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2019/09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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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9.13 내 고향 시애틀 (4)
  2. 2019.09.10 희대의 가짜 뉴스 이야기 (4)


2019년 추석날에 10년전 시애틀에서 맞았던 추석날 추억을 되새기며  


10년전에 썼던 글입니다.




시애틀 내 고향


한국에서는 추석 연휴에 귀향하느라고 난리였을 것이다.


귀향은 원래 인간의 본성인지 모른다. 태어 난 곳, 자란 곳, 놀던 곳을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다시 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는 소망이니 말이다.


한국사람들에겐 추석의 귀향은또 다른 이유나목적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에겐 그 아무 것도 없다. 부모님도 안계시고 장모님 한분 생존해 계시지만 서울에 사시니 귀향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서울에 있으면 많은 점포가 문을 닫아 텅 빈 거리가 쓸쓸하게 느껴질볼뿐이다.


심심풀이로 티비를 틀면 추석 특집이라고 떼떼옷을 입고 나온 아나운서 연예인들이 명절 때면 늘 하던 짓들을되풀이 하는 것을 본다. 정말 흥겨워서 그런지 지어서 흥겨운척 하는 건지멀리 딴 세상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난 명절이 흥겹기 보다는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진다.


굳이 추석을 피해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재작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추석을 여행중에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올해 추석은 시애틀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시애틀은 우리의 고향이다. 지금 사는 서울을 빼고는 따로 고향이 없으니 시애틀이 고향과 같다.


1960년 8월 22일 태평양을 건너 고국을 떠나 대학원생활을 시작했고여기서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큰 아들까지낳았으니 고향과 같다. 거의 7년을 살았다.


둘다 학생인 시절엔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2년후 코니가 먼저 석사학위를 받고 librarian 이 되었고 UW 극동학과의 한국학 초대 librarian 이 되면서 우리의 생활은 컹충 업그래이드 되었다.


고생도 했고 즐거움도 있었다. 내 박사학위 논문이 끝날 쯤 계획해서 큰 아이도 낳았다.


학위후 Post Doc 과정도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Canada 의 Vancouver(Univ. of British Columbia) 에서 했으니 시애틀에 자주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귀국할 때까지 근 10년을 시애틀과 Vancouver 에서 산 셈이다.


고생했던 추억도 달콤했던 추억도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니 고향이라 불러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올 추석에 고향에 오게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이 5번 지냈는데 변하지 않은 것도 많이 있었다.


지난 화수(21일22일) 이틀간 우리는 Univ. of Wash.근방을 자전거로 산책을 했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시애틀의 명물인 자전거 전용도로

Burke-Gilman Trail

이 길은 학교(UW) 남쪽을 지난다.




Burke-Gilman Trail 은 학교 남쪽 으로 이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나간다.

캠퍼스 남단에서 북쪽을 보며


나중에 학교 안을 둘러 보니

학교 건물들은 개축과 신축이 너무 많아

어디가 어딘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남단 경관과 건물만은 변하지 않았다.

멀리 분수는 여전히 시원한 물줄기를 뿜고 있었고

양쪽으로 보이는 건물 둘은

겉모양은 그대로 였다.

오른 쪽이 내가 다녔던

물리학과 빌딩

(Physics Hall)이 었고

왼쪽은

Johnson Hall로 당시에는

생물학과(동,식물학과)

들이 쓰고 있었다.




이 표지판은

1909 6월 1일 부터10월 16 일까지 열렸던

알라스카 유콘 태평양 박람회(ALASKA-YUKON-PACIFIC EXPOSITION)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 한다.

시애틀은 인디안 추장의 이름이고

이 도시의 역사는

알라스카와 유콘 탐험의 전초기지역할을 하면서 발전했다.

Jack London의 개 이야기

<Call of Wild> 인가 하는 책을 보면

Alaska 의 금광맥을 ?i아 가는 탐험가들이

여기서보급품과 개(썰매개 Husky)를 사가지고 배를 타고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UW 의 마스콧은 Husky 다.




분수의 북쪽에서 남쪽을 보며

이 분수는 날이 좋으면 이 분수 물줄기 넘어 Mt. Rainier 가

보이게 설계되었다.

그날은 날은 좋았지만

Mt. Rainier 정상 부근에 구름이 끼어

산을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Mary Gates Hall 이 된 옛날 Physics Building

Mary Gates 는 Microsoft 창업자 Bill Gates 의 어머니다.

이 학교 졸업생이고 이 학교 이사회 이사였던 어머니를 위해 Bill Gates 가

기부하여 내부를 완전히 리모델링하여 Mary Gates Hall 로 개명했다.

Computer 인지 Commuciation Science 인지 학과의 실험실과 교수실로 쓰고 있었다.

내 자전거가 놓인 출입문은이 건물의 주 출입문이고

3층 동쪽편에 큰 방이 있었고

대학원 1년생들인 실험조교들이 공동으로 쓰는 방이 있었다.

코니와 연애시절 이 문앞에서 우리 둘이 자주 만났다.

언젠가는 김치와 장조림을 담가 가지고 와 이 문앞에서 내게 준 일도 있었던 같다.


이튿날인 22일은 학교 밖 우리가 살 던 곳을 둘러 보기로 했다.




Burke-Gilman 자전거 도로는

15th Ave.를 건너게 되어 있다.

우리는 건너지 않고 쭉 북상했다.

15가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15th Ave에 나 있는 학교 서문 과 대각으로 마주 보는 이 건물이

Commodore Dutchess Apt. 다.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는 20세 이상의 학생만 들어 갈 수 있다.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오른쪽 Dutchess 의 1 Room 에 들어가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나중에 코니가 졸업하고 취직을 한 다음 왼쪽의

1-bed room 으로 옮겨 갔다.

Postdoc 으로 취직이 되어 학교를 떠날 때까지 큰 아이도 낳고 여기서 6년 넘게 살았다.

정든 곳이다.

1997년에 왔을 때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4005를 보니 너무 반갑다.

포오오파이브 (4005)

피프틴트 노스이스토(15th NE)

시애틀 워싱톤

98105

USA

우리가 살 때 서울에 편지하려면 써 넣던 주소가 아직도 입에서 술술 나온다.

zip code 까지 기억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물리학과 건물 뒤에 있던 HUB 건물은 재단장을 위해 닫아 놨다.

그리고HUB 는 Condon Hall 로 옮겨 갔다.

그런데 HUB를 검색하다 재미 있는 것을 발견했다.

HUB에 Bike Shop 이 있다는 것이다.

옮겨 간 곳에도 Bike Shop 이 있었다.

이 학생회관 Bike Shop 은 학생 교수 직원에게만 개방된다고 써 있었다.

학생에게는 10% 할인도 해 준다고 써붙여 놨다.

타이어 공기압도 점검하고 체인에 기름질 해야 하나 점검해 달라고 했다.

타이어 바람도 넣어 주고 체인에 기름질도 해 줬다.

돈좀 주려했더니 굳이 안받겠단다.

어쩌면 사이클 클럽 학생이 자원 봉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됐다.

우리가 60년대 학교를 다녔다고 했더니 그랬나?

고마운 일이다.




45th St. 와 University Way 교차점

이 모퉁이에 <Martin Eckman> 이란 조금 고급 남자 옷가게가 있었다.

지금은 <American Apparel> 인가 하는 역시 옷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University Ave 다음 길은 Brooklyn Ave. 다.

45th St. 와 Brooklyn Ave. 모퉁에에는 <Neptune>이라는 영화관이 있었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영화관이 그 옛모습 그대로 서 있으며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기에 지겹도록 많이 갔었다.

Neptune 영화관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날 밤늦은 시간에 우리 앞자리에 한국말을 하는 초딩 어린이 둘이 나란히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었다.

고려정집 정씨 아들 형제였다.

그 중 하나가 나중에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University Way 와 47th 쯤에

Pay'nSave 라는 저가품을 취급하는 대형 잡화점이 있었다.

뒤쪽 주차장은 Brooklyn Ave.다.

1997년에 왔을 때 여전히 싸구려 잡화점이었는데 지금은 비어 있는 듯

임대 패말이 붙어 있었다.

내가 여기를 굳이 찾아 온 이유는

1968년인가 69년에 50cent 짜리 Made in Korea 싸구려 와이셧츠를 처음 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눈물이 너무 나서 이 주차장으로 숨어 나와 펑펑 울었었다.

1953 년 휴전이 되었지만

떠나 오던 1960년도

한국은 <가난> 그 자체였다.

뭘 만들어 선진국에 팔 수 있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었던 때였다.

그런데 미국 상점에서 비록 싸구려지만 한국제 상품을 처음 본 것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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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09.26 20:48

    비밀댓글입니다

  2. 듀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07 09:18

    잘 보았습니다. 감동도 있었구요.

  3.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07 21:39 신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대의 가짜 뉴스 이야기

 

광란의 한달이 갔다.  귀국한지 며칠 지났지만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나이 탓인지 시차 적응도 전 보다 시간이 걸리고 가짜 뉴스의 광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어제로 일단 그 종말을 맞았다.   아직도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 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원주의 시각에서 보면 화를 낼 것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종교의 종말"을 쓴 Sam Harris 의 명언을 되 새겨 보자.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일으킨 재앙과 9/11 이 일으킨 재앙은 비슷한 규모인데 두 재앙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엄청히 다르다.    카타리나의 재앙에 대해서 그 누구도 기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단지 복구에 최선을 다 할 것만 강조했다.   그런데 9/11 에 대해서는 "테러와의 전쟁" 을 선포하면서 복수의 "광란"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다쳤는가 묻는다.   "증오"는 "독"이다라고 말한다.  개인을 망가트리고 사회를 망친다.  

(“Compare the response to Hurricane Katrina,” Harris suggested, with “the response to the 9/11 act of terrorism.” For many Americans, the men who hijacked those planes are the embodiment of criminals who freely choose to do evil. But if we give up our notion of free will, then their behavior must be viewed like any other natural phenomenon—and this, Harris believes, would make us much more rational in our response.

Although the scale of the two catastrophes was similar, the reactions were wildly different. Nobody was striving to exact revenge on tropical storms or declare a War on Weather, so responses to Katrina could simply focus on rebuilding and preventing future disasters. The response to 9/11, Harris argues, was clouded by outrage and the desire for vengeance, and has led to the unnecessary loss of countless more lives. Harris is not saying that we shouldn’t have reacted at all to 9/11, only that a coolheaded response would have looked very different and likely been much less wasteful. “Hatred is toxic,” he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Losing belief in free will undercuts the rationale for ever hating anyone.”)

 

지난 한 달의 광분은 바로 나를 포함한 개개인에게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을 주었고 사회는 반 쪽이 나는 분열을 가져 왔다.   역사는 자연 현상이라는 환원주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광분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낭비였다.  

 

뭔가가 잘 못 되었다면 이성으로 돌아와 합리적 해결책을 머리를 맞 대고 짜면 되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공격하고 광분해서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허리케인이 또 오면 어떻게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를 머리를 맞 대고 연구하고 방안을 짜는 것이다. 

 

이성으로 돌아오라고 나는 외친다. 

 

광란에 휩싸였던내 블로그의 독자를 위해 희대의 가짜 뉴스를 하나 소개하고  끝 맺으려 한다.  내가 전에 어쩔 수 없이 ET 이야기를 쓰게 된 이야기를 올린 일이 있다. 

 

 

 

경향잡지에 실렸던 내 ET 이야기

 

 

이 글은 원래 실렸던 것 보다 훨씬 축약된 버전이다.  원 버전은 엑스포 책자로 나왔고 그책자는 사라졌다.  나도 원고가 없으니 여기서 재현할 수 없다. 

 

그 때 내가 썼던 가짜 뉴스 이야기를 대강 더듬어 아래에 소개한다.

 

지금 부터 184년 전인 1835년 8월 21일 뉴욕에서 발간하는 "The Sun" 이라는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가 실렸다.  달에 생명체가 발견되었고 그 일부는 문명을 건설했다는 기사가 곧 실릴 것이란 광고였다. 

 

그리고 6 편의 연속 기사가 올라 왔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쉘 경(Sir John Herschel)이  최첨단 원리를 이용하여 어마무시한 망원경 (an immense telescope of an entirely new principle) 을 제작하여 달을 관측한 결과 달에는 박쥐 비슷한 날개를 단 사람  모양의 생명체가 관측되었으며 그 외에도 지구상의 생물 비슷한 생명체가 여러 종류 관측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는 그 망원경은 잘못하여 태양광이 들어와 망원경 안의 초첨에 고열을 발생시켜 폭발하여 천문대가 모두 소실되어  더 이상 관측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로 뉴욕의 "The Sun" 지의 구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 기사는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자기 이름이 도용된 영국의 천문학자 허쉘경이 이 소식을 들은 것은 한 참 뒤였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처음엔 그저 장난이려니 하고 웃어 넘기려 했으나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전 세계 기자들과 방문객이 쇄도하는 바람에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가짜 뉴스라고 "The Sun" 지에 정정기사를 내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The Sun" 지도 결국 그 기사가 가짜 뉴스라고 정정하였지만 그 가짜 뉴스는 그 냥 퍼져 나갔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짜뉴스에 더하여 또 다른 신문이나 잡지가 달에 외계인이 산다는 가짜 뉴스를 또 지어 퍼뜨리는 바람에 이 가짜 뉴스는 한 동안 잠잠해 지지 않았다 한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가짜 뉴스는 그냥 믿는 것이다.   달에 대한 이 환상적인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믿고 싶은 로맨틱 환타지가 되어 퍼지고 그 것이 돈 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안 저질 신문이나 잡지는 계속 가짜 뉴스를 지어 퍼뜨렸던 것이다. 

 

 

달 위에 산다는 ET

 

 

1835년 "The Sun" 지에 실렸던 달의 풍경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은 가짜라도 믿는다.   그 것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가짜 뉴스를 믿는 것은 좋다.  어차피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뇌의 구조가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짜 뉴스를 믿고 미움(hatred) 을 키우지는 말라.

 

“Hatred is toxic,” he(Sam Harris)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Sam Harris의 글 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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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0 20:39

    잘 다녀오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2.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1 00:45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심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