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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보내며

 

83 번째 섯달그믐 날이다.  올해는 대그믐을 제주도 중문에서 보내고 있다.

 

어제   밤 늦게 중문 천제연로에 있늘 해리안 호텔에 도착했다.  묘하게 제주도에 오갈 때에는 날씨가 나쁘다.  작년 겨울 제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갈 때에도 중산간도로를 넘어 갈 때 안개가 끼고 이슬비가 내려 몇10 미터도 앞이 안보이는 열악한 환경에서 운전을 해야 했다.

 

지난 늦가을 여행때에도 올 때와 갈 때 모두 비가 내렸다. 그런데 어제도 비 오는 밤에 평화로를 달려 제주공항에서 중문의 해리안 호텔에 왔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다행한 것은 이 번 여행에서는 차를 모는 대신 항공편을 이용했기 때문에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그래서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해가 넘어 간다는 것은 사람이 정한 달력 때문이지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해서 어떤 특정한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1960년 8월 22일 일부변경선을 넘었다고 내가 탔던  Northwest Airline 항공기의 기장이 서명한 증명서를 만들어 주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이었던가 (2007/01/08 - [일상, 단상/잡문] - 1960년과 2007년).

 

일부변경선을 사람들이 날짜와 시간을 통일해서 쓰기 위해 만든 가공의 선이다. 

 

그러니까 섣달 그믐이란 것도 달력을 통일해서 쓰기 위해 정한 가공의 한 시점에 불과하다.  태양이나 지구의 특별한 위치가 아니다.

 

해가 넘어 갈 때엔 항상 다사다난했던 한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렇지 않았던 해가 정말 있었던가? 

 

해가 지날 수록 기억이 약화되니까 가장 최근의 지난 해가 바로 강열하게 기억에 남아 가장 다사다난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북핵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기싸움이 우릴 불안하게 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은 결코 전쟁을 먼저 일으킬 것 같진 않다.    미국이란 나라는 믿을 수 없는 나라이고 막나가는 트럼프라 해도 한국을 패싱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 같다.    ( 나를 울렸던 국사책 , 필요하다면 쳐라 그리고 부숴라 - If Necessary, Strike and Destroy )

 

여기까지 쓰고 글을 끝내지 못한 채 해가 넘어갔다.  2018년 정월 초하룻날에 이어쓰고 있다.


어제(그믐날)는 202 번을 타고 이마트 서귀포점에 갔었고 오늘은 걸어서 바다다에 갔었다.  자난 내 생일에 사 먹은 새우버거가 맛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먹을 생각으로 간 것이다  (2017/11/27 - [국내여행기/제주도] - 82번째 생일 -2017-11-20 제주도 Vadada 카페 )

 

사람이 미어지게 많았는데 모히토 한잔식(알콜한잔 무알콜 한잔)을 시켜 마셨다.  알콜이 든 것이나 안 든 것이나 한잔에 만7천원 받는다.  그것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진동호출기로 부르면 가서 받아와야 한다.   앞 손님이 사용하고 남긴 네프킨 조차 치우지 않아서 우리가 테이블을 정리해야 했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좋고 바다경치가 좋다해도 이런 서비스로 모히토 한잔에 만7천원에 사 마시는 것은 가성비로 보면 갈 만한 곳이 아니다.    웬만한 고급호텔 칵테일 라운지 술값이다.  특이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알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지 모르지만 이 건 너무 심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참을 만 했는데 여기 대표 음식메뉴로 메뉴판 제일 앞에 나와 있는 새우버거를 안판다고 한다.

 

사실은 칵테일은 이 새우버거를 먹기 위해서 식사전주로 마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점심을 주문하려는데 그 메뉴는 제공할 수가 없단다.    새우재료가 없어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새우를 대 주는 업자가 이틀을 쉬어서 새우가 없어서란다.   자기네 잘못이 아니라는 투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메뉴판에 써 넣어야 한다.  새우가 없을 때에는 새우버거를 제공할 수 없다고,

 

 작년 겨울 부산 "고옥"이란 히츠마부시 장어덮밥집에 헐레벌떡 시간 마춰 갔는데 재료가 떨어져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허망하게 쫓겨 났던 일이 있었다. ( 2017/05/22 - [국내여행기/부산 영남] - 부산에서 )

 

기다려서 먹는다는 집쯤 되면 시건방지게 된다.   외국식당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설혹 실수로 시킨 메뉴가 아닌 것이 나왔다 던가 하면 정말 저자세로 사과를 하고 뭔가 보상을 해 준다.   칵테일 값을 받지 않는다든가 손님에게 보상을 해 준다.   그런 일도 별로 없지만 ...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없는지 모른다.

 

하여간 정월 초하루부터 기분을 잡쳤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도담에서 이태리안 음식을 먹었다.

 


 

 

Adieu 2017  서울

 

종이 책의 반은 버렸다.

 

 

 

버리려고 내 놓은 책

건질 만한 것이 있을 지 모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오지 않겠단다.

건축 폐기물과 함께 나갈 것이다.

 

 

 

이사짐이 나간 내 서재 2018년 2월 14일 돌아 가면 어떻게 변해 있으려나?

 

Happy New Year 2018

정월 초하루 제주도 이태리안 레스토랑 “도담”에서


 

 

도담에서

"바다다"의 모히토 두잔 값으로 맛 있는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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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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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01.02 07:59 신고

    새해에도 두분 늘 건강하시고 매일매일 즐겁게 지내시길 소망합니다.

시계와 시간

 

 

2017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내일 모래 30일 우린 제주행 항공기를 타고 제주로 간다.

 

서울은 지금 영하 -2℃ 라는데 서귀포시 중문동은 12℃ 다.  무려 14도나 차이가 난다.   따뜻한 남쪽나라다.      30일날 아침 7시에 이사짐 센터가 와서 포장이사를 해 주기로 예약되어 있다.

 

한달반 컨테이너에 실어 창고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돌아 오는 2월 14일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이사짐이 들어 온다.

 

버리고 버려도 또 버릴 짐이 쏟아져 나온다.   남은 이틀안에 정리를 마져 마쳐야 한다.

 

이렇게 어수선할 땐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란다.   빨리 2월 14일이 와서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집에 새로 입주하는 기분으로 돌아 올 날을 기다린다.  

 

우리가 묵기로 한 해리안 호텔에는 시계가 없어 블편했다.   전자레인지 시계를 맞춰 놓고 시계 대용으로 이용했는데 외출할 때 현관의 키를 뽑으면 컨센트 전원마저 꺼져 시계가 0시로 리세트되어 있다. 

 

돌아와서 항상 시간을 다시 맞춰나야 했다.   그래서 그 김에 여행용 휴대 시계하나를 구입하려다 보니 시계앱 생각이 났다.

 

안드로이드 갤럭시폰에는 시계가 들어 있어 꺼진 상태에서 시계를 셧다운 바탕화면으로 설정해 놓으면 꺼져 있을 때 항상 시계가 나온다.

 

아이폰에는 red clock 이란 앱이 있었다.  이걸 며칠 켜 놓고 사용해 보니 여러 모로 쓸모가 있다.   시간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날씨나 기온 풍속등 외출할 때 필요한 정보를 알려 준다.   적어도 10시간은 버티니까 충젼기와 연결해 놓기만 하면 외출했다 돌아 온 후 자동 충전해 주니까 따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대치동 날씨 현재 -2℃

 

 

 

서귀포 중문동 기온 12℃

 

 

 

"Red Clock"이란 시계앱

거의 쓰지 않는 아이패드 미니를 전원에 연결해 놓아 시계로 쓰면 대형디지털 시계로 변모한다.

날씨와 기온까지 알려 준다.

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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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upri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29 02:14 신고

    안녕하세요.
    제주도 가시는군요. 따뜻한 제주도에서 좋은 음식과 공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보리스님, 코니님 올한애 잘 마무리 하시고, 내년에도 건강과 좋은일만 생기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_ _)
    저도 시계앱을 써봐야겠습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12.29 10:21 신고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bruprin님도 새해에 건강하시고 좋은 일이 가득하시기 빕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산반도 닭이봉에 오르다

 

"사진은 권력이다." 란 말을 많이들 한다.   사진이 왜 권력인가?  이런 은유적 표현은 논란을 많이 불러 온다.    요즘 인기 있는 TV 프로인 "알쓸신잡"에서 떠들어 댄다면 한시간은 떠들어 댈 만한 표현이다.

 

사진은 진실이지만 찍사의 마음도 들어 있다.   그 많은 광경중에서 그 하나를 찍었으니 그것은 자기가 감흥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고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심정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가가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와 같은 사실 하나에 주목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진이 권력이다" 하면 떠 오르는 사진이 있다.     내가 "전쟁이란 무엇인가" 에서 인용했던 사진이다. ( 전쟁이란 무엇인가 )   그 사진 하나가 역사를 바꿨다.

 

 

 

7. 1972 Kim Phuc in a napalm attack in South Vietnam by Nick Ut

Nick Ut's photograph of five children running in terror from an accidental napalm attack was widely published around the world, and crystallised in people's mind's the grim injustices of the Vietnam war. The war was heavily reported on and historians believe that images, particularly this one, had a huge impact at home, resulting in violent anti-war protests, a world-wide campaign for peace, and even contributing to the end of the war.

 

Nick Ut의 네이펌탄의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다섯 월남 아이들의 이 사진은 아무 것도 모르던 미국민에게 월남전쟁의 참혹상을 깨쳐 주었으며 전세계에 퍼져 나간 이 한장의 사진은 세계적인 평화운동을 일으켰다. 역사학자들은 이 한 장의 사진이 미국 본국에는 격렬한 반전운동을 불러 왔고 궁국적으로 월남전쟁의 종식을 가져 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세상을 바꾼 열장의 사진 (http://www.telegraph.co.uk/culture/culturepicturegalleries/6152050/Ten-photographs-that-changed-the-world.html) 중에서

 

"사진이 권력이다" 라는 말을 보여 주는 보기는 이 것보도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난 "동영상은 초권력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핸폰의 동영상 CCTV 의 동영상등이 범죄를 추적하고 사회불의를 고발한다.  한 장의 사진 보다 한 편의 동영상은 그 모든 것을 말해 준다. 

 

11월 24일 엄청 춥고 엄청 바람이 불던 날 아침 우린 변상반도에서 식전 산책을 했다.

 

닭이봉이란 곳에 올라 갔다.   대명 콘도에서 한 3,40분 거리의 산책인데 봉우리라 해도 매우 낮고 또 나선형으로 길을 내 놔서 올리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 날이 제주 여행의 끝날이었다.

 

닭이봉 꼭 대기엔 조망루(?)가 있어 사방팔방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바람에 흔들리며 360도 파노라마 동영상을 찍어 봤다.

 

 

 

사진의 캡션은 사진속의 안내글에 다 들어 있다.

 

 

 

 

닭이봉 산책로

 

 

닭이봉 조망루에서 바라 본 사방팔방

 

 

 

동영상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요약판이다.

 

 

PS 권력을 죽이고 싶지 않아 제주여행기 마지막편을 올렸다.

 

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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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념 우표 시트

 

 

난 1960 년 8월 22일 일부 변경선을 넘었다.   미국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2007/01/08 - [일상, 단상/잡문] - 1960년과 2007년 )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1주일전 난 중앙우체국에 가서 광복 15주년 기념우표 시트를 여러장 샀다.   우표수집 목적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당시 유학생에게는 미화 300불밖에 환전을 해 주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기념우표 시트를 사 가지고 가면 돈이 될 거라는 어느 지인의 권고로 시트를 사가지고 갔던 것이다.

 

우표수집가가 아니기 때문에 딱히 어디에 가야 이 시트를 매도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선물로 사용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60년가까이 까지 그냥 지니고 있게 된 것이다. 

 

그 우표시트는 계륵과 같았다.  버리기엔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짐스러웠다.  물론 물리적 공간은 얼마 차지하지 않는다 해도 볼 때 마다 "어떻거지" 하는 마음의 무게가 물리적 공간을 훨씬 넘게 큰 것이었다.

 

며칠 인터넷 서치를 해서 우표를 무제한 매입한다는 사이트를 찾았다.  "우표사랑" 이란 사이트다.   그냥 우체국 등기 택배로 보냈다.   감정가대로 매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와 계좌번호를 적고 간단하게 소장하게 된 이력을 덧 붙였다.

 

어제 붙였는데 오늘 연락이 왔다.   18만원에 매입하겠단다.   곧 입금하겠다는 연락이다.  

 

그래서 60년 가까이 끼고 있던 계륵 하나를 처치했다.

 

우송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 놨다.    앞 포스팅에 올렸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권고를 따른 것이다.    사사키씨의 권고는 버리기엔 너무 추억이 많은 물건에는 "사진을 찍어 남겨둬라" 였다.   그러면서 사족을 달기엔 그 사진도 아마도 다시 볼 기회는 없을 것이지만... 이라고 했다.

 

내가 이 블로그를 쓰는 것은 그 사진을 다시 볼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일 지 모른다.

 

 

 

60년 가까이 끼고 있던 1960년 8월 15일 발행한

광복 15주년 기념우표

 

 

 

시트 전지 (우표 50매)

모두 6장이다.

 

 

 

일종의 소형시트

 

 

 

우표사랑이 보내준 매입금

 

 

 

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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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2018 - 겨울여행과 하우스 리모델링

 

이 번 겨울 제주도 피한 여행은 계획 변경이 생기고 또 생겨서 여러 번의 호텔예약과 항공권예약을 새로 고치고 마침내 확정되었다.

 

12월 30일 출발 2018년 2월 14일 귀가로 결정되었다.

 

원래 계획은 2017년 1월 15일 출발 2월 14일 귀가로 30일 피한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없는 동안 두째 며느리를 시켜 베란다 샤시를 교체하는 공사를 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다 공사가 조금 조금 늘어나 마침내 집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구 가전제품 교체 인테넷 시스템까지 모두 싹 쓸어 교체하는 것으로 일이 커진것이다.  우리가 돌아 오는 날은 곧 이어 설 연휴가 시작되어 마무라가 안되어도 공사를 중단해야 할 상황이라 공사기간을 뒤로 늘리기 보단 앞으로 당기기로 했다.

 

처음에 1주일만 당기기로 하고 항공편예약을 변경했으나 인테리어업체 사장과 의논한 결과 뒤로는 연장하기 힘드니까 여유를 갖자면 한 주 더 당기기로 했다.  결국 변경했던 출발일을 또 8일 앞 당겨 결국 올해 12울 30일로 재 변경을 했다.

 

항공편도 그날은 주말(토)이라 밤 9시가 다 되어 떠나는 항공편으로 바꿨고 제주도 호텔에는 일러야 밤 11시에 도착할 것 같다.

 

그 안에 할 일이 많아졌다.

 

전에도 리모델링을 위해서 여러번 버렸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자꾸 물건이 생긴다.   나처럼 호물가(모노즈끼, gadget lover) 는 항상 호기심으로 새 물건을 사게 된다.   새 것에 대해 궁금해 지기 때문이다.

 

버리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려나 하고 책 3권을 ebook 으로 샀다.

 

모두 일본 사람이 쓴 책이다.  일본은 주거 공간이 작고 또 지진이 자주 있기 때문에 많은 물건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전에 Book Scan 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가 장서는 지진에서는 위험물이기 때문란 이야기를 쓴 일이 있다.  2011/09/29 - [책] - 북 스캔

 

이 번 기회에 종이책은 서재 책꽂이 것만 남기고 모두 버리기로 했다.   헌 책방에 가져 가라니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서는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버리는 물건이 넘쳐 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쓸만한 물건도 가져가지 않는다.

 

 

 

 

 

내 교보문고 서재의 최근에 산 3권의 ebook

3번째 책 미니멀 라이프 연구회도 일본 책 번역본이다.

 

 

모르는 것 아닌데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으면 약간의 자극과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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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21 13:30 신고

    겸사겸사 제주도로 피한여행 가시는 군요. 올해는 예년보다 더 추울것 같아서 서울보다 따뜻한 제주에서 푹 지내다 오시는 것이 건강에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요.

  2.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23 14:33 신고

    네 겸사겸사인데 피사(피공사)목적이 더 커졌습니다. 잘 놀다 오겠습니다.

한국통계물리학의 역사 -  My Memory of late Professor Soon-Tak Choh

 

 

마지막 리모델링을 하려고 내 서재를 정리하다 뜻밖의 오래된 잡지하나를 발견했다.

 

재미한인 물리학자협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April 1997호다.  1995-1996년 Brown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냈기 때문에 이 잡지에 고 조순탁교수에 대한 회고록을 기고했었다.

 

내가 이 원고를 기고할 때 pdf 형식으로 갖고 있어 내 홈피에 올려 놨었다.  2000년경 당시 하나로통신사를 인터넷 제공자로 쓰고 있어 그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서버에 올려 놨었다.  통신사를 바꾸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이런 잡지는 학술지도 아니기 때문에 도서관에 보관되는 것도 아니고 찾을 길이 없었다.

 

내가 이 잡지를 종이 형태로 갖고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찾을 길이 없었다.  서가를 뒤지고 뒤지고 심심하면 뒤지고 뒤졌는데 못 찾다가 종이책을 버리려다 보니 발견한 것이다.

 

또 사라질 지 몰라 내 글만 스캔해서 여기 올린다.

 

한국 통계물리학의 역사다.  내가 죽으면 이 말을 전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을 함부러 버리기도 그렇네...

 

 

 

MyMemory.pdf

 

 

PS:

 

정리를 하다 보니 1985년 조순탁교수의 화갑기념회에서 "통계역학의 발전"이란 기념 논문집을 냈을 때 내가 읽었던 헌사 원고가 나왔다.  한국 통계역한의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여기 스캔해서 올린다.

 

 

조순탁교수회갑헌사.pdf


위의 영문 회고록과 중복이 많이 되므로 한글 번역이라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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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찬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18 10:56 신고

    교수님 올리신 화일의 pdf본을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저는 통계물리 전공은 아닙니다만.
    이메일은. cyhwang@kriss.re.kr

2017 년 송년회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은 나이가 되면 내 블로그도 옛날 얘기가 더 많아진다.  어제는 물리학부 송년회에 갔었었다.  내가 처음 물리학과에 부임해서 가르쳤던 3번째 해의 학생이 은퇴해서 명예교수의 반열에 끼어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아직 현직에 있는 한 제자 교수에게서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수가 아직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내 prl 에실린 논문을 본 이야기였다.  (단상)


내 분야인 통계물리와는 다른 입자물리를 전공했는데 비록 분야는 달라도 자기가 배운 모교의 교수가 미국의 교수들도 싣기 어려운 prl( Physical Review Letters)에 실린 논문을 보고 자랑스럽고 뿌듯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prl 에 올린 몇개의 논문중의 하나로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구업적이다.  

 

1950년대 중국계 미국 물리학자인 TD Lee 와 CN Yang 은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탄 것으로 더 유명해 진 인물이다.   그 두 물리학자는 통계역학과 입자물리 두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Ising Model 의 Onsager solution 을 증명한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에 더 나아가 상전이의 이론을 제시했다.

 

노벨상도 입자분야의 업적으로 탄 것이기 때문에 이 제자교수가 내 논문에 관심을 가진 것도 입자물리분야의 대가인 Lee-Yang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Lee-Yang Circle theorem 이란 이름으로 알려 진 이 이론은 추측이었지 엄밀한 증명이 빠졌었다.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내가 prl 에 게재한 논문이 이 이론을 증명하고 더 나아가 일반화해서 Lee-Yang therorem 이 특수한 경우로 포함되게 한 것이다.

 

논문을 쓴 것이 30년전 이야기이고 물리에서 손 뗀지 10년이 넘었으니 나도 대강 어떤 것을 했다고 기억만 할 뿐 자세한 것은 잊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보면 새각이 나려나 하고 침대위에 걸져 있는 아이패드로 검색하니 논문이 나온다.  그러나 초록만 보여 줄 뿐 본문은 돈을 내고 사야 한다.

 

25불을 신용카드로 결재하고 논문을 내려 받았다.  내가 내 논문을 25불 주고 산 셈이다.

 

 

PhysRevLett.73.2801.pdf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엄청난 계산을 하면서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쉬웠던 것은 이 논문은 내 방대한 증명을 위한 계산의 초요약이고 이를 해설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던 점이다. PRL 은 4 페이지 이상의 논문은 실어 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방대한 내용이라 해도 4 페이제로 요약해야 한다.  이논문에 관해 해설하고 미진했던 부분을 더 자세히 연구했다면 적어도 5,6편, 많으면 10편의 논문을 썼었을 것이다.   

 

난 일단 난제를 풀고 나면 다른 문제에 도전하는 게 재미가 있지 이것을 다시 해설하거나 가지를 키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업적을 알리는데 손해를 많이 봤다. 

 

 

 

PS:

 Lee-Yang theorem 의 CN Yang(楊振寧) 교수는 한국과 또 나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CN Yang 교수는 내가 은퇴하기 몇년전인  1996년에 한국에 유치 설립된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 = 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의 초대소장을 지냈으며 내가 한 때 CN Yang 소장의 특별고문을 지낸 일이 있다.  그 때 찍은 사진이 오랜 사진묶음에서 발견되어 여기 스캔해서 올린다.

 

 

 

아태 이론물리 센터 국내외 인사들

앞줄 한 가운데가 CN Yang 소장이고 그 왼편이 필자

해외 인사는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1998 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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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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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이데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16 15:14 신고

    선생님, 까막눈이라 읽을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다시 해설하거나 가지를 키우지 않으셨던' 뜻을 배우고 싶습니다. 1922년 생, 楊振寧 교수와 1926년 생 李政道 교수네요. 楊振寧교수는 현재 중국 국적을 회복하고 중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12.16 16:11 신고

      제 논문이 지엽적이 아니고 뿌리같은것이라 여기서 파생하는 지엽적인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확장해서 여기 저기에 응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개 Postdoc 이나 박사과정학생에게 시켜서 하는 연구인데 당시 포닥도 변변한 박사과정 제자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 하기에는 벅차고 또 새로운 연구가 더 흥미가 있어서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다행이 나중에 큰 아들이 이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http://boris-satsol.tistory.com/1020 )



얼마전 내 블로그를 방문하고 댓글을 남기고 간 분이 계셨다. 

일본 저전거여행을 마치고 일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고백하셨다.   반일주의자에서 친일파가 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하신 분이다.  

 

내 블로그의 글 들이 그분의 생각과 비슷한 분위기 또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전향을 재확인하겠다고 내게 물음을 남기고 가셨다.

 

나 또 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의 전향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런 경험을 5년전에 글로 썼는데 공개하지 않았다.   한일문제는 민감한 문제라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내 글에  악풀을 달기 때문에 그런게 귀찮아서 아예 글을 써 놓고 올리지 않았다.   여기 그 때 그 글을 다시 옮겨 적는다.

 

"은원의 그 너머"는 키쿠치 칸의 소설 恩讐の彼方に(おんしゅうの かなたに) 의 제목에서 따 온 말로 불교적 의미가 함축되어 였다. ( 2012/03/19 - [해외여행기/일본 큐슈] - <은원(恩怨)의 그 너머> - 야바케이 자전거길 )

 

 

 

동굴을 파는 선승 젠카이(禪海)

 

 

 

********** 은원을 넘어서야 2 -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생각하며  (2012.08.23 썼던 글)  *********

 

 

MB 의 독도 방문으로 유발된 한일간의 갈등은 날이 갈 수록 격화되는 느낌이다.     일본 우익들이 이젠 한류의 최상급인 욘사마(배용준)까지 공격을 한다는 뉴스가 들린다.

 

한일 모두를 사랑하는 나에겐 가슴아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내 생전엔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부관, 관부 해저 터널이 뚫리고 여권 없이 한 일 양국을 오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오늘 날  우리의 국민감점, 민족감정이란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내가 <은원을 넘어서야> (2012/08/20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은원을 넘어서야 - 우린 아직 고작 숫캐의 수준인가)라는 글을 네이버의 블로그에 옮겨 올렸더니 댓글 하나가 달렸다.  독도에 대해 잘 못 알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체 하는 댓글이기에 반박을 해 줄까 하다 이런 댓글이 하나 둘이 아닐 터인데 소모적인 논쟁을 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 댓글을 삭제하고 그 글엔 아예 댓글을 달지 못하게 차단해 버렸다.

 

오늘 날 평균적인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대일관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오직 딴 사람들이(언론매체,  정치모리배,  반일교과서)  떠들어 대는 것에서 형성된 막연한 추상적인 반일 의식일 뿐이다. 

 

역사란 항상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역사교과에서 배운 내용은 지식의 일부로 간직해야지 그것을 바탕으로 감정으로 이어 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으로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매체와 그릇된 지도자들의 선동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를 직접 체험해서 반일 감정을 갖게 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래도 뭔가 일제 강점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연령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적으로 일제 강점기때의 피해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의 피지배자로 입은 피해를 일차적으로 기억하가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내가 그 극소수자의 한사람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면서 일본사람들이 재일 조선인을 조셍징으로 부르면서 차별과 멸시를 일삼던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탓에 열살도 되기 전에 부모와 헤어져야 했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난 10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불행한 유소년 시절을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와 내 가족이 일차적인 피해를 체험한 세대인 것이다.    일본사람들에게 차별 받고 멸시를 받았던 재일 조셍징의 후예이니 내가 일본사람들에 대한 반감은 우리 일반 국민의 그것보다 더 강했다.    60년대 말 미국에서 귀국할 때만 해도 일본을 거쳐갈 때 일본에 들르는 것을 꺼려 했었다.     두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죽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만난 일본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 선입견과는 전혀 달랐다.   또 일본을 여행하는 우리 한국 젊은이들은 나와 같은 자의식이 없이 일본사람을 대할 때 자연스러웠을 것이고  일본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대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편견과 허상을 지니고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내 대일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해 갔다.   조셍징으로 한국인을 멸시하던 일부 늙은 세대는 가고 한국의 경제성장과 진보로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 또한 작년부터 일본을 여행하면서 내 과거의 체험에서 형성된 자의식과 편견을 씻게 되었다.      일본에서 우린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자꾸 배우게 된 것이다.    일본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난 자연 일본의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 나기 시작했다. 

 

일본의 우익들 또한 허상에 매인 사람들이다.    일본의 경제 침체가 심화되자 옛날 군국주의 시대가 일본의 영광의 시대라고 착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일본의 인터넷 토론장에 들어 가 보면 일본 우익의 주장이 얼마나 허상이고 무식한 소치인가를 곧 알 수 있다.  그들이 주장은 나라가 어려울 수록 일사 불란 단결했던 군국주의 시대에로 돌아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워하던 그 군국주의시절이란 얼마나 암담했던 시절인가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자유주의사상과 교육의 배경을 가진 일본의 일반 국민은 결코 이들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얼마전 일본 NHK 에서 방송한 아침 드라마 <순정 반짝>을 보면 일본 군국주의가 국민을 전쟁의 광란으로 몰고 간 것은 군부와 일부 그릇된 극우세력 탓이지 일반 국민은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일본은 군국 주의로 돌아 가지 않는다.

 

단지 묘하게도 일본 정치인들은 이 일본의 신우익세력을 여간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속은 어떻던 이런 세력을 대변하게 되고 일본 전체가 우익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 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언덕 위에서 예전의 노예들의 후손들과 예전의 노예 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형제애로 모인 식탁에 함께 않을 수 있게 되리라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마틴루터의 이 명연설 당시엔 꿈도 꿀 수 없었던 흑인 대통령을 뽑았다.  마틴 루터 킹의 꿈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지도자가  나와

 

<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관부, 부관 해저터널이 뚫리고 신칸센과 KTX 가 부관, 관부해저를 달리게 될 날이,  그리고 여권 검사없이 서울에서오사카에 오사카에서 부산에 오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란 것을.....

 

그리고 옛 지배자의 후손과 피지배자의 후손이 한 KTX 식당차의 식탁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

 

그리고 우리 모두가 더 먼 옛날엔 한 조상의 갈라진 후손들이란는 것을 알게 될 날이 ...

 

싸워야 하고 미워야 할 이유가 없는 같은 피의 후손이란 것을...>

 

이란 연설을 듣게 되기를 꿈꾸어 본다.

 

은원을 넘어서야 한일간의 미래가 보인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915 [지구별에서-MyLifeStory]

 

 

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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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의 맛집 - 궁횟집과 찻집 "둥지"

 

 

앞 포스팅에서 새만금 방조제를 끝까지 달리지 않고 회차한 것은 전날 보아 두었던 곰소 궁횟집에 가서 젓갈 밥상을 먹기 위해서였다.

 

젓갈 밥상집  "곰소궁횟집"은 아래의 네이버 지도에서 클립해 온 지도와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에서 보듯 이 집 메뉴는 단 한 가지 16가지 젓갈과 백합탕 이다.  밥은 따로 한 공기에 1000원식 주고 사 먹는다.  우린 둘이서 밥 3공기를 먹었다. 

 

이 집 주인 내외는 떼 돈을 벌 것 같다.   메뉴는 단 한가지 16가지 젓갈은 이미 담겨 있고 박합탕도 끓여 놨다.   그냥 차려 노은 밥상에 앉으면 주인양반이 젓갈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 중에 반드시 들어 가는 것은 그 집은 다녀간 "백 종원" 이 무슨 젓갈과 무슨 젓갈을 섞에서 밥술에 함께 얹어서 먹는 것이 가장 맛 있단 것을 강조한다.    선전 광고에 인기 연예 음식 전문가 "백종원"을 따라 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밥상에 내 온 젓갈을 그대로 항아리에 답아서 만원에서 만오천원어치를 판다.  천일염도 판다.  그러니까 젓갈에 대한 설명은 메뉴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지만 식후에 부엌에서 젓갈을 사가라는 선전도 된다.   우리는 밥값,  소금(천일염), 젓갈 10 가지 사서 20만원을 쓰고 나왔다.

 

어제 오늘  대명 콘도가는 길을 오가며 특이한 찻집을 봤다.    곰소 갈 때 보고서 올 때 꼭 들어가 차 한잔 하고 가자고 했다.

 

"불거리가 많은 찻집" 이란 별칭 그대로 작은 갤러리였다.

 

곰소궁횟집은 빼더라도 이 찻집은 한 번 들어가 구경하고 가라고 권하고 싶다.    창문은 그 바깥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린 듯 잘 조화되어 설계해 놨다.

 

이 집 시그네쳐 메뉴인 "쌍화탕"을 시켰는데 견과류가 그 것만으로 끼니가 될 정도로 많이 들어 있었다.     

 

 

 

 

 

백종원이 다녀깄다는 "곰소 궁횟집"

횟집이라고 하나 젓갈 밥상 하나가 유일한 메뉴였다.

 

 

 

둥지횟집은 "천자로" 상에 있다.

 

 

 

 

 

 

 

 

 

 

 

이 찻집 안주인이 한지 공예가인 듯

 

 

 

식탁이나 그 주위가 작품들이다.

 

 

 

창의 바깥 경치가 창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다.

 

 

 

안쪽의 테이블은 그 테이블 대로 공예품에 둘리 싸인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장식 조명 모두 환상적이다.

 

 

 

이 테에블의 창밖 경치도 한폭의 그림이다.

 

 

 

한지 공예만 아니라 도예도 하시는 듯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찻집

 

 

 

또 다른 테이블 창"그림"

 

 

 

이 찻집의 시그네쳐 메뉴인 쌍화탕

 

 

 

코니는 대추자를 시켰는데 모시 송편이 나왔다.

 

 

 

둥지는 "찻집 여행" 인가 하는 책에도 소개되어 있다.

 

 

 

"찻집여행" 인가 하는 하는 책의 둥지찻집 소개글

탁자에 놓여 있어 펼쳐 봤다. 

 

 

Posted by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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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18 09:14 신고

    오늘 아침 우연히 들렀다가 그동안 밀린 글 다 읽고 갑니다.
    두분이 함께 다니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