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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름은 간다.

 

올해 연초만 해도 이 해가 이렇게 굴러갈 거란 상상도 못 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암스테르담의 호텔 담당자에 연락해서 올여름엔 두 째 가족도 함께 갈 예정이라고 어른 둘 이아 둘이 쓸 방 하나를 예약하겠다고 열심히 이메일을 주고받곤 했다.      우리가 먼저 가고 두 째 가족이 며칠 후 가서 암스테르담에서 1 주 함께 지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오늘이 8월 30일.    계획대로라면 엊그제 서울에 도착하여 이제 쯤 두 달쯤 쓰지 않았던 이 컴퓨터를 켜고 암스테르담 여행 마지막 후기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8월도 하루 밖에 남지 않았으니 탁상 달력을 넘겨 9월 달을 보려니 불현듯 올해 초에 적어 넣었던 여행 일정이 생각 난 것이다.    이제 그 계획의 잔재도 사라지게 되었다. 

 

9월이면 가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잔서는 남이 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쾌적한 기온으로 떨어진다.   

 

오늘은 늘 마시는 스타벅스 인스턴트 스틱 거피가 거의 떨어져 가기 때문에 스타벅스에 가서 몇 달 마실 스틱 커피를 사러 갔다.  커피점은 탁자와 의자를 모두 치워 놔 바닥이 들어 나 휑한 매장으로 바뀌었다.

 

ㅁㅊㄱㅇ 목사ㄴ 하나와 그 추종자들이 일으킨 ㅁㅊㄱㅇ 소동으로 한 나라를 뒤 흔들어 놨다.   스타벅스에서는 QR 코드를 스캔하거나 신분증을 보이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서야 입장시킨다. 

 

그리고 테이크 아웃만 판다.  매장에서는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다.    마시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환기가 되지 않는 밀폐된 밀집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3단계 거리 두기에서는 이런 환경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내가 즐겨 마시는 스타벅스 인트턴트 커피 "Dark Roast"

 

오늘 스타벅스에 간 김에 보온 텀블러도 하나 샀다.    원래 난 커피를 천천히 마시기 때문에 그 냥 컵에 마시면 금방 식어 버리기 때문에 집이 있을 땐 자주 아래에 내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 오곤 했는데 요즘은 전에 쓰던 보온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텀블러는 현직에 있을 때 연구실에서 쓰던 것이었다.   교수 휴게실에 놓고 올 때도 많아서 내 이름 태그가 붙은 오래된 것이다.    양각 플라스틱 네임태그가 붙어 있는 것을 봐서는 80년대 때부터 쓰던 것이니 한 40년 된 것이다. 

 

아직도 쓸만 하지만 아내가 새 것 하나 사서 쓰라고 권하는 바람에 스타벅스에 간 김에 하나 사 가지고 왔다. 

 

왼쪽은 근 40년 써 오던 보온 머그  오른쪽은 오늘 산 스타벅스 보온 텀블러 

 

뭔가 허무하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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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20.08.31 17:48

    저도 올여름에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작은 아이와 미국 가족여행을 계획하였으나 무산되어 아내가 무척 아쉬워합니다. 어느 전문가는 Post 가 아닌 With 코로나19 시대를 각오해야 한다고 하지만, 거리두기 생활을 바짝 강화하고 일부 교인들만 잘 통제하면 단기간에 이 상황은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20.08.31 18:41 신고

      안타깝습니다. 광화문패거리들이 고의적으로 감추고 숨고 해서 쉽게 통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발 다시 두자리 숫자로 돌아오기를 고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새 해의 꿈  -   한 반도의 미래

나는 1960년 8월 22 일 일부변경선을 넘었다.    내가 탄 항공기는 제트기였지만 태평양을 직접 건널 수 없어 알래스카에서 급유를 했다.   아내도 그 해 12월 에 일부변경선을 넘었지만 타고 온 항공기는 프로펠러 항공기였다.

 

일부변경선 클럽 회원증

 

그 때만 해도 일부변경선을 넘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변경선 통과인 클럽"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변경선을 넘은 나에게  "일부변경선 클럽회원증"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내가 제트 항공기 유학생 1세대인 셈이다. 

 

그 땐 서울대학교도 별로 미국에 알려 지지 않아서 내 졸업장을 가지고 미국의 괜찮은 대학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조교직 즉 TA(Teaching Assistantship)을 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작은 주의 주립대한 같은 곳에 가서 실력을 인정 받고 좋은 대학으로 옮기는 전략들을 썼다.   

 

나도 여기 저기 원서를 냈는데 그 중에서는 남부의 대학에서 제일 먼저 TA를 주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 대학은 South Carolina 주립 대학으로 그 주의 한 도시에서 남북전쟁 총성이 처음으로 울렸었다. 

 

그 당시 남부는 아직도 인종 분리주의 제도가 시행되던 시기였다. 원서를 낼 때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 당시 남부로 유학하는 한국유학생의 고민중의 하나는 인종분리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주(states)에서 황인종은 백인에 속하나 유색인종에 속하나 하는 점이었다.

 

이마 미국공보원이나 어디엔가 문의했었을 것이다.   

 

 

대합실 유색인종 분리 표지판, 황인종은 유색인종인가 백인인가?

 

 

미국측의 대답은 그랬던 것 같다.   colored(유색인종) 는 지역 주민중에서 흑인(negro)을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 (negro 는 모멸적 표현)이니 황인종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colored" 의 자전적 의미는 유색인종이고 황인종도 유색인종이 맞는데 과연 버스를 탈때 백인석인 앞자리에 떳떳하게 앉을  수 있을까?   조금 찝찝하였다.  물론 Seattle의 UW 에서도 TA 를 준다고 해서 South Carolina 에 갈 일이 없었고 그 이후에도 미국 남부에는  여행도 한 일이 없다.

 

그리고 3년 후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목사의 비 폭력 민권운동이 일어나 많은 백인도 동참하여 미국의 남부의 흑백 분리주의를 폐지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킹 목사의 "내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이 있던 날이 August 28, 1963 이다.  

 

***************************** 전략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 후략******************************

 

그리고 반세기가 흐른 2009 년 미국에는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반세기는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내가 산 시간의 일부이기도  하다.  난 내 귀로 미틴 킹목사의 민권운동 뉴스도 들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서약하는 장면도 뉴스로 본 사람이다.  인종 분리주의가 횡행하던 시절 미국에 갔고 오바바 대통령이 취임하는 장면을 뉴스로 본 사람이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나도 꿈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꿈은 내 생전에 볼 수 없을 지 모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 글의 독자에게 믿게 해 주고 싶어서다.    

 

한일 무역 전쟁이 일어 나면서 나는 나대로 동북아의 미래에 대해서 다시 많은 생각을 하였고 아마존과 교보문고 전자책코너에서 여러 책을 사서 읽었다.    인터넷 문서도 많이 찾아 읽었다.

 

한 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올까?   아니 동아시아에 평화가 올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읽고 생각하고 꿈을 꾸어 본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이 역사 진행의 순 방향이라면 그 꿈은 이루어 진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역사는 순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그래서 킹 목사의 꿈은 반세기 후에 이루어 진 것이다.

 

내가 책을 사서 읽고 인터넷 문헌을 뒤져서 연구해 봤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물론 미래를 예측하거나 전망한 사람은 별로 없다.    

 

작년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이란 책이다.   국가의 대변동 또는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대처한 사례를 개인의 위기에 대처하는 심리와 비유한 "역사서"다.     

 

처음엔 영문 원서로 읽었고 이어 출판된 한글 번역서도 샀다.   현대의 "폴리매쓰(polymath)"라고 불리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최신 저서다. 

 

오늘 우리 나라가 처한 시대상황은 가히 "대변동"의 시대다.    잘 극복하면 무한한 기회다.   한 반도에 평화만 정착된다면 우리에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역동적인 미래가 펼쳐진다.     꿈 같은 이야기 이지만 꿈을 꾸어 본다.   

 

꿈은 꾸어야 이루어 진다. 

 

 

국가의 대변동을 개인의 위기 극복에 비유하여 7 나라의 근, 현대사의 예를 들어 풀어 나간 책

 

 

"Upheaval"의 한국어 판 ebook 으로도 나왔다.

 

일 독을 권한다. 

 

새 해 아침에.

 

PS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문득 내 옥탑 서재에서 옥상을 내다 보니 서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옥탑 서재에서 내다 본 옥상 마루에 깔리기 시작한 새해 첫 날 서설 ...  희망의 전조인가?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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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정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20.01.01 13:33

    일부변경선 클럽 회원증 ... 처음보는 비행사에 남을만한 가치가 있을것 같습니다
    저도 공화당적을 갖고있습니다만 트럼프가 좋아서 찍은것은 아니구요 김정은이와 햄버거를 먹겠다고해서 ...혹시나해서 찍었습니다 저도 선배님과같은 생각으로 한번간 역사의 흐름이 거꾸로 흐르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새해에는 하나씩 하나씩 잘 풀려 나가리라고 믿고있습니다
    Happy New Year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20.01.01 17:13 신고

      감사합니다. International Date Line Club Membership Certificate 는 골동품 가치가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일을 저질렀다면 저지를 수 있었는데 하노이 회담 당일 날 민주당이 코엔 청문회를 열어 방해하는 바람에 회담 내내 핸드폰만 들여다 봤으니 무슨 건설적인 회담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역사의 코스이니 더 그 진행을 기다려 봐야겠지요. 저도 희망을 가져 봅니다. Happy New Year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20.01.01 19:52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일부변경선 클럽회원증'은 정말 신기합니다. 언제 저 회원증 제도가 폐지됐을지 궁금합니다.
    새해에는 선생님의 꿈이 조금씩 이루어지길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20.01.02 09:54 신고

      감사합니다. 회원증 제도가 언제 없어졌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한 두해 정도가 아닐까요? 한반도 평화정착은 한국민 모두의 소망이겠지요. 올 해안에는 무슨 실마리가 풀릴 징조라도 보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3. 이승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20.01.10 14: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20.01.15 08:44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라이딩 안전하게 지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희대의 가짜 뉴스 이야기

 

광란의 한달이 갔다.  귀국한지 며칠 지났지만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나이 탓인지 시차 적응도 전 보다 시간이 걸리고 가짜 뉴스의 광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어제로 일단 그 종말을 맞았다.   아직도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 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원주의 시각에서 보면 화를 낼 것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종교의 종말"을 쓴 Sam Harris 의 명언을 되 새겨 보자.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일으킨 재앙과 9/11 이 일으킨 재앙은 비슷한 규모인데 두 재앙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엄청히 다르다.    카타리나의 재앙에 대해서 그 누구도 기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단지 복구에 최선을 다 할 것만 강조했다.   그런데 9/11 에 대해서는 "테러와의 전쟁" 을 선포하면서 복수의 "광란"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다쳤는가 묻는다.   "증오"는 "독"이다라고 말한다.  개인을 망가트리고 사회를 망친다.  

(“Compare the response to Hurricane Katrina,” Harris suggested, with “the response to the 9/11 act of terrorism.” For many Americans, the men who hijacked those planes are the embodiment of criminals who freely choose to do evil. But if we give up our notion of free will, then their behavior must be viewed like any other natural phenomenon—and this, Harris believes, would make us much more rational in our response.

Although the scale of the two catastrophes was similar, the reactions were wildly different. Nobody was striving to exact revenge on tropical storms or declare a War on Weather, so responses to Katrina could simply focus on rebuilding and preventing future disasters. The response to 9/11, Harris argues, was clouded by outrage and the desire for vengeance, and has led to the unnecessary loss of countless more lives. Harris is not saying that we shouldn’t have reacted at all to 9/11, only that a coolheaded response would have looked very different and likely been much less wasteful. “Hatred is toxic,” he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Losing belief in free will undercuts the rationale for ever hating anyone.”)

 

지난 한 달의 광분은 바로 나를 포함한 개개인에게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을 주었고 사회는 반 쪽이 나는 분열을 가져 왔다.   역사는 자연 현상이라는 환원주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광분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낭비였다.  

 

뭔가가 잘 못 되었다면 이성으로 돌아와 합리적 해결책을 머리를 맞 대고 짜면 되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공격하고 광분해서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허리케인이 또 오면 어떻게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를 머리를 맞 대고 연구하고 방안을 짜는 것이다. 

 

이성으로 돌아오라고 나는 외친다. 

 

광란에 휩싸였던내 블로그의 독자를 위해 희대의 가짜 뉴스를 하나 소개하고  끝 맺으려 한다.  내가 전에 어쩔 수 없이 ET 이야기를 쓰게 된 이야기를 올린 일이 있다. 

 

 

 

경향잡지에 실렸던 내 ET 이야기

 

 

이 글은 원래 실렸던 것 보다 훨씬 축약된 버전이다.  원 버전은 엑스포 책자로 나왔고 그책자는 사라졌다.  나도 원고가 없으니 여기서 재현할 수 없다. 

 

그 때 내가 썼던 가짜 뉴스 이야기를 대강 더듬어 아래에 소개한다.

 

지금 부터 184년 전인 1835년 8월 21일 뉴욕에서 발간하는 "The Sun" 이라는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가 실렸다.  달에 생명체가 발견되었고 그 일부는 문명을 건설했다는 기사가 곧 실릴 것이란 광고였다. 

 

그리고 6 편의 연속 기사가 올라 왔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쉘 경(Sir John Herschel)이  최첨단 원리를 이용하여 어마무시한 망원경 (an immense telescope of an entirely new principle) 을 제작하여 달을 관측한 결과 달에는 박쥐 비슷한 날개를 단 사람  모양의 생명체가 관측되었으며 그 외에도 지구상의 생물 비슷한 생명체가 여러 종류 관측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는 그 망원경은 잘못하여 태양광이 들어와 망원경 안의 초첨에 고열을 발생시켜 폭발하여 천문대가 모두 소실되어  더 이상 관측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로 뉴욕의 "The Sun" 지의 구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 기사는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자기 이름이 도용된 영국의 천문학자 허쉘경이 이 소식을 들은 것은 한 참 뒤였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처음엔 그저 장난이려니 하고 웃어 넘기려 했으나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전 세계 기자들과 방문객이 쇄도하는 바람에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가짜 뉴스라고 "The Sun" 지에 정정기사를 내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The Sun" 지도 결국 그 기사가 가짜 뉴스라고 정정하였지만 그 가짜 뉴스는 그 냥 퍼져 나갔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짜뉴스에 더하여 또 다른 신문이나 잡지가 달에 외계인이 산다는 가짜 뉴스를 또 지어 퍼뜨리는 바람에 이 가짜 뉴스는 한 동안 잠잠해 지지 않았다 한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가짜 뉴스는 그냥 믿는 것이다.   달에 대한 이 환상적인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믿고 싶은 로맨틱 환타지가 되어 퍼지고 그 것이 돈 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안 저질 신문이나 잡지는 계속 가짜 뉴스를 지어 퍼뜨렸던 것이다. 

 

 

달 위에 산다는 ET

 

 

1835년 "The Sun" 지에 실렸던 달의 풍경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은 가짜라도 믿는다.   그 것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가짜 뉴스를 믿는 것은 좋다.  어차피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뇌의 구조가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짜 뉴스를 믿고 미움(hatred) 을 키우지는 말라.

 

“Hatred is toxic,” he(Sam Harris)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Sam Harris의 글 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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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0 20:39

    잘 다녀오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2.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1 00:45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심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3.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0 08:49

    잘 다녀 오셨군요...^^

조국 후보자 딸 C양의 병리학 저널 논문 제 1 저자 논난에 대한 내 변론

 

세상을 보는 눈은 보고 싶은 시각에서 보면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     그렇게 프레임을 짜 놓고 보면 그렇게 만 보이고 또 듣고 싶은 것만 골라 자기 프레임에 짜 맞춘다.   

 

내가 이 C양이 제1 저자가 되었다는 논문을 다운해서 읽어 봤다.  그리고 그 저널의 배경을 면밀히 살펴 봤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C양이 제1 저자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인터뷰한 교수라든가 줏어 들은 이야기는 C양의 논문이 나온 저날이 대단한 저널로 추켜 세워 놨는데 나는 그 반대다.  

 

난 실제로 한국에서 이런 영문 국제 학술저널을 직접 편집 간행해 본 경험이 있다.   나는 한국물리학회 초창기 한 번 한국물리학회지 Journal of Korean Physical Society 라는 영문 저날과 새물리라는 한글 학술지를 편집하고 출간하는 업무를 주관하는 편집이사직을 맡았었고 정년 임박해서도 한 번 더 편집위원장겸 부회장의 직을 맡은 일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영문 저널을 편집하고 간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연구활동을 많이 하고 연구논문을 많이 쓴 학자라고 해서 학술지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상적인 원론만 그럴 듯 하게 대답하면 기자는 자기 프레임에 짜 맞추기 기사를 쓴다.

 

한국에서 영문 학술지를 발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영어권에서 공부하고 영어로 박사 논문을 썼고 영문 저널에 논문을  몇 편 냈다 해도 귀국해서 영문 논문을 혼자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물리학회의 영문저널 JKPS(Journal of Korean Physical Society) 초기에는 연세대학에 와 계셨던 미국 물리학 교수 한 분을 영구 편집위원으로 모시고 최종 영어 교정을 보시게 했다.  그 분이 은퇴 후에도 아마 다른 미국인 교수를 모시고 저널을 발간했을 것이다. 

 

내가 나중에 편집위원장 할 때 쯤에는 호주에서 돈 받고 비영어권 학자의 과학 학술 논문 영어 교정을 해 주는 서비스 업체가 생겨서 많은 저자들이 그 것을 이용했다.

 

대한 병리학회도 그 속은 비슷할 것이다.  뭔가 국제적 학술지를 내고 싶어 야심찬  시작을 했을 것이다.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에 등록도 하고 뭔가 국제적 저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SCI 나 SCIE 에 등록을 하면 대단한 줄 알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인용회수 통계 내 주는 데이터 베이스에 올리게 해 달라는 것 뿐이다.     

 

어느 인터뷰한 교수가 C 양이 제1저자로 된 논문이 실린 학술지는 지금은 아니지만  C 양의 논문이 실릴 당시는 SCI 에 등록되었다고 마치 그 땐 대단한 "급"의 학술지인 것처럼 기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봤다.  

 

난 그것이 수상쩍어 이 학술지의 역사를 자세히 조사해 봤다.

 

내 조사결과는 이 학회의 학술지는  1990 에 처음으로 "Korean Journal of Cytopathology(세포병리학)"이라는 한영 학술지를 간행했던 것 같다 어쩌면 세포병리학회와 병리학회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문 이름의 잡지라 해도 한글 논문이 섞여 있으면 인용회수를 통계 내는 데에 지장이 있으니까  2009년에 영문 전용의 학술지 "Korean Journal of Pathology" 라는 이름의 학술지를 런칭한다.    이 학술지는 2014년에 종간되고 다시 "Korean Journal of Pathology and Translational Medicine{병리학 및 중개의학)"란 새 잡지로 새로 탄생한다.   현존 이 학술지는 SCI 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방송사와 인터뷰한 교수의 말인 듯하다.

 

SCI 에 등록된 저널은 대단한 저널이고 아니면 별 볼릴 없다는 뜻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저널의 퀄리티는 SCI 등록 여부가 아니라 그 데이터 베이스를 써서 계산한 인용지수(Impact Factor)가 중요한 것이다. 

 

인용지수란 무엇인가? 

 

예를 들면 2012 년 인용지수란 2010년과 2011 년에 Korean Journal of Pathology 에 실린 논문이 이 데이터베이스의 모든 저널의 2012년 논문에 인용된 건수를 그 두해(2010년과 2011년)에   Korean Journal of Pathology 에 실린 논문수로 나눈 것이다.   간단한 것이다.  

 

이 인용지수가 중요한 것이지 그 인용지수를 계산하는데 넣어 달라고 해서 등록한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는 기자들은 대단한 저널인 냥 떠들어 댄다.

 

그렇다면 이 저널의 인용지수는 얼마 인가.  이 학회지의 홈피에 나와 있다.  2012 년 인용지수 IF(Impact Factor) 는 0.174 로 나와 있다.

 

대한병리학회지 홈피에 기재된 인용지수는 0.174 다.

 

이 숫자만 가지고는 일반 사람들도 기자도 판단 못한다. 

 

기자가 "기레기"소리를 안 들으려면 Investgative reporting 을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저 이 교수 저교수 말 여기저기 듣고 자기가 미리 짠 프레임에 짜 맞추기하면 "기레기"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뭘 공부하려면 인테넷에 정보가 널려 있다.   아래에 SCI 에 등록된 저널의 IF 분포로 랭킹을 테이블로 표시한 것이 있다.

 

 

인용지수의 분포도 1.0 이하는 하위 28.8% 에 속한다.

 

그런데 위의 C 양의 논문 저널은 그 하위 28.8% 중에서도 아주 밑에 속한다.   단순 선형 내삽 (linear interpolation)하면 하위 5% 가 된다.    이 정도 랭킹이면 힌국을 빼고 외국 의대의 도서실에는 거져 보내 주어도 비치도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사지 않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저널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  실제 이 저널은 실패한 저널이다.   런칭한지 5년 되던해 종간했고 새 저널로 갈아 탔다.  내부적으로 대한 병리학회의 학회지 일지 모르지만 외부적으로 전혀 다른 저널이다. 

 

 

이 저널은 2009년에 창간되고 2014년에 폐간된 것으로 나온다. 

 

 

2015년 부터는 "병리학 및 중개의학"이란 새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  어느 기자가 인터뷰한 교수도 그랬지만 이 저널은 SCI 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검색해도 IF  데이터가 없다. 

 

 

다시 말하면 C양의 논문이 실렸던 저널 Korean Journal of Pathology는 엄청 고전하다 결국 실패한 저널이다.    한국에서 왜 영문 국제 저널이 실패하는가?  그것은 언어의 문제다.  나도 평생 영어로만 논문을 썼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독창성(originality)이 있는 좋은 논문이라면 이렇게 어렵게 쓴 영문 논문을 왜 인용지수가 바닥을 기는 한국 영문학술지에 투고하겠는가?    대부분의 연구자는 자기 연구가 어느 정도 수준의 학술지에 실릴지 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의 영문학술지에 투고하기 위해서 논문 쓰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IF 가 높은 저널에서 거절 당한 논문 정도가 한국 영문학술지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저자들은 그런 사실을 감추고 본인이 발설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IF 평점이 나쁜 저널은 가중적으로 그 저널의 질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아마도 Korean Journal of Pathology 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을  것이다.   이렇게 저널이 외면을 당하면 학회 임원이나 편집진은 학회가 끝난 다음 공지사항으로 학회 회원들에게 호소한다.

 

새 영문 학술지를 런칭했는데 원고가 들어 오지 않는다.   KJP 에 많이 투고해 주세요.  다른 저널에 논문을 내셔도 KJP 논문 많이 인용해 주세요 .   마지막으로 우리가 심사기준을 획기적으로 낮췄으니 영어만 잘 쓰고 우리 저널 포맷에 맞게 써서  투고해 주세요.   

 

마지막 호소는 내용 안 볼 테니 영어만 잘 써서 저널 포맷에 맞게 논문을 써서 투고하면 다 받아 주겠다는 신호다.  

 

편집진의 입장에서는 격월제라고 했는데 결호가 생기면 큰 일이다. 

 

이 때 마침 C 양이 J 교수가 주관하는 학부형 학생 맺어 연구 인턴쉽 프로젝트에 들어 온다.   2008인지 2009년 경이다. 

 

Korean Journal of Pathology 가 새로 런칭하고 고전할 때다.   C양이 쓴 논문은 한글로 쓴다 해도 논문으로 학술지에 실릴 만한 새로운 것이 없는 논문이다.  

 

내가 그렇게 추측하는 것은 그 논문안에 있다.   

 

 

 

이 논문  Materials and Method 에 보면 실험 대상자는 2002년과 2004년 사이 단국대학 병원에 입원한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이 논문이 발표되기 7년전에서 5년전 사이에  입원한 신생아서 sample 을 채취한 것으로 실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가 5년식이나 걸리는 복잡하고 장대한 연구가 아니라는 것은 나같은 문외한이 봐도 금 방 알 수 있다.    생체 sample 을 5년씩이나 보관할 수 없었을 터이니  필요한 데이터는 이미 추출하고 생체 sample 은 폐기했었을 것이다 .    그렇다면  데이터가 있는데  5 년씩이나 논문을 쓰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이 데이터는 이 논문과 비슷하거나 조금 다른 연구에 쓰였고 데이터 파일에 "굴러 다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C 양이 쓴 논문이 독청성이 있고 의미 있는 연구였다면 왜 5년씩이나 묵히고 있었겠는가?   연구라는 것은 빨리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것이 경쟁자게 그 공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모든 연구자가 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별 볼 릴  없는 연구였을 가능성이 많다.  한글로 썼다 해도 발표할 만큼 독창성(originality) 가 없거나 너무 잘 알려진 루틴으로 논문 가치가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막 런칭한  Korean Journal of Pathology 는 논문이 안 들어 와 고전하고 있고 편집진은 영어만 유려하고 포맷에만 맞게 써 오면 다 받아 줄 것 같은 언질을 받았으므로 마침 C양이 영어를 잘 하니까 영문 논문을 작성하게 한 것이다.

 

어차피 루틴 데이터 분석이고 이미 다 알려진 선행연구가 있어 오리지널리티가 없어 다른 저널에는 실릴만한 연구가 아니라면 여기서 제1, 제2 저자를 따질 건더기가 없는 것이다.   영문으로 쓰지 않으면 세상 빛을 못 볼 논문을 C 양이 써 준 것이다.    C양이 논문 내용을 알았냐 몰랐냐도 의미 없는 물음이다.  

 

그 럴 때 제 1 저자는 누가 가장 합당한가?  논문 내용이 originality 가 없다면 그 논문의 기여도 가 가장 큰 사람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연구 내용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C 양 아니면 빛을 못 봤을  논문이라면 C양이 가장 공적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변론은 시나리오다.   몇개의 증거물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판사는 양쪽의 시나리오중에서 가장 개연성이 높은 편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증인이 없다.  증언해 줄 만 한 사람은 증언을 하는 순간 학회와 그 저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이 것이 C양이 제1 저자가 될 수 있다는 내 변론의 요지다. 

 

2019 Aug 27

 

Amsterdam 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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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28 03:37

    선배님의 예리한 분석이 이번 청문회에 반영 되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2. 근데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28 03:41

    > 영문으로 쓰지 않으면 세상 빛을 못 볼 논문을 C 양이 써 준 것이다. C양이 논문 내용을 알았냐 몰랐냐도 의미 없는 물음이다.

    글을 보면 변론의 근거는 오로지 논문을 영어로 C양이 썼다는(영작했다는) 가정하인거 같습니다. 그런데그 증거도 없어요. 공동저자중 David Chanwook Chung 이 있는걸로 봐서 이사람이 적어도 draft룰 썼을 가능성이 높을거 같은데. (그리고서 철자 몇개 고쳐준걸 이야기하는건 아니겠죠?) 확인해주세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8.28 03:49 신고

      가정이 아니라 J교수가 C 양이 번역이 아니라 직접 쓴 것이라고 뉴스 쇼에서 공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변론은 시나리오입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개연성이 있는가입니다. 판사가 인용하기 나름으로 판결이 나는 겁니다.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28 07:14

    진짜 한심하네요

오늘도 날은 포근한데...

 

 

요즘은 날씨가 너무 포근한데 나갈 수가 없다.  미세먼지는 아주 나쁨 외출을 삼가세요다.

 

 

 

오늘12월 21일 오후 3시반 서울의 미세 먼지 수준은 아주 나쁨이다.

볼 일이 없으면 나가지 않는게 낫다.

 며칠 목감기에 걸려 약까지 먹고 있는 상황이니 더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 날이 12월 12일이니 벌써 열흘 자전거 나들이를 못하고 있다.   그 날은 나기긴 나갔어도 자전거 탈 만한 날씨가 아니었다.  너무 추웠다.

 

아지겐에 갔는데 (2018/11/12 - [자전거/자전거와 먹방(訪)] - 일본식 일식당 - 동부이촌동 아지겐(味源) ) 거긴 신을 벗고 식탁에 앉게 되어 있다.   방한 덧신을 신고 벗고 하기가 너무 불편해서 신발 위에 신는 커버를 신고 양해를 구했다.

 

 

 

그날 해는 났지만 낮 기온이 영하인 날씨라 너무 추웠다. 

영하의 날씨엔 나가지 않기로 했다.

2018/12/07 - [일상, 단상] - 겨울 채비

 

 

어느 기상 캐스터가 코멘트하길 날씨가 추우면 방한 마스크를 써야 하고 날씨가 풀리면 미세먼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겨울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추우면 추워서 못나가고 날씨가 풀리면 미세먼지가 심해서 나갈 수 없다.  겨울엔 아예 외출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나라는 이 미세 먼지를 퇴출시키지 못하는가?

 

방법이 없다는 이야긴가?

 

위정자와 정치인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도심에서는 자동차가 생산하는 매연이 미세먼지의 주범이고 전국적으로는 화력발전소가 석탄을 태우면서 엄청난 미세먼지를 대기에 품어 댄다. 

 

중국에서도 넘어 오긴 한다지만 그 영향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력발전의 연료를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바꾸고  모든 자동차는 전기차나 수소차로 바꿔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몽고나 러시아에서 청정 전기를 수입해야 한다.

 

전력을 수입하겠다고 하면 원전 마피아나 골통과 골통 신문은 안보를 들먹인다.    그래서 불안을 조성하는데 실체가 없는 협박이다.

 

내가 정년을 얼마 안 남기던 1990년 말에 한참 쌀 수입 개방 논쟁이 붙었다.   그 때에도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인데 이 것을 수입하면 쌀 농사는 전멸하며 국민의 주식이 외국의 손에 맞기는 꼴이 된다는 안보논리가 횡행했다.   그 때 물리학과 휴게실에 우연히 와 있던 경제학과 교수가 그래서 "외교"라는 게 있는 겁니다라고 그 걱정을 한마디로 잘라 냈다.   그 교수는 우리가 잘 만드는 것을 수출하고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경제라고 강조한 일이 있었다.

 

골통들은 언제나 전쟁을 들먹인다.  이젠 전쟁은 없다.  가장 안보의 위협이던 북한과도 이제는 돌아 갈 수 없는 평화체제가 구축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1,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구상에서 더 이상 세계대전이 일어 나지 않도록 여러 국제 기구들이 생겼다.  유럽연합이 생겨서 더 이상 유럽에서 전쟁을 하지 않고 UN이 생겨서 반세기가 넘게 그 기능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월남전 등이 있었지만 그 규모는 세계대전에 비하면 몇1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중동전쟁도 뉴스에 계속 나니까 그렇지 그 규모는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얼마전 동아시아 전력 슈퍼그리드 얘기가 나오자 원전 마피아와 조선일보는 또 다시 안보문제를 거론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은 눈이 핑핑 돌게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 건 사람뿐이라고.  그 중에도 조선일보와 골통들이 가장 심하다.

 

천연가스가 무진장인 러시아와 바람과 태양이 넘치는 몽골에 천연가스 발전소,  태양열 발전소, 풍력발전소를 지어서 송전탑으로 전력을 들여 오면 굳이 천연가스를 들여 오는 비용보다 훨 씬 싼 값으로 전력을 수입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은 싼 전기도 아니고 한국과 같은 좁은 땅에 방사선 폐기물을 양산해서 묻는다는 것은 후손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몽고의  고비사막의 재생가능한 에너지 잠재력은 2.6 TW 로 금년도 한국의 수요 전력 0.12 TW 의 20배가 넘는다. 

 

The National Renewable Energy Center* estimates Mongolia’s total renewable energy potential at 2.6 terawatts, a potentially huge resource base. Power generation and exports could draw on the solar and wind potential of the country’s Gobi Desert. New policies promise to rapidly accelerate renewable energy development.

 

https://www.irena.org/publications/2016/Mar/Renewables-Readiness-Assessment-Mongolia

 

재생가능한 에너지는 지구 온란화도 막고 미세먼지도 생성하지 않으며 숨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동북아 전력 슈퍼 그리드를 꿈꾸며....

 

 

 

 

동북아시아 전력망을 하나로…‘슈퍼그리드’ 실현될까

동북아 슈퍼그리드’, 한·중·일·러 청정 전력망 연계 에너지 수급 안정성 확보

 

 

 

동북아 슈퍼그리드 전략 비교 연구

http://rusins.snu.ac.kr/sites/rusins.snu.ac.kr/files/board/vol27-2/7_%EC%9C%A4%EC%84%B1%ED%95%99.pdf

 

 

숨좀 쉬며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PS

 

 

오늘 아침 11시경 서재에 올라와 창밖을 내다 보니 롯데 타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새먼지 앱을 열어 보니 오늘은 "최악"이라고 나온다.  서재의 공기 청정기를 Max 로 올렸다.   

밖에 나 다닐 수 없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밖에 나갈 수 없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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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2.22 02:21

    명쾌하신 해답을 들었습니다
    일찍이 선배님 같으신 분에게 나라를 맞겨야 했을것을....
    (농담이 아닙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12.22 10:32 신고

      감사합니다. 위정자 탓만 할 게 아니라 국민의 의식수준이 올라가야 합니다. 저와 같이 생각하는 국민이 많지 않아서 과감한 정책을 펴지 못하는 걸겁니다.

서울의 첫 눈 2018

 

 

 

 

한 동안 센 눈발이 날렸다.

 

 

 

자동차들은 거북이 걸음

 

 

 

눈 예보가 있었는데도 차는 많이 나왔다.

 

 

 

내 서재에서 내다 본 옥상 정원

 

 

 

자동 물 주기를 중지할 때가 됐다.

눈이 걷히면 스프링클러 호스를 거두어 두려고 한다.

 

 

 

미니 소나무에도 눈이 소복히

 

 

 

블루베리 나무도 잎이 다 졌고 그 위에 눈이 싸였다.

 

 

 

어제는 기온은 낮았지만 날씨는 좋았다.

미세먼지 수준도 양호했다.

오늘 눈이 온다는 예보라 어제는 자전거를 타러 나갔었다.

얼굴을 모두 가리고 셀피 사진을 찍으려니 해가 눈 부셔 카메라 화면을 볼 수가 없었다.

대강 구도를 잡아 selfie 를 했다.

얼굴을 이렇게 가리니 옛날 제주도에서 밭일 하던 할머니가 숨어 버렸던 사건이 생각이 났다.

길을 잃어서 길을 물으려는데 할머니가 갑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당황했다.

한 참 있다 살며시 나타나기에 말을 걸었더니 리컴 삼륜(그린스피다)도 처음 보지만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니 겁이 났단다.

아마도 외계인이라도 나타났나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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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의 판결 - 안희정 판결을 보고

 

 

사람이 80을 넘게 살면 별아별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다.

 

우리가 겪은 첫번 째 "송사"는 1980년 지금 살고 있는 집터에 단독주택을 지을 때였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교수 부부가 집을 지으려니 결국 소송에까지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변호사비는 변호사비 대로 엄청 들었고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 때 우리가 선임했던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유명한 변호사가 소송이나 판결에 대해서 "Apporximate Jutice" 라는 말을 써서 우리를 위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송사는 최근에 겪은 송사다.    그 것 역시 부동산관련 소송이다.  첫번째 송사도 끝날 때까지 한 2년 걸렸고 두 번째송사도 2015년에 시작해서 몇달전에 끝났으니 거의 3년 걸렸다.

 

최근의 3 건의 소송은 모두 우리 집과 관계되는 소송이었고 두 건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재판을 대행시켰지만 마지막 한 건은 부동산 소개를 한다는 컨설팅회사의 부당한 수수료 요구로 합의가 되지 않자 상대방이 역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액수가 3000만원 이하이면 소액재판이라 해서 대부분 대리인 없이도 재판을 한다.   이런 경우 대리인을 선임하면 변호사비가 자칫 솟가(소송청구액)를 넘기도 해서 내가 직접 소송을 진행했다.  

 

앞선 두 사건도 변호사가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하면 의뢰인이에게 최종 확인을 받으니까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준비서면 작성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아마춰가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하면 법리에 맞는 주장을 하기보단 감정적 호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전혀 인용될 수 없는 변론이 된다.    이번 우리의 소송에서 변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많이 배웠다.

 

어떤 법리로 내 주장을 펼 것인가 상대방 변호사도 그렇지만 판사도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법리에 따라서 판결문에 명시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 주장을 펴기 위한 법조항을 찾아 내야 한다.  그래서 지난 3년 생각지도 않은 법공부를 많이 했다.     

 

소액재판은 내가 직접 준비서면을 작성했고 증거물도 일일이 챙겼다.     내가 개발한 법리와 증거로 재판은 우리 편의 완승으로 끝났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재판전에 제시한 합의금액정도를 지불할 각오로 판결을 기다렸지만 원고 청구의 기각으로 끝이 난 것이다.  원고는 재판을 걸어와 우리가 제시했던 금액도 받지 못하고 물러났다. 

 

내가 고3이던 1953년은 갓 수복한 서울이라 반파된 교사에서 고3  공부를 시작했다.   피난 갔던 선생님들도 다 돌아 오지 않어서 예저기 땜빵 수업을 했다.  

 

그 때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출강하셨는데 미공보원 과장으로 서울 법대를 나오신 분이었다.  토요일 마다 나오셔서  영작문과 "공민"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는데 영작도 그랬지만 공민과목은 시험문제로 "xxx 에 대해서 논해라" 식 문제를 내었다.  요즘 같으면 논술 시험 같은 것이었는데 그 때도 책 읽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줄줄 많이 써 댔다.

 

나중에 내 진로에 대해서 물은 일이 있었다. "물리학"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신 것이다.   선생님은 당연히 법대를 지망하는 줄 알고 계셨다.

 

송사에 휘말려 변론 준비서면을 작성할 때 그런 생각이 나곤 한다.  그 때 내가 법대에 가서 판사나 변호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요즘 인기리에 끝난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재미 있게 봤다.  현직 판사가 직접 쓴 원작을 드라마화 했으니 어느 정도 판사들을 미화한 면이 있겠지만 현실감 있는 드라마였다.

 

내 경험으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그랬지만 판사의 판결이 완전히 중립적이라 할 수 없다.  성장과정이나 배경에서 형성된 의식구조가 최종 판결을 결정한다.  

 

물론 초임 판사들이야 어떻게든 선입견을 배제히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결을 내리려고 애쓰겠지만 이번 안희정 재판과 같은 경우는 증거라는 것도 별로 없고 법리라는 것도 모호하고 밀실에서 일어 난 남녀간의 문제이니 결국은 판사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의식이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컨데  어떤 판사가 경상도의 어느 집성촌에서 우리 문중에 신동 났네하고 추켜 세워져 자라서 서울의 명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다면 그런 판사의 의식구조는 대강 짐작이 간다.

 

옛날에 박인수사건이라는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1955년  경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카사노바로 이름을 날린 "박인수"라는 젊은이가 해군 대위를 사칭하고 70 여명의 부녀자를 농락해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었다.

 

그 때 이 재판의 판결문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기억된다.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

 

이 문구는 당시 명판결이라고 추켜 세워져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안희정 재판의 판사는 이 판결문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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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6 09:03

    요즈음 사법농단 사태까지 있어 사법불신이 만연해지니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나 봅니다. 어느 미래학자가 없어질 직업에 판사도 포함시켰는데 공감이 갑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7 01:45 신고

      벌써 많은 연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0% 까지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사람판사가 내린 판결과 일치하는 데까지 왔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판결을 내리면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없어질 것 같습니다.

"애희의 정조(貞操)는 깨어지고 말았다."- 안희정판결을 보고

 

1948년이나 1949년경에 내가 읽었던 방인근의 소설 "마도(魔都)의 향(香)불"이란 소설의 한 구절이다.    그 옛날에 읽었던 소설의 이 한 구절을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중학교 1,2학년 시절 어머니의 신부름으로 이화동 입구의 세책방에서 책을 빌릴 때 내가 보고 싶은 소설도 함께 빌려서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쓴 일이 있다. (2014/03/31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어렸을 땐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난 아직 생물학적으로 완전한 남자가 되기 전이었지마 이 소설을 읽을 때 몸에 전률을 느끼는 야릇한 감정을 경험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글귀가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던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같으면 그런 정도의 표현이 무엇이라고 야릇한 감정을 느끼냐하겠지만 그 당시 그런 표현이 소설에 들어 간다는 자체가 소설을 포르노 수준으로 만들 때였다.     

 

 

"마도의 향불"

이 책 제목자체가 이 뭔가 음탕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내용은 모두 잊었지만 이 장면은 신분이 높은 한 남자가 그 아래사람인 "애희"라는 처녀를 유혹해 어느 온천장 여관으로 데려가 반 강제의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서술했던 것 아닌가 싶다.    어쩌면 회사의 사장쯤 되는 남자가 회사의 경리사원쯤 되는 처녀를 유혹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조가 깨어졌다"라는 말은 성관계를 했다는 은유적 표현이지만 이런 류의 표현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당시라면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금서로 지정되었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몰래 금서를 읽었던 것이다.

 

요즘이야 어른 소설에 이런 은유적 표현을 쓸 만큼 섹스를 숨기지 않는다.    내가 20년전 쯤이라고 생각되는 옛날에 대학로 극장에서 본 "바지나"라는 모노드라마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그대로 썼다. (2016/04/18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섹스에 대한 단상)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여배우는 그 극중에서 그 비속어를 수백번 썼는데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관객에게 미리 그 낱말은 공공연한 곳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기에 관객의 거부감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연극이 시작하기 전 관객에게 그 낱말 "x지"를 몇차례 외치라고 주문했다.   처음엔 모기소리 같이 나오던 말이 나중에는 극장이 찌렁찌렁 울리게 큰소리로 "x지"를 외첬던 것 같다.

 

 

 

Monlogue Vargina

이 드라마의 내용은 여성의 Vargina의 수난과 학대와 피폭(성폭행당함)의 고발이었다.

이 것을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적라라하게 고발한 것이다.

"미투"운동의 선구자 연극이었다.

 

 

그런데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정조"라는 낱말을 듣게 되었다.   오늘 안희정 전지사의 재판 판결이 공표되었다.   안전지사의 모든 혐의가 무죄란다.   피해자인 김아무개씨가 "판사가 재판에서 정조(貞操)운운할 때 판결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원래 성폭행 범죄의 처벌은 "정조의 보호"라는 낡은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라 한다.   지금은 법의 취지가 진화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판사가 어떤 취지로 "정조"라는 낱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법률적 취지였다면 피해여성으로는 분했을 것이다.

 

"정조"라는 말에는 "순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정조의 보호라는 원천적의미에 무게를 두었다면 정조가 깨어진 여성은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피해여성이 처녀였다면 판결이 달리 나왔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내가 여성의 날에 쓴 글귀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왜곡된 인습에 의하여 상처 받고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어려서는 부모에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 을 따르라고 가르친 옛 도덕율(삼종지도).
칠거지악이니 하여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유교적 전통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여성은 한없이 구박 받고 속앓이 하였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누나들이 또 아내와 딸들이 그런 대우 를 받은 것이다.  아직도 그 인습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98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정조라는 낡은 낱말도 이젠 사라졌으면 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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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15 10:08

    주제와는 다른 얘기지만, 그당시 소설책 표지를 보니 그때까지도 문체가 우에서 좌로 된것이 놀랍습니다. 설마 속 내용도 그렇게 쓴 것을 읽으시진 않으셨겠지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8.15 10:53 신고

      속 내용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 쓰기로 나왔을 겁니다. 일어 책은 아직도 세로 쓰기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줄이 진행합니다. 최근 까지도 가지고 있던 한 옛날 한글 소설은 그런 세로쓰기 책이었습니다.

손가락위에서 쉬고 가는 잠자리



2006년 9월 10일, 그러니까 한 12년전에 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검색을 해서 찾은 포스팅같은데 사진이 없으니 황당했을 것이다.  (2006/09/10 - [일상, 단상/잡문] - 손가락위에서 쉬어 가는 잠자리 )


원래 네이버 카베 "자줄사"의 "나누고 싶은 풍경"에 올렸던 내가 찍은 사진을 내 블로그에 담아 온 것인데  주 내용인 사진이 따라 오지 않은 것이다. (https://cafe.naver.com/bikecity/104309)


포스팅 넘버가 76 번으로 되어 있으니까 블로그 개설하고 초기에 올렸던 글일 것이다.


그 포스팅은 검색에는 걸리긴 해도 수정하거나 재 편집할 수 없는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포스팅이다.  10여  년 전에 올린 글은 어쩌면 최신 편집기가 접근할 수 없는 구식 포맷으로 죽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글을 수정해서 사진을 올리려 해도 불가능하다.


여기에 그 때 자출사 포스팅을 다시 잡아 왔다.   사진도  함께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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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탄천 잔전거길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손가락 위에 살짝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잠자리.
 
가을 하늘을 나는데도 손가락 주인만큼 힘이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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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른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찍었떤 사진 같다.    어렸을때는 이럴 때 날개를 살작 잡아서 자잠리리를 잡아 장난을 치곤 했던 생각이 난다.   



조용필의 "고추 잠자리" 생각이 난다.  내가 좋아 하는 노래다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싶지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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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08 20:11

    얼핏 보기에 다른이가 자출사에 올린 사진을 인용하셨다는 뜻인줄 알았더니. 그게아니고 선생님 손가락 위에 잠자리가 앉은 것이군요. 참 신기하고 멋있는 한 컷입니다.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8.08 22:27 신고

    가슴에 달린 케이스에서 카메라를 꺼내는데도 날아 가지 않아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까치의 집 - 내 옥상에서 가져간 건축자재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와 옥상정원을 보면 뭔가 허술하고 많이 빠진 듯한 느낌이 난다.   내가 자주 쫓아 내던 까치가 옥상의 나무에서 꺾어 가져간 가지를 가지고 둥지를 튼 것 같다.

 

우리집 옥상 정원에 자주 와서 똥을 싸고 가서 늘 어디에서 사는 새인가 궁금했는데 코니의 침실 바로 창밖 2,3 미터 떨어진 전주위에 둥지를 지어 놨다.   한전에 연락했는데 알을 까고 새끼가 자라서 나가면 빈 둥지를 치우겠다고 한다.

 

까치가 정원을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날아 갈 때 배설하고 가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쫓아 내지만 당할 수 없다.   같이 살아야 한다.

 

도시까치가 어디에서 사나 하는 궁금증은 풀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까치의 지능은 6살 정도의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 한다.  포유류 빼고는 "거울"속의 이미지가 자신이란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존중해 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나무가지 꺾어 간 것도 무혐의 처분하기로 했다.  대기에서 탄산가스를 마시고 햇볕을 보고 자란 나무를 내 것이라 우기는 것도 나무의 "공개념" 에 위배하는 주장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둥지엔 두 마리가 산다.  아마도 암수 한 쌍일 것이다.

한마리의 꼬리만 보인다.

 

 

 

옥상 얼개를 덮었던 나무가 엉성해졌다.

가만히 보니까 가느다란 연한 가지만 꺾어 간 것 같다.

 

 

 

건축재와 둥지가 가까우니 집짓기 쉬었을 것이다.

이 것도 이 새가 약아서 그랬을 것이다.

 

 

 

까치는 거울에 비친 새가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포유류밖의 종으로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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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3.28 20:57

    나뭇가지 가져간건 무혐의처분이 되지만, 배설물은 유죄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ㅎ
    (제 집이 아파트 5층인데 난간에 걸린 에어컨실외기에 새 배설물이 있어서 가끔 청소하느라..)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8.03.29 16:31 신고

      새가 날기 전에 배설하는 습성은 진화과정에서 습득한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니 그것도 무혐의처분해야겠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