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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잡문

원고를 끝내고

샛솔 2004. 5. 11. 18:41

원고를 벗어 놓고...

무엇을 쓴다는 것은 버거운 짐이다.  그래서 원고를 끝냄을 탈고라 하는지 모른다. 짐을 벗어 버린다는 뜻으로.

짐을 벗어 버렸어도 결코 홀가분한 기분은 아니다. 

쓰기전부터도 쓴 후에도 미진한 생각이 따라 다닌다. 

쓴다는 것은 읽는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항상 독자를 의식한다. 내가 쓴 글이 과연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  내 뜻대로 이해해 줄 것인가?  

 

나는 항상 언어의 불완전성을 의식하고 있다. 

언어란 정말 불확실한 것이다.  흔히 쓰는 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다.  풍기는 늬앙스에 따라 듣는 이에게 천차 반별이란 뜻이다.  그런데 글말은 소리말과 달리 강약이나 억양이나 표정이나 손짓이등이 풍기는  늬앙스 조차도 모두 떨구어 버리고 아주 추상화된 언어의 형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쉼표, 마침표, 느낌표, 물음표,  진하게 쓰기등 보조 기호가 있긴 하지만 소리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언어의 불완전성을 말할 때 나는 항상 이런 얘기를 한다.  "영영사전만으로는 영어를 배울 수 없다".

완전한 영영사전은 모든 영어의 어휘가 올려 있다.  그래서 한 단어를 찾아 보면 풀이가 실려 있되 영어로 되어 있다.  그 풀이말은 또 사전에 올라 있는 어휘들이고 그 어휘를 찾아 보면 또 다른 올림낱말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 영영사전은 닫겨진 동의어 반복이다.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언어로만 배울 수 없다. 한 낱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을 쓴다면 모든 낱말들의 모음은 닫긴 언어 반복체계다.

그래서 말을 말로만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아기가 말을 배울 때,  엄마의 손과 몸놀림으로 배운다. 밥을 가르키는 손을보고 명사를 배우고 먹여주고 입혀 주는 행동으로 먹고 입는다는 동사를 배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우고 경험한 배경에 따라 말씨가 다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편적인 교육과정이 있어서 비슷한 말들을 배운다는 점이다.

 

사람들 하나 하나는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글 쓰는 사람은 그 평균에 중심을 넣고 글을 써야 하는데 저자 역시 살아온 배경과 언어를 사용해 온 과거의 경험에 따라 생긴 나름대로의 언어체계를 써서 글을 쓴다.

어떤 때는 그것이 맞자 않으면 글을 읽기 어렵게 된다.  

 

탈고를 했되 미진하다는 느낌은 그것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너무 작을 공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압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New Masters of Flash 의 "주사위" 편은 주사위하나를 그리기 위해 들어가는 3d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배경을 모두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압축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독자가 이것을 풀어서 이해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성격상 이것을 풀어서 100페이지 200페이지로 늘려 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작품집이 아니라 플래시의 3d 애니메이션의 기술서가 된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너무 압축되었다는 느낌이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이점은 Q&A 에서 풀어 가야 할 과제로 남기는 수 밖에 없다.                     

 

20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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