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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인연의 나선 궤적을 따라서 본문
인연의 나선궤도를 따라서
그제는 혜화동엘 갔었다.
내가 옛 이야기를 회고하며 우리의 만남을 운명의 인연이라고 내 블로그에 쓰자 (http://boris-satsol.tistory.com/377 ) 그것을 읽은 아내가 그 운명의 발자취를 함께 답사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좋아요 한번 가봅시다."
우리는 은마아파트 입구에서 오후 3시 반쯤 143번 버스를 타고 강남과 강북을 모두 휩쓸고 가는 "관광"을 하고 5시 무렵에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직도 이런 버스 노선이 남아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운명의 나선궤도는 내가 결혼전 아내가 옮겨 다니며 살던 집의 자리길을 내삽해 보면 얻어지는 곡선이다. 태풍의 눈에 끌리는 회오리 바람 또는 회전관성을 가진 은하계의 질량들이 중력 중심으로 끌릴 때 그리는 그림과 같은 곡선이 나선형이다.
중력 중심에 끌리는 은하계의 별들
마치 인연의 나선궤적 같다
그런데 아내가 블로그 "코니의 옥상 꽃밭"을 열고 첫 번째 적어 넣은 글은 참으로 우리의 만남을 시사하는 암시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아름다움은 마치 확실성 같은 것
그러나 불확실한 것이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 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 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 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 놓은 여행 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하나의 연속일 뿐.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없는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 보리스의 상상 ------------------
운명의 나선궤적 그 7년간
우리가 서로 만날 때까지 우리는 일곱해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일곱해 뒤에 만날 운명을 타고
당신은 내게서 400 미터도 안되는 가까운 곳에 다가 왔습니다.
나는 혜화초등학교 바로 뒤에서 살았고 당신은 혜화문 길가의 한 한옥에 살았습니다.
당신이 좁은 골목을 지나 당신의 집에 들어 갈 때쯤
나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혜화 초등학교 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운명의 짝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혜화동 로타리를 돌아서 집으로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 갔을 땐 당신도 대학 준비를 하면서
삼선교의 학원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다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새로 이사온 집은 골목에서 나오면 바로 혜화초등학교 정문이 보였는데
나는 그 혜화초등학교 바로 뒤 우리누님집 응접실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 어머니가 갖다 준 필립모리스 담배연기를 바라 보며
알 수 없는 미래의 나의 여자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바로 200 미터 남짓 떨어진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구원의 여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더 멋쟁이 대학생으로 성숙했을 때 당신은 내게서 더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 왔습니다.
당신은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 혜화초등학교 뒷담을 따라 30 미터만 나가면 보이는
개천 다리 건너에 있는 한 한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소리쳐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들릴 그 거리의
가까운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혜화동 로타리 에 있던 "가나안" 다방에를
자주 갔습니다.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실 때 당신도 다른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혜화동 로타리를 지나 지금은 마로니에 공원이 된 내가 다니는 대학엘 걸어 갈 때
당신은 그 로타리에서 새로 들어간 대학에 가려고 신촌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혜화동 로타리 바로 못미쳐엔 우체국이 있었습니다. 나는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엘 갔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나가자 우체국에 들어와 내가 섰던 자리에 서서 우표를 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었건만 항상 엇갈리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거리에서 있으면서 서로를 못 본채 엇갈리기만 하였습니다.
일곱해를 그렇게 만남을 기다리다 한 순간 내가 이역 만리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자 당신도 넉달도 못되 내가 간 이역 만리의 내가 간 곳으라 따라 왔습니다.
내가 간 곳 까지 왔다곤 하나 그곳은 그져 스쳐 갈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7 년간의 내 애탄 기다림이 당신을 잡았나 봅니다.
당신은 계획을 바꿔 내가 있는 곳에 머믈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도 당신도 모르는 사이 운명이 시켜 일어날 일들입니다.
이역 만리에 도착한지 보름도 안되어 7년간의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고
불꽃같이 격렬하게 타오르듯 운명의 만남을 이뤘습니다.
7년간의 아쉬움을 한번에 태워 버리려는 듯
한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격렬한 사랑이
타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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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로타리에서 삼선교로 넘어 가는길에서 작은 골목이 나있다.아내는 삼선교 쪽에 있는 학원에서 올 때 이골목길은 이용했단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혜화문길이 나온다.
오른 쪽으로 꺾어 지면 언덕이 있고 계단으로 이어졌단다.
뒤에 서 있는 벽돌건물이 그 계단위에 서 있던
아내가 고1 때 이사와 살던 한옥이 서있던 자리 같단다.
혜화동 로타리는 여전하지만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건물들은 모두 바뀌었다.
Paris Baguette 자리엔 아이스케이키 집이 있었고 중식집 "금문" 자리엔 옛날에도 중국집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 중국집에서 만두나 호떡을 사먹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파리 바켓에서 신호등을 건느면 우리 은행이 나오는데 여기에
"가나안"이라는 다방이 있었다. 나도 이다방에 자주 갔고 아내도 자주 갔던 다방이다.
어쩌민 다른 시간에 같은 자리를 앉았을 것이다.
로타리를 돌아 옛 보성중학교로 이어지는 혜화동 큰 길로 들어 서면 바로
왼쪽에 우체국이 있었다. 건물은 바뀌었겠지만 우체국은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아내가 편지를 부치고 나온 뒤 난 우표를 사려고
들어갔을지 모른다.
조금 더 안으로 (보성학교쪽) 들어 가면 장면씨 집이 있다.
그집은 옛날 그대로 인 것 같았다.
그 다음 골목이 아내가 우리집에서 더 가까이 옮겨 온 두 번째 집이 있는 골목이다.
이 골목에서 큰 길을 보면 조금 아래쪽 건너편에 혜화초등학교가 보인다.
이 혜화 초등학교 뒷켠에 보이는 건물뒤엔 학교 뒷담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내가 살던 집이 있었다.
혜화 초등학교 뒷담을 끼고 난 골목길"원산집"이라고 쓴 자주색 간판이 붙은 곳에서 왼쪽이 막다른 골목인데그 골목 둘째 집이 내가 살던 집이 있다.
원산집 바로뒤의 4층 건물이 내가 살던 집터에 두 번째 개축한 집
혜화초등학교 뒷담골목에서 큰 길 건너편에는 개천이 흘렀다.
지금은 복개해서 자동차들이 주차한 보도가 되었다.
여기 보이는 한옥이나 하이카 프라자 자리가 아내가 살던 집 자리
모두 옛 건물은 아니다.
비스라바 쉼보르스카가 말했듯 아내와 나 사이엔 내 상상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스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만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나와의 스침은 그리 낭만적이 못되었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1~2 주 쯤 전 내 절친한 친구가 환송주를 산 일이 있었다. 혜화동 로타리 근방의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주사가 심한 친구라 주정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합석했던 다른 친구는 통행금지 시간 이전에 자리를 떴는데 이친구는 계속 주정을 부렸다.
통행금지 시간이 넘었는데 그곳이 혜화동 파출소( 지금 지구대)가 가까이 있는 곳이라 그 친구를 끌고 통행금지가 끝나는 새벽 4시까지 집에 가서 재워 보내려고 집방향으로 향하는데 아내의 집앞을 지나게 되었다. 주정을 부리면서 소리 소리 지르는 것을 아내가 들은 것이다. 새벽 2시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아내는 길가로 난 창문을 열고 어느 주정뱅이가 단 잠을 깨는가 내어다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나와의 스침이다. 물론 새벽 2시의 심야이니 얼굴을 보았을리는 없다. 나도 물론 아내가 창밖으로 우리를 본다는 것을 알리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중에 한 남자가 그녀의 운명의 남자라는 것을 알아 차렸을 리 없다. 그저 단잠을 깨운 스쳐가는 인연이었을 뿐이다.
아내가 내다 봤다는 옛날 한옥집
도우미 아줌마가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아마도 이 스침만이 결혼 1년전 안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른 스침은 잠시 기억했다 해도 결혼 할 때에는 모두 잊고 있었을 것이다.
답사를 끝낸 우리는 동숭동에 있는 어느 일식집에 들어가 도미머리졸임과 아사히 생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넌센스"라는 뮤지컬을 보았다. 그 옛날 해 보지 못했던 연애 시늉을 내 본 것이다. 손을 잡고 연인끼리 데이트 하듯 ..
그리고 우리는 속삭였다. 그 때 우리가 만났으면 이 길을 걸었을까 .....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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