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나의 문리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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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리대 시절

 

고3이 되던 해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전쟁 고아나 다름없던 나는 고심 끝에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서 공부까지 공짜로 시켜주는 해군사관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사관학교는 내가 물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못되었다.  나는 미련한 방법으로 학교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군법회의까지 받는 고초를 겪고 결국 내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하마터면 못 올 뻔 했던 길을 걸어왔다. - 그 무서웠던 운명의 갈림길)

해사시절 뒷줄 오른편에서 두 번째가 필자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한한다.  

 

아마도 내 서가에 아직도 꽂혀 있는 가장 오래된 책은 내가 고3일 때 청계천 헌 책방에서 산 MIT 교수인 Slater가 쓴 Chemical Physics의 일어 번역반 "化學 物理學"책이다.   그 페이지 뒷 안 겉장에 서울대 물리학과라고 쓰여 있다.  고3일 때 이미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것처럼 이 책의 주인 이름을 적어 놓았다.    물리대 화학과의 선배가 헌 책방에 내다  판 책인 것 같다. 

 

 

미국 MIT 교수가 쓴 Chemical Physics 책을 일역한 化學 物理學 표지

 

 

1953년 6월 30일 때 산 화학물리학 책 뒷 겉장에 건방지게 고3 주제에 "문리과 대학 물리학과"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그 꿈은 1년 늦게 이루어진 것이다.   입학하고 받은 첫 학생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55년 4월1일에 입학하고 받은 학생증.  조잡하기 그지없지만 위조방지용 철인이 상단 우측에 찍혀 있다.  

 

내가 갑자기 문리대 시절의 추억을 되씹게 된 것은 오늘 아침 내가 좋아하는 TV프로인 JTBC의 슈퍼밴드 2의 2회를 다시보다가 생각이 난 것이 있어서다.     

 

그땐 참 가난한 때였다.    전쟁이 끝난 지 2년 남짓,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도 교사가 반파된 상태로 남아 있는 건물의 교사만 쓰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음악 같은 것은 들을 기회가 없었다. 

 

오늘 슈퍼밴드에서 한 참가자가 "마왕"을 전자악기와 전자기타로 연주했다.      내가 언젠가 문리대 시절 중급 독어에서 "이회영"교수에게서 마왕을 배웠다.    괴테의 시 "마왕"이 너무 좋아 그 시를 통째로 외워 버렸다.   영어나 국문은 외운 것이 많지만 독어의 시 하나를 통째로 외운 것은 "마왕"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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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의중에 물리학이나 수학 이외의 과목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이회영(李檜永) 교수의 중급 독어였다.

 

거기서 배운 괴테의 시 마왕(ErlKoenig)은 외워서 지금도 앞 몇 줄은 기억하고 있다.  Wer reitet so spaet durch nacht und wind?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이렇게 바람 부는 늦은 밤에 누가 말을 타고 갈까요?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란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273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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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시에 곡이 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처제가 성악을 해서 "마왕"을 불렀다는 것을 아내에게 듣고서 슈베르트가 그 시를 위해 작곡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괴테의 시를 달달 외우고 있으면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들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대학 시절 내 베프였던 L은 전에 여러번 이 블로그에 올린 일이 있다. 

 

L과는 대학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난 혜화동 누님 집에 살았고  L은 이화동의 커다란 한옥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대학을 가운데 두고 거의 같은 거리의 난 북쪽,  그는 남쪽에 살았던 셈이다.   대학 천변(지금은 복개되어 사라진)을 오가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언젠가  2012/07/11 - [이것저것/오카리나, 음악] - 오카리나 - 더 바빠진 나의 일상 에 적었던 그 L 이란 친구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224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L의 집은 꽤 잘 살 던 집이라 그 집에는 유성기가 있었다.    아직도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유성기는 축음기의 옛 이름이다.   유성기 라야 전축이 아니라 손으로 태엽을 감아서 유성기 판을 돌리는 그런 구식 유성기였다.   그런데 그가 틀 수 있는 고전 음악은 드볼작의 유모레스크가 전부였다. 그래서 이화동 L의 집에 가면 의례 유모레스크를 들었다.

 

내가 문리대에 들어 가던 해에 문리대 앞에 "학림"이란 다방이 생겼단 얘기를 쓴 일이 있다.  거기서 늘 토스카의 "별을 빛나고"를 듣곤 했다. (비 오는 날의 데이트 - 옛 추억)

 

그게 내 대학시절의 고전 음악을 들었던 전부였다.   

 

며칠 전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최초의 국가라고 자랑하는 유튜브 소식을 들었다.   이젠 우리는 듣고 싶은 음악에 있으면  유튜브를 검색하면 아무 음악이나 찾을 수 있다.   참 좋은 세상까지 왔다.

 

 

 

슈퍼밴드의 참가자 발로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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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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