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2017 년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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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년 송년회

일상, 단상 2017. 12. 16. 05:47

2017 년 송년회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은 나이가 되면 내 블로그도 옛날 얘기가 더 많아진다.  어제는 물리학부 송년회에 갔었었다.  내가 처음 물리학과에 부임해서 가르쳤던 3번째 해의 학생이 은퇴해서 명예교수의 반열에 끼어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아직 현직에 있는 한 제자 교수에게서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수가 아직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내 prl 에실린 논문을 본 이야기였다.  (단상)


내 분야인 통계물리와는 다른 입자물리를 전공했는데 비록 분야는 달라도 자기가 배운 모교의 교수가 미국의 교수들도 싣기 어려운 prl( Physical Review Letters)에 실린 논문을 보고 자랑스럽고 뿌듯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prl 에 올린 몇개의 논문중의 하나로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구업적이다.  

 

1950년대 중국계 미국 물리학자인 TD Lee 와 CN Yang 은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탄 것으로 더 유명해 진 인물이다.   그 두 물리학자는 통계역학과 입자물리 두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Ising Model 의 Onsager solution 을 증명한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에 더 나아가 상전이의 이론을 제시했다.

 

노벨상도 입자분야의 업적으로 탄 것이기 때문에 이 제자교수가 내 논문에 관심을 가진 것도 입자물리분야의 대가인 Lee-Yang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Lee-Yang Circle theorem 이란 이름으로 알려 진 이 이론은 추측이었지 엄밀한 증명이 빠졌었다.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내가 prl 에 게재한 논문이 이 이론을 증명하고 더 나아가 일반화해서 Lee-Yang therorem 이 특수한 경우로 포함되게 한 것이다.

 

논문을 쓴 것이 30년전 이야기이고 물리에서 손 뗀지 10년이 넘었으니 나도 대강 어떤 것을 했다고 기억만 할 뿐 자세한 것은 잊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보면 새각이 나려나 하고 침대위에 걸져 있는 아이패드로 검색하니 논문이 나온다.  그러나 초록만 보여 줄 뿐 본문은 돈을 내고 사야 한다.

 

25불을 신용카드로 결재하고 논문을 내려 받았다.  내가 내 논문을 25불 주고 산 셈이다.

 

 

PhysRevLett.73.2801.pdf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엄청난 계산을 하면서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쉬웠던 것은 이 논문은 내 방대한 증명을 위한 계산의 초요약이고 이를 해설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던 점이다. PRL 은 4 페이지 이상의 논문은 실어 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방대한 내용이라 해도 4 페이제로 요약해야 한다.  이논문에 관해 해설하고 미진했던 부분을 더 자세히 연구했다면 적어도 5,6편, 많으면 10편의 논문을 썼었을 것이다.   

 

난 일단 난제를 풀고 나면 다른 문제에 도전하는 게 재미가 있지 이것을 다시 해설하거나 가지를 키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업적을 알리는데 손해를 많이 봤다. 

 

 

 

PS:

 Lee-Yang theorem 의 CN Yang(楊振寧) 교수는 한국과 또 나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CN Yang 교수는 내가 은퇴하기 몇년전인  1996년에 한국에 유치 설립된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 = 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의 초대소장을 지냈으며 내가 한 때 CN Yang 소장의 특별고문을 지낸 일이 있다.  그 때 찍은 사진이 오랜 사진묶음에서 발견되어 여기 스캔해서 올린다.

 

 

 

아태 이론물리 센터 국내외 인사들

앞줄 한 가운데가 CN Yang 소장이고 그 왼편이 필자

해외 인사는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1998 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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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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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이데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16 15:14

    선생님, 까막눈이라 읽을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다시 해설하거나 가지를 키우지 않으셨던' 뜻을 배우고 싶습니다. 1922년 생, 楊振寧 교수와 1926년 생 李政道 교수네요. 楊振寧교수는 현재 중국 국적을 회복하고 중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12.16 16:11 신고

      제 논문이 지엽적이 아니고 뿌리같은것이라 여기서 파생하는 지엽적인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확장해서 여기 저기에 응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개 Postdoc 이나 박사과정학생에게 시켜서 하는 연구인데 당시 포닥도 변변한 박사과정 제자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 하기에는 벅차고 또 새로운 연구가 더 흥미가 있어서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다행이 나중에 큰 아들이 이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http://boris-satsol.tistory.com/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