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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지란지교를 꿈꾸며 본문

일상, 단상

지란지교를 꿈꾸며

샛솔 2007. 4. 10. 18:58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란지교를 꿈꾸며" 는 리컴번트 산책 카페를 처음 열었을 때  맥가이버님이 내 건 모토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창기에 대문에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대문이 바뀌면서 이 모토가 사라졌습니다.  

 

지란지교는 명심보감19장 교우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합니다. 지란지실에 들어 가면 지초와 난초의 향기에 묻혀 자신도 그 향기에 동화되듯 향기 나는 벗과 교우하면 자신에게도 향기가 묻어 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유안진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산문시가 더 유명해져서 지란지교의 원 소스인 명심보감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이 멋있는 문구가 앞의 몇 페이지를 차지하고 서너 페이지 뒤에 가서야 명심보감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자가 유안진에게 밀려난 셈입니다.

 

난초는 흔히 보는 식물로 그 가짓수도 많고 꽃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지초는 원래 우리나라에는 널려 있던 흔한 여러해살이 들 풀이였는데 사람들이 초지를 모두 개발해 버린 탓에 이젠 깊은 산중에나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식물이 되어 버렸답니다.    

서울의 난지도도 그 이름이 말하듯 난초와 지초가 많다 하여 붙여졌다는데 거기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하다 이제서야 한강시민공원으로 재 탄생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지초를 찾아 볼 수 있을지요.

 

인터넷상에서도 지란지교를 이룰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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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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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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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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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초 잎새와 꽃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
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
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 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
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
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
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
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중에 기막
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
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내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
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
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
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제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
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
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
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
기많은 아름답게 지니니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
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
한 빛깔과 시끄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
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은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은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
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
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 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
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
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
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피어, 맑고 높
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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