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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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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샛솔 2011. 2. 3. 06:12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얼마전 아내가 커피숍에서 인터파크의 책을 검색하다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박완서님의 저서를 발견하고  <이책  어때?> 하고 묻는다.  난 <책 제목이 멋 있네> 라는 답을 했다.


코니가 이 책을 e-book 으로 샀다.  코니의 아이패드도 내 인터파크 계좌로 기기등록을 했기 때문에 내 아이패드에 깔린 인터파크 e-book 리더기인 BiscuitHD Library에도 이 책이 올라 왔다.


한 동안 계속 먹고 있던 수면유도제를 어제는 약 없이 버텨 보렸더니 잠을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다 읽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으니 더 아름답다고 한 말은 모순이요 자가당착이다.   요지음은 길하면 난 자전거길을 연상하게 된다.    난 자전거를 타도 항상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다니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전거길을 연상하고 책 제목이 멋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처음 가보는 길은 항상 신선하다.  그러니까  가 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것은 늘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찾아 다니지 않을 것이다.


박완서님이 말한 가보지 못한 길은 물론 자전길은 아니다.   


박완서님은 나 보다 네 살 위다.   그 분의 등단 소설이나 초기소설은 거의 자신의 삶의 경험을 쓴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내 추정이 맞는다.


저자는 625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6월달 입학식을 치르고  얼마 안 있어 전쟁이 났다.  그러니까 문리대 50 학번이다.    나 보다 4년 선배가 되기 때문에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31년생이면 625때 행불이 된 내 바로 위 누나와 동갑이다.   


625로 인해 저자의 집안이 몰락하여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625의 60돌을 맞아 내 625 생존기를 내 블로그에 올린 일이 있다.  나도 625로 인해 가정이 와해되고 전쟁고아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해사에 들어가 물리학을 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썼었다.


내가 해사를 뛰쳐 나와 내 가고 싶던 길을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길을 갔을까?    나도 역시 이 책의 저자처럼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난 가고 싶었던 길을 갔고  행복하고 후회없이 살았다는 것이 저자와는 다른 점일 것이다.


저자나 내가 문리대에 다닐 때 문리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 당시는 그랬다.  내가 들어 가던 해 대학의 뱃지를 통일해서 단과 대학이 구별이 없는  Veritas Luxme가 되었지만 한 동안 그전까지 쓰던 문리대의 <文理(문리)>라고 한자로 쓴 사각 뱃지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대학의 대학이요 학문의 전당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이었다.   모든 다른 단과대학은 전문직업인, 즉 professional 들을 교육하는 대학이지만 문리대는 순수학문을 하는 곳이라고 해서 대학의 대학이라 자랑했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운좋게 모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어 문리대와의 인연이 더 이어졌다.  그러나 1975년 서울대학이 개편되어 관악산 캠퍼스로로 이전하면서 문리대는 3개의 단과대학으로 개편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내가 문리대 교수로 재임할 때 테니스도 가끔 같이 치고 끝난후 맥주집에도 함께 갔던 문리대 국문과의 선배교수 백사 전광용선생님은 문리대를 걸어다니는 백과사전(walking encyclopedea)이라고 부르며 문리대의 해체를 못내 아쉬어 하셨다.   당시 문리대에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한국의 최고 학자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문리대의 자랑을 이처럼 장황하게 한 이유는 이 책의 첫글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마지막 글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 박수근 화백 추모>글이 문리대 자랑과 그 길을 가지 못했던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완서님의 못 가본 길은 바로 문리대를 끝까지 다니는 길을 말한 것이다.   내가 머리속에 그리는 자전거길은 언젠가는 갈 수 있는 항상 있는 길이지만 박완서님이 못가본 길은  1950년 625에 끊어져 버린 먼 과거의 돌아 갈 수 없는 <문리대>였다.


저자 박완서님은 <못가번 길이 더 아름답다>를 쓰면서 다시 책을 낼 수 있어 손자들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 문장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로 자신의 이승과의 작별을 내다 보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책은 3부로 나눠 졌다.

제1부는 좀 오래 된 것도 있지만 최근에 쓴 수상, 수필들을 모았고

제 2부는 책을 읽고 책과 관련된 수상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것을 모은 거라한다.




제 3부는 고인인 된 3사람의 추모글을 모은 것이다.

마직막 박수근 화백에 대한 추모글은 

등단 소설 <나목>의 내용이 되었던  1951년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을 추모하며 회상한 글이다. 




이 책의 마지막 글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 박수근 화백 추모>의 첫 페이지

저자가 박수근 화백을 만난 것은 1951년 625전쟁중일 때 였다.

서울대 문리대 여학생으로 콧대가 높을 때

PX 걸로 취직이 되어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 주는 초상화부에서 일할 때 였다고 한다. 




이 책의 첫글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마지막 페이지 

저자가 못 가본 길은 

625 전쟁으로 끊어 진 길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승의 작별을 내다 보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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