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해외여행기/일본 오사카2012'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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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세라돔과 이대호 선수의 시즌 4호 홈런

 

야구에 그리 깊은 관심이 없지만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나가자면 쿄세라 돔을 지나가게 된다.   Brompton shop Loro 에 갈 때란든가 신사이바시 도돈보리에 갈 땐  그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궁금해서 한 번 들어 가 보기로 했다.   Orix Buffaloes 는 한국선수 이대호가 있는 팀이라 기왕이면 한국선수도 응원할 겸 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Buffaloes 의 홈피를 보니 우리가 떠나기 전에 볼 수 있는 홈 경기는  오늘 부터 시작하는 3 경기와 26인가 27인가 하는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가 있었다.

 

한신 경기는 워낙 인기가 있어 값도 다르고 이것 저것 제약이 많다.   오늘 경기가 가장 쉽게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 당일 입장권을 돔 매표소에서 사가지고 들어 가려고 돔에 갔다. 

 

오늘 따라 날씨가 나빠서 꽤 두껍게 차려 입고 나왔는데도 춥다.    4시좀 지나서 돔에 도착했는데 매표는 4시 45분에 하고 입장은 5시에 한다고 한다.  거의 한시간 밖에서 기다려 압장할 수 있었다.  꽤 추웠다.

 

이대호 선수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아봔스시트 B를 장당 6500 엔 주고 두장을 샀다.  아봔스시트 A가 가장 일루에 가깝지만 매진이라 아봔스시트 B 를 산 것이다.      이대호 선수는 가깝게는 있었어도 등만 볼 수 있었고 타석에 들어 설 때는 너무 멀어서 잘 볼 수 없었다.

 

4타석에서 single 두개 홈런 1개를 치는 것을 봤으니 큰 수확이다.

 

궁금하던 Dome 구경도 했다.   야구는 잔치고 축제다.     축제를 잘 구경했고 덤으로 이대호 선수의 홈런장면까지 봤으니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입장료값 단단히 뽑았다.

 

 

 

 

다이쇼 바시에서 본 쿄세라돔(京세라Dome)

쿄세라는 코니가 애용하는 세라믹 부엌 칼을 만들어 파는 회사라 잘 안다.

저 돔 넘어가 미나토 도리라 우리가 항상 지나 다닌다.

돔 밑으로도 길이 나 있고 자전거가 지날 수 있는 인도가 있다. 

야구 구경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제법있다.

그 돔 밑에 커다란 자전거 주륜장이 있다.

 

 

 

돔 내부

 

 

 

Avance seat ticket

 

 

Avance 석의 이름이 뭔가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봔스 법률사무소가 스폰서해서 만든 자리란 뜻이었다.

1루와 3루 끝 부분에서 시작해서 ground level 수준으로

나중에 만든 듯한 자리였다.

아봔스 법률사무소 표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이 자리는 필드와 가까운데도

망이 쳐 있지 않아

헬멧과 고글을 놔 두고 경기중에는 쓰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인닝사이에는 피켓을 들고 다니거나  확성기로 계속 안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도 쓰는 사람은 10명에 서넛 정도

볼에서 항상 눈을 떼지 말라고 게임중에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도 경고하고 있다.

이대호선수가 1 루를 보기 때문에

1 루측 Avance Seat A (Home 에 가까운)를 사려고 했으나 매진이라  B룰 샀다.

1000엔 차이인데.

 

 

 

우린 내내 헬멧을 쓰고 앉아 있었다.

자전거 탈 때도 헬멧을 쓰는데.

누가 알랴  재수가 없으면...

헬멧에도 아봔스 법률 사무소 선전이 붙어 있었다.

 

 

 

아봔스 시트에서 보는 필드

 

 

 

전광판에 타순이 나와 있다.

이대호 선수는 4번 타자였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는 이대호 선수의 수비 뒷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중앙 망뒤가 더 좋았을 지 모른다.

값은 아봔스 A 석과 같은 7500 엔이다.

 

 

 

수비 중간에 리렉스하고 있는 이대호

 

 

 

타석에 들어 선 이대호

 

 

 

우리 자리 앞에 나타 난 cheer girl

 

 

 

Buffaloes 마스콧

 

 

 

이대호 선수의 궁뎅이에 언제 흙이 묻었네

 

 

 

셀프셧 한 첫

 

 

 

마침내  8회말에 홈런을 때렸다.

홈런을 치고 3루를 돌고 있는 이대호 선수

망원을 마칠 시간이 없어 정상 조준으로 찍으니 사진이 너무 작아졌다.

 

 

 

오늘 아침 오릭스 홈페에 보니  홍런을 친 이대호 선수 사진이 나왔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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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코(六甲) 아일랜드

 

롯코아일랜드는 코베의 한 작은 섬이다.  동서 양안은 부두 창고등으로 쓰고 있고 가운데에는 학교와 쇼핑몰,  공원,  고급 아파트등이 들어 서 있다.   생김생김이 6각이라 로코(六甲) 아일랜드다.  해안 부두는 인조해안일 것이다.   동서 양안의 부두시설과 고급 아파트군을 경계짓게 공원을 조성해 놓고 그 공원에 산책로를 냈다.

 

상당부분 흙길인데 자전거가 달린 만한다.   오사카-코베 자전거 산보 책에 나온 코스중의 하나가 이 길을 달린다.    이 책에 나온 코스중에 가장 짧은 코스일 것 같다.   10 킬로 남짓하다.   한 바퀴 돌고 공원을 산책하고 놀다 오는 코스다.  

 

코베 중심역인 산노미야 직전 우오사키(魚崎)에서 롯코라이너라는 3량 무인 전철을 타고 전철의 종점인 마린 파크까지 가서 이 코스를 돌 수 있다.   롯코대교를 건널 때를 빼고는 한적하고 조용한 코스다.    이 코스의 동남쪽 코너에 한 작은 카페가 있어 술과 간단한 식사를 판다.   로코 라이너를 타고 와서 이 카페에서 해넘이를 보거나 오사카나 코베의 야경을 관상하며 칵테일이라도 마신다면 제격일 것 같다.

 

우린 이 코스를 돌기 전에 이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생맥주도 한 잔 했다.

 

후식으로 커피는 딴 카페에 가 볼 생각이었으나 코스를 도는 동안 이 코스에서 가운데로 내려가지 않고는 들어 갈 만한 카페나 식당은 별로 없었다.    코스를 마치고 다시 이 식당에 와서 난 생맥주 두잔 코니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거기에서 코베 국제대학을 지나면 롯코 라이너의 남쪽 종점인 마린 파크 전철역이다.    그래서 걸어 갈 요량으로 두 잔을  마셨다.

 

우오자키에서 롯코 라이너를 내리면 한신 전철로 갈아 타고 쿠조까지 갈 수 있다.  쿠조는 오사카 시영 전철 쭈오센을 갈아 탈 수 있는 환승역이다.     롯코에 올 때에는 쿠조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지만 갈 때는 쭈오센을 타고 집에 돌아 왔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고 그래서 세워 둔 자전거가 바람에 두어번 넘어졌다.

 

  

 

 

 

한신 전철 역사에서

우오사키(魚崎)에서 선다고 나온다.

 

 

 

우오사키에서 갈아 타는 롯코 라이너는 3량짜리 무인 절철로 운전기사 없이 자동운전하는 전차다.

한량도 아주 작아 가운데 문이 있고 양쪽으로 6,7 명 짜리 벤치석이 두줄이다.

 

 

 

앞칸에는 버스 좌석같은 자리가 몇좌석 있다.

고가를 달리기 때문에 경치가 좋다.

 

 

 

롯코라이너의 남쪽 종점인 마린파크 역

이 파크역에서 내려가지 않고 대로를 육교로 건너 맞은 편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마린 파크로 갈 수 있고 그 옆의 코베 국제 대학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마린파크에는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이 많이 나와 점심을 먹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있었다.

 

 

 

마린파크 해안

 

 

 

 

마린 파크 양쪽에 둥근 건물이 있는데

오른 쪽은 우동 따위를 팔고 있었고 왼쪽엔 양식과 칵테일을 파는 카페가 있다.

 

 

 

그 날은 날이 충분히 더워서 야외석에서 식사를 할 만 했다.

 

 

 

음료, 샐러드, 메인 디쉬 셋트 메뉴를 시켰다

생맥주도 한잔 곁들여 시켰다.

 

 

 

샐러드를 가지고 온 웨이터에게 부탁해서 한 컷

 

 

 

빵과 샐러드

응료는 파인애플 쥬스를 시켰다.

 

 

 

메인 디쉬로는 sardine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맛이 있었다.

멋까지 부려가지고 내 온 접시

가까운 거리라면 다시 오고 싶은 카페였다.

가격은 조금 비싼 편

 

 

 

그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야자 나무가 줄지어 있어

코베가 아니라 어느 남쪽나라에 온 기분이다.

<자전거 산책>책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다.

 

 

 

부두와 창고를 구분하는 공원에는 이런 산책로를 마련하여 걷고 탈 수 있게 해 놨다.

 

 

 

상당 구간은 이런 흙길이지만 자전거 타기엔 크게 불편이 없다.

 

 

 

시내의 대로들은 무두 이런 육교로 넘어가게 되어 있어 일부러 내려가지 않는 한

공원과 시내는 구별되어 있다.

 

 

 

롯코 대교

많은 통행량이 없는데에도

인도교는 따로 이렇게 잘 만들어 놨다.

걸어 다니기엔 조금 길고 자전거로나 다닐 만하다.

 

 

 

롯코 대교에서 내다 본 항만 풍경

 

 

 

롯코 라이너의 철교

 

 

 

우리가 건나 갔다 건너 온

롯코 대교

 

 

 

 

<오사카-코베 자전거 산책> 책에 나온 자전거길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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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5.11 13:41

    제가 95년도 고베지진때 조사차 갔던 곳입니다.
    그 당시 피해가 꽤 컸던 지역인데 지금은 흔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2.05.11 22:34 신고

      그러셨군요. 며칠전에 Porttown 에도 갔었는데 거기엔 지진 흔적을 공원에 남겨 놓고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본 것이지만. 롯코도 Porttwon과는 가까운 곳이니 그곳이 피해가 컸다면 롯코도 컸겠습니다. 지금은 깨끗해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

 

서양속담에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는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에 해당한다고 할까.  

 

어쨓던 우린 필요하기 때문에 우물을 팠다.

 

오사카여행을 하면서 필요하여 생각해 낸 것이다.        오사카코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가 돌아 다닐 데는 거의 다 다녔고 본격적인 랑코(輪行 -  점프) 를 하다 보니 원래 Broompton에서 달아 붙인 Easy wheel 로 역사내 여기 저기를 끌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Easy wheel은 바퀴가 작아서 거질고 울투불퉁한 바닥을 다니기 어렵고 턱이나 층이 진 곳을 지나가지 못한다.   역사를 다니다 보면 그런 곳이 많이 있다.     또 일본의 대중 교통 열차에는 수화물 규정이 접이식 자전거라 해도 커버를 반드시 씨우게 되어 있다.

 

일본 열차는 유럽 열차에 비해 비좁고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서양사람에 비해 체구가 작은 동양인 사이에서는 Brompton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열차의 화물 규정에 자전거는 싣더라도 접어서 싸거나 분해해서  싸서 싣게 되어 있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Brompton 의 원 커버로는 핸들바를 꺼내어 커버를 씨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지퍼를 양쪽으로 열어 가운데를 벌리고  가운데에 핸들바가 나오게 한 다음 지퍼를 잠가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가방이라도 달려 있으면 뒤집어 씨우기 불가능하다.  가방을 내려 놓고 뒤집어 씨운다움  가방을 다시 달아야 한다. 

 

이런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접힌 앞바퀴는 밀 때 쓰는 큰 바퀴로 변환하고 지퍼대신 찍찍이(velcro tape)로 바꿔서 쉽게 커버를 씨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일본 여행을 랑코로 할 때 유용할 것 같아 여기 소개한다.

 

위선 앞바퀴를 굴림 바퀴로 바꾸려면 접혔을 때 구르지 않는 원인을 살펴 보고 그 원일을 안 다음 개선방법을 고안했다.    가장 큰 원인은 페달이 바퀴 타이어에 닿아 굴음에 쓸림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닿지 않게 하는 방법은 페달이 떨어 지지 않게 묶어 두는 것이다.

 

두번째는 접힐 때 케이블이 바퀴에 닿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간단히 해결 된다.  조심해서 케이블이 chain 안쪽에 들어가게 하면 된다.   밖에 있다면 chain  안으로 들어 집어 넣어 바퀴에 쓸리지 않게 해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접힌 앞바퀴는 자유 바퀴가 된다.

 

커버를 뒤집어 씨우는 문제는 지퍼 대신 찍찍이를 달아서 오므리는 방법을 썼다.  처음에는 양면 테이프를 사서 써 봤으나 찍이가 풀리지 않고 양면 테이프의 접착제가 풀려 나와 소용이 없었다.    다시 양면 테이프가 없는 찍찍이를 사서 바늘과 실로 꿰맸다.    양편테이프를 처음 사용한 접착체 때문에 바늘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꿰매는데 여간 고생하지 않았다.    양편 테이프 찍찍이는 모든 경우 거의 소용이 없는 제품이다.  찍찍이의 접착력이 초기에는 접착체의 접착력을 능가한다. 

 

아래에 동영상을 보면 쉽게이해가 갈 것이다.     

 

 

http://youtu.be/4-rmep9mLEg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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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된 브로미 - 교토(京都)나들이

 

4월 28일(토)엔 교토에 갔다.    게이한(京阪) 전철은 요도야바시에서 교토의 산조( 三条(さんじょう))를 지나 데마치 야나기역까지 간다.  요도야바시도 오사카 우메다역에서 한 정거정(미도스지센) 아래이고 교토의 산조역도 교토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요다야바시역이 출발역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타면 앉아 갈 수 있고 교토에서도 종점인 데미치야나기역에서 타면 앉아 갈 수 있다.  그날이 토요일인데다 일본의 Golden week 로 연휴기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첨 많았다.   종점에서 타지 않았다면 자리 차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요도야바시 에서 <산조>까지 특급이 52분 걸린다고 되어 있다.  집에서 요도야 바시까지 반시간정도 걸리니까 우리집에서 교토까지 한시간 반이면 간다.

 

이날 우리가 달린 코스는 <교토 자전거 생활>이란 책에 올라 있는 교토의 옛 운하물길을 주로 따라 가는 코스였다. 그 중에 데츠가꾸노 미치(철학의 길)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대표적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Nishida Kitaro, 西田幾多郞) 교토대학 교수가 사색하며 산책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이름의 길이다.  별칭 또는 애칭에서 이젠 공식 길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다.  

 

이날은 연휴의 첫날이라 그런지 엄청 인파가 몰렸다.    오사카의 혼마치거리 만큼이나 사람을 피해 자전거를 타야 했다.   이 길을 달린  브로미는 이날 별 사색을 못했을 것 같다.

 

 

 

근대화 초기 옛 교토는 비와호의 물을 끌어다 수로를 만들어 용수, 발전, 관개, 운송등으로 썼다고 한다.

그 시설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고 우리가 돈 코스는 이 물길을 많이 따라 다녔다.

 

 

 

관광버스도 많이 와 있고 사람들도 많아서 무엇인가 가까이 가 보니

전통 디자인 박물관이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식당을 기웃거리다 마침내 한 일식당에 들어 갔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현관에 브로미들 들여 놓고.

 

 

 

우동을 시켰는데 이 우동 국물은 마치 중국식당의 울면과 같이

전분을 푼 듯 되직하였다.

 

 

 

코니는 더웁다고 모밀국수를 시켰다.

 

 

 

여기 저기 옛 수로의 자국들이 보인다.

 

 

 

<인크라인>

<인크라인>은 철길인데 열차용이 아니라 수로의 일부였다고 한다.

비와호와 교토의 수로엔 고도차가 있어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도 했는데

그 대신 수로를 이용하는 수송선은 이 낙차구간을

레일을 다니는 대차위에 올려 끌어 올리거나 내려 놓아 고도차의 운하를 연결해 주었다고 한다.

그 옛 레일이 남아 관광 포인트가 되고 있다.

 

 

 

남선사 입구

 

 

 

남선사 큰 문을 지나 한 참 올라 기면 아래의 벽돌 구조물이 있다.

 

 

 

이 벽돌 구조물은 비와호 물을 끌어 오는 수로로 아직도 이 위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명치 초기의 건출물로 관광 테마가 되고 있다.

 

 

 

남선사 안의 절문

 

 

 

여기가 철학의 길 입구이다.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는 나 역시 대학시절에 관심을 기졌던 철학자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선의 연구 (善の 硏究)라는 책은 내가 청계천 헌 책방에서 사서 가지고 있던 책이다.

너무 어려워 깊이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책에서인지 다른 곳에서인지 읽은 한 대목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자기는 평생의 반을 칠판을 앞에 두고 살았고

남어지 반 평생을 칠판을 뒤에 두고 살았다는

정년 퇴임사의 한 귀절이다.

 

 

 

철학의 길 가운데의 한 전통 일본의 찻집을 만났는데

한국에서 온 관광객 하나를 만났다. 

부산에 사는 브롬토너인데

Brompton 카페 회원이라고 한다.

자기 자전거도 우리와 똑 같은 스펙인데

자전거를 어떻게 가지고 왔느냐고 묻는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니까 너무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부탁해서 사진 한장 찍어 받았다.

감사합니다.

함께 한장 찍자고 했는데 굳이 사양해서 이름도 닉도 모른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면 댓글 부탁합니다.

 

 

 

철학의 길은 꽤 길게 이어졌는데 이 부분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마침내 가모 가와에 나왔다.

이 날은 날이 몹시 더워 마치 한 여름 날씨 같았다.

 

 

 

<가모가와>는 흔치 않은 일급 하천이다.

 

 

 

우리 가 돈 이 코스는 <교토 자전거 생활>이란 책에서 추천한 코스다.

이 책만 가지고는 길 찾아 다니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가르쳐 주는 자전거 샌책길을

<루트라보>라는 야후재팬 사이트에서 gpx 자릿길을 만들 수 있다.

track 파일을 만들어  이 트랙 파일을 MotionX 에 import 하면

위에서와 같이 자리길이 아이폰 지도에 표시된다. (오랜지 색)

이 자리길을 follow 하면 현 위치가 이 자릿길 어디에 있는지 알수 있고

 이 자릿길에서 벗어나도 쉽게 되돌아 올 수 있다.

빨간 자릿길은 실제 우리가 자전거로 돈 자릿길.

 

 

 

실제 우리가 돈 자릿길은

이 지도에서 표시된 길이다.

출발점 <산조>역까지 가지 않고 <게이한센>의 종점인

<데마치 야나기>역에서 전철을 타고 돌아 왔다.

<철학의 길>은

냐크오지 신사(若王子 神社)에서 호엔닌(法然院) 사이다.

 

 

 

3점이 있는 곳이 <데츠가꾸노 미치> 이정표가 있는 위치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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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5.05 11:14

    좋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라>기행

 

4월 27일 금요일 <나라>에 갔다.  오사카 시영 지하철 쭈오센의 종점은 <나가다>지만 킨테쓰 선이 연장되어 <이코마>,<갓켄나라 토미가오카>까지 간다.  나라역에 가려면 이코마역에서 한번 갈아 타면 된다.  그래서 집에서 나라에 가기가 아주 쉽다.

 

그런 연유로 첫 장거리 링코 여행을 나라로 잡았다.

 

우리가 사는 오사카코 역은 쭈오센 서쪽끝 코스모스퀘어에서 한 정거장 다음 역이다.   이코마까지 한 45분 걸린다.  거기에서 킨테쓰 나라선으로 갈아 타면 그 종점이 바로 나라역이다.  킨테쓰 급행을 타니 <이코마>에서 나라역까지 22분 정도 걸린다.

 

집을 나와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려 나라에 닿았다.

 

나라에서는 나라 자전거 전용도로를 포함하는 코스를 달렸다.    <나라, 교토, 사가> 자전거책에 나오는 코스중에 하나다.      루트라보에서 GPX 트랙을 만들어 내 아아폰에 올려 놓고 MotionX 의 follow 기능을 이용하여 따라 다녔다.  참으로 편리한 방법이다.   

 

긴테쓰 나라역에 내리는데 전철에 탄 한 Wheelchair 여인과 도우미부인이 끝까지 내리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가르쳐 준다.   나라역은 종점이라 우리가 탄 열차가 다시 오사카로 되돌아 간다.  내리는 홈과 타는 홈은 반대편인데 엘리베이터는 그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다.  태우는 승객을 위해 문을 열 때 내려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    우리가 내리지 않고 있으니 역무원이 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니까  마침내  반대편 문을 연다. 

 

우리는 내리고 개찰을 하고 다시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가르쳐 준다고 안내해 준다.  그리고 우리가 점심을 먹겠다고 하니까 아주 값싼 채식집이 있다고 따라 오라고 한다.

 

꼬꼬로라는 현미 채식집이었다.  맛 있고 아주 좋은 건강식 집이었다.  현미밥은 무제한 리필이란다.   고마워서 기념사진 한장 찍었다.  이메일 주소와 이름을 받았다.   아쓰다 아끼에 상이다.   불가에서는 소매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런 타국에서 나라역 전철에서 친절을 베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전생의 긴 인연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무심히 지나가면 놓진다는 <사쿠라몽>을 그대로 무심히 지나가다 놓지고 말았다.    

 

 

 

 

 

쭈오센은 혼마치 근방반 분비고 어느편이고 종점에 가까워지면 자라기 많이 빈다.

물론 시간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꼬꼬로 메뉴판

렌콘(연근)토후행버거 정식은 고기 닭고기를 쓰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현미 밥은 무제한 리필이라 쓰여 있고 밥통의 위지마 표시되어 있다.

 

 

 

연근두부 햄버거 정식

 

 

 

엘리베이터위치와 현미자연식 식당을 가르쳐 준 두 사람과 함께

식당 종업원에 부탁하여 한 컷

 

 

 

현미 채식 코코로

 

 

 

꼬꼬로는 킨테쓰 나라역 서남쪽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남쪽에

고니시 사쿠라 도오리가 있다.  이 거리를 따라가다 

한 50미터 쭘 된 곳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 서면 바로 찾을 수 있다.

 

 

 

그 반대편 동쪽 출입구엔 이런 동상이 서 있다.

 

 

 

東大寺의 轉害門(데가이몽)

역사적 유서깊은 건축물

 

 

 

이 코스를 따라 가다 보면 유일한 오르막이 있는데

그 오르막 끝에 소년형무소가 있다.

명치시대의 건축물로 흔하지 않은 빨간 기와 건물이다.

그러고 보니 구마모토에서 가 본 五高 건물도 명치시대의 빨간 벽돌 건물이었다.

(http://boris-satsol.tistory.com/entry/구마모토시-자전거-관광)

 

 

 

 

般若寺

관람료가 어른 500 엔인데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 갈 수 없어 망서렸더니

접어서 입장권 발매원이 빤히 볼 수 있는 입구에 두라고 한다. 

봐 주겠다는 것.

 

 

 

 

관람권과 함께 준 반야사 안내서

이 안내서에는  반야사般若寺(はんにゃじ)는

고구려 승려 혜권(高句麗の僧・慧灌(えかん)) 법사에 의에 창건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일본 Wikipedia 에 보면

寺伝では舒明天皇元年(629年)、高句麗の僧・慧灌(えかん)の創建とされ、天平7年(735年)、聖武天皇が伽藍を建立し、十三重石塔を建てて天皇自筆の大般若経を安置したというが、これらを裏付ける史料はない。

"절의 전해오는 역사에 의하면 서기 629년 고구려의 승려 혜권이 창건했고 735년에 쇼무 천황이 가람을 건립하고 十三重石塔을 세워 천황 자필의 대반야경을 안치했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할 사료는 없다."

라고 쓰여 있다.

 

 

 

이 절은 가을 코스모스로 유명하여 일명 <코스모스>절로도 알려저 있다고 한다.

문수보살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아서 문수보살상이 많이 있다.

 

 

 

경내엔 관람객도 많지 않고 조용했다.

별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이 절의 대표적 상징인

13중탑

 

 

 

여기 또 알 수 없는 글자의 탑이 서 있었다.

 

 

 

문수보살 석상들

 

 

 

코스모스가 아니더라도 여기엔 식물원에 버금가는 꽃이 사시 사철 핀다고 한다.

 

 

 

인성 보살 리생탑

 

 

 

돌아 나오는데 뒤켯에 13중탑 목제 모현이 있었다.

 

 

 

반야사를 구경하고 돌아 나오니 나라의 자전거 도로가 나온다.

 

 

 

이 코스는 이런 자전거도로를 얼마 달리다

헤이죠큐(平城宮) 터로 나온다.

 

 

 

이 궁터에서 나온 궁정의 셈터

실제 터는 모두 다시 묻어 버리고 모조로 복원했다고 한다.

 

 

 

이 넓다란 헤이죠 (또는 헤이제이)는 1300년전에 있던 궁터로 나라의 東大寺 와 함께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고적

 

 

 

복원된 太極殿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 갈 수 없어

걸어 들어가 멀리서 찍었다.

 

 

 

그 남쪽에는 朱雀門(復元)이 있는데 걸어 들어 가기엔 너무 멀어 광학 줌으로 한 컷

 

 

 

 

헤이죠 궁터를 나와 조금 남진하니 두 절이 나온다.

薬師寺 와 唐招提寺 다. 

자전거도 맡기기 만만치 않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밖에서 들여다 보기만 하고

떠났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또 와 보리라.

 

 

 

이 날 자전거로 돈 GPX 자릿길

 

NaraEasyLoop.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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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upr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5.08 10:37

    날씨가 좋은날....좋은 곳으로 다녀오셨네요. 멋진 사진 잘 봤습니다. :)

아지가와(安治川) 바다밑에 수몰된 내 유년시절의 족적

 

내가 태어 난 곳은 오사카시 코노하나꾸 시칸지마 시라도리쵸 1 반찌(大阪市 此花區 四貫島 白鳥町 1 番地) 로 되어 있다.   내 호적에 그렇게 적혀 있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고 내 기억에도 그 곳은 없다.   어쪄면 내가 낳자마지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이시다소토무라쵸(石田外村町)로 이사를 온 것 같다.   이시다쵸의 집은 집의 구조까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초등학교(전쟁이 시작한 그 당시는 모두 국민학교로 개칭이 되었다)에 들어 간 해가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70년 전이다.     그 학교 이름이 <미나토야고꾸민각꼬(湊屋國民學校)>다.    1942년 4월 18일 찍은 입학기념사진이 남아 있다.     그 뒷면에 선친이 쓴 촬영날짜가 적혀 있다.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가고 3학년에 진급한지 얼마 안된 1944년 초 여름 임박한 미군의 공습을 피해 귀국해서 부모와 헤어져 살아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유년시절을 기억하기 시작해서 귀국했던 1944년 5월이나 6월까지를 보낸 <오사카시 미나토쿠 이시다 소토무라쵸 잇쵸메 나나반찌(大阪市 港區 石田外村町 一丁目 7番地)>는 유년시절을 보낸 고장이다.     고향이라면 고향이다.      아지가와에서 멀지 않아서 아지가와에서 낚시를 했던 아니 낚시 시늉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 지음 할머니가 돌아 가시고 어미니가 유골을 모시고 강원도 철원 선산에 갔을 때 난 거의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셋째누님은 도쿄로 출가했고 손윗누이는 나보다 세살 위라 내가 3학년 때 6학년이라 오후 늦게 까지 수업이 있어 일찍 귀가한 나는 할 일 없이 2층 뒤켠 모노호시(건조 베란다)에서 비누방울을 날리기도 하고  아지가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는 시늉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 지음 그 동네에는 애들이 없었던 것 같다.     오사카 대공습을 예상하고 모두 시골로 소까이(흩어 피난)를 시켜서 그랬을 것 갈다.   나도 이런 소카이 계획으로 일본 시골에 소까이 예행을 간 일이 있다.    아버지는 날 연고가 없는 일본 시골에 보낼 수 없어  조선에 출가해서 사는 첫째 누님집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난 부모와 1년 반을 넘게 헤어져 살아야 했던 것 갈다.

 

우리집에서 아지가와만큼 내륙편으로 전차가 지나 갔다.  학교에 다니기 전에 난 동네 아이들과 그전차 철로위에 못을 갖다 놓고 전차가 지나간 다음 못이 납작해 진 것을 신기해 하면서 장난을 쳤던 생각이 난다.   전차가 오고 있는데 그런 짓을 하니 어른들이 보면 위험한 짓이라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우리 옆집은 모퉁이집이었는데 술집이었던 것 같다.    그 길 건너에 약국이 있었고 그 다음엔 목욕탕이었던 것 같다.  그 앞엔 문방구 겸 구멍가게였던 것 같다.  난 그 가게에서 손윗 누나가 풀을 사러 심부름 가면 쫓아 가서 주인 할망구가 풀을 담으려 안으로 들어 가면 잽사게 유리 뚜껑을 들어 안에 든 엄지손가락만한 인절미 비슷한 떡을 훔쳐 먹는 것을 재미로 삼았다.

 

그 거리에는 일주일인지 보름이면 야시가 섰는데 전등을 휘황하게 대낮같이 밝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것이 마치 축제같아 좋았다.   그것도 전쟁이 나고나서는 전력 절약차원에서 못 열게 되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땐 다리에 부스럼이 많이 나서 무슨 약인지 분홍색 나는 약을 바르곤 했는데 가끔 나보고 혼자 가서 사오라고 했다.  난 약국에 가서 "모모이로노 구스리(분홍색 약) 구다사이"  하고 사오곤 했던 생각도 난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 오사카에 가서 내가 살고 놀던 곳이 어딘지 확인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사카에 올 때마다 <이시다쵸> 근방을 서성이며 여기쯤일까 저기쯤일까 상상을 해 보며 정확한 위치가 어딜까 궁금해 하곤 했다.

 

내가 칫코(築港)에 아파트를 구한 것도 바로 칫코 근방이 내가 살고 놀던 곳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성공했다.  내가 다닌 학교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전쟁전의 오사카 지도를 찾아 내어 내가 살던 지역이 어딘지 알아 냈다.    

 

그런데 오호애재라 내가 다닌 학교터도 내가 살던 집터도 모두 아지가와 바다밑에 수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노> 정지용님의 싯귀가 생각 난다.

 

 

 

 

미나토야 고꾸민각꼬 입학생

 

 

 

그 뒷면에는 선친이 쓴 촬영 일자와 내 생년 월일이 적혀 있다.

소화17년은 1942년이다.

지금 부터 정확히 70년 전이다.

당시는 조선사람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차별과 구박이 심해서

아버지는 내게 일본 이름을 지어 주신 것 같다.

어떻게든지 "조센징 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려는 아버지의 고심어린 배려였다.

이 학교에도 또 그 전에 다닌 유치원에도

일본말이 서툰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버지가 시간을 내어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동경으로 출가한 셋째누님이 학부모 노릇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내 일본 이름이 <사다미츠 이사오>가 되었던 것이다.

 

 

 

미나토꾸의 역사를 보면 원래 농지였던 이시다쵸에 인구가 늘자 동네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시다쵸는 그 이후 더 세분화해서

이시다 소토무라쵸로 갈라졌다.

 

 

 

1934년 내가 태어 나기 1년전 지도

여기에 보면 오사카 전차는 칫코선 밖 아지가와 연안으로

그 지선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이 지도를 보기전 까지는 칫코선이 내가 기억하는 전차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놀던 전차길은 이 지도의 미나토마치와 이시다쵸 정류장 사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아모도 미나토야쵸오 이시다쵸사이 쯤 되지 않았을 까

궁금한 것은 내가 기억하는 남쪽의 정류장은 <고옴바시>였는데

아 지도에서 <바시>는 맞는 것 같은데 그위의 두자는 판독할 수 없다.

이 지도에서 재미 있는 것은 <이치오카 파라다이스>위지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치오카파라다이스>는 30년대의 오사카 명물인 거대 위락단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리가 지금 <오릭스 드라이빙 스쿨> 자리라는 것이다.

또 지금 아지가와 북안을 달리는 JR 유메사키센은 옛 시니나리센이고

아지가와 정류장이 지금의 아지가와구치정류장으로 추정되니

그 두 사이를 직선으로 이어 보면 <이시다소토무라쵸>의 위치가 나온다.

그렇게 해서 추정되는 이시다 소토무라쵸의 위치를 주정해 보니 현대 구글지도상

아래의 핀 마크 지점이란는 결론을 얻었다.

 

 

 

핀 마크한 지점이 <이시다소토무라쵸> 언저리로 추정된다.

 

 

 

또 <미나토고꾸민각꼬>는 벤텐부두 끝 언저리로 마크 되어 있다.

이 지도는 인터렉티브 지도인데

공습으라 사라진 미나토꾸 학교와 사라 남은 학교를 빨간 사각(사라진 학교)과

현존학교(푸른 색 사각)로 표시해 놨다.

벤텐부두 코앞 바다밑에 빨간 사각이 있다.

이 빨간 4각을 클릭하니 아래의 사진과 설명이 나온다.

 

 

 

””””””””” 미나토야 국민학교 언저리는 지금 벤텐부두의 끝 바다밑이 되어 있다.

1945년 6월 1일 공습으로 반소했고  그 지역이 전소했기 때문에 <이소지>소학교와 통합하면서 폐교가 되었다. 

반소한 교사는 신제 <미나토다이이찌 쭈각꼬>(현 이치오카중학교)가 사용하기도 했고 <이소지>소학교 분교로도

쓰였고 기꾸수교가 되기도 했으나 <아지가와>내항화를 위해 1953년 해면 아래로 사라졌다.  ””””

 

 

 

이 역사를 알고 난 다음날 우리집에서 1~2 Km 떨어진 아지가와 부두에 가 봤다.

마주 보이는 돌출부가 벤텐부두이고 그 앞이 미나토 학교가 있던 자리

그 보다 더 하류 지역이 <이시다 소토무라쵸> 일대일 것이다.

내 브로미가 서 있는 자리 언저리에 전차가 지나 갔을 것 같다.

오호라 쌍전 벽해라더니

헛 말이 아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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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5.01 10:24

    드디어 찾으셨군요. 그리고 상전벽해라..
    그러나 수몰되지 않았다 해도 많이 바뀌어져서 옛 모습은 찾기 힘들셨을 것 같습니다.
    서울도 그 당시의 모습은 찾기 어려우니까요.
    아무튼 선생님이 숙제를 해결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모리노미야에서 만박 기녕공원까지

 

 

오사카에 온지 벌써 열흘하고 하루가 지냈다.   그동안 날씨가 좋아서 많이 나다녔다.   링코(점프)를 하다 보니 다닐 수 있는 구역이 늘어나서 자꾸 자꾸 나가게 된다.  

 

정처 없이 시내를 쏴 다니는 것도 어느 정도 해 봤기 때문에 조금 괜찮은 코스를 라이딩하려다 보니 정보를 구해야 한다.     오사카는 너무 큰 도시이고 자전거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다닐 곳이 너무 많다.

 

괜찮은 코스를 알아 보는데 참으로 좋은 사이트를 발견했다.

 

Yahoo Japan 에서 하는 자전거길 교환 사이트인데 LatLongLab라는 사이트로 GPX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정리하여 써 볼 생각이다.

 

너무 오래 포스팅을 걸러서 궁금해 하실 뿐도 계시리라 생각되어 먼저 한 라이딩 리포트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어제 라이딩에 대해  간략한 글과 사진을 올린다.

 

어제는 본격적인 링코로 오사카성 공원에서 만박기념공원까지 달려 봤다.    갈 때에도 오사카코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모리노미야에서 내려 오사카죠 동쪽 외각길을 타고 북으로 간다.  거기서 북 오사카 자전거길에 들어서  요도가와 강변을 따라 가다 도리가이 오오하시(鳥飼大橋)를 건너 북으로 향하는 코스를 달렸다.

 

목표점은 만국박람기념공원(반파쿠기넨코엔(万博記念公園))이다.  거기서 모노레일을 타고 센리추오까지 와서 미도스지센으로 갈아타 혼마치까지 와서 다시 추우오센을 타고 오사카코에키까지 돌아 오는 링코를 한다.

 

 

 

 

우리가 돈 어제의 자릿길

만박기녕공원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센리 추우오까지가 자릿길로 나타 나 있지만 자전거 라이딩은

반팍기넨코엔에키까지다.

시작점도 오사카죠 조금들어 와 있지만 모리노미야 지하철 역에서 시작했다.

 

Mori2Banpak.gpx

 

 

 

 

오사카죠 동쪽 외각 자전거길은 참으로 한산하고 좋았다.

 

 

 

꽃도 조금은 남아 있고 상춘객이 조금은 보였다.

 

 

 

외각길이 끝날 무렵 동쪽 밖으로 작은 정원 같은 공원이 있는데 거기엔 종류가 다른 사꾸라가 펴 있다.

 

 

 

꼬니가 르벨로에서 산 마스코트

 

 

 

여기 핀 사꾸라는 같은 나무에서 두가지 색의 꽃도 핀다.

 

 

 

여기서 키타오사카(북오사카) 사이클리인에 들어 서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사람이 다니는 일종의 육교로 시작해서 강을 건너 수교로 바뀐다.

고속 자동차도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길은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 키타오시카 사이클라인으로 들어 셔려니 지하도를 건너야 하는데

경찰이 막고 자전거 통행은 안된다고 한다.

옆에 우회도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인파가 넘쳐 흐른다.

 게마 공원 사쿠라는 미야에 온 관광객때문이었던 같다. 

영문을 몰랐는데 이 곳이 유명한 사꾸라의 명소였던 것이다.

 

 

 

 

4200 미터에 4800 그루의 사쿠라가 심겨 있다니 1미터가 안되는 간격이다.

가히 장관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전국에서 온 관광객인 듯 일본사람 깃빨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전거는 걸어서도 들어 갈 수 없어 공원 입구의 화장실만 이용하고 되돌아 왔다.

 

 

 

사쿠라노미야 공원 위치

 

 

 

키타오사카 사이클라인의 일부인 다리도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힘든 인파였다.

그래도 잠시 세워놓고 사진 몇커트 찍었다.

하류편

 

 

 

상류를 보며

 

 

 

게마사쿠라노미야 고엔입구엔 경찰이 안내를 하고 있다.

자전거 세울데도 없고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도 없다고 일러 주고

양산을 받은 사람은 양산을 접어 달라고 할 지경이었다.

 

 

 

이 다리는 키타오사카 사이클라인의 일부인데도 이런 인파다.

 

 

 

이 다리에서 상류를 보며

이 강을 따라 북으로 향하면 이 오오가와는 요도가와에 이른다.

원래는 이 강이 요도가와이고

신 요도가와는 상류에 동서로 흐른다.

강이 합친 것이 아니라 두 갈래로 갈라진 셈이다.

 

 

 

요도가와에 올라서 직전 오오가와 연안의 자전거길

 

 

 

오오가와에서 신 요도가와에 올라 서면 강뚝은 넓고 시야가 넓어 시원하다.

강뚝에도 강둔치에도 넓다란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이 요도가와를 따라 올라 가면 교토에까지 이른다.

이 다리는 며칠전 나니와 지덴샤도를 달릴 때 건넜던 다리다.

 

 

 

여기서 인즘사진 한 커트

 

 

 

요도가와를 주욱 따라 올라 가다 도리가에오오하시에 이르면

우리의 코스는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향한다.

 

 

 

도리가에 대교에서 상류를 본다.

우리가 이 코스를  배운 것은 앞서 말한 야후의 루트래브사이트에서이다.

 

 

 

우리가 내려 받은 GPX 자릿길은 이 다리를 건너 주욱 이 긴기 자동차도로(유료고속도로)밑으로 따라가서

만국박람기념공원에 가게 되어 있었으나

고가 도로 밑을 지나가기도 유쾌하지 않고 시끄럽기도 해서 적당한 곳에서 우회하기로 했다.

여긴 오사키 경계 밖이다.

그런데 재미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고이노보리를 보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단고의 셋구(단오의 절기)에 고이노보리를 한 것을 기억한 것이다.

"단단 단고는 오셋구와 ..." 하는 동요 같은 노래가 입에서 맴돈다.

일본 고유의 단오의 풍습으로 어린의 성장과 출세를 축복하는 축제로 바뀐 것이다.

그 심볼로 이 고이(잉어) 깃발을 만들어 날려 축제를 벌렸던 것.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약화되는 것을 느끼는데 어렸을 때 기억은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기는 아마도 이 고이노보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닌가 싶다.

엄청 큰 놈도 있다.

 

 

 

마침내 만국 박람화 기념공원에 왔다.

1972년 3월 15일에 열린 <일본 만국 박람회> 터에 세워진 공원이다.

시간이 없어 둘러 보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하고 떠났다.

 

 

 

공원 한 가운데 오사카 모노레일 역이 있다.

역사에 오르는 길에 멀리 공원 랜드마크가 보이길래 잠간 서서 한 커트

 

 

 

만박기념공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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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24 16:23

    와, 좋은 날씨에 멋있는 풍경들. 감상 잘했습니다.
    고이노보리가 참 인상적입니다.

오사카 2012

 

 

우여 곡절 끝에 오사카에 왔다.  날이 좋다.   날이 화창하면 기분이 좋다.   지난 며칠의 소동과 허탈감도 이젠 가신 것 같다.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있다  그래서 비기는 것. 

 

ABHousing Osaka 는 Alex 라는 친구가 외국인을 위한 장단기 아파트 임대대행업을 하는 업소다.    우리가 임대한 이 아파트는 야마시타 토미코라는 우리 나이또래의 노부인이 소유한 건물인데 ABhousing 에 임대 관리를 맡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Alex 하고만 이메일로 교신하고 임대보증금등도 Paypal 로 주고 환불 받고 한다. 

 

작년에 동북지진으로 오사카 체류를 중간에서 중단하고 귀국할 때 건물의 소유주인 야마시타 토미꼬 부인이 우리를 찾아와 지진으로 놀랜 우리를 위로해 주고 작은 선물도 주고 갔었다.  나이가 들었도 우아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Alex도 우리가 가겠다고 했다 취소했다 또 가겠다고하는 소동을 피웠는데도 방을 구해주고 우리를 위로해 준다.    우리 아들이 아마도 자기 나이 또래일 터인데 자기 아버지가 지진의 위험이 있는 곳에 간다고 하면 말릴 것이라며 우리에게 용기가 있다고 칭찬한다.   

 

사실은 지진의 위험은 지진이 잘 나는 곳에는 항상 있다.   미국 서부 해안도 일본 만큼이나 위험한 지진대다.   샌프란시코에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란 이야기는 항상 있다.   그것은 지각판이 항상 움직이고 그 움직임으로 생긴 스트레인(strain)이 견딜 수 없게 커졌을 때 그 경계에서 지진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각판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거의 주기적으로 일어 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또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우리와 가까이 있으니까 그렇고 작년 동북부 지진의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일본이 더 지진에 위험하다고 느낄 뿐이다.

 

사실 작년 일본 동북부진은 원전이 쓰나미에 의해서  파괴되고 방사선물질이 누출된 것 때문에 지진의 공포가 부풀어 난 것이다.

 

그러니까 작년 일본 지진의 피해는 자연재해인 지진또는 쓰나미의 피해보다는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년 일본 지진은 천재보도는 인재가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 며칠 사이에 YTN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호들갑을 떨고 보도한 일본 내각부 전문가 검토회 보고서도 이런 인재를 막기 위해 내 놓은 연구 결과이다.

 

천재는 막을 수 없다해도 인재는 막아 보자는 것이다.   원전을 더 짓는 다면 최악의 쓰나미를 고려해서 지으라는 경고였던 셈이다.    황색 저널리즘은 왜 그런 보고서를 일본 정부가 내어 놓았는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살려면 도망쳐라>식 보도룰 하는 것이다.  

 

어차피 보고서가 상정한 최악의 씨나리오는 방어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원전이 파괴되고 방사선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는 막을 수 있다.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말하는 쓰나미의 최고 파고를 방어할 수 있게 고지대에 짓거나 방어벽들을 만들면 된다.

 

아파트를 빌리겠다.  물리겠다 다시 빌리겠다 소동을 피우고 마침내 얻은 방은 다디미 방이었다.  사실은 다디미방은 싫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새 집이었다.   최근에 리모델링한 다다미방이었다.    모든 것이 새 것이었다. 다디미도 새 다다미라면 싫지 않다.   

 

그러니까 그 소동의 결과로 좋은 방을 구하게 되었다.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있다. 작년에 8층이었는데 금년 방은 10 층이다. 작년의 오사카만의 수면이 보일까 말까하는 높이였는데 금년은 수면이 잘 보인다.

 

일요일인데도 Alex가 Tenpozan  공항 버스 터미날까지 트럭을 가지고 와서 짐을 실어서 새 아파트에 올려다 놔 주었다.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고 잘 해 주는지 모르겠다.     기운이 있을 때 많이 여행을 하시라고 한다.   원래 네델란드 태생인데 미국 캐리포니아에 부모따라 이민와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 일본에 와서 일본여성과 결혼하여 20 여년 살고 있다.    미국에는 자기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되었다. 

 

 

 

 

Kansai 국제 공항에서 Tempozan 가는 킨테츠 공항 리무진 버스에서

날이 화창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오사카만도 화창한 날씨에 화답하듯

푸르르다.

 

 

 

다다미방이라 찝찝했는데 간지가 얼마 안되는 새 다다미였다.

새 다다미라면 마다할 것 없다.

 

 

 

이불을 펴고 개는 것 필요 없고 오시이이래(골방 이불 수납장)도 달리 쓸 수 있어 침대를 놔 달라고 했다.

집에 있을 때에도 그 방을 따라 쓸 필요가 없으니 4조 반의 다다미 침실에 침대를 놨다.

 

 

 

부엌도 작년 살았던 8층 아파트보다 깨끗했다.

 

 

 

세면과 세탁실

 

 

 

욕실

 

 

 

자전거도 꺼내서 하나는 현관 수납장에 넣고

 

 

 

또 하나는 신발장 위에 올려 놓으면 잘 들어 맞는다.

 

 

 

오늘 새벽 일찍 잠이 깨어 베란다에 나가

한신 고속도로 4호 만간선 넘어의 오사코만의 수면이 보인다.

8 층의 아파트에서는 수면이 보일락 말락하는 높이었다.

 

 

베란다 동쪽에서 내려다 미나토 도오리

 오사키시가

몇년전에 설계한

차도와 인도를 작은 화단으로 분리한

도심 자전거 전용도로

이 길은 차도 들어  오지 못하지만

보행자도 이 길로 쉽게 들어 설 수 없게 되어 있다.

 

 

 

자전거 가방은 소파 옆에 놓고 사이드 테이블로 쓰기로 했다.

 

 

 

거실 등도 분위기 나는 일본 풍

 

 

작년에 못 다한 자전거 산책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다.    다 못하면 또 올 생각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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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09 15:52

    모든 것이 다 잘 되셔서 저도 기분 좋습니다.
    8주동안 즐겁게 지내십시요...^^

  2. ha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12 14:53

    우연히 오사카 검색하다 좋은글 많이 읽고 배우고 합니다.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 행운이 가득한 여행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호들갑 떠는 저질 거대 매체에 휘둘리는 우리의 일상

 

지금 이 시각이면 오사카행 항공기에 타고 있을 내가 집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륙 13 시간 전에 여행을 취소한 것이다.

 

마지막 짐을 챙기고 무게까지 재어 보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작은 며느리가 일본 지진 경보도 있고 오늘 강풍을 동반한 비도 온다는데 그냥 가시겠느냔다.      또 큰 아들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일본 지진 경보가 있다는데 그냥 가시냐는 거다.       

 

그전까지엔 인터넷 검색을 했었지만 별 심각한 뉴스가 없었다.   그런데 두째며느리와  큰 아들의 전화를 받고 다시 구글 검색을 해 보니  이런 페이지가 나온다. 

 

 

 

 

 

이런 기사름 검토해 보니 겁이 난다.  왠만한 강심장을 가지지 않고는 여행을 고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들도 걱정을 하는데 굳이 가야하나?      우리의 여행이 꼭 가야 할 그런 여행도 아니지 않는가?

 

좀더 상황을 검토하고 결정을 내릴 만한 시간이 없다. 

 

항공기 출발 시간 전에 예약 취소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잘 못하면 이미 지볼한 항공료가 다 날아갈지 도 모른다.  내일 새벽에 오라고 한 콜벤도  전화해 주어야 한다.   일본에 예약한 아파트도 취소해야 한다.    아파트의 관리인 Alex 에게도  덴보산 공항 버스 정류장에 나오지 말라고 메일 보내 주어야 한다.   또 여행자 보험도 여행시작 시간전에 취소해서 환불 받을 수 있는 지 알아봐야 한다.

 

우선 대한 항공에 전화를 넣었는데 내가 산 것이 e-ticket 이라 인터넷으로 환불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여행을 취소하려면 할 일이 태산 같은데 긴 시간을 갖고 취소여부를 결정할 수가 없다.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일단 취소를 하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항공권은 일단 위약금 10만원씩 두사람 20만을 제외한 환불을 신청해 놨다.    오사카 아파트의 Alex 에게 여행취소를 알리는 e-mail 을 보냈다.  

 

순식간의 모든 계획이 바뀌었다.  보험에이젠트인 생질녀에게 전화를 하고 보험료 환불을 알아 봐 달라고 했다.

 

순식간에 모든 계획이 취소됐다.

 

그런데 과연 이 결정이 바른 결정이었나?

 

다시 자세히 검토해 보니 순전히 한국계의 거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작태로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 닛케이 신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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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난까이) 」 거 대 지진 대비 광역 감재(재해감소) 전략을

 2012 년 4 월 3 일자

 

또카이, 또난카이, 난카이 지진이 예상 되는 「 난카이 Trough 」에서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 하면 관동에서 시코쿠의 태평양 쪽의 6 都県 23 市에 20 미터 이상의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는 추정을 일본 정부(내각부)의 검토회가 공표 했다.


검토회가 지적했 듯이, 이러한 대지진이 언제, 얼마의 확률로 일어 날 것인가에는 확실한 대답을 내어 놓지 않았다. 그러나 천 년에 한 번의 확률의 재해라 해도「예상밖」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동일본 대지진의 보여준 엄중한 교훈인 것이다.  최대급의 지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출발점으 삼아야 하는 것은 지진국 일본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상을 국가나 자치 단체가 세우는 방재계획에 어떻게 반영시켜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추정에의 하면 큰 해일 뿐만 아니라, 진도 7의 강한 동요도 10 현 153 시정에 미치게 된다.   이전의 대진재를 훨씬 넘어선 광역 방재를 처음부터 작성 해야 한다.


먼저 필요한 것은, 지금은 「 동해(또카이) 」와 「 동남해(또난카이) · 남해(난카이)」등 각각의 재해 법제를 개편하는 일이다.   정부는 도카이 지진은 예보 가능지역으로 보고  대규모 지진대 책 특별 조치 법 (大震 법)에 따라 경보 발령 및 조기 철수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었다. 


그렇지만 도카이 지진은 예측가능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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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설이다.

 

이 사설을 보면 며칠전에 일본 정부가 거대 지진이 일어 나면 그 피해가 이전에 예상했던 재해의 수십배가 능가한다는 것을 검토한 것이다.   이 것은 작년에 일어난 동북부 지진 쓰나미 재해의 방재 대책의 재 검토하여 보다 광범위한 재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검토회의 그간의 검토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위의 사설에서 밝혔듯이(하이라이트한 부분) 이런 지진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확률로 일어 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예측은 과거에 있던 예측에서 벗어난 새로운 그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검토해 보니 과거의 가정으로 세웠던 가설들은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지진의 가능성은 수년전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고 며칠 사이에 새로운 증거나 증좌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저질 언론들은  이 일본 정부의 발표를 "대규모 지진의 발생 가능성" 을 일본 정부가 인정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마치도 일본 열도가 패닉상태에 빠진 것 같은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저질 보도 행태때문에 생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일본 정부의 발표가 10여일 전만이었어도 조금 더 그 실상을 검토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하여 여행이 취소 되었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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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스티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04 02:17

    저도 일본 지진뉴스가 여기저기 보이길래 뭔가 했습니다만... 어이가 없네요. 정말 허탈하시겠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2.04.04 07:18 신고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너무 허탈하고 황당해서 화가 납니다. 그래서 다시 갈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약했던 아파트는 그 사이에 나갔다고 했는데 다른 방이 있나 알아 보는 중입니다. 트윗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04 08:40

    ㅎㅎㅎ 화 푸십시요. 저 역시 그 보도를 보고 일본정부내에서 대책을 강구하면 될것을 왜 외부에 공표하여 불안감을 조성할까 의아했습니다.
    혹 선생님의 일본여행을 방해하려는 일본정부의 공작이 아닐까요? (웃으시라고...)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2.04.04 10:38 신고

      감사합니다. 국민들도 알고 개별적으로라도 미리 계획을 짜 두라고 공표했다고 합니다. 이런 걸 공개하지 않고 관계기관에 전달한다 하면 언론은 더 호들갑을 떨것입니다. 내각부 산하전문가 검토회의 웹페이지에 가 보니 pdf 문서가 있었읍니다. 보고서는 수식까지 포함한 전문적인 보고서라 언론사 배포용 쉽게 풀이한 요약문서도 있습니다.

  3.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04 18:06 신고

    문제는 저질 언론탓입니다. 뭐던지 많이 읽으면 돈이 되니까요. 인기인(연예인)들 가십만들어 내는 그 수준이지요. 가장 자극적인 타이틀 뽑고. 위의 ytn 의 <도망쳐라 오시키에 9급 지진 발생 가능성> 같은 제호는 얼마나 허위입니까? 오사키는 비교적 쓰나미에 안전한 지역입니다. 검토회보고서에도 최고 4 미터가 못됩니다. 키이반도와 아와지섬이 방파제역할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사카 여행계획

 

작년 오사카여행은 동북부 대 지진으로 도중에 귀국하고 말았다. 원래 3개월 머물기로 하고 떠난 여행인데 한달 남짓 지내다 돌아 왔었다. 오사카 근교 그리고 조금 멀리는 교토, 코베, 나라 등 가까운 이웃 도시도 링코를 할 계획이었다.

 

처음으로 코스모스퀘어에서 오사카코까지 링코도 연습해 봤지만 대 참사가 일어난 일본에서 한가로이 자전거 관광을 하고 있을 생각이 나지 않아 귀국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쉬어 올해 그 못다한 오사카 여행을 이어서 하기로 결정했다.

 

큐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작년에 머물었던 아파트에 문의하니 방이 있다고 한다. 작년에 썼던 방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귀국해서 다시 통지가 오기를 그 방은 쓰던 사람이 계약을 연장하는 바람에 그 옆방을 주겠단다. 여하턴 작년에 있던 그 아파트에서 이번에 8주 있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4월 3일 출국하고 5월 29일 귀국한다.

 

이미 한달 넘게 살아 본 곳이라 달리 더 계획을 잡을 것도 없다. 작년의 남어지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생각이다. 이러다가는 "일빠"라는 별명이 불을 것 같다.

 

한국도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한국은 언제나 갈 수 있으니 아껴 두고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외국을 다닐 생각이다.

 

은퇴 후 우리의 여행계획은 한살이라도 젊을때(?) 먼 곳을 다니고 점점 가까운 곳을 다니다 마지막에 한국 여행을 하기로 정했었다. 일본을 자주 드나 드는 것은 이젠 멀리 가기엔 힘이 붙이다는 건지 모른다.

 

아무리 한 번 가 본 곳을 간다 해도 아무리 얼마전에 갔다 온 여행이라도 또 떠난다니 설레는 마음은 한 결같다.

 

오사카는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가 그렇게 집착해서 가 살려고 하는 아파트도 내가 어려서 살던 미나토쿠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확실이 일본 도시가 좋다. 자전거를 염두에 두고 도로를 설계했고 보행자도 곧 자신이 자전거에 타면 잔차인이 되는 입장을 생각해서 자전거에 많이 배려해 준다.

 

한국의 자전거 문화는 언제 이 정도로 진화할 런지.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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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4.03 09:51

    아 오늘 출국이시군요. 잘 다녀 오십시요.
    이번에는 태어나시고 어린시절 추억이 담겨있는 그곳에서 예정기간동안 즐겁고 재밌게 지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