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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일상, 단상/잡문 (83)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어제 아침(토) 여의도 가는 길에서 "이젠유유" 님과 타고 가시는 트라이크를 만났습니다. 이야기에 한 참 빠져서 멋있는 트라이크 사진 한장 찍을 것을 깜빡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게 되면 사진 한장 찍겠습니다. 지난주에 디카를 개비했거든요. 동영상도 찍을 수 있는 디카라 디지탈 캠코더를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간편해 졌습니다. 개비한 디카로 7월 3일 찍은 사진입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1956년 3월 18일(일요일) 흐린 날씨에 오전중에는 비가 내렸다. .. 시계의 진자는 똑딱거리며 직관할 수 없는 시간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 진자가 똑딱거려도 시간은 정말 흐르고 있는지? ..." 내가 대학생때 쓴 일기의 한 귀절이다. 시간은 오직 변화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불안과 설래임으로 점철되었던 젊은날은 가고 인생의 한 획을 긋고 나는 이제 은퇴한 노교수로 변해 있다. 이 변화에 의하여 근 반세기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옛날부터 시간은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다루어졌다.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은 영생이다. 사도신경의 마지막 신앙고백이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이다. 유한한 삶의 덧없음에서 영원을 추구하고 있다. 깨다름의 종교인 불교에서도 시간은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
서강대 총장을 지내신 박홍신부님이 어느 피정강론에서 한(恨)은 정(情)의 뒷면이라고 했습니다. 정이 배반당하면 한이 맺힌다는 거지요. 우리민족은 정이 너무 많아 한 또한 그 골이 깊다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가 더욱 그렇답니다. 아내의 친구중에 딸만 셋 둔 이가 있습니다. 딸을 낳는 것이 여자만의 "죄"가 아니련만 몽매한 인습으로 그녀는 시가에서 말할 수 없는 구박과 모욕을 당했답니다. 세번째 딸을 낳은 후 그녀는 시부모가 아들에게 이혼을 종용하는 것을 엿들었답니다. 심약한 남편은 단호히 맞서지 못하고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모습에 그녀는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답니다. 이혼은 면했지만 그녀의 가슴에 맺힌 한은 이루 말 할 수 없었겠지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답니다..
1948년 중학교 1학년 국어를 맡으신 M선생님은 시를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국어시간 수업이 끝나기 10분전이면 의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 하시고는 한 두편의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50분이라는 수업시간도 감당하기 힘든 1학년생에게 어떤 때로는 수업종료 타종을 넘기며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눈을 감고 갇혀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시를 배운지 한달 두달 지나면서 나는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소월 김영랑, 정지용, 김기림 노천명등 우리나라 시인들 시뿐 아니라 헤르만 헷쎄라든가 괴테같은 외국시도 번역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를 읊어 주실뿐 아니라 그 시의 배경까지 멋들어진 해설로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적어도 저만은 그랬습니다. 그때 배운 시중에는 아직도 몇수는 온채로 읊조릴 수..
몇 년전Barnes and Noble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시를 San Dimas 호텔에서 오늘 아침 이른 잠에서 깨어나 정지용시인의“유리창”을 떠 올리면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버이의 슬픔은 동서와 시간을 뛰어 넘어 한결 같네요. 내 아이를 잃고 (1832) 아이헨도르프 지음 멀리 시계종 소리가 들리네밤도 이미 늦은 시간이네호롱불도 줄여 놓았네그러나 네 작은 침대는 개킨 채이네 바람은 아직도 잦지 않고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네우리는 집안에 외로이 앉아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네 세찬 바람 소리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네너는 길을 잃고 헤매다 조금 늦어이제서야 집에 온 거구나 우리야 말로 어리석구나우리야 말로 길을 잘못 들어아직도 어두움에 헤매고 있네너는 이미 영원한 안식의 잠..
오 대한민국 1968년도 다 저물어 가던 어느날 나는 씨애틀의 한 할인 매장에서 50 cent 짜리 made in Korea 라는 라벨이 붙은 싸구려 와이셧쓰를 본 일이 있습니다. 참으로 조잡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쌀 때이라 해도 50전 짜리 와이셧쓰라니 말입니다. LP 판 한장이 4~5불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콧등이 시큰하더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고국을 떠나온지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떠나 올 때 한국은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리움과 서글픔이 북바쳐 펑펑 울었습니다. 우는것이 부끄러워 뒤켠 주차장에 나와 남이 보지 못하는 구석에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그것이 미국에 와서 처음 본 한국제 수입품이 었습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서 하루 14시간 피땀 흘려 만..
아침형 인간대학원생때 이후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지요. 교직에 있다 보니 아침 강의에 맞추어 출근하여야 하니깐요. 그런데 점차 극단적인 아침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새벽 다섯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5시 36 분 선능발 전철 2호선 첫차에 맞추자니 자연 그렇게 일찍 일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아직 분당선이 개통하기 전이었고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보통 걸음으론 10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버쓰를 잘 시간 맞추어 탄다면 4, 5분 거리였습니다. 첫차는 항상 비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좋았고 낙성대역에서 하차하고는 걸어서 관악산 캠퍼스에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처음에는인헌 초등학교 뒷길 강감찬 장군에 태어 났다는 낙성대 집터 앞을 지나 서울대 뒷문으로 향하는길을 따라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올빼미형 인간이론물리 전공인 우리는 물리학과 건물에서 떨어진 목조 간이 건물의 방들을 연구실로 쓰고 있었다. 본 건물과 떨어져 있어 남의 눈에 띄이지 않아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나는 나와 같은 지도 교수 밑에서 논문을 쓰는 미하라 노리히꼬라는 일본 3세와 함께 연구실을 나눠쓰고 있었다. 올빼미형 인간은 몇사람 더 있었으나 항상 올빼미는 나와 "노리" 와 "에드" 라는 친구였다. 우리는 밤 12시가 조금 넘으면 출출해져 한 15 분거리의 피자집에 가서 밤참을 하곤 했다. 나와 노리는 담배를 피웠고 에드는 담배를 피지 않았다. 언젠가 에드는 내가 담배를 오른손 손까락 사이에 끼고 생맥주핏쳐를 든 포즈를 "멋있다", "크래식" 이라 칭찬해주곤 했다. 에드가 먼저 박사학위를 받고 떠났고 그..
황성의 달 (荒城の月) 5~6년전 늦가을 필자는 후꾸오카에서 열린 한 국제 학술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이 있다. 컨퍼런스 중간에 후꾸오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가량 가는 온천 리조트에서 하루밤을 자면서 갖는 리셉션에 참가하였다. 참가자의 80 퍼센트는 일본인이었고 한국에서도 한 10 여명이 참가하였다. 만찬후 여흥으로 가라오케가 단상에 등장하고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C대의 P교수가 있어서 가라오케 노래 리스트에 오른 한국 가요를 앵콜을 받아 가며 여러 곡을 불렀다. 대부분 조용필의 노래였는데 스크린에는 물론 일어가사가 나왔는데도 대강 기억하는 한국말 가사로 불렀다. 그런데 일본의 T대에서 온 S교수가 지명되어 단상에 올랐는데 가라오케 리스트에도 없는..
……. 변한건 아무것도 없는데 단 한사람만 없는 느낌…… 1930년대 아직 페시시린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폐렴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향수라는 노래의 노랫말로 더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은 5 살 난 어린 딸을 폐렴으로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어린 딸이 떠나 버려 텅 빈 병실 유리창에 기댄 정시인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한편의 주옥 같은 명시로 승화시켰습니다. 반세기도 훨씬 넘은 그 옛날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이 슬프고 아름다운 시를 나는 아직도 온 채로 읊조릴 수가 있습니다. 유리창 유리의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얼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 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은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