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MyLifeStory :: 반세기만에 찾은 모교와 옛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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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만에 찾은 모교와 옛동네

나의 고향은/저 산(山) 너머 또 저 구름 밖/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

나는 문득/가로수(街路樹) 스치는 저녁 바람 소리 속에서/여엄―염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김기림 시인이 지은 <향수(鄕愁)>라는 이짧은 시는 내가 기억하는 몇 개의 시중의  하나다.

향수란 옛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그리움이 자아 내는 수심(愁心)을 말한다.  옛것은 고향이 으뜸이지만 고향만큼 향수를 자아내는 것이 초등학교시절의 모교가 아닌가 싶다.   유소년시절의 절반을 학교에서 보냈으니 학교와 얼킨 어린 시절의 추억이 향수를 불러 일으킴은 너무나 당연한 일.

나는 어제 반세기가 넘어 내 옛 초등 모교를 찾아 봤다.  그리고 내가 학교 다닐 때 살던 곳을 둘러 보고 왔다.

정지용시인의 <고향>이라는 시에도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라는 구절이 있다.   정시인은 고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에 옛고향이 아니라고 한탄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바뀌어 버린 고향 마을이기에 너무 낯설었다.

가래울 양짓말이라는 초가집 작은 동네가 이젠 수십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우리가 흔히 <신작로>로 불으던 파석들만 깔린 비포장도로가 어엿한 4차선 간선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수없이 건너 다녔던 신곡교는 이젠 차도와 인도가 가드레일로 분리 되어 있었다.   인도옆 다리 난간 위는 예뿐 꽃으로 단장해 놨다.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중랑천 양쪽 둔치에 자전거 도로가 상큼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여름철이면 발가벗고 미역 감던 중랑천,  이젠 잘 다듬어진 하천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강산이 다섯번 바뀌는 반세기가 지났으니 오죽하랴.

동심으로 돌아 가랴도 갈 수 없는 나이지만 강산도 바뀌어 버려 반세기의 세월의 자국은 무겁고 깊게 패여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다 조국의 땅에서 처음 살기 시작한 곳이 의정부이니 의정부는 내 고향과 같다.

오사카 대공습을 피해 부모와 떨어져 의정부에 사는 누님집에 맡겨지게 된 것이 내가 의정부읍 신곡리 455번지에 살 게 된 내력이다.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에 살다 시골에 오게 된 내게는 문화적 충격이 너무 컸다.

의정부역에서 내려 처음 신곡교를 건널 때쯤이었다.  나를 데리고 가던 매형에게 난 물었다.

"니짱 덴샤 노루?"  (매형 전차 타?(안타요?))

매형은 이 꼬마처남의 황당한 질문에 난감했을 것이다.  

어쩨서 그렇게 많은 것을 까맣게 잊었는데 이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지 ?   10실 짜리 꼬마에겐 의정부역에서 신곡리가 너무 멀었나 보다.  

어제는 신곡리에서 의정부 역까지 걸어서 돌아 왔다.  동오리엔 대장깐이 하나 있어 학교를 오가며 불에 달궈 시뻘겋게 된 쇠붙이를 망치질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쳐다 보곤 했다.   거기서 낫이니 호미니 하는 농기구가 생산되었었다.

여기쯤이었을까 저기쯤이었을까 전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아아 무상한 세월이여 .....

 

 

내가 다닐 때 학교 이름은 양주공립국민학교였다.

정문은 남쪽으로 나 있었다.  지금은 옛 정문(남쪽)쪽으로 경기도 교육청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교사 전경

교사가 놓인 위치는 옛 단층교사의 위치와 같은 것 같았다.

 

교육박물관에는 625전 본관 건물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낯익은 교사입구다. 여기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교실에 들어 갔었다.

 

1964년에 양주국민학교에서 중앙국민학교로 바뀌었다.

내가 미국 유학시절이다. 

그동안 나는 양주 국민학교는 서울의 많은 초등학교처럼 도시개발과 인구변동으로 사라진줄 알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어느 결혼식장에서 생질을 만나 처음 들었다.

 

학교건물 2층에 총동창회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국장을 맡고 계신 이철홍님의 안내로 교육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가래울 양짓말 초가집 동네가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이 두어개 있었으니 그중에 하나가

아파트단지 뒤의 밤나무 숲이었다. 

 

송산가는 <신작로>라 부르던 파석만 깔렸던 비포장도로가

어엿한 4차선 간선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여름이면 벌거 벗고 물장구치던 개울

둔치엔 자전거도로가 새로 포장되고 도시공원이 조성되고 있었다.

 

무수히 건너 다녔던 <신곡교>

난간엔 화사한 꽃단장이 날 봐달란 듯 한창이었다.

 

의정부역사

한가한 목조 역사가 어수선한 광장으로 바뀌었다.

 

 

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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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희욱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03 12:57 신고

    저는 이공계 출신이고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생년은 1953년입니다.
    지난봄에 37일간 일본자전거여행을 다녀와서는 친일파가 되어버렸고, 그만큼 혐한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과거사를 조금 알아보니까 일제의 침탈과 수탈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루비콘 강 이야기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저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우리의 반일감정을 일소하지 못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대한민국의 안위에 대단히 위험한 사태를 맞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03 16:59 신고

    일본에 대한 제 감정은 역사인식이 아니라 제 삶에서 스며든 것들입니다. 이미 위의 여러 글에서 다 이야기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글은 http://boris-satsol.tistory.com/150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