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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데이트  -  옛 추억

 

 

2월 22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날 코니와 나는 치과 예약이 되어 있었다.  임플란트의 마지막 과정으로 심은 티타늄 뿌리에 크라운을 씨우는 시술이다.     한 열흘 전 본을 다 떴기 때문에 그 날은 제작한 크라운을 씨우면 끝난다.

 

오전 예약이라 12시쯤 모든 시술이 끝났다.

 

치과는 5호선 내방역 근방이다.   우린 치과가 끝나면 자주 여의도 "신동양대반점"에 가서 점심을 먹곤 했다.   거긴 채식 중식집이라 채식으로 된 중화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 2009/10/15 - [잔차일기] - 브롬톤이 열어 주는 새로운 세상 )

 

치과가 끝날 때 여의도에 가는 이유는 내방역에서 우면상쪽으로 올라가면 방배역이 나오는데 거기엔 461 번 버스가 지나간다.   시간은 꽤 걸리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의도 역까지 데려다 준다.  신동양대반점가기 가 십상이다.

 

요즘은 9호선이 선정릉까지 연장되어 15분 남짓하면 여의도역에서 선정릉역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지하철은 무임승차하는 노인들이 많아 가능하면 피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이 버스는 한티역도 지나가지만 한티역에서 타면 1시간 20분 넘게 걸린다.

 

그런데 그 날은 중식보단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내방역을 지나는 버스 하나가 남산 3호터널을 지나간다.   406번이던가?

 

그렇다면 해방촌 경리단 정류장에서 내리면 "알마또"에 갈 수 있겠다.   ( 2015/11/08 - [국내여행기/서울] - 서울 기행 1 - 알마또 이태리 식당 )    그래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경리단정류장에서 내려 녹사평 대로를 육교로 건너 "알마또"에 갔다.   

 

한 한달전에서 "알마또" 에 간 일이 있었다.  화요일이 정기휴업일이란 것을 몰라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한 2주에 다시 화요일을 피해 가서 피자와 파스타를 맛 있게 먹었다.      알마또는 실망시키는 일이 없어 수요일인 22일에 갈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또 문이 잠겨 있었다.   주인장이 이태리 여행을 갔다고 써 있었다.  아주 닫는 것이 아니고 3월 며칠까지만 휴업이라는 것이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피자 생각을 하니 딴 음식은 싫고 1~2년전에 대학로에서 나폴리 피자를 먹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나폴리 피자라고 해서 들어 갔었다.   나폴리 피자는 10여년전 로마에 머믈 때 나폴리에 가서 먹고 맛 있어서 두번 갔던 생각이 나서 그 생각을 하고 그  집에 들어 갔던 것이다.

 

나폴리 본토에서 먹은 피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그런 대로 맛 있다고 생각해서 꿩 대신 닭이라고 그 알마또 대신 그 집을 찾아 가 보자고 했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대학로에 갔다.   몇년전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그 집을 찾아냈다.

 

 

 

Di Matteo 란 집이었다.

그 때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루꼴라 피자와 와인을 시켰다.

 

 

 

점심을 먹고 대학로를 산책했다.   적당한 뮤지컬이나 연극을 볼까 생각해서 i 에 들어 갔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학림다방" 에 들어 가 보기로 했다.

 

"학림다방"은 얼마전에 TV 에서 봤던가 기억에 떠 올랐다

 

대학로, 동숭동,  혜화동은 우리 둘에게는 추억의 옛 동네다.    (2007/06/27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운명의 인연 ,   2007/07/02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인연의 나선 궤적을 따라서  )

 

그리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50년대 내가 다닌 문리대가 있던 곳이고 그 근방의 가게들은 다 익숙한 곳이다.    그런 가게나 다방은 다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는 곳이 "학림다방"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학림다방이 문을 연 해가 1956년으로 나온다.

 

내가 문리대에 입학하던 해에 문을 연 것이다.

 

학림다방과 혜화동 로타리에 있던 "가나안· 다방은 내가 대학생 때 자주 갔던 곳이다.

 

학림다방은 내 한반 친구 L 군이 가기만 하면 Tosca 의 "별은 빛나고" 를 틀어 달라고 해서 우리가 가면 의례 주문을 하지 않아도 다방 레지는 "별은 빛나고"를 틀어줬다.   

 

그래서 "학림다방"은 내 기억속에는 "별은 빛나고" 와 연동되어 있다.

 

가나안 다방은 사라진 다방이지만 내 추억이 많이 서려 있다.  ( 2007/07/02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인연의 나선 궤적을 따라서 ,  2014/12/17 - [이것저것/말, 글자, 중국어 ] - Things Old and New - 중국말 사전 앱 Pleco )

 

그래서 학림다방에 들어 가게 된 것이다.

 

내부는 옛 스럽게 꾸며 놨지만 60 여년전의 그 것들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식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비엔나 커피를 마시고 다시 비를 맞으며 귀로에 나섰다.

 

여긴 143번이 대치사거리에서 온다.   그 버스를 타면 돌아 갈 수 있으려니 했는데 대학로에서는 강남행이 없었다.     그래서 마로니에 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강남행 버스는 혜화동 로타리에서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버스를 올라 탔다.   버스는 창경궁과 종묘를 지나 을지로1가 를 신세계 백화점을 지나 남산 제3호 터널을 뚫고 간다.    잠원동을 지나 강남의 일대를 돌아 디니다 대치현대아파트역에 내리니 5시가 가까워졌다.

 

비 오는 날 오후의 긴 데이트가 끝났다.

       

 

 

 

학림다방은 최근의 TV 의 소개 탓인지 기다려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린 계단을 올라 다락같은 공간에 만들어 진 자리에 안내되었다.

 

 

 

다락 자리에서는 아래 홀과 주방이 잘 보인다

 

 

 

창밖 대학로는 여전히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스 크림과 비엔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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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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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2.27 21:55 신고

    비오는 날의 데이트, 참 멋있으십니다. 저도 다음에 대학로 나가면 학림다방에 꼭 들려봐야겠습니다. ㅋ

단상 - 태극기의 기격(旗格)을 떨어 뜨리는 골통들

 

 

Recumbent 자전거를 타면서 안전 깃빨을 달고 다녔는데 언젠가 부터 태극기를 달고 다녔다.

 

특별히 국기사랑이라든가 무슨 애국심이 강해서라기 보다 외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 한국교포들의 인사를 받고 만날 수 있어서였다.

 

아주 친하게 지내는 Sierabird(Peter Paek)님을 알게 된 것도 내 안전기빨인 태극기 때문이었다. 

 

California 의 Death Valley 에서 Badwater 가는 길에서 자동차 창문을 열고 열열히 환호하는 교포를 만났고 San Francisco 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다리에서도 자동차 창문을 열고 열열히 응원해 주는 교포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 

 

이런 연유로 국내에 들어 와서도 그냥 그 때 쓰던 태극기가 달린 안전깃빨을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정치적 이슈를 내 걸고 시위를 하는 꼴통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마치 태극기가 자기네 전유물인양 설쳐 댄다.    국내의 이슈를 내 걸고 하는 시위에 문슨 태극기란 말인가!  

 

탄핵을 지지하는 시민도 그들 못지 않은 애국시민이다.    생각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마치 져들만이 애국시민인얀 태극기를 휘두르면 난리를 친다.

 

그야 말로 기격(旗格)을 떨어 뜨리고 있다.   난 골통편은 아니다.   내가 안전깃빨에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 꼴통으로 오인될까 봐 탄핵판결이 날 때 까지만 태극기를 내리기로 했다.

 

오늘 안전 깃빨을 새로 만들었다.

 

미국에도 꼴통은 있다.   우리가 Los Angeles 의 San Gabriel River Trail 을 달릴 때 우리 태극기를 보고 왜 미국 땅에서 태극기를 달고 다니느냐고 x랄 하는 미국 특전사나 해병대 출신쯤 되는 꼴통을 만날 일이 있다.

 

 

 

 

Palm Spring 자전거 대회에서

이 태극기를 보고 이 대회에 참석한 교토 잔차인이 한국에서 왔나면서 인사를 해 줬다.

2008/02/15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투르드팜스프링스 참가기 3 - 당일1

 

 

 

 

미국 리컴 동호회에 떼 라이딩하 던 날

 

 

 

San Gabriel River Trail 북쪽 끝에서

이 태극기 때문에 만나게 된 Sierrabird(Peter Paek) 님

2007/01/16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코니/보리스 여행기 6

 

 

 

 남가주의 한미 우정의 종 기념공원에서

이 때 양국기가 반 내려왔던 것은

Ford 대통령 서거로 1달 조기를 달게 된 미국의 전통 때문이었다.

2007/01/22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코니와 보리스의 여행기 10

 

 

 

California 주 Death Valley  국립공원안

Furnice Creek 에서 Badwater 가는 길에서

2007/02/15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Furnace Creek 에서 Badwater 까지

여기서  한 교포가 자동차에서 손을 흔들면서 환호해 주었다.

이런 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나랏말쌈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감격스럽다.

 

 

 

이런 삭막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태극기를 본 교포역시 감격스럽고 반가워서 환성을 지른다.

2007/02/15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Furnace Creek 에서 Badwater 까지

 

 

 

Palm Srping 자전거 대회에도 미국에 사는 교포 몇이 참가했다.

우리 태극기를 보고 응원의 함성을 질러 줠다.

2008/02/15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투르드팜스프링스 참가기 3 - 당일1

 

 

Ventura 리컴 동호회의 Miss Dawson 과 나란히 달리는 코니

2008/02/18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미국 자전거 동호회 참가기

 

 

 

벤튜라 리컴 동호회회원들과 떼 잔차중

2008/02/18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남가주1] - 미국 자전거 동호회 참가기

 

 

 

금문교 다리 자전거 길에서

지나가던 교포일행의 차가 창문을 열고 환호해 주었다.

2008/11/21 - [해외여행기/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 San Francisco 에서 8 - 금문교를 자전거로 건너다.

 

 

 

지난 정월 부산 수영강변에서

김진태나 김문수 같은 골통과 한 통속이란 오인을 받지 않으려면 태극기를 내려야 할 것 같다.

 

 

 

오늘 태극기를 뗀 Bentrider 깃발만 단 안전 깃발을 말들었다.

김진태 윤상현 같은 골통들 때문에 수난을 받는 태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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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2.14 22:15 신고

    어차피 본격적으로 라이딩하실 3월에는 탄핵정국이 끝날 것 같아서.. 굳이 새로 만드신 안전깃발을 태극기 대신 사용하실 일은 없으시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ㅎ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2.15 10:53 신고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로 잠시라도 오인되기 싫어서요. 앞으로의 세상은 젊은 사람들의 세상인데 답이 없는 제2의 기계시대에 대한 인식도 없는 늙다리들을 모아 놓고 세상을 뒤집겠다고 태극기를 흔들어 대니 역사를 후퇴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수염이 허연 "서 아무게"라는 변호사가 헌재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는 쇼를 어제 뉴스에서 잠간 봤는데 한심했습니다. 무대 뒤로 퇴장해야 할 사람들이 주인공 노릇을 하겠다니,,, 노욕인지 과욕인지 노망인지 모르겠네요. 분수를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2017년

일상, 단상/잡문 2017.01.01 20:41

2016년은 섣달 그믐의 관례적인 블로그 포스트도 없이 지나 갔다.  날이 포근하다기에 새 3륜을 타고 나갔다.

 

암사동까지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고고자전거샵 일원점에 갈까하고 영동대로에서 다시 회차하여 양재천길에 들어서 분당선 개포역에 올라섰다.  고고샵에 가기엔 넘 늦어 집에 돌아와 택시를 타고 갔다 왔다. 코니가 사려던 시마노 방한화는 여행후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맞춰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뒷굼치가 3륜 프래임에 닿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6년은 늘 하는 말로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어느 해이건 해를 넘기며 지난 한 해를 돌아 보면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내 생에를 돌아 봐도 내 유청년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난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 2010/06/25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전쟁이란 무엇인가 - 625 전쟁의 생존기)

 

미국에서 아내를 만나 지금까지 행복한 삶을 이어 오고 있다.  ( 2007/07/09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운명, 인연, 연애 ) 

 

다시 돌아 오지 않겠다던 스스로의 맹세를 깨고 10년이 못되 귀국했다.   당시 한국의 물리학계는 황무지였다.  ( 2015/12/31 - [일상, 단상/잡문] - 2015년을 보내며 ) 거기서 살면서 좌절하지 않고 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내 멘토이기도 했던 은사 고 조순탁교수가  내 정신적 지주가 되 주셨다. 

 

난 살아 남았고 그 황무지에서 내 최초 그리고 아마도 한국 물리학계에서는 최초의 Physical Review Letters 에 단독명의의 논문을 게재했다.

 

일반물리 카테고리의 논문이라 그 첫페이지에 실렸고 난 여기 저기에서 축하 인사를 받았고 그 논문을 통해서 한국 과학기술총연합회가 주는 최고 논문상을 받았다.  (1988년이었나?)  인터넷에는 그 때 내가 쓴 논문이 검색된다.

 

 

 

 

당시엔 물리학 학술지에서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가 가장 높은 Physical Review Letters 의 60(20) 분권의 첫 페이지 실렸다.   불모지에 귀국하여 어쩌면 한국에서는 최초의 PRL 논문이 아닌가 싶은 논문을 실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커다란 영광이고 자부심이었다. 당시에는 이론 물리 연구 센터도 생기기 이전이라 내 소속은 "서울대 물리학과"  였다.

 

 

개인적으로는 어렵게 살고 있었고 국내의 환경도 만만치 않을 때였지만 내 연구생활은 참으로 행복했다.  난 연구와 교육에 전념했다.   아내가 국제 성심학교에서 받는 월급은 내 봉급을 능가할 때였다. 

 

지난 해 난 몇권의 책을 읽었다.    서평이나 독후감을 쓴다 쓴다 하고 밀고 결국 아직 아무것도 쓴 것이 없다.

 

 

 

빅 테이터와 미래의 지식산업

 

 

 

디지털 경제의 문제점

 

 

 

디지털 경제의 문제점에 대두된 미래의 화폐에 대한 고찰

 

 

 

 

 

 

역사인식의 새 관점

 

 

앞의 세 책은 지난 해 연초에 일어 났던 대 사건 알파고에 의해 촉발되어 읽게 되었던 책이다.   빅데이터가 거의 대세라고까지 할 수 있게 된 요즘이다.  새 패러다임,   "왜"는 몰라도 "예측은 가능하다" 라는 새 패러다임은 과연 어떤 미래성을 갖고 있나가 궁금했다.   대답은 "아직은 결론 내리기 이르다"  가 정답일 것이다.

 

"구글버스에 누가 돌을 던지나" 는 오늘의 제2의 기계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던진 책이다.  성장위주의 신 자본주의에서 디지털경제는 그 한계에 돌입했다.   빈부격차,  청년실업,  헨 조선같은 화두는 이 성장위주의 신자본주의가 디지털경제에 그 대로 유입되면서 생긴 문제다.  무한 성장이란 불가능한 명제인대도 신 자본주의는 이 고전적 목표를 자정기구도 없이 디지털 경제에 수용한 것이다.

 

결국 "승자독식" 의 구조를 만들었고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청년실업의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이란 진단이다.    몇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긴 하나 과연 그것이 신자본주의 틀을 깨고 파괴적 혁명을 가져다 줄지는 매우 비관적이다.

 

네번째 책은 최근에 어느 서평에서 발견했다.  원서는 영문이지만 Kindle 판이 나오지 않아 종이책만 있었다.  종이책이라면 굳이 원서를 사서 재단하고 ebook 만들기 보단 쉽게 살 수 있는 한글 번역서를 사서 전자책을 만들어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늘 생각하던 미국의 한 줌의 정책입안자들이 만들어 낸 미국제일주의자들의 이야기다.

 

사실 미국국민들의 대부분은 모른다.  이런 책을 읽는 사람도 매우 제한적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미국 국민들은 이런 사람들의 무시무시한 책략에 그냥 속아 넘어 간다.   미국이 제일이라는 데 그 어떤 미국국민이 반대할 것인가?

 

그래도 역사는 바로 이런 몇 사람들이 입안해서 만들어 진다.  미국밖의 모든 나라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간다.    그런데 종국에는 미국 국민들도 피해를 입게 되는 것아다.    전쟁을 좋아 하는 나라 미국  그러나 전장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은 그 전쟁터의 나라 국민들 뿐 아니라 미국 군인도 무수히 많다.  그래도 그것은 미국을 위해서란다.

 

앞으로 희망은 있는가?    

 

반반이다.   난 그래도 낙관론자다.   역사는 선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신념이다.

 

새해의 소감은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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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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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1.02 14:41 신고

    '역사는 선방향으로 흘러간다.'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국내 문제도 꼭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1.08 07:58 신고

      어차피 역사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 갑니다. 평균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그러니 너무 절망할 것도 넘 기뻐 할 것도 없습니다. 여여하게 바라봅니다.

2009년 2월 15일 여기에 블로그를 열고 오늘까지 - 방문객 백만명 돌파

 

열심히 방문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오늘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1,000,000명을 돌파했다.  여기로 블로그를 옮겨 온지 8년째이니까 대단한 통계는 아니다.

 

사실 블로그를 시작한 것 만 가지고 따지면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몇번 째라 셀 수 있을 만큼 일찍 시작했다.

 

그 땐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KT 에서 하는 한달에 하드디스크  100MB 공간을 만원인가 주고 빌려야 할 때 였다.  "한미르" 라는 블로그 사이트였는데 사실 한 동안 포스팅을 하지 않아 죽어 있었다.

 

나중에 "파란"이란 블로그 사이트에 새로 블로그을 개설할 때 한미르에 블로그를 개설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란과 한미르는 모두 같은 KT가 하는 포털이였다. 

 

그 때 내가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첫 포스팅에 썼다.

 

이젠 "한미르"도 "파란"도 다 사라졌기 때문에 그 흔적도 없지만 여기에 블로그를 이전해 오면서 첫 인사말로 이런 지난 날의 이야기를 쓴 일이 있다. 

 

Blogging 에 대한 단상 - 블로그를 열면서

 

그 때 블로그를 개설하게 충동을 준 것은 미국여행에서 사 온 책 한권 이었다.  위 글에 그 책 표지를 올려 놨다. 

 

  

 

 

 

오늘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1,000,000명을 돌파했다.

여기로 블로그를 옮겨 온지 8년째이니까 대단한 통계는 아니다.

 

 

한 미르에 블로그를 열긴 했어도 계속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죽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네이버에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었다.

 

그 때가 2004년 5월 11일이다.  여기에 이사오기 5년전이다.

 

네이버에서 여기로 이사오게 된 계기는 네이버의 정책에 불만이 있어 일종의 "보이콧" 이란 의미로 네이버를 떠났던 것이다.    네이버 카페 유감 

 

나 하나 떠난다고 네이버가 눈 깜짝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대로 일종의 항의의 표시였다.

 

네이버를 떠날 당시만 해도 내 네이버 블로그의 방문자가 하루 400~500명 수준이었으니까 그 숫자가 유지 또는 상승했으면 지금쯤 총 방문객수가 100만이 아니라 수100만이 넘었을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한 많은 사람이 읽어 주기를 바란다.  또 응원하는 댓글이라면 응원도 바란다.    그러니까 방문자수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애를 쓰는 편은 아니다.

 

내가 노력하건 아니건 간에 방문자 수는 네이버 같은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검색엔진이 내 블로그의 페이지 랭캉을 어떻게 매기느냐에 결정된다.

 

2009년 여기로 이사온 후 거의 내 팽개치다한 네이버 블로그도 아직도 하루 방문자 수가 40~50명 되고 누적 방문자 수가 60만을 넘어섰다.  내 티스토리 방문자 수의 60% 다.

 

아래에 여러 통계 도표를 올려 놨다.   이 표를 검사해 보면 네이버의 영향이 얼마니 지식 정보의 유통을 왜곡시키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한망필망 (韓網必亡)이다. 

 

페이지 랭킹을 올리기 위해서 돈을 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 방문자수를 늘리는 것은 정말 그 내용이 좋아서 내 글을 엵는 독자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루 1000 명이 넘는 방문객이 있다는 것은 내 글을 좋아 하는 독자가 그 만큼 많다는 뜻이고 방문객 여러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2005년 5월에 개설한 네이버 블로그우 첫 페이지

아직은 살아 있다.

이 블로그에 남아 있었다면

총 방문객 숫자는 100만이 아니라 수100만이 되었을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첫 페이지

 

 

 

네이버에서 옮겨 온지 8개월 지난 2009년 10월의 방문자 통계를 보면 하루 방문자가 한자리 숫자일 때가 많았다.

네이버 블로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네이버는 여전히 한동안 400~500 명의 하루 방문자수를 유지할 때였다.

 

 

 

2013년이 되어서야 겨우 5년전의 네이버의 방문자 숫자에 육박하게 된다.

 

 

 

1000명이 넘는 방문자 숫자를 기록하게 된 것은 올해 들어서였다.

이 것은 네이버의 페이지 랭킹 알고리즘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죽은 네이버의 내 블로그의 방문자수는 여전 하루 40~50명의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방문자 숫자도 60만을 넘어 섰다.

 

 

 

유입경로의 우선 순위를 보면  네이버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알 수 있다.

 네이버의 검색이 모바일과 여타기기를 통틀어 80% 를 차지하고 구글은 20% 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여타의 경로도 네이버의 카페검색이 압도적이고 모바일"다음"이 그 뒤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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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26 14:10 신고

    방문객 백만 돌파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글 올려주실수 있도록 늘 건강하십시요..

  2. 열이아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26 17:15 신고

    백만 축하드립니다.
    저는 네이버 페이지 랭킹 알고리즘을 비켜갔는지
    작년이나 올해나 방문자수는 별 차이가 없네요 ^^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6.10.27 03:51 신고

      감사합니다. 상위노출을 위해서 네이버 알고리즘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 자주 바꾼다고 합니다. 네이버 트래픽을 유도하는 인위적 알고리즘을 쓰다 보니 역습을 당하는 거겠지요. 제 경우는 덕을 좀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 확 줄어들지 모릅니다.

  3. 더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1.06 09:27 신고

    축하드립니다^^ 또, 백만번이상 사람들에게 생각과 공감의 선물을 주신것을 감사드리고요~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6.11.06 11:54 신고

      감사합니다. 네이버의 페이지 랭킹 알고리즘이 바뀌었는지 방문자 수가 반으로 꺾였습니다. 네이버 같은 트래픽을 왜곡하는 사이비 서치 사이트가 있고 또 그 알로리즘을 악용해 방문자수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무리들이 있는 한 별 의미가 없는 숫자일 뿐입니다.

오늘 2016년 물리학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언젠가 탈 것이라고 기대가 되었던 사람들이 타게 되었다.    

 

J. Michael Kosterlitz Brown 대 교수는 내가 1995-1996년 Brown 대에 방문교수로 갔었을 때 내 host 였었다.  마침 그 교수의 옆방에 빈 연구실이 있어 그방을 1년 빌려 썼었다.   담배를 피우는 그 친구는 물리학과건물이 금연건물이라 낮에는 아래층 현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다 퇴근시간이 넘어 건물이 비게 되면 연구실에서 담배를 피는 것 같았다.  그 연기가 문밖으로 새어 나와 내 방에까지 들어 오곤 했었다.

 

2011 년 동부여행 갔을 때 그 현관까지 갔었는데 건물안에는 들어 가진 않았다.

 

 

 

 

현관 2층 왼쪽이 Kosterlitz 교수방이고 왼쪽이 내가 1년 동안 썼던 연구실이다.

2011년

http://boris-satsol.tistory.com/786

 

 

 

이 번 노벨상의 업적인 기이한 구조의 물질 연구는 그 후에도 여러 물질 모형에도 적용되었는데 나도 내가 개발한 몬테칼로 기법을 써서 이런 물질의 연구를 했었다.   

 

1995-1996 Brown 대 방문시 그 친구와 공동연구해서 발표했던 논문의 초록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나온다.

 

 

1995-1996 년 Brown 대 방문 교수로 갔을 때 내 Host 였던 Kosterlitz 교수와 공동연구한 연구논문

논문의 제1저자 이수열군은 당시 내 박사과정 학생으로 Brown 대학에 여름과 겨울 두번 단기 방문해서 Kosterlitz 교수와 함께 연구했었다.

 

 

내 모교인 UW 의 Thousles 교수와 함께 낸 KT(Kosterlitz Thouless) 상전이 연구는 워낙 유명세를 탄 연구라  언젠가는 노벨상을  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KT 상전이는 이 두 사람이 70년대에 이룩한 업적이지만 이 연구에 선행하는 소련 물리학자 Vadim L'vovich Berezinskii 의 연구가 있었던 것이 뒤 늦게 밝혀 졌다. 

 

안타갑께도 Vadim L'vovich Berezinskii 교수는 1980년에 타계해서 이 번 노벨상수상자에 합류하지 못했다.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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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05 14:46 신고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분이 선생님과 인연이 있으셨던 분이군요. 반가우셨겠습니다.
    얼른 우리나라에서도 수상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06 10:38 신고

    노벨상은 업적도 업적이지만 운이 좋아야 합니다. 몇년전 컬럼비아 대학에 있는 제자교수가 반드시 끼어야 할 업적에 노벨 위원회의 실수로 빠졌던 일이 있습니다. 노벨위원회도 그 실수를 인정했지만 시상이 끝난 다음이라 아쉽게 된 일이 있습니다.

  3. 더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18 10:51 신고

    오호~~ 왠지 우리나라도 노벨상에 가까이 간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수년전 캠브리지에서 일할때, 그 조그만 도시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60명이나 나오고, 십수명이 아직 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 지방 TV에서 보면서, 노벨상 수상 할아버지가 이웃집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그 곳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영향을 주는 듯했습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6.10.18 15:23 신고

      가까이 있긴 합니다만 워낙 경쟁이 심하니깐요. 1900 년초엔 물리학자도 많지 않았고 현대물리학이 건설되던 때라 웬만한 업적이면 새로운 의미있는 연구결과였는데 요즘은 물리학자의 수도 많을 뿐 아니라 연구분야도 너무 다양하게 갈리져 있어 같은 물리학자라도 그 분야 전공자가 아니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노벨위원회의 수상자 선정도 그만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 명예교수 샛솔 이구철

A. 가르친다는 것
내가 평생을 배우면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항상 느끼고 있다. 1970년에 부임해서 2001년에 은퇴할 때까지 30 년을 넘게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나는 나대로 열심히 강의하였다. 그렇지만 받아들이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70년대에는 서울대 물리학과는 한국의 수재들여 다 모일 때였다. 그때 나는 이젠 마로니에 공원으로 변해 버린 동숭동 캠퍼스에서 일반물리학을 강의했었다. 그때 사용했던 교과서가 수준 높기로 이름 난 "버클리 일반 물리학"이란 책이었다. 그 내용이 너무 과격하리만치 혁신적이어서 미국대학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오직 일류대학의 심화 과정(honor class) 의 소수의 아주 우수한 학생에게만 가르치는 거의 대학원 수준에 육박하는 그런 교과서였다.

그 때 내게서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나와 함께 학생을 가르치는 동료교수가 되었다. 언젠가 교과과정 문제를 논의하던 회의가 끝난 후 사석에서 그 때 내게서 배웠던 제자 동료교수가 그 교과서에 대해 비평하면서 교과서가 너무 어려워 내 강의가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고 실토하였다. 그 교수는 내 반에서 1~2 등을 다투던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도 만점에 가까운 답안지를 내던 그런 학생이었다. 이 학생이 이랬다면 나머지 학생들은 어땠을까? 나는 그 교수의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버클리 물리의 백미는 제 2권인 전자기학이다. 하바드 대의 퍼셀이라는 교수가 쓴 이 책은 막스웰의 전자기학을 그 책에서와 같은 관점으로 쓴 것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생각된다. 아인쉬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을 써서 움직이는 전하가 만드는 전기마당이 바로 자기마당이라는 것을 보였다. 전자기학은 그 자체가 특수 상대성이론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물리학과 2학년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것이다. 나도 이 새로운 관점은 처음 대하는 것이었고 참으로 "멋" 있는 접근법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이 교과서에 매료되었고 신 바람이 나서 강의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치기 어린 젊은 교수의 "멋내기"요 "뽐내기"였던 것 같다. 전국의 수재들을 칠판 앞에 모아 놓고 스스로 도취되어 옷소매에 백묵가루 범벅을 한 채 입에서 침을 튀기면서 "폼" 한번 잡아 봤는지 모른다.

 



어떤 교육개혁을 주장하는 교수는 이런 말을 하였다. 교사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학생도 자기와 같이 생각하고 자기의 설명을 받아들일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내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고 박사 후 과정까지 거쳤는데 내가 버클리 물리학을 이해하는 차원을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와 물리를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 이해하기를 기대했던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왜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을까?

B. 수학과 물리는 왜 배워야 하나?
수학과 물리는 왜 배워야 하나?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경영전략가 톰 피터스는 미래(10 내지 15년안의)의 가장 경쟁력 있는 직종10 을 꼽고 사라질 직업 10을 꼽았다. 가장 경쟁력 있는 직업 10은 지금은 그 이름도 생소한

Tissue Engineer, (근육조직 기술자, 로보트 만드는데 필요한가?)
Gene Programmers, (유전자 조작 지술자)
Pharmers, (유전조작 관련 의약업자)
Frankenfood Monitors, (유전자변형식품 비평가)
Data Miners, (많은 데이터 중 적합한 데이터를 찾는 직업)
Hot-line Handymen, (생체세포 긴급호출업자?)
Virtual-reality Actors,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배우)
Narrowcasters, (지역유선방송업자)
Turing Testers, (컴퓨터 인공지능 관련 업자)
Knowledge Engineers (지식 기술자)

* () 내는 모모 가 번역한 것이므로...맞지 않을 수도 있음)

따위이다. 하나같이 쉬운 직종이 아니다. 한마디로 쉽게 익힐 수 있는 직종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단순 노동의 직업은 사라진다. 70년대 영국 부두노동자 108명이 5일 걸려 하던 목재 하역작업을 컨테이너가 도입되면서 8명이 1일에 해 치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8/540 의 man-days 의 감축효과다.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변화는 이루어 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가속도가 붙었다. 라디오가 처음 도입된 이후 5천만명시대에 도달하는데 37년이 걸렸으나 웹이 도입된 후 5천만 사용자에 도달하는데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루 칼라 노동의 혁명은 100년 걸렸지만 화이트 칼라 혁명은 10 년안에 이루어 질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업그래이드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젊어서 한번 배운 기술로 평생을 밥벌이하고 살 수 있던 시대는 지나 갔다고 한다. 지식 기술의 발전과 변화는 눈이 팽팽 돌 지경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직업 또 업그래이드 해야 직업은 모두 이러한 지식 기술 산업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 기술은 모두 수학과 물리에 그 뿌리를 갖고 있다.

참고로 앞으로 사라지거나 그 형체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할 직업 10로는

Stockbrokers, Auto Dealers, Mail Carriers, Insurance and Real Estate Agents,
Teachers,
Printers,
Stenographers,
CEO,
Orthodontists,
Prison Guards,
Truckers,
Housekeepers,
Fathers

등을 꼽았다. 여기에 교사가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교사는 가르칠 내용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기술에 바탕을 둔 교육매체를 제작하고 개발하는 일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옛날 자기가 배웠던 내용을 자기가 배웠던 방법으로 그대로 답습하며 가르치는 교사로서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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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6.26 11:53 신고

    잘 읽었습니다. 사라지거나 형체가 변할 직업에 Fathers 도 있는게 의아합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6.06.26 14:15 신고

      이 글은 우연히 daum 의 어느 카페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사라진 사이트에서 어떤 사람이 제 글을 옮겨 온 것 같습니다. 원 사이트는 없어 지고 제 글만 다른 사람에 의해서 보존된 셈입니다. 아버지 직업은 시험관 수정이나 복제에 의해서 대치되고 그 다음에는 어머니 직업도 인공자궁에 의해서 대치된다는 전망입니다. 아직도 그 타임지를 보관하고 있어서 다시 들춰 봤습니다. Tom Peters 가 조금 앞선 전망을 내 놓은 것 같습니다.

2015년을 보내며

 

2015년을 몇시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별 감흥이 없다.   섭섭한 것도 새해에 대한 기대도 별 것이 없다.  

 

아쉬운 것은 한국 정치가 너무 실망스럽다는 것과 윈도우즈가 여전히 죽지 않고 기를 쓰고 있어 내가 블로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팔 저림이 심해서 타자입력이 어렵기 때문에 음성입력을 고려 중인데 윈도우즈에서는 한글 음성 입력은 요원하고 애플 제품에서는 티스토리가 지원되지 않는다.

 

1970년 내가 귀국하던 해 한국은 여전히 뒤떨어진 나라였고 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마지막 치를 대통령 선거를 위해 준비하던 해였다.   내가 부임한 서울대 문리대(동숭동)는 데모의 원천지로 한 외국인이 한국의 버클리라고 불렀다.

 

대학은 황폐했고 나는 갑자기 무인 고도에 내어 던져진 사람같이 느꼈다.     물리학과엔 일정때 일본에서 제국대학을 나온 내 학부과정 때 우리를 가르쳤던 선배 교수 2분 그 다음 세대의 두 선배교수가 있었지만 한 분은 교무처장으로 본부에 나가 있어 물리학과를 비웠었고 또 한 분도 전공분야도 다르지만 연구생활하고는거리가 먼 분들이었다.  1년 선배 한 분이 있었지만 교수에는 맞지 않는 체질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거기에서 물리를 한다는 것은 무인고도에서 살아 남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 내가 차지한 교수자리를 비워주시고 서강대학으로 전직하신 내 학문의 은인 진정한 내 멘토였던 고 C 교수가 제안해서 서울에 있는 통계물리분야의 사람들 다섯이 수요일에 서강대학에 모여 통계물리 수요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서강대학의 은사께서 수요일에 모일 때 서강대에서 한 과목 가르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들어 처음이자 끝으로 외부 출강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서강대학엔 지금 청와대의 주인이 학생신분으로 재학하고 있었다. 

 

내가 가르친 과묵은 Berkeley Physics Vol 3로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 3학년 학생이 듣는 과목이었다.  박근혜학생은 이 과목을 듣지 않았지만 서강대학에 갈 때 학교에 검은 정장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일때는 박근혜학생이 등교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이 학교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 학생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청와대의 규수학생이란 것은 그 때 안 셈이다.

 

1980년대 내가 전산물리에 흥미가 있어 몬테칼로 기법으로 고비현상을 연구할 목적으로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Physics Today" 라는 잡지에 기계어를 써서 3D  Ising Model의 Crtical Phenomena를 PC 로 연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것이 자극을 받아 기계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라는 잡지에  PC의 Dos 의 내막을 풀어 해설하는 기사를 연속해서 써 대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디서인가 그 젊은이가 서울대학의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이름은 안철수였다.     난 안철수씨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일은 없어도 그 이름은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안 셈이다.

 

요즘 TV를 보고 있노라면 노동법을 개정하지 않는다고 국회를 욱박지르는 광고를 마추치게 된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국회를 욱박지르는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노사합의를 했다는 노동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진보 세력은 개악이라 하고 보수세력은 필요한 법이라고 한다.     노동시장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어쩔 수 없는 추세다.    그럼에도 많은 세력이 반대하고 있고 그래서 국회는 선뜻 노동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만큼 재벌들의 구조도 개조해야 한다.   그런데 한 편은 고치고 딴 한편은 전혀 고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그런 재벌들로 부터 정치자금을 차떼기 형식으로 받은 한나랑당의 당수였다.    그러니 불신이 생기고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고 남만 탓하고 욱박지르기만 하니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차떼기 정당 한나라당의 당수였다.

오늘날 필요한 노동법을 만들지 못하는 그 근원은 그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과연 노사정 합의라는 것이 노동계만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최근 김부겸이라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안철수에에게 7,80년대 안철수가 치열하게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운동권이 치열하게 운동을 하는데 그 뒤에서 편안하게 컴퓨터 백신이나 개발해서 인기를 얻었다는 사고방식이다.

 

 

 

80년대 안철수씨는  Dos의 내막을 파 해치는 기사의 열성적인 기고자였다.

Dos를 알았기 때문에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난 이 사람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운동권의 100배는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과거의 기여를 했다고 운동권이나 백신 연구자가

그 공적으로 무얼 할 자격이 있다고 내 세워서는 안된다.

 

 

나는 70년대에서 민주화가 정착되던 2000년까지 운동권의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계엄군이 동숭동 문리대 정문을 탱크를 드리대고 문을 닫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때 휴교로 수업을 못한 부분을 보강을 한다고 구정에도 강의를 했다.  박정희시절 구정은 폐지되었고 공휴일도 아니었지만 대개 겨울방학 기간이라 쉴 때였다.    거기에다 그래도 설날인데 학생들을 등교시켜 부족한 수업을 보충했다.

 

내 선배교수는 내가 얼마나 철두 철미 원칙주의자였나를 강조하기 위해 구정에 강의를 한 사람이고 여러사람들에게 자주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30여년간 가르친 학생들이 오늘의 한국 과학기술의 중요한 역군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   유신 정권때 미국에서 1년 동안 연구교수를 지낼 때 한 교포 지인이 나를 격렬하게 바난한 일이 있었다.   내가 치열한 반유신 교수가 되어 시국선언이라도 하고 중정에 잡혀가기도 하고 퇴직도 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 때 내 대답도 그 에 썼다. ( <대한 민국호>에서 살아 남기 )

 

김부겸이란 정치인도 내가 재직할 때 서울대 학생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2년이 걸렸으면 치열한 운동권 학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운동권이  운동을 한 것이 우리나라 민주화에 그렇게 크게 기여했다고 보지 않는다.   운동은 운동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정도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때 이 운동권출신이 한 정치세력이 되어 오늘날 차떼기당이나 별 다를 바 없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거기다 무능하기까지 한 정치세력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선거에 이겼어야 했다.  아무리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어도 시대적 여건으로는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런데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 버렸다.    카리스마도 지도력도 선거전략도 없이 그냥 무너진 것이다.  미국에서 대선에서 진 후보가 또 다시 대선 후보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적어도 한 term은 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무능한 문재인 또 야당 대선후보로 나오려고 한다.   그 때 그나마 그 정도의 표를 얻은 것은 안철수씨의 양보 덕이었다.  무능한데에다 염치도 없는 사람이다.

 

안철수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또 다시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실망시킬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늘의 정치를 보면 우울할 뿐이다.  새해에는 좀 더 밝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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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12.31 22:20 신고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즐겁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 이종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1.04 09:42 신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3. 황성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1.04 14:51 신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존경스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ㅎ

  4. 이승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1.05 12:20 신고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5.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1.07 13:32 신고

    선배님 나이는 드셔도 정신은 더 젊어지십니다
    이곳에도 선배님의 유능한 제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조국의 앞날에는 나몰라라 침묵하고 있어 답답함을 금치 못하고 있답니다
    부디 새해에도 건강하셔서 계속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6.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1.08 09:18 신고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좋은 글 많이 쓰고 계시네요.
    늘 강건하시고요..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6.01.08 11:26 신고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수문장님 내외분도 안녕하시죠? 우리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12일 대만에 가서 5 주 지내다 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전거는 가지고 가지 않고요. 빌려서 타게 되면 타려고 합니다.

갑갑한 메르스 세상 - 슈퍼 스프레더

 

 

오늘 까지 1 주일 째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   꼴이 그렇다는 것.   지난 주 수요일 대치동 소동이 빚어 지고는

2015/06/04 - [일상, 단상/잡문] - 메르스(MERS) 직격탄 맞은 대치동 - 그렇게 무서운가?

한 두번 아내가 가는 슈퍼에 따라 가고는 집에 콕 박혀 있으니 스스로 자청한 자가 격리가 된 셈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도 답답해 하기는 마찬기지다.     유치원도 휴원이라 집에 콕 박혀 있으니  갑갑해서 몸을 비틀고 있다.

 

한국에서 이렇게 빨리 많이 메르스가 퍼진 것은 재수가 없어서 메르스 1 번 환자가 슈퍼 스프레더 였기 때문이었다.

 

슈퍼 전파자란 일반 감염자 보다 엄청 전파률이 높은 감염자를 말한다.       여러 타입의 슈퍼 전파자가 있지만 병원 감염이 주 감염경로가 되는 경우 병원에 입원한 슈퍼 전파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자의 면역체계나 병력이 이 바이러스를 엄청 많이 증식시키기 알맞아  바이러스 농도가 매우 매우 높아서 쉽게 주변의 접촉자를 감염시키는 감염자를 슈퍼전파자라고 한다.

 

1번 환자와 14번환자가 슈퍼 전파자로 분류되고 있다.  취초의 환자가 슈퍼 스프레더였으니 한국의 이번 사태와 같은 급속한 Mers 의 창궐국이 된 것이라는 추정.  더욱이 MERS 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던 한국에 스퍼 스프레더가 병원에 입원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 했던 것.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다.   슈퍼 스프레더의 상태였기 때문에 중동에서 쉽게 감염되어 돌아 왔는지 모른다.    아무턴  사우디 아라비아를 빼고는 이렇게 급속하게 많은 감염자를 일으킨 예가 없으니 재수가 없기 없는가 보다. 

 

하도 답답하여 해 보는 푸념이다.

 

http://www.voanews.com/content/newest-mers-cases-raise-fear-of-containment-breach/2808634.html

 

 

 

Mers 의 전파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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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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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 직격탄 맞은 대치동 - 그렇게 무서운가?

 

한티역 근방에 살고 있는 난 재미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오늘이 목요일이라 여느 주중 한낮의 자동차와 사람들을 볼 터인데 마치 일요일 새벽과 갈은 광경을 보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대치동을 황폐화시킨 것이다.

 

hypocondria는 질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을 갖는 일종의 정신적 장애다.    이번 <메르스 대치동 현상>은 일종의 사회적 또는 집단적 질병공포장애다. 

 

나도 오늘 지난 월요일 받은 건강 검진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지만 전화를 걸고 연기했다.    공연히 용감하게 나 다닐 필요가 없지 않나 싶어 내원을 연기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연구 분석해 보기로 했다.

 

과연 이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타당한가?

 

전염병 전파에 대해서 수학적 모델이 많이 적용된다.  이 수학적 모델은 내가 전공한 통계물리학에서 많이 다룬다.   스며들기 모형(percolation model) 이라 불리는 이 이론의 여러가지 변형이 전염병 전파의 연구에 많이 쓰인다.

 

먼저 이번 난리를 치는 Mers 는 매우 낮은 전염률을 가진 전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최신 의학 전문지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일반 접촉(household contacts) 에 의한 전염률은 약 5% 로 추산되고 있다.     이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스미기 이론(perocolation theory)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10 명의 초기 환자가 병에 걸려서 죽거나 다 낫는 기간을 1달이라고 보자.    이 한 달의 보균기간에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해서 전염병을 전파시킨다.    메르스의 전염률이 5% 라 하면 100 명과 접촉을 하면 5명이 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한달간에 이 보균 환자 하나가  100명의 비환자와 접촉을 했다 하면  약 5명의 환자를 만들어 낸다.     한 달후의 환자수를 초기환자와  새환자의 겹치는 기간을 무시하고 계산해 보자.   한달 후엔 초기 환자는 모두 죽거나 나았으니 새 환자는 5명x10(초기환자수) = 50 명이 된다.    한달 사이에 5배 가 늘어 난 것이다. 

 

두달이 되면 다시 5배가 늘어 나 250 명이 된다.   이건 전염병의 창궐(outbreak)을 가져 온다.  

 

한편 초기 환자가 보균기간에 10 명의 비환자와 접촉을 한다고 가정하면  한달 후면 0.5 명에게만 전염병을 전파한다.

 

열명의 초기환자는 죽거나 다 낫고 한달 후엔 5명의 새 환자가 발생한다.  죽 환자수는 반으로 준다.

 

이렇게 되면 궁국적으로 환자수는 0 으로 감소한다.    전염병이 잡힌 것이다.

 

만약에 초기환자가 20명의 환자와 접촉을 했다 하면 한달 후엔 자신은 낫거나 죽고 새 환자수는 한명으로 남고 따라서 10명의 환자수는 여전히 초기환자수와 같은 10명으로 변동이 없다.

 

이 변동이 없는 접촉자 수를 문턱값(threshold) 라고 한다.  즉 접촉자 수를 이문턱 값보다 적은 수인 20명 미만으로 격리 관리하면 전염병은 몇달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지는 것이다.

 

따라서 전염률 5%의 전염병은 잡기가 매우 쉽다.    보균기간에 접촉자수를 20 명 미만으로만 유지하면 저절로 전파는 정지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초기 환자가 한달도 못되는 기간에 30여명에게 전염병을 전파시켰다면 보균기간에 20명 이상과 접촉했고 또 새로 감염된 사람도 보균기간에 20명 이상과 접촉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병원의 전염병 예방의 의식수준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창피한 것은 1차 발병자가 생기는 중동 지역 이외에 발병환지의 수가 두자리 숫자를 기록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중동지역도 사우디 아라비아룰 빼고는 발병 환자수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제 이 병이 어떤 전파력을 갖고 어떻게 격리하면 되는가를 이해가 되었으니 결국은 잡히고 말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보균자를 잘 관리하고 격리 시키면 병원 밖에서 일어나는 창궐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따라서 대치동 메르스 소동은  일종의 질병에 대한 사회적인 공포증후군(Social Hypocondria)이다.    대치동 맘들의 무식에서 나온 사회정신적 장애증후군이다.

 

 

 

 

한티역 롯데백화점에는 백화점에 들어 가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단국중고등학교,  학원들이 모두 휴업을 하자 인적이 거의 끊겼다.

 

 

 

주중 오후 서너시엔

한티 롯데 백화점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뒷길엔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보행자도

자동차와 교행하기 어려울 만큼 분비지만 오늘은 몇 사람 보이지 않는다.

 

 

 

 

10여년전에 중국에서 발병한 SARS 와 MERS 는 같은 근원을 가진 호흡기 전염병이지만

SARS 는 8 개월만에 8000 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반면

MERS 는 18 개월 사이 환자수가 200 명 정도다.

아직까지는 이병의 창궐은 nosocomial (병원을 매개해서 전염되는 - 병원 감염)이고 병원밖에서 창궐한 일은 없다고 한다.

단지 앞으로 변이에 의해 전파력이 강한 변종이 나오비 않을까 한는 점만이 걱정이라고 한다.

 

 

 

 

최근의 의학잡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에 나온 MERS의 전파률.

일반 접촉에 의한 전파률은 약 5%라고 한다.

 

 

 

 

한국의 MERS 창궐에 대한 WHO(세계보건기구) 의뉴스 기사

 

 

 

한국의 MERS 창궐은 보도 했지만

WHO 의 입장은 아직은 여행이나 무역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못박고 있다.

대치동 휴교는 과잉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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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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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6.05 07:20 신고

    저도 그럴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군요. 잘 읽었습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5.06.05 11:41 신고

      사회관계망과 쓸 때 없는 걱정이 일을 크게 그르치고 있습니다. 전염률 5% 라 하면 환자의 배우자라 해도 전염될 확률은 1/20 이니까 아주 낮은 전염률입니다. 조심만 하면 집에 환자가 있다 해도 다 걸리는 전염병이 아니란 거지요.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6.18 01:44 신고

    흠... 대치동 거주자인데 우선 단국중고등학교는 휴업을 안했고 최근에 학교5분거리의 빌딩이 메르스로 폐쇄되어 18일경 짧게 회의만 한 상황이고요. 저는 아지가즈는 사람이 적다고는 못느끼고있습니다.

  3.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6.18 06:23 신고

    2주전 6월 4일 이야기입니다.

  4. 뚜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6.24 21:08 신고

    잘읽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이신지 궁금하네요 저 한티역 나갈일이 있거든요 ^^;;
    저는 처음엔 호들갑 지난주에는 무덤덤 이번주는 걱정 중이거든요.

  5.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6.25 04:41 신고

    밖에 나 다녀서 MERS 에 감염될 확률은 0 이라고 봅니다. 현재 모든 감염자는 병원에 격리 치료를 받고 있어 그들을 접촉할 기회는 없습니다. 단지 감염되었는데 모르고 돌아 다니는 사람이 간혹 있을 지 모르지만 길거리에서나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만날 확률 또한 0 에 가깝다고 봅니다.

한 잔의 술

 

최근의 타임지 (May 26, 2015) 는 술 얼마가 과음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연구결과를 전했다.

 

How Much Alcohol Is Too Much? A New Study Has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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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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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5.31 22:07 신고

    '한잔의 술'이 반주 개념으로 볼수 있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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