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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일본 도쿄

도쿄 여행을 마치고 - 난 누구인가

샛솔 2017. 4. 2. 22:09

도쿄 여행을 마치고  - 난 누구인가

 

일본은 나에게 특별한 나라다.    일본에서 태어 났으니 속지주의 국가였다면 난 2중국적자가 되었을 것이다. 

 

원래 사람은태어 난 곳의 지기(地氣)를 받는다고 한다.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이나 일본은 속지주의가 아니라 속인 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난 물론 완벽한 한국사람이다.

 

혈통으로 보면 한국의 명문혈통이다.  세종대왕의 19대 후손이니 난 세종대왕의 Y 염색체를 물려 받았다.   내 유전자에 들어 있을 것이다.  해동명신록에도 나와 있는 영조때 좌의정을 지낸 익헌공의 종손가의 두째로 태어 났으니 어머니의 말씀대로 조선 갑반(甲班)의 후예다. 

 

또 혈통은 유전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가계로 내려 오는 정신적 유산도 포함되어 있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자랑하듯 들려 주신 너희는 "조선 갑반의 후예"라는 말은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조센징"으로 구박받는 현실이라도 조선명문가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잊지 말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2009/02/25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세종대왕의 Y-염색체

2007/12/27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조선통신사 정효공(貞孝公) 이언강 할아버지

 

그런데 한 편

 

내 호적등본에 보면 내 출생지는 일본이다.

 

내 선친이 신고한 출생지 주소는

 

오사카시 코노하나쿠 시칸지마 시라도리쵸 이치반찌 로 되어 있다.

 

속지주의나라였다면 완벽한 일본사람이다.

 

 

 

내 옛날 호적등본

1935년 오사카에 출생하였다고 신고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기(地氣)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와 문화일 것이다.    내가 처음 배운 언어는 일본어다.  First language 또는 native language 가 일본 언어였다.

 

내 셋째 누님의 일기장  (2011/01/04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셋째 누님의 옛 일기에서 )에 보면 내가 한 두돌 지내서 부른 노래가 "미요토카이노 소라아케테" 라는 노래라고 적혀 있다.

 

내가 밖에 나가 놀게 되었을 때 이웃 아이들은 모두 일어를 쓰니 집에서 어머니나 할머니가 조선말을 쓴다해도 한국가정에서 자란 미국 교포 2세와 같이 제1 언어는 그 태어난 땅의 언어가 된다.

 

또 문화도 결국 그 땅의 문화에 젖게 되어 있다.  셋째 누님의 편지도 일어로 쓰여 있다.  조선에서 도일하기 전에 셋째 누님은 조선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  그 땐 조선에서 조선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검사받는일기장을 쓰는 셋째 누님은 일어를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어는 구어로서 쓰겠지만 글만은 일어를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4 살 위의 손윗 누나는 나와 갈이 일본에 태어 났으니 그 누나도 제일 언어는 일본어였다.

 

이런 가정에서 내가 일본 문화가 몸에 밴다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할머니의 구전동화는 할머니와 둘이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2014/04/08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세 귀머거리 할멈 이야기 - 내 할머니가 들려 주신 구전동화 )  내게 주어진 어린이 동화는 모두 일본의 전래 동화인 "우라시마타로" 라든가 "가고야히메"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 땐 내가 일본 유치원에 다니며 일본 아이들과 놀고 일본 동화나 만화책을 보았을 것이다.

 

정월이면 여자아이가 가지고노는 "하네쓰끼" 라든가 "카루타" 놀이가 즐거움이었다.

 

일본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갔을 것이다.

 

이것이 태어 난 곳의 기를 받는 과정일 것이다.

 

 

 

옛날 정월이면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하네쓰끼


 

 

정월이면 놀던 "카루타"


 

그러니 난 이 두 나라 사이에서 반은 한국인 반은 일본인이 된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한 번도 일본인이 된 일은 없다.   해방이전에 귀국해서 한국말을 배우고 서툰 한국말이 가셔 갈 때 쯤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국어와 역사를 배웠으니 그 후는 완전한 한국사람이 된 것이다.   의정부에서 대전으로 이사가서 대전 선화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내 한국어엔 충천도 액센트가 붙었다.

 

언젠가 내 동료교수였던 음성언어학의 대가인 L 교수가 내 억양에서 충청도 엑센트를 찾을 수 있다고 진단해 준 일이 있다.

 

이런 연유로 난 일본에 가면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친근감을 느낀다.

 

 

 

 

니시신주쿠 근방의 주택가

 

 

 

골목은 차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이런 골목이 내겐 정겹다.

 

 

 

돌아 오던 날(3월 27일)은 추웠고  나리타 공항 근방에는 눈이 내렸다.

달리는 Narita EXpress 차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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