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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도시형 사람 본문

일상, 단상

도시형 사람

샛솔 2009. 1. 17. 00:41

도시형 사람

 

사람들은 은퇴하면 전원으로 돌아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과 냇물을 벗하며 조용히 지낼 수 있어 좋겠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작년에 놀러 갔던 적이 있는 대구에 사는 동양화가 유화백은 경북대학교 미대 교수직을 정년 퇴직하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때 유화백집방문기를 이 블로그에 올렸었다.  뒤에 대밭이 제법 울창했고 앞마당으로 흐르는 냇물이 있어 그 옆에 정자도 지어 놓아 운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철저히 도시형이다.  잠간 그런 곳을 방문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곳에서 붙박이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공기는 조금 나쁠지 모르지만 도시가 좋다.     멀리 들려 오는 은은한 도시의 소음도 좋다.   내 옥탑방 서재에서는 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멀리 무역센터 건물도 보인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도 좋다.  

 

정년 퇴직하여 학교에 가는 것을 멈춘 나는 한참 인터넷 강좌를 쓰는데 시간을 보냈다.  아내 코니는 참선을 한다고 선원에 나가 있으면 나는 혼자 옥탑 서재에 파 뭍여 지내곤 했다.   

 

서재는 이중창만 닫으면 절간 같이 조용하다.   굳이 전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어떤 때는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없으므로 일부러 자켓만 걸치고 코엑스몰을 찾곤 했다.  꼭 살 물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파에 휩쓸려 사람  구경도 하고  "인내(사람냄새)" 도 맡기 위해서다.  그리곤 Link'O 에 가선 문방구,  컴퓨터 부품도 구경하고 편리할 것 같은 부속품 한 둘 사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번잡한 상가가 가까이 있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좋다.    또 산책하고 싶으면 한 저거장 거리의 양재천 뚝방길에 나갈 수  있다. 

 

양재천 산책로를 부지런혀 걷기도 했다.  

 

양재천 산책로보다 더 가까운 곳에 매봉산 근린 공원이 있다.  여름에 공원안에 들어 서면 울창한 숲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지금 살고 있는곳이 좋다.   그래서 전원에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늘 아침 코니의 옥상 꽃밭에는 눈이 내렸다.  

 

불현듯 대학생때 읽었던 김광균 시인의 시 한수가 생각났다.

 

가물가물했는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그 시가 있다. 

 

"장곡천정에 오는 눈" 이다.  김광균 시인은 철저하게 도시형 시인이다.   그래서 난 그의 시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니의 옥상 꽃밭에 내린 눈

 

 

 

장곡천정에 오는 눈
 
 
                         김광균
 
 
 찻집 미모사의 지붕 위에
호텔의 풍속계 위에
눈이 내린다
물결치는 지붕지붕의 한끝에 들리던
먼― 소음의 호수 잠들은 뒤
물기 낀 기적만 이따금 들려오고
그 위에
낡은 필림 같은 눈이 내린다
이 길을 자꾸 가면 옛날로나 돌아갈 듯이
등불이 정다웁다
내리는 눈발이 속살어린다
옛날로 가자 옛날로 가자
 

 

장곡천정(長谷川町)은 소공동의 일제 강점기때의 이름이다.   2대 조선 총독을 지낸 長谷川好道(장곡천 호도),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이름을 따 "하세가와쬬" 라고 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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