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이것저것/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달력

112019  이전 다음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내셔널리즘을 극복해야 평화가 온다.  -  한일문제를 풀려면..

 

최근 일본이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한일간의 갈등이 또 극에 달했다.   일본이 반도체 생산의 필수품들의 수출제한 조치를 발표하고 한국 누리꾼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여행자제운동을 펴면서 반일감정을 북돋고 있다.

 

몇년이면 한 번씩 일어 나는 "전쟁"인데  모두 과거사에서 비롯한 묵은 감정들의 발로다.  "과거사".....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서는 평화와 공동 번영이 올 수 없다.  

최근에 일본의 Temple 대 Jeff Kingston교수가 쓴 “Asian Nationalism”과 “Japan”이란 책을 읽었다.

 

출판일 April 27, 2016

 

출판일 February 27, 2019

 

 

위의 두 책 모두 학술서로 집필된 책이라 상당한 분량의 참고 문헌이 들어 있다.    일종의 일본 현대사의 참고서라 할 수 있다.   

 

 

내셔널리즘의 introduction 인 섬뜩한 말이 있다.   

 

내셔널리즘은 끊임없이 적을 찾아 나선다. (Nationalism is ever in search of an enemy.) 

 

내셔널리즘은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적대감뿐 아니라 한 국가안에서 한 민족안에서도 편가르고 적대감을 고조시킨다.   네편과 내편으로 편 가르고 싸움을건다.

 

영토를 가지고 다투고 역사를 가지고 싸운다.  내셔널리즘은 지도자에게 매우 편리한 도구다.  민족감정을 돋구면 지도자를 따르게 만들 수 있고 그 집단을 단결시킬 수 있다.   쉽게 편을 만들어 자신을 따르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의 동류 의식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파이언스에 잘 기술되어 있는 인지혁명의 결과 인류가 이 특성을 이용하여 대규모 집단을 형성해서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유인원들을 정복하여 영장류의 유일한 인류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인류의 특성은 오늘날 끊임없는 민족 국가간의 갈등과 한 국가안에서 집단간의 갈등과 투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Nationalism 

 

Nationalism is ever in search of an enemy. As such it is an abiding concern because it raises the risks of conflict, not just between nations, but also within nations. Nationalism is a modern ideology that draws on history, religion, beliefs, customs and traditions to establish a commonality and intense bonds of group solidarity that serve the purposes of the nation state (Smith 1995). Precisely because nationalism is so useful to the state, it involves myth-making, selective memories and dubious interpretations to construct the basis of a common identity and shared past that arouses and inspires. It involves forgetting that which divides or is inconvenient so that the Idea of nation can arouse “the feeling of the sacrifices that one has made in the past and of those that one is prepared to make in the future” (Renan 1882). Nationalism is so useful because it justifies state policies, endorses leaders’ aspirations and confers legitimacy on those who invoke it. By helping to construct unity based on shared identity, nationalism is crucial to establishing a sense of nation, an imagined community of affinity, belonging and communion that highlights distinctions between those who are part of the group and those who are not (Anderson 2006). Thus nationalism involves an intense “othering,” drawing physical and psychological borders that exclude in ways that intensify a sense of belonging and solidarity among those who are included. Tensions that arise from nationalism can thus target other nations or those who reside within the national boundaries who are not part of the mainstream and are thus excluded or marginalized. The populist passions aroused, however, can careen out of state control, leading to unintended consequences, spreading like wildfire at the grassroots. Since the affairs of state and demands of international diplomacy often require compromises or concessions, nationalism can thus prove inconvenient and discrediting to those in power. Leaders often find that unleashing the genie of nationalism is easier than getting it back into the bottle.

 

이 책의 서문의 첫 문장도 또 섬뜻한 예언이다.   2015 년에 호주의 전 외무장관 Gareth Evans가  한 예언,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 난다면 그것은 중동도 아니요 동유럽도 아니요 바로 아시아다."   라는 문장이다.

 

 

Introduction 

If World War III ever breaks out, its origins will not lie in the Middle East, South Asia or Eastern Europe. It is in East Asia—where the strategic interests of China, the United States, and their respective partners intersect, that the geopolitical stakes, diplomatic tensions, and potential for a global explosion are highest. Gareth Evans, former foreign minister of Australia, Japan Times (January 14, 2015)

 

내셔널리즘 아시아라는 책은 아시아 5개국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후 (1945)에서 이 책을 쓴 2016 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 아시아의 5개국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과 남한을 말한다.     이 5개국은 세계 인구의 40%,  세계 GDP 의 25%,  로 세계 상위 16 에 속한다.  또 이 다섯 나라중에서 4 개국은 그 방위비 예산이 세계 10 권에 들어 간다.     중국은 2위,  일본은 8위,  인도는 9위, 남한은 10다.  그 중에서 중국과 인도는 핵보유국이다.   중국의 방위비는 2014년 기준 천4백억 달러로 남어지 4나라 방위비 모두 합친 양보다 더 크다. 

 

그러니 아시아를 화약고로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Asian Five 

 

Here the focus is on China, India, Indonesia, Japan and South Korea, five critically important nations in Asia that will play a key role in how the world’s future plays out. Together they account for nearly 3 billion people, about 40% of the world’s population, and account for about 25% of global GDP, with each ranking in the top 16 world economies. Four of the countries are in the top 10 for defense spending: China #2, Japan #8, India #9 and South Korea #10; and China and India are nuclear powers. China spends more on defense, $ 144 billion in 2014, than the other four focus nations combined.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보면 아베는 우익 내셔널리스트로 세계의 정치평론가들이 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일본회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전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수정주의 사관을 견지하는 극우단체의 회원이다.  이 수정주의 사관은 일본의 1945년 이전의 아시아에서 범한 악행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아베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손잡고 아시아에서 대립하게 된다면 위험 천만하다.  이 것을 호주의 전 외상 Gareth Evans 가 경고한 것이다.

 

Abe is a conservative whom political commentators have widely described as a right-wing nationalist.[2][3][4][5] He is a member of the revisionist Nippon Kaigi and holds revisionist views on Japanese history,[6] including denying the role of government coercion in the recruitment of comfort women during World War II,[7] a position which has created tension with neighboring South Korea.

 

그러나 아베가 일본의 수장이긴 해도 일본 국민이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베는 일본 국민의 25%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2012년 부터 지금 까지 일본의 수장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 것을 아베수수께끼 Abenigma (Abe + enigma) 로 부르는 미스테리다.   

 

한 마디로 일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처럼 보여도 관료가 지배하는 "행정국가" 다.   그가 국민의 지지 없이 그렇게 오래 수상직을 유지하는 것은 아베를 대신할 만 한 인물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유권자의 투표율은 50% 를 조금 상회할 뿐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반만 아베를 지지해도 아베는 수상직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베가 좋아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베보도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benigma

 

 “Abenigma” refers to Abe’s puzzling political success. How does a leader whose policies and leadership skills are not held in high esteem maintain high levels of public support and win four national elections in five years since 2012? Typically, Abe’s LDP wins about half of the votes cast in elections where only half of eligible voters turn out, meaning it is supported by only 25 percent of the electorate, but commands a two-thirds majority in both houses of the Diet due to disparities in the electoral system. Abe’s signature policies, ranging from collective self-defense, arms exports, and state secrets legislation to nuclear reactor restarts, constitutional revision, conspiracy legislation, and the Trans Pacific Partnership (TPP) are supported by only about one-third of voters. National polls typically find that support for his policies (15%) and leadership (15%) is quite low while the main reason voters give for supporting him is the lack of a viable alternative (50%), hardly a ringing endorsement. That means his support is fragile and depends on the weakness of his opponents, not the merits of his agenda or personal virtues. Abe has been blessed by a weak field of rivals in the opposition and in his own party.

 

아베의 수정주의(일본의 과거악행을 인정하지 않는)역사관은 2015 년 종전 70 주년 담화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일본의 종전전의 악행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전 수상들의 인용하는 수준의 애매한 언급으로 얼버무렸다.

그 대신 일본의 오늘의 평화와 번영은 야스쿠니에 봉헌된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 덕이라는 해괴한 망언으로 수정주의 사관을 피력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록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이 아베의 거억상실증(Abenesia Abe+amnesia)를 반박한 전 일황 아키히토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현 일본 헌법에 따라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지만 일본의 현재의 평화와 번영은 군국주의자들의 희생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전쟁의 페허에서 악전 고투 노력한 일본 사람들의 덕이라고 아베에 일침을 가했다.

 

Abe Statement 2015 

 

Prime Minister Abe made a hash of his statement commemorating the 7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WII. He was vague where he needed to be forthright–on colonialism, aggression, and the “comfort women” system–and came up short in expressing contrition by invoking apologies made by his predecessors without offering his own. Furthermore, Abe expressed perpetrator’s fatigue, calling for an end to apology diplomacy. As a result, the Abe statement represented significant backsliding from those issued by former prime ministers Murayama and Koizumi in 1995 and 2005, which helped Japan and its victims regain some dignity while promoting reconciliation. Emperor Akihito spent much of 2015 repudiating “Abenesia,” making pointed comments about the need to address wartime history with persistence and humility. Constitutional constraints require him to avoid intervening politically, but he has been adept at navigating the gray areas in ways that have enabled him to become an influential advocate for reconciliation. There was a striking contrast in the respective 70th anniversary statements by Abe and Emperor Akihito, which highlighted the ongoing political divide between the revisionists and the understanding of most Japanese about how the nation got to where it is today. Noting the deaths of innocent Asians across the region, including 3 million Japanese, Abe dog-whistled: “The peace we enjoy today exists only upon such precious sacrifices. And therein lies the origin of postwar Japan.” This assertion that wartime sacrifices begot contemporary peace is a revisionist conceit, one that is conveyed in books and museums dedicated to sustaining the myth that Japan fought a noble war of Pan-Asian liberation and that the horrors endured were worthwhile. Emperor Akihito offered a veiled rebuke on August 15, 2015, when he said, “Our country today enjoys peace and prosperity, thanks to the ceaseless efforts made by the people of Japan toward recovery from the devastation of the war and toward development, always backed by their earnest desire for the continuation of peace.” Peace and prosperity, in the emperor’s view, did not come from treating the Japanese people and other Asians like cannon fodder during the war, but rather was based on their postwar efforts to overcome the needless tragedy inflicted by the nation’s militarist leaders. He forcefully advocated a pacifist identity as the foundation for today’s Japan, one that still resonates widely in Japan, challenging Abe’s agenda of transforming Japan into a “normal nation,” free from constitutional constraints on the military.

 

아키히토를 이은 새 일황 나루히토도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은 만큼 결코 아베와 같은 극우 수정주의 노선을 지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측이다. 

 

Oxford -   educated Naruhito has a very hard act to follow, but all indications are, no doubt to the dismay of conservatives, that he shares his father’s sense of mission and liberal outlook.

 

동아시아에 평화가 오려면 일본이 변해야 한다.   아베와 같은 수정주의자가 계속 미국을 등어 업고 옛날 일본 군국주의자처럼 중국과 대립하겠다고 하면 화약고는 폭발한다.     전에 내가 썼던 글에도 세계의 진보적 역사학자들의 충고를 들어야 한다.      미국과 정중하게 거리를 두고 아시아의 일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

이 책에도 내가 한 이야기대로다.    미국은 전후에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후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늘 날 일본 우익이 나 대는 것은 바로 맥아더 군정이 제대로 일본의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이 나아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의 국가를 만드려면 먼저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의 악행을 진심으로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악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신뢰감을 피해 당사국과 주변국에 주어야 한다.   

 

또 정중하게 워싱톤에 요청해 미군을 일본에서 내 보내고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권고 한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search/과거의 족쇄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나는 항상 전에 잠간 언급했던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이 생각이 난다.   

***************************

 

 

***************************

 

옛날 안중근의사가 동북아 공동체론을 피력한 바 있다.   한 중 일의 청년이 모두 자국어 말고 한중일중 한 개의 언어를 더 배우면 우리는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침략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이젠 언어를 안 배워도 우리가 대중 문화를 교류하는 것 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는 피가 많이 섞인 같은 조상과 뿌리를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아베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은 미국이 키운 현상이란 것을 밝힌 바가 있다. (아베의 야스쿠니행은 미국이 키운 현상)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656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안중근은 한편으로()민족주의의선구자이기도하다. 그는동양평화를이야기하고인종을뛰어넘을것을주장했다.

 

그가동양3국의구체적협력방법으로내세운제안은지금봐도놀랍다. 그는··3국이상설평화회의체구성해야한다고주장했다. 요즘으로치면유럽연합(EU) 같은다자간협의기구를구성하자는아이디어다. 그는뤼순항의개방과공동관리, 3공동은행의설립과공용화폐발행, 3군단의편성과2국어교육을통한평화군양성, 공동경제발전등을주창했다. 개별민족국가단위를뛰어넘은이런지역통합론은유럽통합에관한사상들보다30년이나앞선것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eter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7.15 07:56

    여러가지 비평중에 선배님이 올리신 이글이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이드는군요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7.15 09:53

    안중근의사의 동북아공동체론은 한중일의 미래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일찌감치 한중일의 미래 관계를 살펴보신 안중근의사의 식견이 놀랍습니다.

  3.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06 09:13

    잘 읽고 배웠습니다.

제2차 북미회담을 보며 - 다시 읽는 한국전쟁사 


1차 북미회담도 뭔가 허탈하게 끝났다는 느낌이었는데 2차 북미회당은 아예 결렬되고 말았다.


뭔가 커다란 기대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허탈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이렇게까지 갈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른다.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지금은 그래도 한국사람을 어느정도 사람 대접은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 지휘부는 한국 사람을 그저 야만인 Savage 로 생각했다. 


한국전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2018/04/23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날 )  휴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전쟁고아"나 마찬기지 신세로 전락한 나는 이 동안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휴전회담이 시작할 무렵에는 가족에 알릴 여유도 없이 영등포시장에서 잡혀 트럭에 실려 고랑포 영국 기지에서 건설 노동자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탈출하여 돌아와서는 영등포 오비 맥주공장에 차린 미군 보급 기지에서 하역 노동자로도 일했다.  (2010/06/25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전쟁이란 무엇인가 - 625 전쟁의 생존기 )


내가 전쟁 동안 겪은 미군의 대 한국인관은 그들이 한 눈을 팔면 그냥 물건이나 훔쳐가는 좀 도적떼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다.   내가 영등포 맥주공장에서 일할 때 임금으로 주는 쌀을 모자에 받게 했다.  그리고 쌀 받은 모자를 두손으로 들어 뻗게 하고는 요즘 보안검사대를 지나갈 때 보안검사관이 하듯 몸을 샅샅히 뒤졌다.   모든 노동자를 잠정적 좀도둑으로 본 것이다.  하긴 거기에는 좀도둑이 있긴 했다.  그렇다 해도 당하는 입장에서의 모멸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전쟁에 대해 유달리 관심이 많고 나중에 많은 책을 읽었다.  그건 내가 196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 Univ. of Wash.  대학서점에서 사서 읽거나 아내가 일하는 Far Eastern 학과 도서관에 있는 책을 빌려 읽으면서 공부한 것이다.   지금은 그 때 샀던 책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책 하나는  

"This kind of War" 라는 책이다. 





60년대 읽었던 한국 전쟁사



이 책에도 1951년 7월초에 시작한 휴전회담이 1953년 7월 27일 조인될 때 까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었다.   평화협정도 아니고 당장 3년 남짓 지속되었던 적대행위를 멈추자는 휴전 협정도 2년 넘게 걸렸는데 70년간의 적대행위를 종결하려는 북미 핵협상이 그렇게 쉽게 진전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북미관계를 낙관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미국이나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은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지금 북한은 엄청난 제재를 받고 있지만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1 - 1953 년은 미국의 북폭은 세계사에서 도 유례를 보기 힘든 혹독한 것이었다.  




7,8년전에 출간된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인 Bruce Cumings 가 쓴 "Korean War  A History" 라는 책을 보면 잘 기술되어 있다. 



Cumings, Bruce (2010-07-21). The Korean War: A History (Modern Library Chronicles Series Book 33) (Kindle Locations 2457-2458).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Kindle Edition.





북한은 전쟁 발발 며칠 만에 완전히 제공권을 잃었고 북한의 상공은 아무 저항 받지 않고 들락 거릴 수 있는 미국 공군의 놀이터였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시기에도 휴전 조인 몇 분 전까지 어마어마한 폭탄을 북한의 인구 밀집지역에 투하했다.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하는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24분전 까지 미국 공군은 북한에 폭탄을 투하했다. 


(At 10:00 P.M. on July 27 the air attacks finally ceased, as a B-26 dropped its radar-guided bomb load some twenty-four minutes before the armistice went into effect.)


미국은 북한 땅에 총 635,000 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32,557 톤의 네이팜 탄을 투하했다.   이 양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일본에 투하한 폭탄 503,000 톤을 능가하는 숫자이고 이 폭탄으로 일본의 60개의 도시가 평균 43% 붕괴된 것과 비교하면 그 양의 엄청남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엄청난 북폭의 결과 북한의 도시는 40에서 90% 까지 소멸되었다.    


평양 75%,  청진 65%, 함흠 80%, 흥남 85%,  사리원 95%, 신안주 100%,  원산 80%....



 The United States dropped 635,000 tons of bombs in Korea (not counting 32,557 tons of napalm), compared to 503,000 tons in the entire Pacific theater in World War II. Whereas sixty Japanese cities were destroyed to an average of 43 percent, estimates of the destruction of towns and cities in North Korea “ranged from forty to ninety percent”; at least 50 percent of eighteen out of the North’s twenty-two major cities were obliterated. A partial table looks this: Pyongyang, 75% Chongjin, 65% Hamhung, 80% Hungnam, 85% Sariwon, 95% Sinanju, 100% Wonsan, 80% 






Bruce Cumings 의 한국 전쟁사



군사목표물이 아닌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폭격을 자행한 것은 휴전회담에서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휴전협정이 2년여만에 끝난 것도 그  포화 북폭의 덕이었다고 미군 지휘부는믿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포화 북폭을 지휘한 미 공군의 "오토 웨이랜드" 장군은 24시간 계속되는 포화북폭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공포와 통제 불능상태" 가 휴전협정을 성립시킨 중요 요인이라고 자화 자찬하기도 했다. 



After the war the air force convinced many that its saturation bombing forced the Communists to conclude the war. The air force general Otto Weyland determined that “the panic and civil disorder” created in the North by round-the-clock bombing was “the most compelling factor” in reaching the armistice. 


뿐만 아니라 이 남녀 노소 무차별 북폭의 배경에는 북한사람을 야만인로 얼마던지 죽여도 된다는 인종 우월 의식이 깔려 있다.(Apart from this astonishing distortion, note the logic: they are savages, so that gives us the right to shower napalm on innocents.)



북폭이 전쟁 종결을 앞 당겼다는 사실을 이  역사학자는  부정한다.


2차 대전 때에도 그랬고 나중에 월남 전쟁에서도 보았지만 "포화 폭격"은 전쟁을 종결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다만 상상을 초월하는 무의미한 파괴만 가져 왔을 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He was wrong, just as he had been in World War II, but that did not stop the air force from repeating the same mindless and purposeless destruction in Vietnam. Saturation bombing was not conclusive in either war—just unimaginably destructive. 


Cumings, Bruce (2010-07-21). The Korean War: A History (Modern Library Chronicles Series Book 33) (Kindle Locations 2458-2463).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Kindle Edition. 


어제의 북핵 회담도 닮은 꼴이다.   북폭 대신 "제재" 로 북한 주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전략이 북핵 해결의 지랫대가 될 수 있을까?


북한이 핵을 그렇게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 한국 전쟁때 "북폭"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작년 평창 올림픽 때 북한 대표단의 단장을 맡았던 서열 2위의 김영남 국가 수반(1924년생)은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다.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이 트라우마에 벗어 날 수 있을 만한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의 반 트럼프 언론과 반 트럼프 민주당은 이런 미국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는 게 진전을 가로 막는 문제의 핵심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3.01 12:38

    들려주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 마다 피부로 느낄수있습니다
    당시 기억이 선명하신 선배님 말씀을 듣고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것 같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3.01 13:46 신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국만 안전하면 한국에 사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평화이외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핵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평화와 번영이 올 터인데 걱정입니다.

인류사(History of Humankind) - 별볼일없던 동물 하나가 신이되려한다는 이야기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한글번역판은 아직 나오지 않어서 영문책을 아마존에서 Kindle 판으로 사서 읽었다.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 Sapiens" 이란 제목이 붙은 책이다.  별볼일없던 동물 하나가 신이되려한다는 이야기"다.     이미 20개국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다. 

 

저자 유발 히라리(Yuval Noah Hilari)는 이스라엘 엘루살렘의 히브류대학 역사학교수로 나이 39세의 젊은 사람이다.   그가 쓴 역사책은 여느 역사와 달리 인류의 진화(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썼다. 

 

접근법이 특이하다.    따라서 그 내용도 특이하다.   그의 주장도 특이하다.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방법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고학 고생물학 유전생물학 생물학등 과학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Big History" ( 2013/12/11 - [일상, 단상] -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나 - <빅 히스토리> 이야기 )와 일면 상통한다.  그러나 빅히스토리와 크게 다른 점은 그 만의 과감한 주장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 주장에 대해서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의 주장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이 신종 인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원인으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 을 지목하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말로 지어낸 이야기(fiction)를 퍼뜨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을 말한다.

 

이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사후세계를 말하고 국가라든가 인권 같은 추상적 개념을 지어내어 여러집단이 협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지혁명이라고 한다.    그 결과 아직까지 알려진 인류(호모)에 속하는 다른 원시인들을 다 멸종시켰다고 한다. 

 

두째는 농경혁명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깎아 내린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 때 보다 훨씬 많이 일하고 더 힘들고 먹는것도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단지 인구가 증가했다는 것이 큰 변화인데 그 결과 에코시스템을 파괴하고 대형동물들을 멸종시켰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몇몇가지를 문화진화과정으로 기술하고 이 문화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속도보다 빨리 일어나 느리게 진화하는 다른 생물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심각한 에코불균형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서구의 과학기술혁명은 이 문명진화의 속도를 더 가속하고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을 가져왔다.  한편 기술혁명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많은 질병을 극복하고 급기야 인류가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물학적 진화까지 간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Transhumanism (2014/05/30 - [IT 와 새로운 것들] - 사람이 영원불멸해 지는 날)은 인간종(Sapien)을 넘어서 신의 세계에 진입하게 한다.

 

물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논란이 많은 이야기이지만 이제까지의 생물공학적 성과에 비추어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인류는 과연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그럴듯 해 보여도 역사는 역시 역사다.  과학은 아니기 때문에 과학을 많이 인용했다 해도 저자의 이데오로기가 많이 개입된 책이다.

 

그럼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읽은 만한 책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맘에 든다.

 

우리말 번역책은 이번 가을에 나올 것이란다.

 

 

 

 

 

책 표지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9.21 11:04

    별 볼일 없던 동물하나가 신이 되려한다는... 부제부터 흥미롭습니다. 번역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목과 등이 굳어서 다시 시작한 오카리나도 체력단련용 컴퓨트레이너도 목 견인도 손 놓은지 3주 접어 든다.

 

오늘 아침 한방병원에 침을 맞으러 나갈 땐 늦가을 초겨울에 압던 다운 겉 옷을 걸처 입고 나갔다.  바로 닷새전만 해도 네델란드에서 자주 입었던 트렉스타 여름 자킷을 걸쳤었는데 오늘 아침 기온은 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젠 가을은 이미 중반에 들어 섰다. 

 

세상 돌아 가는 것도 유쾌하지 않고 몸도 성치 않으니 기분이 침울하다.

 

블로그를 개설한지도 10년이 넘었고  이제 1200개의 포스팅을 넘어 서니 세상이 돌고 도는 것을 내 블로그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 

 

4년전 연애나 하자 ( 2010/03/25 - [일상, 단상] - 연애나 하자 ) 때와 비슷한 시절에 돌아 왔다.     그 때 그 글에서

 

정의, 정직, 정도가 사라진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굴 탓하랴 우리 모두가 지은 죄업의 대가다.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자. 이젠 우리의 세상은 아니잖은가.

 

어쩌면 그렇게도 똑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는지?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보면 열을 낼 것도 분노할 것도 분개할 것도 없다.     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어날 것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또 다 그렇게 되려니 생각하면 열을 낼 일도 분노할 것도 없다.  또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조건을 다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본다면 역사는 순방향으로 발전한다.  

 

유신독재가 선포되던 1972년 동숭도 문리대 캠퍼스는 계엄군의 탱크에 의해 교문이 막혀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신군부가 독재정권을 수립하던 1980년 봄 관악산 서울대 캠퍼스는 전두환계엄군이 점령했고 교수조차 학교에 들어 갈 수 없었다.

 

연구실에 접근할 수 없었던 1980년 봄 난 새로 지은 집의 정원 꾸미는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연구자료와 책들이 모두 연구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 설 때까지 10 여년간 난 데모하는 학생들과 진압하는 전경간의 투석전과 최루탄전이 사이에 있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맡아 가며 가르치고 연구했다.   

 

다 각자 자신들의 할 일들을 했기 때문에 역사는 순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린 이제 역사발전의 주역에서 물러 났다.    4년전 글 연애나 하자 에서 쓴 대로  남은 인생 "불쾌한 것 사절이다."   똥파리들도 싫다.  

 

20년 30년 지나고 보면 그것은 아득한 옛날이 된다.     물론 우리가 그때까지 살지 얼떨지 모르지만.

 

최근에  기대 수명을 계산하는 공식이 Time 지에 실렸다.   미국에 산다고 가장할 때 그 공식에 내 수치를 대입해 보니 91 살인가가 나왔다.   아직도 10년 남짓 더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때까지 불쾌한 것, 똥파리같은 것 부딪히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How long will I live?

 

 

    Fill in the following form then click the button labeled "Calculate Life Expectancy". 
    (Leave them "as is" if you don't know the answer.)

    I am a    who 
    I am  years old. 
    I  a seat belt during the  miles per year I travel in a car. 
    I exercise 

 

 http://time.com/3485579/when-will-i-die-life-expectancy-calculator/?xid=newsletter-brief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10.20 14:04

    안녕하시죠 선배님 저는 86.5세로 나오네요
    요즘 고국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돌아가고픈 마음이 싹 없어집니다
    그곳에 계시는 양식있는 분들은 또 얼마나 괴로우실지 상상을 해봅니다 ㅠㅠ
    희망찬 미래를 보기 위하여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10.20 14:19 신고

    안보고 안듣고 입다물고 살아야 하는데 보이고 들리고 답답합니다. 반년이 지냈는데 아직도 세월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나 - <빅 히스토리> 이야기

요즘 역사교과서 때문에 논란이 많다.    어떤 역사관을 우리의 2세에 가르쳐야 하는가 때문이다.   

 

전에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짧은 글에서 전통적인 <역사>에서는 역사는 주관적이며 역사관에 때라 그 서술이 달라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어떤  역사를 배우면서  자라났냐에 따라 우리의 의식이 달라 지게 된다.   그래서 지도자라고 불리우는 권력자는 국민을 의식화하기 위해서 교과서를 자신들의 이념에 맞게 만들어 국민들을 세뇌하려고 한다. 

 

내 경우를 돌이켜 보면 <역사>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쓰여지고 가르쳐지고 국민들을 의식화시켜왔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나는 일본의 황국사관이라 부르는 역사관에 따른 교육을 받았다.   내가 다섯살 때인 1940는은 일본 군국주의 절정이었고 일본은 그때가 바로 "기겐와 니센 록뱌꾸넨"  (기원은 2600년)해로 대대적인 축제를 벌렸던 때였다.   

 

"기겐와 니센 록뱌꾸넨" 이란 노래는 아직도 입에서 맴도는 내가 불렀던 노래다.    일본은 세상에서 유일한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을 모신 2600년의 역사를 가진 신국이요.   전쟁에서는 저 본 일이 없는 강국이라고 배웠던 것이다.

 

해방이 되어 우린 국사란 걸 배웠다.   초기의 역사교과서들은 황국사관으로 기술된 조선사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인지 그런 냄새가 많이 풍겼다.   황국사관은 조선사람들을 2등국민으로 기르기 위해서 조선사람은 게으르고 강대국에 아부하고(사대주의) 화합할 줄 모르고 서로 싸우고(당쟁) 또 서로 죽이고(사화) 하는 부정적이 역사만 골라 가르쳤다.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역사관이었다.

 

현재에도 일부 일본 우익들은 황국사관을 신봉하고 조선사람을 업신여기고 경멸한다.

 

E.H. Carr 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내린 결론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역사적사실(그가 골라 낸 역사적 사실)간의 상호작용의 연속적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끝나지 않은 대화다.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역사에 무슨 기준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는 자연과학과 달리 객관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 교과서를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하고 국가가 관여하는 것은 현 권력자가 자신들의 이념들을 전파시키려는 선동적 수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 나라만이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역사교과서가 우경화되고 있다.  우익이 권력을 잡은 필연적 결과다.   자라나는 자기 국민에게 부끄러운 과거만을 가르칠 수 없다는 논리를 내 세워 과거의 악행을  감추려는 것이다.

 

영국도  대치 수상시절 역사논쟁이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전성기로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가장 융성시대인데 영국의 어두운 면만을 강조하는 역사를 반대하여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했다.

 

사실 영국이란 나라는 두번의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니까 그렇지 그들이 저지른 죄악상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융성했다지만 그 반면 노예거래로 돈을 벌어 들이고 약소국가들을 침략하여 식민지화시켜 자원을 빼앗아 간 결과다.    아프리카는 지금도 그 많은 나라들이 직선으로 국경이 그려져 있다.   영국과 프랑스들의 식민 제국주의로 미개한 아프리카 부족들의 삶의 터전과는 무관한 지배와 통치의 편의를 위해 제 멋대로 줄을 그어 차지 했기 때문이다.  38선도 우리의 의자와 무관하게 미소양국이 그어 놓은 직선이다.

 

이렇듯 모든 나라들은 자기 국민을 세뇌시켜 자기네 지도자들의 국가관(?)이라는  의식을 심어 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여기서 각 나라간의 분쟁이 씨앗이 튼다.   우리는 일본의 우경화 역사책을 역사왜곡이라 비난하고 일본은 우리의 역사관이 반일 일색이라 그로 인해 반일주의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중학교에서 동양사와 서양사라는 과목을 배운 기억이 있다.   동양사는 주로 중국사였고 일본사는  아주 간단히 만  서술 되었었다.  아예 무시했던 것 같다. 

 

이승만정권의 이데올리기는 <반공>과 <반일>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의 부역세력<친일파>을 흡수해 <반공>을 해 온 정권이 <반일>을 강조한 것은 아이로니다.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일종의 반작용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대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자연히 반공과 반일주의자들이 되었다. 

 

전쟁(625)중이라 고등학교에서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역사를 배우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와 교양과목으로 <문화사>라는 것을 배웠다.   토인비의 역사관을 처음 배웠다.   역사를 그렇게도 보는구나하는 감동을 받았다.  

 

이렇듯 역사란 어떤 역사가가 어떤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지어내어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을 세뇌시키는 과정이라  생각해 보면 과연 가르칠 가치가 있는가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나 독일의 나치를 보더라도 나라를 패망으로 이끄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교육의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황국사관을 배울 때엔 일본이 최고의 나라로 세뇌되었고 해방 초기엔 우리나라 조선조는 사대주의와 사화와 당쟁만 만연한 그런 나라로 알았다. 

   

황국사관을 배척하고 새로운 민족사관을 주창한 역사학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난 울었다. 그 이야기를 전에 쓴 일이 있다. (나를 울렸던 국사책 )   그것은 교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문교부의 유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내가 청계천 헌 책방에서 우연히 사서 읽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의 새 역사 기술법이 대두하게 되었다.   내 환원주의 역사관과 너무 닮은 접근법이다.    내 짧은 글에서 역사는 빅뱅에서 시작해서 이미 다 결정된 것이라는 환원주의 사관을 이야기 했다.

 

이 새로운 역사 기술은 바로 그 빅뱅에서 시작하는 역사를 서술한다.   그 긴 시간의 역사와 그 때 생성된 우주가 팽창해서 오늘 우리의 존재를 가져 온 것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 긴 시간과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면 네 역사가 옳으니 내 역사가 옳으니 논쟁은 정말 하찮은 짓이란 것을 느낀다.

 

빅히스토리는 내가 지적한 역사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새 역사교육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런 역사교육의 대안으로 훌륭한 역사교육법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하는 것이다.

 

이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는 빌 게이트도 감동하여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가 이 빅 히스토리에 감동받고 훌륭한 역사의 접근법이라고 한 것은 원 창시자인 호주의 Macquarie University 교수인 David Gilbert Christian 의 강의를 듣고 나서다.  너무 열열한 팬이 되어 세계의 모든 중고생들이 이 빅 히스토리를 배웠으면 하는 열망으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빅뱅에서 시작하는 일본 기원도 아니고 단군기원도 아닌 과학적인 기원이다  137억년전의 태초의 한개의 대 폭발에서 시작한다.  인류도 없었고 지구별도 없었고 태양도 없었다.

 

우주가 생성되고 시간이 생기고 우주가 커지면서 식어 가며 원자가 생기고 중력이 생겨 별들이 탄생하고 태양도 생성되고 지구별도 생겼다.

 

원자가 생기면서 화학이 들어 오고 지구가 식어 가며 적당한 온도가 되었을 때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다.   여기서 부터는 생물학 고대 생물학 진화생물학이 들어 온다.  생명은 진화하여 인류가 생긴다.  인류는 수렵과 채집의 시기를 거쳐 농경사회를 이룩한다.    나라가 생기고 도시가 생기고 지구를 지배하게 된다.

 

산업혁명을 거치고 지식혁명을 거치며 교통과 통신의 혁명으로 국가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하게 되는 시대로 가고 있는 현대에 이른다.

 

이런 역사의 time scale 에서 또 우주의 한개의 별(태양)주위를  떠도는  떠돌이 별 지구와 그 위에서 사는 인류의 역사는 우주공간의 한 개의 먼지에 불과하고 역사 또한 한 찰라에 불과하다.

 

367억년을 1년의 스케일로 잡으면 5000년의 역사는 불과 4.3 초에 불과하다 일년 중에서 불과 4초 남짓한 것을 역사라고 길게 늘여서 가르치며 <기겐>이니 <단기>니 하면서 온갖 장난질을 쳐 온 것이다.

 

빅 히스토리의 접근법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가르친다면 권력자가 국민을 국가관이라는 자기네 입맛에 맞는 이념을 주입시킬 여지가 줄어 둔다.   아니 없을 것이다.

 

이런 접근은 우주론(cosmology)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고생물학 고고학, 진화론,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전통적), 환경학,  미래학등등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과제가 되며 현대적 근원(Origin)를 가르치게 된다.    

 

이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형인 연구 프로젝트이다.    난 여기에 뇌과학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줌의 인간들의 뇌의 작용이 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  에도 언급했지만 한 줌의 인간들이 세계사를 흔들어 놓는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벌의 수뇌부 몇이  종전 몇달전 두어번의 어전회의(일 천황의 앞에서 하는 회의)에서 속으로는 무조건항복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공감했어도 감히 그 말은 꺼내지 못해 결국 두방의 원자폭탄을 맞고 무뤂을 꿇었다는 역사를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는 왜 일본은 원폭을 피할 수 없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겐 거의 관계없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원자폭탄을 피할 수 있었으면 시기적으로 소련의 참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38선의 남북 분단도 없고 따라서 625 전쟁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Maps of  Time : Introduction to Big History 에도 미래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고 서술하며 그것이 어려운 것은 정치지도자나 권력자 몇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Here, prediction is harder, because political changes are so dependent on
the decisions and actions of individuals. (p.481)

 

그래서 우리는 이 Big History 에는 뇌과학도 들어 가야 한다고 본다.    

 

 

 

 

 

아폴로8의 우주인이 달에서 바라본 <지구별 돋이>

달에서 보면 지구는 한낱 초라한 떠돌이 별에 불과하며

 NLL 이나 독도는 보이지도 않는 선이고 바위섬이다.

<반공>을 가르치고 <반일>을 가르쳐 NLL 을 가지고 독도를 가지고

 와글 와글 떠들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인간들의 짓이다.

지구별은 영원하지도 않고 태양이 다 타 버리면 끝나는 운명이다.

그 시기보다 훨씬 먼저 자연환경의 파괴로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머지 않은 장래에 이 황량한 달덩이처럼  될지

또는 모든 인류와 모든 지구상의 생명공동체가 쾌적한 환경에서 살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이 더 걱정되지 않는가?

 

  

 

 

Maps of Time  의 표지

아래에 사이트에서 이 책을  내려 받아 pdf 리더기로 읽을 수 있다. 

http://tsu.ge/data/file_db/faculty_humanities/Christian%20-%20Maps%20of%20Time.%20An%20Introduction%20to%20Big%20History,%20I%20ed..pdf

 

 

 

 

최근에 한국어 번역판도 나와 있다.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2.16 09:33

    예전에 중국에 갔을때 그동안 신라를 당나라가 도와서(나당 연합군) 삼국통일 한 것으로 알고 있던 저에게, 아니라고 한국의 삼국통일은 고구려가 한 것이라고 (중국 역사교과서에 그렇게 써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역사의 진실성에 충격받은 적이 있습니다.
    Maps of Time - 시간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3.12.16 16:23 신고

      역사왜곡이군요.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더니 그런 식으로 한반도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그렇게 썼나 봅니다. 세계여행을 하다 보면 국가,국경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박해 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세계가 공유하는 역사를 가르쳐야 할 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 한일 문제를 생각하며

 

한 때 운동권이 후배학생의 소위 <의식화교육>의 첫단계로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궁금해서 조금 읽어봤는데 책은 매우 중립적인 한 역사학관(historiography)이었다.   역사, 사실(史實), 사학자의 편견, 과학, 도덕관, 개인과 사회, 역사의 도덕적 판단등을 논한 것이다.  종이책을 버리고 정리할 때 그 책도 사라졌기 때문에 다시 열어 볼 수 없지만 대강 그런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만을 역사적 사실로 선택하고 있다" 는 것이 바로 역사학자의 선택이란 것만 기억에 남는다.   

 

Carr의 말대로 역사는 역사를 기술하는 사가의 이미 정해진 틀에 맞추어 사실이 선택되고 자기와 같은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문헌을 포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과학과 달리 문헌연구(docmentary research)란 그런 의미에서 객관성이 없다.  

 

MB의 독도 방문과 그 후유증에 대해 굼굼해 이것 저것 검색하다 우연히 한 일본인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일본인이 본 한국인의 역사 인식의 문제점> 이었다. 

 

대강을 훒어 보건데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같지는 않고 취미로 문헌 연구를 하는 아마춰 역사가 같았다.  아마춰라고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historiography 에 기본 연구를 토대로 뭘 쓰는지 하는 의구심으로 하는 말이다.

 

한글로 쓴 것으로 미루어 한글을 아는 분 같은데 그 머릿말이 재미가 있다.

 

<이 페이지는 한 늙은 일본인과 젊은 한국인의 대화로부터 태어났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이 느낀 것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역사인식의 차이가 크고 일본측 논리를 설명하기에 예상외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리 일본측 논리를 제시해 두면 한국인들이 그에 대한 반론을 준비하는 것부터 출발할 수 있어 낮은 차원의 논의를 생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래는 늙은 일본인이 모은 한국인을 논파하기 위한 논거와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일본인을 논파하려고 하는 한국인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기를 바란다.>

 

자못 도전적인 말투다.     그런데 그 블로거가 주장하는 <한국인의 역사인식>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또 <일본인의 역사인식> 무엇을 말하는지 매우 건방진 발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내가 설정한 한국인의 역사인식>과 <내가 설정한 일본인의 역사인식>라고 말해야 맞는 말이다.   <한국인> <일본인>하는 말은 쉽게 쓸 수 있는 단어들이 아니다.  그런 포괄적 지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난 그런 논쟁따위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내 역사관은 환원주의 역사관 (reductionism)이기 때문이다.   환원주의 역사관에서는 역사 논쟁은 부질없는 짓이다.     

 

더 포괄적인 환원주의 세계관이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하나의 역사철학적 명제였는데 더 근대에 와서는 Vienna Cicrlce 이란 과학철학에서 크게 부각되었었다.       언젠가 내가 내 블로그에서 언급한 Reihenbach 같은 이는 Hegel 의 역사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환원주의를 제시했지만 최근의 뇌과학의 발전 성과를 보면  더욱 더 그 시각에 대한 설득력이 강해진다.

 

구체적으로 언급은 안했지만 최근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저서 <위대한 설계(Grand Design)>도 환원주의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다.     세계의 변화는 결국 모두 물리와 화학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고 물리와 화학의 법칙은 인과율(causality) 을 따른다.     즉 역사는 우주의 대폭발(big bang)시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관점이다.

 

한 때 이런 기계론적 우주관을 생각한 사람들은(대표적으로는 Pierre Simon de Laplace )  초기조건(intial condition)만 알면 역사를 예언할 수 있다는 극단적 주장도 했지만 고전 역학의 chaos 가 이해되고는 기계론적 세계관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에 내 블로그에 ( http://boris-satsol.tistory.com/373) 쓴 일이 있다.

 

고전역학의 chaos는 무한 정밀도의 초기조건을 제시하지 않는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한 정밀도란 인간의 인식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단순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그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거기에 더하여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는 물리법칙 자체가 확률적 해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전 Chaos와 마찬가지로 결정론적이기 보다는 확률적이란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고 causality 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확률과정 자체가 causality 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causality 라고 해서 미래가 예측된다는 것은 아니다.    환원주의란 세계의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물리와 화학의 법칙(laws of physics and chemistry) 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지 미래가 예측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전 chaos 가 말해 주듯 원리적으로는 무한 정밀도의 초기조건을 알면 뉴턴의 법칙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지 오히려 무한 정밀도란 인간의 인식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이 관점은 미래는 근원적으로(intrinsically)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역사에 도덕적 판단을 내릴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지난 815는 일본 홋카이도 여행중에 맞았다.     일본은 815를 종전이라 부른다.     우연혀 보게된 일본방송은 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을 맞기전에 전쟁을 끝낼 수 없었던가를 여러 문헌과 그와 관련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해설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 당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지만  <무조건항복>이란 말을  천황 앞 어전회의서 입밖에 낼 수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만 일찍 일본이 항복했더라면 소련의 참전이 성사되지 않았고 한국의 남북 분단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625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그 결과로 분단 한국이 받았고 받고 있는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어전회의에서 한줌의 일본 사람들이 좀더 일찍 항복선언을 제안하고 성사시켰다면 히로시마의 비극도 한국 분단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환원주의 역사관으로 보면 그 한줌의 일본사람들의 의식구조와 그들의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그 호르몬의 지배를 받은 뉴론들은 역사를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역사에 대한 도덕적 평가(moral judgement)를 할 수 없는 것이 환원주의 역사관이다.   이미 그렇게 역사는 움직에게 되어 있었고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우주의 빅뱅시 이미 정해진 코스였기 때문이다.

 

환원주의적 역사관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행태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자연현상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듯이 역사에 대해서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도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도죠히데키도 히틀러도 그저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환원주의 주장을 하면 내 견해와 반대하는 사람들은 난리를 칠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현상이다.     대개 그 정도는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내 역사관중의 하나의 믿음은 현상이던 인과율이던 역사는 진화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항상 공동선(共同善)의 방향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란 믿음이다.    도죠도 처벌을 받았고 히틀러도 매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아마춰 사가도 그래도 한 일본 청년의 Free Hugs for Korea-Japan Peace

 

를 자기 같은 사람보다 이 청년의 용감한 행동이 한일 평화에 기여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난 언젠가 내 글  passport 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에서 말한것과 같이 한일간에도 시모노세키와 부산간에 해저 터닐이 뚫리고 자동차와 기차로 패스포트 없이 오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그것이 역사의 순방향 흐름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12 10:00

    저도 선생님처럼 세계는 항상 공동선의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그 속도가 느리다고 가끔 아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정해진 것이라 어쩔수 없겠군요...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12 17:25 신고

    맞습니다. Martin Luther King 이 1963년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 의 연설을 할 때 그 누가 반세기후에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백악관에 앉아 있으리라고 상상했겠습니까?

  3.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13 04:42

    선배님의 글에서 이제까지 몰랐던 역사를 알게되었습니다
    말씀에 동감이 됩니다

  4. 박희욱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03 12:43

    저는 역사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은 정글에 들어가서 심판노릇 하자는 것과 같다고 보는데,
    이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환원주의 역사관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그런 정글이고, 아무리 역사가 공동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해도 역시 정글임에는 변함없을 것으로 봅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나보다 5,6년 선배인 문리대 철학과를 나온 J 선생을 따라 다닌 일이 있다.

 

내가 직접 배운 일은 없지만 철학과를 나오고 명문고교 독일어 선생님을 하시기 때문에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따라 다닌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50년대엔 석박사과정은 소위 "구제(舊制)" 로 강의 같은 것은 없고 논문만 써서 통과하면 학위를 주던 시대였다.

 

대개 박사는 교수급이 논문을 써서 학위를 땄고 석사는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고교선생을 하던지 조교를 하던가 하면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땄다. 

 

J선생은 한동안 우리집에서 하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알게 되었고 그 후에도 가끔씩 만났다.    그 때 J 선생은 <헤겔>에 대해서 논문을 썼다.   헤겔은 방대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을 주제로 하여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논문이 거의 완성될 쯤해서 초고를 나에게 읽어 봐달라고 했다.

 

물리학과 학부생인 나에게 왜 자기의 철학 석사학위 논문을 읽어 달라고 했는가하면 당시 한국의 새로 상륙한 과학철학의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내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당시 철학과엔 박종홍,  고형곤 두 한국철학계의 거두가 계셨고  김준섭교수가 과학철학을 강의했다.    거두 철학교수는 별로 강의를 하지 안했는데  박종홍 교수가 강의를 한다하면 교실이 메어질 정도로 학생이 모였다. 문리대 명강으로 소문난 몇개의 강의중의 하나였다.        그 때 그 분이 지은 철학개론이란 책은 대학생사이엔 필독서였다.   

 

칸트 헤겔 등의 독일 관념철학이 주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부분에는  키에르케골 사르틀 등 실존철학이야기도 나왔고 새로 대두하는 과학철학 이야기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기 때문에 J 선생과는 과학철학 얘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김준섭교수의 과학철학강의를 청강하기도 했다.  김준섭교수는 강의를 많이(상대적으로) 했는데 과학철학을 공부하면서 배우려는 뜻에서 강의에 비교적 열성이었던 같다.    내가 교수생활을 해서 느낀 것은 가르치는 것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관심이 되었던 비선형동력학에 들어 가게 된것도 대학원 특강으로 "비선형 동력학" 강의를 두학기를 하면서 배운 것이고 강의 준비를 하다 보면 새로운 연구 트렌드를 배울 수 있고 연구 테마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준섭교수의 과학철학 강의는 그분이 물리학의 배경이 없으니 물리학과 학부생의 수준의 물리도 잘 알지 못했다.          과학철학을 창시한 비엔나 학파 (또는 Berlin Circle) 의 대부분은 물리학을 공부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수식을 쓰지 않았지만 내용은 고급 물리내용이 들어 있었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등이 나오는데 그분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과학철학의 창시자중의 하나인 Hans Reichenbach 를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그의 대표작 "The Rise of Scientific Philosophy"  가 1951년에 출판되었는데 한국에서 구할 수 없었다.  

 

50년대에 한국 철학계에서 이 과학철학이 일종의 새 트랜드로 들어 온 것 같은데 당시 과학철학이 세계 철학계에 미친 impact 가 대단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이 책을 구한 것은 60년초 미국 유학생활을 할 때에  학교 책방에서 paperback 으로 나온 것을 발견하고서다.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에 대한 애착이 꽤 있는 것 같다.

 

Reichenback 는 그 책 서두에 Hegel 을 "깠"다.   Reichenbach는 헤겔같은 철학을 사변철학(speculative philosophy)의 대표적인 보기로 들고 사유만을 통해서 어떤 현상(역사까지 포함)을 설명하는 철학적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볼가능하다는 것이다.   

 

변증법이란 것도 이미 일어난 사건에 꿰맞추는데 그럴듯 해 보이지만 예측능력이 있는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칙이 법칙이 되려면 뉴턴의 운동의 법칙처럼 예측능력(predictive power)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 타러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Compoutrainer 만 타다 보니 블로그에 쓸 건데기가 없어 이런 옛날 추억을 끄적여 본다.  

 

 

 

60년대에 샀던 이 책이 아직 내 책꽂이에 남아 있다.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포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12.16 15:08

    자전거 얘기와 달리,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귀중한 과거에 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2. 라파엘9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1.08 22:20 신고

    공감가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나를 울렸던 국사책

1960년 미국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국사 공부를 할 때였다.   당시엔 유학시험이라는 것이 있어 영어(유학해당국 언어)와 국사과목을 시험 뵈었다.

그 때 내가 시험준비를 위해 읽은 국사책은 손진태교수가 쓴 국사책이었다.  그 책의 서문이 나를 울렸던 것이다.  

그 교과서는 625이전에 저술되었던 책일 것이다.   그는 625 당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내고 있다 납북되었다고 인터넷 문서에 나와 있다.  

 

그의 역사관은 민족주의 사관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직후 한참 혼란한 시기에 떠돌던 말이 있다.

 

련놈에 지 말고 국놈 믿지 말아. 본놈 어 선다.

 

좌우 대립으로 한참 요란하게 싸우고 미소 공동위원회가 우리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기 위해 서울에서 수차례 열렸으나 결국 결렬되었고  남북이 따로 정부를 수립하고 분단고착화의 시초가 되었다.

 

얼마 안 있어 625 전쟁이 터졌고 미군이 주류를 이루는 유엔군이 참전했고 궁지에 몰린 인민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균형을 이뤄 전쟁을 625 이전이나 마찬가지의 상태로 돌려 놓고 말았다.  

 

38선 대신 휴전선이 남북을 갈라 놓았을 뿐이다.   그러니 그 비극전 전쟁은 왜 일어나야 했던가?

 

한국군과 인민군의 희생자 말고도 100만이 넘는 중공군이 죽고 수십만의 미군 사상자를 낸 전쟁은 아무 대가도 없이 원상복구로 돌아 온 것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의 이 엄청난 파괴와 인명 피해가 그 아무 대가도 변화도 없이 원상으로 돌아 오는데 바쳐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겪고 난 다음 난 무엇을 보고 생각했겠는가!

 

그 당시 우린 아무 힘도 없이 강대국의 논리에 휘말려 분단, 전쟁, 살상, 파괴,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손진태 교수는 그 국사책 머릿글에 그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의 장래는 우리의 힘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강대국도 결코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도 없고 해 주지도 않는다.  그들을 믿고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감동적인 문장으로 써 내려 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분단의 시초도 우리의 의지와 희망이나 사전지식도 없이 미국이 소련의 참전을 이끌어 내기 위해 그 보상으로 38선 이북의 진주권을 제공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625전쟁도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에치슨이 공산 주의 팽창의 최종 방어선은 한반도를 제외한 일본 열도로 한다는 이른 바 에치슨 선언을 했기 때문에 김일성의 오판을 불러 왔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정착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민족의 의지나 희망과는 무관한 강대국의 세계전략의 한 구상으로 이뤄졌던 것이다.

 

미국을 혈맹이니 영원한 우방이니 하고 떠 받드는 무리들이 있다.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내가 미국 유학을  했고 미국을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서 좀 더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무리들의 생각이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인지 한심하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든다.  

 

미국이란 나라를 믿을 수 있는 나라인가?   신뢰할 수 있는 나라인가?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흔쾌하게 Yes 라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도 양심적인 국민이 있고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지식인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행정부에 들어 오면 결국 기성체재(establishment)에 합류하게 되어 있다.

 

미국의 기성체재란 결국 믿을 수도 의존할 수도 없는 매우 부도덕한 세력이다.   그들이 지난 수십년간 해 온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비에트남 전쟁에서 북폭의 구실을 얻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국민을 속였고 무고한 비에트남 어린이들에게 가장 희생이  큰 네이팜 탄들을 퍼 부었다.

 

가깝게는 버드 상원의원이 동료 후배 의원들에게 그렇게 호소했건만 그 아무도 그에 동조하지 않고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부시의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무엇이었던가!

 

 대량 살상무기(WMD)를 제거하고 후세인을 몰아 내어 민주화를 이룬다고 했다.   대량살상무기는 처음부터 없었고 이라크의 민주화도 요원하고 평화롭게 살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만 고조시켜 놓았고 빼도 박도 못하는 수렁에 빠지게 하고 말았다.

 

지난 주(June 28 2010) 타임지는 625 60 주년을 맞아 또 다시 급냉하는 한반도의 사태를 진단하는 Bill Powell 의 2 페이지 기사를 냈다.  <한국전쟁 60 주년 그러나 적대관계는 지속되고 있다(60 years and counting)>라는 제목이었다.

 

그 기사에서 그랬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쪽의 확성기 심리전 재개와 관련하여 북한은 <서울 불바다>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서울 불바다> 하면 세계사람들이 웃는다.   서울 사람들 조차 웃어 넘긴다.  그런데 사실은 크린턴 행정부 때 북한의 핵시설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 공격계획을 거의 실행에 옮기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원문

 

On June 11, in response to those plans, North Korea threatened "an all-out military strike to destroy the loudspeakers if they are used," turning Seoul into a "sea of flame." On June 15, North Korea's U.N. envoy said that Pyongyang would respond with "military forces" if the U.N. condemned his country's role in the Cheonan's destruction. In many parts of the world, such bellicosity has given North Korea an image of almost comic craziness. Even in Seoul — hip, prosperous, technologically savvy — it's easy to laugh off the North's incessant raving. But the fact is, the last time the "sea of flame" rhetoric was used the Clinton Administration was closer than most realize to launching a pre-emptive strike to take out the North's nuclear facilities.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나 사전 지식 없이 북한과 충분히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이 북한에 선제공격을 하면 한반도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라크 전쟁 전야에 상원에서 행한 버드 연설에 그런 말이 있다.  이젠 이 위대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그런 위험한 나라에 한국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사람들....  

 

전작권 환수시기를 연기해 달라고 애걸하는 외교를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기 보다 슬픈 생각이 든다.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