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일상, 단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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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번째 생일

 

며칠 전(20일) 내 84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이면 항상 블로그에 생일 일기를 쓰는데 요즘은 새 컴도 사서 적응하느라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오늘에서야 일기를 쓴다.     또 새 장난감(Samsung Gear360)을 사서 테스트 중이라 그것에도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 

 

내 나이가 되면 가장 큰 관심사는 내 신체와 두뇌의 벤치마킹이다.

 

 

********81번째 생일에 쓴 글 ***************

내(채제공) 일찍이 들으니 미수(眉수) 허목(許穆) 선생은 여든세 살 때 관악산 연주대에 올랐는데 걸음이 나는 것 같아 사람들이 신선처럼 우러러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채제공)도 83세에 관악산에 오르겠다고 별렀다는 것이다.  나이 80살에 세상을 떴기 때문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나는 83세까지 살아남는다면  관악산에 오르고 싶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455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작년에 관악산에 올랐어야 했는데 기회기 없었다.  

 

또 하나는 2007년에 남가주 Ventura 리컴번트 클럽에서 만났던 나 보다 5 살 연장인 UCLA 교수였다.

 

****************2007 년에 만났던 잔차인  Pedinoff 교수 ***************

이야기를 하다 보니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물리학자라더군요.  나이도 나보다 5살 더 많고 UCLA에서 나보다 훨씬 전에 박사학위를 받았더라고요.  여기 물리학 박사가 둘이나 있다고 좌중이 환호하더라고요.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름을 물어보니 Melvin Pedinoff인데 학위 받고 20 년 넘게 Hughes Aircraft Co. 에서 방위산업 계약 연구를 했는데 방위산업 계약이 끊어지면서 명퇴당했답니다.  다행히 친구가 UCLA 전기공학과에 있었는데 전기공학과에서 가르치는 게 어떠냐고 해서 작년까지 전기공학과 교수로 강의했답니다.

 

그러서 사진 한 장 찍었지요.

 

 노랑 옷 입은 이가 Melvin Pedinoff 님. 보리스 옆에 있는 이가 비 오는 날 커비숍에서 만났던 Dave Miller님, 두 손을 든 이가 지난 토요일 같이 잔차 탔던 University of Washington 동창(Huskies)  그래서 세상은 좁다고 하나 봐요. (it's a small world!)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212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그때 우리도 5년 후에 Pedinoff 교수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5년 후가 아니라 12년 후인 오늘도 잔차를 탄다.

 

그래서 어제 관악산 대신 도곡공원(매봉산)에 올랐다.

 

 

어제 매봉산에 오른 것은 새로 산 장난감 삼성 Gear360 카메라를 테스트 해 보기 위해서였다.  왼 쪽 어깨위의 vr360 카메라가 달려 있다.  이 카메라로 vr(가상현실) 비디오를 만들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도착하지 않아서 제작을 못하고 있다.   

 

 

생일 오찬에서 손자와 함께  

 

 

손녀와 함께

 

 

V 마크를 안 했다고 따로 한 컷

 

 

손녀가 만들어 준 생일 카드

 

 

카드 앞면

 

 

제 누이 시늉 내서 그려 준 손자의 편지 위는 할머니에게 아래 쪽은 할아버지에게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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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23 12:57

    비밀댓글입니다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23 16:52

    늦었지만 생신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3. 백정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24 00:47

    손주 재롱과 새로 장만하신 장난감 즐거움에 맞으신 84번째 생신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4.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25 16:23

    축하드립니다..늦었지만요...^^

  5. 엘리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29 10:19

    생신 축하드립니다. ^^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자전거 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손자분 생일카드가 귀여워요 ㅋㅋ)

우울증이 두뇌의 노화를 촉진한다.  - dataismn시대의 새 연구 방법

 

뉴스를 안 본다고 하면서도 지난 두어 달 뉴스에 함몰되어 필요 이상의 우울증에 걸렸었다.     정신적 건강, 기억력 저하, 면역력 저하,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뉴스를 끊어 버렸다.   

 

주차장의 무인 정산기에서 정산을 하려는데 차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9477을 기억해 냈지만 뭔가 낯 선 느낌이라 자신이 없었다.    틀리게 입력하면 애를 먹을 것 같아 주차한 곳까지 가서 확인하고서야 제대로 정산할 수 있었다.  온 라인으로 뭔 가 하는데 내 주민 번호 뒷 자리중에서 마지막 3 자리가 생각이 안난다.     물론 요즘 뒷 자리를 잘 쓰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 들의 느낌이 좋지 않다. 

 

면연력이 떨어져서인지 눈다래끼가 나서 안과에서 가서 항생제 점안액과 연고를 받아 왔는데 잘 낫지 않아 결국 다시 가서 째고 고름을 짜 냈다. 

 

몸도 아픈 곳이 많고 체력도 떨어지니 두뇌도 그 기능이 자꾸 떨어지는 것은 생물학적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드려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 속도를 늦추고 싶다.

 

평균 수명이 늘어 난 지금 내가 일찍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두뇌도 운동을 하면서 기능의 저하를 늦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23-MAY-2018)에 다시 우을증과 불안감이 두뇌의 노화를 촉진시키고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PUBLIC RELEASE: 23-MAY-2018

Depression speeds up brain aging, find psychologists

Psychologists at the University of Sussex have found a link between depression and an acceleration of the rate at which the brain ages

UNIVERSITY OF SUSSEX

 

 

뇌도 운동도 하고 잘 섭생을 해야 한다. 

 

위의 그림을 보면 뇌도 역기를 들 듯 운동도 하고 섭생을 잘 해야 한다고 한다.     

 

25000 개의 연구논문을 검색하여  34개의 이 연구 기준에 합당하는 논문을 찾아내었고 이 결론에 도달하는데 기여한 대상 인원은 총 7100 인이 었다.  

 

기여인원은 연구를 착수할 때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로 골랐고 그들의 평균 연령은 72.15 세였으며 평균 6.61 년간 추적하여 내린 결론이다. 

 

그들의 두뇌 기능의 저하에는 기억력 감퇴,  의사결정과 같은 실행기능 감퇴, 정보처리 능력등이 포함되었다. 

 

Evidence from more than 71,000 participants was combined and reviewed. Including people who presented with symptoms of depression as well as those that were diagnosed as clinically depressed, the study looked at the rate of decline of overall cognitive state -- encompassing memory loss, executive function (such as decision making) and information processing speed -- in older adults.

 

연구 방법이 독특한 것은 한 연구 팀이 7만명이상의 대상을 골라 연구할 수 없으니까 기준에 맞는 기존의 34개의 논문을 찾아 내어  종합하여 내린 결론이라는 점이다.(meta-analysis)

 

dataism 시대가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연구 방법이다.   이 연구 법은 longitudinal studies (종단 연구)라고 불리기도 한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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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08 13:43

    공연히 선생님 건강만 나빠지셨군요. 언잖은 것들은 다 잊으시고 늘 즐겁게 지내시면 다시 건강해 지실테니 우울해 하지 마십시요..

  2.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1.14 10:01

    그렇군요..요즈음은 뉴스도 해악입니다.-.-
    재미있는 하루 시작하세요...

희대의 가짜 뉴스 이야기

 

광란의 한달이 갔다.  귀국한지 며칠 지났지만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나이 탓인지 시차 적응도 전 보다 시간이 걸리고 가짜 뉴스의 광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어제로 일단 그 종말을 맞았다.   아직도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 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원주의 시각에서 보면 화를 낼 것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종교의 종말"을 쓴 Sam Harris 의 명언을 되 새겨 보자.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일으킨 재앙과 9/11 이 일으킨 재앙은 비슷한 규모인데 두 재앙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엄청히 다르다.    카타리나의 재앙에 대해서 그 누구도 기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단지 복구에 최선을 다 할 것만 강조했다.   그런데 9/11 에 대해서는 "테러와의 전쟁" 을 선포하면서 복수의 "광란"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다쳤는가 묻는다.   "증오"는 "독"이다라고 말한다.  개인을 망가트리고 사회를 망친다.  

(“Compare the response to Hurricane Katrina,” Harris suggested, with “the response to the 9/11 act of terrorism.” For many Americans, the men who hijacked those planes are the embodiment of criminals who freely choose to do evil. But if we give up our notion of free will, then their behavior must be viewed like any other natural phenomenon—and this, Harris believes, would make us much more rational in our response.

Although the scale of the two catastrophes was similar, the reactions were wildly different. Nobody was striving to exact revenge on tropical storms or declare a War on Weather, so responses to Katrina could simply focus on rebuilding and preventing future disasters. The response to 9/11, Harris argues, was clouded by outrage and the desire for vengeance, and has led to the unnecessary loss of countless more lives. Harris is not saying that we shouldn’t have reacted at all to 9/11, only that a coolheaded response would have looked very different and likely been much less wasteful. “Hatred is toxic,” he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Losing belief in free will undercuts the rationale for ever hating anyone.”)

 

지난 한 달의 광분은 바로 나를 포함한 개개인에게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을 주었고 사회는 반 쪽이 나는 분열을 가져 왔다.   역사는 자연 현상이라는 환원주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광분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낭비였다.  

 

뭔가가 잘 못 되었다면 이성으로 돌아와 합리적 해결책을 머리를 맞 대고 짜면 되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고 공격하고 광분해서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허리케인이 또 오면 어떻게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를 머리를 맞 대고 연구하고 방안을 짜는 것이다. 

 

이성으로 돌아오라고 나는 외친다. 

 

광란에 휩싸였던내 블로그의 독자를 위해 희대의 가짜 뉴스를 하나 소개하고  끝 맺으려 한다.  내가 전에 어쩔 수 없이 ET 이야기를 쓰게 된 이야기를 올린 일이 있다. 

 

 

 

경향잡지에 실렸던 내 ET 이야기

 

 

이 글은 원래 실렸던 것 보다 훨씬 축약된 버전이다.  원 버전은 엑스포 책자로 나왔고 그책자는 사라졌다.  나도 원고가 없으니 여기서 재현할 수 없다. 

 

그 때 내가 썼던 가짜 뉴스 이야기를 대강 더듬어 아래에 소개한다.

 

지금 부터 184년 전인 1835년 8월 21일 뉴욕에서 발간하는 "The Sun" 이라는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가 실렸다.  달에 생명체가 발견되었고 그 일부는 문명을 건설했다는 기사가 곧 실릴 것이란 광고였다. 

 

그리고 6 편의 연속 기사가 올라 왔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쉘 경(Sir John Herschel)이  최첨단 원리를 이용하여 어마무시한 망원경 (an immense telescope of an entirely new principle) 을 제작하여 달을 관측한 결과 달에는 박쥐 비슷한 날개를 단 사람  모양의 생명체가 관측되었으며 그 외에도 지구상의 생물 비슷한 생명체가 여러 종류 관측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는 그 망원경은 잘못하여 태양광이 들어와 망원경 안의 초첨에 고열을 발생시켜 폭발하여 천문대가 모두 소실되어  더 이상 관측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로 뉴욕의 "The Sun" 지의 구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 기사는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자기 이름이 도용된 영국의 천문학자 허쉘경이 이 소식을 들은 것은 한 참 뒤였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처음엔 그저 장난이려니 하고 웃어 넘기려 했으나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전 세계 기자들과 방문객이 쇄도하는 바람에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가짜 뉴스라고 "The Sun" 지에 정정기사를 내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The Sun" 지도 결국 그 기사가 가짜 뉴스라고 정정하였지만 그 가짜 뉴스는 그 냥 퍼져 나갔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짜뉴스에 더하여 또 다른 신문이나 잡지가 달에 외계인이 산다는 가짜 뉴스를 또 지어 퍼뜨리는 바람에 이 가짜 뉴스는 한 동안 잠잠해 지지 않았다 한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가짜 뉴스는 그냥 믿는 것이다.   달에 대한 이 환상적인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믿고 싶은 로맨틱 환타지가 되어 퍼지고 그 것이 돈 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안 저질 신문이나 잡지는 계속 가짜 뉴스를 지어 퍼뜨렸던 것이다. 

 

 

달 위에 산다는 ET

 

 

1835년 "The Sun" 지에 실렸던 달의 풍경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은 가짜라도 믿는다.   그 것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가짜 뉴스를 믿는 것은 좋다.  어차피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뇌의 구조가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짜 뉴스를 믿고 미움(hatred) 을 키우지는 말라.

 

“Hatred is toxic,” he(Sam Harris) told me, “and can destabilize individual lives and whole societies."

 

Sam Harris의 글 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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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0 20:39

    잘 다녀오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2.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11 00:45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심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3. 수문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9.20 08:49

    잘 다녀 오셨군요...^^

조국 후보자 딸 C양의 병리학 저널 논문 제 1 저자 논난에 대한 내 변론

 

세상을 보는 눈은 보고 싶은 시각에서 보면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     그렇게 프레임을 짜 놓고 보면 그렇게 만 보이고 또 듣고 싶은 것만 골라 자기 프레임에 짜 맞춘다.   

 

내가 이 C양이 제1 저자가 되었다는 논문을 다운해서 읽어 봤다.  그리고 그 저널의 배경을 면밀히 살펴 봤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C양이 제1 저자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인터뷰한 교수라든가 줏어 들은 이야기는 C양의 논문이 나온 저날이 대단한 저널로 추켜 세워 놨는데 나는 그 반대다.  

 

난 실제로 한국에서 이런 영문 국제 학술저널을 직접 편집 간행해 본 경험이 있다.   나는 한국물리학회 초창기 한 번 한국물리학회지 Journal of Korean Physical Society 라는 영문 저날과 새물리라는 한글 학술지를 편집하고 출간하는 업무를 주관하는 편집이사직을 맡았었고 정년 임박해서도 한 번 더 편집위원장겸 부회장의 직을 맡은 일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영문 저널을 편집하고 간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연구활동을 많이 하고 연구논문을 많이 쓴 학자라고 해서 학술지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상적인 원론만 그럴 듯 하게 대답하면 기자는 자기 프레임에 짜 맞추기 기사를 쓴다.

 

한국에서 영문 학술지를 발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영어권에서 공부하고 영어로 박사 논문을 썼고 영문 저널에 논문을  몇 편 냈다 해도 귀국해서 영문 논문을 혼자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물리학회의 영문저널 JKPS(Journal of Korean Physical Society) 초기에는 연세대학에 와 계셨던 미국 물리학 교수 한 분을 영구 편집위원으로 모시고 최종 영어 교정을 보시게 했다.  그 분이 은퇴 후에도 아마 다른 미국인 교수를 모시고 저널을 발간했을 것이다. 

 

내가 나중에 편집위원장 할 때 쯤에는 호주에서 돈 받고 비영어권 학자의 과학 학술 논문 영어 교정을 해 주는 서비스 업체가 생겨서 많은 저자들이 그 것을 이용했다.

 

대한 병리학회도 그 속은 비슷할 것이다.  뭔가 국제적 학술지를 내고 싶어 야심찬  시작을 했을 것이다.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에 등록도 하고 뭔가 국제적 저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SCI 나 SCIE 에 등록을 하면 대단한 줄 알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인용회수 통계 내 주는 데이터 베이스에 올리게 해 달라는 것 뿐이다.     

 

어느 인터뷰한 교수가 C 양이 제1저자로 된 논문이 실린 학술지는 지금은 아니지만  C 양의 논문이 실릴 당시는 SCI 에 등록되었다고 마치 그 땐 대단한 "급"의 학술지인 것처럼 기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봤다.  

 

난 그것이 수상쩍어 이 학술지의 역사를 자세히 조사해 봤다.

 

내 조사결과는 이 학회의 학술지는  1990 에 처음으로 "Korean Journal of Cytopathology(세포병리학)"이라는 한영 학술지를 간행했던 것 같다 어쩌면 세포병리학회와 병리학회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문 이름의 잡지라 해도 한글 논문이 섞여 있으면 인용회수를 통계 내는 데에 지장이 있으니까  2009년에 영문 전용의 학술지 "Korean Journal of Pathology" 라는 이름의 학술지를 런칭한다.    이 학술지는 2014년에 종간되고 다시 "Korean Journal of Pathology and Translational Medicine{병리학 및 중개의학)"란 새 잡지로 새로 탄생한다.   현존 이 학술지는 SCI 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방송사와 인터뷰한 교수의 말인 듯하다.

 

SCI 에 등록된 저널은 대단한 저널이고 아니면 별 볼릴 없다는 뜻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저널의 퀄리티는 SCI 등록 여부가 아니라 그 데이터 베이스를 써서 계산한 인용지수(Impact Factor)가 중요한 것이다. 

 

인용지수란 무엇인가? 

 

예를 들면 2012 년 인용지수란 2010년과 2011 년에 Korean Journal of Pathology 에 실린 논문이 이 데이터베이스의 모든 저널의 2012년 논문에 인용된 건수를 그 두해(2010년과 2011년)에   Korean Journal of Pathology 에 실린 논문수로 나눈 것이다.   간단한 것이다.  

 

이 인용지수가 중요한 것이지 그 인용지수를 계산하는데 넣어 달라고 해서 등록한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는 기자들은 대단한 저널인 냥 떠들어 댄다.

 

그렇다면 이 저널의 인용지수는 얼마 인가.  이 학회지의 홈피에 나와 있다.  2012 년 인용지수 IF(Impact Factor) 는 0.174 로 나와 있다.

 

대한병리학회지 홈피에 기재된 인용지수는 0.174 다.

 

이 숫자만 가지고는 일반 사람들도 기자도 판단 못한다. 

 

기자가 "기레기"소리를 안 들으려면 Investgative reporting 을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저 이 교수 저교수 말 여기저기 듣고 자기가 미리 짠 프레임에 짜 맞추기하면 "기레기"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뭘 공부하려면 인테넷에 정보가 널려 있다.   아래에 SCI 에 등록된 저널의 IF 분포로 랭킹을 테이블로 표시한 것이 있다.

 

 

인용지수의 분포도 1.0 이하는 하위 28.8% 에 속한다.

 

그런데 위의 C 양의 논문 저널은 그 하위 28.8% 중에서도 아주 밑에 속한다.   단순 선형 내삽 (linear interpolation)하면 하위 5% 가 된다.    이 정도 랭킹이면 힌국을 빼고 외국 의대의 도서실에는 거져 보내 주어도 비치도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사지 않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저널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  실제 이 저널은 실패한 저널이다.   런칭한지 5년 되던해 종간했고 새 저널로 갈아 탔다.  내부적으로 대한 병리학회의 학회지 일지 모르지만 외부적으로 전혀 다른 저널이다. 

 

 

이 저널은 2009년에 창간되고 2014년에 폐간된 것으로 나온다. 

 

 

2015년 부터는 "병리학 및 중개의학"이란 새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  어느 기자가 인터뷰한 교수도 그랬지만 이 저널은 SCI 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검색해도 IF  데이터가 없다. 

 

 

다시 말하면 C양의 논문이 실렸던 저널 Korean Journal of Pathology는 엄청 고전하다 결국 실패한 저널이다.    한국에서 왜 영문 국제 저널이 실패하는가?  그것은 언어의 문제다.  나도 평생 영어로만 논문을 썼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독창성(originality)이 있는 좋은 논문이라면 이렇게 어렵게 쓴 영문 논문을 왜 인용지수가 바닥을 기는 한국 영문학술지에 투고하겠는가?    대부분의 연구자는 자기 연구가 어느 정도 수준의 학술지에 실릴지 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의 영문학술지에 투고하기 위해서 논문 쓰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IF 가 높은 저널에서 거절 당한 논문 정도가 한국 영문학술지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저자들은 그런 사실을 감추고 본인이 발설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IF 평점이 나쁜 저널은 가중적으로 그 저널의 질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아마도 Korean Journal of Pathology 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을  것이다.   이렇게 저널이 외면을 당하면 학회 임원이나 편집진은 학회가 끝난 다음 공지사항으로 학회 회원들에게 호소한다.

 

새 영문 학술지를 런칭했는데 원고가 들어 오지 않는다.   KJP 에 많이 투고해 주세요.  다른 저널에 논문을 내셔도 KJP 논문 많이 인용해 주세요 .   마지막으로 우리가 심사기준을 획기적으로 낮췄으니 영어만 잘 쓰고 우리 저널 포맷에 맞게 써서  투고해 주세요.   

 

마지막 호소는 내용 안 볼 테니 영어만 잘 써서 저널 포맷에 맞게 논문을 써서 투고하면 다 받아 주겠다는 신호다.  

 

편집진의 입장에서는 격월제라고 했는데 결호가 생기면 큰 일이다. 

 

이 때 마침 C 양이 J 교수가 주관하는 학부형 학생 맺어 연구 인턴쉽 프로젝트에 들어 온다.   2008인지 2009년 경이다. 

 

Korean Journal of Pathology 가 새로 런칭하고 고전할 때다.   C양이 쓴 논문은 한글로 쓴다 해도 논문으로 학술지에 실릴 만한 새로운 것이 없는 논문이다.  

 

내가 그렇게 추측하는 것은 그 논문안에 있다.   

 

 

 

이 논문  Materials and Method 에 보면 실험 대상자는 2002년과 2004년 사이 단국대학 병원에 입원한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이 논문이 발표되기 7년전에서 5년전 사이에  입원한 신생아서 sample 을 채취한 것으로 실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가 5년식이나 걸리는 복잡하고 장대한 연구가 아니라는 것은 나같은 문외한이 봐도 금 방 알 수 있다.    생체 sample 을 5년씩이나 보관할 수 없었을 터이니  필요한 데이터는 이미 추출하고 생체 sample 은 폐기했었을 것이다 .    그렇다면  데이터가 있는데  5 년씩이나 논문을 쓰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이 데이터는 이 논문과 비슷하거나 조금 다른 연구에 쓰였고 데이터 파일에 "굴러 다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C 양이 쓴 논문이 독청성이 있고 의미 있는 연구였다면 왜 5년씩이나 묵히고 있었겠는가?   연구라는 것은 빨리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것이 경쟁자게 그 공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모든 연구자가 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별 볼 릴  없는 연구였을 가능성이 많다.  한글로 썼다 해도 발표할 만큼 독창성(originality) 가 없거나 너무 잘 알려진 루틴으로 논문 가치가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막 런칭한  Korean Journal of Pathology 는 논문이 안 들어 와 고전하고 있고 편집진은 영어만 유려하고 포맷에만 맞게 써 오면 다 받아 줄 것 같은 언질을 받았으므로 마침 C양이 영어를 잘 하니까 영문 논문을 작성하게 한 것이다.

 

어차피 루틴 데이터 분석이고 이미 다 알려진 선행연구가 있어 오리지널리티가 없어 다른 저널에는 실릴만한 연구가 아니라면 여기서 제1, 제2 저자를 따질 건더기가 없는 것이다.   영문으로 쓰지 않으면 세상 빛을 못 볼 논문을 C 양이 써 준 것이다.    C양이 논문 내용을 알았냐 몰랐냐도 의미 없는 물음이다.  

 

그 럴 때 제 1 저자는 누가 가장 합당한가?  논문 내용이 originality 가 없다면 그 논문의 기여도 가 가장 큰 사람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연구 내용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C 양 아니면 빛을 못 봤을  논문이라면 C양이 가장 공적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변론은 시나리오다.   몇개의 증거물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판사는 양쪽의 시나리오중에서 가장 개연성이 높은 편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증인이 없다.  증언해 줄 만 한 사람은 증언을 하는 순간 학회와 그 저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이 것이 C양이 제1 저자가 될 수 있다는 내 변론의 요지다. 

 

2019 Aug 27

 

Amsterdam 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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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 pae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28 03:37

    선배님의 예리한 분석이 이번 청문회에 반영 되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2. 근데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28 03:41

    > 영문으로 쓰지 않으면 세상 빛을 못 볼 논문을 C 양이 써 준 것이다. C양이 논문 내용을 알았냐 몰랐냐도 의미 없는 물음이다.

    글을 보면 변론의 근거는 오로지 논문을 영어로 C양이 썼다는(영작했다는) 가정하인거 같습니다. 그런데그 증거도 없어요. 공동저자중 David Chanwook Chung 이 있는걸로 봐서 이사람이 적어도 draft룰 썼을 가능성이 높을거 같은데. (그리고서 철자 몇개 고쳐준걸 이야기하는건 아니겠죠?) 확인해주세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8.28 03:49 신고

      가정이 아니라 J교수가 C 양이 번역이 아니라 직접 쓴 것이라고 뉴스 쇼에서 공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변론은 시나리오입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개연성이 있는가입니다. 판사가 인용하기 나름으로 판결이 나는 겁니다.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8.28 07:14

    진짜 한심하네요

하마터면 못 올 뻔했던 길을 걸어왔다. - 그 무서웠던 운명의 갈림길

 

625 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그중의 하나다.   

 

전에 박완서님의 "못 가 본 길이 아름답다."라는 책에 대해서 썼을 때 내 운명에 대해서 몇 줄 언급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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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625의 60돌을 맞아 내 625 생존기를 내 블로그에 올린 일이 있다.  나도 625로 인해 가정이 와해되고 전쟁고아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해사에 들어가 물리학을 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썼었다.

 

내가 해사를 뛰쳐 나와 내 가고 싶던 길을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길을 갔을까?    나도 역시 이 책의 저자처럼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난 가고 싶었던 길을 갔고  행복하고 후회 없이 살았다는 것이 저자와는 다른 점일 것이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64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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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가볍게 몇줄로 적을 만 큼 내 운명의 갈림길에서 쉽게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난 그때 내가 겪었던 처절했던 내 "투쟁"에 대해 기록해 두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내 625 생존기  에도 간략히 언급했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지리멸멸되었던 우리 가족은 625 전쟁으로 완전히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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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서도 난 장래 물리학자가 되려는 꿈을 키우며 청계천변 헌 책방에서 산 일본어 수학이나 물리 책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이 아무개라고 써넣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고3이 되자 내 장래를 내가 결정해야 할 상황에서 일반대학에 들어가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해군사관학교에 가자는 것이었다.  그땐 3군 사관학교가 모두 4년제 정규 사관학교로 정착되어 졸업 후 이학사 아니면 공학사 학위까지 주도록 되어 있었다.

 

혼자 떠돌이로 살던 때라 공짜로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주고 거기에다 공부까지 시켜 주는 사관학교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해군 사관학교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미국 해군사관학교(Annapolice) 출신의 노벨 물리학자  마이켈슨에  고무되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561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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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해군 사관학교를 그대로 흉내 내어 만들었다지만 한국 해사는 전혀 다르게 운영되고 있었다.    

 

긴 고민 끝에 다시 내 새 운명을 개척할 것을 결심한다.    내가 해사를 뛰쳐나올 만한 용기가 있으면 사회에 나가 일반 대학에 진학하여 고학을 해서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생긴 것이다.   

 

이 "용기와 자신감"에만 의존해 어마 어마한 일을 벌인 것이다. 

 

사실 사관학교 교칙에는 자퇴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교칙은 교칙일 뿐 실제 자퇴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과실점을 충분이 받아서 퇴교 처분을 받아 낼 생각을 한 것이다.   탈영은 퇴교에 해당하는 과실점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미련한 짓이었다.

 

1954년 11월 어느날  아침 난 몰래 사관학교 뒷산으로 올라가 탈영을 했다. 음주 흡연도 거의 퇴교에 가까운 과실점을 매긴다.  난 저녁에 진해 시내에 들어가 막걸리를 사서 마시고 필 줄도 모르는 담배를 사서 몸에 지니고 교문을 통해 사관학교에 들어왔다.

 

그러나 내 계획은 교칙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교장이었던 이용운 준장의 교장실에 불려 가 회유를 받은 것이다.    내가 12기 수석으로 들어왔는데 내가 퇴교를 하면 동기생들이 동요가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교장은 내가 퇴교 의사를 철회한다면 탈영 기타 교칙 위반은 가벼운 과실점으로 처리하고 내가 졸업하면 유학을 보내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의 두 달 고민을 하고 그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 것인데 이제 교장의 회유를 수용한다면 무슨 꼴인가.   더욱이 교장이 무슨 수로 내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건 그냥 당장 내 퇴교를 막으려는 감언이설일 뿐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교장은 내가 자기의 회유를 거부하자 격분하고 휴전은 휴전일뿐 아직도 전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의 탈영을 최고 총살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죄라고 위협하고 사관생도는 준사관이니 고등 군법 회의에 회부하겠다고 해병대 영창에 수감시켜 버린 것이다.

 

1954 11월 중순에 나는 해병대 영창에 수감되어 고등 군법회의를 기다리는 몸이 된 것이다.

 

그때 난 겨우 19번 째 생일 지난 지 며칠 안된 아직도 청소년일 때였다.  난 이 모든 사단을 어머니나 누님 가족에 알리지 않았고 나 홀로 맞섰다.   내 인생의 최대 위기를 내 홀로 맞아 싸웠다.  

 

사람이 불안해지는 것은 미래가 가장 불확실할 때다.   영창에 갇힌 후 한 두 번 해군 법무관이 나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서울 법대를 나와 해사 교관으로 사회과학 관련 교양과목을 가르쳤던 분 같다.   

 

내 변호인 격으로 방문한 법무관은 이 모든 과정은 교장의 독단으로 적법하지 않은 절차인데 사관학교 겨울 휴가를 보내고 나면 귀교하지 않는 생도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 일종의 시범으로 군법회의를 연다는 것이다.   생도들의 휴가 전날 강당에서 전교생을 앉혀 놓고 열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날 군법회의가 열리면 어쩔 수 없이 휴가 가는 생도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라도 중형을 내리게 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것은 위로가 되지 않고 불안만 가중시켰다.

 

나는 기도 이외에 무슨 다른 할 일이 없었다.   그 때도 예비신자로 진해 성당에 다닐 때였다.   대림절에 부르는 성가를 입속으로 되뇌면 기도만 했다.

 

가톨릭 성가는 대부분 기도문이다.

 

구세주 빨리 오사 어둠을 없이 하사.. , 성조에게 허락하신 메시아를 보내소서 어지러운 세상에 방황하는 우리들의 간구함을 들으사… , 우리를 괴롭히니 이 어려움 이기게 도와 주옵소서…

  

 

어두움을 없이 하사..

 

내게서 이 불안을 없애주소서

 

 

사관학교에 응시하고 나서는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를 했고 이젠 내 인생의 가장 캄캄한 암혹을 없애달라고 기도를 하는 아이로닉 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군법회의를 기다리던 진해 해병대 영창에서의 20여 일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캄캄했던 불안, 절망의 암혹기였다.

 

사람이 종교적이 되는 때는 바로 이런 암혹기다.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해도 벗어 날 길이 보이지 않는 그 절박함이 절대자에게 구원을 빌게 되는 것이다.

그때 내 변호인 격인 법무관이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어떻게든 전교생 앞에서 군법회의를 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탈영 직전 한 두 달간 거의 묵언으로 보냈다.   내 고민이 깊기도 했지만 내가 퇴교의 계획이 혹시라도 새어 나가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대신 일기만 열심히 썼다.  이 사실이 득이 되기도 했고 해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거의 두 달 묵언으로 지낸 사실을 지적해 내가 저지른 탈영은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해 정신 감정을 받게 하고 재판을 열 것을 주장했다.   배심관 대부분은 사관학교 교관(교수)들이었고 교장과 몇 골통 훈육관을 빼고는 이 군법회의는 적법한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심관들이 모두 동의하였기 때문에 난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의 재판을 모면할 수 있었다.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난 영창에 재수감되는 대신 환자로서 위병 하나의 감시를 받으며 사관학교 의무실에서 입원환자 대우를 받으며 다음 군법회의를 기다렸다.  

 

정신감정 결과는 정상으로 판정이 나왔고 생도들이 다 떠난 빈 강당에서 2차 재판이 속개되었다.    이 재판의 판결은 근신 1개월이었고 이어 퇴교라는 행정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에 판결 결과는 무의미한 것으로 끝난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갈망했던 퇴교처분을 받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이 운명을 가른 한 장의 종이 쪽은 내 생애의 가장 처절했던 암흑기를 이겨 낸 훈장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이 종이쪽을 간직하고 있다. 난 그 이듬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지금의 길을 걸어 왔다.

 

 

1954년 겨울 내가 용기를 내지 않고 머뭇거렸다면 나는 결국 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쯤 그 길의 종착점 근방을 서성이며  "그때 난 물리학자가 꿈이었는데.."  하고 못내 아쉬워하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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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29 09:51

    어쩌면 해사에 계셨어도 결국 이 길로 오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6.29 12:14 신고

      동기중에도 사관학교 졸업하고 늦깎이로 물리학 교수가 된 사람이 두엇 있긴 있습니다. 임관후 한2년 일반근무를 하다고 사관학교 교수요원 코스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학사편입하고 졸업후 유학도 가고 해서 사관학교 교수를 거쳐 퇴역후 일반 대학 교수로 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공부란 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만족스런 과정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2. brupri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7.01 01:29

    한 편의 영화와 같은 내용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3. 황성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7.03 07:02

    젊은 시절 일반 사람과 달라도 뭔가 다르셨군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과도 많고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오래 전 그의 전기를 보니 젊은 시절 선생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려 자신의 길을 헤쳐나간 것 같더군요.

    문득 생각이 나네요. ㅎ

76년 전에 내가 쓴 엽서

 

오늘 나는 참으로 희귀한 문서 하나를 건졌다.      내가 76년 전 1943년 2월 18일에 쓴 엽서를 얻은 것이다. 

 

이런 문서가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며칠전 셋째 누님의 두 째 딸인 생질녀가 우리를 찾아왔었다.   그때 제 어머니가 되는 셋째 누님 이야기를 하다가  그 누님의 옛 일기에 내 어렸을 때 이야기를 쓴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생질녀는 이젠 70대의 할머니지만 끝까지 누님을 모시고 살았던 효녀다.     그래서 어머니(셋째 누님)의 유물을 가직하고 있었던 듯하다.  거기에도 내가 올렸던 사진도 있다고 했다.     그중의 하나가 내가 그 누님의 신혼초일 때 도쿄 누님 집을 갔다고 기념사진으로 찍었던 것이다.

 

    전에 그 이야기와 사진을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포스팅을 보여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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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에(1942년?) 셋째 누나는 도쿄에 사는 매형과 결혼했고

난 국민학교에 들어 간 다음 첫 여름방학에 바로 위의 누나와 함께 도쿄 누님 댁에 놀러 갔었다.

1943년(?) 여름 토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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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생질녀가 다른 볼 일이 있어 다시 찾아왔다.  그 때 내 이야기를 기억했던지   제 어머니(셋째 누님)의 유물 가운데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내가 매형(생질녀의 아버지)에게 쓴 엽서라고 가지고 왔다.   "일어라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외삼촌인 아저씨가 쓴 것이니까 내가 보관하라고 주고 갔다.

 

매형의 일기장 비슷한 문서도 함께 가져왔다.

 

장난감 엽서는 아주 작은 사이즈다.

 

 

 

도쿄의 형님에게  오사카의 사다미츠 이사오(내 당시의 일본 이름)

 

 

엽서 뒷 면

 

"형님은 오겐키 데스까(건강하신가요?) 보꾸와 겐끼 데스 (저는 건강합니다) 처음 오셨을 때 스모토리(일본 직업 시름꾼)인 줄 알았어요.   저는 누님이 ***  가고 싶으니까 보러 가게 해 주세요.  동경에 가게 되면 후지산도 볼 수 있으니까 가고 싶네요.  이 엽서는 스모토리가 사 주신 엽서예요.   쇼와 18년 2월 18일 사요나라(안녕) "

 

일부 글자는 판독할 수 없어 ***으로 대치했다. 

 

1943년 2월 18일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1942년 4월에 고꾸민각코(국민학교,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까 아직 2학년에 오르기 전이다.      

 

  

 

 

미나토야 고꾸민각꼬 입학생

 

 

 

그 뒷면에는 선친이 쓴 촬영 일자와 내 생년 월일이 적혀 있다.

소화 17년은 1942년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70년 전이다.

당시는 조선사람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차별과 구박이 심해서

아버지는 내게 일본 이름을 따로 지어 주신 것 같다.

어떻게든지 "조센징 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려는 아버지의 고심 어린 배려였다.

이 학교에도 또 그전에 다닌 유치원에도

일본말이 서툰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버지가 시간을 내어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동경으로 출가한 셋째 누님이 학부모 노릇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내 일본 이름이 <사다미츠 이사오>가 되었던 것이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87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이 셋째 누님 역시 어머니 같은 분이다.   

 

내가 어렸을 때 무척 귀여워해 주셨는데 초등학교 1학년 전후해서 도쿄의 매형에게 시집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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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5월 29일(일)

임시 시험이 어제로 끝났다.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홀가분한다. 

(남)동생의 말소리도 많이 자랐다. 작년에 <신군노우따>부를 때와는 영 다르다.  요지음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대체로 또렷하게 발음한다. <미요 토오까이노 소라아께떼>하고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너무 귀여워 죽겠어서 레코드래도 취입해서 영구히 남겨 놓고 싶은 기분이 들 지경이다.  동생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4살쯤 되었을 때 자기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알고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 할까 생각해 본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630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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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형이 처음 오사카에 왔을 때 머리 모양이 일본 스모토리(프로 일본 씨름꾼) 같아서 스모토리란 애칭으로 그 매형을 불렀었다.   그 매형이 어린 처남인 나에겐 장난감 우편 국 세트를 사 주셨는데 거기엔 엽서,  우표 스탬프 등 우편국에서 취급하는 여러 용품들이 있었다.   그 걸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장난감 엽서에 이 편지를 썼던 것이다.

 

참으로 생각도 못한 내 76년 전 내 필적을 보게 될 줄이야..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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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28 00:00

    소중한 메모리가되는 것들을 구하셨네요
    총명한 어린 소년의 모습이 그때부터 보입니다

  2. 황성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28 10:04

    예전에 읽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가슴이 찡합니다.
    사람 사는 근본 모습은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원 전에 지구 곳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요.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6.28 11:57 신고

      공감합니다. 이런 옛 유물들을 보면 아련한 기억들이 서글프게 다고 옵니다. 애환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이 모두 고인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손자에게 장난감 사 주고 경찰에 고발당한 할머니 

 

요즘 미국 아마존 온라인 쇼핑몰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지 한국말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도 이젠 글로벌로 가는 것 같다. 

 

사실 몇 년전 까지만 해도 한국으로 배송해 주지 않아서 배송 대행업체를 이용해서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야 했다.

 

지금은 해외배송이 안되는 물건이 예외적일 만큼 한국 배송이 일반화되었다.

 

송료와 환금수수료까지 계산해도 한국에서 수입해서 파는 물건 값보다 아마존 직구가 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물건만 있으면 한국 대리점에서 수입한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다.   배송 시간이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달에 강남 코엑스 몰에서 Playmobil 이란 미국 장난감 회사의 장난감을 특별 전시하고 5월 말까지 30% 세일을 했다.     4돌이 되려면 아직도 4 달 더 지내야 하는 유아원생 손자 놈이 부모와 같이  거길 갔다가  playmobil 장난 감 하나를 사 가지고 왔다.   

 

그러더니 할머니한테 와서 "할머니와 같이 코엑스 가고 싶다"고 보챈다.  할머니하고 가고 싶다는 것은 그 임시 매장에 가자는 이야기이고 장난감 사달리는 이야기다. 

 

이젠 성년이 된 큰 손녀가 어릴 때에는 우리 부부가 손녀만 데리고 나들이를 하기도 했지만 이젠 우리끼리 손자를 데리고 나들이할 만 큼 기운이 없다.  

 

그래서 손자놈이 유치원에 간 사이에 코엑스 임시 매장에 가 보았다.   그런데 그놈이  사 달라고 하는 장난감은  거기서 집어 온 카탈로그에서 본  화성 탐사 우주선인데 매장에는 없다.   직원에 물어보니 카탈로그에 있는 물건이 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니까 그 탐사선 장난감은 6세 이상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손자에게 6살 이상의 장난감인데 넌 아직 어리다고 하니까 자기도 6살이란다.   언제 부터냐니까 "오늘부터"라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한다.     일 단 이렇게 걸리면 사 주지 않고는 배기는 수가 없다. 

 

그래서 해외 직구를 하기 위해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아마존에 들어 가 보니 Playmobil 제품이 모두 나와 있었다.   

 

거기에다 모든 playmobil 제품은 한국 배송이 된다고 한다.

 

더 더욱 놀란 것은 아마존이 한글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배송하는 것이 원칙이 되다시피 했고 이젠 한국어로 웹 페이지를 제공하고 하고 있다. 

 

한국어 말고도 중문 간체(중국) 번체(대만) 스페인어(멕시코) 포트 갈아(브라질) 독일어까지 있다.      

 

아마존이 명실 상부 세계화가 된 셈이다.   

 

 

한글말로 쇼핑하란다.

 

아모존 언어 설정 페이지

 

아마존에서 산 우주탐사선 장난감 6세이상이라지만 손자는 자기가 6살이라고 우긴다.

 

이 장난감은 주문했다는 것만 알려줬지 사진이나 그림은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 오냐고는 해도 크게 떼쓰지 않았다.   그림을 보지 않았으니 샀다는 자체의 실감이 덜 한가 보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마존을 검색하다 "말 따라 하는 로봇" 장난감이 있어 재미 있을 것 같아 하나 더 사 주기로 했다.  두 가지가 있어 손자를 불러 어떤 것이 더 좋은가 선호도를 물었다.   

 

이 것이 큰 실수였고 화근이었다.    물건을 보여 주고 주문했다 하니 금방 가질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 것이다.

 

이 로봇에 상세한 설명과 그림까지 보고 났으니 갖고 싶어 조바심이 난 것이다.   주문하자 마자 언제 오느냐고 보챈다.   10 밤 자야 한다고 했더니 "나 열 밤 자기 싫어" 하며 떼를 쓴다.     "아무리 떼를 써도 여기 없어,   미국에서 오려면 10 밤 걸려"  하고 할머니가 달래도 막 무가네다.

 

할머니가 사 줬다가 봉변 당한 말 따라 하는 로봇

 

 

나중에 울며 떼를 쓰다 "할머니 나빠"하고 화를 내고 제 집으로 내려가 버렸다.  

 

얼마 후에 며느리가 오더니 손자가 "할머니 나쁜 사람이라고 경찰 아저씨 불러 잡아가라고 해" 한다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술 받아 주고 뺨 맞는다" 라는 속담이 있지만 "장난감 사주고 경찰 고발"당하는 할머니가 여기 있다.

 

 

할머니가 주문한 로봇 장난감.   이것때문오 고발 당했다.  그래서  미리 사다 놓고 감췄다 주려고  Playmobil 장낭감 하나를 더 주문했다.  또 다시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고

 

배송 상태 추적하니 아진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업데이트 보기를 하면 더 자세한 배송 상태를 추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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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20 11:49

    글 제목이 분명 fact 이긴 한데.. 아무래도 선생님께 낚인 것 같습니다.ㅎ

  2. D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20 11:58

    저도 낚였습니다.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 10 주기란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던 나는 10년전 그의 장례식을 보며 눈물 흘렸던 일을 기억해 냈다.     그 때 내 블로그(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이 블로그를 옮길 때 따라 오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그 글을 옮긴다.

 

원문  참으로 슬픈 날이었다.

**************************

참으로 슬픈 날이었다.

 

아침 10 시부터 저녁 8시 가까이 될 때까지 내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TV 중계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난 원래 정치인을 싫어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 같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치고 근복을 입은채 어슬렁 댈 때 419 가 났으니 이승만시절부터 10 번이 넘게 대통령 선거에 참가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맞춘 몇 안되는 대통령중에 한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내 연배에 노무현 대통령의지지자는 소수중에 소수에 속한다.  더욱이 내 주변은 하나 같이 주류들이니 당연히 나도 "반노"로 치부된다.

 

그러나 겉보기엔 주류 같이 보여도 난 비주류다.  내가 살아 온 길이 그렇고 그 삶에서 형성된 내 생각이 그렇다.   

 

전여옥 의원 같은 사람은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 대통령이 되는데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반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대학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더 좋아 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대통련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학에 가기 어려운 소외된 계층에 얼마나 큰 희망을 주겠는가 ?

 

노대통령이 은퇴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같은 우리학과의 은퇴한 명예교수들 모임이 있었다.   

 

혹시라도 정치나 경제 얘기가 나오면 하고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 때 내가 한 말은 노정권이 경제를 망쳤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경제를 망쳤는가?  

 

그것은 당신들이 조중동에게 세뇌당한 것이다.  종합주가지수가  2000에 올려논 것은 누구의 덕인가?  

종합주기지수 2000 이 저절로 되는가?   

 

우리나라 주가가 저평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

 

그것은 1. 남부관계의 긴장이 주가를 끌어 내리고 2. 기업의 투명성 결여가 주가를 끌어 내린다.  

 

이 두가지 요인이 Korea  Discount를 불러 온다.

 

노 대통령은 이 Korea Discount를 해소시켜 준 정치를 했다.

.   

남북관계의 개선에 지대한 성과를 거뒀고 정권말기엔 정상회담까지 이룩했다.  이젠 "서울이 불바다" 가 된다는 따위 주가 떨어지는 소리는 북한이 하지 않을 만큼 관계가 좋아졌다.    최소한 노무현이 청와대 있을 동은 그랬다..  

 

또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며 일반 주주에게 돌아갈 배당금을 횡령을 하는 것은 썩은 정치 때문이다.    

 

정치가 부패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차떼기를 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를 개혁해서 부패를 척결하면 기업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따라서 주가가 상승하게 되어 있다.  비자금이 기업의 정당한 수입금으라 치부되고 Earning Power 가 올라 간다.  주기는 따라서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는 그 두가지 주가 상승요인이 되는 Korea Discount 효과를 줄이는데 큰 성과를 냈다.

 

따라서 종합주가지수를 2000 까지 올라 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조중동이 이런 점을 부각시키지 않았고 쓰잘 때 없는 사소한 실정만 확대 재생산해 독지들을 세뇌시킨 결과 정권기간 내내 반노 정서를 퍼뜨려 왔다.

 

오늘 한명숙 전총리의 조사에도 종합주기지수 2000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은 노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나는 노대통령이 하는 소탈한 어법에도 감동한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라든가  군데가서 3년 썩는다든지 하는 어볍을 기지고 주류는 교양이 없어 하는 어법이라 공격한다.   

 

따지고 보면 그런 어법이야 말로 일반사람이 대통령은 친근한 사람이라 하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  그리고 쉽게 다가 갈 수 있다고 느낄 만큼 편한함을 준다.

 

난 권위주의를 극단적으로 싫어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는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조중동에겐 그것도 싫었다.  그들과 비슷한 위선적 언어를 사용하기 바랬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스런 대통령이라 불러도 괜찮을 대통령이 노대통령이었다.   

 

이제 사랑스런 대통령은 갔다.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 갔다.   

 

이젠 노무현 대통령님하고 부를 사람은 우리 깉에 없다.

 

주여 노대통령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5 월 29일 밤  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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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5.23 21:50

    저는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지만, 선생님 연배와 계층에선 극소수에 속하시겠지요. 제 또래에서도 절반쯤은 인상을 찌푸리는 것 같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5.24 12:59 신고

      감사합니다. 요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한국 같은 다수 순응주의 사회에서 소수로 사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5.24 00:47

    선배님의 글을읽고 다시한번 많은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임플란트차 고국을 방문했다가 노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듣고 바로 다음날 눈물을 흘리며 KTX를 타고 달려갔던지가 벌써10년이 지났군요

  3. 수문짱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6.13 09:51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가까이 접근해 본 대통령 중에서 가장 소탈하고 친근감이 있었습니다.

 

미세먼지 최악의 날에 조직생활을 시작한 손자 놈이 유아원에서 카드를 보내왔다(하필이면 미세먼지 최악의 날 내 귀염둥이 손자가 첫 조직생활을 시작했다.)



미세먼지 최악의 날 귀염둥이 손자놈에 싫다는 마스크를 씨우고 유아원 버스에 태웠다.

 

조직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되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어버이 날 카드를 보냈다. 

 

처음 우편함에 든 카드 봉투를 보았을 때 발신자가 "돌샘 유치원"이라 쓰여 있기에 아래층에 사는 아들 내외의 우편이 잘 못 들어온 것이겠지 하고 아래의 우편함에 넣으려 하니 조부모라 하고 우리 이름이 적혀 있다.

 

3돌 반 조금 지난 손자놈이 난생처음 조부모에 카드를 그려서 보낸 것이다.

 

 

돌샘 유치원 유아의 어버이 날 카드 봉투

 

손자놈이 만든 카드 앞면

 

글자는 밑 글자 위에 덧 그렸다.    "할머니"의 "니"자 중 "ㅣ"가 빠졌다. 

 

리본  오른 쪽에 그린 그림은 "할아버지"라고?   이 것 만이 손자놈의 자작품

 

 

 

카드 뒷면

 

 

사진을 찍을 때 너무 인위적 표정을 짓게 하니 자연스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쪟던 세돌 반 짜리 손자 놈에게서 카드를 받다니 참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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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5.12 21:18

    세돌 반짜리 손자로부터 의외의 카드를 받으셔서 무척 기쁘셨겠습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어버이날에 손자의 카드를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 조부모님에게 카드를 보내게 한 유아원 (인지 아기 엄마인지)가 기특합니다. ㅎ)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5.13 11:40 신고

      감사합니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장수하는 시대라 유아원 원생은 대부분 조부모가 있는 듯 합니다. 유아원 자체의 프로젝트로 부모 조부모에 어버이 날 카드를 만들어 보낸 것 같습니다.

미세먼지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천정

 

새벽 세시인데 잠이 덧들어 대기오염에 관한 책을 읽다가 침대에 누운 채 머리 위에 걸린 아이패드로 책 하나를 또 샀다.

 

 

 

종이책으로 996 페이지 거의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이다.

 

 

이 책은 내가 찾은 유일한 한글로 번역된 대기오염학책 원서의 최근 개정판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쳐다 보고 있었으나 Kindle 판이 거의 100 불에 육박해서  망서리고 있었다.  비슷한 값의 지난 번 포스팅에 올린 "Atmospheric Chemistry and Physics(ACP)" 책과 경합을 벌이다가 밀려 났던 책이다. 

 

두 권 모두 Kindle 판으로는 100 불에 가까운 값들이라 두 권 모두 사기엔 부담이 되어 아래의 ACP 책을 샀던 것이다.

 

 

 

대기과학의 결정판

 

 

그러나 Amazon에서 간략한 내용보기를 하면 내용도 다르고 저술 의도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너무 궁금했다.  

 

유일한 한글 번역판은 1994년 출간된 제3판을 2000년에 번역 출간되었기 때문에 요즘같이 빨리 진보하는 대기오염학 책으로는 너무 뒤쳐진 책이다.

 

 

 

 

 

대기 오염학 제3판

이 책은 1994년, 즉 25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저자들도 다르고 내용도 500여 페이지 밖에 안된다.

내가 산 제 5판에 비하면 그 내용도 반 정도 밖에 안된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이런 새 분야를 연구한다면 논문을 읽다가 꼭 찾아 봐야 할 참고 문헌(refereces)이 나오면 학술잡지이던 단행본이던 학부 도서관에서 찾거나 없으면 서울대 중앙 도서관 서고에 가서 찾곤 했는데 새벽 3시에 침대에 누어 아마존에서 최 신간 Kindle 판을 사서 (빌릴 수도 있다.) 몇분 후면 download 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참 세상 좋아졌다"다.   마음만 먹으면 뭘 공부하던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된 것만을 틀림 없다.

 

그러기 때문에 돈은 좀 썼지만 재미가 있다.

 

미세먼지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소멸하는 가를 알아야 미세먼지를 예보할 수 있고 줄이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미세먼지학"은 참으로 어려운 학문이다.   그러나 연구가 꼭 필요한 학문이다.

 

대기의 흐름은 유체역학이 지배한다.    그런데 평탄한 흐름(층류, Laminar flow)은 쉽게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층류는 관심 밖이다.   

 

난류가 모든 기상학과 대기 오염학을 지배한다.

 

난류(터뷰런스 Turrbulence) 는 “신도 모르는 영역”이니 어려운 학문이다.  (2019/03/14 - [일상, 단상] - 미세먼지란? - 신도 모른다는 기상학)

 

거기다 열역학, 화학, 수송이론까지 다 섭렵해야 그나마 간신히 대기 오염학의 기본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이비 전문가들이 함부로 아는체 해서는 안되는 분야다.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배출원은 거의 다 알려졌다.  다만 그 오염물질이 어떻게 소멸하는가를 알아야 무슨 대책이던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내가 그 많은 책과 문서들을 봤지만 가장 좋은 참고문언은 내 모교 Univ. of Wash. 의 강의용 PPt 문서였다.

 

그리운 내 모교,  거기서 아내 코니를 만나 열애에 빠졌던 제2의 고향 시애틀에 있는 그 UW 다. (2010/09/26 - [해외여행기/미국 북서부 시애틀] - 내 고향 시애틀)

 

 pdf 로 전환되어 인터넷에 게재되었지만 여러 모델을 테스트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http://courses.washington.edu/cee490/PlumeD4.pdf

 

이 문서는 내 모교 UW 의 토목환경공학 (Civil and Environment Engineering,  CEE)과 환경보건학(Environmental Health, ENVH )과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과목중에서 대기 오염물질이 분산하는 과정을 다룬 부분을 강의용 ppt 형식으로 제작한 것 같다.

 

과목명이 CEE490 ENVH461 로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학부 4학년 코스 같은데 학부 4학년 코스는 대개 대학원 1년생도 같이 듣는다.  특히 학부를 다른 대학에서 졸업했거나 전공이 다른 학부과정 출신 학생들에게  수강을 권장한다.

 

 

이 강의록의 pdf 문서의 첫 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UW 에서 제공하는 과목중에서 대기오염물질의 확산을 다룬 부분의 강의용 ppt

 

이 문서를 읽다가 반가워 학교 홈피에 들어 가 이것 저것 살펴 봤다.   토목환경공학이나 환경보건학 말고도 대기과학과가 따로 있어 대단히 강한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참고로 여기에 베껴 왔다.  대기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에 참고가 될 것 같다.

 

대기 과학과 홈피에는 미국 기상 예보 경쟁에서 top team 으로 수상을 했다는 홍보문자가 눈에 띄였다.


 올(2019) 봄과 여름 쿼터의 개설한 과목들

 

UW-Atmos-Courses.pdf

 

이 정도의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면 대단히 쎈 학과다.

 

하긴 내가 학위를 받고 떠난 해가 1967년이니 반세기가 넘었다.   학교가 변한 건 당연하다.

 

각설하고 보이지 않는 지붕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 보면 지붕이요.  아래에서 보면 천정이다.     이 천정은 어떻게 생기나?

 

오늘같이 대기의 질이 "상당히 나빠 외출을 삼가세요"  한 날이면 천정이 매우 낮을 것이다.  

 

지난 월요일 성내천 라이딩을 했을 때 공기질은 좋았다.  그 땐 그 천정이 매우 높았거나 아예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 거의  같은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는데 오늘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고 지난 월요일은 낮았던 이유는 뭔가?  


오늘은 미세먼지가  빨리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사라지는 과정은 혼합(mixing)과 대류(convection) 때문이다.

 

보기를 들어 자동차의 배기통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은 대기에 섞인다.     이 것이 빨리 분산되려면 바람이 세게 불어 난류를 일으켜야 한다.   난류는 캐오스의 일종이다.    캐오스의 가장 큰 특징은 섞임, 즉 혼합(mixing)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바람이 불면 미세먼지를 쓸어 버린다고 손석희는 말하는데 틀린 말이다.   바람이 세면 난류를 일으켜 빨리 mixing을 한다.  주변의 깨끗한 공기와 빨리 혼합되어 희석시키는 것이다.

 

 

 

유체(공기)가 흐를 때  바람이 없으면 그 주변의 흐름과 나란히 흐르지만(층류(Laminar flow))

바람에 세어지면 흐름은 난류로 바뀐다.  난류는 색소 시료의 자국이 보이 듯 염로시료가 

공기 층 전체에 섞인다.

바람이 이 시료를 쓸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루 섞는 것이다.

 

 

 

다음은 희석된 공기가 대류에 의해서 위로 올라 간다.   배기 가스는 처음 매우 고온으로 나오기 때문에 주변의 찬 공기와 섞여도 여전히 뜨겁다.    이 뜨거운 공기는 밀도가 낮아서 부력이 생기고 위로 뜨게 되는 것이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오르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 온다.

이 것이 수직 혼합이다.

 

여기에 열역학이 들어 온다.   뜨거운 공기가 부양하면 상층부의 압력이 낮아 팽창하게 된다.   이 팽창이 주변과 아무 열적 교환 없이 부피만 늘어 나는데 이런 부피의 변화를 단열과정이라고 한다.

 

공기는 절연이 좋아서 쉽게 주변과 열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내 보내지도 않는다.  또 팽창과정에서 주위에 역학적 일을 해 주었으므로 온도가 내려 간다.    이 것을 단열 팽창(adiabatic expansion) 이라고 한다. 

 

온도가 떨어지면 밀도가 증가해서 공기 주머니는 부력이 떨어지고 주변의 온도보다도 더 낮은 온도가 되면 더 이상 이 공기 주머니는 부양을 할 수 없고 수직방향의 mixing 은 멈춘다.  

 

이 높이를 Mixing height 라고 부르고  이것이 보이지 않는 천정이 된다.

 

 

 

이 그림은 바람이 난류를 일으켜 오염물질을 고르게 섞어 주고

대류에 의해서 배출원의 따뜻한 오염물질이 상승하고

상승한 오염물질을 포함한 공기 주머니가 단열팽창으로 식게 된다.

상층의 온도가 더 따뜻하면 이 오염 공기는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게 된다. 

이 그림의 경우 상층의 온도가 더 높아 진 것은

 위에서 고기압이 누르기 때문이다.   눌린 공기 층은 단열 압축이 되어 팽창의 반대로 온도가 올라 간다.

이런 경우엔 침강 역전층 (沈降逆轉層, subsidence inversion layer) 이생긴다.

 

 

그러니까  이 보이지 않는 혼합층 높이가 미세먼지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높이가 높으면 높을 수록 확산할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는 내려간다.

 

그러나 이 것을 측정하거나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도 그 연구가 진행중이다.

 

미세먼지의  소멸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표층에서의 바람 속도가 얼마나 미세먼지를 빨리 확산시켜 주는 가를 결정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 두 물리량을 곱해서

 

환기계수(ventilation coefficient)를 정의하여 쓴다.     지붕의 높이 즉 혼합층의 두깨를 m (미터) 로 하고 풍속을 초속 (m/s)로 쓰면   이 환기 계수의 단위는  ㎡/s 가 된다.   (Ventilation coefficient and boundary layer height impact on urban air quality )


환기계수가 크면 클 수록 미세먼지 농도는 떨어진다.

 

이 값을 측정하거나 계산하고 예측하면 미세먼지 예보를 할 수 있다.


아래에 보이지 않는 천정의 보기를 들어 봤다.


 

 

 

2015년 베이징

미세먼지가 갇힌 혼합 층 지붕

가장 큰 건물 보다는 낮다.

 

 

 

 

Sep 14, 1958 New York

 It's a high concentration kept in place by a high level of warm air.
상층부의 따뜻한 공기가 고농도 오염물질을 가두어 놓았다.

https://www.wnyc.org/story/dr-leonard-greenberg/

 

 

 

 

London 1952

당시 보이지 않는 천정의 높이는  약 150 미터로 추정하고 있으나

내가 읽은

"Death in the air" 란 책에는

Wimbledon Common 의 해발  200ft ≒ 60 m 의 언덕에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고 목격자는 진술하고 있다.

불과 150 미터 높이의 천정 아래에

런던 시민이 때는 누런 값싼  난방용 석탄은 유황을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

기온은 섭씨 0도를 오르 내렸고 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런던시민은 계속 석탄을 때고 있었다.

석탄연기는 갈데 없이 이 낮은 천정밑에 계속 쌓이고 있었다.

 

And yet even now, on the hills of London, still within the city, there was beautiful sunshine. At Wimbledon Common, less than two hundred feet above sea level, the sky was blue. But if a hiker stood at the top of one of those hills and peered downward— he would see a floor of dark clouds sitting below.

Dawson, Kate Winkler (2017-10-17). Death in the Air: The True Story of a Serial Killer, the Great London Smog, and the Strangling of a City (p. 76). Hachette Books. Kindle Edition.

 

 

 

이번 미세 먼지 공부를 하면서 읽은 책

"숨을 쉬다 죽다"는 런던 스모그 대 참사를 저널리즘 교수가 탐사 기사형식으로 

조사 연구해서 쓴 최근(2017) 신작이다.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 사이 5일간  London 스모그 대란 때에

사망한 사람들의 통계

평소 런던의 하루 사망자 수는 300 명 안팎이었으나  대참사 기간인 5일 동안에는 하루 최고 900명의 런던 시민이 죽었다.

대부분 호흡기 질환으로 죽었다 한다.

 

 

런던 대 스모그 당시에는 스모그 사망자가 약 4000 명으로 추산되었으나 최근의 면밀한 조사 검토 결과 12000명이 이 스모그로 죽었다 한다.  스모그가 걷힌 다음에도 거의 한달간 하루 사망자 수는 평소보다 2,3백명 더 많았다. 

 

이 때 Lodon 상공에 5일간 꼼 짝 말고 머믈며 짓 누른 고기압은 역사이클론(anticyclone)으로 사이클론(태풍)의 반대로 중심기압이 고기압으로 시계방향으로  느리게 도는 대형 회오리 바람이다.

 

우리나라에도 겨울 철 이른 봄에는 이런 anticylone 이 자주 발생하는데 우리 기상청은 그냥 "고기압대"로 뭉뚱그려 부른다.

 

서울 상공에도 언젠가 이런 현상이 생기지 말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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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4.10 01:06

    몸이 아프면 그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치듯이 미세먼지도 이렇게 이론적으로 분석 연구하면 언젠가는 잡힐것 같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4.10 17:03

    천정의 개념과 바람의 역할 등 궁금증이 많이 풀렸습니다. 어려운 학문을 쉽게 이해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4.10 19:10 신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제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 해도 일반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미세먼지를 손석희식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쓴 것인데 경천님 만이라도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3. yyyccc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4.11 21:26

    박사님의 글은 항상 기다려집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와 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글을 올려주시면 경탄하면서 읽고 그때마다 존경심을 더하고 있습니다. 저 말고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식인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시는 어른이시라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4.12 10:52 신고

      안녕하세요 YC 님
      미세먼지 이야기는 그만 쓰려고 했는데 YC님 격려와 응원으로 힘 입어 공부도 더 하고 글도 더 올려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