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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篤姫(あつひめ)> 등장인물 본문
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篤姫(あつひめ)>
2008년 1월 6일 부터 같은 해 12월 14일까지 방송된 47번째 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는 미야오 토미코(宮尾登美子)의 원작 <덴쇼인 아츠히메(天璋院篤姫)>를 다부치 꾸미코(田渕久美子)가 각색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에도막부말기 (江戸幕府末期) 쇄국정책을 고수해 온 일본이 서양 여러나라의 위협을 받으며 동란의 극에 달한 시대에 역사의 그늘에서 활약안 주인공 <아츠히메>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에 초점을 둔 홈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드라마다.
부부라든가 가정의 일상과 주인공 아츠히메가 스스로 자신의 가정이라 여긴 막부 오오오쿠(大奥 막부 궁성의 내전, 노녀(老女), 시녀 하녀등의 여성 계급 사회)의 여성들을 최후까지 지키며 평화를 염원하는 활약상을 그렸다.
이 드라마는 막부사극은 인기가 없어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징크스를 깨고 여성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대하드라마에서는 처음 있는 본방송 기간에 앵콜 재방까지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막부 대하드라마에서 최고 시청률은 물론 과거 10년간의 대하드라중에서도 가장 높은 50회 평균 시청률 24.5%를 기록했다.
또 주연엔 대하드라마 사상 최연소 여우 미야자키(宮﨑) 아오이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첫 출연 당시 아오이의 나이는 불과 22세 였다.
또 이 드라마는 에도 막부가 끝나고 명치유신으로 이어지는 일본 근대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일본 근대사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2006년에 방영된 <공명의 갈림길>이 도꾸가와 막부의 탄생을 그린 여성 주인공의 대하드라마였다면 이 드라마는 바로 이 도쿠가와 막부가 종연을 고하는 역사 드라마인 셈이다.
또 미야자키 아오이는 <순정반짝>에서 주연을 맡았고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ただ、君を愛してる)>에서 주연을 맡아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여우로서 이 드라마의 열연으로 일본의 Elan D'or 신인상을 받았다.
한글 자막이 나오는 50회 전편을 Satsol's Channel 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대하 드라마는 등장인물이 많아 기억하기 힘들다. 아래에 중요 등장 인물을 모아 보았다.
아츠히메역의 미야자키 아오이(宮崎あおい)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아츠히메(篤姫)는 사츠마(薩摩)의 시마즈(島津)가의 분가에 오까즈(於一)란 이름으로 탄생하여 에도 막부(江戸幕府)의 제 13대 쇼군(第13代将軍)이 된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의 정실이 된 여성이다.
병약했던 이에사다는 아츠히메가 시집와서 불과 1년반이 지나자 세상을 떠 23 살의 젊은 나이에 아츠히메는 과부가 되어 덴쇼인(天璋院)이라 불리게 된다.
쇼군의 후계자를 둘러 싼 막부내의 치열한 싸움, 또 아츠히메의 고향인 사츠마를 중심으로한 반막부운동(反幕府運動)의 격화될 때 오오오쿠(大奥)†의 총수(総帥) 로서 아츠히메의 역할이 두드러 지게 된다.
아츠히메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의 격동기에 시(媤)가인 도쿠가와종가(徳川宗家)를 위해서 그리고 일본을 위해서 힘을 다한다.
또한 고향인 사츠마번(薩摩藩)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군에도 협력하여 에도의 무혈입성을 실혈시키는 큰 역할도 했다.
명치유신이후엔 도쿠가와종가를 계승한 이에사도(家達)등의 교육에 전념해 미래의 일본의 기둥이 될 인재를 육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오오오쿠(大奥)란 에도성에 있던 쇼군가의 자녀나 정실, 시녀들의 사는 거소를 말한다.
아츠히메의 양부 시마즈가 (島津家)(사츠마((薩摩)번)의 28대 당주. 막부를 대표하는 명군으로 이름을 날린 나리아키라는 아츠히메의 천부의 재능을 일찍이 간파하고 양녀로 삼는다. 마침내 아츠히메를 제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家定)의 미다이도코로(御台所 - 정실)로 오오오쿠에 보낸다. 이로 인해 일본의 운명도 바뀐다. 이런 연으로 나리아키는 명치유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사실은 나리아키라가 아츠히메를 막부로 들여 보낸 것은 막부정치에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멀리 내다 볼 책략이기도 했다. 아츠히메는 어느날 양부의 이 책략을 깨닫게 된다.
히사히메(英姫) 역의 요 키미코(余貴美子)
나리아키라의 정실 도쿠가와의 지파중의 하나인 히토츠바시가(一橋家) 출신의 프라이드가 강한 여자.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종두 자국이 남아 항상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만날 때에도 발을 가리고 만나곤 한다. 처음 아츠히메를 대할 때에도 시마즈가의 한 작은 분가출신인 주제에 언감생심 쇼군가의 미다이도고로(쇼군의정실)자리를 넘보느냐고 냉소한다. 남편 나리아키라가 병석에 눕게 되자 불철주야 쾌유를 빈다. 본심은 매우 부드러운 여성. 나중에 아츠히메가 시집가는 날 복면을 벗고 맨 얼굴을 보여 주며 양모로서 처음 따뜻한 말을 해 준다.
시마즈 나리오키(島津斉興) 역의 나가토 히로유키(長門裕之)
시마즈가의 27대 당주로 가노인 즈쇼히로사토(調所広郷(ずしょひろさと))와 함께 사츠마번 재정을 재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장남 나리아키라(斉彬)가 난을 좋아하는 취미가 낭비로 보여 쉽게 당주자리를 내어 주지 않자 이복동생을 당주로 옹립하려는 세력과 시마즈가의 최대의 소동이 일어 나기도 했다.
시마즈 히사미츠(島津久光, 처음엔 타다유키(忠教)) 역의 야가구치 유이치로오(山口祐一郎)
시마즈가의 29대 당주 시마즈 타다요시(忠義)의 아버지. 배다른 형 나리아키라와는 당주자리를 놓고 라이벌이 되기도 했으나 대결은 피했다. 형의 사후엔 형의 유지를 받들어 나오고로오(尚五郎)라든가 오쿠보(大久保)등을 중용해 명치유신을 이루는 데 견인역을 했다. 히사미츠의 저택은 아츠히메의 생가 이마와즈미가와 가까운 이웃이었고 히사미츠의 딸도 아츠히메와 함께 쇼군가의 미다이도코로후보(将軍御台所候補)로 라이벌이 되는 등 아츠히메와 깊은 인연이 있다.
기모츠키 나오고로오(肝付尚五郎)역의 에이타(瑛太)
아츠히메와 같은 해 태어난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소꼽친구가 된다. 자라면서 아츠히메를 연모하며 다가가지만 운명은 둘을 맺어 주지 못한다. 젊은 나이에 사츠마번가노(薩摩藩家老)가 되어 사츠마의 반막부 세력의 선봉인 사이고(西郷)와 오오쿠보(大久保)의 뒤를 봐 준다. 사츠마번의 당주의 당주 나리아키라의 명을 받아 코마츠 키요미치(小松清猷)의 누이동생 오치카(お近)와 결혼하고 코마츠가의 후계자가 된다. 따라서 성도 이름도 갈고 고마츠 다테와키(小松帯刀)가 된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도 깊은 우정을 나누며 삿쵸도메이(薩長同盟 사츠마와 쵸슈번(長州藩)사이에 맺은 정치-군사 동맹)을 맺는등 사츠마번을 명치유신의 리더로 떠 올리는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첫사랑인 아츠히메에 칼을 겨누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오치카(お近) 역의 토모사카 리에(友坂理恵)
코마츠 키요미치(小松清猷)의 누이동생으로 7살 연하의 기모츠키 나오고로오(肝付尚五郎)의 아내.
몸이 약해 나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향도(香道)를 가르쳤다. 얌전한 성격이나 조금 우직스런 남편을 야단을 쳐 격려하기도 한다.
사이고 키치노스케(西郷吉之助, 나중에 타카모리(隆盛)) 역의 오자와 유키요시(小澤征悦)
명치유신의 최대 공로자중의 하나. 사츠마번의 하급무사계급으로 태어 났으나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에 눈에 띄어 발탁된다. 아츠히메와 쇼군 이에사다(家定)의 혼례를 주관하느라 또 히토츠바시(一橋,나중에 도쿠가와) 요시노부(慶喜)를 차기 쇼군으로 옹립하는 등 분주하게 활약한다. 나중에 에도 총공격을 할 때 관군의 대표가 된 사이고는 예전에 자신이 혼례를 주관했던 바로 아츠히메와 대치하는 상황에 까지 이른다.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역의 에모리 토오루(江守 徹)
미도 도쿠가와게(水戸徳川家) 의 전 번주로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요시노부(徳川慶喜)의 생부. 쇄국정책을 강력히 주장하고 돈을 많이 쓴다고 오오쿠(大奥)를 비판했기 때문에 오오쿠에게서는 미움을 샀다. 페리호가 래항했을 때는 해상방위를 위해 막부정치에 참가했으며 대단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고노에 타다히로(近衛忠熙) 역의 슌부우 타테꼬아사(春風亭小朝)
고노에가의 당주(近衛家当主). 5개 명문가의 우두머리격인 고노에가는 멀리 후지와라가의 후예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명문가. 타다히로의 정실은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의 누나로 시마즈 나리아키라와는 처남 매형간. 따라서 나리아키라와는 막역한 사이였다. 아츠히메는 나리아키라의 양녀가 된후 다시 타다히로의 양녀가 되어 쇼군 이에사다에 시집간다. 따라서 아츠히메에게는 세번째 아버지인 셈이다.
나중에 타다히로는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에 시집온 황녀 카즈노미야(和宮)(고메이천황의 누이동생)와 함께 공무합체(公武合体)를 추진한다. 공무합체란 조정의 귀족과 막부아래의 무가를 합쳐 막부권력의 강화를 목표로 정책을 말한다. 이런 연유로 타다히로는 하츠히메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계속해서 미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역의 사카이 마사토(堺 雅人)
아츠히메의 남편. 도쿠가와 제13대 쇼군. 태생부터 병약하고 여러 기행(奇行)을 일삼았다고 알려 졌지만 사실은 그가 물려 받을 막중한 책임과 막부의 경직한 일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행한 일종의 도피행각이었다. 이에사다는 아츠히메를 만나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나 그녀와의 이별의 날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 역의 마츠다 쇼타(松田翔太)
에도막부 제14대 쇼군 원 키슈의 번주 원 이름은 도쿠가와 요사모토(徳川慶福)였다.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대를 이어 제14대 쇼군에 취임한다. 이에사다의 사촌으로 혈통적으로 이에사다에 가장 가깝다. 어렸을 때 부터 주위사람을 배려하고 아랫사람에도 자비를 갖고 대해 군주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아츠히메가 처음 접견할 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쇼군이 되고 황녀(고메이천황의 여동생) 카즈노미야를 정실로 맞는다.
쇄국정책(양이론(攘夷論))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닫고 조정을 설득하기 위해 경도로 상경한다. 그러나 조정의 강경한 양이론을 번복시키지 못하고 돌아 온다. 죠수번(長州藩)의 반란시 출병을 결단하고 스스로 지휘를 맞는다. 오사카죠(大坂城)에서 병에 걸려 쓰러져 덴쇼인(天璋院 = 아츠히메)과 카즈노미야가 어의를 급파했으나 보람도 없이 죽는다.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역의 히라 타케히라(平 岳大)
막부 제 15대 쇼군 원 히토츠바시가의 당주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미도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의 칠남. 미도의 존황사상(尊皇思想)에 크게 영향을 받아 자신도 열성적인 존황가다. 영명하다고 알려져 아버지 나리아키나 사츠마번의 나리아키라들에 의해 이에사다의 쇼군 후계자 후보로 천거되었으나 아버지 나리아키가 오오쿠(내전)에 미움을 사 후계자의 기회가 없는 알았다. 아츠히메와 첫대면 때에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여 아츠히메에게 나쁜 인상만 남겼다.
이에모치가 급서하자 위급상황임을 내세워 쇼군직에 추대되어 취임한다. 고마츠 다테와키(小松帯刀)의 제언으로 열후회의(列侯会議)를 주최하지만 쇼군의 위엄만 내 세우고 영주들을 무시하는 언동을 하자 회의는 분열하고 만다.
아리마 신시치(有馬新七) 역의 마토바 코오지(的場浩司)
사이고, 오오쿠보와 고향친구. 나중에 세에츄구미(精忠組)라는 조직을 만들어 사이고 오오쿠보에 명치유신을 낳게 한 존왕 사상(尊王思想)에 불씨를 당겼다. 술을 좋아하고 과격한 성격으로 거사를 획책했으나 히사미츠가 중지 명령을 내렸다. 결국은 동료에게 자살(刺殺)당했다.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역의 쿠사카리 마사오(草刈正雄)
막부의 가노(家老)중 수좌(首座). 나리아키라(斉彬)와 친분이 두터워 아츠히메를 쇼군 정실로 맺어 주는데 힘을 많이 썼다. 토자마다이묘(外様大名 = 주종관계가 느슨한 다이묘)들의 힘을 규합하여 외국의 침략에 일본을 지켜 보려 했다. 빼어난 용모로 오오쿠(大奥)의 시녀들에게 비상한 인기를 받았다고 전해 진다.
오오쿠보 쇼우스케(大久保正助, 나중에 토시미치(利通)) 역의 하라다 타이죠(原田泰造)
사츠마번의 하급무사가에서 태어난 사이고(西郷)와 호형호제하며 자란 사이. 사츠마번의 집안싸움에 휘말려 젊은 시절 한때는 근신생활을 했으나 시마즈 히사미츠에 발탁되어 명치유신을 이끄는데 대활약을 한다. 사츠마시절엔 아츠히메, 나오고로오, 사이고들과 함께 청춘을 함께 보내며 친구로 우정의 깊은 인연을 맺는다.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역의 나카무라 바이자쿠(中村梅雀)
막부의 대노(大老). 전통과 핏줄을 중히 여겨 이에모찌(家茂)를 쇼군(14대)에 밀었다. 대노 취임후에는 일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또한 요시노부(慶喜) 옹립을 획책한 히토츠바시(一橋)파를 엄벌했다. 이 때문에 존황의 개혁파에 표적이 되어 사쿠라다몬(桜田門) 밖에서 저격당한다.
코메이 텐노(孝明天皇) 역의 도오기 히데키(東儀秀樹)
121대 천황 외국을 매우 싫어해 쇄국청책 고수를 염원했다. 처음은 누이동생 가즈노미야(和宮)의 무가과의 혼인을 반대했으나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 에게 쇄국정책을 실현시킬 조건으로 혼인을 승락했다. 그후 막부와의 관계도 좋아 졌다. 그러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쇼군에 취임한지 얼마 안돼 남편을 잃은 카즈노미야를 안타깝게 여기며 급서한다.
카즈노미야(和宮) 역의 호리키타 마키(堀北 真希)
고메이텐노(孝明天皇)의 누이동생으로 제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의 미다이도꼬로(정실부인)가 된다. 원래 딴 약혼남이 있었으나 막부에서 이에모치의 신부감으로 요청이 있어 에도로 간다. 강하게 거절의 뜻을 보이지 못하고 고메이천황이 <일본국을 위해>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눈물을 먹음고 승락했다.
이에모치가 병사하자 삭발하고 세이칸인노미야(静寛院宮)가 되었다. 한때 아츠히메에 적대감을 갖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다이쇼인(아츠히메)의 씩씩한 모습에 감동되어 도쿠가와사람으로 살아 갈 것을 결심한다.
존 만지로(万次郎) 역의 카츠시료(勝地涼 )
도사국출신의 표류민 고기잡이 나갔다 표류되어 미국포경선에 구조되어 미국을 둘러 보고 귀국한다. 구미 제국과 일본의 기술력의 차이를 역설하고 사츠마내의 포대 건설에 조력한다. 미국의 자유연애사상도 이야기 하며 나오고지로에게 아츠히메에게 사랑고백을 해보라고 권고한다.
이쿠시마(幾島)역의 마츠자카 케이코(松坂慶子 )
혼쥬인(本寿院) 역의 타카하타 아추코(高畑 淳子)
이에사다의 선친의 측실로 이에사다의 생모. 따라서 아츠히메의 시어머니. 오오쿠의 검약을 강조한 미도의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와 그 아들 하토츠바시 요시노부를 극도로 혐오해 이에사다 후계자로 요시모토를 강력하게 밀어 아츠히메와 극도의 대립을 한다.
타키야마(滝山)역의 이나모리(稲森)이즈미
천명이 넘는 오오쿠(내전)의 총책임자. 항상 흩어짐이 없는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
한 때 이에사다 후계자 문제로 아츠히메와 대립했지만 이이(井伊) 나오스케 대로(大老) 취임때에 간접적 지지를 받은 덕에 아츠히메에게 동정적이 된다. 카즈노미야가 오오쿠에 들어왔을 땐 오오쿠의 무가 전통을 의연하게 고수하며 경도의 요구를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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