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전에 내가 쓴 엽서
76년 전에 내가 쓴 엽서
오늘 나는 참으로 희귀한 문서 하나를 건졌다. 내가 76년 전 1943년 2월 18일에 쓴 엽서를 얻은 것이다.
이런 문서가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며칠전 셋째 누님의 두 째 딸인 생질녀가 우리를 찾아왔었다. 그때 제 어머니가 되는 셋째 누님 이야기를 하다가 그 누님의 옛 일기에 내 어렸을 때 이야기를 쓴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생질녀는 이젠 70대의 할머니지만 끝까지 누님을 모시고 살았던 효녀다. 그래서 어머니(셋째 누님)의 유물을 가직하고 있었던 듯하다. 거기에도 내가 올렸던 사진도 있다고 했다. 그중의 하나가 내가 그 누님의 신혼초일 때 도쿄 누님 집을 갔다고 기념사진으로 찍었던 것이다.
전에 그 이야기와 사진을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포스팅을 보여 주었었다.
*****************************************
얼마 후에(1942년?) 셋째 누나는 도쿄에 사는 매형과 결혼했고
난 국민학교에 들어 간 다음 첫 여름방학에 바로 위의 누나와 함께 도쿄 누님 댁에 놀러 갔었다.
1943년(?) 여름 토쿄에서.
********************************************
오늘 그 생질녀가 다른 볼 일이 있어 다시 찾아왔다. 그 때 내 이야기를 기억했던지 제 어머니(셋째 누님)의 유물 가운데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내가 매형(생질녀의 아버지)에게 쓴 엽서라고 가지고 왔다. "일어라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외삼촌인 아저씨가 쓴 것이니까 내가 보관하라고 주고 갔다.
매형의 일기장 비슷한 문서도 함께 가져왔다.
"형님은 오겐키 데스까(건강하신가요?) 보꾸와 겐끼 데스 (저는 건강합니다) 처음 오셨을 때 스모토리(일본 직업 시름꾼)인 줄 알았어요. 저는 누님이 *** 가고 싶으니까 보러 가게 해 주세요. 동경에 가게 되면 후지산도 볼 수 있으니까 가고 싶네요. 이 엽서는 스모토리가 사 주신 엽서예요. 쇼와 18년 2월 18일 사요나라(안녕) "
일부 글자는 판독할 수 없어 ***으로 대치했다.
1943년 2월 18일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1942년 4월에 고꾸민각코(국민학교,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까 아직 2학년에 오르기 전이다.
미나토야 고꾸민각꼬 입학생
그 뒷면에는 선친이 쓴 촬영 일자와 내 생년 월일이 적혀 있다.
소화 17년은 1942년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70년 전이다.
당시는 조선사람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차별과 구박이 심해서
아버지는 내게 일본 이름을 따로 지어 주신 것 같다.
어떻게든지 "조센징 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려는 아버지의 고심 어린 배려였다.
이 학교에도 또 그전에 다닌 유치원에도
일본말이 서툰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버지가 시간을 내어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동경으로 출가한 셋째 누님이 학부모 노릇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내 일본 이름이 <사다미츠 이사오>가 되었던 것이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87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이 셋째 누님 역시 어머니 같은 분이다.
내가 어렸을 때 무척 귀여워해 주셨는데 초등학교 1학년 전후해서 도쿄의 매형에게 시집을 갔다.
********************
1938년 5월 29일(일)
임시 시험이 어제로 끝났다.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홀가분한다.
(남)동생의 말소리도 많이 자랐다. 작년에 <신군노우따>부를 때와는 영 다르다. 요지음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대체로 또렷하게 발음한다. <미요 토오까이노 소라아께떼>하고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너무 귀여워 죽겠어서 레코드래도 취입해서 영구히 남겨 놓고 싶은 기분이 들 지경이다. 동생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4살쯤 되었을 때 자기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알고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 할까 생각해 본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63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그 매형이 처음 오사카에 왔을 때 머리 모양이 일본 스모토리(프로 일본 씨름꾼) 같아서 스모토리란 애칭으로 그 매형을 불렀었다. 그 매형이 어린 처남인 나에겐 장난감 우편 국 세트를 사 주셨는데 거기엔 엽서, 우표 스탬프 등 우편국에서 취급하는 여러 용품들이 있었다. 그 걸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장난감 엽서에 이 편지를 썼던 것이다.
참으로 생각도 못한 내 76년 전 내 필적을 보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