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M 선생님의 추억 본문

일상, 단상/잡문

M 선생님의 추억

샛솔 2006. 2. 19. 00:52


1948년 중학교 1학년 국어를 맡으신 M선생님은 시를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국어시간 수업이 끝나기 10분전이면 의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 하시고는  한 두편의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50분이라는 수업시간도 감당하기 힘든 1학년생에게 어떤 때로는 수업종료 타종을 넘기며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눈을 감고 갇혀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시를 배운지 한달 두달 지나면서 나는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소월 김영랑, 정지용, 김기림 노천명등 우리나라 시인들  시뿐 아니라 헤르만 헷쎄라든가 괴테같은 외국시도 번역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를 읊어 주실뿐 아니라 그 시의 배경까지 멋들어진 해설로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적어도 저만은 그랬습니다.  


 


그때 배운 시중에는 아직도 몇수는 온채로 읊조릴 수 있습니다.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게 아주 큰 감동을 주었던 같습니다.   정지용시인의 "유리창",  김기림시인의 "향수" 그리고 김기림시인의 일그러져 가는 815 해방의 감동을 일깨우려 읊은 애국시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와 같은 시들입니다.


 


내가 나중에 물리학을 전공하고 평생 물리학을 가르치며 살아 왔건만 항상 시를 좋아하고 시를 가까이하고 서점에 가서는 시집과 시와 관련된 책을 뒤직이며 살게 된 것은 모두 중학교 1학년때 M선생님의 감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영시는 영문학을 전공한 아내보다도  더 좋아 합니다.   대학 3학년 때에는 엉뚱하게 영문학과 전공과목인 "Poe 의 시론(詩論)"을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C학점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과목을 가리치신 K교수님이 "물리학과 학생놈이 건방지게 영문학과 핵심전공과목에 등록했다"는 "괴씸죄"를 물으신거 아닌가 아직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K교수님은 가히 그럴  만한 분이었습니다.


 


2학년이 되자  M선생님과는 헤어졌지만 학교에서  뵐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3학년에  진급한지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뵈울 수 없었습니다.  928수복이후 우리들이 학교에 다시 모였을 때 아이들 사이에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M선생 빨갱이었대"  "M선생 월북했대"  라고 수군 거렸습니다.  그런 입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M선생님의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를 가르치실 때 30정도 였으니 생존해 계신다면 아마  미수에 가까이 되셨겠지요.


 


--------------------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 가자


 


김기림 지음


 


들과 거리와 바다와 기업도

모도다 바치어 새나라 세워가리라 ------

한낱 벌거숭이로 도라가 이 나라 지주돌 고이는

다만 쪼악돌이고저 원하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 다 버리고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기빨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저 맹세하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어찌 닭이 울기전에 세번 뿐이랴

다섯번 일곱번 그들 모른다 하던 욕된 그날이 아퍼

땅에 쓸어저 얼골 부비며 끌른 눈물

눈뿌리 태우던 우리들의 팔월


 


먼 나라와 옥중의 총칼사이를

뚫고 헤치며 피흘린 열열한 이들 마저

한갓 심부름꾼이고저 빌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끝없는 노염 통분속에서 빚어진

우리들의 꿈 이빨로 물어 뜯어 아로색인 조각

아모도 따룰이 없는 아름다운 땅 맨들리라

하늘 우러러 외치던 우리들의 팔월


 


부리는이 부리우리는이 하나 없이

지혜와 의리와 착한 마음이 꽃처럼 피어

천사들 모두 부러워 귀순하느니라

내 팔월의 꿈은  영롱한 보석바구니.


 


오-- 팔월로 돌아가자

나의 창세기 에워싸던 향기로운 계절로 ---

썩은 연기 벽돌데미 몬지 속에서

연꽃처럼 홀란히 피어나던 팔월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중학교 1학년 국어를 맡으신 M선생님은 시를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국어시간 수업이 끝나기 10분전이면 의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 하시고는 한 두편의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50분이라는 수업시간도 감당하기 힘든 1학년생에게 어떤 때로는 수업종료 타종을 넘기며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눈을 감고 갇혀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시를 배운지 한달 두달 지나면서 나는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소월 김영랑, 정지용, 김기림 노천명등 우리나라 시인들 시뿐 아니라 헤르만 헷쎄라든가 괴테같은 외국시도 번역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를 읊어 주실뿐 아니라 그 시의 배경까지 멋들어진 해설로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적어도 저만은 그랬습니다.  




 




그때 배운 시중에는 아직도 몇수는 온채로 읊조릴 수 있습니다.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게 아주 큰 감동을 주었던 같습니다. 정지용시인의 "유리창", 김기림시인의 "향수" 그리고 김기림시인의 일그러져 가는 815 해방의 감동을 일깨우려 읊은 애국시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와 같은 시들입니다.




 




내가 나중에 물리학을 전공하고 평생 물리학을 가르치며 살아 왔건만 항상 시를 좋아하고 시를 가까이하고 서점에 가서는 시집과 시와 관련된 책을 뒤직이며 살게 된 것은 모두 중학교 1학년때 M선생님의 감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영시는 영문학을 전공한 아내보다도 더 좋아 합니다. 대학 3학년 때에는 엉뚱하게 영문학과 전공과목인 "Poe 의 시론(詩論)"을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C학점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과목을 가리치신 K교수님이 "물리학과 학생놈이 건방지게 영문학과 핵심전공과목에 등록했다"는 "괴씸죄"를 물으신거 아닌가 아직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K교수님은 가히 그럴 만한 분이었습니다.




 




2학년이 되자 M선생님과는 헤어졌지만 학교에서 뵐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3학년에 진급한지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뵈울 수 없었습니다. 928수복이후 우리들이 학교에 다시 모였을 때 아이들 사이에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M선생 빨갱이었대" "M선생 월북했대" 라고 수군 거렸습니다. 그런 입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M선생님의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를 가르치실 때 30정도 였으니 생존해 계신다면 아마 미수에 가까이 되셨겠지요.




 




--------------------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 가자




 




김기림 지음




 




들과 거리와 바다와 기업도


모도다 바치어 새나라 세워가리라 ------


한낱 벌거숭이로 도라가 이 나라 지주돌 고이는


다만 쪼악돌이고저 원하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 다 버리고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기빨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저 맹세하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어찌 닭이 울기전에 세번 뿐이랴


다섯번 일곱번 그들 모른다 하던 욕된 그날이 아퍼


땅에 쓸어저 얼골 부비며 끌른 눈물


눈뿌리 태우던 우리들의 팔월




 




먼 나라와 옥중의 총칼사이를


뚫고 헤치며 피흘린 열열한 이들 마저


한갓 심부름꾼이고저 빌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끝없는 노염 통분속에서 빚어진


우리들의 꿈 이빨로 물어 뜯어 아로색인 조각


아모도 따룰이 없는 아름다운 땅 맨들리라


하늘 우러러 외치던 우리들의 팔월




 




부리는이 부리우리는이 하나 없이


지혜와 의리와 착한 마음이 꽃처럼 피어


천사들 모두 부러워 귀순하느니라


내 팔월의 꿈은 영롱한 보석바구니.




 




오-- 팔월로 돌아가자


나의 창세기 에워싸던 향기로운 계절로 ---


썩은 연기 벽돌데미 몬지 속에서


연꽃처럼 홀란히 피어나던 팔월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내가 이 선생님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완전히 잊기 전에 여기에 기록 해 둔다. 모근원 한자는 기억 미상 우리나라의 모(牟)씨와 모(毛) 둘 뿐인데 M 선생님은 모(牟)였던 것 같다.  명자 "근원"의 한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상, 단상 >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차길 휴개소에 달려드는 개념없는 오토바이 두대  (1) 2006.07.09
이젠유유님을 만났습니다.  (0) 2006.07.09
시간이란 무엇인가?  (0) 2006.02.27
정(情)과 한(恨)  (0) 2006.02.27
슬픔의 미학 II  (0) 2006.02.13
오 대한민국  (0) 2005.11.16
새벽형 인간  (0) 2005.04.11
올빼미예찬  (0) 2005.03.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