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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형 인간 본문

일상, 단상/잡문

새벽형 인간

샛솔 2005. 4. 11. 21:44

아침형 인간

대학원생때 이후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지요. 교직에 있다 보니 아침 강의에 맞추어 출근하여야 하니깐요. 그런데 점차 극단적인 아침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새벽 다섯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5시 36 분 선능발 전철 2호선 첫차에 맞추자니 자연 그렇게 일찍 일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아직 분당선이 개통하기 전이었고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보통 걸음으론 10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버쓰를 잘 시간 맞추어 탄다면 4, 5분 거리였습니다. 첫차는 항상 비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좋았고 낙성대역에서 하차하고는 걸어서 관악산 캠퍼스에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처음에는인헌 초등학교 뒷길 강감찬 장군에 태어 났다는 낙성대 집터 앞을 지나 서울대 뒷문으로 향하는길을 따라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덕수 공원을 지나 작은 동산 능선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곤 했습니다. 겨울 한철에는 6시에도 깜깜하여 덕수공원 덕수이씨 무덤을지나 갈때에는 으신산 스런 기분도 들곤 했습니다. 낙성대에서 빨리 걸으면 30분 천천히 걸어도 35분이면 캠퍼스에 도착합니다. 그쯤 되면 동이 트고 신문배달 오토바이가 몇대 지나가고 나면 캠퍼스는 수도원처럼 조용합니다. 나는 이 이른 아침의 정적을 즐기기 위해 새벽형 인간이 되었던 겁니다.

 

8시에 가까워지면 학생들이 하나 둘 지나 가고 9시 첫 강의에 맞추어 도착하는 학생들의 발거름과 소음이 수도원의 정적을 깨고 마침내 분비는 캠퍼스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연구실 앞 복도에도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생동하는 캠퍼스의 젊음을 느끼게 하곤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그 소리에 짜증도 내고 연구실 문을 열고 떠드는 학생들을 나무라기도 하곤 했지요.

 

연구실 창가에는 목련나무 한구루가 서 있었습니다. 언제나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잎 없는 가지에 흰 꽃망울을 터뜨리고 새 계절의 시작을 알려 주곤 했습니니다. 정년의 해가 점차 가까워 지면서 이제 몇 해나 더 네 터지는 꽃망울을 바라 볼 수 있을가를 손 꼽아 세어 보곤 했지요. 그런데 그 해가 왔고 그해의 목련꽃을 보기도 전에 난 그 연구실을 비워 주었습니다. 관악 캠퍼스로 새로 이사 온 후 줄곳 26년간 지켜 왔던 그 연구실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던 겁니다.

 

어제는 그 캠퍼스에 갔었습니다. 학생들은 더 젊어 졌고 캠퍼스는 옛날이나 다름 없이 생동감이 넘쳐 흘렀습니다. 새로운 학생이 오고 새로운 교수가 오고 해섭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은 가고 사람은 바뀌고 역사는 흐릅니다. 그리고 나 역시 망각의 정막속으로 살아 질거고요.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커스 아레리우스(Marcus Aurelius)의 말대로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등에 엎여 무덤으로 향할 것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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