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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무너지는 소리

 

이 번 조국 사태를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었다.

 

문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고 나서 백만 건이 넘는 언론 보도가  나왔고 지금도 계속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른바 재래식 언론이라고 부르는 신문(종이, 온라인) TV(공중파, 종편, 케이블), 공중파 라디오 등 모든 재래식 매체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제외하면 한결같이 조국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 기사를 쏟아 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달 29일과 이 달 5일의 서초동 촛불 집회를 보면서 거기에 쏟아져 나온 참가자들은 어디에서  친 조국 정보를 얻어서  "조국 수호"를  외치는가?    어떻게 주최 측도 예상 못한 인원이 운집했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유시민의 알라뷰를 보게 되었다.    물론 라이브는 아니고 유튜브로 보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뉴스였다.    이 KBS 의 법조팀 팀장인지 반장인지 하는 자가 조국 장관 부인 정아무개 교수의 재산관리사였던 증권회사 직원을 지난달 9월 초에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KBS를 위해 인터뷰한 일이 있었는데 인터뷰 내용은 보도가 되지 않고 오히려 KBS에 인터뷰한 내용을 검찰에 알려 준 사실을 이 직원이 곧바로 검찰에 불려 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KBS는 다음날 보도했다지만 이 것은 인터뷰내용이 아니라 검찰이 흘린 뉴스에 이 직원이 인터뷰한 내용을 일부 문맥 밖에서 뽑아 원래 이 직원의 인터뷰한 내용과 반대되는 짧은 두 꼭지 기사를 방영한 일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아래의 KBS 기사를 보면 유시민 작가에 이 증권사 직원이 털어놓은 내용과 정반대 이야기를 KBS가 인터뷰 기사랍시고 낸 것들이다.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4281650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4281651  

 

그러니까 이제 까지 KBS 와 같은 재래 언론은 검찰과 유착 관계로 검찰이 흘려준 내용을 검찰의 의도대로 보도하고 검찰은 그런 보도를 기대해서 언론에 흘리고 하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KBS 라면 그래도 국민에게서 강제로 시청료 받아 가면서 운영하는 공영방송사인데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 다른 언론사는 입에 올릴 필요 조차 없는 것이다.

 

기존 언론사들이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언론이 이렇게 까지 부패하고 타락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사실 나는 어떤 공중파 방송사의 뉴스도 보지 않는다.   

 

그래도 지난봄까지는 JTBC의 뉴스룸은 열심히 보았지만 손석희가 미세먼지에 대한 가짜 뉴스를 천연덕스레 방송하는 것을 보고 열을 받아 그 "뉴스룸"까지 끊어 버렸다.    이 가짜 뉴스는 환경 관련 시민운동을 하는 어느 교수가 여러 번 항의를 했다는데도 고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

처음부터 "미세먼지 -> 중국발"은 없었다.  손석희 같은 언론인까지 가세해서 지어낸 가짜 뉴스였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716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바람이 불면 미세먼지를 쓸어 버린다고 손석희는 말하는데 틀린 말이다.   바람이 세면 난류를 일으켜 빨리 mixing을 한다.  주변의 깨끗한 공기와 빨리 혼합되어 희석시키는 것이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717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손석희 같은 영향력이 지대한 언론인이 "내일은 서풍이 불어 중국발 미세먼지가 유입되어 한 반도의 미세먼지 농도는 오늘보다 더 나빠질 전망입니다."  같은 멘트를 아주 대수롭지 않게 한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715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그러니까 이 번 "조국 사태" 때 JTBC와 손 석희 앵커가 어떤 태도를 취했던 별 관심이 없었다.    아예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인터넷 연구를 해서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았다.  

 

21 세기 인터넷과 고속 통신망의 발전이 뉴스를 생산하고 뉴스를 소비하는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술 문명이 진화해서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기존 언론은 이 새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20세기의 권위주의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우쭐대다 보니 뉴스 소비자가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50년대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만 해도 종이 신문의 권위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높았다.    신문뿐 아니라 활자화된 정보는 그 권위가 대단했고 그런 데에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런 환경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활자화된 정보라고 특별히 존경 받는 시대는 가 버린 것이다.     

 

요즘은 책도 뉴스도 모두 bit 화된 것이다.   동영상, 음성녹음, 책이 모두 디지타이즈 , 즉 bit 화 된 것이다.    이 빗트화는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이제까지는 책을 쓰는 사람 신문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모든 사람이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플래시 강좌를 쓸 때  첫 강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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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샛솔입니다.    세상에는 뭘 가르쳐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 덕택에 인터넷은 살아 있는 백과사전입니다. 저도 항상 이 웹 페이지를 검색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새로운 소식에 접하고 있습니다.   저도 또한 그동안 배운 것만큼 되돌려 주려고 애써 왔습니다.

http://phya.snu.ac.kr/~kclee/lects/lect01/lect01.htm

*******************************

 

라고 썼다. 

 

세상에는 뭘 가르쳐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에 우러러보던 기자 들 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더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교수, 박사, 의사, 변호사, 소설가, 화가, 음악가....

 

How Social Media Has Changed How We Consume News

 

을 보면 요즘  세계의 인터넷 사용자 24억 중 64.5%가 신문이나 TV 따위 전통적 매체를  통해서 뉴스를 접하기보단 SNS 매체를 통해서 뉴스를 접한다고 한다. 

 

Social media has become the main source of news online with more than 2.4 billion internet users, nearly 64.5 percent receive breaking news from Facebook, Twitter, YouTube, Snapchat and Instagram instead of traditional media.

 

미국 성인의 경우 아래와 같은 SNS 매체가 새 뉴스를 접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네티즌의 새 뉴스 통로

 

 

https://www.journalism.org/2018/09/10/news-use-across-social-media-platforms-2018/ 


https://www.forbes.com/sites/nicolemartin1/2018/11/30/how-social-media-has-changed-how-we-consume-news/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 더 심하다.     

 

일반 시민들도 전에는 신문 잡지 등에서만 제공하던 많은 정보를 생산해서 무료로 다른 시민에게 줄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전문적 기자가 취재하여 전달하던 정보도 일반 시민이 인터넷 상으로 취재하여 뉴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재래식 대중 매체의 기자들은 이들 SNS 매체의 뉴스와 경쟁할 수 밖에 없고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는 취재원을 발굴하여 뭔가 다른 뉴스를 생산하여만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이 번 KBS 사건과 같이 검찰 출입기자가 안면 있는 검사가 흘리는 비공식 정보를 받아 쓰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비공식 정보원의 정보는 찌라시 아니면 가십 수준이고 그것들은 거의 대부분 가짜 뉴스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전통적 뉴스매체의 신뢰는 자꾸 떨어지고 이 전통적 뉴스매체는 자꾸 뉴스 소비자의 외면을 당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은 Reuter 연구소와 Oxford 대학이 공동 연구한  Digital News Report에서  한국의 언론의 신뢰도가 40개국 가까운 세계 나라에서  3년 연속 꼴찌를 하고 있다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로이터 연구소와 옥스포드 대학 공동 연구 "디지털 뉴스 리포트" 지난 3년 표지 

 

 

2017 년 언론신뢰도 한국 꼴찌

 

2018년도 언론신뢰도 한국 꼴찌

 

2019년도 한국 언론 신뢰도 한국 꼴찌  이와 같이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3년 연속 꼴찌를 하고 있다.  

 

 

위의 도표에서 프랑스의 언론의 신뢰도가 전년도 대비 11% 급락하여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한 원인을 분석 제공하고 있다.   즉 노랑조끼 항의 데모와 같은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2020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이 번 조국 사태와 같은 검찰발 가짜 뉴스로 더욱 떨어져 한 자릿수 %가 될지 모른다.

 

이 리포트에는 연령별 분포도 나와 있는 데 젊은 층일수록 언론을 신뢰하는 % 가 낮게 나와 있다.

 

이 리포트에서 본 또 하나 주목할 통계는  한국 인터넷 이용자 중에서 팟캐스트 이용자가 세계 일등이라는 것이다. 

 

 

세계 20개국 팟캣 이용자 분포. 한국이 53%로 2위와 압도적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난 한국의 뉴스의 팟 캐스트가 어떤 것이 있나 검색해 봤다.

 

아래에 한국의 시사(뉴스) 팟캐스트 상위 랭킹 몇개를 뽑아 놓은 것을 클립해 왔다. 

 

 

시사(뉴스)를 제공하는 한국 팟캣의 순위.  이들 팟캣은 압도적으로 친 정부(문재인정부) 성향이다.

 

이처럼 전통적 매체들이 뉴스 소비자의 눈높이 맞추지 못하고 극히 소수의 기득권 세력(언론 사주,  대 광고주, 기타 언론과 이익관계를 공유하는 권력집단)만을 대변하다 보면 그들 자신도 기득권의 일부가 된다.    결국 일반 대중은 그 언론에 등을 돌리게 되고 비주류 언론인 팟 캐스트 같은 곳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알라뷰를 LG 벽지 TV의 인터넷 youtube로  봤다.

 

오늘날 모든 스마트 TV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고 Utube는 메뉴 안에 있다.     TV는 음악프로나 드라마나 보고 뉴스는 TV 인터넷으로 팟캣을 보는 세상이 온 것이다. 

 

종이신문이나 공중파밖에 볼 수 없는 노인들만 조중동이나 KBS 같은 전통적 매체의 가짜 뉴스에 세뇌되는 것이다.   그래서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의 연령층이 다른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전통 매체밖에 접할 수 없는 노년층마저 사라지면 한국 언론의 운명은 폭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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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upri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0.10 23:48

    맞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면 언론의 문제는 언론 자체가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 자초한면이 있습니다.
    뉴스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눈은 한참 높아져 있는데,
    언론은 이전 방식 그대로 생산하고 있으니..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는 분들도 계신데.
    기존의 관성대로 조직과 회사가 움직이니... 결국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보리스님 코니님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겨울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 _ _)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10.11 08:13 신고

      응원 감사합니다. 독립된 언론으로 살아 남으려면 많는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2.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0.11 00:37

    Kbs에 근무했던 한사람으로 자괴감을 금할수없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10.11 08:16 신고

      감사합니다. 언론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뉴스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뉴스를 생산하지 못하니 뉴스가 소비자에 외면 당하고 기자가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인도 식당 - 압구정 New Delhi

 

 

Amsterdam에서 자주 갔던 인도 식당  Saravanaa Bhavan 생각이 간절해서 서울에서 자전거로 갈 만한 인도 식당을 검색하니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압구정에 맛집으로 이름 난 식당 하나를 찾았다.   

 

 

"뉴 델리" 라는 식당인데 거리는 지도상으로는 그렇게 멀지 않다.   그것은 일반 도로로 간다면 그렇다.   

 

그러나  얼마전  Shake Shack  에 갔다 돌아오는 길은 시내의 일반 도로(자전거 도로 표시가 있는 인도)를 따라 집에 왔는데 거리로는 가깝다고 하나 도로도 험악하고 온갖 장애물이 가로 놓여 있고 신호등이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던 생각이 났다.  

 

우리는 자전거 전용 도로로 갈 수 있는  적당한 먹방을 하고 싶은 것이다.      "뉴 델리"는 거기에 가장 알 맞는 위치에 있다.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Acacia 갈 때와 같이 잠원 토끼 굴을 지나  압구정로가 나와 동진하여 압구정 역 버스 정류장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뉴 델리" 식당이 나온다. 

 

 

잠원 토끼굴을 지나 압구정역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길을 건너 골목으로 진입하면 오른 쪽 모서리 건물 지하에 New Delhi 인도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은 오른 쪽으로 꺾어 들어 한 50 미터 가면 나온다. 

 

 

 

가운데 왼쪽으로 지하에 있는 New Delhi 식당으로 내려 가는 계단 입구가 나온다. 

 

 

 

한강 라이딩 

 

 

 


https://youtu.be/yhh0v_0GV-Y

 

기온이 조급 낮고 안개가 없으면 미세먼지는 거의 쌓이지 않는다.   한강 라이딩은 기분 좋은 잔타였다. 

 

 

우리 같이 3륜을 두 대씩을 길 옆 아무 곳에나  주륜 하기는 아무래도 불안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공간 한 차 자리를 차지하고 두대를 주차했다.    

 

 

 

https://youtu.be/-kfWbseRLxw

 

압구정로를 건너 골목길에 들어 선 다음 주차장까지를 블랙박스 동영상에서 클립 해서 위에 올렸다.

 

 

인도풍으로 꾸민 실내 장식

 

 

우리가 갔을 땐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으나 우리가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계속 손님이 들어 왔다.

 

 

 

인도 맥주라기에 한 병 주문했다.   330ml 에 7000원 받는다.  맛은? 

 

 

안주로 내온 "나쵸" 비슷한 바삭한 전병인데 맛은 나쵸완 달랐다.

 

 

코니가 시킨 망고 라씨.   Saravanaa Bhavan  것 보다는 덜 달지만 그냥 요구르트 맛이다.   

 

 

우리가 시킨 왕새우 카레와 리코타 치즈 야채 카레 암스테르담 Saravanaa Bhavan 식당과 달리 서울의 인도 식당에는 해물, 치킨 따위가 있다. 

 

버터난과 인도 쌀 밥을 하나씩 시켜 나눠 먹었다.

 

 

전화 번호

 

 

자전거 먹방 거리 하나 발견했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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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정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0.07 02:48

    저는 45년전 뉴욕 맨해튼에서 일할때 아랫층 인도 식당에서 올라오는 카레 냄새에 속이 미싯거렸는데 지난번 캐나다 여행에서 히말라야식 카레를 먹었는데 너무 단백하고 맛있었습니다
    이집 맛은 어떠셨나요 ...

한강 라이딩 

 

2019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귀국해서 처음 자전거를 탔다.     

 

이젠 2륜은 접고 3륜만 타기로 했다.   

 

집에서 반포대교까지 왕복했다.   26 km 되는 거리다.

 

같은 곳에서 4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떠나지 않고 근방에 사는 토박이 이웃은 가끔 만난다.     이젠 다 노인들이지만 우리가 가장 나이가 많다.     돌아 와서 3륜을 차고에서 갈무리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노부인이 아직도 자전거를 타냐고 놀랜다.     서울대 사대를 나오고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오래 하다 마지막에는 교장까지 하고 퇴임한 분인데 나이는 우리 보다 7,8년 적을 것이다.    가까운 롯데 백화점에 갔다 온다는 데 지팡이 차림이다. 

 

우리도 3륜이니까 안심하고 탄다.

 

 

반포대교 남단에서 남산 타워를 보며

 

 

 

 

 

오는 길은 코니가 앞장 섰다.   동호대교에서 성수대교 구간

https://youtu.be/lUy4SQtKtWc

 

오랜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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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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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7 20:47

    오랫만에 라이딩 하셨군요. 날씨도 좋으니 종종 라이딩 즐기십시요. 주행 동영상에서 젊은이들을 추월하시는 모습을 보니 속도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ㅎ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9.28 10:29 신고

      서울 시내 자전거 도로 속도 규정 (아마도 한국 자전거도로 전체일 것입니다.) 은 시속 20km 제한이기 때문에 그 속도로 달립니다. 추월 할 때만 25, 26 km 까지 올리지만 . 감사합니다.

  2. 엘리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8 03:10

    안녕하세요~ ㅎㅎ 이제 아침저녁으론 꽤 선선해져서 자전거 타기 딱 좋은 계절이 된 것 같아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안전라이딩 하시길 바랄게요. 저도 이번 주말은 자전거 꺼내 먼지 닦고 공원에라도 나가봐야겠어요. ^^;

정원 자동물주기 2019 

 

정원 자동물주기 2019 를 왜  이 가을의 중턱인 이제 쓰느냐 의아해 할 것이다.   

 

사실은 지난 여름 우리가 암스테르담 여행중에 타이머의 오작동으로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여름 마다 우리가 집을 비우고 있을 때 1주일에 한 번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는 것으로 계약을 했다.  보통 때 못 했던 여러 일들 대청소와 정원 전지등을 해 주기로 했는데 일이 끝나고 돌아 갈 때 쯤 되면 항상 그 날 한 일을 카톡으로 보고하곤 했다.

 

여행 2 주전에 아래 집 며느리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알린다고 하면서 옥상의 수도가 터져서 물 난리가 났다고 보고를 했다.   그 때문에 옥상 수도가 잠겨 있어 정원에 물을 못 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걱정만 할 테니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보고는 한다는 것이다.

 

관수 타이머가 고장 났을 거라고는 생각 못하고 혹시나 옥상 바닥을 청소할 때 쓰는 스프레이 건(spray gun)을 수도 꼭지에서 잠그지 않고 gun 의 자동 잠김에만 의존하고 갔다가 밤에 수압이 올라가 그게 풀려서 물 난리가 난 게 아닌가 의심했다.   

 

밤에 물이 넘쳐 옥상 빗물 배수관으로 퀄퀄 흘러 길바닥을 가득 적시고 빗물 맨홀로 빠지는 것을 보고 새벽 2시경에 순찰하던 경찰이 연락을해서 며느리가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2018년 사서 쓰다가 올(2019)에 계속 쓰 던 타이머  

 

정원 자동물주기 2018에서

 

여행에서 돌아 와 보니 정원 식물들이 많이 시들거나 나무는 잎이 많이 죽거니 변색되어 있었다.     여기 저기 테스트 해 보니 물 난리가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목요일 마다 왔는데 물난리는 토요일밤 새벽 2시에 발견되었다.   그 시간에 순찰하던 경찰관이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도우미가 왔던 목요일 새벽 자동 관수(물주기)까지는 이상이 없었고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 5시 경에 시작한 관수가 그 날 하루를 다 넘기고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옥상 전체에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었던 물은 배수구로 흘러 내려 길 바닥으로 넘쳐 흘렀던 것이다.

 

즉 타이머의 개폐 기능이 고장이 나서 열리기는 하는데 닫히지 않았다.   수도 꼭지에서 물을 잠그면 닫히는데 자동으로는 닫히지 않는다.   아마도 타이머의 스윗치는 "닫힘"에 가 있지만 수압이 높아 닫히지 못하다 밖에서 물을 잠그면 닫히고 다시 타이머 밖에서 꼭지를 열어도 닫힌 상태라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귀국후 어제까지는 내가 새벽에 나가 수도 꼭지를 잠갔다 열곤 해서 물을 주었다.    이 번 겨울 까지는 그렇게 지내려 했는데 하루라도 집을 비우게 되면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어제 새 타이머를 샀다.

 

이 것은 기계식이 셋팅이 아니라 전자식 셋팅 방식이다.  미국에서 사 온  Melnor 제품과 비슷하다.

 

 

 

2017년에 썼던 타이머.  프로그램하기도 불편하고 덩치도 너무 크다.

 

 

어제 새로 산 이 타이머는 "전자식 관수 타이머 (모델 명 MI-10170)으로 중국산이다.  영어로는 "Irrigation Timer (model MI-1017)"이라고 쓰여 있다.     G마켓에서 34000원 정도 주고 샀다.

 

 

 

먼저 시간을 맞추고 요일을 맞춘다. 보통 전자 시계 세팅법과 같다. 

 

 

프로그램은 비교적 쉽다.  제일 왼 쪽의 두 상하 버튼으로 올림 내림을 해서 숫자를 맞춘다.  제일 왼쪽 숫자는 "1" 이면 매일 "2"이면 이틀에 한 번 , "3"이면 사흘에 한 번씩 관수한 다.   두 째는 관수 시작 시간   셋 째는 관수 량(시간으로).  위의 셋팅은 매일 6시 06분에 시작해서 15분 간 물 주고 6시 21분에 끝나게 프로그램 되어 있다. 

 

 

 

크기도 작아서 얼마 전까지 썼던 타이머보다 작다.   위 사진은 방수 뚜껑을 덮어서 디스플레이 화면이 흐리게 보인다. 디스플레이 아래의(위 사진의 오른 쪽 두 돌출부는 battery case 를 열 때 두 손가락으로 가운데로 모아 당기는 일종의 손잡이  

 

먼저 쓰던 타이머의 고장 원인은 수압이 너무 높아서 생긴 것 같아 밖의 수도꼭지 스위치를 많이 잠가 놓아 수압을 낮추어 놓았다.    이 타이머도 수압을 4 bar 또는 15 psi 이내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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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7 02:10

    다행입니다
    큰일날뻔 하셨네요

 

 

지금 중요한 것은 검찰개혁이다!

1. 법무부 장관 취임과 관계된 마녀사냥이 한 달 보름 동안 삼천리강산을 뒤흔들고 있다. 검찰이 불쏘시개를 제공하고 언론이 기름을 붓고 적폐야당이 그 불길 앞에서 칼춤을 추는 형국이다. 촛불혁명의 위임 아래 출범한 개혁정부의 미래를 좌초시키려는, 이른바 수구기득권 세력의 총동원령이 개시된 것이다.

여름철 나무가 그러하듯이 곁가지가 무성하면 몸통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소란스럽다 보니, 그 와중에 정작 나라의 명운이 걸린 핵심적 사안은 수면 아래 숨어버리는 본말전도가 전개되고 있다.

과연 현재 사태의 핵심은 <조국의 가족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커튼을 젖히면 전혀 다른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성패를 결정지을 핵심적 사안은 바로 <검찰문제>인 것이다.

2. 대한민국 검찰을 중심으로 구축된 무소불위의 사법권력 시스템, 그것은 흔히 신성가족(神聖家族)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세상 누구도 자기들의 기득권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 가공할 시스템의 핵심에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자리 잡고 있다.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공소취소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자체수사력 보유, 체포구속 장소 감찰권, 체포구속 피의자 석방지휘권, 압수물 처분 시 지휘권.... 언뜻 떠올려 봐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사건 발생부터 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사절차를 독점한 채 칼을 휘두르는 세계 유일의 절대 권력집단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학자 존 액튼의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검찰이 불을 보듯 훤한 사법 정의를 외면하고 군사독재를 비롯한 역대 권위주의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 노릇을 한 과거 전력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왜곡된 분배구조와 노동현실, 그것과 쌍을 이루는 이러한 기형적 권력시스템을 허물지 않고서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 참다운 검찰개혁 없이는 나라의 참다운 개혁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그 같이 엄중한 역사적 과업의 도구로 선택된 것이다. 그가 모든 굴레를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스스로와 온 가족의 삶이 망가지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 자신이 그 운명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결심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3. 그러므로 지금 중요한 것은 <검찰개혁>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검찰과 고위 공직자의 권력 남용을 저지하는 핵심 장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주목하는 바이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 지금 이보다 더 시급하고 결정적인 과제는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한 목소리로 다음을 요구한다.

하나, 검찰의 독점 권력을 혁파하기 위한 강력한 내부 개혁을 더욱 속도감 있게 진행하라!

하나, 국회와 정부는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계류 중인 <공수처 설치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키고 집행하라!

하나, 검찰의 수사, 기소, 영장청구권 독점을 개선하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을 한시바삐 실행하라!

-시급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국내 및 해외 교수·연구자 일동-

 

http://omn.kr/1l0jj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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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은 이 번이 6번째가 되다 보니 여행이 끝나도 전과 같은 아련한 느낌이 많이 줄었다.    전에는 늘 이 컴 앞에 다시 앉아 있으면 꿈을 꾸고 깨어 난 느낌이 었는데 이젠 마치 가까운 국내 여행에서 돌아 온 느낌이다.    다만 나이 탓인지 심한 시차를 느껴 잠들기가 더 힘 들어졌다.

 

2륜자전거와 결별이라는 것이 아쉽다.   종착역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 느낌일까?  

 

내년에 다시 간다면 여행 짐이 훨씬 가벼워 질 것이다.   일반 여행가방 이외에 자전거 가방까지 챙겨 다니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 번에 올 때에도 삼성동 공항 터미널에서 두 대의 택시에 각기 갈라 타고 집에 왔다. 

 

 

 

인천 공항 착륙 20 여분 전 창밖으로 본 운해 

 

 

 

이 번 여름 암스테르담 여행은 그냥 더위 피한 것 이외엔 별로 한 일이 없다.   다행이 1 주전 네이버 브럼톤 카페의 한 분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던 것이 조금은 지루했던 일상에서의 일탈이었다.   

 

첫 번 째 대만 여행 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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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지 열흘 되던 1월 24일 토요일에 코니가 다쳤고 비록 걸어 다니긴 했어도 계단을 오르내리긴 아파했기 때문에 조금은 우울했다.       2주 걸려 실밥을 뽑을 때 까지  날씨도 개일 때가 별로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구원병으로 나타난 사람이 Sunny다.      대만에 7 년깨라는 써니 중정기념관에서 만났다.    착할 선(善)에서 따온 닉이라 해도 그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개인 날을 선사해 준 귀인이었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293?category=49190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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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새로 짓는 호텔을 예약해 놨으니 조금은 덜 지루할 것이다.

 

마지막 암스테르담 먹방을 정리해 본다. 

 

이 번 여름 우리가 가장 자주 갔던 식당은 한식당 "한국관" (암스테르담 2019 제 2일 - 다시 찾은 맛집 "한국관" 과 인도 식당  Saravanaa Bhavan 였다.   

 

떠나기 바로 전 날도  Saravanaa Bhavan에 가서 전에 먹어 본 "도사"를 주문해 먹었다.   인도인은 기본 적으로 맨 손으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음식들이 모두 손으로 먹어야 편하게 되어 있다.  이 점이 젓 가락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금 불 편하다면 불편할 까.   물론 홀 귀퉁이에 손 씻는 세면대가 있어 식사전 식사후에 가서 손을 씻고 오곤 했다.

 

 

 

 

인도식당에 가면 코니는 항상 이 "망고 라씨"를 시켰고 난 생맥주를 한 잔 했다.

 

 

야채 롤,   이 식당은 채식 식당이기 때문에 음식 내용물에 대해선 묻지 않아도 된다. 

 

 

양파 도사  쌀 렌틸콩 따위로 얇게 부친 껍데기 안에 기름에 볶은 양파가 가득 들어 있다. 양파를 좋아 하는 난 두 번이나 연속해서 이 걸 먹었다. 

 

 

공갈 빵은 아닌데 무슨 도사였던 것 같다.

 

 

한식당 "한국관"도 메뉴가 엄청히 많은데 "해물파전"도 있다. 이 것 하나로도 충분한 점심이 된다.  순두부찌게 하나 더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작년에 자주 갔던 "Seafood Bar"도 이 번 여름에 자주 간 식당 중의 하나다.

 

 

이 Seafood Bar 는 이 번 여름 처음 간 식당이다.  사실은 작년에 자주 갔던 Rokin 메트로 역에 가까이 있는 Seafood Bar 보다 가기 쉬운 곳에 있다. Heinekenplein 이란 24번 버스 정류장 코앞에 있는데 재작년에 자주 갔던 곳을 찾으려 갔다가 잘 못 길을 들어 여기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메트로 52선을 타고 De Pijp 역 북쪽 출구로 나가면 한 150 미터 정도 북쪽에 있다.    

 

그러니까 암스테르담에는 최소한 3 곳에 Seafood Bar 가 있는 셈이다.   

 

이 Seafood Bar 는 우리가 가 본 Seafood Bar 중에서 가장 작고  손님이 분비지 않아 항상 테이블이 있다.  기다릴 필요가 없어 좋았다.

 

 

빨간 타원 마크가 메트로 52선 De Pijp 역 북쪽 출구다.  여기로 나오면 바로 재래시장 Albert Cuypt Market 가 나온다.  여기서 북쪽으로 메트로 남역(우리가 자주 가는 Sugo 피자집 건너)가는 거리 만큼 북쪽으로 Seafood bar 가 나온다.

 

 

해물 샐러드

 

 

칼라마리와 피쉬

 

Geldlandplein 에는 식당이 많다.   그 중의 하나는 "Saigon"이라는 베트남 식당이다. 두 번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국수류는 모두 닭고기 아니면 돼지고기 국물이라 먹을 수 없고 볶음 국수하나는 소고기가 들어 있는데 이를 해물로 바꿔 준다고 해서 먹었다.  그 밖엔 두부요리 하나가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였다.  위의 접시는 볶음 국수인데 코니가 맛 있다고 시켰는데 깜박하고 쇠고기를 해물로 대치해 줄 것을 잊어서 원래 메뉴로 나왔다. 

 

 

내가 시켜 먹은 두부 요리,  유일하게 고기가 들어 가지 않은 베트남 요리

 

 

또 자주 갔던 식당은 중식당 Fulu다.  Crab 요리가 먹음직해서 시켰지만 발려 먹기 힘들었다.  

 

 

 채소로는 늘 박초이(백 채)를 먹었는데 시금치도 맛이 있다.  여기는 무엇을 시키던 믿을 수 있다.

 

 

작년에 자주 갔던 맥시칸 식당 Los Pilos.  다시 가 보기로 했으나 여행이 끝날 때 쯤 갔기 때문에 두 번 갈 기회가 없었다. 

 

 

이 집은 이 마가레타 때문에 자꾸 가고 싶어 하는 집이다.

 

 

맥시코 콩 타코

 

 

새우  엔칠레타

 

비가 심하게 온 날 우리 호텔 식당에서 먹었던 Tomato Soup.  이 식당에서는 제일 맛이 있다. 

 

 

Seoul Food 에서 김밥을 먹으러 갔었는데 깜빡하고 월요일에 갔다.   한식당 Seoul Food 나 한국관도 모두 월요일에 쉰다.    시간이 너무 늦어 우리가 자주 가는 다른 식당을 가려다 근방에서 먹기로 했다.    Salad and the City라는 식당이 있었다.

 

 

Seoul Food 에서 Builderdijkstraat 쪽으로 조금 걸어 북향하면 나온다.  우연히 들어 간 집 치고는 맛 있는 Salad 를 먹었다.

 

 

치즈 연어 샐러드였던 것 같은데 맛 있다.

 

 

 

마지막으로 갔던 Fulu 중식당.   메뉴판 표지에 있는 이 집의 signature 요리가 아난가 싶다.   값은 우리가 보통 두 접시 시키고 칵테일이나 맥주 값까지 포함한 것 보다 더 비싸다.  거의 70 유로 가까웠던 같다.   생선이 주이고 채소 두부 먹고 싶었던 것이 다 들어 있었다.

 

 

SeaFood Bar 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해물 종합요리의 finger food version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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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4 21:06

    암스테르담의 다양한 음식 구경 잘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맨 마지막 해물종합요리가 제일 맛있어 보입니다.ㅎ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9.25 10:37 신고

      감사합니다. 맨 마지막 메뉴가 Seafood Bar 의 시그네쳐 메뉴라고 할 수 있는데 재작년 처음 갔을 땐 이 접시의 4배 그래서 2 단으로 나오는 것을 먹었었읍니다. 이젠 finger food 분량이 적당한 듯 합니다.

  2. 엘리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8 03:31

    한국관은 서울 시내에 있어도 좋을 법한 맛집이었어요. 혼자 갔었으면 절대 고런 건 모르고 다녔었을텐데.. ^^; 오밀조밀 시내에 미술관이며 음악당, 운하, 교외 풍경까지, 첫 여행이고 짧은 일정이었지만 너무 재미졌어서, 내년 여름 암스테르담이 벌써 기대됩니다~

10년전에 썼던 글이지만 오늘 처음 공개합니다.

 

추석날 "내 고향 시애틀"을 회상하다 보니 그 때 시애틀에서 Burke-Gilman Trail 말고도 여기 저기 자전거를 탔던 생각이 났는데 내 블로그에 그 포스팅이 없다.    그 때 KT 에서 하는 "파란" 블로그를 옮겨 올 때 따라 오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래서 여기 그 포스팅을 옮기기로 했다.  댓글 하나가 달려 있기에 열어 보니 독자가 쓴 게 아니다 "파란"에서 달아 준 것이 었다.   

 

파란의 추천글로 선정되었다는 댓글이었다.  그런데 읽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파란"은 문을 닫았다. 

 

Clip and Paste 로 옮겨 왔지만 동영상이 따라 오지 않는가 봅니다.      동영상은 https://dcknsk.tistory.com/88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Floating Bridge로 Lake Washington을 건너다.

 

시애틀 자전거 타기의 여행에서 서울에서부터 생각해 둔 것중에 하나는 I-90 Trail을 달려 보는 것이었다.

 

사진 찍은 날자를 보니 지난 달 3일이 었다. 10월3일

 

전날 여기 저기를 검색해서 이 길에 대해 알아 봤는데 Mercer Island 구간이 언덕이 많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시애틀은 언덕이 많은 도시다.

 

Seattle에 와서 혹시나 우리의 Brompton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부탁하려고 서울에서 찾아 둔 Authorized Brompton dealer를 찾아 간 일이 있다. 그 때 그 가게에서 점원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시애틀에서 파는 Brompton 은 모두 6단이라고 했다. Seattle 은 언덕이 많아 3단으로는 다니기 어려워서 그런다 했다.

 

Seattle 은 겨울에 눈이 오지 않지만 드물게 눈이 쌓이는 일이 있다. 그런 때는 난리가 난다. 월동장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파른 언덕에서 미끄러지고 skidding을 해서 학교와 직장은 일찍 닫는다.

 

60년대 Space Needle 이 세워진 세계 박람회가 열렸을 때 Seattle을 방문한 외지 사람들은 Clutch를 많이 태웠다고 했다. 당시는 손으로 직접 변속하는 자동차가 대부분이었다. 언덕에서 출발하려면 차가 미끄러져 크럿치가 마찰을 일으키며 공회전해서 타게 된다. 언덕에서 출발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는 clutch를 태우게 된다.

 

그래서 우리도 바닷가나 호숫가의 평평한 길만 골라 다닐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I-90 길은 Hilly 한 Mercer Island를 건너야 하니 망서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 피하고 저것 피하다가는 시애틀에서는 자전거 탈 때가 없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이 잔차길을 달리기로 했다.

 

10월 3일은 일요일었기에 오전에는 거리 전체가 한가하다. Northwest African American Msm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 Trail 입구로 들어 가려 계획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남쪽으로 내려가 언덕길을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Flaoting Bridge 까지는 얼마 안되었다. 길하나 건너니 Floating Bridge 입구 Tunnel 이 나왔다.

 

예전에 Seattle 에 살 때 미국에 올 때 여기를 거쳐가는 친구나 지인이 가끔 있었다. 그러면 우리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다리를 보여 줬다. 한강 다릿 한 개만 한강에 떠 있을 때라 이런 다리도 관광 명물이었다.

 

호수라 수위가 일정해서 (갑문을 통해서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같다) 떠 있는 부교(floating bridge)를 놓은 것 같다.

 

이 다리는 전장이 2 km 가 조금 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떠 있는 다리다. 제일 긴 다리는 이 다리의 몇마일 위쪽에 있는 Evergreen Point Floating Bridge로 같은 Lake Washington을 건넌다.

 

 

Lake Washington을 가로 지르는 세계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긴 떠 있는 다리 Evergreen Point Floating Bridge 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없다.

 

 

2km 가 넘는 I-90 floating bridge 제일 왼쪽 갓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 

 

 

우리가 진난 10월 3일 달린 잔차길 코스  Northwest African American Musium에서 Belelvue(Factoria)까지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UW 에 연수온 경북대의 선배 교수가 있었다. 사진에 취미가 있어 주말에 우리와 같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 때 그 분이 찍어 준 사진에 Floating Bridge에서 찍은 신혼시절우리 부부 사진이 있다.

 

전에 썼던 <운명의 인연>에 올렸던 사진이다.  1962 아니면 1963년 경 사진이다.  가운데 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Floating Bridge가 보인다.

 

이 사진에 보이는 다리는 허믈리고 우리가 달린 다리는 1993년에 새로 만든 다리란다.

 

위의 사진 찍은 곳이 어딘가 자전거 길가에 혹시 있지 않나 두리번 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반세기 가까웠으니 많이 바뀌었으리라.

 

원래 이 다리는 1940년에 개통한 것인데 90년대에 확장 공사를 하던 중 폭풍이 불어와 가라 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건넌 다리는 새로 지은 다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1993년에 개통했다니까 윗사진속의 다리는 아니다. 자전거/인도도 새 다리를 놓을 때 만든 것이라 짐작된다.

 

사실 이 자전거길에 들어 서려면 자전거겸 보행용 긴 터널을 지내야 하는데 이 터널도 그 때 지은 것 아닌가 추측된다.

 

터널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길이도 400 미터 정도로 매우 긴 터널이었다.

 

 

 

터널 서쪽 입구  사진좀 찍고 가자고 했더니 턴널이 더 궁금한 가 보다.

 

 

턴널을 지나면 이런 전망대가 나온다.

 

중심부분은 물에 떠 있는 부분이라 엄청 내리막 길 다음 수평 부분이 나오고 또 엄청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초행길이라 내리막이라도 마냥 속도를 낼 수 없었다.

 

Mercer Island 의 잔차길  동영상 https://dcknsk.tistory.com/88

끊임 없는 오르막 내리막 길이었지만 생각보단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Mercer Island 는 Bill Gate 가 사는 동네다.

 

 

Mercer Island에서 Bellevue 로 건너오는 다리

 

Bellevue의 Factoria에서 점심을 먹은 Mexican Restaurant 인테리어가 너무 colorful 해서 한 컷 찍었다.

 

 

Bellevue 의 한 공원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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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7 23:36

    와 ~ 스포츠형 머리에 ....
    탱글탱글 사랑과 젊음이 멋지십니다

  2. 황성옛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8 11:05

    선생님 신혼 시절의 사진, 정말 귀한 옛날 모습이네요. ㅎ

    제가 20년 전에 살던 동네가 나오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머서아일랜드에 살았으면서도 정작 I-90 다리에 자전거도로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ㅎ

    제가 살던 집에서 몇 걸음 걸으면 워싱틴호수가 나오는데, 그 호수 건너편에 빌게이츠 집이 있어서 자주 봤습니다.

    선생님 글과 사진을 보니 무척 그립습니다. ㅎ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9.18 11:50 신고

      감사합니다. 1993 이후에 계셨다면 이 다리가 맞습니다. 자전거 도로는 그 때 함께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옛날 사진에는 아마 인도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터널 같은 것도 기억에 없으니깐요.

Mt Rainier



10 년전 시애틀을 회상하다 보니 그 때  여정이 San Francisco 에 먼저 갔다 항공편으로 시애틀에 갔던 것 기억이 난다.     그 때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서 시내에 들어 가기 전에  공항에서 가까운 Mt. Rainier 에 갔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시애틀에 살 때에는 차로  한 두시간 남짓하는 거리라 여름엔 날이 길어 굳이 거기 숙박시설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0년전에 갈 때에는 어차피 시내에서도 호텔이서 자야 할 판이라 Mt. Rainier 의 호텔을 예약하고 며칠 묵을 생각을 했다.    그 때 사진이 있었는데 이 블로그에는 따라 오지 않았다. 


그 땐 KT 에서 운영하는 포탈 "파란"이란 곳에서 블로그를 썼는데 이 것은 다른 블로그에 동시 발행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KT 가 "파란"을 일방적으로 폐쇄했기 때문에 그 블로그를 옮겨 왔지만 일부만 따라 왔다.    그 과정에서 사진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아래 글은 10년전에 썼던 글이다.        사진은 https://dcknsk.tistory.com/98 에서 clip and paste 한 것인데 보일런지 알 수 없다.     보이지 않으면  https://dcknsk.tistory.com/98  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주 지내고 9월 14일 시애틀행 비행기를 탔다.  2시간 남짓 걸린다.  떴다하면 내린다.   시애틀은 날이 흐렸다.  기장 방송에 의하면 오후엔 갤 거라 한다.  

 

Seattlle 에서는 조금 큰 차를 빌리기로 했다.  원래는 compact를 빌리기로 예약했지만 자전거 가방도 그렇지만 자전거를 싣고 다니기도 조금 불편했다.    midsize hatchback 으로 Dodge Caliber를 빌렸다.

 

Seattle에서 여정은 Seattle 의 호텔에 들기 전에 Mt. Rainier 의 lodge에서 3박하고 내려와 시내로 들어 갈 계획이었다. 계획에 따라 산속 lodge 와 시내 hotel을 예약해 놨다.  

 

그래서 공항에서 차를 몰고 Mt. Rainier 의 Paradise Inn 으로 직행했다.

 

기장 말 대로 오후가 되자 날씨는 개었고 가는 길 중간에 한 퓨전 일식당을 발견하고 들어 갔다.  난 우동을 시켰고 코니는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또 조금 가다 시골 도시의 쇼핑몰에서 하이킹을 하려면 필요할 듯해 먹거리도 조금 사고 이것 저것 준비를 했다.

 

저녁 5시가 넘어서 lodge 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이 산중 lodge에는 TV도 없고 wifi 는 물론 휴대폰도 안된다.  lobby의 한 귀퉁이 방에 준비된 서너대의 유선 공중전화가 통신시설의 전부였다.

 

식당과 커피숍과 벽난로가 있는 커다란 lobby 가 아래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흑인 남자가 홀에서 피아노를 쳐 줬다.  간혹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투숙객은 우리 또래의 노년층이었다.

 

하긴 여름 휴가철이 다 지난 지금 주중에 한가히 산장을 찾는 젊은이들이 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한 40분 기다려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가만히 보니 우리 나이또래가 group 컨벤션으로 왔거나 단체 여행중인 같았다.    명찰을 달고 있었다.

 

lobby에서 피나노를 들으며 기다리니 지루한 것도 몰랐다.

 

식사후에 밖에 나가 별 구경을 했다.  정말 쏟아 질 것 같은 별들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밤하늘을 봤다.

 

30여년전에 단양에 가서 은하수를 본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이 튿날 우린 느긋한 하이킹을 했다.   시애틀에 살 때나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 Mt. Rainier 에 오면 오가는 시간을 감안해서 긴 코스를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긴 Skyline Trail을 돌기로 했다.  나중에 GPS Track 기록을 보니 500 미터가 넘는 산을 등산한 셈이다.  수평거리도 7 Km 가 훨씬 넘는다.  우리에겐 간만에 긴 하이킹을 한 것이다.

 

Mt. Rainier 는 미국 서북부의 Cascade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4,392 m 나 된다.  

 

Paradise Inn 이 1658m 이고 Skyline Trail 의 최고 지점이 2164m였다.  최고점에서 정상을 보면 손에 잡힐 듯하지만 해발고도로 치면 반도 오르질 못한 것이다.

 

정상은 흔히 구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데 그날은 여러번 정상의 자태를 보여 줬다.

 

그러나 고산의 기후는 알 수 없는 것,  하산하기 시작하자 구름이 몰려 오고 빗방울이 떨어 진다.  다행이 코오롱 고아택스 덧옷을 배낭에 싸 가지고 온 덕을 톡톡히 봤다. 추위도 막아 주고 바람도 막아 줬다.

 

산장에 거의 내려 오니 비가 조금 뜸해 졌다.

 

방에 돌아 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아주 개운해 졌다.  일찍암치 홀에 내려와 불도 쬐고 기다리기 사람들이 몰려 오면 긴 줄이 설 것 같아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식후엔 벽난로 가끼이에 앉아 불똥이 튀는 불꽃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사념에 잠겼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등산은커녕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계획을 바꿔 하루 먼저 퇴실하고 Seattle로 향했다.  

우리가 예약해 뒀던 ExtendedStayAmerica 호텔은 마침 공실이 있어 하루 일찍 체킨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가까운 거리의 Aurora Ave.에 Sushiyu 라는 일식당이 있어 들어 가 점심을 먹었다.  웨이트레스가 일본 키모노 차림을 하고 유창한 영어를 한다. 일본사람인가 했더니 한국사람이었다.

 

스시를 만드는 남자도 알고 보니 80년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도미한 한국사람이었다.

 

요지음은 미국을 여행하면서도 한국사람들을 많니 만난다. 특히 한국사람이 하는 식당이 참 많다.

 





Skyline Trail

Mt. Rainier

2143-1613 = 530 미터 올라 갔다 왔다.

trail 이 너무 잘 만들어 있어 산을 오르는 느낌도 거의 없었다.

이런 GPS 기록이 없었다면 정미 500 미터가 넘는 고도를 올랐다고는 생각못했을 것이다.

lodge의 메인홀

왼쪽이 식당 홀이다.

객실은 모두 이 메인 건물의 뒤쪽으로 이어져 있다.

모두 목조 건물로 메인홀은 3층 높이의 지붕으로 높은 천장의 큰 홀이다.

독특한 목조 건물로 건축계에서도 잘 알려진 명물이라 한다.

홀 안도 모두 나무 기둥이다.

변나로만 벽돌로 싸았다.


이층까지는 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데

홀 주변으로 베란다를 설치하고 테이블도 놓았다. 음료수를 가지고 올라와 마실 수있었다.

올라가 아래의 홀을 내려 보며 한컷.

중앙에 코니가 카메라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그 왼쪽에 흑인 피아니스트가 감미로운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다.



이튿날 하이킹로에서

오전은 날씨가 좋아 만년설이 덮인 정상을 볼 수 있었다.

등산로 초입은 아스팔트까지 깔오 놓은 편안안한 길이었다.


눈에 선 야생동물 한 마리가 등산로 가까이 나타 났다.

중캐 정도의 크기인데 사람들과 익숙한지 다라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horary marnot(회백색 마멋)으로 거친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설치류란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줌인하여 한 장 더 실례했다.

경고음으로 횟바람소리를 낸다는데

우리도 들었는데 이놈들이 내는 소리인 줄 몰랐다.


1920 고지 조망대에서

날은 비록 흐렸지만 정상 (4,392 m)은 구름에 가리지 않았다.

손에 잡힐 듯 하지만 2472m를 더 올라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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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주욱 휘돌아 보면

별경이 따로 없다.


Skyline 등산로는 만년설의 끝자락까지 지나 간다.


산정은 다시 구름에 가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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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빙하에서 흐르는 폭포는 긴 어름강

Nasqually River에 합류한다.


내려다 보면 우리가 올라 온 등산로가 보인다.

Paradise Inn 의 주차장도 보이고

그 너머로는

Cascade 산맥의 준봉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2000 미터 고지를 전후하여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만년설(빙하) 아래는 초원으로 변한다.

눈밭을 가로 지르는 지름길도 있었으나

미끄럽기도 하려니와 기왕이면 풀 코스를 돌기 위해 더 올라 갔다.


Panorama Point 근방에서


눈밭 비탈에 서서

걸어 다니니까 사잔이 늘어 난다.



하산길은 목초지였다.

Skyline Trail 은 루프니까 반대로 돌아도 된다.

반대로 도는 편이 경치고 더 좋다고 한다.

가을에 섬큼 다가 섰지만 아직도 고산 들꽃이 남아 있다.


루프를 반대로 돌았다면 초입은 이런 초원의 풍경을 감상했을 것이다.

비는 그쳤으나 개울물은 불어 난 것 같았다.


비오고 쌀쌀한 날씨엔 벽난로처럼 포곤안 안식을 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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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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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석날에 10년전 시애틀에서 맞았던 추석날 추억을 되새기며  


10년전에 썼던 글입니다.




시애틀 내 고향


한국에서는 추석 연휴에 귀향하느라고 난리였을 것이다.


귀향은 원래 인간의 본성인지 모른다. 태어 난 곳, 자란 곳, 놀던 곳을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다시 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는 소망이니 말이다.


한국사람들에겐 추석의 귀향은또 다른 이유나목적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에겐 그 아무 것도 없다. 부모님도 안계시고 장모님 한분 생존해 계시지만 서울에 사시니 귀향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서울에 있으면 많은 점포가 문을 닫아 텅 빈 거리가 쓸쓸하게 느껴질볼뿐이다.


심심풀이로 티비를 틀면 추석 특집이라고 떼떼옷을 입고 나온 아나운서 연예인들이 명절 때면 늘 하던 짓들을되풀이 하는 것을 본다. 정말 흥겨워서 그런지 지어서 흥겨운척 하는 건지멀리 딴 세상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난 명절이 흥겹기 보다는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진다.


굳이 추석을 피해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재작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추석을 여행중에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올해 추석은 시애틀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시애틀은 우리의 고향이다. 지금 사는 서울을 빼고는 따로 고향이 없으니 시애틀이 고향과 같다.


1960년 8월 22일 태평양을 건너 고국을 떠나 대학원생활을 시작했고여기서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큰 아들까지낳았으니 고향과 같다. 거의 7년을 살았다.


둘다 학생인 시절엔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2년후 코니가 먼저 석사학위를 받고 librarian 이 되었고 UW 극동학과의 한국학 초대 librarian 이 되면서 우리의 생활은 컹충 업그래이드 되었다.


고생도 했고 즐거움도 있었다. 내 박사학위 논문이 끝날 쯤 계획해서 큰 아이도 낳았다.


학위후 Post Doc 과정도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Canada 의 Vancouver(Univ. of British Columbia) 에서 했으니 시애틀에 자주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귀국할 때까지 근 10년을 시애틀과 Vancouver 에서 산 셈이다.


고생했던 추억도 달콤했던 추억도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니 고향이라 불러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올 추석에 고향에 오게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이 5번 지냈는데 변하지 않은 것도 많이 있었다.


지난 화수(21일22일) 이틀간 우리는 Univ. of Wash.근방을 자전거로 산책을 했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시애틀의 명물인 자전거 전용도로

Burke-Gilman Trail

이 길은 학교(UW) 남쪽을 지난다.




Burke-Gilman Trail 은 학교 남쪽 으로 이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나간다.

캠퍼스 남단에서 북쪽을 보며


나중에 학교 안을 둘러 보니

학교 건물들은 개축과 신축이 너무 많아

어디가 어딘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남단 경관과 건물만은 변하지 않았다.

멀리 분수는 여전히 시원한 물줄기를 뿜고 있었고

양쪽으로 보이는 건물 둘은

겉모양은 그대로 였다.

오른 쪽이 내가 다녔던

물리학과 빌딩

(Physics Hall)이 었고

왼쪽은

Johnson Hall로 당시에는

생물학과(동,식물학과)

들이 쓰고 있었다.




이 표지판은

1909 6월 1일 부터10월 16 일까지 열렸던

알라스카 유콘 태평양 박람회(ALASKA-YUKON-PACIFIC EXPOSITION)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 한다.

시애틀은 인디안 추장의 이름이고

이 도시의 역사는

알라스카와 유콘 탐험의 전초기지역할을 하면서 발전했다.

Jack London의 개 이야기

<Call of Wild> 인가 하는 책을 보면

Alaska 의 금광맥을 ?i아 가는 탐험가들이

여기서보급품과 개(썰매개 Husky)를 사가지고 배를 타고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UW 의 마스콧은 Husky 다.




분수의 북쪽에서 남쪽을 보며

이 분수는 날이 좋으면 이 분수 물줄기 넘어 Mt. Rainier 가

보이게 설계되었다.

그날은 날은 좋았지만

Mt. Rainier 정상 부근에 구름이 끼어

산을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Mary Gates Hall 이 된 옛날 Physics Building

Mary Gates 는 Microsoft 창업자 Bill Gates 의 어머니다.

이 학교 졸업생이고 이 학교 이사회 이사였던 어머니를 위해 Bill Gates 가

기부하여 내부를 완전히 리모델링하여 Mary Gates Hall 로 개명했다.

Computer 인지 Commuciation Science 인지 학과의 실험실과 교수실로 쓰고 있었다.

내 자전거가 놓인 출입문은이 건물의 주 출입문이고

3층 동쪽편에 큰 방이 있었고

대학원 1년생들인 실험조교들이 공동으로 쓰는 방이 있었다.

코니와 연애시절 이 문앞에서 우리 둘이 자주 만났다.

언젠가는 김치와 장조림을 담가 가지고 와 이 문앞에서 내게 준 일도 있었던 같다.


이튿날인 22일은 학교 밖 우리가 살 던 곳을 둘러 보기로 했다.




Burke-Gilman 자전거 도로는

15th Ave.를 건너게 되어 있다.

우리는 건너지 않고 쭉 북상했다.

15가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15th Ave에 나 있는 학교 서문 과 대각으로 마주 보는 이 건물이

Commodore Dutchess Apt. 다.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는 20세 이상의 학생만 들어 갈 수 있다.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오른쪽 Dutchess 의 1 Room 에 들어가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나중에 코니가 졸업하고 취직을 한 다음 왼쪽의

1-bed room 으로 옮겨 갔다.

Postdoc 으로 취직이 되어 학교를 떠날 때까지 큰 아이도 낳고 여기서 6년 넘게 살았다.

정든 곳이다.

1997년에 왔을 때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4005를 보니 너무 반갑다.

포오오파이브 (4005)

피프틴트 노스이스토(15th NE)

시애틀 워싱톤

98105

USA

우리가 살 때 서울에 편지하려면 써 넣던 주소가 아직도 입에서 술술 나온다.

zip code 까지 기억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물리학과 건물 뒤에 있던 HUB 건물은 재단장을 위해 닫아 놨다.

그리고HUB 는 Condon Hall 로 옮겨 갔다.

그런데 HUB를 검색하다 재미 있는 것을 발견했다.

HUB에 Bike Shop 이 있다는 것이다.

옮겨 간 곳에도 Bike Shop 이 있었다.

이 학생회관 Bike Shop 은 학생 교수 직원에게만 개방된다고 써 있었다.

학생에게는 10% 할인도 해 준다고 써붙여 놨다.

타이어 공기압도 점검하고 체인에 기름질 해야 하나 점검해 달라고 했다.

타이어 바람도 넣어 주고 체인에 기름질도 해 줬다.

돈좀 주려했더니 굳이 안받겠단다.

어쩌면 사이클 클럽 학생이 자원 봉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됐다.

우리가 60년대 학교를 다녔다고 했더니 그랬나?

고마운 일이다.




45th St. 와 University Way 교차점

이 모퉁이에 <Martin Eckman> 이란 조금 고급 남자 옷가게가 있었다.

지금은 <American Apparel> 인가 하는 역시 옷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University Ave 다음 길은 Brooklyn Ave. 다.

45th St. 와 Brooklyn Ave. 모퉁에에는 <Neptune>이라는 영화관이 있었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영화관이 그 옛모습 그대로 서 있으며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기에 지겹도록 많이 갔었다.

Neptune 영화관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날 밤늦은 시간에 우리 앞자리에 한국말을 하는 초딩 어린이 둘이 나란히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었다.

고려정집 정씨 아들 형제였다.

그 중 하나가 나중에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University Way 와 47th 쯤에

Pay'nSave 라는 저가품을 취급하는 대형 잡화점이 있었다.

뒤쪽 주차장은 Brooklyn Ave.다.

1997년에 왔을 때 여전히 싸구려 잡화점이었는데 지금은 비어 있는 듯

임대 패말이 붙어 있었다.

내가 여기를 굳이 찾아 온 이유는

1968년인가 69년에 50cent 짜리 Made in Korea 싸구려 와이셧츠를 처음 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눈물이 너무 나서 이 주차장으로 숨어 나와 펑펑 울었었다.

1953 년 휴전이 되었지만

떠나 오던 1960년도

한국은 <가난> 그 자체였다.

뭘 만들어 선진국에 팔 수 있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었던 때였다.

그런데 미국 상점에서 비록 싸구려지만 한국제 상품을 처음 본 것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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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09.26 20:48

    비밀댓글입니다

  2. 듀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07 09:18

    잘 보았습니다. 감동도 있었구요.

  3.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07 21:39 신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 황성옛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7 14:50

    하아, 선생님께서 사셨던 것이 이제는 50년도 훨씬 넘은 옛날의 일이로군요.

    저도 공무원 생활할 때 잠깐이지만 유답 로스쿨에 유학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 선생님 글을 읽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 후로는 아직 시애틀에 가보지 못했네요.

    저는 머서아일랜드에서 살았었습니다. ㅎ
    시내에서 I-90인가, 고속도로 타고 워싱턴호수를 건너다 보면 항상 남쪽으로 레이니어 산봉우리가 신기루나 거짓말처럼 우뚝 솓은 것이 보이곤 했었는데요.

    언제 한번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9.17 21:09 신고

      감사합니다. 10년전 시애틀에 갔을 때 I-90 floating bridge 를 자전거를 타고 건넜습니다. 오늘 그 때 포스트를 올렸습니다.
      https://boris-satsol.tistory.com/1773

희대의 가짜 뉴스 이야기

 

광란의 한달이 갔다.  귀국한지 며칠 지났지만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나이 탓인지 시차 적응도 전 보다 시간이 걸리고 가짜 뉴스의 광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어제로 일단 그 종말을 맞았다.   아직도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 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원주의 시각에서 보면 화를 낼 것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종교의 종말"을 쓴 Sam Harris 의 명언을 되 새겨 보자.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일으킨 재앙과 9/11 이 일으킨 재앙은 비슷한 규모인데 두 재앙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엄청히 다르다.    카타리나의 재앙에 대해서 그 누구도 기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단지 복구에 최선을 다 할 것만 강조했다.   그런데 9/11 에 대해서는 "테러와의 전쟁" 을 선포하면서 복수의 "광란"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다쳤는가 묻는다.   "증오"는 "독"이다라고 말한다.  개인을 망가트리고 사회를 망친다.  

(“Compare the response to Hurricane Katrina,” Harris suggested, with “the response to the 9/11 act of terrorism.” For many Americans, the men who hijacked those planes are the embodiment of criminals who freely choose to do evil. But if we give up our notion of free will, then their behavior must be viewed like any other natural phenomenon—and this, Harris believes, would make us much more rational in our response.

Although the scale of the two catastrophes was similar, the reactions were wildly different. Nobody was striving to exact revenge on tropical storms or declare a War on Weather, so responses to Katrina could simply focus on rebuilding and preventing future disasters. The response to 9/11, Harris argues, was clouded by outrage and the desire for vengeance, and has led to the unnecessary loss of countless more lives. Harris is not saying that we shouldn’t have reacted at all to 9/11, only that a coolheaded response would have looked very different and likely been much less wasteful. “Hatred is toxic,” he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Losing belief in free will undercuts the rationale for ever hating anyone.”)

 

지난 한 달의 광분은 바로 나를 포함한 개개인에게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을 주었고 사회는 반 쪽이 나는 분열을 가져 왔다.   역사는 자연 현상이라는 환원주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광분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낭비였다.  

 

뭔가가 잘 못 되었다면 이성으로 돌아와 합리적 해결책을 머리를 맞 대고 짜면 되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공격하고 광분해서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허리케인이 또 오면 어떻게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를 머리를 맞 대고 연구하고 방안을 짜는 것이다. 

 

이성으로 돌아오라고 나는 외친다. 

 

광란에 휩싸였던내 블로그의 독자를 위해 희대의 가짜 뉴스를 하나 소개하고  끝 맺으려 한다.  내가 전에 어쩔 수 없이 ET 이야기를 쓰게 된 이야기를 올린 일이 있다. 

 

 

 

경향잡지에 실렸던 내 ET 이야기

 

 

이 글은 원래 실렸던 것 보다 훨씬 축약된 버전이다.  원 버전은 엑스포 책자로 나왔고 그책자는 사라졌다.  나도 원고가 없으니 여기서 재현할 수 없다. 

 

그 때 내가 썼던 가짜 뉴스 이야기를 대강 더듬어 아래에 소개한다.

 

지금 부터 184년 전인 1835년 8월 21일 뉴욕에서 발간하는 "The Sun" 이라는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가 실렸다.  달에 생명체가 발견되었고 그 일부는 문명을 건설했다는 기사가 곧 실릴 것이란 광고였다. 

 

그리고 6 편의 연속 기사가 올라 왔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쉘 경(Sir John Herschel)이  최첨단 원리를 이용하여 어마무시한 망원경 (an immense telescope of an entirely new principle) 을 제작하여 달을 관측한 결과 달에는 박쥐 비슷한 날개를 단 사람  모양의 생명체가 관측되었으며 그 외에도 지구상의 생물 비슷한 생명체가 여러 종류 관측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는 그 망원경은 잘못하여 태양광이 들어와 망원경 안의 초첨에 고열을 발생시켜 폭발하여 천문대가 모두 소실되어  더 이상 관측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로 뉴욕의 "The Sun" 지의 구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 기사는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자기 이름이 도용된 영국의 천문학자 허쉘경이 이 소식을 들은 것은 한 참 뒤였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처음엔 그저 장난이려니 하고 웃어 넘기려 했으나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전 세계 기자들과 방문객이 쇄도하는 바람에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가짜 뉴스라고 "The Sun" 지에 정정기사를 내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The Sun" 지도 결국 그 기사가 가짜 뉴스라고 정정하였지만 그 가짜 뉴스는 그 냥 퍼져 나갔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짜뉴스에 더하여 또 다른 신문이나 잡지가 달에 외계인이 산다는 가짜 뉴스를 또 지어 퍼뜨리는 바람에 이 가짜 뉴스는 한 동안 잠잠해 지지 않았다 한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가짜 뉴스는 그냥 믿는 것이다.   달에 대한 이 환상적인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믿고 싶은 로맨틱 환타지가 되어 퍼지고 그 것이 돈 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안 저질 신문이나 잡지는 계속 가짜 뉴스를 지어 퍼뜨렸던 것이다. 

 

 

달 위에 산다는 ET

 

 

1835년 "The Sun" 지에 실렸던 달의 풍경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은 가짜라도 믿는다.   그 것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가짜 뉴스를 믿는 것은 좋다.  어차피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뇌의 구조가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짜 뉴스를 믿고 미움(hatred) 을 키우지는 말라.

 

“Hatred is toxic,” he(Sam Harris)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Sam Harris의 글 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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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0 20:39

    잘 다녀오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2.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1 00:45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심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3.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0 08:49

    잘 다녀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