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드립니다. 아래 층에 같이 살고 있는 암호학하는 제 두 째도 거기에 있는데 서로 알게 되겠네요. 분야가 비슷해서. https://cs.kaist.ac.kr/people/faculty?kind=&gubun=&gubun_lang=ko&research_area=&keyword=%EC%9D%B4%EC%A3%BC%EC%98%81&radio_lang=ko
어제는 서울에 대(?)설이 왔고 실내 자전거도 왔다. 지난 주말에 주문했는데 수요일 배송한다고 해서 이 번 주말에나 받을 줄 알았는데 배송일 당일에 도착했다. 그런데 밖은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
2008년 3륜을 산 다음 쓰지 않게 된 HopperK 리컴번트 자전거를 컴퓨트레이너로 설치했다. 10년 가까이 쓰다가 몇 년 전 손자 손녀가 커졌기 때문에 방을 내 주기 위해 치워 버렸다.
컴퓨트레이너를 처음 설치하고 방 도배도 자전거 그림으로 바꿨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늘 실내 자전거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코로나, 혹한, 미세먼지 따위로 외출이 어려울 땐 컴퓨트레이너 생각이 자주 난다.
물론 워킹패드도 좋다.(KingSmith WalkingPad R1 이 왔다.) 항상 한 50분 내지 1시간 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4,50분 4킬로 넘게 걷는다. 그중에서 한 10분은 6 kmh로 걷는다. 그럴 땐 아무리 추워도 땀이 난다. 맥박을 재어 보면 연령대 최고치의 80% 까지 올라간다.
코니도 30분씩 걷지만 컴퓨트레이너 생각이 나는지 실내 자전거 얘기를 자주 한다. 그래서 알아보았는데 우리가 컴퓨트레이너로 썼던 호퍼와 아주 비슷한 실내 자전거가 있었다.
바디엑스라는 제품인데 안장이나 등받이가 리컴번트 호퍼와 비슷하게 생겼다.
문제는 설치할 공간이었다. 이 것도 접이식이라 사용하고 작게 접힐 수는 있다. 그러나 무게가 만만찮아 그렇게 사용하기는 어렵다.
이 물건을 본 지는 한 두달 되었다. 며칠 전에 결단을 냈다. 침실 거울 앞에 공간을 쓰기로 한 것이다.
배송 포장용으로 모두 분해해서 왔다. 둘이서 조립 설명서를 보면서 조립 설치했다.
침대와 체경사이에 놓았다.
아이패드에 경치좋은 자전거길 유튜브를 찾아서 한 한 시간 달리면 옛날 컴퓨트레이너 비슷한 기분이 날 수 있으려나?
저녁에 손자와 손녀가 올라와 옥상 데크에서 눈 장난을 치겠다고 한다.
둘이서 눈 사람 둘을 만들어 놓고 갔다. 오늘도 낮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니 눈이 녹지 않고 그 냥 남아 있다.
옥상 데크에 쌓인 눈. 실내 자전거를 포장했던 상자로 설매를 만들었는데 미끄러지 않는다.
손자와 손녀가 만든 눈사람 둘
낮에 왔기에 한 컷
작년 동짓날 해돋이를 찍으려 했는데 기상청 일출시간 보다 1시간 반은 늦은 8시 반 넘게 되어서야 건너편 건물 사이로 해가 돋았다. 그래서 다음날 (12월22일)그 시각(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오전 8:37:37)쯤 기다렸다. 찍었다.
섣달그믐쯤엔 항상 글을 썼다. 그래서 작년(2019) 그믐엔 무슨 글을 썼나 했더니 "동북아의 미래 - 꿈을 꾸어 본다."였다. 아마도 작년의 가장 큰 이슈는 한일 역사논쟁에서 유발한 한일 무역 갈등이었기 때문에 동북아의 평화를 염원하며 쓴 글일 것이다.
올해는 뭐니 뭐니 해도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19 사태이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2월 말에서 3월 초에 터진 신천지 사태는 무서운 위기감으로 다가왔었다. 다행히 그 사태는 세계가 주목하는 K 방역으로 종결하여 한국을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는 계기로 만들었다.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신천지 사태를 "저리가라" 할 만한 코로나 사태가 또다시 발생했다. 하루 천명 안팎의 새 확진자가 나오는 사태가 3주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번 사태도 새해 정월달에 정점을 찍고 극복하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코로나 19 와중에 총선도 치루었고 수능도 치렀다. 다행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이슈는 디젤자동차 현대 맥스크루즈를 처분하고 오토파일럿이 있는 전기차 테슬라 모델 S를 산 것이다.
그러나 요즘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며느리가 몇 번 끌고 나간 것 이외에는 차고에 그냥 서 있다. 요즘 같은 때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1주일에 한 번은 가던 양재동 이마트 쇼핑도 안 간다. 전기차라 배터리 방전 걱정이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에 1%씩 배터리가 소진한다. 자동차 안의 컴퓨터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60% 때로 떨어지면 충전기를 꼽아 놓으면 심야전기로 충전을 해 주니 정말 편하다.
2020년은 내 면허가 만료되고 갱신해야 하는 해라 그 때를 기다려 자율주행차를 사려고 벼르고 있던 터였다. 내 계획대로 자율주행에 가장 앞 선 테슬라를 구매한 것이다. 내 운전면허는 1년 자동 연장되었다. (모든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기간이 1년 연장)
코로나 19가 아니였다면 얼마 전에 "시뮬레이션(테슬라로 제주도 여행 계획)"을 한 제주도 겨울나기 나들이를 했을지 모르지만 코로나 19가 지금 극성을 부르고 있으니 이런 여행은 꿈도 못 꾼다.
또 하나 큰 변화는 경량화 브롬턴을 처분하고 삼천리 마이크로 팬텀 접이식 전기자전거를 산 것이다.
스탠드가 있어 세우기 쉽다.
아내의 것을 사가지고 창고에 들여놓던 날 아내가 발가락을 다쳐 깁스를 한 3주 하는 바람에 시승도 못했다. 그리고는 코로나 19가 폭발했고 날씨는 자전거를 타기 나쁜 계절로 접어들었다.
날씨가 따뜻하면 공기질이 최악으로 치닫고 공기가 좋으면 날씨는 너무 춥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19로 나 다니기도 무섭다. 우리야 말로 코로나 19의 최 취약계층이니 걸렸다 하면 사망확률이 20~30%이니 조심하는 것이 최고의 방어다.
워킹 패드는 정말 잘 샀다. 매일 4 킬로 넘게 걷고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답답은 하지만 그렇게 겨울을 나고 2월이면 백신도 맞을 수 있다니 기다리고 있다. 다만 파이저나 모더나는 피해야 한다. 난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체질이라 그 백신을 맞을 수 없다.
2020년 12월 13일 서울에는 첫 눈이 내렸다. 내 서재에서 내다 본 옥상 데크에 얇게 깔린 2020 섣달에 내린 서설
새해에는 코로나 19도 잡고 다시 활발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활기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미국 UW의 박사과정에 있을 때였다. 왠지 모르게 귀에 염증이 생겨 학교 infirmary(보건소)에 갔다. 진단을 한 의사는 나에게 페니실린을 사용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난 미국에 오기전에 무슨 일 때문이지 동네 병원에서 페니실린을 맞은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얀 우윳빛 같은 액체인데 꽤 큰 병에 담겼던 같은데 상당한 분량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에 주사를 맞은 일이 있다고 하자 페니실린을 처방해 주고 infirmary 부속 약국에서 사서 먹고 곧바로 가지 말고 한 시간 infirmary에 머물다 가라고 했다. 이상이 있으면 자기에게 다시 오라고 한다.
난 약국에서 페니실린 정제를 사서 한 알 먹고 복도로 나오는데 몸의 상태가 이상하였다. 그래서 나를 진료한 의사에게 갔는데 머리에 별이 몇 개가 보이고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난 내가 죽는구나 하고 직감했다. 죽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결혼하고 4,5년 되었고 박사논문 준비 중이던 때였으니 아마도 1965년이나 66년이었다. 아내 생각보도는 아 이 대로 죽으면 내 논문은 어떻게 되나 가 마지막 떠 오른 생각이었다.
나중이 알고 보니 아마도 토했던 것 같다. 그리고 페니실린 잔류분을 제거하기 위해 위 세척까지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는 의식이 돼살아났을 땐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가 한 시간이면 들어와 내 혈압을 재고 갔다.
페니실린을 복용한 것은 낮 2시경이었는데 밤 12시에도 간호사가 혈압을 재러 왔다. 매우 심각한 얼굴이었다.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밤을 지내다가 아침을 맞았다. 간호사 이야기가 내 혈압이 자꾸 떨어져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며 죽었다 살아온 사람을 대하듯 하였다. 전날 밤 자정이 고비였다고 한다.
사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 온 것이다.
3일 후 다시 infirmary를 찾았을 때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생환한 사람 대하 듯 반겨 주었다. 그리고 온몸에 난 두드러기는 1주일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의사가 하는 말에 내 지갑이나 신분증 두는 곳에 페니실린 쇼크가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여 넣고 다니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병원에 가던 제일 먼저 페니실린 쇼크가 있다는 사실을 내 의무기록에 적어 놓게 하라고 충고했다.
두 번째 경험은 몇 년 후 큰 아이를 낳고 나서다.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아기가 무슨 일 었던지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물약을 받아가지고 왔다. 아침저녁으로 한 술씩 떠 먹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히 애기가 약을 삼킬지 어떨지 몰라 맛이 어떤지 새끼손가락으로 스푼에 옮긴 물약을 찍어 맛을 봤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가빠지고 두근대기 시작했다. 페니실린 쇼크 생각이 났다. 아내가 즉시 소아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약의 성분을 물어봤다. 페니실린이란다.
두드러기도 났다. 그래서 다시 알레르기 전문병원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봤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고 한다.
그땐 더럭 겁이 났다. 결혼하고 아기까지 있는 몸인데 내가 이대로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mortal fear라는 말이 있다. 죽을지 모른다는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다. 혈압계가 집에 없으니 재어 볼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자정이 넘어 내 알레르기 증상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아과 의사도 알레르기 전문 의사도 우리 가족은 절대로 페니실린 처방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집에 페니실린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고 새로 가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 특히 항생제를 처방 받을 때에는 페니실린 쇼크 이야기를 꼭 한다.
그런 이상 반응, 아기에게 처방한 물약 아주 소량을 약손에 찍어 맛본 것으로 그런 이상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아나필락시스"다.
이 번 파이저의 코로나 백신은 이런 아나필락시스의 경력이 있는 사람은 맞지 말라는 이야기다.
맞습니다. 저 처럼 경험한 사람은 알지만 대부분은 모릅니다. 그러니까 임상실험이 중요한 거지요. 수만명이 맞아도 10만명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이런 체질을 걸러 낼 수 없을 테니깐요. 파이저와 모더나는 백신 제조법이 처음 개발한 mRNA 를 사용하는 일종의 합성 담백질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른데 개발시간이 빠르기는 한데 그 위험성이 아직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재래식 방법의 백신이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옛날 같으면 보통 뉴스는 인터넷 뉴스(내가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미디어만 골라 놓은 어느 한 포탈의 뉴스) 아니면 TV의 뉴스를 틀어서 보고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주로 Youtube를 틀어서 보고 듣는다. 방송사의 뉴스도 많이 Youtube에 올라오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오디오뿐 아니라 비디오까지 youtube로 올라오기 때문에 youtube로 듣고 본다.
그러다 보면 다큐라든가 강의까지 보고 듣게 되는데 이런 강의나 뉴스를 듣고 보다 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소개받아 ebook이 있으면 구매까지 한다.
특히 뉴스보다 다큐 같은 50분에서 1 시간 가까운 긴 영상물에서는 최근의 관심거리인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한 많은 전망이 나온다. 그리고 그 전망이 나오는 원인 등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면 또 그 방면에 과한 문헌이나 최신 간행물을 검색하게 되고 관련된 책을 접하게 된다.
최배근 교수의 코로나 이후의 경제, 일본 부동산의 흥망성쇠, 중국 부동산의 위험신호, G-zero 시대(패권국의 소멸)의 세계 질서 등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모든 역사나 전망은 하나 같이 지금 세상은 파괴적 변혁의 한가운데 있다는 소리다. 아직 미래의 질서는 도달하지 않았고 과거의 질서는 부서지고 있는 중이라고 보인다.
가장 최근에 일어 난 일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다. 그리고 바이든이 당선되었다. 거기에 대해 최배근 교수가 아래와 같은 동영상을 Youtube에 올렸다.
G 제로의 세계는 세계적 리더 국가가 없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라고 위의 동영상에서는 Ian Bremmer 정치학자는 말한다.
그는 G zero 시대라는 책을 쓴 정치학자다.
미국도 중국도 세계를 리드할 만한 역량이 못된다.
중국의 경제력의 부상으로 G2가 되었지만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빼고는 후진국이다.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인구당 gdp는 여전히 개발 도상국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치 시스템으로 국가적 신뢰도는 바닥이다.
중국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제규범이나 관례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짓이나 한다. 사드 사태가 그렇다. 사드를 들여온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사드 기지로 골프장을 내 준 롯데 그룹에 무시무시한 보복을 했다. 또 한국에 대해선 한한령을 내려 관광객을 막았고 온갖 제약을 가했다. 미국에 덤비기엔 무섭고 만만한 한국에 그 분풀이를 한 셈이다. "중화"는 고사하고 "찌질"이 국가다.
이런 나라는 아무리 국력이 신장해도 결코 국제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없다.
지금 세계질서는 재편되고 있다. 그 것이 코로나 전염병으로 가속화되고 있을 뿐이다.
요즘 국내에서도 새 질서가 들어 서려는 과도기의 진통을 겪고 있다. 촛불 정권이 적폐 척결 프로그램을 가동하자 기득권 적폐의 반항이 만만찮다. 검찰, 언론, 재벌, 사법부등 에리트 지배세력은 똘똘 뭉쳐 저항하고 있다.
경제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중이다.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이 무용 계급(useless class)으로 전락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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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그렇게 열심히 6년 공부했어도 구글이 더 잘한다면 사람은 무용지물(Yuval Harari가 지칭한 useless class)이 된다.
또 하나 무너지는 소리는 대학의 소멸이다. 이 것은 이 번 코로나 사태로 그 시기가 앞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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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학의 스콧 갤러웨이 Scott Galloway 교수 역시 코로나 19로 미국 내 절반의 대학이 5~10년 후에 소멸한다고 말했다. 그는 PBS의 프로그램인 〈Amanpour & Co.〉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대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모든 대학이 온라인 강의가 강제된 상황에서 부실한 인터넷 강의를 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이 심각하게 의구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학생들은 이런 강의가 어떤 가치가 있으며, 열정 없고 부실한 내용으로 왜 그렇게 많은 수업료를 받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지속되면 휴학을 하는 학생이 ........
"세계 미래보고서 2021(포스트 코로나 특별판)"중에서
지난 200년은 모두 잊어라!
지난 200년은 모두 잊으란다. 새 시대에는 지난 200년은 모두 부셔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여전히 매달리는 골통과 꼰대는 폭망의 지름길일 뿐이다.
미국도 아니지만 중국도 아니라는 말을 여기 있으면 날마다 실감합니다. 규모가 너무 커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작은 일이 생겨도 아주 '비상'하고 '수상'한 수단을 써서 둑의 구멍을 막겠다고 나섭니다. 사람들도 본인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으니 이 방법밖에 없을 거라고 오래 전에(태어나기 전부터) 체념한 것입니다.
지난 200년 서양 제국주의와 일본에 당한 굴욕에 대한 복수심이 중국민들에게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요즘같은 중국의 행태로 보면 새로운 질서에서는 결국 경제도 쇠락하고 소련의 해체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가 생각이 듭니다. 크다는 것은 거느리기 어렵다는 것과도 통하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생일마다 Selfie를 올리는 것을 내 블로그의 일상으로 해 왔기 때문에 올 해도 방금 사진 하나를 찍어 올리기로 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지만 그냥 이제까지의 일상이라 따라 할 뿐이다.
왼쪽 부터 서울대학교, 12살 손녀, 6살 손자의 자작 생일 카드
방금 찍은 셀피
손자 손녀의 카드를 그 냥 버리기 아까워 사진으로나마 남겨 놓으려고 찍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온 것은 내가 매달 후원금을 내기 때문에 보내 준 것이다.
공교롭게도 카드를 보내 준 현 총장은 내가 1970년 서울대에 부임할 때 물리학과에 입학한 제자다. 발령을 받기 전이지만 면접시험에 들어가 선배교수와 함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이 학생을 처음 만났다. 이 학생은 예비고사 전국수석이고 본고사에서 전교 수석을 했던 학생이라고 면접장에서 선배교수가 귀뜀을 해 주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부임하고는 이 학생이 속한 반을 내가 가장 많이 가르쳤다.
나는 내가 가장 행복하게 세상을 살 수 있게 해 준 곳이 서울대학이라 그 감사의 뜻으로 작은 보답을 하고 있다.
올해 연초만 해도 이 해가 이렇게 굴러갈 거란 상상도 못 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암스테르담의 호텔 담당자에 연락해서 올여름엔 두 째 가족도 함께 갈 예정이라고 어른 둘 이아 둘이 쓸 방 하나를 예약하겠다고 열심히 이메일을 주고받곤 했다. 우리가 먼저 가고 두 째 가족이 며칠 후 가서 암스테르담에서 1 주 함께 지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오늘이 8월 30일. 계획대로라면 엊그제 서울에 도착하여 이제 쯤 두 달쯤 쓰지 않았던 이 컴퓨터를 켜고 암스테르담 여행 마지막 후기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8월도 하루 밖에 남지 않았으니 탁상 달력을 넘겨 9월 달을 보려니 불현듯 올해 초에 적어 넣었던 여행 일정이 생각 난 것이다. 이제 그 계획의 잔재도 사라지게 되었다.
9월이면 가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잔서는 남이 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쾌적한 기온으로 떨어진다.
오늘은 늘 마시는 스타벅스 인스턴트 스틱 거피가 거의 떨어져 가기 때문에 스타벅스에 가서 몇 달 마실 스틱 커피를 사러 갔다. 커피점은 탁자와 의자를 모두 치워 놔 바닥이 들어 나 휑한 매장으로 바뀌었다.
ㅁㅊㄱㅇ 목사ㄴ 하나와 그 추종자들이 일으킨 ㅁㅊㄱㅇ 소동으로 한 나라를 뒤 흔들어 놨다. 스타벅스에서는 QR 코드를 스캔하거나 신분증을 보이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서야 입장시킨다.
그리고 테이크 아웃만 판다. 매장에서는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다. 마시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환기가 되지 않는 밀폐된 밀집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3단계 거리 두기에서는 이런 환경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내가 즐겨 마시는 스타벅스 인트턴트 커피 "Dark Roast"
오늘 스타벅스에 간 김에 보온 텀블러도 하나 샀다. 원래 난 커피를 천천히 마시기 때문에 그 냥 컵에 마시면 금방 식어 버리기 때문에 집이 있을 땐 자주 아래에 내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 오곤 했는데 요즘은 전에 쓰던 보온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텀블러는 현직에 있을 때 연구실에서 쓰던 것이었다. 교수 휴게실에 놓고 올 때도 많아서 내 이름 태그가 붙은 오래된 것이다. 양각 플라스틱 네임태그가 붙어 있는 것을 봐서는 80년대 때부터 쓰던 것이니 한 40년 된 것이다.
아직도 쓸만 하지만 아내가 새 것 하나 사서 쓰라고 권하는 바람에 스타벅스에 간 김에 하나 사 가지고 왔다.
저도 올여름에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작은 아이와 미국 가족여행을 계획하였으나 무산되어 아내가 무척 아쉬워합니다. 어느 전문가는 Post 가 아닌 With 코로나19 시대를 각오해야 한다고 하지만, 거리두기 생활을 바짝 강화하고 일부 교인들만 잘 통제하면 단기간에 이 상황은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정년으로 은퇴한 후 여름과 겨울은 더위와 추위를 피하여 서울 밖에서 지냈다. 지난 20년 거의 매해 그렇게 지냈다. 지난 6년간은 암스테르담에서 여름을 지냈다. 올해까지 갔다면 7년째가 될 번 했는데 코로나로 모든 것이 취소되었다.
올 해의 여행 계획은 연초에 달력에는 적어 넣은 계획으로만 남아 있다. 8월 28일 서울 도착이라 적혀 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계획대로 여행을 마치고 열흘 후인 8월 28일 서울에 돌아와 달력에 적힌 귀국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올 여름은 어느 틈에 귀국 예정일자 열흘 전까지 후딱 지나갔다. 장마가 길었고 코로나 때문에 거의 집에만 박혀 있다 보니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워킹 패드로 걷고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이런 잡문이나 쓰다 보니 그럭저럭 심심하지 않게 여름을 보낸 것 같다.
사실 장마가 끝난 것이 며칠 되지 않았지만 8월 말이면 계절상 무더위는 간다. 9월 초까지는 낮에는 잔서가 따갑겠지만 나 돌아다니지 않으면 더위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10월 달에 들어 서면 가을이 된다. 가을엔 좀 나 다닐 만할까?
예정대로라면 10월 말이면 Tesla S 가 온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북한강이나 금강 자전거길을 달리고 싶다. 낙동강 오지 자전거길도 가고 싶다.
오늘 중고차 영업하는 지인에게서 Maxcruz 차가 팔렸다고 차값을 받았다. 맥스크루즈는 영원히 갔다. 맥스크루즈는 추억의 차가 되었다.
마지막 낙동강 종주는 맥스쿠르즈로 했다. 안동댐에서 상주까지 옛 3륜 그린스피드로 했지만 상주 이후엔 브롬턴으로 했기 때문에 1톤 트럭 대신 택시를 불러 타고 가서 이어 달렸다. 그 마지막 구간은 맥스크루즈를 타고 다니며 했다.
맥스쿠르즈에 Gekko FX STEPS를 싣고 종주를 한 것은 북한강 달리기였다. 그리고 군산 선유도도 새 3륜을 맥스쿠르즈에 싣고 갔다.
그 모든 것이 추억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질 것이다. 다행한 것은 내 블로그에 간간히 올린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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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위에서 100세 넘으셔도 정정하신 분들을 종종 봅니다. 선생님 부부도 건강관리를 잘하시니 충분히 가능하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 남아야 할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