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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세월호참사 (11)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지수함수가 선형함수를 넘어 서는 교차점에서 - 2014 년을 보내며 2014 년이 3 시간도 남지 않았다. 지난 몇년간 대 그믐날에 블로그를 썼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오면 감회가 남다르지 않아 블로그를 쓰게 되는 것 같다. 재재작년, 재작년, 작년에도 대 그믐날에 블로그를 썼다. 그런데 올해 대 그믐날엔 뭔가 우울하다. 새해가 된다고 해서 별로 느낌이 없다. 별로 밝은 새 해가 보이지 않는다. 2011/12/31 - [일상, 단상] - 달력의 마지막 장 마지막 날 2012/12/31 - [일상, 단상] - 2012년을 보내며 2013/12/31 - [일상, 단상] - 2013년 마지막 날을 보내며 2014년은 참으로 슬픈 해였다. 4월 16일 창년보에서의 날씨는 화창했다. 우린 대구에서 부곡으로 이..
민주주의란 이름의 환상 얼마전 내가 2014/05/17 - [일상, 단상] - 민주주의란 이름의 돈과 쓰레기의 향연 이란 글을 쓰면서 민주주의는 환상이란 이야기를 했다. 그 글의 주장의 근거를 다지기 위해서 조금 더 연구를 해 봤다. 요즘 우리나라 안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너무나 무능한 인물을 나라의 우두머리로 뽑아 놨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났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파 여러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다. 그 때 내가 예견했다. 2014/04/23 - [일상, 단상] - 비통 허탈 분노 자괴감 ... (내 보조 댓글) 내 예언이 적중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그대로 파묻혀 버릴 것이다라고 한 예언. 대통령은 책임지고 물러 가겠다고 한 사람을 다시 불러..
세월호참사와 미국금융위기파탄은 닮은 꼴 내가 5, 6년전 미국 금융파탄을 겪을 때 그 파탄의 주범들을 적라라하게 지적한 Blinder 교수의 강의에 감명을 받아 그 강의의 요점을 블로그에 올린 일이 있다. ( 미국 금융파탄의 주범들 ) 그 때 미국 금융파탄과 세월호 참사는 참으로 닮은 점이 많다. 수백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도 줄줄이 이어 진 과실들의 결과물이라고 타임지가 지적했다는 이야기를 썼다. ( 2014/04/25 - [일상, 단상] - 세월호 참사 끝없는 과실물의 축적 - a Litany of Errors ) 그 중의 하나만이라도 체크가 되었더라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미국 금융파탄도 Blinder 교수는 10 과정의 범법자들을 지목했다.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체크가 되었더라면 파탄은 ..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어제 포스팅에서는 세월호참사관련 글은 더 이상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코니가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동영상이 공개되었다고 보여 준다. 또 선장과 선원이 탈출한 뒤에 단원고 학생이 보낸 카톡 내용도 있었다. 선장이 탈출한지 30분 후인 10시 17분이라고 한다.
이젠 유가족을 치유할 때 - 참척의 아픔을 딛고 세월호 참사가 열흘을 넘었다. 여행중에만 먹는 수면제를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계속 먹었다. 하루 약을 먹지 않았더니 두시간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어제 다시 먹었다. 이젠 뉴스도 보기가 무섭다. 내가 이 지경이라면 아직도 시신을 못 찾은 유가족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참사에 국민들의 슬픔이 큰 것은 참척의 아픔을 거의 모든 국민들이 간접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이나 손주를 먼저 보내는 부모나 조부모의 아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의 대부분이 수학여행차 나섰던 고2의 학생이었다는 것이 바로 참척의 아픔을 간접체험하게 했다. 그 희생자가 바로 내 아들이나 딸 손녀나 손자였다면 하고 대입해 보면 그 슬픔과 고통..
비통 허탈 분노 자괴감.. 아마도 국민 모두가 지금 그런 감정일 것이다. 슬프고 아프고 허무하고 화나고 부끄럽고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합천창녕보까지 낙동강 종주를 마쳤을 때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었다. 부곡에서 3일 묶고 한 구간 더 달릴 예정을 깨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자전거종주를 이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UN 산하의 국제 해양기구(IMO ) 에서 ( 2014/04/21 - [일상, 단상] - 안전문화 ) 안전문화의 key 세 항목중에 첫번째가 사고는 올바른 procedure 를 따르고 최선의 훈련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The key to achieving that safety cult..
도동서원에서 합천창녕보까지 - 세월호참사 소식을 듣던 날 4 월 16일 대구를 떠나는 날이다. 우리 계획은 이날 예약해 둔 부곡의 그린비치 호텔로 이동하는 것이다. 전날 이방의 택시를 알아 보고 합천창녕보에 와 줄 수 있는가를 문의했다. 10시에서 11시이에 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대구의 엘디스 리젠트 호텔을 퇴실하고 짐을 싣고 합천창녕보로 향했다. 네비가 가르쳐 준 도로(군도)의 일부는 도로를 폐쇄하여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폐쇄한 도로를 사용하던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우회도로의 안내도 없고 설명도 없이 막아 놨다. 주민들의 군도 폐쇄 결사반대의 현수막만 휘날리고 있었다. 정부나 사업자나 주민의 양해도 없이 제 멋대로 도로를 폐쇄한다. 선진국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세월호참..
시치리가하마의 애가 고 2 의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똑 같을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 그들의 자식도 될 수 있습니다. 저희 큰손녀딸도 고 2 입니다. ( 2010/05/02 - [일상, 단상] - 가히리 - 조손동락(祖孫同樂) ) 저희 손녀딸이 그 희생자 중의 하나였다면 어떤 심정일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꿈도 펴 보지 못한 어린 영혼을 떠나 보내야 한다면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있겠습니까? 미어질 것 같습니다. 옛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전에 포스팅했던 "마시로끼 후지노네"란 노랩니다. 2010/02/21 - [일상, 단상] - 마시로끼 후지노네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 - 안전문화 불교에서는 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과응보를 믿는 불교에서는 오늘의 일이 바로 전에(전생을포함) 행한 업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죄업(罪業)으로 나타난 것을 함께 지은 죄업의 결과라는 뜻으로 공업이란 말을 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공업이다. 물론 크게 잘못한 사람 몇을 지목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사회는 거미줄 같이 엉켜있는 world of web(거미줄의 사회)이다. 그 몇사람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참사는 우리 모두의 공업이 된다. 오늘 날 이 사회는 국가라는 시스템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자유선거에 의해서 그 국가 수반을 뽑는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생각나는 Y 군의 이야기 내 물리학과 동기에 Y 군이 있었다. 괴팍하고 고지식한 친구였다. 대학을 졸업후 원자력 연구소에 들어갔다. 핵공학과 라는 학과가 공대에 생기기전이라 물리나 화학과 졸업생이 원자력 연구소에 많이 들어 갔다. 그를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년쯤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은퇴한 다음인가 2000년초에 LA에서 그를 만났다. 그 사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 버린 것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 시간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이민을 온 이유중의 하나는 한국의 부조리와 비리에 염증이 나서 였다고 했다. 원자력 연구소에 다닐 때 한 번은 조선소에 파견 근무를 나갔다고 한다. 배를 만들려면 용접을 많이 해야 하는데 용접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검사를 해야 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