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오사카'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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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9.04.17 Osaka 2019를 계획하다 (4)
  2. 2015.05.20 2015 오사카 여행을 끝내고 - 일본을 생각한다. (4)
  3. 2015.03.18 오사카 여행계획 (4)
  4. 2015.03.14 오사카 여행을 또 할 수 있을까?
  5. 2014.11.25 셋째 누님

Osaka 2019를 계획하다

 

아내가 미용실에 갔다가 내 머리를 잘라 주는 내 단골 미용사를 만났다.   며칠 사이 일본 여행을 갔다 왔단다.  사 가지고 온 과자 하나를 받아 가지고 와서는 우리도 일본 여행 가자고 제안을 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도 잘 못하고 야 외 활동은 거의 못하고 있다.  가끔 "나쁨" 수준이면 마스크를 하고 나가지만 마스크를 하고 야외활동을 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야외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미세먼지 걱정 없는 일본이나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7월 초면 네덜란드 여행을 가야 하니까 그전에 빨리 갔다 와야 한다.   

 

벤텐쵸 역사와 거의 붙어 있는 Osaka Bay Tower Hotel

 

호텔이 있는 벤텐쵸 역은 늘 묵던 Port Villa Meisei 아파트가 있는  쥬 오센(중앙선) 오사카 코 역에서 시내 쪽으로 두 번째 정거장이다. 

 

오사카에 가면 왜 난 이 근방을 서성대는가?    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이 근방이기 때문이다.  벤텐 부두 앞바다엔 내 초등학교가 수몰된 지역이다. (2012/04/26 - [해외여행기/일본 오사카2012] - 아지가와(安治川) 바다 밑에 수몰된 내 유년시절의 족적)

 

아지가와(安治川) 바다밑에 수몰된 내 유년시절의 족적

아지가와(安治川) 바다밑에 수몰된 내 유년시절의 족적 내가 태어 난 곳은 오사카시 코노하나꾸 시칸지마 시라도리쵸 1 반찌(大阪市 此花區 四貫島 白鳥町 1 番地) 로 되어 있다. 내 호적에 그렇게 적혀 있다. 그..

boris-satsol.tistory.com

 

벤텐쵸는 교통의 요지다.   시내를 관통하고 나라까지 가는 쥬오센과 오사카 순환 JR 가 교차하는 역이다.  어디를 가도 가기 쉬운 곳이다.

 

작년에 리모델링을 해서 깨끗하다고 하니 구미가 당긴다.

 

이젠 환전을 하고 오사카에서 휴대전화를 쓸 나노심을 구하면 된다.

 

뚝딱 여행 준비를 끝냈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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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4.17 23:38

    오랫만에 방문 하시니 감회가 크시겠습니다
    사모님과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4.18 11:14

    즐거운 여행 다녀오십시요. 오사카의 봄 풍경 사진도 기대하겠습니다. ㅎ

오사카여행 끝

 

 

 

Tenpozan 에서 Kansai 공항 가는 리무진에서

2015 년 5월 20일

 

 

40일간의 오사카여행을 끝내고 오늘 낮 귀국했다.  잠간 떳다하면 얼마 안 있어 한국 상공을 날고 있다.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로 자주 표현된다.    그 만큼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반일 반일 하면 일본은 역시 염한, 혐한 한다.

 

일본의 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의 근간이 되었다고 발언하는 인사가 있으면 일본사람이라면 "망언" 한국사람이라면 뉴라이트니 우익이니 하고 매도한다.

 

"역사라는 것을 이렇게 본다" 하는 것을 역사인식이라 하고 그걸 가지고 말 다툼을 한다.  "역사인식" 같은 것은 처음 부터 없다.   그냥 난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것이다.  일본 식민 통치가 한국 근대화의 근간이 되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믿는 것이고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거기에 더해 그걸 시혜라고 주장하니 기분이 상하고 열을 받는 다면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걸 너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 말이나 생각에 진위란 처음부터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니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말이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도 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하고 특히 나라나 정부를 대변한다는 인사는 그 말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이다.

 

나에게 넌 어떻게 생각하니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     원래 내 생각도 내가 보고 느낀것 체험한 것 가족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무슨 책을 읽었고 어떤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나에 의해서 생긴 의견이다. 

 

일본이 다 염한 혐한도 아니다.     한류는 분명히 한 풀 꺾였다 해도 주중 아침에는 한국 드라마가 엄청 많이 방송되고 있었다.  욕망의 불꽃,  내 손을 잡아,   지성이면 감천, 동이, 은희 등 막장 같은 드라마도 많이 섞여 있다.   일본 주부들이 한가한 시간에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 일본 주부들에게는 여전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뉴스라든가 시사성 예능 프로그램이라든가 하는 곳에서는 한국을 조롱하는 듯한 언급을 가끔 보기도 한다. 

 

누구던지 자기네를 좋아 한다고 하면 좋아 하고 싫다고 하면 좋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염한 혐한은 소수이지 다수는 아니라고 본다.  

 

우연히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던 시기 전후해서 일본의 진보 언론인인 가나히라 시게노리 (金平茂紀- かねひら しげのり)가 미국의 역사학자  John Dower 교수를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다.  유튜브에 올라 와 있어 내 페북에 링크를 해 놨는데 지금은 이 동영상이 저작권 침해로 신고되었기 때문에 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그 동영상을 찾으면서 발견한 것이다.   이 인터뷰 기사를 주관한 일본언론인과 John Dower 교수를 매도한 글이 구글에 제일 먼저 검색되었다는 것이다.   유튜브도 그내용을  Up(좋아) 한 사람과 Down(싫어) 한 사람 보다 10배는 더 많지만  일본 우익들이 더 떠들어 대는 것을 보면 John Dower 를 매도하는 사람이 일본사람 가운데 더 많은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인터뷰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에도 그렇다.

 

John Dower 는 MIT의 역사교수로 지금은 은퇴하여 명예교수로 남아 있다.   그는 일본 근대사의 전문가로 10 여년전에 "패배를 안고서(embracing defeat)" 라는 일반인용 책을 써서 퓨릿쳐상까지 탄 사람이다.  

 

그 인터뷰 내용은 요즘 일본 정권이 추구하는 평화헌법개정 시도를 비판한 것이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의 나라" 를 만들려고 온 힘을 쏟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 경고를 울린 것이다.    그 "보통의 나라" 가 미국과 갈은 나라를 말한다면 그건 최악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Dower 교수는 미국은 확실히 본 받을 나라가 못 된다고 미국도 함께 비판했다.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은 해서는 안되는 전쟁이었고  베트남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숨진 병사들이 모두 영웅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전 70년을 맞는 일본은 착잡한 현실을 마주치게 되었다.   경제부국이요, 최첨단 기술과학 강국이지만 장기 침체와 고령화로 인해서 사회의 분위기는 매우 가라 앉아 있다.    몇년전에 겪은 동북대진재의 쓰라린 상처도 아직 깊이 남아 있고 그 방사능 오염의 처리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히틀러도 제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의 와이마르 정부가 나약하고 무능한 틈을 타서 득세한 사람이다.  능란한 변설로 독일 국민을 선동하여 정권을 잡고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독일을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

 

난 일본은 참으로 훌륭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여 잿더미가 된 열도에서 30 여년만에 세계의 경제대국을 만든 나라가 아닌가?    과학기술과 창의력으로 오늘의 경제부국을 만들었다.   이걸 자랑스러워 해야지 군국 주의시절 주변국을 침탈하고 전쟁을 일으켜면서 한 때 아시아의 패(覇)자로 군림하던 때를 그리워 하고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면 역사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워크맨을 만들어 세계를 재패하고 베타멕스와 VHS 를 만들어 최초로 홈비디오를 찍고 TV 방송을 녹화해서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그런 나라가 아닌가?    다시 그런 히트 상품을 만들어 경제를 일으키고 일본의 존재감을 과시해야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무장을 하겠다면 역사의 시계바늘을 너무 많이 돌려 놓는 것이다.  

 

제발 전쟁을 해서 다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말아 줬으면 한다.  그건 최악이다. 

 

 

 

 

아마존에서 이 책을 ebook 으로 샀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귀국하던 20일 저녁이지만 23일인 오늘 끝을 낸다.   그 사이 며칠 아팠다.     여행은 아무리 뭐라 해도 신체적으로 힘이 드는 것 같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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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5.24 20:42

    잘 다녀오셨습니다. 젊은사람들도 그 정도 여행이면 며칠 아픕니다. ㅎ

  2.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5.25 01:01

    저도 선배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좋은 말씀 토씨 하나도 빼지않고 새겨 보았습니다 ^^

오사카 여행계획

 

 

 

사람의 미래란 한치 앞도 알 수 없단 말은 진실인 것 같다.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오늘이나 내일 유레일패스를 사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일본 오사카여행을 계획하게 되다니....

 

오사카엔 또 가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염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을 때엔 당기지 않았다.    그러나 4~5년전의 친한 분위기가 다시 쉽게 돌아 올 것 같지 않아 너무 늦기 전에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번 봄이 아니라도 가을이라도 내년이라도.....

 

가을도 좋겠지만 날이 짧아 지는 계절보다는 날이 길어 지는 늦봄이 자전거를 타는 우리에겐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허설쑤로 Alex에 이메일을 보낸 것이 적중한 것이다.   10층 우리가 지내던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유선랜이 끊긴거라든가 Pitapa 후불제 교통카드가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4~5년전 보도 환률이 떨어져 값이 덜 든다는 이점도 있다.

 

인터넷 문제는 어제 해결했고 교통카드는 없지만 티겟을 매번 사서 쓰면 된다.     멀리 갈 때에는 1일 카드를 사서 쓰기로 마음 먹이니 가볍다.

 

4월 10일 출발 5월 20일 귀국한다.    그리고 한달 17일 집에서 보내고 또 6주 네델란드 여행을 떠난다.   넥디스크가 나은 것은 아니지만 아프면 아픈대로 통증을 안고 그냥 버티는 것이다.

 

간사이 공항에서 텐포잔까지 다니는 공항버스 시간표는 별 변동이 없는 것 같다.

 

Alex 에 알리고 마중나와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계획은 끝났다.

 

그 사이 오사카가 변했을까?    궁금하다.

 

 

 

내 바탕 화면 <도돈보리>

 

 

 

텐포잔을 오가는 공항 버스 시간표

BusTimeTable.pdf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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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3.18 13:46

    아무래도 오사카가 고향이시니 더 그리우실 것 같습니다.
    좋은 계절에 고향에서 좋은 추억 만드십시요...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3.18 18:30

    비밀댓글입니다

오사카 여행을 또 할 수 있을까?

 

 

2012년 일본여행 (오키나와, 큐슈, 오사카, 홋카이도)를 마지막으로 일본여행을 한동안 접었다.     홋카이도 여행중에 우리는 MB의 독도방문이란 깜짝쇼를 지켜 봤다.  MB의 돌출행동을 기점으로 한일관계과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에 가기 싫어졌다.  

 

일제 강점기를 일본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일본이 한국사람(당시엔 모멸적인 뉴앙스가 풍긴 죠센진(조선사람)이란 호칭으로)에 대해 보이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많이 했다.   그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것을 씻어내고 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과 한국을 좋아하게 만든 것은 한국 드라마 "겨울 연가"를 정점으로 한 우리의 연예인들이 이룩한 한류 덕이었다.    일본에 오래 살던 한  재일동포가  내가 일본을 여행하던 그 때(2011~2012) 그랬다.   이제 한국사람이란 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타깝게도 MB와 같은 저질 대통령과 그의 독도방문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못난 한국사람들이 한일관계를 급냉시키고 말았다.    대통령이란 자가 저질 반일 발언을 마구 쏟아 냈다.  일왕이 사죄하면 일왕이 한국에 올수 있다라든가 일본 경제가 침체가 되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떨어져서 일본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든가 일본을 자극하는 말들을 뱉어 냈다.      못난 국민들은 환호를 했고 임기 내내 10, 20대를 맴돌던 지지율이 임기 최초 40%까지 치솟았었다.  

 

이 틈새를 타고 염한(厭韓) 혐한(嫌韓) 분위기를 떨쳐 일으키면서 득세한 이가 아베총리다.      물론 아베가 득세한 것은 일본의 장기침체가 원인이었지만 아베 같은 인종이 수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후원했기 때문이다.   

2013/12/28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아베의 야스쿠니행은 미국이 키운 현상

 

어떻던 역사는 그렇게 흘러 갔다.   한류는 가 버리고 일본 관광객은 자취를 감추고 일본의 한류 상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한국 드라마는 더 이상 일본에서 방영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의 극우파는 연일 데모를 하면서 "자이니치"  나가라고 아우성이다.  다시 일본 재일 동포는 움추려 들고 언제 또 이런 극우파들이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확성기로 자이니치들아 돌아 가라고 소리 지를 지 모르게 된 것이다.

 

반일은 염한을 가져오고 염한은 반일을 가져 온다.   이런 상호 상승작용(escalation)이 끊임 없이 이어지면 결국 어디엔선가 폭팔한다.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지도자라는 자가 자기 인기를 높이자고 국민을 선동하며 광분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무능하고 무력한 대통령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아베는 한 동안 역사인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게 그에겐 아무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하던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나라로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 염한 혐한 극우 세력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베 같은 수상이 나오게끔 전쟁후 미국은 전범재판을 제대로 치루지 않았다. (2013/12/28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아베의 야스쿠니행은 미국이 키운 현상)   그러고는 미국은 또 다시 아베 같은 수상을 후원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중국을 견재하려고 하고 있다.  

 

지금 한일관계는 정말 미묘한 위치에 와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이 방정식을 어떻게 풀려는가?  풀 능력은 있는가? 

 

일본에는 그래도 국민을 선동하는 저질 지도자를 꾸짖는 지성인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지말라·"라는 에세이에서 국민을 선동하는 일본의 지도자를 꾸짖은 것이다 .     한국엔 그만한 무게의 지성인 조차 없다.

2013/01/25 - [일상, 단상/잡문] - 무라키미 하루키 -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지 말라

 

2012년 오사카를 떠날 때 우리가 빌렸던 아파트의 메네져에게 다시 올 것을 기약했다.    연어가 부화에서 새끼로 산 곳에 돌아 와서 산란을 하고 생을 마감하듯 나도 내가 태어난 그 곳에 자꾸 가고 싶어 진다.

 

오사카는 내가 태어 난 곳이다.   

 

그래서 어제는 그냥 허설쑤로 그 아파트를 관리하는 Alex 에 이메일을 보내 봤다.     방이 있으면 4~5웝 경 한달 남짓 가 있고 싶다고 했다.

 

대답이 즉각 왔다.  빈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신사시바시 한국영사관 앞에는 전에도 몇번 일본 우익들이 데모하는 것을 봤다.   지금은 더 심해졌을 지 모른다.   그렇다고 자꾸 오사카여행을 미루다 보면 내 힘이 빠져 그 땐 갈 수 있어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된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오사카에 가 보련다.   이 번 봄에 꼭 가 보리라.

 

 

Great to hear from you again.
Sounds like you are still jet-setting the world!!!!

I have the apartment on the 10th floor available like last time.
100000yen/month and I can prorate the additional days for the second month.

On the internet, it maybe better to get your own this time.
I will attach some links to several companies that offer mobile internet etc options, or even SIM cards.

Let me know what your schedule will be once you have it all figured out.

Thank you
Alex Barnhoorn
ABHousing Osaka
09037030314 

 

 

 

2011년과 2012년 두번 묵었던 오사카코 역 직전의 아파트

Port Villa Maesei

여기 자리가 있다니 여행을 떠날 까나?

 

   

 

https://youtu.be/ydlcf1uqPJg

일본 오카리나리스트가 부른 <겨울연가> 삽입곡 "처음부터 지금까지"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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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누님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에겐 네사람의 누나가 있다.     4남매 중의 위의 네 동기는 내 부모가 처음 출산한 4남매이고 나와 바로 손위 누나는 내 부모가 한 동안 헤어졌다 일본에서 재회한 다음 낳은 남매다.    나와 네살 터울인 오사카에서 태어난 손위 누나는 19살(만)되던해 일어난 625 전쟁 와중에서 행불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비극의 유산의 주인공이다.  2005/02/17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비극의 유산 ---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우리 어머니

 

셋째 누님은 내 부모님이 철원에 사실 때 낳은 네 동기중의 막내인 셈이다.   개띠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1922년생이다.      언젠가 내 가족사에 내 어렸을 때 모습을 기록한 일기를 공개한 일이 있다.   2011/01/04 - [일상, 단상/나의 가족, 가족사 ] - 셋째 누님의 옛 일기에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 일기의 단편은 사실은 그 누님이 1938년 5월 29일(일)에 쓴 일기다.   내 어렸을 때 모습을 그렸기에 이 블로그에 공개했었다.   블로그를 쓸 때 그 날이 정확히 몇년인지 몰랐다.  대개 내 나이가 서넛되었을 때라고 생각해서 1938년 안팍이라고만 추축했는데    What day of the week was the 29th of May 1938? 하고 구글링을 했더니 Sunday 라고 나왔다.  바로 전해인 1937년 5월 29일은 토요일이었으니 1938년이 맞다.

 

1938년 5월 29일은 내가 2돌하고 6개월 9일 된 날이다.   

 

2년전 오키나와 여행중에 세상을 떴다.   2012년 1월 20일 쯤으로 기억된다.  오키나와의 제일 북쪽을 드라이브하려고 아라하 비치 숙소를 나왔을 때 두 째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그 때의 포스팅 ( 2012/01/20 - [해외여행기/일본 오키나와] - 오키나와 드라이빙 - 헤도미사키(辺戸岬) 와 야에다케(八重岳) ) 을 보니 세상을 뜬 날이 2012년 1월 20일 하루 이틀 전일 것이라 추측이 된다.    누님의 생일이 3월이나 4월 아니었나 싶으니 90년 마이너스 한 두달 살다 가신 셈이다.

 

전에 올렸던 셋째 누님의 그 일기는 실은 누님이 17살 때 쓴 일기로 그 때 출가해서 경기도 양주에서 살고 있는 큰 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에 옮겨 적은 것이다.      8 페이지에 이르는 이 편지의 첫 문장에 오사카에 살다 시집간 큰 언니에게 오랫 동안 편지를 올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일기를 발취해서 당시 여학생이었던 자신의 학교생활과 오시카 소식을 전한 것이다.    

 

아직 시집 안간  두째 언니의 이야기도 막내동생인 두돌 반짜리 내 이야기와 큰 언니가 시집 간 후에 이사 온 이시다쪼의 새 집 이야기와 도면까지 그려서 편지에 썼다.

 

아무리 일기의 일부를 베껴 썼다해도 8 페이지의 편지를 썼다는 것은 감수성 많은 여학생이 아니었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큰 언니인 내 제일 큰 누님도 같은 해 5월 27, 8일경 세상을 떴다.   오사카 여행중 마지막 날에 받은 슬픈 소식이었다.     2012/05/28 - [해외여행기/일본 오사카2] - 오사카 마지막날

 

어제는 셋째 누님의 두째 딸 내외가 찾아 왔다.    유일하게 LA 에 살아 계신 두째 누님은 LA 에 갈 때 찾아 뵐 수 있고 생질들도 셋은 LA 에 살고 있어 겨울에 LA 여행을 가면 만날 수 있지만 오혀려 한국에 살고 있는 큰 누님 셋째 누님 가족들은 만난지도 오래 되고 소식도 드문드문이다.   

 

유일한 소식통로는 어제 찾아온 셋째 누님의 세째조카(두째 딸)다.  

 

어제 찾아온 조카사위는 10년전 누님을 모시고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누님의 막내 아들을 방문할 때 누님을 모시고 간  두째 사위다.   그 땐 우리가 골프를 칠 때라  텅텅 빈 뉴질랜드의  골프장을 함께 누비고 디녔다. (2007/05/16 - [해외여행기/뉴질랜드] - 2004 년 뉴질랜드 여행기 )



 

그 때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이 나서 오늘 그 때 찍은 사진 몇장을 보내 왔다.    그 때 내가 거기서 7순 생일을 맞았다. 두돌반 짜리 막내동생이 귀여워 죽을 지경이라고 일기에 썼던 그 막내의 7순 생일을 맞았던 것이다.    막내 아들에게 부탁해서 한국 떡을 사 오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바로 정확히 10년전 이야기가 되었다.    세월의 무상함이여!

 

 

 

 

 

Half Moon Bay 가 하는 곳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가 오크랜드 시내를 관광하고

페리를 기다릴 때 찾은 생맥주 전문점에서 

 

 

 

 

여러가지 생맥주를 팔고 있어

생맥주를 좋아 하는 나에게 반가운 발견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맞은 내 칠순 생일날

 

 

 

 

오사카에서 어렸을 때 살 던 집 구조

큰 언니가 시집 간 후에 이사 온 이시다쬬의 집

내 출생신고엔 내 출생지가 코노하나꾸 시칸지마라고 나와 있으니

미나토꾸 이시다 소또무라쵸의 이 집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오사카의 유년시절의 집이다.

한 때 할머니가 돌아 가시고 무서워서  혼자 들어 가지 못했던 집

오사카 대 공습 때(1945?) 타 버렸다고 한다.

 셋째 누님의 편지에서.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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