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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왜 프로세싱인가? 제가 쓴 플래시 제 28 강좌 에서 자바와 플래시를 비교하면서 플래시는 줄하나를 긋는데 아래 3줄 lineStyle(1, 0x000000, 100); moveTo(0,0); lineTo(100,100); 이면 되는데 자바는 온갖 중장비를 다 동원해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플래시여 만세" 였습니다. 그런데 프로세싱은 더욱 간단해서 단 한줄이면 됩니다. 즉 line(0,0, 100,100); 이면 됩니다. 위의 그림과 같이 1줄 입력한 다음 play 버튼 을 눌러 보세요. 아래와 같은 창이 뜨고 줄하나를 그어 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디자이너와 프로그램초보자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프로세싱의 정신" 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강좌에 처음 오신 분은 강좌 1번과 2번으로 돌아가서 ..
지난 강좌에서 한글 번역한 Josh Nimoy의 튜토리알은 프로세싱 알파 버전에 대한 것으로 최신 버전인 베타 0095의 내용과는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베타 버전의 사용환경 부분을 아래에 한글 번역하였습니다.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http://physics.snu.ac.kr/~kclee/Env/Environment_K.htm
디자이너를 위한 튜토리알 이 강좌는 Flash 라든가 Director 를 쓰거나 익숙한 분을 위해서 New York 대학의 Tisch School of the Arts의 Josh Nimoy 씨가 쓴 Processing 강좌를 원 저자의 허락을 받아 제가 번역한 초벌 본입니다. 오타라든가 문맥이 불통하는 부분을 수정하여 공식사이트에 올릴 예정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여러분에게 읽고 오타나 문맥이 통하지 않는 부분을 알려 주시면 수정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http://physics.snu.ac.kr/~kclee/tutorial/tutorial_KDraft.htm 를 읽고 오타나 이해가 안되는부분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주소는 dcknsk@yahoo,com 지난 강좌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Pro..
오 대한민국 1968년도 다 저물어 가던 어느날 나는 씨애틀의 한 할인 매장에서 50 cent 짜리 made in Korea 라는 라벨이 붙은 싸구려 와이셧쓰를 본 일이 있습니다. 참으로 조잡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쌀 때이라 해도 50전 짜리 와이셧쓰라니 말입니다. LP 판 한장이 4~5불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콧등이 시큰하더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고국을 떠나온지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떠나 올 때 한국은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리움과 서글픔이 북바쳐 펑펑 울었습니다. 우는것이 부끄러워 뒤켠 주차장에 나와 남이 보지 못하는 구석에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그것이 미국에 와서 처음 본 한국제 수입품이 었습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서 하루 14시간 피땀 흘려 만..
늙음은더욱아름다워라 몇해전2월에는 나는LA에서지냈습니다. LA는둘째누님이살고있습니다. 미수를넘긴누님은그전해만하여도건강해서조카들과하이킹도갔었는데 그해겨울은너무약해졌습니다. 두번째입원했을때나는 문병을갔었습니다. 병원은LA다운타운에있는카톨릭계병원이었습니다. 한국병동이따로있어마치한국병원같았습니다. 나는 한한국인간호사를보았습니다.이마에무엇인가를부치고다녔습니다. 이상하다싶어자세히보니재를발랐는데그것이떨어질까봐반창고를십자가모양으로붙였던것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그날이재의수요일이었습니다. 내가성당을쉬고있은지몇해째인가그래서그날이재의수요일인것을까맣게 잊고있었던것입니다. 나는재의수요일의식을카톨릭의가장아름다운의식으로생각합니다. 사순절이시작하는수요일아침미사에서신부님은축성한재를“사람은흙에서왔으니흙으로돌아갈것을생각하십시오”하면서이마에발..
아침형 인간대학원생때 이후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지요. 교직에 있다 보니 아침 강의에 맞추어 출근하여야 하니깐요. 그런데 점차 극단적인 아침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새벽 다섯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5시 36 분 선능발 전철 2호선 첫차에 맞추자니 자연 그렇게 일찍 일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아직 분당선이 개통하기 전이었고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보통 걸음으론 10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버쓰를 잘 시간 맞추어 탄다면 4, 5분 거리였습니다. 첫차는 항상 비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좋았고 낙성대역에서 하차하고는 걸어서 관악산 캠퍼스에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처음에는인헌 초등학교 뒷길 강감찬 장군에 태어 났다는 낙성대 집터 앞을 지나 서울대 뒷문으로 향하는길을 따라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올빼미형 인간이론물리 전공인 우리는 물리학과 건물에서 떨어진 목조 간이 건물의 방들을 연구실로 쓰고 있었다. 본 건물과 떨어져 있어 남의 눈에 띄이지 않아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나는 나와 같은 지도 교수 밑에서 논문을 쓰는 미하라 노리히꼬라는 일본 3세와 함께 연구실을 나눠쓰고 있었다. 올빼미형 인간은 몇사람 더 있었으나 항상 올빼미는 나와 "노리" 와 "에드" 라는 친구였다. 우리는 밤 12시가 조금 넘으면 출출해져 한 15 분거리의 피자집에 가서 밤참을 하곤 했다. 나와 노리는 담배를 피웠고 에드는 담배를 피지 않았다. 언젠가 에드는 내가 담배를 오른손 손까락 사이에 끼고 생맥주핏쳐를 든 포즈를 "멋있다", "크래식" 이라 칭찬해주곤 했다. 에드가 먼저 박사학위를 받고 떠났고 그..
황성의 달 (荒城の月) 5~6년전 늦가을 필자는 후꾸오카에서 열린 한 국제 학술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이 있다. 컨퍼런스 중간에 후꾸오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가량 가는 온천 리조트에서 하루밤을 자면서 갖는 리셉션에 참가하였다. 참가자의 80 퍼센트는 일본인이었고 한국에서도 한 10 여명이 참가하였다. 만찬후 여흥으로 가라오케가 단상에 등장하고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C대의 P교수가 있어서 가라오케 노래 리스트에 오른 한국 가요를 앵콜을 받아 가며 여러 곡을 불렀다. 대부분 조용필의 노래였는데 스크린에는 물론 일어가사가 나왔는데도 대강 기억하는 한국말 가사로 불렀다. 그런데 일본의 T대에서 온 S교수가 지명되어 단상에 올랐는데 가라오케 리스트에도 없는..
비극의 유산 --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어머니 비극의 유산 ---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어머니 ------- 어머니는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사람이었습니다. 19세기 한말의 가난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집에서 언문은 깨쳤지만 그 이상의 교육은 없었지요. 큰 외삼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뛰쳐 나갔다가 1920년대 미국을 휩쓴 독감에 걸려 샌프란시스코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해방 후 어머니는 한참 영화를 누리던 "이기붕"씨와 함께 찍은 외삼촌의 사진을 꺼내 보며 못내 아쉬워 하셨지요. 어머니는 세살 아래 아버지에게 시집을 갔고 아들 하나 딸 셋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나이 많은 사촌에 보증을 잘못 서 준 탓에 가산을 하루 아침에 모두 날리고 야반 도주하다시피 일본으로 건너 ..
……. 변한건 아무것도 없는데 단 한사람만 없는 느낌…… 1930년대 아직 페시시린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폐렴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향수라는 노래의 노랫말로 더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은 5 살 난 어린 딸을 폐렴으로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어린 딸이 떠나 버려 텅 빈 병실 유리창에 기댄 정시인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한편의 주옥 같은 명시로 승화시켰습니다. 반세기도 훨씬 넘은 그 옛날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이 슬프고 아름다운 시를 나는 아직도 온 채로 읊조릴 수가 있습니다. 유리창 유리의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얼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 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은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