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인생, 만남, 부부 본문

일상, 단상/나

인생, 만남, 부부

샛솔 2006. 2. 19. 00:16

만남, 사랑,  애정,  변심,  이별,  아픔, 미움과 원망, 분노,  회한, 상처,  그리고 원한, 이것이 되풀이  되는 것이 삶의 번뇌 라던가.

 

세상에 태어 날 때 부모를 만나고 그 인연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것이다.
내가 나를 의식할 때 나는 부모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모와 자식의 인연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일 때가 많다.
진화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다만 종족 번식의 본능의 변형일 뿐이다.
동물의 세계에도 제 새끼를 위한 헌신적인 어미들을 만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효" 를 가르친다.
그러나 효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자연에 거역하는 문화다.
언젠가 일본 영화 한편을 본 일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
백년전 일본도 가난하기 그지 없을때 한 산골 마을에는 고려장이라는 전통이  살아 남아 있었다.
그곳은 너무나 척박한 산골이 되어 감자로 연명하는 동네였다.
그들은 이가 빠지고 노동능력을 잃은 노인을 그 자식이 산채로 산에 지고 가서 깊은 골자기에 버리는 전통이 있었다.
봄이 되면 새로 태어날 아기의 식량을 축 낼 수 없어 한 노모는 스스로 멀정한 이를
돌로 으깨는 처절한 장면이 있었다.  마을의 운영회에서 고려장의 대상을 선정한다.
그 대상은 이가 빠져야 한다.  그래서 그 노모는 새로 태어날 손자를 위해서 죽기를 결심한다.

 

일단 그 대상이 결정되면 나름대로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그 아들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간다. 
그것이 산란을 마친 연어가 스스로 죽어 새로 태어나는 새끼의 먹이가 되는 동물적인 종족번식의 행태와 같은 것이다.

묘하게도 그 일본영화는 이 무시무시하게 비정한 문화를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봄이 되어 어름이 녹아 흘러 내리는 시내에 새 생명들이 움틀거리고 노모가 사라진 집에는 새 아기가 탄생한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 순리였다.

 

도대체 문화란 무엇인가 전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참으로 많은 왜곡된 인습에 의하여 상처 받고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어려서는 부모에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 을 따르라고 가르친 옛 도덕율.
칠거지악이니 하여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유교적 전통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여성은 한없이 구박 받고 속앓이 하였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누나들이 또 아내와 딸들이 그런 대우 를 받은 것이다.  아직도 그 인습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인류가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후 과거와 미래의 사유능력이 생기고 과거를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고 병적인 집착이 시작된다. 
동물에게는 과거가 없다.
과거를 사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미래 또한 존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는 미래에 불안해 하고 그 불안에 괴로워 한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언젠가 늙고 죽을 것이라는 불안이 가장 크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것이라는 것도 큰 불안이요 슬픔이다.
살아 헤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사별할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자라면서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난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을 만나게 되고 성년이 되면서 마침내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자식을 낳으면 또 새로운 만남이 되고 그 만남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없는것.

그 만남은 사랑일 수 있고 또한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것도 영원할 수가 없고 마음은 또 바뀔 수 있다.
변심만이 이별을 가져 오지 않는다. 어떤 때는 영원한 이별을 하게도 된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국인 노부부집에서 아내를 만났다.
우리는 열애에 빠졌다.
어느 주말에는 새벽 두시에 닫는 피자집을 나와 그냥 헤어지기 섭섭하여 새하얀 아침이 올 때까지 이슬 젖은 길을 걷기도 했다. 
아아 그 무슨 열정이었던가!

 

우리는 이듬해 유월 어느날 결혼을 했다. 아내는 서울의 명문 여대를 나온 유복한 집 맏딸이었고 나는 연로한 홀어머니와 함께 출가한 누님집에 얹혀 살다 온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아내의 부모는 나에게 온갖 모욕 을 퍼 부으며 결혼을 반대했고 심지어 내 어머니에게 까지 가서 반대를 종용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여이 결혼을 했다.  그것은 1961년의 이국 땅이었기에 가능하였다.

 

미국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고 한 미국인 집 뜰에서 친구와 친지 몇을 초청하여 한국식으로 보자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싸구려 결혼 반지와 목사님 사례비 10불이 결혼비용의 전부였다.
미국 친지들이 웨딩샤워와 선물로 준 중고 가재 도구를 가지고 풀다운 침대가 있는 원룸에서 신혼여행도 없이 신혼을 차렸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는 일념으로 이 모든 것을 감수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였다. 
갈 데가 없어 밤새워 길거리를 헤맬 필요도 없었다. 
가난하지만 항상 함께 있 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 했다.
나는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위기도 많았다.  그러나 45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내가 먼저 갈지 그녀가 먼저 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부부를 벤치에 앉은 두 남녀에 비유했다.  처음에는 이글거리는 정열의 눈길로 마주 보고 앉았다가는  중년이 되면 갈등과 증오로 서로 얼굴을 돌리고 앉는다 했다.  노년이 되면 정열도 증오도  사라지고 오직  같은 길을 걷는 길벗으로 평행선을 나란히 응시한다고 했다.  

 

은퇴후 우리 부부는 땅끝 마을을 여행한 일이 있다.  땅끝 마을 바다가 언덕에 세워진 토말 탑의 앞에는 벤치 가 놓여 있었다.  날이 좋으면 탐라의 한라가 보인다는 땅끝 언덕 벤치에  우리 부부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  그날은 구름에 가려서   제주섬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도해 섬 사이 사이에는 수평선이 아련히 보였다.     우리는  그 수평선을  한 동한 말없이 쳐다 보고 있었다.  

 

 

 

 

 

우리 둘이 서명한  Marriage 증서


'일상, 단상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4) 2014.03.20
어금니 임플란트  (4) 2014.03.13
78번째 생일  (9) 2013.11.20
임플란트  (2) 2013.09.04
결혼 52주년 - 단상  (11) 2013.06.16
건식 족욕기  (9) 2012.11.20
1945 서울  (0) 2006.03.05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4) 2004.06.1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