 소나기를 뿌린다.

 

그래서 그 날 이후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그 국립공원에 자전거길이 더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루프하나를 돌고 되돌아 왔다.    벌써 그 날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사진을 보면 그날 자전거를 타고 19번 식당에 점심먹은 것 같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 때에는 오후였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한 달 조금 지났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19번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면 오전에 국립공원 자전거길을 갔을 것이다.      자전거는 오후에 탔다는 느낌이 강렬하다.    그리고 사진은 보면서 추리를 했다.    이틀에 걸쳐 사진은 찍었다면  서울의 4일과 5일 자정쯤이다.    서울은 네델란드 보다 7시간 앞선다.   그렇다면 서울의 자정은 네델란드 오후 5시경이다.  

 

그러니까 생각이 난다.    달력을 보면 8월 4일은 월요일이다.    전날인 일요일 페리를 타고 암스테르담 북쪽에 가서 자전거길을 달렸다.  블로그를 썼으니 기억이 강렬하다.      그 다음날 국립공원에 간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 일찍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느지막히 점심을 먹고 떠났을 것이다.   국립공원 자전거길을 달리고 오후 5시경 19번 해물 요리 전문 레스토랑에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조금씩 기억에 되 살아 난다.

 

8월 4,5일이면 오후 6시나 7시는 대낮이다.    그러니까 저녁을 먹고 Sloterdijk 에 돌아 왔다해도 저녁이란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거억력보단 추리력이 아직도 건재하다. 

 

 

 

 

Nationaal Park Zuid-Kennemerland

자전거길

 

 

 

이 국립공원은 해변가의 모래 언덕이 특이한 경치를 만든다. 

 

 

 

자전거길엔 예저기 하이킹 트레일이 나 있다.

빌린 자전거였다면

자물통을 잠가놓고 걸어 다닐 수도 있었으련만..

 

 

 

19번 식당

기빨이 날린다.

 

 

 

해물 전문이라 바닷가재 데코가 눈에 들어 완다.

 

 

 

이 날의 성찬

 

 

 

후식으론 아내는 "Kiss of Fire"

난 Calvados

 

 

 

암스테르담 거의 정서(西)에

Nationaal Park Zuid-Kennemerland  가 있다.

자전거길도 많이 나 있다.

이젠 먼 과거

기억속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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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oningen 기행

 

 

암스테르담 머므는 동안 관광이나 잔타가 목적이 아닌 열차여행을 한 곳이 한 군데 있다.  Groningen 이다.    그 것도 두번이나 거기에 갔었다.   열차에서 내려서 온라인 판매하는 곳에 물건을 사기 위해 갔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갔다가는 또 택시를 타고 역으로 돌아와  열차를 타고 돌아 왔다.

 

Groningen 은 우리 숙소의 Sloterdijk Amsterdam 역에서 한 번은 갈아 타야 갈 수 있는 네델란드의 북쪽 끝 부분에 있는 도시다.     Groningen 역에 도착했을 땐 공교롭게도 두번 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점심시간이 되어 두 번 모두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를 음료와 함께 사 먹었다.

 

직립자전거의 단점은 역시 팔에 체중이 걸리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 영국에서 산 브롬턴의 브레이크의 핸들바와의 유격이 너무 넓어서 왼쪽 엄지와 인지를 다친 것 같다.   거기에다 체중이 팔에 걸리니 왼쪽 팔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윗팔의 바깥부분이 저려서 1년 가까이 뉴런틴(Gabapentin)을 먹고 있다.  그 것을 먹으면 통증이 조금 완화된다.  그런데 가져 온 약이 약간 부족하고 곁들여 통증이 있을 땐 저주파 치료기를 써서 치료를 했는데 그것도 가져 오지 않았다.

 

그러다 TV 를 보니까 온라인으로 저주파 치료기를 팔고 있었다.    Dr. Ho's Muscle Stimulator 라고 호주제 제품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평이 아주 좋았다.   서울에서 쓰고 있던 것은 만만찮은 값을 지불했지만 불량품이었다.  부착력도 나빠서 찍찍이 밴드로 감아서 눌러 주어야만 했다.

 

서울에 돌아 가면 다시 다른 종류로 사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팔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사서 쓰다가 가져 갈 생각이었다.   여행중이라 온라인으로 사기가 어려워서 그 판매처에 직접 가서 산 것이다.   판매업체가 Groningen 에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영어를 쓰는 사람과 통화를 하고 직접 가서 살 수 있는가 문의했다.  주중 10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현금을 가지고 오면 된단다.

 

그래서 그것을 사러 Groningen 에 갔었다.

 

두 번째 간 것은 코니의 코골이 방지장치 (anti snoring device) 를 사려고 간 것이다.   코니의 코골이가 심해서 여행중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잠이 들지 않으면 내가 방해를 받아서 잠들기가 힘들고 발을 툭툭 치면 코니가 잠을 깬다.   모두 수면 유도제를 먹고 자는데 한 방에서 자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mouth piece 같은 것을 맞춰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치과용 본뜨기까지 하는 맞춤 제품을 200만원 어쩌고 한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보청기나 코걸이 방지 마우스피스나 엄청 비싸다.   ebay에서  몇10불짜리를 두어개 사가지고 가지고 왔는데 값이 싸니까 그 재질이 어떤지 의심이 든다.  입에 무는 장치인데 기분이 나빠서 인터넷을 검색하니 미국에서 만든 Zquiet가 평이 좋았다.  그래서 그것을 검색하니  저주파 근육치료기를 팔던 그 온라인 판매회사에서 그 제품도 팔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제품을 사러 갔었다.

 

그런데 Dr. Ho's muscle stimulator 를 써 보니 아주 좋다.  등, 발도 마싸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코니도 그걸 써 보고 싶어서 기왕 간 김에 하나 더 사가지고 왔다.       열차편은 eurail pass 를 썼지만 택시비는 왕복 35유로 지불했으니 꽤 비싸게 산 셈이다.  그러나 머믈고 있는 동안 아주 유용하게 썼다.

 

 

 

 

 

Gronigen 은 Amsterdam 에서 열차로 2시간 안팍 걸리는 북쪽 변경 도시다. 

 

 

 

Groningen 가는 열차 차창 풍경

 

 

 

비가 멎은 사이 잠간 역사를 찍었다.

 

 

 

역사 구내

사진은 이미 과거 속이 되었다.

 

 

 

Dr. Ho's Muscle Stimulator

 

 

 

ZQuiet

코골이 방지장치

50 유로(7만원) 근방이었던 같다.

입에 물고 자면 입이 벌어져 기도가 막혀 진동하는 코골이를 방지하게 된다.

적응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린다.

코를 곤다는 것은 근육이 이완되어 기도가 좁아져

좁은 기도를 통한 숨쉬기의 진동소리가 코골이가 된다는 것이다.

옆사람도 힘들지만 본인도 편한 잠은 아니다.

심하면 무호흡증까지 가서 잠을 설치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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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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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01 14:04 신고

    코골이 방지장치가 있군요. 사람마다 입크기가 다른데 관계없는가 봅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9.01 20:21 신고

      그래서 이비인후과에서는 치과에서와 같이 본을 떠서 맞추는데 200만원을 이야기하더라구요. 이상적인긴 하지만 너무 값이 비싸서 ....

      또 ebay 에서 산 것은 처음에 데운 물에 넣어 따뜻하게 해서 이에 맞게 mold 를 해서 쓰게 되어 있습니다. ZQuiet 는 아래 치열이 위 치열 앞으로 나오게 하는 구조라 치과에 가서 상담하라고 합니다.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01 14:43 신고

    여행중에나 쓰는 거지요.

여행에서 친구 둘을 찾다.

 

이 번  네델란드 여행에서 옛 친구 둘을 찾았다.     한 친구는 네델란드에서 만났고 또 한 친구는 아직도 한국에 있어 오늘 만났다.  

 

네델란드 여행중에 찾았다는 것은 맞지만 한 친구만 네델란드에서 만났고 한 친구는 인테넷에서 찾아서 오늘 서울에서 만났다.

 

사람이 살다 보면 스치는 인연중에 친구가 있다.    한 동안 친히 지내다가도 어찌어찌 하다 인연이 끊기고 잊거나 잃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번 여행 중에 찾은 친구는 젊은 날에 만났던 친구들이다.    1954년  1955년에 처음 만났던 친구들이다.  

 

하나는 해군사관학교 bottom(최하급생 = 일학년생) 시절의 만났던 J 라는 친구요, 하나는 이듬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들어와 만났던 L 이란 친구다.  

 

해군 사관학교 bottom 시절의 친구 J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관학교에서 사귄 몇 안되는 절친중의 하나요,  물리학과에서 들어 와 사귄 동급생은 대학시절 내내 만났고 또 군대를 같이 가서 함께 병영 생활도 했다.

 

성격으로 보면 J 는 과격하고 저돌적인 면이 나완 반대되는 성격이고 L 은 고지식하고 나보다도 더 훨씬 모범생이다.    그러니까 난 그 중간쯤 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내가 1960년 한국을 떠나 유학을 간 후엔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J는 그 후 내가 귀국하여 모교에 봉직하게 될 때 쯤은 아마도 한국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네델란드에 와서 무역사업을 했던 것 같다.   J 역시 나와 마찬 가지로 해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고대에 들어가 고대를 나왔다.

 

L도 나처럼 196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미국에서 미국인 아내를 맞아 미국에서 살다가 90년대에 돌아 왔으니 오랫동안은 만날  수 없었다.     그는 Penn State 에 대학원을 다녔으니 시애틀에 있던 나와 편지 연락은 가끔 했어도 만나기는 어려웠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엔 처음엔 Westing House 엔가에 잠간 있었던 것 같고 다음엔 미 해군 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했다.   귀국을 오랫동안 못했던 것은 아내때문이었을 것이다.

 

90년대 돌아와 후배교수가 대학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었지만 "평생 연구소에서만 일했는데 이제 무슨 새삼스레 교수냐 무슨 자격이 있다고" 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나 고지식한 사람인가!       그리고는 누님 내외의 투자를 받아 작은 회사를 차렸다.    통신장비에 드는 핵심부품을 개발 연구하는 회사였다.   처음엔 정부의 지원도 받았던 모양이다.     그 때 한창 벤쳐기업이 나올 때였다.    별 시시콜콜한 회사들이 코스닥에 상장하고 개미들의 돈을 빨아 먹고는 망하던 시절이었다.   몇번 만났던 L 에게 농담삼아 코스닥에 상장하고 돈좀 벌어보지? 하면 정색을 하곤 그건 사가잖아라고 하던 고지식한 친구다.

 

어제 만났는데 아직도 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고객이 이스라엘과 중국이란다.   그래서 자주 이스라엘과 중국 출장을 간다고 했다.    무언가 특수한 통신장비의 핵심기술인 듯 하다.   깊이 물어 보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수를 느낄 때가 많다.    코니는 거실에서 아이패드로 ebook 을 읽고 있고 난 침실에 누어서 아이패드로 이것 저것 브라우징을 하면서 옛날로 돌아 가 상념에 빠졌었다.

 

L과는 대학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난 혜화동 누님집에 살았고  L은 이화동의 커다란 한옥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대학을 가운데 두고 거의 같은 거리의 난 북쪽,  그는 남쪽에 살았던 셈이다.   대학천변(지금은 복개되어 사라진)을 오가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언젠가  2012/07/11 - [이것저것/오카리나, 음악] - 오카리나 - 더 바빠진 나의 일상 에 적었던 그 L 이란 친구다. 

 

그 L 생각이 난 것이다.     L은 은퇴후에도 1년에 한 번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너댓번은 만났다.  적어도 1년에 한번은.

 

마지막으로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 회사의 비서가 L이  자전거를 타다 크게 다쳤고 당시엔 미국에 체류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메일도 전화도 사라졌다.

 

난 L 이 아내를 따라  함께 미국으로 돌아 갔고 회사도 접은 줄 알았다.      그래서 7,8년 소식이 끊긴 것이다.    네델란드 호텔 침실에서  그 L 생각이난 것이다.    살아 있겠지?     이젠 우리 나이의 옛 친구가운데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100 세시대라 해도 그건 다만 평균일 뿐이다.

 

미침내 L을 찾아냈다.     L의 딸의 이메일의 주소를 알아낸 것이다.      대답이 없어 다시 한번 email을 보냈다.  L의 딸인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아니더라도 답신을 달라고 보냈다.    내가 찾는 사람이 my dad 이 맞는다고 한다.   1차 편지를 L 에게 전달했는데 중국 출장이중아라더니 답신이 없었나 봅니다 라는 회신이 왔다.     마침내 L 에게서 회신이 왔다.      옛날 email 주소는 죽은 것이었다.   kornet 였는데 KT 란 회사는 "파란"도 죽이더니 email 주소도 다 죽여 놨다.   

 

그래서 오늘 만난 것이다.   아무리 연구소 같은 회사라 해도 L이  아직도 비즈네스를 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

 

네델란드에 살고 있는 J 는 7,8 년전에 한국에서 만났다.    아이들을 모두 네델란드에서 키웠지만 큰 며느리는 한국에서 맞어 그 결혼식에 갔었다.   며느리감은  내가 은퇴하던 해 전후해서 물리학과에서 시작한 BK project 에서 일한 일이 있어 날 알고 있었다.       난 결혼식이 수원 어느 성당에 있어 수원의 그 성당에 찾아 가느라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것이 J 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네델란드에 살고 있는지 귀국해서 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검색해 보니 네델란드의 한인 주소록인가 하는 곳에서 H Trading 이라는 업소명과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왔다.      모두를 클립해다 내 전자 노트에 기록해 두었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전화를 해 볼 생각이었다.      주소를 검색하니 구글에 거리뷰까지 나온다.   그 주소록에 있는 집까지 볼 수 있었다. 

 

전화를 걸어 보니 J 가 그 주소에 살고 있었다.    반가운 응답이었다.  날짜를 정하고 찾아 가기로 했다.   처음에 Rotterdam 까지 가서 자전거를 타고 갈 생각이었지만   거리를 재어 보니 26 킬로가 된다.  일방은 되어도 하루에 갔다 오긴 너무 멀다.    자고 가라는 초청을 받았지만 호텔 이외의 친구나 친척의 집에서 자는 건 익숙치 않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작년 겨울 LA에서 제자 집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늦게 까지 술 마시고 놀다 하루 잔 것이 마지막으로 지인의 집에서 한 번 자 본 것이다.  술을 마시고 밤 늦게 운전하는 게 싫어서였다.   아무래도 호텔 체질이라 사양했다.

 

J 의 집은 Rotterdam 시내가 아니었다.    거기서 metro 를 타고 Zuidplein 에 가서 다시 버쓰를 타고 가야 하는 Numansdorp 라는 "시골" 이었다.    

 

첫번째 방문은 암스테르담에 산다는 J의 아들 내외가 우리 호텔까지 와서 차로 데려가고 차로 데려다 주었다.  휴가갔다 돌아와서 부모집에 가는 길이라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J의 집을 찾아 가기가 버거울 것 같아 생각한 우리에 대한 배려 같았다.     J의 부인은 코니보다 네댓살 작아서였는지 넘 많은 음식을 차려 우리를 맞았다.

 

J는 얼마전 Stroke 가 와서 한쪽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여전히 건강하고 옛날 성격대로 씩씩하고 털털했다.    

 

우리는 옛날 얘기를 많이 했다.   우리 나이엔 아흡번까지 용서된다던가.    사실 난 까맣제 잊고 있던 이야기도 있었다.  

 

돌아와서 1 주일 후에 다시 J의 집을 방문했다.    암스테르담에 언제 또 오겠는가!   날을 받아 놓지 않았다 해도 우린 언제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번째 방문은 귀국하기 며칠전 벨기에에 다녀 온 다음 갔었다.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정류장에 내려  걸어서 찾아 갔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갔지만 다 가서는 집을 알아 보지 못했다.  너무 비슷한 집들이라 혼동을 했는데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앞에서 현관을 열고 J의 부인이 나왔다.

 

브뤼셀에서 소마치기 당한 이야기가 새로 생긴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돈은 조금 잃었어도 이야기거리 하나는 건졌다. 

 

돌아 오는 길도 타고 온 버스를 타고 Zuidplein 까지 와서 메트로로 갈아 타고 열차편으로 돌아 왔다.   Rottedam Centraal 은 우리 역까지 한시간 조금 더 걸린다.      네델란드 열차시스템은 참 잘 되어 있다.   나라가 작다 해도 이런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 인프라 때문에 거리감이 거의 없다.

 

두 옛 친구를 찾은 것은 이번 여행에서의 큰 소득이었다.

 

 

 

 

일찍 떠나 일찍 오려고 아참에 일어 나 시간에 되는 뎨로 일차를 타고 색드위치라도 사서 먹으려 했지만

식욕이 일지 않아 Rotterdam 역에서 아참을 사 먹었다.

 

 

 

메트로를 타고 Zuidplein 버스역에 나오니 버스가 막 떠난 다음인 듯 했다.

시간 표엔 발차시간 간격이 30 분인데 여름 방학기간이라 1시간 간격이란다.

 

 

 

버스에서 내다 본 시골 풍경

 

 

 

Zuidplein 에서 탄 승객은 우리 둘 빼고는 앞자리의 승객 한 사람이 더 탔을 뿐이었다.

 

 

 

우리 뒷자리도 텅텅 비어 있다.

 

 

 

자전거길이 차도와 나란히 나 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우리도 자전거를 타고 올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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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4 18:40 신고

    오랫동안 못본 친구분들을 만나셔서 매우 반가우셨겟습니다.
    한분은 아직도 '현역'이시라니 놀랍습니다.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5 11:11 신고

    감사합니다. 저 역시 그 친구가 현역인 데에 놀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야릇한 국경

 

 

8 월 7일 방을 옮긴 이후는 자전거는 접고 열차만 타고 다니면서 도보관광만 했다.     도보관광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야릇하고 복잡한 국경을 가진 도시를 가 본 것이다.   사실 이런 도시가 있다는 것은 나도 처음 알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지도를 연구하면서 한 번 해봐야지하고 머리속에 그렸던 계획은 네델란드와 인접한 독일과 벨기에의 국경을 자전거로 넘나 들어 보는 것이었다.   한 두어 군데를 그 후보지로 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해 보니 무리가 많이 따랐다.     그 국경지역에 접근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고 또 국경을 넘고 돌아 오는 자전거길도 우리에겐 무리가 많았다.     낙동강 자전거길을 달릴 때 남지읍에서 삼랑진까지 달렸던 생각을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무리는 안하기로 했다.

 

그래서 네델란드의 인접국 접경을 검색하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국경을 가진 작은 도시를 발견한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열차를 타고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교통편이 좋은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알려진 관광명소는 아니었다.

 

방을 옮긴 후엔 여기도 가을 장마라 어차피 잔타는 글렀기 때문에 도보 관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 도시에서도 한차례 소나기를 맞았다.     작은 옷 가게에 들어 가 비를 피하는 바람에 코니가 그 가게의 옷 두어 벌 팔아 줘서 비피하기 값을 치뤄 주었다. 

 

이 도시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 전체적으로는 네델란드 국경안에 있다.    벨기에 영토가 큰 섬으로 들어 앉아 있고   그 섬 안에 또 네델란드 영토가 작은 섬으로 들어 있다.     네델란드 안에 벨기에 벨기에 안에 네델란드가 뒤 엉켜 있어 그 도시엔 국경이 엄청 복잡한 양상으로 얼키고 설켜 있다.

 

이렇게 복잡한 국경을 갖게 된 역사 배경은 두 나라의 영주들이 서로 땅을 맞바꾸기도 하고 땅을 팔고 사기도 한 결과인데 19세기에 두 나라가 국경 협약을 맺어 오늘의 국경이 그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도 네델란드에서는 Baarle-Nassau,  벨기에에서는 Baarle-Hertog 로 부른다.     물론 자기네 땅에서만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 집은 국경을 품고 있기도 하고 어떤 식당은 반쪽은 네델란드 반쪽은 벨기에로 부분이 갈라져 있기도 한다고 한다.   식당을 닫는 시간 규정이 다른 경우 반쪽은 한시간 전에 닫아야 하기 때문에 식사 중간이라면 테이블을 옮겨 앉아야 식사를 끝 낼 수 있다고 한다.   

 

또 잘 찾으면 차를 주차 할 때 차의 바퀴를 두 국경에 걸쳐 주차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부러 찾지 않았지만 그 희한한 주차 공간을  우연히 발견했다.  

 

도심 구역은 식당이나 상점이 즐비한 다운타운인데 그 가장 자리의 한 카페에서 맥주 한 병을 사서 마셨는데 도시 주민들이 오후 차 마시러 오는 곳 같았다.  주로 노년들이었는데 서로 아는 듯 인사를 주고 받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은퇴한 노년인 듯 했다.   

 

사실은 길을 잘 못 들어 버스에 내려서 도심과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한적한 주택가를 구경하게 된 것이다.   

 

희한한 구경을 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Breda 까지는 열차편이 있고 거기에서는 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처음엔 길을 잘 못 들어 도심에서 교외로 나갔는데

그 대신 예쁜 주택가를 구경하게 되었다.

하나 같이 정원들을 멋지게 가꿔 놨다.

 

 

 

정원수 중엔 무궁화 나무도 있어 한 컷

 

 

 

꽃이 하도 소담해서

 

 

 

Baarle-Nassau 의 다운타운

여긴 네델란드 령인 가 보다.

 

 

 

다운타운 한 카페에서

 

 

 

국경 지경의 한 Toy Shop

 

 

 

네델란드와 벨기에 국경

 

 

 

이 집엔 국경이 지나고 있다.

 

 

 

다운 타운 국경엔 이런 지도 동판이 박혀 있다.

 

 

 

양다리를 걸치고

한 컷

 

 

 

무슨 극장 광고 같은데

Baarle-Hertog 라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서 벨기에 령인 것 같다.

 

 

 

국경을 지나는 주차 공간

돌아 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했다.

주차한 차는 국경을 밟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네델란드 국경안에 있다.

 

 

 

네델란드 영토안에 커다란 벨기에 령 섬이 있고 그 안에 또 네델란드 령 섬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국경 도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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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2 11:16 신고

    정말 신기합니다. 이런 곳이 있었군요. 국경선을 밟고 있는 차라니...ㅎ

  2. 이태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2 21:17 신고

    네덜란드에서 소매치기 맞았다면서요. 다른 피해는 없었는지요?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8.22 21:49 신고

      신용카드와 신분증 잃은 것 뿐이에요. 신분증은 재발급했고 신용카드도 재발급했는데 여기저기 자동결재를 재 등록하는 것이 카드 재발급받는 것보다 더 복잡하네요.

  3. 骑车人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6 01:07 신고

    인도 방글라데시 국경보고 우와 이런곳도 있구나 했는데, 벨기에도 만만치 않군요.
    벨기에는 저도 안 좋은기억이 있습니다. 홍합요리를 먹으러 leon 원조집을 찾으로 브뤼셀 뒷골목을 들어갔다가 아랍계 이민자로 보이는 삐끼들에게 호되게 당했네요. 그래도 좋은 기억은 벨기에 맥주를 여러가지 맛본것입니다. 특히 브뤼셀 근처 호가든 이란 마을에 가서 호가든 옛공장에서 직접 생맥주를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맥주를 만드는 현대식 공장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원래 창업주는 미국 남부로 가서 그곳에서 본인의 특기인 화이트맥주를 새로 런칭했다고 하네요.
    저도 자전거 여행다니고 있는데, 5년전부터는 브롬톤만 가지고 다닙니다. 반갑습니다. ^^

2014 여름여행을 끝내고 오늘 귀국했다.  서울과 7 시간 차이가 나는 암스테르담을 오늘(날자로는 어제) 떠나 오늘 오후 2시 조금 지나 인천공항으로 돌아 왔다.

 

잠간 스틸록스(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비행시간은 10시간이 넘지만 마치 하루에 다 끝낸 기분이다. 잠을 깨어 비행정보를 보니 잔여 비행시간이 2시간 얼마라고 나온다.

 

대한 항공 암스테르담 -> 서울 행은 저녁 8시 10분 발이다 .   공항 카운터는 3시간 전인 오후 5시 10분에 연다.  11시가 호텔 체크아웃 타임이라  긴 시간을 지낼 방도를 연구해야 한다.

 

호텔에서 늑장을 부려 10 시경 체크아웃하고 짐은 오후 4시까지 호텔에 맡기기로 하고 배랑만 지고 호텔을 나섰다.   복작거리는 암스테르담에 가기 보다는 한가한 "바닷가 모래로 (Zandvoort Aan Zee)"  에 가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올 계획이었다.    이번 가면 "바닷가 모래로"는 4번째가 된다.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6시간을 점심먹으며 떼우긴 조금 긴 시간이다.    그래서  늘 지나 다니던  Haarlem 역에 내려 시내 구경이나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도 하늘은 비가 오다 그쳤다하는 불순한 날씨다.    역시 8월 달은  가을 장마의 계절인가 보다.

 

Haarlem 역에서 멀리 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한 500 미터쯤 가니까 Cannal 이 나온다.  사진이나 찍으려 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로 돌아서 역사로  돌아 오는데 폭우성 빗바람이 인다.

 

이런 빗바람에선 우산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어느 상점의 처마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호텔에서 창밖을 볼 때 자주 보던 광경이다.      폭우성 비가 퍼 부었다간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그리고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폭우를 뿌리고는 다시 파란 하늘로 바뀐다.

 

이 것이 8월 중하순의 암스테르담 근방의 전형적인 날씨가 아닌가 싶다.

 

Haarlem 에선 30분도 지체하지 못하고 다시 Zandvoort Aan Zee 행 열차를 탔다.    12 시 근방해서 Zandvoort 에 도착했다.

 

우리가 자주 가서 먹던 피시 전문 레스토랑은 역에서 한 5 분 거리다.     조금 산책을 하다 식당에 들어 갈 생각어 었으나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       

 

기온도 떨어져 요즘은 가장 추운 날을 대비해서 우리가 가져간 두툼한 옷들을 꺼내 입고 지낸다.     기온도 떨어졌지만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몇주전만 해도 바닷가에 누어 있던 인파는 오간데 없고 파장 분위기다.

 

그래도 그 식당엔 손님이 조금 있었다.  창가 자리는 하나만 남아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테러스에 나가 앉은 커플이 하나 있었다.    남자는 바닷물에도 들어 갔다 온다.

 

우리가 앉아서 거의 3시간의 긴 점심을 먹는 동안 비는 두세번 지나 갔다.  

 

Bacardy Black 럼주를 식전주로 마시고  dark beer 를 점심과 함께 미시고 식후엔 내 향수를 자아내는 Calvados 로 한시간 가까이 홀짝거렸다.   

 

비가 오는데도 Wind Surfing 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걸 구경하면서 즐겼다.    3시 39분 열차를 타면 딱 맞는데 그 열차를 타러 나가는데 3시 09분 짜리가 아직도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가 있는데 타지 않고 30분을 역사에서 기다리기도 지루할 것 같아 그것을 타 버렸다.

 

우리의 역 Amsterdam Slotedijk 에 오니 또 빗방울이 흩뿌린다.    비를 조금 맞고 호텔에 돌아 왔다.

 

4시 짐을 찾아 텍시를 불러 타고 공항에 왔다.  카운터가 열려면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체킨하고 라운지에 갔다.   대한 항공은 KLM 과 Skyteam을 이루고 있어서 비지네스 클라스 라운지는 KLM 라운지 였다.  엄청 큰 라운지다.      너무나 긴 점심을 먹고 술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라운지에서는 술도 음식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Lebara 선불폰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아이폰의 KT 심카드로 바꿔 끼기 전에 Rotterdam의 옛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를 했다.       KT 나노심으로 바꾸어 끼웠다.   서울에 가서 airplane mode를 해제하면 KT  전화가 된다.

 

여행이 끝나는 것이다.

 

지금  돌아와 잠이 오지 않아 이 블로그를 쓰고 있다.   암시테르담 시간으로 오는 오후 3시경이다.   오늘 같지만 어제 이맘때 Zandvoort Aan Zee 에서 Calvados 를 홀짝이던 시간이다.  

 

지구의 반 바퀴를 갔다 왔어도 마치 오늘 잠간 해변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온 느낌이다.   그리고 42일 전의 내 환경으로 돌아 온 것이다.

 

그 땐 암스테르담에 대한 동경과 설레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득한 꿈나라에 갔다 온 기분이다.      지나간 날은 한갖 꿈일 뿐이다.      

 

전인권의 "그대 걱정 말아요" 노래가 들린다.      "꿈을 꿨다고 말해요......."

 

 

 

 

 

 

 

 

Haarlem 역사

옛 역사(驛舍)를 남겨 두고 뒤에 새 역사를 지었다.

 

 

 

역 앞에 세워 진 동상

 

 

 

Haarlem 의 운하

 

 

 

내 가 식전에 시킨 Bacardi Black 럼주

 

 

 

코니의 접시 감자(French Fry)와 샐러드는 따로 나온다.

 

 

 

내 Fish Filet

이젠 여기 접시를 다 먹지 못한다.

 

 

 

Black Beer

 

 

 

Wind Surfer

그 많던 바닷가 인파는 어디로 가고?

몇주전만 해도 이 해변가를 꽉 채웠었는데. ....

 

 

 

간간히 산책객이 걸어 다닌다.

우리도 바닷가를 걷고 싶었지만 언제 빗바람이 몰아 칠지 모르기 때문에 창가에서 바닷가를 구경만 했다.

 

 

 

윈더 서퍼를 망원 close-up 으로 한 컷 찍어 봈다.

 

 

 

식후엔 Calvados 를 한잔 시켜 온기로 올라 오는 향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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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1 10:27 신고

    긴 여름여행 잘 다녀오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네델란드 구경 잘했습니다. ^

  2. webdj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01 09:23 신고

    선생님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내시는군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8월 4일 월요일 "바닷가 모래로" 를 한 번 더 가 보고는 자전거 타기는 막을 내렸다.    한 이틀 몸살기가 있어 쉬었고 8 월 7 일은 방을 옮기는 날이었다.    "Agoda"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이 호텔을 예약했는데 이 예약사이트는 30일 이상은 예약이 안된다.   그래서  6 주를  30일과 12일로 나누어 예약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30일은 Studio 방이 없어 2 bedroom(방 하나는 잠가놔서 1 bedroom) 을 썼는데 두번째 예약은 Studido 방으로 옮겨야만 하게 되었다.  한달동안 넓직한 거실을 즐기면서 잘 지냈다.

 

그리고는 계속 장마 같은 비가 매일 조금씩 왔기 때문에 자전거는 접고 열차를 타고 예저기 쏴 다녔다.  어제는 암스테르담 여행중 한 번 가 보려던 벨기에 브뤼셀에 놀러 갔다.   한번 갈아 타면 한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브럿셀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절대로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는다.   소매치기가 아무리 어수룩해 보여도 소매치기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한 동안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가 허무러져 있었다.

 

소매치기에 대한 경고 같은  것도 별 관심있게 읽지 않았었다.

 

브뤼셀이나 어디나 관광지에는 소매치기가 득실 거린다.    자전거를 주로 타고 다녔기 때문에 몰랐었던 것 뿐이다.  소매치기는 20 세 안팍의 여자 아이들이다.   처음에는 종이를 끼운 클립판을  가지고 설문조사하는 양 접근한다.  장애자 돕기 싸인을 해 달라고 한다.   한 번은 그냥 물리쳤다.    얼마 가다고 또 그런 아이기 접근하기에 사인을  해 주고 사진이나 찍어 달라고 하려고 앞서 가는 코니를 불렀다.   

 

코니는 오히려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오라고 역으로 손짓이다.     먼저 사인을 해 주니 donation 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 동전을 꺼내려고 앞가방 지퍼를 열고 동전을 꺼내는데 내 지갑은 본 모양이었다.     어느 틈엔가 또 작은 스무살 안팍의 여자아이기 바짝 다가서더니 수작을 건다. 어디서 왔나느냐니 뭐니 하는데 동전을 줬는데도 먼저 아이가 다시 싸인을 하라고 클립보드와 팬을 준다.  두손을 다 빼앗긴 것이다.   한 손은 클립보드를 받아  들고 한손은 팬을 들었고 가방은 열린 상태였다.   수작을 걸던 두째아이가 그 사이에 지갑을 꺼내간 것이다.

 

사실  이 사실은 그 순간은 몰랐다.    두어시간 지난 후 점심을 먹고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찾으려는데 지갑이 살아진 것을 안 것이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일어 나는 일이다.     일어 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실 잃은 것은 돈 5,6 백 유로 한화 얼마 현금 카드를 포함한 신용카드 네장 운전 면허증 주민등록증(이건 확실치 않다) 등 한국에서 쓰던 증명서등이 든 지갑이다. 

 

신용카드를 다시 내야하고 증명서를 다시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다.    돈 한 백만원 안팍은 손재수다.

 

단지 코니가 흥분해서 결찰서에 신고하러 가자고 경찰서 찾아 가는데 쓴  쓸 데 없이 낭비한 시간과 에너지다.  사실 경찰에  신고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빨리 호텔로 돌아와 신용카드 분실 신고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한 참 police station 을 찾아 신고하는데 두 세시간은 낭비했다.  

 

그래서 계획했던 시간에 돌아 오지 못하고 9시 가까이 호텔에 돌아와 서울로 전화를 걸어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마쳤다.    아무도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서 동양인 이름의 신용카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현금카드가 있었지만 ATM에 넣고 사용하려고 하려 해도 비번을 추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몇번 틀린 비번을 찍으면 카드를  삼키는 기계도 있으니 못했을 것이다.  

 

또 소매치기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만 꺼내고 지갑은 쓰레기 통에 버린다고 한다.      

 

여권과 유레일 패스를 잃지 않은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까딱했으면 암스테르담 호텔에 돌아 오기도 난감한 사태가 생길 번 했다.

 

 

 

 

브뤼셀 중앙역 동쪽 정문 앞

 

 

 

 

좀 더 동쪽으로 가면 공원이 나오고 그 위가 시가지다.

여기서도 사인을 해 달라는 아가씨른 만났다.

모두가 소매치기는 아닐 지 모르지만 일단

도네이션으로 구걸을  하고

백이나 가방을 열 때 지갑이 있으면 소매치기로 돌변하는지 모른다.

 

 

 

 

이 날 목표는 베기에에서 시작했다는 Le Pain Quatidient을 찾아가

점심을  먹는 것으로 잡았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Le Pain 이 걷기엔 너무 멀어 중간에 택시를 잡아 탔다.

이 때에도 가방에 아무렇게나 집어 넣은 거스름돈 지폐로 택시비를 지불했기 때문에

지갑 잃은 것을 몰랐다.

차라라 잘 된 것이다.

점심은 편안하게 먹었으니..

 

 

 

코니가  시킨 채식 샐러드

 

 

 

생맥주는 없고

맥주도 Stellar Artois 는 없다고 한다.

Organic 식당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Cass  같은 맥주가 있느냐 물었으니...

 

 

 

경찰서에 신고하고 나서 중앙역 서편으로 나오니 완전

먹자 골목이었다.

Stella Artois 맥주집이 있었다.

시간이 있었으면 한잔 하겠지만

시간도 늦었고 카드 분실신고도 하려면 빨리 돌아 가야 했다.

 

 

 

 완자지껄한 먹자 골목

여기에도

Le Pain Quatidien 이 있었다.

구글 검색에 불완전한건지 새로 연 식당인지

모르지만 알았다면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일어 나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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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consi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15 07:10 신고

    액땜하셨으니 앞으론 무탈하시길... 저도 한국에선 가방도 몇번인가 찢기고, 소매치기도 꽤 많이 당했는데... 그리고 혹시나 시간이 나시면 근처의 뒤셀도르프도 여행해보세요. 전 이십년전에 그곳에서 독일어와 미술공부하며 살았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도시예요. 한번은 그 도시에서 전차를 탓는데요. 전차좌석에 지갑이 발견되었는데 아무도 손을 안대더군요. 그러다 몇정거장 지나니까 지갑주인이 나타나 찾아가더군요. 독일이 왜 대단한나라인지 알게되는 순간이었어요. 사모님과 즐거운 여행을 하시길 바라며...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8.16 16:46 신고

      감사합니다. 뒤셀도르프는 하루에 가긴 넘 먼 거리인 것 같습니다. 물론 ICE 로 가면 편도 3시간 안에 갈 순 있어도 예약이 필수라 우리에겐 맞지 않아서요. 다음기회에 가 보봐야지요.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15 22:18 신고

    20세 전후 여자애들이 소매치기할 줄은 생각치 못했는데.. 그나마 여권을 잃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남은 기간 즐거운 여행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8.16 17:03 신고

      이런 부랑아들은 현지인은 아닌 것 같고 피부색이나 행색으로 보아 아주자이거나 이주자의 자녀들인 것 같습니다. 아마 관광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다니면서 이런 짓 하고 다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당하고 나서 관광팁을 읽으면 소매치기 주의하라는 경고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 홍등가도 밤 10시 11시 주 관광시간이 되면 소매치기를 주의하라고 경고가 나옵니다. 인파가 복작거릴 때입니다. 브뤼셀만이 아닙니다.

  3. hski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16 23:35 신고

    예전에 저희엄뉘는 고딩쯤 되는 어설픈 소매치기를 만나서 손등을 비어오셨습니다. 가방자르면서 손등까지 자른것이죠...몇바늘 꼬맸는데 아직도 흉이 크게 남아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몸상하신데 없으니 불행중 다행입니다. 휴~

    • Connie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8.17 19:03 신고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 당장은 흥분하고 화내고 냉수먹고 속채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런 당황스런 일을 당했을때 숨한번 크게쉬고 냉수먹고 마음을 가라앉지면 만사 ok인데...

  4. brupr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18 01:11 신고

    에고 액땜을 하셨군요.그래도 몸 다치신 것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베를린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주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300유로를 도난당했습니다. 다행히 여권은 다른 곳에 있었고요.
    소매치기를 당하니 도난당한 돈보다, 왜 그때 알아채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후 호의를 보이는 외국인들이 모두 잠재적인 소매치기로 보였습니다.
    돈을 잃은 것보다 남들을 의심하게 된 것이 더 큰 손해였습니다.
    그래도 경찰서에서 도난 신고서를 받아서 한국에 와서 여행자 보험으로 200불 정도를 받았습니다.
    혹시 모르니 도난 신고서를 받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액땜 하셨으니 좋은일이 더 생기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몸 건강히 여행 잘하시기 바라겠습니다.
    ( _ _)

  5.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20 01:02 신고

    저런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요 ㅜㅜ
    자선을 했더면 마음이라도 기쁠텐데....
    액땜했다 생각하세요
    멀리가셔서 밑쩐은 뽑아야 하지 않겠어요 ^^
    남은 여행 즐거움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암스테르담 페리와 다리

 

 

지난 일요일은 암스테르담 페리와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길을 탐색하기로 했다.  여기서는 그냥 적당히 자전거 포터링에 나설 수가 없다.  자전거길이 워낙 많이 복잡하게 나 있어 길을 잃기 일수다. 

 

또 자전거길이 끊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가기 전에 MapMyRide 라는 프로그램으로 gpx 파일을 만들어 MotionX 에 보내어 MotionX 지도에 gpx 파일 길을 올려 놓고 보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지도를 보랴 뒤따라 오는 코니를 후사경으로 보랴 앞뒤로 달리는 다른 자전거를 보랴 갑자기 나타나는 모페드를 경계하랴 여간 바쁜게 아니다.  여기 잔차인은 점잖다곤 할 수 없다.   난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사카에서 자전거를 탈 때에는 바쁜 시내에서는 암스테르담만큼 분볐지만 여기 사람보다 훨씬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일본사람들의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다.    여기사람들은 좁은 길에도 둘이 나란히 달리며 교행할 때도 한 줄로 서지 않고 그냥 교행한다.    그런 행동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불쾌감을  준다.    두줄로 다니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암스테르담  안전 라이딩 유튜브에도 가르쳐 준 것 같다.     오래 살다 보면 그런 문화에 익숙해 질 진 모르지만 당장은 기분나쁘다.   자전거 인프라만은 세계 제일일지 모르지만 외국인이 느끼기엔 자전거 천국은 결코 아니다.

 

암스테르담은 북쪽의 베니스라 불릴만큼 수로가 많아 다리도 많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바로 뒤의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해로엔 다리 대신 페리가 다닌다.    이 페리만이 24시간 무료로 운행한다. 

 

일요일 라이딩은 이 해로를 페리를 타고 건너가 암스테르담 북쪽 동네를 돌아 다니다 서쪽 편에 난 유일한 자전거 인도가 있는 다리를 건너 중앙역으로 돌아 오는 코스를  그려서 라이딩을 했다.    출발은 호텔에서 출발해서 페리승강장까지 잔타를 했고 올 때에는 중앙역 앞의 한 메시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열차를 타고 우리역 Amsterdam Sloterdijk 까지 왔다.  

 

한 번 해 보려던 숙제를 했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나가려면 숙소에서 나와서 이런 공원길을 지나기기 때문에

3분의 2는 편안하고 안전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여기 수로엔 개폐식 다리가 많다.

오사카도 바닷가엔  다리가 많지만 아주 높은 붙박이 다리를 놓아 왠만한 배는

그 다리 밑으로 지날 수 있게 해 놨다.

그 대신 스파이럴 아니면 스윗치 백으로 자전거길을 내어

이런 다리를 지나 다니려면 한 참 끌바를 해야 했다.

 

 

 

페리를 기다리는 잔차인들

 

 

 

페리 안에서

이날 날씨는 쾌청했다.

 

 

 

페리에서 내려서 타고 온 페리를 보고 있다.

 

 

 

암스테르담 북쪽 한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자전거길을 달리는

모페드들

제한 속도를 달리는 모페드는 별로 없다.

이런 젊은이들은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추월한다.

모페드를  빨리 추방하지 않는 한

암스테르담에

코펜하겐 점수(Copenhagen index)를 후하게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륜 잔차(?)도 만만찮게  다닌다.

 

 

 

이 공원 호수도 바다로 이어진 듯

일요일  뱃놀이에 나온 듯

배들이  많이 지나 갔다.

 

 

 

공원을  빠져 나와 주택가를 벗어 나니  너른 초원길이 나오고 간간히 방목하는 소도 보였다.

시내와 인접해 있는 곳에 목장이 있다니 놀라웠다.

초원길 끝 시가지에 가까이 오니

수로가 있고 수로 옆엔 주택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 수로를 건너는 다리위에서

 

 

 

다시 큰 디리를 건너는데 뗑뗑뗑...

개폐식다리가 열리고 있다.

 

 

 

다리위에서

 

 

 

다리를 몇개를 건너 암스테르담 남쪽에 왔다.

자그마한 길가 공원

 

 

 

길가 벤치에 앉아서 지나 가는 배 하나를 찍었다.

 

 

 

갈가 벤치 옆에 정박한 어선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코니가 시킨 마가리타

 

 

 

생선 보리토 였던가?

 

 

 

페리를 타고 가서 다리로 건너온 자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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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08 09:44 신고

    구경 잘 했습니다. 자전거 도로에 모페드가 저리 다니니 꽤 위험해 보입니다.

  2.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09 04:16 신고

    암스테르담 지도위에 파란줄이 수로인가요 ?
    와~ 정말 놀랍습니다

  3.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10 17:28 신고

    맞습니다. 댐스퀘어라는 왕궁을 둘러 싸고 4 개의 각 진 반 원형의 수로는 가장 내부는 왕궁을 보호는 해자로 지었고 밖의 3개는 왕자나 귀족들의 주택 앞에 판 것이랍니다. 최외곽 밖으로 난 긴 수로는 나중에 지었다나 봅니다. 땅이 낮으니까 수로 파기가 쉬웠던 것 같습니다.

  4.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10 17:31 신고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현지 포스팅은 이것으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 몇장 올리려면 여러번 시도를 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도 네델란드가 유럽에서 인터넷이 빠른 편이랍니다. 웹검색이나 하고 이메일 체크나 하라고 설치해 준 것 같습니다. 블로깅은 조금 무리 같습니다.

  5. 안녕하세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8.19 13:14 신고

    안녕하세요 포스팅 잘보았습니다,
    다름이아니오라, 모든 페리는 무료는 아닌가요? 저 페리만 무료인가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6.08.19 13:20 신고

      그 페리와 Zaandam 가는 페리 두 곳에서만 무료인것같습니다. 시에서 다리 대신 운용하는 짧은 거리이기때문인 것 같아요.

  6.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8.19 13:25 신고

    Rotterdam 에는 운하를 따라 긴 거리를 운행하는 페리(water bus)가 있는 데 시에서 운용해도 유료이고 교통카드로 운임을 지불합니다.

"바닷가 모래로" 에서 빨강여우와 칼바도스를 만나다

 

 

암스테르담에서 거의 정서쪽으로 "바닷가 모래로(Zandvoort aan Zee)" 라는  멋진 이름의 휴양지가 있다.   주드-켄넨머란드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휴양지다.    해안을 따라 쭉 나 있는 이 휴양촌은 요즘 휴가철을  맞아 만원이다. 

 

Zandvoort aan Zee 에는 우리 숙소의 역 Amsterdam Sloterdijk 역에서 직행 열차가 있다.   약 25분 거리다.    헤이그 방문을 전후로 세번 갔다 왔다.  한 두번 더 가 볼 생각이다.    이 국립공원의 주요 관광자원은 모래 언덕(사구 Sand Dune) 의 자연 경관과 생태계 보호가 목적이라고 한다.

 

첫날은 멋도 모르고 열차역에서 남으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남하했다가 돌아 오려 했으나 바람이 엄청 부는 날이었다.    모래 언덕에 난 길인줄  모르고 5,6 킬로 내려 갔는데  뒷바람이었다.  네델란드에 와서 처음 오라막 내리막이 있는 길을 달렸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뒷바람덕에  신나게 달렸는데 점점 겁이 났다.   원래 계획은 한 15 킬로 내려 갔다 돌아 올 생각이었으나  날이 어두어 지면서 빗방울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 6,7 킬로 달리고는 되돌아 왔다.    앞바람은 엄청 셌다.

 

오르막 언덕길에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었다.      한 두 간은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돌아 오는 길에 이 사구(모래언덕)에 사는 여우(red fox)를 만났다.      야생 여우라 사람을 피할 줄 알았지만 내가 사진을 찍으려니까 오히려 자전거길을 건너와 가까이 와서 "사진 찍으셔"  하고 포즈까지 취해 준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어 버릇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첫날은 식당이 어디에 있는  지 몰라 야외 픽닉 테이블 옆에 서 있는  생선 요리 전문 이동 키친차에서 생선 필레 접시를 사서 먹었는데  두번째 갔을 때엔  언덕아래 모래 사장 안쪽에  세워진 식당들을 발견했다.  번호가 주욱 붙어 있고 식당 이름과 번호가 쓰인 깃빨이 나브끼고 있었다. 

 

첫날 점심을 사 먹었던 이동차 키친 아래에 내려가니 9번 식당이었다.    밖으로 테이블들이 있었지만 담배 피는 족속들이 언제 담배 연기를 품어 댈 지 알 수 없어 실내로 들어 갔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가 없으면 모를까 우리 같은 사람 빼고는 안에서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집에서는 생맥주가 Grolsch 였다.   하이네켄을 빼고는 네델란드에서 잘 알려잔 큰 맥주생산자라고 한다.  맛은 괜찮았다.

 

코니는 피시앤칩, 난 호기심으로 생선 수프를 시켰는데 내 주문은 별로 였다.     바다 경치나 보면서 놀 다 갈 요량으로 후식으로 또 술이 든 음료를 주문했다.   코니는 "Kiss of Fire", 난 아이리쉬 커피.     코인트로와 위스키가 든 커피들이다.

 

술 기운이 가시면 나갈 요량으로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자전거는 별로 안타고 놀다 온 셈이다.

 

세번째는 헤이그 여행을 다녀 온 다음날 다녀 왔다.  일찍 가서 자전거를 타다가 열차역 근방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열차역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은 18번 식당이었다.     여긴 제대로 고른 식당이었다.   생선 전문 요리점이었다.    행버거 하나 빼고는 모두 해물이었다.     우리를 서빙한 나이든 웨이터는 자기네 해물은 모두 fresh 한 것이라고 몇번을 강조한다.      

 

코니는 새우요리 난 피시 필레를 먹었다.      난 요리를 먹으면서 생맥주를 0.5 와 0.2 리터 두잔을 마셨고 코니도 마음놓고 화이트 와인을 한잔 마셨다. 

 

그리고 후식으로 코니는 며칠전에 마셨던  코인트로가 든 "Kiss of Fire" 를 시켰고 나도 메뉴를 흝어 보니 Calvados 가 보인다.    Calvados Domfrontais 다.      칼바도스는 노스탈직한 브랜디다.      난 원래 브랜디를 좋아한다.   70년 귀국하기 전에는 브랜디를 잘 사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귀국후엔 그런 술을 한국에서 구할 순 없었다.   설혹 "양키장수"에게서 부탁해서 구할 수 있다 해도 그런 호사를 할 처지가 못되었다.

 

70년대 이태리 트리에스터 이론물리 센터를 방문하고 돌아 오는 길에 한병 사가지고 온 브랜디가 Calvados 였다.  아껴두고 마시지 않고 몇년을 끼고 있었던 것 같다.    Calvados 는 브랜디중에서 가장 쌌기때문에 산 것이다.   남들은  칼바도스 하면 소설 "개선문"을  연상한다는 데 난 아까워서 마시지 못하고 몇년을 끼고 있었던 싸구려 칼바도스 한병 이 생각이 난다.     

 

 

 

 

 

 

 

국리공원 Zuid-Kennenmerland 입구에서

 

 

 

바람이 매우 세찬 날이었다.

리조트 광장에서

 

 

 

Zandvoort aan Zee 북쪽 자전거길

모래덤이 안 쪽 난 자전거길이라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막에 난 자전거길 느낌이다.

 

 

 

돌아 오는 길에 빨강 여우를 만났다.

이 사막의 여우는 자생종이란다.

 

 

 

사질을 지찍으려 하니 슬근 슬근 자전거길을 건너 온다.

 

 

 

그리곤 얌전히 포즈를 잡는다.

많이 해 본 버릇 같다.

야생동물에겐 먹이를 주지 않는 게  대부분의 국립공원의 룰이다.

 

 

 

Zandvoort 중심가

 

 

 

두번째 왔을 땐 식당가가 언덕 아래 모래 밭에 이어져 세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날 점심은 9번 식당에서 먹었다.

 

 

 

 

이 식당 맥주는

Grolsch 맥주일 것 같다. 

들어 오는 입구에서 부터 이 맥주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코니의 fish and Chip

 

 

 

내가 호기심으로 주문한 fish soup 은 실패였다.

 

 

 

후식이 메인 보다 더 좋았다.

내 아이리쉬 커피엔 위스키가 들어 있다.

 

 

 

slagroom 은 whipped cream

$5 주고 산 iPhone app

Dutch-English 사전을 잘 써 먹는다.

 

 

 

백사장에서 노는 피서객은 내륙으로 걸어 올 것 없이 바닷가로 가서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다.

첫날 우리가 사먹은 음식도 언더에 있는 이런 음식차에서 사 먹었다.

 

 

 

또 다른 이동식 매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이나 다른 음료도 판다.

 

 

 

이런 음식점과 백사장이 한 5,6 킬로는 퍼저 있는 것 갈다.

 

 

 

언덕 위엔 이런 자전거길이 죽 따라 나 있다.

 

 

 

세 번째 왔을 땐 북쪽 국립공원 쪽으로 가 보았다.

 

 

 

국립공원 입구까지 모래 사장은 이어져 있었다.

 

 

 

세번 째 갔을 때엔 라이딩을 마쳤기 때문에

Zandvoort aan Zee 역사 가까운 18번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 생맥주는 하이네켄이었던 같다.

  

 

 

Zandvoort aan Zee 역 근방의 자전거길

역에서 남쪽 으로 쭉 뻗은 자전거 길이 첫날 달렸던 red fox 를 만났던 모래 언덕 자전거길

북쪽으로는 Zuid-Kennenmerland 국립공원 자전거길

다시 와 볼 계획이다.

 

 

 

18번 생선 전문 식당의 후식 메뉴

여기서 Calvados Domfrontais 가 눈에 확 들어  왔다.

Domfrontais 는 과일 원료에서 배가 30% 이상 들어 간 Calvados 란다.

 

 

 

 코니는 여기서도  "Kiss of Fire" 를 주문했고

난 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Calvados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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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05 02:18 신고

    이곳에서는 카이오디는 많이 보는데 여우는 ....신기합니다
    예쁜 여인으로 둔갑좀 해보라 하시지요 ^^ 사모님께 야단 맞을라 =3=33
    바닷물이 찬지 물속에 사람은 없군요
    그리고 한가지 이번 비행기 사고로 화란사람들이 많은 피해자였는데
    그곳에서는 조용한가요 ?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05 10:47 신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접근하는 여우도 대담하고,
    그 여우를 경계하지 않으시고 사진을 찍으시는 선생님 부부도 대담하십니다. ㅋ
    (얼마전 등산 하산길에 튀어나온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로 혼비백산 줄행랑친 아내가 생각나서..)

헤이그 기행

 

암스테르담 만큼 유명한 네델란드의 도시가 헤이그다.   그런데 헤이그는 우리의 역사에 꼭 나오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도시다.    1907년 여기서 제 2차 만국평화회(The second Hague Peace Conference)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 보다 2년전 일본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조선의 외교권을 탈취하는 을사늑약(황국사관에서는 을사보호조약)을 맺으라는 일본 각의결정에 따라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박제순과 조약을 맺었다.   고종황제가 재가하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는 이 조약은 일본의 조선 병탐의 시발점이었다.

 

이준과 동료 이상설, 이위중등 세사람은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헤이그에 와서 일본의 을사늑약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불법조약임을 알리려 하있으나 일본의 집요한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여기서 순국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교관이 자결을 했다고 본국에 알렸기 때문에 우린 그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하므로서 항의했다"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 구한말(조선이 일본에 강점되기 직전 대한 제국 시절)의 역사적  사실은 어두움에 가려져 있다.  일본의 강점이후 일본 황국사가들이 일본의 근대사를 미화하는 역사를 써 왔고 그 역사를 배운 우리에겐 그 근대사의 일본과 한말의 관계의 진상을 알기 어렵게 되었다.

 

최근의 역사연구에 의하면 고종이 재가하지 않은 을사늑약은 무효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아무리 환원주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 본다해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역사가들이 감정에 치우침 없이 객관적으로 을사 오적이라 불리우는 이완용을 위시한 이 조약에 찬성한 매국노들의 의식(뇌의 움직임) 구조를 추적 파 혜쳐 봤으면 한다.   단순히 일본이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약속한 개인적인 부와 명예때문만이었을까?  또는 신변의 의협을 느꼈기 때문일까?

 

헤이그에 와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헤이그 자전거 기행은 아침부터 해프닝이었다.

 

체인에 기름칠한 지가 얼마 지났기 때문에 기름질까지 하며 여유가 있는 줄 하고 늑장을 부리다 열차 시간에 가까스리 맞춰 프랏폼에 닿았다.    Intetercity 열차는 시간 맞춰 잘 달리다 Leiden 역에 닿자 우물 우물 거리다가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는 Dutch 방송이 나온다.    네델란드승객이이 친절히 설명해 준다.  문제가 생겨서 15분 연발이란다.     급한 사람은 Den Haag Central 에 가는 열차로 갈아 타란다라는 방송이란다.

 

자전거를 들고 타고 내리는 것이 우리에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15분이야 느긋이 기다리지 하고 앉아 있는데 또 방송이 나온다.    다시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  이 열차는 더 이상 Den Haag HS 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선로의 문제인지 열차의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차내 방송은 내려서 Den Haag Centraal 행으로 갈아 타라는 소리란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네델란드 말 방송만 해 대니 여간 답답하지가 않다.   큰 역의 플랫홈은 길어서 열차들이 서는 구간이 두 구간이 되어 있다.  우리가 내린 플랫홈의 반대편 선로에 Centraal 에 가는 열차가 들어 올 거란다.    혹시라도 놓질세라 자전거를 접은 채 들고 뛰어 왔는데 코니를 처다 보니 헬멧을 안 썼다. 

 

내리느냐 그냥 타고 기다리느냐 오락가락하다 급히 내려서 뛰어 가다 헬멧을 두고 내렸다.  자전거는 내가 지키기로 하고 뛰어 갔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온 차가 서서히 우리 편으로 오고 있다.   뛰어 갔다 해도 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탔던 열차는 움직여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와서 섰다.   옆에 있는 다른 승객에게 자전거좀 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우리가 탔던 1등칸이었다고 생각한 차안에 들어가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가 보니 다른 승객이 앉아 있었다.  헬멧 못 봤느냐니까 못 봤단다.

 

코니가 헬멧을 찾아가지고 왔다.   차장이 들어가 찾아 주었다고 한다.

  

이런 해프닝으로 우리의 헤이그 자전거 여행은 1시간은 조이 지연되었다.     우리의 자전거 라이딩의 첫번째 들른 곳은 이준열사 기념관이었다.    어느 역에서 내리건  기념관은 역사에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Den Haag Centraal 과 Den Haag HS 역은 불과 700 미터 정도밖에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타는 Amsterdam Sloterdijk 에서는 HS 역에 가는 열차만 직행이고 Centraal 에 가려면 어느 역에서간에 한번은갈아 타야 한다.

 

이준열사기념관은 헤이그 차이나 타운 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   기념관은 나오면 차이나 타운 거리의 입구에 선 커다란 문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일단 차이나 타운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침 한 중국 시당이 바닷가재 요리를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지난 여름 런던의 Queensway에 있던 해물전문 중식당에서 먹었던 롭스타 요리 생각이 나서 들어 가 보았다.

 

그 때가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으러 들어 온 줄 알고 롭스터를 시키니 자꾸 32 유로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국에서도 그랬지만 롭스터요리엔 가격이 적혀 있지 않다.   싯가라고 만 적혀 있다.    

 

맥주도 마시고 다른 음료도 시켰더니 42 유로 몇전이 나왔다.    50 유로를 주고 5유로만 거슬러 받았다. 

 

왕궁이 있는 중심가를 조금 돌고 해안 지역으로 나왔다.     중심가는 대부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관광하고 바닷가의 길을 돌아 다시 Den Haag HS 로 돌아왔다.   돌아 오는 열차도 역시 이 역에서만 우리의 숙소로 가는 직행열차를 탈 수 있다.

 

조금 긴 라이딩이었고 집에  돌아와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해가 중천에 있다.       밤 10 시나 되어야 해간 진다.  그래도  하늘은 원하다.    11시 가까이 되어야 깜깜한 밤이 된다.    벌써 7월 하순 8월초로 접어들었는데도 그렇다.

 

 

 

 

 

헤이그 이준열사 기념관

 

 

 

 

이준열사 기념관은  Haag Centraal(윗쪽) 이나 Haag HS 역사에서나 걸어 갈만한 거리에 있다.

 

 

 

 

기념관 안에서 원장님이 찍어 준 한 컷

 

 

 

 

이준 열사 기념관은 헤이그 차이나 타운 입구 직전에 있다.

헤이그 차이나 타운에서 한 컷

 

 

 

 

랍스타 요리를 먹으려 광동 식당이란 중식집에 들어 갔다.

 

 

 

 

헤이그 중앙역

  

 

 

 

헤이그 중앙역 앞은 넓은 상가 광장이었다.

 

 

 

 

헤이그 왕궁 뒷켠의 공원 광장에 선

골동품 벼룩시장

 

 

 

 

황군 뒷켠의 호수와 분수

 

 

 

 

왕궁에 서 있는 네델란드 어느 선대 왕의 동상

 

 

 

 

미국 LA의 Marina Del Ray 를  연상시키는 헤이그  마리나

식당가도 즐비했다.

 

 

 

 

마리나를 벗어나 조금 시내길을 달리니 해변 공원길이 나 있었다.

여기도 모래덤이(sand dune)가 쌓여서 언덕이 조성되었다.

해변가엔 음식점이 있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쉬어 갈 겸 해변으로 내려왔다.

간단한 음료를 사서 미시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여긴 위도가 높아 9시 반이 되어도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다.

돌아 와서  호텔창문에 내다 본  암스테르담 해너미

 

 

 

 

이날 자전거 기행의 기록

 

 

 

 

이날 우리가 돈 자전거 자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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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04 07:51 신고

    랍스터가 살이 많아 보입니다
    챠이나 타운이 가로등 외에는 챠이나타운 분위기가 아니군요
    제가 본곳은 복잡하고 너절한 것으로 분위기가 비슷비슷한데요 ^^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8.04 09:40 신고

    헤이그 이준열사 기념관 구경 잘 했습니다.
    백야현상이 암스테르담도 해당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Vlissingen 기행

 

 

 

7 월 18 일과 19일은 여기에도 여름이 왔다.   최고 31도 32도를 넘나든다.   단 습하지 않아서 서울의 폭염과는 체감온도가 다르다.    작년 영국 여행때에는 7월달에 머믄 아파트나 8월달에 머믄 아파트 모두 서향에 에어컨이 없어 정말 더웠는데  여기 아파트는 작년에 지은 아파트라 그런지 에어컨이 되기 때문에 더우면 나가지 않으면 된다.

 

18일은 어디에서간에 자전거 타기엔 너무 덥다  또 그 날은 방청소를 해 주는 날이라 방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열차로 암스테르담에서 서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Vlissingen 에 가 보기로 했다.  Intercity 라는 국내 급행이 우리 역에서 거기까지 가는 직행이 있다. 

 

이 열차는 공항역(스키폴) 헤이그,  롯테르담등 큰 역을 지나간다.    

 

Intercity 1등칸은 에어컨이 된다는 사살을 알았기 때문에 시원한 객석에서 차창풍경이나 구경하면서 갔다 오면 하루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레일패스를 사가지고 왔으니 이럴 때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봤자 티켓값 다 합쳐도 패스값이 나오지 않겠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올라 탈 수 있는 것이 편해서 패스를 산 것이다.

 

짧은 구간을 다닐 때에는 검표를 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 구간은 두 번 검표원이 지나갔다.  1등칸은 우리말고 한 두사람 타고 내렸다.    3시간 안 걸리는 구간이니 티켓을 산다면 굳이 1등표를 사지 않는다는 것을 북유럽 여행때에도 작년 영국여행 때에도 경험한 일이 있다.   단 짧은 구간에서는 일반열차(sprinter) 경우 2등승객이 1등객실에 밀려 들어 온다.  일반열차의 경우 승객이 많으면 검표를 할래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종착역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그래도 그 땡볕에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타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인다. 

 

점심을 먹고 산책겸 해안 자전거길에 나가 보았다.   네델란드는 뚝을 쌓아 땅을 넓힌 나라라 어디를 가도 수로가 나 있다.  수로엔 열리는 다리를 놓아 자전거와 보행인이 걸어서 건너게 되어 있다.   내륙에서 보트가 바다로 나갈때 다리가 열련다.   다리는 마치 수로에 가로 놓인 문과 같다.

 

너무 더워서 멀리 걷지 않고 돌아와 열차를 타고 귀가했다.  

 

wifi 가 되는 칸이란 표시가 있었지만 해안으로 향한 열차에서는 와이파이가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오는 열차편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졌다.   단 사용하지 않고 15분 경과하면 연결이 끊긴다.  

 

돌아 오는 길에는 스키폴 공항역에 내려 쇼핑을 조금했다.  공항프라자엔 수퍼까지 있어 식료품 사러 올 수도 있다. 그 비싼 유레일 패스는 이렇게라도 써야 조금 덜 아깝지 않겠나하는 생각이다.

 

 

 

 

 

 

 

 

 

 

Intercity 1등칸이 일반 열차(sprinter)와 다른 점은 객석이 3열이다.

 

 

 

 

 차창풍경

 

 

 

 

 롯테르담 중앙역

암스레트람에서 한 1시간 거리다.

 

 

 

 

Vlissingen 근방에 오니 수로와

 수로에 나란히 난 자전거길이 보인다.

 

 

 

 

수로엔 보트들이 많이 떠 있었다.

 

 

 

 

역사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웨이터에 부탁해서 한 컷

 

 

 

 

맥주잔에 0.5 L 란 가로 표시줄이 그어져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 마시는 사람이나

손해 보지 않아 좋다.

 

 

 

 

양이 참 푸짐하다.

감자를 좋아하는데 빵대신  감자를 줘서 고마웠다.

너무 많아 다 먹을 순 없었다.

 

 

 

 

생선 접시도 생선 한 쪽은 남겼다.

 

 

 

 

해안 자전거 도로

 

 

 

 

내륙에서 바다로 나가는 소운하

 

 

 

 

시골역이라 역사는 자그마했다.

오른 쪽이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

 

 

 

 

돌아 오는 길에서

 

 

 

 

우리역에서 블리싱건까지 가는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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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7.23 10:47 신고

    수로와 나란히 난 잔차길을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낌니다
    물은 깨끗한지요 매미 소리가 날것 같은 시골길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