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MyLifeStory :: '해외여행기/일본 오사카2011'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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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어디로 가나?

 

19세기가 저믈어 갈 무렵 물리학이란 학문은 완성된 것으로 보였다.    뉴턴이 창시한 고전 물리학은 많은 수리물리학자에 의하여 정교하게 다듬어 지고 정리되었고 막스웰이 전자기학을 완성하고 나서는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개막을 알려 준 막스 프랑크가 대학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할 의향을 내 비치자 지도 교수는 물리학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 또 다른 재능을 살려 음악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물리학은 두가지의 미제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 두 개의 문제는 흑체 복사의 복사선 스펙트럼의 분포식과 전자파를 전파하는 매질이라 생각했던 가상물질 에델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 하는문제였다.  이 두 문제는 고전 물리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프랑크는 프랑크 상수를 도입하여 흑체복사의 스펙트럼 문제를 해결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를 도입하여 에델 문제를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크는 양자물리라 하는 원자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물리학의 선구자가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상식을 뒤엎는 물리학 이론을 창시했다.  

 

양자물리는 원자세계 탐구를 자극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질량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현대물리학은 원자만 들여다 본 것이 아니라 원자의 10만분의 1밖에 안되는 원자속 깊은 곳에 있는 아주 작은 알개이인 원자핵(줄여서 <핵>)을 드려다 보기 시작한 것이다.

 

1951년 내가 처음 물리학에 매료되어 물리학의 길로 이끌 게 한 <혼타코타로>교수의 <물리학 통론>도 고전물리였다.

 

그 때만 해도 현대물리학은 아주 특별한 물리학이었던 셈이다.

프랑크와 아인쉬타인으로 상징되는 현대물리학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것이 바로 핵을 조작하여 질량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 놨기 때문이다.

 

핵반응을 통해서 질량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인쉬타인의

 

E =  mc^2 라는 공식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탤리계 미국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시카고 대학에서 1942년 12울 2일 미국 시카고 시간으로 3시 25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 핵 연쇄반응을 실현시켜 알라딘램프의 제니를 불러 낸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여러 면에서 일류사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제니는 재앙이기도 하고 축복이기도 했다.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엄청난 인명을 빼앗아 갔고   오늘날도 인류는 핵무기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제어된 핵 분열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은 오늘날 세계 전력의  3~40%를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축복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축복으로 받아 들였던 원자력 발전도 체르노빌 스리마일 아일랜드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의 사고로 마냥 축복으로만 환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원전의 갯수와 그 의존도

한국은 갯수는 20개 남짓 세계 5번째이지만  

그 의존도는 그 5개국중에서는 프랑스에 이어

2번째로 40%에 육박한다.  

(3월 28일자 타임지에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세계 원전계의 3번째 대형사고로 기록될 것이다.   원전사고는 항상 일어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안전책을 강구한다 해도 상상밖의 사고는 일어나게 되어 있다.   


후쿠시마도 궁극에는 연료봉이 더 이상 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냉각시킬 것이고 이미 누출된 방상성 물질은 최대한 수거하여 안전한 곳으로 봉쇄처리할 것이다.


더 이상 수거할 수 없는 오염방사능 물질은 결국은 대기와 대양에서 희석되어 버릴 것이다.    후코시마원전은 폐쇄될 것이고 그 근접 지역은 한 동안 접근할 수 없는 위험지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 피해액은 천문학적 숫자에 육박할 것이다.     결코 값싼 에너지로 잘 못 인식된 원자력 에너지는 다시 한번 그 생산원가를 계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짓게 될 원자로는 더 안전하게 더 여러겹의 백업시시템을 도입해야 하므로서 그 건설 비용이 몇배에서 몇십배로 늘어 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중수소를 이용한 핵융합 에너지가 안전하다고 하나 실용화 되기에는 앞으로 2~30년이 더 걸린다는 전망이다.  


당장은 풍력이라던가 조력이라던가 태양열에너지등 청정 에너지원을 개발하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하나 하나가 어떻게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가 의식 개혁을 해야 한다.   


쓸데 없이 큰 집을 지어 냉난밤을 하고 쓸 데 없이 큰 차를 끌고 다니며 대기를 오염시키는 대신 원자력 발전소를 하나 덜 짓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안전하게 사는 방법이다.


후쿠시마가 마냥 남의 나라 이야기로 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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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거리가 깨끗했던 이유

 

오사카에 처음 갔을 때 오사카의 거리에는 담배피는 사람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의 거리가 너무 깨끗해서 의아해 했다.  거리에서 담배꽁초를 본 일이 없다.   난 그저 쓰레질을 자주해서 그런가 했다.  오사카코 전철역에는 택시가 줄지어 서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가끔 택시 기사가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와 거리(차도)를 쓰레질하는 것을 봤다.  그런 이유에서인 준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살던 아파트 모퉁이에 담배 자판기가 있었다.  가끔 자판기에서 담배를 산 사람이 금방 담배를 꺼내 피우는 것을 본다.  난 못 봤는데 코니는 그런 사람중에 재털이주머니를 꺼내 담뱃재를 터는 것을 봤단다.

 

어느날 덴보산 마켓프레이스에 있는 100엔 숍에서 휴대용 담배재털이를 발견했다.  하도 신기해서 기념품으로 하나 샀다.  오사카거리에서 담배 꽁초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오사카 자동차 운전자에게도 틀림없이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차창문을 열고 담뱃재를 차창밖에 내어 터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물론 손으로 담배불을 부벼 끄고 꽁초를 손바닥에 감췄다가 차가 움직일 때 슬쩍 땅바닥에 떨어 뜨리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서울에서는 아주 많이 보는 광경이지만.  

 

자전거의 체인이 더러워지는 기간을 비교해도 서울과 오사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담배를 펴도 참 깔끔하게 핀다.

 

 

100엔 숍에서 100엔(약1400원)주고 산 휴대용 잿털이

 

 

Portable Ashtray

smoker's manner

라고 적혀 있다. 

"흡연자의 매너",   참 맘에 드는 문구다.

 

열어 보면 안감은 은박지고 주머니는 두께가 두툼하다.

비가연성 열절연재질 패딩을 넣은 것 같다.

여행을 하다 보면 참 재밋는 것을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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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3.29 10:04

    비밀댓글입니다

가나시이 유메오 미루 (서글픈 꿈을 꾸다)


오사카에서 돌아 온지 며칠이 됐다.   그런데 아상하게도 이번 여행은 여행을 갔다 왔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워낙 거리도 가까워 2시간 남짓한 비행거리에 시차도 없어 어디엔가를 갔다 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대로 여행을 마치지 못하고 황망히 도망하다 싶이 돌아 온 탓일까?


서울을 떠나기 전에 내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구글 지도를 캡쳐하여 깔아 놓았다.   우리가 머므는 쭈오센 오사카코역을 중심으로 한 지도였다.   미나토꾸, 코나하나꾸,  아마가자키시 그런 지역들이 보인다.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다시 그 바탕화면이 뜬다.      그 동안 거길 갔다 왔나 실감이 안 든다.     


아득한 꿈 처럼 느껴 진다.


꿈만 꾸다 깨어 난 허망한 느낌이다.   어차피 삶은 꿈일 뿐이다.  그러니까  오사카에 머믄 지난 29일은 그냥 꿈인 것이다.   


  오사카에서 살아 보는 것은 오래 전부터 꾸던 꿈이다.   그래서 비자 없이 머믈 수 있는 최대 기간인 89일간을 일정으로 여행을 꾸몄던 것이다.     그러다 29일 살다 황망히 돌아왔다.


Alex가 덴보산 공항리무진 승차장까지 짐을 실어다 주었고 리무진 기사가 짐을 버스 짐칸에 실어 줬고 공항에서도 리무진 직원이 짐을 내려 줬다.  그러나 공항 카트에 짐을 들어 올릴 때 그랬는지 항공사 카운터에 짐을 올리는데 무리를 했는지 허리를 다쳤다.   


2008년때 만큼은 아프지 않지만 며칠이 지내도 낫지 않는다.   금요일 늘 다니던 강남 경희의료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몇주 맞으면 낫겠지 기대하고 있다.  그 때도 거기에서 침을 맞고 허리를 고쳤다.    그 후에도 팔이 아파서 강남 연세병원에 가서 두어달 물리 치료도 받고 했지만 결국 한방병원에서 K교수의 침술 치료로 나았다.    그래서 난 양방의 재활의학과 보다는 한방의 침술 치료를 더 신뢰하게 된다.


일본이 다시 이번 참사를 극복하고 평온을 찾도록 기원한다.   그러면 다시 오사카에 가 볼 수 있을 까 이번 여행에서 못 다 했던 계획을 이어서 이룰 수 있을까?  언제쯤 될까?    또 다시 꿈을 꿔 본다.


그런데 이미 꾼 꿈도 그렇고  새로 꾸어 보는 꿈도 그렇고 어쩐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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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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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돌아 와서


어제 오사카에서 돌아 왔다.


지난 12일(토요일) 혼마치의 Korean Air 에 갔을 때 Korean Air 오사카지점은 토요 휴무였고  인터넷에서 알아낸 전화들은 모두 연결이 안되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월요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인 일요일 첫 링코를 실행해 옮기려고 코스모스퀘어에 갔었다.


밖에만 나가면 오사카는 평상과 다름 없고 말없는 일본 사람들은 일본 관동과 동북지방에 엄청난 지진이 났고 쓰나미에 많은 희생자가 난 것도 모르는 척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집에 들어와 TV를 틀어 보면 온통 지진소식 뿐이다.    서울에선 빗발치듯 전화가 온다.   


아이들에겐 며칠 상황을 봐 가면서 조기 귀국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알렸다. 


월요일 다시 Korean Air 오사카지점에 전화했으나 연결이 안된다.  서울 대한 항공 예약부에도 연결이 안된다.  불안감이 들어 다시 혼마치에 가 봤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여직원 한사람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의 항공권이 프레스티지 클래스라 그런지 아무 때고 예약할 수 있단다.  예약해 주랴고 한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돌아와 아파트 매네저와 이야기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전하고  신사이바시에 가서 거리 구경도 하고 근경을 보기로 했다.


신사이바시스지는 여전히 인파로 분비고 스지를 가로 지르는 교차로에서 지진피해자들 위한 의연금을 걷는 모금자들 몇사람을 제외하면 거리는 지진과 무관해 보였다.  영어로 표현하면 business as usual 이다.   도돈보리 입구에서 지진이 나던 날 점심을 사먹었던 게 요리집에 다시 들어 갔다.   신사이바시 스지의 인파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맛 있는 점심 세트요리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 우린 여기 다시 와야겠다고 하고 다음엔 뭘 먹을 지 메뉴도 공부하곤 했다.


집에 돌아와 TV 를 켜니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문자도 오고 전화도 또 온다.  한국발 인터넷 소식은 최악의 뉴스만 내 보내고 있다.   아파트 매네저인 Alex 에 조기 귀국할 지 모르니 아파트 계약 종결을 의논하자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좀 더 있어 볼까 돌아 갈까 반반이었다.   Alex 가 다음날 2시쯤 오겠단다. 


화요일이 되었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진정되겠지만 원전의 폭발이 이어지고 방사선 물질의 누출이 보도되면서 불안이 더 커진다.


그리고 사태가 더 악화되면 조기 귀국 예약이 쉽지 않알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귀국을 결정하고 항공기좌석때문에 며칠을 기다리는 사태가 오면 그것처럼 지루한 나날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월요일날 Korean Air 여직원이 준 핸폰으로 전화를 넣어 다음날 떠날 수 있는 자리를 예약했다.     그래도 불안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예약상황을 점검하니 3월 16일 13:30 칸사이공항발 KE 724 편으로 예약이 되있었다. 


그래도 미진하여 그 인터넷 화면을 캡쳐하여 아이폰에 넣어 뒀다.   혹시라도 공항에서 딴 소리를  할까 걱정이되어서 였다.

 

그리고 오후에 Alex를 만나 다음 날 떠날 거라고 이야기 했더니 그날 저녁에 전기회사와 가스회사 직원이 와서 그날까지의 사용료를 현금으로 받알 갈 것이라고 했다.


일단 귀국을 결정하니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갈 때까지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서 한치 앞을 못 보는 우리의 인생사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


이번 일본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간다. 


우리와 일본은 참으로 가까운 나라이고 핏줄로도 아주 가까운 친척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 이질감에 조금은 거부감도 느꼈지만 좋게 보면 또 그런데로 좋은 점도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 참사를 보면서 일본 사람들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어쩌면 그런 극한 상황에서 매무새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슬픔을 삼키며 간간히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  그 어려움속에서도 서로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는 일본사람들의 행동.    놀라움과 존경심을 넘어 무서운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또 무서운 힘과 속력으로 한 마을을 아니 한 도시를 쓸어 가는 쓰나미를 보면 사람이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자연의 힘 앞에서 사람은 한낱 개미같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아둥바둥할 것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국환이 부르는 <타타타>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번 쓰나미의 희생자는 옷 한벌도 건지지 못하고 가는 것 같다.  먼저  떠나간 이들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



지진이 난지 사흘이 지난 3월 14일 신사이바시 스지 입구

왼쪽에 Krispy Kreme 도너츠 가게가 있다.




그 입구 옆에 긴 줄이 서 있었다.

무슨 줄인가  했더니 Krispy Kreme 도넛츠를 사는 줄이었다.




친절하게 지금 줄 서면 35분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 주고 있다.

Krispy Kreme이 오사카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기인 줄 몰랐다.




3월 14일 지진이 난지 사흘이 지났지만 

신사이바시스지 상가는 인파로 넘쳐 흐르고  여느날과 다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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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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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たびの地震で被災された皆様には心からお見舞い申し上げます。


코스모 스퀘어  -  첫 링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날씨도 화창하고 기온도 17도 까지 오른다.   집에 있기 아까운 날씨라 지난 목요일 해 보려던 첫 링코를 해 봤다.  그냥 전철을 타고 코스모 스퀘어에 건너 갔다 돌아 온다는 것이 싱거워서 시내로 올라갔다 포트타운으로 내려와  코스모스퀘어에서 전철을 타는 링코를 해 보기로 했다.


오사카는 수도(水都)라고 스스로 부르듯,  수로가 예저기로 나 있어 다리를 건너가야 하거나 도선을 이용해야 서남쪽의 지역을 다닐 수 있다.   ( 아래 지도 참조 )


이 길은 <못가본 길>이었지만 가 보니 결코 아름 답지 않았다.  다시 가 보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오사카는 수도라고 스스로 칭할 만큼 예저기 수로가 나 있다.  

서남쪽 항구쪽으로 갈 수록 다리도 높고 다리 대신 도선을 운영하고 있다. 

최소한의 다리만 건너는 루트를 만들어 돌아 보기로 했다. 

미나미도오리로 동북진하고 

신나니와스지로 남서진하는 코스를 만들어 돌아 보기로 했다. 




신나니와스지 길은 자전거 길로는 별로 였지만 

코스모스퀘어 해안 공원에 오니 가슴이 탁 틔인다. 

이 공원은 코스모스퀘어 역의 뒷켠인데 역으로 올라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해안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니 

해양 박물관이 있었다.  언젠가 전철을 타고 한번 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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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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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3.16 17:09

    비밀댓글입니다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3.17 20:11 신고

    감사합니다. 오사카는 평상이지만 하도 한국에서 걱정하고 또 분위기도 우울하고 해서 어제 귀국했습니다. 일본이 평상을 찾으면 다시 가 볼 생각입니다.

오사카에서


지난 10일은 링코를 연습하려고 코스모스퀘어까지 다이쇼바시를 건너 가서 서남쪽으로 내려가 포트타운에 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  포트타운에서는  코스모스퀘어 가서 쭈오신 전철을 타고 오려고 한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링코를 할 때 뒤집어 씨울  Brompton용 헌겁 덮개를 점검했다.    늘 뒷가방에 가지고 다니던 덮개가 내 뒷가방에 들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짐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서울에서 빼어 놓고 온 것 같다.  덮개를 브롬톤을 뒤집어 씨우지 않고는 전철을 탈 수 없다.  


Brompton Junction 오픈 날에 코베에 링코로 가려면 덮개를 다시 하나 사야 했다.  코스모스퀘어 대신 Loro 에 가야 했다.    마침 지난 화요일에 주문했던 Toe Clip(TC)이 와 있었다.  다음날 다시 올 필요가 없이 두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MKS AR-2 Ezy 페달은 TC가 필수로 되어 있다.   쉽게 발이 미끄러지게 디자인한 페달이기 때문이이라.     한 편 서울에서 신고 온 신발은 TC 없이 쓰는 접이식 페달에 쓰려고 최대한 바닥이 껄끄러운 그런 신발을 사서 신고 왔다.    오기 전날 가방을 싸다가 접이식 페달은 가방 뚜껑이 닫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견하고 전에 타던 브롬톤의 MKS Promenade 페달로 바꿔 달고 왔었다.    그러고는 바닥이 최대한 껄끄러운 새 신발을 산고 왔기 때문에 TC 에 발을 끼울때 잘 미끄러지지 않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특히 오사카 거리 주행을 할 때엔 신호등에서 자주 서야 하기 때문에 TC 에 끼우는데 편한 신발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제는 TC에 편한 싼 신발을 다시 하나씩 사서 신을까 하고 신발 가게가 많은 신사이바시 상가에 갔다.   마침 세일을 하는 아주 싼 신발을 하나씩 샀다. 


그런데 전날 Loro 에 가는 길에서 코니가 어떤 젊은 남자가  타고 오는 자전거와 충돌해서 가슴부위를 다쳤다.  아마도 핸들바 끝에 찔렸던 같았다.   그날 저녁 약국에서 파스를 하나 사서 붙였는데 어제 아침은 그런데로 괜찮아 신사이바시에 구두 쇼핑을 갔던 것이다. 


도돈보리 게요리집에서 오사카에 와서 가장 비싼 요리를 먹고 나왔는데 통증이 심해서 아무래도 불안했다.  전날 약사가 다음날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신사이바시에서 택시를 타고 오사카코 앞에 있는 선원 병원으로 달려 왔다.  오전에 갔어야 하는데 오후에도 진료를 받는 알 수 없었다.  택시기사도 병원마다 다르다고 했다.


다행이 오후 진료를 받아주어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며 X-ray 검사를 했다.  다행이 갈비뼈는 온전하고 단순한 타박상아라고 하며 아프면 먹으라고 진통제를 와 파스를 병원 약국에서 받았다.   갈비뼈라도 금이 갔다면 여행을 접고 돌아 와야 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나와서 병원뒷 시장 반찬가게에서 저녁 반찬을 사려고 기웃거리는데  튀김집 아줌마가 얼마전에 지진이 났는데 못느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튀김집 아줌마는 튀김 기름이 몇번 출렁였다면 지진이 왔었도고 했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 보니 일본 동북부에서 제법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긴급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TV룰 보면서 지진 뉴스를 듣고  한국에서 여러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    정작 가족인  작은 아들은 전화를 여러차례 시도했는데 연결이 안돼 문자와 이메일 보내 왔다.  


우리가 사는 오사카코(오사카항) 도 바닷가이기 때문에 쓰나미 경고가 있었다.   5시 10분 0.5m 의 쓰나미가 온다는 경보였다.   실제로는 다음날인 오늘 방송에는 경고시간보다 2시간 늦은 7시 몇분경에 0.6m 의 쓰나미가 덴보산에 왔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오사카는 이번 지진에 아무 위험도 느낌도 없이 지난 간 것이다.   단지 저녁때 덴보산 Harbor Village에는  대 관람차도 멎었고 관광객도 아주 뜸했다.   


TV의 모든 채널은 지진 소식과 피해상황을 전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는 소식은 여행 중단하고 와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들이고 여진이 또 있을 거라던가 한달안에 더 큰 지진이 있을 거라던가 하는 불안한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뜨기도 한다.  


어제 같아서는 우리도 짐싸고 귀국해야 할까하고 항공기 예약편을 바꿀 수 있나 오늘 아침 오사카 Korean Air 에 전화를 넣어 봤다.  전화연결이 안된다.   연결이 안될 뿐 왜 안되는지 안내도 없다.   귀국하려는 여행객의 문의가 폭주해서 그런가하고 직접 Korean Air 오사카 지점에 찾아 가 보기로 했다.   Korea Air 오사카지점이 혼마치의 KAL 빌딩 7층에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막상 가보니 빌당은 조용하고 입구의 수위 아저씨가 토요일은 휴무란다.    휴무이기때문에 연결이 안되었던 것이다.  최소한 그런 안내 멘트라도 전화에 걸어 놨어야 하지 않았나 좀 기분이 나빴다. 


기왕 나왔으니  다이마루 백화점에도 가 보고 도돈보리 거리도 어떤가 가 보기로 했다.   미도스지 혼마치에 가서 자주 가던 스타벅스에 둘러 모닝 커피도 마시고 미도스지를 걸어 내려가 신사이바시에 있는 다이마루 백화점도 구경하고 다시 도돈보리에 갔다. 도돈보리의 <간코>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사카시스지까지 걸어 나와 사카스지 혼마치까지 걸어 가며 거려 구경을 했다.  사카이스지 혼마치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TV 는 여전히 대부분 지진 속보와 이어지는 재난(원자로의 방사선 물질 누출, 폭발)이야기, 관방장관의 인터뷰등을 내 보내고 있었다.   몇개의 채널은 지진재난을 당한 이들에 위로의 말씀 올린다는 싸인과 더불어 방송을 멈추고 있기도 했다.  


한 채널은 배경엔 재난 속보를 문자로 내 보내면 일반 방송을 하고 있었다.  재난 속보뒤에는 무슨 경기, 마라톤 대회, 고교야구 결승전등은 예정되로 개최된다는 알림도 내 보내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니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는가 " 로 돌아 가고 있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접고 위로와 애도만 보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도돈보리도 그런데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림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구이다오레> 의 북치는 인형은 엄청난 사상자를 낸 대지진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라는 멘트를 달아 놨다.




도돈보리 먹자 골목은 전 보단 못하지만 쏠쏠한 인파가 출렁이고 있었다. 




도돈보리 먹자골목에서 빠져 나와 쭈오도오리로 올라 가는 

사카이스지 길가에 한글 간판이 붙은 이자카야를 발견했다. 

한글 간판은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없다. 

미국의 한국 가게들은 한국 교포를 위해 장사하는 반면

일본 교포들은 일본사람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쭈오도오리 가까이에 <Y's Road>란 엄청 크고 팬시한 자전거점을 발견했다.

Colnago,  Bianchi, Canondale 등 외제 고급 자전거가 엄청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Helmet 도 내가 산 헬멧을 비롯 외제 헬맷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새로 산 MKS AR-2 Ezy 와 Toe Clip




지진이 나던 날 오전에 신사이바시에서 산 싸구려 신발

내건 한화로 한 \45000 정도 코니 것도 한 \ 60000 이니 신다가 버리고 가도 될 만하다.

일본에서도 재수가 좋으면 이런 싸구려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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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o Cycle Works 방문기


지난 주 Loro 에 가서 Toe clip 한 세트를 주문했었다.   마이시마 Cycle Road 를 달릴 때 코니의 하프클립의 나사 구멍이 망가져 떨어져 나왔다.  가지고 다니던 Zip-tie 로 묶어서 다녔지만 보기도 싫고 해서 여기서 바꾸려고 Loro 에 갔었으나 맞는 모델이 없어 주문을 했었다.   어제 전화를 해 보니 주문한 것이 도착했단다.   그래서 어제는 주문한 toe clip 을 장착하려고 Loro 에 갔었다.     그런데 주문한 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MKS Promanade Ezy 의 나사 구멍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Promanade 에 맞을 거라고 주문했는데 맞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엔 MKS AR-2 Ezy가 있었다.  MKS AR-2엔 맞는다고 했다.   같은  MKS 제인Toe Clip인데 Promanade와는 호환성없이 만들다니  아쉬었다.    그런데 AR-2는    Promanade 보다 약간 가볍고 뭣보다도 페달 바깥쪽이 둥그렇게 이어져 있어 Promanade 의 뾰죽한 돌출부가 없다.    접어서 가지고 다닐 때나 끌바를 할 때 다리에 부딛혀도 덜 아플 것 같아서  그것으로 갈아 달라고 했다. 


돈은 들었지만 만족스럽다.     코니가 내 것도 갈라고 부추겨서 toe clip 한 벌을  더 주문하고 왔다.


마침 서울에서부터 email 로 교신하던  나까(中)상이 shop 에 있었다.   나까(中)상이 자기가 이번에 Loro group에서 코베(神戸)에 새로 여는 Brompton 전문점에 manager 로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오는 3월 19일 Open 한다고 와 달란다.  


새로 여는 Brompton 전문점은 B-Spoke 로 기성품을 수입해다 파는 dealer 가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spec. 으로 수주 조립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문점으로 일본에서 제1호점이란다.     개점일은 3월 19일로 이날은 영국 Brompton 본사 사장인 Will Butler-Adams 사장이 내일(日本)한다고 Brompton  유저는 애차를 가지고 와 달라는 오픈닝 알림 메시지를 인쇄해서 준다.   기념품도 준다고 하며 그날 "Kobe 의 거리를 브롬톤으로 가득 채웁시다고" 라고 한다.    일본에 와서 Brompton 은 Osakajo 에서 한대 획 지나가는 것을 본 것 이외에 본 일이 없는데 일본 유저가 얼마나 되는지 개점 당일 코베에 볼까한다.  자전거로 가기엔 우리에겐 무리이고 한신혼센을 타고 링코나 해 볼까 연구중이다. 


319日のオープン初日は英国本社よりWill Butler-Adams社長も来日し、オープン記念イベントを開催予定です。

ご来店頂いた方にはプレゼントもご用意しております。

BROMPTONユーザーの方はぜひ愛車をご持参でお越し下さい。当日は神戸の街をBROMPTONでいっぱいにしましょう!



현재 장착하고 있는 MKS Promanade Ezy 

페달 바깥부분의 돌출부가 접어서 가지고 다닐 때 다리에 부딛히면 아프다.


 새 AR-2 Ezy 는 둥그렇게 만을었다.




Loro 오사카점 shop 앞면




Shop 밖에 제법 깨끗한 BikeE 가 앞바퀴가 빠진 채 서 있었다.  오래 간만에 이런 새 BikeE 를 보다니.

Loro 오사카점은 미니벨로와 리컴번트, 트라이크 전문점으로 Web Home Page 에는 나와 있다.




안에는 꽤 많은 미니벨로 전시되어 있었다. 

리컹번트는 전시된 것이 없다고 했다.




Pacific 제 Carry me 가 엄청 많이 있었다.




여러 다른 미니 벨로들이 전시되어 있다.




브롬톤도 여러대 보인다.




코니의 브롬톤에 새로 단 페달과 토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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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왕릉 닌토쿠료(仁徳天皇陵)와 자전거 박물관


지난 일요일(2월 27일) 자전거를 타고 난 다음 월요일부터 3~4일간 비가 오더니 비가 개이자 봄이 달아나 버렸다.   최저 0도가 되는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고 따뜻했던 날들 때문에 다시 급작스런 기온 하강은 추위를 더 느끼게 한다.  


걸어 다니며 근방을 탐색하기도 하고 시내 온천장 스파월드에 가서 몸을 녹이기도 했다.    어제는 날은 개었지만 바람도 불어 자전거 타기가 땡기지 않는 날이라 조금 멀리 떨어진 자전거박물관 (공식명은 Cycle Center)에 가 보았다.  Cycle Center는  오사카의 주변 도시인 사카이시에 있는데 사카이시에 세계적인 자전거 부품회사 <시마노>가 있어 일본의 자전거의 메카로 자처한다.  


그런데 사카이시는 오사카의 주변도시라 해도 전철이 이어져 있어 오사카시나 마찬가지다.   사카이시는 자전거의 부품산업이 시작된 도시라는 것 이외에 인덕천황릉을 비롯한 고분군이 있는 또 다른 관광명소로 이름나 있다. 


Cycling Center 도 이 고분군의 일부를 포함한 고분이름(大仙陵古墳(だいせんりょうこふん= 다이센료코훈)을 딴  다이센 공원의 한 귀퉁이에 있다.    이 주변을 도는 자전거 탐험 루투가 있지만 이 코스를 달리자면 집에서 부터는 약간 무리가 된다.  링코(輪行 -  점프)를 해야 하는데 다음 기회에 해 보기로 하고 그냥 전철을 타고 갔다.   


우리나라 왕릉처럼 관광객에 공개하는 즐 알았는데 막상 가 보니 완전히 해자로 둘러 싸여 있고 그 밖은 철책으로 엄중이 보호하고 있었다.    


이 고분은 인덕 천황의 릉이라고 하는데 이 인덕천황의 시기가 바로 일본 역사가들이 흔히 말하는 <수수께끼의 4세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이 왕릉의  발굴에 대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도 어쩌면 도굴 따위로 이 무덤의 내막이 밝혀 질까 두려워 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기원 4세기를 전후하여 일본은 급격한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한 예가 4세기 이전에는 일본에는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5세기 이후에 일본에는 말이 나타나는데 마구라든가 말의 발자국,  말의 뼈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작은 숫자가 아니고 많은 발자국이 발굴되면서 4~5세기에 말이 들어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어느 역사 블러거가 말했듯이 말이 대륙이나 한반도에서 스스로 헤엄쳐서 건너왔을 리 만무하니 사람이 타고 왔을것이고 그 때에 많은 문화가 유입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의 4세기>의 풀이로 내 던져진 것이 <기마민족설>이다. 이젠 고인이 되었지만 일본 동경대학 <에가미 나미오>명예교수가 제기한 <일본 기마민족설>은 부여계의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백제를 세우고 일본에 건너가 지금의 구주지방을 정복하고 왕조를 세웠다는 가설이다.   자존심 많은 일본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받아 들일리 없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되는 인덕왕릉을 발굴하지 못하게 하는 일본 궁내청의 꿍꿍의 속은 이런 가설에 겁먹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떻든 왕릉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노인 가이드 한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말을 붙인다.    한글로 된 안내 팜프렛도 하나 주며 5세기의 무덤이라며 5세기엔 한반도와 일본은 같은 사람들이었단  말을 강조한다.  자기 딸도 지금 한국 경주에 3개월 머믈기로 정하고  가 있다고 한다.   가족이 모두 한일 고대사에 관심이 깊은 듯 보였다. 


왕릉에서 사진 몇장을 찍고는 원래 목적지인 Cycle Center 로 향했다.   입관료는 65세 이상 100엔이라 써 있기에 200엔을 주니 흘깃 쳐다보고 입장권 2장과  판프렛을 준다.  관람객은 우리 둘 뿐이었다.   AV 실에서 버튼을 누르니 한 20분짜리 자전거의 역사를 말해 주는 DVD 영화를 보여 준다.   그리고는 옛날 자전거들과 자전거의 역사를 말해 주는 오래된 자전거들이 전시되어 있다.  Simano 사는 160 점의 옛 자전거들을 홀랜드에서 사 들였고 계속 골동 자전거를 수집중이라 한다. 


박물관이 작아서 소장하고 있는 자전거를 다 전시하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1층의 창고실에 보니 엄청히 많은 자전거들이 매어 달리거나 정렬되어 있었다.


왕릉 주변을 걷고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니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다.   조금 번화가로 나가니 허름한 다코야키집이 눈에 띈다.   야키소바와 타코야키 점심세트가 있기에 시켰더니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이 넘었다.    점심 을 시켜 먹고 역으로 돌아 오니 역사 근방에 더 근사한 식당들이 많았다.    조금만 참고 역까지 나왔더라면 보다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을 했었을걸 하고 아쉬어 했다.




 주오센 혼마치역에서 미도스지센으로 갈아 타면 

남쪽 종점인 <나카모즈>(윗지도의 아래 한가운데에 보이는)에서 내려서 걸어 갈 수 있고

역사를 나가서(내부연결없음) 다시 난카이고야(南海高野)센으로 갈아 타 두 정거정 가서  <미쿠니가오카>에 가면 

 좀더 가까이 다이센 고오엔(大仙公園)에 갈 수 있다. 




미크니가오카에 내리면 왕릉 해자 주변길에 바로 들어 설 수 있다.  




자전거 박물관은 다이센 고엔 서북쪽 귀퉁이에 있다. 




닌토쿠료(인덕릉) 주변의 보행자겸 자전거길

릉은 해자로 둘러 싸여 있고 해자 밖도 철책으로 접근을 막아 놨다.

철처하게 보호하고 있다.

천황의 루토(뿌리)가 한민족이라는 증거가 나올까 전전긍긍하는것 아닐까?




사카이시의 고분군 안내도




정문에는 몇사람의 관광 가이드가 있었다.

모두 노인들인걸 보니 어쩌면 자원봉사자가 아닌지..




다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다 가서 깨끗하게 정돈된 모래 정원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정문에서 바라본 왼쪽 해자




오른 쪽 해자




고대사에 관심을 가진 관광가이드가 찍어 준 사진




시마노 사가 만든 자전거 박물관 

Cycle Center




최초의 자전거 트라이지네

목제로 페달이 없이 발로 밀고 다녔다.




사카이시가 1936년 8월에 황태자(현 천황)에게 봉헌하기 위해 만든 자전거 예비품




일본에 현존하는 최고(古)의 3륜 자전거




일본 최초의 접이식 자전거 (1950년)




박물관에 전시된 유일한 리컴번트 자전거

가운데 놓여 있어 설명을 놓쳤다. 




새로운 comfort 자전거

이 자전거는 완전 자동으로 기어 변속, 서스펜션, 라이트등이 자동으로 

변동되거나 켜지며, 핸들바의 디스플레이엔 속도, 기어위치, 주행거리등이 표시된다.

이 모든 것을 제어하는 컴퓨터와 라이트는 허브다이모에서 생산하는 전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외장 배터리가 없어서 환경친화적이다. 




핸들바의 디스플레이




전시장에는 우리 둘 뿐이라

쉼터의자에 카메라를 놓고 timer 로 셀프 셧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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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HJA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2.18 05:27 신고

    정말 우연히 지도 검색을 하다가, 전에 보지 못했던 왠 큰 규모의 성같은 것이 있길래, 한자 검색을 통해서 인덕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방후원분'이라는 묘의 형태도 알게 되었고, 또 인덕릉에 대한 소개가 별로 없어서, 검색을 통해 이 블로그 까지 오게되었는데요. 역사에 대한 단편의 지식마저도 부끄럽지만 없는 제가, 읽고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이 되어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오늘 그 큰규모의 무덤을 몸소 느껴보고 싶어서 바로 다녀오려고 합니다. 좋은 정보가 되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p.s. - 사카이시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위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역사의 미스테리한 부분을 공개하기 꺼려하는 것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규모의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못했다고 하네요.

일본 사람들의 인터넷 문화의 이질감을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 보니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었다.  

폐쇄적인 일본인 모든것을 공개하는 페북에 저항감

閉鎖的な日本人、すべて公開するフェイスブックに抵抗感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137163


뉴욕타임스의 전자판은 이달 초 <"Mark Zuckerberg, Who?> 라는 부제를 붙여 작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인 페북의 창시자 Mark Zuckerberg이 일본에서는 유명하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의 인터넷 사용자의 60%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데 일본내의 사용자는 아직 200만 미만으로 일본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2%도 안된다.   일본 국산 넷서비스인 <믹시(Mixi)>의 가입자가 2000만을 넘었고 트윗도 작년 1000만을 넘은 것과 비교하면 형편 없이 적은 숫자다. 


이런 부진에 대한 이유로 뉴욕타임즈는 온라인에서 실물 실명 공개를 극도로 기피하는 일본 특유의 인터넷 문화를 들었다.  믹시같은 사이트에서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닉네임만으로 활동할 수 있다. 트윗에서도 유명인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사진이라든가 프로필을 올리는 사람은 없다. 


또한 일본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을 겁내 인터넷 결재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상품은 인터넷으로 사되 요금은 가까운 편의점에서 지불하는 이른바 <컴비니결재>가 인기다.  동경소재 MMD 연구소가 2130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89%가 인터넷에서 실명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일본인에게 페북은 무서운 세상이다.  뉴욕타임즈가 기사를 내어 보낸 후 일본 미디아는 페북에 대한 뉴스를 속속 내어 보내고 있다.  페북은 실명뿐 아니라 고향, 출신교, 직장등의 정보를 공개해 이것을 이용하여 친구를 찾아 연을 맺는다는 사실을 들은 방송<파네라>의 방응은 재미가 있다.  <현실세계의 관계(인간관계)도 어려운데 인터넷에서 까지 이걸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였다. 다시 말하면 일본인에게는 인터넷은 현실의 연장이 아니라 현실로 부터의 도피 공간이었던 것이다.  가상캐랙터를 이용한 SNS가 유일하게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부방응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 대세"라는 뉴스가 계속 이어지자 일본인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Zuckerberg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셜넷워크>가 15일 개봉되자 페이스북의 지명도도 인기도 덩달아 상승하고 <페북 쓰세요>하고 묻는 주의 친구들도 늘어 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지난주 앙케트조사에 의하면 [다음에 사용하고 싶은 SNS]에 페북이 1위를 차지했다.    가면을 벗고 싶지 않은 심정과 대세에 뒤지면 안되는데 하는 초조감이 페이스북을 앞에 두고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어느편이 이길런가가 주목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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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메달.아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3.03 22:38 신고

    안녕하세요?
    그런데, 페이스북이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가 높은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3.06 22:14 신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세에 합류하는 것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네요.

마이시마(舞洲) cycling road 와 Universal City Studio City Walk

 

cycling road 는 레저용으로 지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말한다.   여기저기 보면 그런 길을 지창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짧은 cycling road 는 여기 저기 있었다.    대개 4~5 킬로 길어야 10 킬로 정도이고 10 킬로가 넘으면 대규모 cycling road 또는 대규모 자전거도로로 불린다.    오사카엔  대규모 자전거도로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오사카는 오늘부터 3일간 비소식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하던 사람이 뻐스가 오는 것을 보고 아까워서 뻐끔빼끔 연거푸 담배를  빨아 당긴다.  뻐스가 도착하면 길고 세게 마지막으로  빨아 당기고는 꽁추늘 획 버리고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을 전에는 많이 봤다. 

 

우리가 그 격이다.  비가 온다니까 그전에 자전거를 매일 끌고 나가 지칠대로 타다  들어 온다.  내일 모래 글피를 쉴테니까...

 

사실 어제 일기는 오전에 개이고 오후에 구름이 끼고 저녁부터 비가 올 것이라는 시간대별 예보였다.  그래서 짧은 잔타를 계획했지만 여기 저기 헤매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타게 되었다.

 

일단은 덴보산 도선장에서 아지가와를 건너  Universal Studio 를 끼고 돌아 요도가와 cycling road를 달린다.   그리고는 요시쓰네 다리를 건너 마이시마 cycling road 를 탐색하고 다시  쓰네요시다리들 건너 오거나 코노하나 오오하시를 건너와 Universal Studio Citywalk 에 들어와 점심도 먹고 Starbucks 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계획이었다. 

 

Starbucks 커피숍이 Uinversal Studio 에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지도를 검색해서 알아 냈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 스트벅스는 거리상으로는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가깝다.    문제는 아지가와를 건너는 도선이 30분에 한번씩 다니기 때문에 거기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된다. 

 

 어제 달린 자릿길

 

 유니버살 스튜디오를 빠져 공원이 있고 큰 물이 보이기에 요도가와인가 하고 들어가 돌아 보니  세이렌지가와(正蓮寺川)였다.    (집에 오서 GPS 트랙을 보고 알았다.)  다시  홋코도오리를 따라 올라가 지도에서 본 대로 시마야 네거리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길은 공사중이라 보행자자전거길이 좁게 공사판막이사에 설치되어 있고 도로표지판도 찾기 어렵게 되어 있다.   마침 공사차량 출입을 안내하는 관리자가 있기에 길을 물었더니 친절히 요도가와 지덴샤도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미리 구글 지도로 조사해 둔 것과 가르쳐 준 지식과 결합해서 요도가와 cycling road 에 오를 수 있었다.

 

요도가와 cycling road 에 나와 보니 일요일이라 헬멧을 쓴 sports cyclist 들이 많이 보였다.   요도가와 cycling road 끝에서 수분 조절을 하고 쓰네요시 다리를 건너 마이시마에 들어 갔다.   바다가에 cycling road 가 나 있다기에 바짝 바닷가로 돌아 들어 갔으나 그것은 막힌 길이었다.    마이시마 헬리포트가 있었다.    거기에서 관광헬리콥터도 태워 주는 것 같았다.

 

마침내 마이시마 녹지 cycling road 를 찾아 들어 갔다.  이제까지 다닌 길 중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자전거 길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져서 길게 지체하지 못하고 지름길인 코노하나 오오하시를 건너 유니버샬 스튜디오로 가기로 했다.   다리는 다리 한 가운데만 자전거로 갔고 오르막 내리막은 걸어서 갔다.  또 위험하니 그렇게 하라고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유니버샬 스튜디오에 왔다.   그러나 Citywalk 에 들어 가는 통로를 찾을 수가 없다.   여기 저기 헤매다 주차장 근방에서 유니버샬 스튜디오 직원인듯한 명찰 단 사람을 만났다.   입구를 물으니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 갈 수 없다고 한다.    길 밖에 자전거 주륜장이 있으니 자전거를 주륜하고 오라고 한다.    이 자전거 접으면 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짐도 못가지고 들어 가게 할 수 없지 않은가!     접어서 보이니 들고 들어 가라가 계단을 가르쳐 준다.  

 

초경량 자전거라 들고 올라가기도 쉽다.  계단으로 한층 올라가니 CityWalk 3층이었다.  핸들만 접지 않은 채 밀고 다니니 유모차보다 작다.  유모차는 많이 다니니 다 접은 브롬톤은 말 할 사람이 없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한층 더 올라 가니 식당가다.

 

식당가를 기웃거리다 파스타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난 야채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코니는 봉골레를 시켜 먹었다.  생맥주도 한잔 곁들여.

 

관광타운이라 그러지 신용카드를 받는다. 다행이다.

 

다시 에스카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내려와 들어 올 때 봐 두었던 스타벅스에 들어와 커피와 디저트를 시켜 먹고 다리를 쉬었다.    여기 저기 브롬톤을 밀고 다니며 구경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 올 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왔다.   다시 온다면 계단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면 된다.

 

다시 아지가와 도선장으로 돌아와 강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꽉 찬 잔타날이었다.  

 

 

 

 

 

마이시마 Cycling road 에서

 

 

 

마이시마 녹지 공원 Promenade에서

 

 

 

분수가 뿜어 대며 연츨을 하는데 마침 해빛이 무지개를 자아내어 사진으로 잡아 봤다.

 

 

 

City Walk 4층 식당가엔 타코야키  뮤지엄이 있다.

옛날 타코야키 철판등이 전시되어 있고 구워서 팔기도 한다.

한 타코야키는 모찌치즈 타코야키라고 치즈에 찹살떡 넣은 퓨전을 만들어 파는데

별로 당기지 않는다.   젊은 사람은 어떨라나?

 

 

 

본격적인 관광철을 위해 여기 저기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판막이 앞에서 원숭이가 제주를 보여 주고 있다.

사까다치(물구나무서기)도 하고 여러 재주를 핀다. 

 

 

 

City Walk 앞 광장에는

Universal Studio 라는 영화의 로고가 대형 모형으로 만덜어져 돌아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Universal 사 영화를 본지가 언제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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