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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정효공(貞孝公) 이언강 할아버지 본문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조선통신사 정효공(貞孝公) 이언강 할아버지

샛솔 2007. 12. 27. 00:36

조선 통신사 부사 정효공(貞孝公) 이언강(1648 - 1716) 할아버지

 

 

얼마전 낯선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조선 통신사부사를 지낸 이언강(李彦綱)의 후손이냐고 묻는다.    내가 이언강의 9대손이라는 것은 안다.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갔다 왔다는 사실은 잘 몰랐다.   

 

언젠가 어머니로부터 조선통신사인지 동지사인지 사신으로 다녀온 조상이 있다는 것은 언듯 들은 듯 하지만 오래된 일이고 일본에 갔다온 분이 바로 내 9대조 할아버지인줄은 몰랐다.   족보를 보아도 그런 경력이 나오지 않으니 잘 알 수 없다.   

 

조선실록을 조사해 보니 이분은 나중에 동지사(冬至使) 정사(正使)로 중국에도 갔다 오셨다.   

 

그러니까 젊어서(1682)는 7차 조선 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었고 관록이 붙은 나이(1698)엔 동지사 정사로 중국에 갔다  왔다.    조선조 숙종때의 외교관이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가기전에는 암행어사로 지방에 파견되어 고을을 염문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충청관찰사,  형조판서등 지방과 중앙의 여러 부서에서 관료로 봉사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왕조 실록엔 국문 206건 원문 203건의 기록이 나온다.   시간이 나면 한번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얼마전  나에게 전화를 건 낯선 이는 8차 통신사의 정사였던 조억태 대사성의 9대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올해가 제 1차 조선통신사를 파견했던 해(1607) 의 400 돌이 되는 해다.  내게 전화를 주신 분은 지난 9월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로 조선통신사 재현 일본 방문행열에서 정사로 분했던 분이었다.

 

며칠전에 그 분이 일본측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하나를 우편으로 보내 주었다.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내 9대조 할아버지의 친필 문서의 사진이었다. 내 조상의 이름이 적혀 있는 문서가 일본에 보존되어 있었다.  자료를 보내주신 분께 감사한다.  

 

 우리집안은 전주 이씨 영해군파로 세종대왕의 제17남 영해군으로부터 파생한 가문이다. 내 9대조 이언강은 그 아버지 이백린의 2남으로 이언강 할아버지로부터는 내 아버지까지는 종손으로 이어졌다. (세종대왕의 Y염색체 참조)  따라서 이언강의 종손가인 셈이다.

 

내 어머니는 이 집의 종부(종가집 며느리)로 시집와서 할아버지에게서 종부로서의 책무에 대해서 끔찍히 들었던 바가 있어 그런지 우리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셨다.  그리고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고문서를 지키려고 무진 애를 쓰셨지만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 갔다.

 

일제 초기 아버지가 나이 많은 사촌의 일본회사에 진 빚보증을  잘 못 서 준 탓에 온 재산이 남의 손으로 넘어 갔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살았다.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 났다. 조상대대로 내려 오는 유물들은  일본에 까지 가져 갔으나 태평양 전쟁 동안 상당부분 폭격에 의해 소실되었고 해방후 일찍 돌아 가신 아버지의 대를 이은 형은 625 전쟁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형의 가족중  살아 남은 형수와 조카 둘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장조카의 장손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말도 서투른 처지가 되었다.  그나마  조금 남은 유물들은 형수가 잘 못 간수해서 모두 행방불명이 되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교지 스물 몇장과 한글 책자가 하나가 이언강 종손가에 내려 온 유물의 전부다.

 

우리집의 가족사는 어머니가 그토록 자랑하던 조선 갑반 가문의 쇄락의 근대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에 호우사 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이언강할아버지의 칠필 문서.

통신사일행의 환대에 대한 감사편지란다.

얼마전에 조동호씨로 부터 받은 사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가지고 있는 교지 몇장중의 하나인데  이 교지는 원본이 아니고

이언강 할아버지의 손자인 "정승대감"(숙종때 좌의정을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렇게 불렀다)인

이창의 할아버지가 복본을 만든 것 같다.  이언강 할아버지의 시호는 정효(貞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표란 열녀에 대한

임금의 표창이다.

정표시말이라고 제목이 붙은 이 책자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이언강종손가의 유일한 책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표시말이란 어떻게 정표를 받게 되었나

그 경과를 기술한 것이다.

 

 

 

 

사실인즉 나는 이 책자가 기술하고 있는 안동 권씨가 누구이며  언제 정표를 받게 되었는지를 몰랐다.  이번 기회에 조선왕조 실록을 보고서야 이 안동권씨가 이언강 할어버지의 부인인 것을 알았다.

영조 실록에 아래의 기사가 적혀 있었다.

  

영조 42권 12년 12월 07 일 (병인) 006

 

임금이 소대를 행하였다. 참찬관 유엄(柳儼), 시독관 유건기(兪健基) 조상명(趙尙命)이 아뢰기를,

“고 판서이언강(李彦綱)의 아내 권씨(權氏)는 나이 70세의 명부(命婦)로서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병을 얻어 사망하였으니, 마땅히정표(旌表)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였다.

 

숙종 실록에 이언강 할아버지가 암행어사로 임명되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숙종 11권 7년(1981) 1월 14 일  기사

암행 어사(暗行御史) 안후태(安後泰)·김두명(金斗明)·이사영(李思永)·오도일(吳道一)·이언강(李彦綱)·목임일(睦林一) 등을 나누어 보내어 각 고을을 염문(廉問)하게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또 하나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언강 할아버지는 시조도 한수 남긴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사실은 최근 발굴된 국내 최고(最古)급 시조집 「고금명작가」 에서도 발견되었다.  (문학기행)

 

한나 둘 세 기러기 서남북(西南北)난화나라

주야(晝夜)로 우러네니 무리일흔 소리로다

언제나 상림추풍(上林秋風)에 일행귀(一行歸)를 하리오

이언강(李彦綱)


정적들의 모함에 의해 파직되어 유배되기도 했다간 무고로 판명되어 복직되기도 하는 등 우여 곡절이 많은 삶을 사셨다. 그리고 보면 이 할아버지야  말로 다채로운 인생을 사신 것 같다.   

******* 붙임1 *******

 

역대 통신사 내역

 

연도

정사

부사

종사관

제술관

인원

1607년(선조 40년)

여우길

경섬

정호관

-

467

1617년(광해군 9년)

오윤겸

박재

이경직

-

428

1624년(인조 2년)

정립

강홍중

이계영

-

300

1636년(인조 14년)

임광

김세렴

황상

권칙

475

1643년(인조 21년)

윤순지

조형

신유

박안기

462

1655년(효종 6년)

조형

유이

남용익

이명빈

488

1682년(숙종 8년)

윤지완

이언강

박경준

성완

475

1711년(숙종 37년)

조태억

임수간

이방언

이현

500

1719년(숙종 45년)

홍치중

황선

이명언

신유한

479

1748년(영조 24년)

홍계희

남태기

조명채

박경행

475

1764년(영조 40년)

조엄

이인배

김상익

남옥

472

1811년(순조 11년)

김이교

이면구

-

이현상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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