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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섹스에 대한 단상

샛솔 2016. 4. 18. 22:30

섹스에 대한 단상

 

진화생물학은 내겐 항상 매혹적인 주제다.    왜냐하면 우리가 왜 이런 모양으로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주기 때문이다.    

 

역사도 진화생물학으로 풀이하면 논쟁거리가 없어진다. <빅 히스토리> 이야기>

 

진화생물학중에서도 우리의 성적 취향의 진화생물학은 특히 내 흥미를 돋게 한다.   

 

몇년전에 김용옥 교수가 EBS 방송에서 강의를 할 때에 일제강점기때 어느 고승의 이야기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스님이 일본 순경에 붙잡혀 취조를 받을 때 순경이 스님의 출생지를 묻자 "우리 엄마 x지"요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 스님의 대답에는 두가지 뜻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한 사람이니 "고향 따위는 없소"라는 뜻도 있고  일본 순경에 저항하는 뜻으로 일본 순경에게 욕을 해 준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제왕 절개같은 것이 없었다.   모두 자연 분만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모든이의 고향이 어머니의 x지요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김용옥교수의 강의는 1주간인가 중단되어야 했다.


방송윤리심의위원회의 제재를 가했던던 것이다.  방송에서 써서는 안되는 용어를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어머니의 성기를 우리 토박이말로 표현하면 욕이 되고 방송해서는 안되는 용어가 되는가  "어머니의 성기"요라고 표현했다면 심의위원회에 걸리지 않았겠지만 일본 순경을 욕해 주려했다는 의도를 소개할 수는 없다.    실화를 소개하는데 스님의 한 말 그대로를 방송하면 방송윤리에 어긋 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의 문화권에서 성은 감추려 한다.   그래서 진화생물학에서는 이 특성을 인류의 본성으로 본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좀 오래 전에 동숭동 극장에서 일인극(모노로그 monologue) "x지" 를 본 일이 있다.   우리 제목은 이렇게 부치지 않고 <바지나 - 모로로그> 였던 것 같다.  여자 배우가 출연했는데 극중에서는 "x지"란 말을 그대로 썼다.   여자의 성기를 주제로 연극을 만든 것이다.     우리말 연극 제목은 영어의 원제 Monologue Vagina 를 그대로 소리대로 적었다.     x지라고 붙였으면 공연을 금지시켰을지 모른다.

 

옛날에 우리나라에도 "고금소총"이라는 전통적인 유머 모음 책이 있었다.   유머라가 보단 음담패설 모음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엔 순 우리말의  x지를 한자로 보배 보자(寶)와 연못 지(池)를 써서 표현했던 것을 본 일이 있다.

 

고금소총에 재미 있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에 x지를 홍합에 비유한 것이 있다.  

 

선비와 중이 내를 건너다 마주쳐서 주고 받은  5자 한시인데 그럴사하고 멋도 있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여담으로 그 기억을 여기에 적으면 선비가 말을 타고 내를 건너는데 건너편에서 중이 바지가랑이를 걷고 맨발로 내를 건너오고 있었다.   냇가엔 아낙네 여럿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내를 건너던 선비는 중을 놀려 줄 생각으로 내 한 가운데에서 말을 세우고 마주 오는 스님에게 말을 건넸다. 내 한 가운데에서 이리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인연인데 우리 시 한구씩 지어 화답하여 인연을 기념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선비가 스님에게 천변에 개홍합하니(川邊 開紅蛤) 라고 시구를 던졌다.   빨래하는 아낙네 쭈구리고 앉은 모습에서 스님을 놀려 줄 생각으로 음담을 시구로 열었다.    그러자  스님이 한층 더 떠서 소승은 출가한 몸이라 육식은 금기 사항인지라 채식으로 화답하겠나이다 하면서 마상에 송이동이라 (馬上 松栮動) 라고 맞받았다.    냇가에 홍합이 입을 열었더니 말 위에 송이버섯이 움직이는구나 하고 선비를 거꾸로 놀린 것이다.   중을 놀리려던 선비는 오히려 놀림을 당하고 얼굴을 붉히고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음담패설도 멋이 있다.

 

 

 

 

川邊 開紅蛤

 

 

 

馬上 松栮動

 

 

여기까지가 여담이고 본론은 최근 읽고 있는 진화생물학의 책 이야기다.

 

인류는 유일하게 성을 감추고 남이 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만 성행위를 한다고 한다.   그 진화론적 추론을 쓴 책 두가지를 여기 소개할 까 한다.

 

 

 

 

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오래전 (1998)에 쓴 책인데 최근에

Kindle Ebook 으로 나와서 한 권 샀다.

Jared Diamond 교수는 Discover 라는 잡지에 한글을 극찬하는 글을 올렸던 바로 그 사람이다.

2014/10/08 - [이것저것/말, 글자, 중국어 ] - 말과 글에 대한 단상 - 568 돌 한글날에 붙이는 글

그는 원래 진화생물학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 겨울 대만 여행중에 이것저것 읽을 거리를 검색하다 Garcia 교수가 쓴 논문을 하나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더 평이하게 대중용으로 풀이해서 쓴 책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성적 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새로운 사실들이다. 2013년 출간

아직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많지만 자꾸 자꾸 새로운 연구가 나오면서 그 신비가 벗겨지고 있다.

 

 

두 책 모두 완독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재미로 두고 두고 심심할 때 읽고 있다. 급하게 읽을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장구한 세월에 조금 조금씩 진화와 변화를 거듭해 온 우리들의 성적 취향의 진화생물학적 설명인데 급하게 읽어 치울 책이 아니다.

 

전자는 매우 재미 있게 쓴 책이지만 후자는 조금 학술적이라 어려운 용어도 많이 나오고 쉽게 독파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사람의 섹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특성이 섹스는 감추는 것이라 그것을 뒤져서 까 발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젊은 신혼시절이었던 60년대는 미국의 시대였다.    그래서 새로운 연구나 새로운 추세가 나온다는 것은 대부분 미국발이었다.

 

사람의 성에 대한 연구가 나온 것도 역시 미국에서였다.   가장 처음 나온 책은 Kinsey 보고서 (Kinsey Reports) 로서 엄청난 반향과 논란을 불러 왔다.   개방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대단히 폐쇄적인 나라다.  특히 성에 관한 한 대단히 페쇄적이다.    청교도의 전통때문일 것 같다.    지금도 유럽에 비하면 엄청 폐쇄적이다.    그런 나라에서 사람의  성에 대해 보고서를 냈다는 것이 논난을 불러 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나온 책이 Masters and Johnson으로 책이 출판되자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나도 한권 사서  가지고 있었는데 종이책 처분 과정에서 사라졌다.

 

킨제이보고서는 주로 미국 남녀의 인터뷰에 바탕을 두고 쓴 미국 성인의 성애에 관한 보고서라면 나중에 나온 Masters and Johnson 책은 실제 실험실에서 남녀의 성을 연구한 보고서다.

 

처음의 실험 대상은 주로 매춘부였다.  145명의 매춘부를 대상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남은 것은 몇사람뿐이었다.   섹스 전후의 생리적 상태와 성기의 여러 변화와 그 과정을 관찰하고 측정하였다.  그러나 그 숫자가 너무 작아 나중에는 일반 사람들의 지원자를 받아 들여 382명의 여성과 312명의 남성을 모집할 수 있었다.   지원자의 대부분은 백인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상류층의 기혼 젊은 부부들이었다.

 

 

 

 recording some of the first physiological data from the human body and sex organs during sexual excitation, they also framed their findings and conclusions in language that espoused sex as a healthy and natural activity that could be enjoyed as a source of pleasure and intimacy.

이들은 처음으로 성적 흥분을 했을 때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의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그들이 내린 결론은 성행위란 남녀가 즐기고 친밀해질 수 있는 건강하고 자연적인 행위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밝힌 것이다.

 

 

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개방된 오늘 이런 책의 이야기는 전혀 신선감을 주지 않지만 그 당시엔 가히 충격적이었다.   성이란 은밀한 가운데 생산을 목적으로만 허용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던 시대였다.   특히 이런 보수적 교회의 가르침이 팽배하던 60년대에 이 책에 대한 반향은 상상할 만 하다.

 

이 책이 출판되던 1966 년은 우리의 결혼 5년차의 신혼시절이었다.   그 책에서 기억이 남는 이야기 하나는 70 살에도 Sex 를 한다는 것이었다.   설흔을 갖넘긴 나와 아직 설흔미만의 아내에게 일흔살은 너무 먼 미래였다.  이 책을 읽고 우리도 일흔까지 sex 를 할 수 있을까 했던 생각이 난다.

 

신혼시절에 우리가 들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나보다 1년 후배인 S군과 그 아내 B와 친하게 지냈다.  둘 다 한국에서는 명문가의 자녀들이다.   S는 서울대에 들어 가자 마자 미국에 와서 미국 대학에서 학부과정을 마쳤고 B는 아내의 같은 대학 같은과 1년 후배다.   그런데 결혼은 우리보다 한 1년 먼저 한 것 같다.   

 

시애틀에서 같은 대학원생활을 하는 젊은 부부들이라 아주 절친하게 지냈다.   S군은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우수갯소리를 잘 했다.     그 친구가 신혼인 우리에게 한다는 소리가:

 

신혼부부가 섹스를 할 때마다 유리병에 돌맹이를 하나씩 넣어보란다.   일년후에 섹스를 할 때마다 그 돌맹이를 하나씩 꺼내보면 평생을 꺼내도 다 못 꺼낸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의 근원인 섹스에 대해서 우리는 무지했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섹스를 얼마나 자주하냐에 대한 Survey 나 Data 도 흔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러한 Survey 에 대해 정직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같이 data 가 넘쳐 흐르는 시대에도 Sex 의 빈도에 대한 data 는 그야말로 제 멋대로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은 섹스를 감추려는 그 진화생물학적 본성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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