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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어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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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어필

샛솔 2013. 12. 20. 17:33

조선시대의 어필

 

서울대학교에서 선물용으로 제작하는 달력은 우리나라의 고서나 고화등을 자료로 만든다.   표구나 액자로  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두꺼운 종이에 고화질 인쇄를 해서 만들어 준다.   매년 해가 끝나면 버렸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달력도 몇장은 뜯어 버렸지만 그대로 버리기엔 아까워 스캔이나 해 둘까 생각했다.  그런데 달력의 서화 크기가 A4 사이즈를 넘어 보통 스캐너로는 스캔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book scan 을 위해 산  ScanSnap ix500은 최대 A3까지도 스캔할 수 있다고 선전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 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그것은 ScanSnap에 딸려 온 Carrier Sheet 라는 투명한 Sheet 에 접어서 양면을 스캔하는 방법이었다.    두면이 스캔되어 이어져 나온다.  정교하게 sheet 에 정열하면 거의 한면처럼  이어져 나온다.    달력은 종이가 두꺼워 접어도 중간부분에 간격이 생겨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 방법을 써서 2013 년 달력을 버리기 전에 스캔해 여기에 올려 두기로 했다.  스캔을 하다 보니 몇장 거져 버린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 달력에 적혀 있는 글과 서화 ************

 

조선시대 국왕은 왕자 시절에 성리학과 함께 문학, 서화 등의 수업을 받았고 그 결과를 글, 글씨, 그림 등으로 많이 남기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이들 어제(御製)와 어필이 상당량 남아있는바 어필은 친필유묵(遺墨)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목판, 석판, 기타의 방법으로 정리 간행한 필적(筆跡)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경전이나 유명한 시문을 옮겨 적기도 하고, 국왕 자신이 직접 글을 짓고 글씨까지 쓰기도 하였는데 어필에 나타난 글씨의 특징과 문예적 취향을 통해 국왕들의 또다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표지:  1881년에 주조한 [대조선국보][보인부식총수] 에 수록

 

 

 

 

태조대왕어필 列聖御筆

 

태조 이성계가 1401년 왕위에서 물러나 태상왕으로서 자신의 어린 딸 며치(旀致. 후에 德淑翁主, 淑愼翁主(숙신옹주)로 불림)에게 집을 지어주면서 작성한 r숙신옹주가옥허여문기(淑愼翁主 家屋許與文記)J의 일부이다(4면 중 첫 면과 마지막 면). 태조 이성계가 사용한 어압(御押;  수결)을 확인할 수 있다.


1401년 9월 15일 첩이 낳은 딸 며치(旀致)에게 문서를 작성해 주는 일이다. 비록 나이 어린 첩의 소생이지만 지금처럼 내 나이 장차 70이니, 내버려 둘 바가 아니다. (개성)동부에 속한 향방동(香房洞)의 빈 대지는 죽은 재신 허금(許錦)의 집터로 잘 다듬은 돌(熟石)들과 함께 교역히고 (재목은 奴를 시켜 베어다 집을 지었다) ....”.. 大上王 (手決)

이 뒷부분은 총 24칸의 초가와 기와집 각각의 구조와 규모에 대해 적고 있다


 

 

 

 

문종대왕어필

 

문종의 필적이다. 시는 당나라 한유(韓愈)가 지은 [유성남십육수(游城南十六首)] 중의 ‘만우(晩雨)’로[전당시(全唐詩)] 권 343에 실려 있다. 이 필적은 [해동명적(海렀名迹)]에도 실려 있다.


 

 

부슬부슬 저녁비 개지 않는데 못가 언덕 풀밭에 지렁이 소리 들리누나 낚시하고 말 타서 돌아오는데 성문에 도착하자 북소리 울리네.
*구蚓鳴 : 옛날에 지렁이가 운다고 잘못 알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세조대왕 어필

 

[효경(孝經)]의[감응장(感應章)]에 나오는 내용으로 2면 중 첫 면이다. 세조가 욍자 시절에 쓴 글씨를 바탕으로 ‘강목대자(綱目大字),라는 활자를 만들었는데. 이 어필은 여기서 집자한 것으로 보인다. [감웅장]은 국왕도 부모에
게 효도하는 효제(孝悌)의 도리가 중요하고 종묘에 공경함을 지극히 하면 귀신도 김응하여 천하가 모두 다스려진디는 것을 강조히는 글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옛날 훌륭한 욍들은 아버지를 섬김에 효도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밝게 섬길 수 있었고, 어머니를 섬김에도 효도하였기 때문에 땅을 지극히 섬길 수 있었다. 어른과 아이의 도리가 잘 지켜져서 상하가 모두 잘 다스려졌다. 하늘과 띵올 지극히 섬기니 그 신명이 김응하여 밝게 드러나게 된다. 비록 천자라고 해도 더 높은 분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이며, 더 앞세워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형인 것이다. 종묘에서 공경향을 다하는 것은 (어버이를 잊지 않기 위함이요) ...... ”

 

 

 

 

 

인조대왕 어필

 

큰 글씨 “풍편수성침"은 당나라 전기(錢起)의 시[강행(江行)]에 나오는데 민가가 기까이 있다는 “유촌지불원(有村知不遠)"이라는 구절과 짝을 이룬다.  작은 글씨는 [서경(서경)]의 [함유일덕(咸有一德)]편에 나오는 글이다. 탕왕
을 도와 은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윤(伊尹)이 탕왕의 손자 태갑(太甲)에게 홀륭한 정치를 부탁하는 내용으로, 왕정에서 덕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훈계히고 있다.


1. '‘풍편수성침”: “바람결에 다듬이질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2. 이윤이 왕에게 정권을 돌려주고 사직하며 덕에 대해 훈계하기를 ‘‘오호 능這을 믿기 어려운 이유는 천명이 무상하기 때문이다. 덕을 잘 닦으면 욍위를 보존할 수 있지만, 덕을 닦지 못하면 천하를 잃을 것이다. 하나라 왕이 덕을 닦지 못하고 신들에게 함부로 하고 백성들을 학대히자 하늘이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고 널리 세상을 살펴 천명을 수행할 사람을 찾아냈댜.  흘륭한 덕을 쌓은 인물을 구해 천하의 주인으로 삼으니, 오직 나 이윤과 탕왕이 모두 흘튱한 덕을 쌓아 천심을 잘 받들고 천명을 잘 수행하여 천하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리를 열망시키고 온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인조대왕어필

 

[익종간첩(翼宗簡帖]에 실려있는 r직금도(織錦圖)] 익종간첩은 익종(1809년에 태어나 1812년 세자가 되었으나 즉위하지 못하고 1830년 죽었다. 1835년에 익종으로 추존)이 누이인 명온공주(明溫公主) 등에게 보낸 시문
과 그 번역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r직금도J는 거북등 형태의 그림에다 원문을 배열하고 그 뒤에 한자음을 밝혀 읽는 차례를 알 수 있게 하였으며, 번역문을 실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한 글이다. 궁을 떠난 누이를 그리는 미음을 담고 있다.

 

 

 

 

 

 

 

성종대왕어필

 

성종이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李정)의 초상화에 덧붙인 글로, 자신이 직접 문장을 짓고 글씨를 썼다. 성종이 왕이 되자 월산대군은 한강 서쪽 망원정에 서적을 쌓아두고 시문을 읊으면서 여생을 보냈는데, 월산대군의 초싱화제작을 계기로 성종이 그를 칭송하는 글을 지어보냈다. 3면 중 첫 면


형님의 초싱회에 불이는 글:  월산대군 정(정)에게 친히 지어 하사함

온화하고 맑은 기질 엄숙하면서도 면밀하네. 기량과 법도는 하늘로부터 타고나 모범이 되고 엄숙하고 공손한 위용은 고결하고 밝게 빛나네. 부지런히 선현의 먈씀을 공부하고 하루종일 쉬지않고 정진하네. 효도로 부모를 모시고 충성으로 신하의 도리를 다하네. 도리를 실천함에 어긋남이 없고 덕을 숭상함에 이 사람만할까.

 

 

 

 

 

정조대왕어필

 

정조가 이만수(李晩秀)에게 내려준 어찰이다. 1796년 [오경백선(五經百選)]이 간행되자 책의 첫 머리에 규장지보(奎章之寶)를 찍고, 그 아래에 정조의 도장 ‘홍재(弘齋)'와 ‘만기일일이일(萬機一日二日)'을 찍어서 규장각 직제학 이만수에게 1부를 주면서 쓴 편지이다.

 



[오경백선]은 여러 질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특별히 나눠주고 이 도징들을 찍었으니
직제학의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보들로 삼기를 바란다.
만지지도 못하는 업후(이필 李泌)의 3만 축 장서(藏書)만큼은 안 되겠지만
광주리에 가득 든 횡금보다는 나을 것이댜

 

 

 

 

현종대왕어필

 

현종이 두보(杜甫)의 [추홍(秋興)]이란 시의 일부를 쓴 것으로 3면 중 첫 면. [추흥]은 모두 8수로 객지에서 기을을 맞이하는 쓸쓸한 감회를 담고 있는데 시국에 대한 근심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집들 신성의 아침 햇살에 고요한데
날마다 강가 정자 푸른 산기운 속에 앉아보네
이틀 밤을 지낸 어부는 다시 배률 띄우네

 

 

 

 

효종대완 어필

 

인평대군이 개성 근처의 천마산(天磨山)으로 놀러 갈 때 세자 시절의 효종이 지어준 시.

 

 

 

깊은 궁궐 속에 몸을 움츠려 살다가 오늘 그대가 놀러간다 들었다네. 골짝에는 거문고 소리 올리고 구름너머 피리 소리 아득하여랴 멀리 보매 마음이 더욱 더 장대해지고 높이 올라 기운은 더욱 고양되려 하네. 술이 깨자 도로 다시 취했으니 가을녘 푸른 산에 호방한 홍치 일어나네. 상유헌

 

 

 

 

 영조대왕 어필

 

[소힉제가집주(小學諸家集註)]리는 책의 표지 안쪽에 있는 ‘내사기(內賜記)로 영조와 시도세지가 직접 쓴 친필이다. 왼쪽의 '御製小學序' 부분이 이 책의 첫 장이다. [소힉제가집주]는 주자(朱子)의 [소학]에다 이이(李珥)가 여러
학설을 모아 편찬한 책으로 처음 힉문을 시직히는 단계에 이용되던 기초교재였는데 궁중에서도 이 책을 세자 교육용으로 사용하였던 시실을 보여준다. 영조, 시도세자, 정조 3대에 걸쳐 물려주는 기록을 담코 있고 이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귀중한 책 이다.

 




1753년(영조 29) 9월 22일 왕께서 내(사도세자) 첫돌 때 하시한 책을 원손(정조) 첫들 때 전하는 것이니, 영원히 후세에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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