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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ttle 에서 다시 찾은 옛 동창생 본문
Seattle 에서 다시 찾은 옛 동창생
내 대학원시절 같은 연구실을 함께 썼던 office-mate 겸 대학원 동창 Nori를 작년 가을 여행에서 10여년만에 다시 만났다.
Nori는 예전에 올린 글 올빼미예찬에서 잠간 소개했던 일이 있다. 그 때 우린 밤중에 피자집이 문닫기 전에 야식으로 피자를 먹으로 자주 갔었다. Nori 와 또 다른 올빼미 Ed와 셋이서.
Nori 내외와 함께 North Lake Pizza 집에서
1969년 일시 귀국했다가 영구 귀국하기로 결심하고 짐정리를 하느라 Seattle 에 되돌아 갔다. 정부에서 보내 준다는 항공권을 기다리느라고 Nori 네 집에서 머믈었었다. 짐을 다 붙이고 과학기술부에서 보내 준다는 ticket을 기다리며 거의 1달 가까이 그 친구집 신세를 졌다.
박정희정권 초기에 과학기술 입국이란 이름으로 해외 과학자를 많이 불러 들였다. 영구귀국하는 과학자에게 항공권과 정착비를 지급하는 제도도 있었다. 그래서 그 혜택을 신청하고 다시 미국에 들어가 짐을 부치고 항공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관청이란 썩어 있었다. 기름을 칠해야 돌아가는 시대였다. 그러니 기름칠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니 항공권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한달 가까이 되어 새 학기 강의가 시작할 무렵에야 항공권이 도착했다.
정착금은 아예 떼어 먹혔다. 사실은 떼어 먹힌 사실조차 몰랐다. 착복한 과학기술부 공무원이 처가집의 먼 일가였던 것이다. 그 친척은 퇴직하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아내가 다른 친척들과 놀러 갔다 만난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난 다음 아내에게 실토했다. 사실은 나에게 줄 정착금이 있었는데 자기네가 착복했노라고 고백을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런 사건으로 인해 Nori 와 Misa 는 나중에 이혼을 했던 것 같다.
어떻든 Nori와는 그렇게 헤어지고 10 여년간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80년대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로 편지가 왔다. Misa 와 는 헤어졌고 자기는 Martha 라는 백인여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첫 부인 Misa 는 순 일본 혈통의 3세로 부모의 중매 비슷하게 결혼한 사이였었다. 그리고는 Nori와는 편지가 몇번 오간 후에 또 연락이 끊겼다. 97년 여름 여름 방학을 Seattle에서 보낸 일이 있다. 30여년만에 처음으로 갔었다.
그때 모교(Univ. of Wash.) 물리학과의 방문 교수로 갔었기 때문에 Nori 의 행방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노리 부부는 몇변 만났다.
그 때 노리는 폐암으로 수술을 했고 완쾌했다고 했다. 그리고 또 10 여년이 흘렀다. 작년 Seattle 에 갔을 때 다시 Nori 를 찾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막연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전화부를 찾아 보는 것이다. 호텔에 비치된 Yellow 페이지에서 Nori 의 전화 번호를 찾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의 ARS 의 녹음 메시지가 나온다.
Google 검색을 하니 또 어떤 부동산 회사의 고지 비슷한 것이 뜨는데 부동산이 버려진 듯한 느낌을 느꼈다. 설마 그 동안 세상을 떴나? 그래도 첫부인 Misa 사이에 Jimmy 라는 아들이 있는데 부동산이 그냥 버려질리는 없잖은가. 그 부동산의 주소가 97년에 만났을 때 Nori네 집이었다. 그래서 일단 그집을 가보기로 했다.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는데 벼려진 집은 아니고 창으로 들여다 보니 등도 켜 있고 사람이 사는 집이다. 대답이 없다. 마침 건너 편에 사람 하나가 나와 일을 하고 있기에 그집에 대해 물어 봤다. 자기는 일을 해 주기 위해 온 사람이라 Nori 네 집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려고 찾아 가던 Gas Work park 근방이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Park 에 갔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돌아 가는 길에 또 들러 봤다. 집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다. 마침 또 이웃에 사람이 있기에 물어 봤다. Nori 네 집에 동양 남자가 산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다면 Nori 가 맞는다. 그날은 그냥 돌아 왔다.
Seattle 을 떠나 오기 전 며칠전에 Nori 네 집 가까이 있는 일식당에서 또 아주 오래 된 Seattle 친구 송박사내외와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다시 그 근방을 가게 되었다. 사실 그 일식당도 97년에 Nori 내외와 저녁을 먹게 되어 Nori 에게서 소개 받은 식당이었다. 그 후 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손님이 많은 잘 나가는 일식집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 다시 Nori 네 집에 가 봤다. 불도 켜 있고 집안에 개도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틀림 없이 살고 있고 동양사람이라면 Nori 임에 틀림 없다고 확신하고 아내가 뒷켵으로 들어가 문을 두둘여 봤다. 먼저 현관으로 나오는 Matha를 내가 알아 봤다. 97년에 보고 작년이니 13년만인데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Nori는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을 나 보다 더 많아 기억하고 있었다. Nori, Misa 내외와 우리 내외가 Ocean Shore 에 Razer Clam (맛조개) 를 캐러 overnight trip 갔던 이야기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이야기 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선전화는 tele-marketing 아니면 선거 캠페인 전화들 뿐이라 아예 친척이름으로 ARS 로 대답만 하게 하고 휴대전화만 쓴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휴대전화번호를 알려 주고 은둔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부동산 회사에 그런 이상한 정보를 인테넷에 올려 놓은 것 같다. 그 얘기를 하니 Nori 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없어 떠나기 전날 우린 다시 만나 그 옛날 대학원생때 자주 갔던 North Lake Pizza 집에 갔었다. Nori 는 그 때 Pizza 집 실내 구조가 이러이러 했다고 기억하고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렇게 듣고 보니 기억이 살아 나는 듯 하다.
Waiter 에 부탁해서 iPhone 사진을 한장 찍었다.
은둔자에게도 인터넷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이 글은 작년 미국 여행기 쓸 때 쓰기 시작한 글인데 그냥 작성중인 글로 남이 있어 조금 덧칠하여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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