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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년 송년회 본문
2017 년 송년회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은 나이가 되면 내 블로그도 옛날 얘기가 더 많아진다. 어제는 물리학부 송년회에 갔었었다. 내가 처음 물리학과에 부임해서 가르쳤던 3번째 해의 학생이 은퇴해서 명예교수의 반열에 끼어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아직 현직에 있는 한 제자 교수에게서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수가 아직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내 prl 에실린 논문을 본 이야기였다. (단상)
내 분야인 통계물리와는 다른 입자물리를 전공했는데 비록 분야는 달라도 자기가 배운 모교의 교수가 미국의 교수들도 싣기 어려운 prl( Physical Review Letters)에 실린 논문을 보고 자랑스럽고 뿌듯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prl 에 올린 몇개의 논문중의 하나로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구업적이다.
1950년대 중국계 미국 물리학자인 TD Lee 와 CN Yang 은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탄 것으로 더 유명해 진 인물이다. 그 두 물리학자는 통계역학과 입자물리 두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Ising Model 의 Onsager solution 을 증명한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에 더 나아가 상전이의 이론을 제시했다.
노벨상도 입자분야의 업적으로 탄 것이기 때문에 이 제자교수가 내 논문에 관심을 가진 것도 입자물리분야의 대가인 Lee-Yang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Lee-Yang Circle theorem 이란 이름으로 알려 진 이 이론은 추측이었지 엄밀한 증명이 빠졌었다.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내가 prl 에 게재한 논문이 이 이론을 증명하고 더 나아가 일반화해서 Lee-Yang therorem 이 특수한 경우로 포함되게 한 것이다.
논문을 쓴 것이 30년전 이야기이고 물리에서 손 뗀지 10년이 넘었으니 나도 대강 어떤 것을 했다고 기억만 할 뿐 자세한 것은 잊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보면 새각이 나려나 하고 침대위에 걸져 있는 아이패드로 검색하니 논문이 나온다. 그러나 초록만 보여 줄 뿐 본문은 돈을 내고 사야 한다.
25불을 신용카드로 결재하고 논문을 내려 받았다. 내가 내 논문을 25불 주고 산 셈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엄청난 계산을 하면서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쉬웠던 것은 이 논문은 내 방대한 증명을 위한 계산의 초요약이고 이를 해설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던 점이다. PRL 은 4 페이지 이상의 논문은 실어 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방대한 내용이라 해도 4 페이제로 요약해야 한다. 이논문에 관해 해설하고 미진했던 부분을 더 자세히 연구했다면 적어도 5,6편, 많으면 10편의 논문을 썼었을 것이다.
난 일단 난제를 풀고 나면 다른 문제에 도전하는 게 재미가 있지 이것을 다시 해설하거나 가지를 키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업적을 알리는데 손해를 많이 봤다.
PS:
Lee-Yang theorem 의 CN Yang(楊振寧) 교수는 한국과 또 나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CN Yang 교수는 내가 은퇴하기 몇년전인 1996년에 한국에 유치 설립된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 = 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의 초대소장을 지냈으며 내가 한 때 CN Yang 소장의 특별고문을 지낸 일이 있다. 그 때 찍은 사진이 오랜 사진묶음에서 발견되어 여기 스캔해서 올린다.
아태 이론물리 센터 국내외 인사들
앞줄 한 가운데가 CN Yang 소장이고 그 왼편이 필자
해외 인사는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1998 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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