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생
한 인생
내가 막내라 당연하겠지만 625 때 행불된 내 하나뿐인 형과 바로 손윗 K 누나를 빼면 6남매 동기는 모두 세상을 떴고 행불된 형과 누나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 달 후면 89번 째 생일을 맞게 되는 나이가 되다 보니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아지니 내 삶에 대해 돌아 보는 일이 자주 생긴다.
오늘 "엄마 친구 아들" 드라마를 끝냈다. 넥플릭스 드라마는 실망시키는 일이 거의 없다. 한국 드라마로 넥플릭스가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헛 말이 아닌 것 같다.
판타지나 타임 슬립같은 허황한 이야기도 그럴 듯 하게 잘 만든다. 바로 전에 본 드라마가 "환혼"이라는 드라마였는데 판타지 치고는 잘 만들었다.
한국 드라마가 재미 있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나 우리 말도 한 구실을 한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역사가 순탄하지 않았던 때문에 이야기 거리가 많이 생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 하나 하나가 그 살아 온 삶도 각색을 하면 한 편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아마도 쉽게 비교하기 힘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내 초년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철 모를 때 "미요토오 카이노 소라 아케떼"라는 일본 군가를 따라 부르며 셋 째 누님이 귀여워 죽겠다고 일기장에 남겼으니 난 세상 모르게 행복한 유아기를 보냈다.
그것도 잠간 일본 군국주의 최고조기를 맞으며 일본은 중일 전쟁을 시작했고1941년 12월 8일(일본시간) 진주만 공격으로 일본 군부는 태평양전쟁으로 확전시켰다.
그리고 철 모르던 내 유년기의 행복은 그 때 끝이 났다. 나는 소카이로 내 출생지인 오사카를 떠나야 했다. 나만 홀로 양주에 사는 제일 큰 누님집에 단신 보내졌다. 의정부 역에서 내려서 매형 집인 신곡리에 걸어 가는 중이었다.
중랑천의 상류인 신곡천의 신곡교를 건널 때 나는 손을 잡고 가던 큰 매형에게 "니짱(형님) 덴샤 노루?"하고 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 어쩌면 장기기억은 선별적인가? 그 시골에 전차가 다닐 이 없건만 철없는 처남은 다리가 아팠던 걸가?
생후 9년 지난 초등학생이 갑자기 부모와 떨어져 시집살이 하는 사돈집에 내어 던져졌으니 그 때 부터 나는 철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이듬해 조선은 해방을 맞았으나 부모와 손윗 누나 K와 재회한 것은 아마도 그 해 늦가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1년 반을 부모와 해어져 살았다.
부모 품에 돌아 온 것도 잠시 해방 이듬해 귀국한 아버지는 3월 초하루 갑작스런 병으로 자리에 누운지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으로 1주일 만에 세상을 떴다.
초년 고생은 돈 주고도 산다고 한다.
내가 내 삶을 돌아 보면 아마도 나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