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 본문

잔차일기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

샛솔 2008. 2. 29. 12:57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

 

삶이란 숨을 거두는 날까지 배우는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또 그 경험을 통해 배운다.  경험에는 단 것도 있고 쓴 것도 있다.   마치 업힐이 있으면 다운힐이 있듯이.  

 

지난 수요일 자전거를 쌌다.    우리가 가지고 온 가방에 자전거를 넣어  휴대화물로 탁송하는 대신 대한 통운을 통해서 부쳤다.    그편이 훨씬 여행이 편해 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타타타 라는 김환국씨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란 ...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 없지 .....

 

대한 통운 탁송요금은 인천에서 지불한 휴대화물 과중량 추가 비용보다 비싸다.   그대신 중량엔 거의 제한이 없다.  그래서 함께 가져간 헬멧,  신발,  가방  자전거복 따위 자질구레한 자전거 용품을 모두 쓸어 넣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무게가 꽤 나갔다.   

 

대한 통운 LA 지점까지 실어다 주기 위해 렌트카에  가방을 싣는 와중에서 내 허리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내 생질의 도움을 받아 둘이서 들어 올려 차에 실었지만 무리가 간 것 같다.  

 

짐을 쌌던 수요일 저녁 내 허리에서 약간의 뻐적지근한 느낌을 느꼈다.   "조금 무리를 했나"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그러다 낫겠지" 하고 지냈다.   

 

이튿날 목요일엔  실어 놓은 자전거를  LAX 공항 근방의 대한 통운  LA 지점에 가져다 주었고  여기 저기 숍핑도 다녔다.   허리의 증상은 살아지는 듯도 하였다.

 

떠나기 이틀전인 일요일 오전에  SAS 구두 전문 매장에 가서 새 구두를 신고 매장안을 걸어다녀 보기도 했다.  멀정하게 내 몸을 썼다.  

 

오후엔 생질집에 가서  LA에 사시는 누님 내외분을 만나 작별 인사도 하였다.  그런데 그 조카네 집을 나서는데 갑자가 요통이 엄습했다.

 

 요통이라기 보다 엉덩이 근육이 아파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걷기 위해 다리를 펴면 왼쪽 다리의 근육을 무릅근방까지 잡아 다니듯 통증이 왔다. 아파서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몸을 바로 세울 수 없으니 걸을 수가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다리를 뻗을 수가 없으니 바로 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똑 바로 누어 천장을 보며 자는 잠버릇을 가지고 있다.    옆으로 누어서 자지 못한다.  여러 가지 체형으로 잠을 청해 보았으나  잠을 잘 수가 없다.    거의 뜬 눈으로 일요일 밤을 지샜다.

 

다음날인 월요일 떠니가 하루 전날이다.   코니가 운전을 하고 난  LA의 한 침술 한의원을 찾았다.   LA 에 사는 조카도 요통,  견비통등이 있다.  그래서  그 조카가 자주 찾는 침술원을 소개받았다.     원장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권해서 월요일 개원시간전부터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었을 때 들려 오는 대답은 원장님은 월요일이 휴진일이란다.   그 날은 원장 대신 젊은 침술의원이 시술한단다 .  원장님이 없으니 할 수 없이 그 분에게 시술을 받기로 하고  Anaheim 에 있는 침술원에 갔다.

 

그 분의 진단은 근육이 놀래 뭉쳐 그 근방의 신경을 건드려 통증이 온다는 것이다.  촉진 결과 디스크는 아니란다.  그것만도 천만다행이다 .  그리고  그 뭉친 근육을 풀어 주어야 한단다.  

 

 3~40분 열심히 뭉친 근육을 풀고 침도 놓고 부황도 떴으나  쉽게 나을리가 없다.   엉덩이 근육 부근에 부황을 뜨려니까 그 근방의 근육을 자극하게 되고 왼쪽다리 허벅지 않쪽에 쥐가 났다.   그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하도 격렬한 고통을 호소하니 젊은 침술의원도 당황했다.    더 이상 시술을 포기하고  끝냈다.   성의껏 했지만 결과는 별로 신통하지 않았다.    그날 밤도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인 화요일은 일찍 공항에 가야 한다.   코니가  혼자서  짐을 쌌다.   "오빠 한번 믿으 봐" 라는 노래까지 벨소리로 올려 주었는데 체면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짐도 적지 않다.  6주를 사는 살림이니 이사짐과 같다.     LA에서 쓰는 물건은 조카집에 맡기고 다닌다.   그 짐이 여간 많지 않다.  또  우리가 서울에 가져갈 짐도 만만찮다.   그러나 코니 혼자 일을 마치고 돌아 갈 우리 짐만 남기고  호텔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날 밤도 나는 의자에 앉은채  잠을 청했으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LAX  공항에 나갔다.   그러나 공항에서가 문제이다.  허리를 펴서 걸을 수 없으니 긴 거리를 걸을 수 없다.   전날 침술 한의원의 충고로 지팡이를 하나 샀다.   

 

그 도움으로 공항을 걸어 다닐 생각이 었다.    더욱이 우린 NWA 항공편이라 Narita 공항에서 한번 갈아 타야 한다.   일단 내리고 또 다른 게이트에 가서 항공기를  갈아 타야 한다.   전날 호텔에서 예행 연습 삼아  적은 거리를 지팡이를 집고 이동해 보왔으나 여간 힘들지가 않다.     

 

다리를 바로 세울 수 없으니 토끼뜀 뛰듯이 무릅을 구부린채 걸어야 하니 또다른 부위의 허리가 아파 온다.  기압을 받는 느낌이다.   별 수 없이 휠체어를 타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알아 보니 체킨시에 휠체어를 요창하라고 되어 있다.

 

먼저 Hertz Rental Car 에 차를 돌려 주고 거기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에 들어 가야 한다.   거긴 휠체어가 없다.  그런데 차를 돌려 주니까  지팡이를 짚고 걸음거리가 불편해 보이는 나를 보고 도와 주랴고 한다.   도움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우린 셔틀 버스 대신  Hertz 직원이 렌탈카로 우리와 우리짐을 싣고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노스웨스토 체킨 카운테에 문의하니 휠체어가 왔다.   유색인여자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비지니쓰 클래스 라운지 까지 실어다 주고 또 탑승시간이 되면 휠체어를 끌고 다시 오겠단다.   항공기 탑승구까지 실어다 주겠단다.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잘 수 없다.    직각으로 된 딱딱한 의자에 앉을 때만 견딜만 하고 그 밖의 자세는 다리가 펴지고 엉덩이 근육의 인대가 늘어 나면 그 여파로 왼쪽다리 전체 신경에 통증이 전달되어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허벅지 안 쪽의 근육의 통증이 가장 심했다.    화장실도 잘 갈 수가 없다.  가서 볼 일을 보기도 힘들다.

 

LA 첵인때 부탁했든 대로 나리타 공항에서도 항공기 출입문까지 공항 직원인지 항공사 직원인지 제복을 한 직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나와  기다라고 있었다.   NW 라운지 까지 실어다 주었고 또 보딩시간에 맞춰 휠체어를 가지고 와 서울편 항공기 출입문까지 휠체어로 실어다 주었다.

 

인천공항에도 항공사 직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난 생전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출입국 신고도 하고  안전 검사도 받고 공항을 다니면서 항공기도 갈아 타고 했다.   에스컬레이터대신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인천공항에 밤에 도착하였으니 병원은 다음 날  갈 수 밖에 없다.    또 앉아서 새우 잠을 잤다.

 

다음날 우리의 가정의라 할 수 있는  우리가 다니는 내과 의원님에게 전화를 걸어 가까운 정형외과를 추천 받아 그곳에 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보고 촉진을 했는데 나타난 것은 없단다.  근육에 뭉쳐 신경을 압박해서 통증이 온단다.   

 

LA 한의원의 진단과 같다.   전열, 초음파, 전기진동 따위의 물리 치료도 받고  뭉친 근육 부위에 주사도 놨다.    진통제도 처방 받아 먹고 있다.    치료를  받고 나니 오늘은 조금 나은 것 같다.     아까는 조금 편한 자세로 잠도 잤다.  앉아서 이 글도 쓰고 있다.

 

장애인이나 환자에 대한 준비와 배려는 미국이 으뜸이었고 일본이 그 다음이었고 한국은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땐 시각 장애인을  장님이라고 부르며 재수 없다고 침을 뱉았다.  장애인을 병신이라  부르고 없수이 여기고 놀려 댔다.  

 

장애인은 날 때 부터인 경우 보다는 살다가 각종 사고나 발병으로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그 사고나  발병은 언제 누구에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뚜르드 팜스프링스를 완주했다고 의기 양양했던 내가 휠체어를 타고 귀국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