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대전기행 3박 4일 - 2013 10월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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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행 3박 4일 - 2013 10월 4-7

 

대전은 서울서 하루 거리의 가까운 도시다.    하루에 갔다 온 일도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먼 거리의 도시였다.

 

1944년 여름 내가 태어나서 처음 조국의 땅을 밟았을 때 "다이덴"을 지나 갔던 것 같다.  어슴프레한 기억이다.  완행열차는 서울서 네댓시간 걸렸을 것이다.   하긴 김추자의 <대전발 0시 50분>도 얼마 되지 않은 노래다.   목포행 완행열차가 새벽 0시 50분에 떠났던 것 같다.

 

고속도로가 뚫리고 KTX 가 깔리니 대전은 서울과 1일 생활권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난 초등학교를 참으로 많이 옮겨 다녔다.  1942년 미나토야 국민학교 (  아지가와(安治川) 바다밑에 수몰된 내 유년시절의 족적 )에 입학하고 3학년이 되던 해(1944) 초 여름에 양주국민학교에 전학왔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의정부읍의 일본사람 초등학교인 의정부 국민학교로 전학되었다.   그리고는 부모가 귀국하면서 터를 잡은 대전으로 갔다.

 

아버지는 나를 전학시키기 위해 내 손을 잡고 다니면서 학교를 알아 보셨다.   1946년 3월 초에 아버지는 원인을 알수 없는 급병으로 세상을 떴고 난 작년에 세상을 뜬 형수(당시는 약혼녀)가 시동생감을 데리고 다니면서 대전 선화 국민학교에 전학을 시켜 주었다.

 

가장이 된 형이 거주지를 다시 의정부로 옮기면서 난 다시 양주국민학교로 전학을 했고 6학년 1년을 양주 국민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그러니까 선화 국민학교는 한 2년간 다니지 않았나 추측된다.

  

그 당시엔 대전 중심부를 벗어나면 시골이었다.  목동편으로 대전 중심부 밖으로 나오면 그 초입에 작은 언덕이 있고 오른쪽엔 공동묘지가 있었고 왼쪽엔 과수원이 있었다.  공동묘지 넘어엔 감옥소(교도소)가 있었고 공동묘지와 과수원 사이의 고개 넘어가 목동 마을이었다.  우린 거기서 살았고 거기서 선화국민학교를 통학했다.  목동은 선화국민학교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골 냄새가 나는 대부분이 초가집인 동네였다. 

 

난 대전역과 지금은 구청이 된 옛 도청청사사이의 중앙거리를 많이 다녔다.  그 사이에 있는 개천의 다리 (목척교)를 무수히 지나 다녔다.

 

목동의 감옥에서 전중이(수감자)들이 밭에 나와 일하는 것도 흥미롭게 지켜봤다.  도청 근방에 재판소(법원)가 있었다.  가끔은 용수를 쓴 전중이들이 재판을 받으려 재판소에 가는 것을 따라 다니기도 했다.   재판소 방청석에 까지 들어 가 용수를 벗은 미결수들의 얼굴을 보려고 아이들 여럿이 함께  따라 들어 간 일도 있었던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 한 2년 유성에 있었던 과학재단인가의 심사위원회에 봉사한 일이 있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꼴로 대전에 와서 회의에 참석하곤 했다.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고 기차를 타고 돌아 가기도 했다.   기차시간이 맞지 않으면 대전역 근방에서 시간을 떼울 때도 있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일도 있었던 같다.  그러나 선화국민학교나 목동까지는 가 보지 못했다.    

 

이번 대전 여행에서는 내 유년시절의 족적을 다시 밟아 보기로 했다.  선화 국민학교까지는 갔지만 목동행은 다음기회로 미뤘다.

 

자전거를 타면서 대전엔 많이 다녔지만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보려고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를 자꾸 먹어 간다는 신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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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거리의 대전행 여행을 결정하고 늘 가서 묶는 스파피아호텔 (현재 이름: 인터시티)에 예약을 하고 일찍 떠난다고 서둘다 보니 늘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도 놓고 왔고 아이폰 아이패드 충전기도 놓고 왔다. 

 

가까운 거리라고 방심하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다행이 충전기 하나는 여분으로 다른 전기부품 주머니에 들어 있었고 또 휴대용 배터리로 자전거에 거치한 아이폰을 충전할 때 쓰는 케이블이 있어 하나를 가지고 4대를 충전했다.

 

사진기는 없으면 아이폰으로 찍으면 된다.    그런데 대전에 가면 대전 친구들이 찍어 주기 때문에 내가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

 

대전에서는 내가 기빨(관광안내 기빨)이 될 필요가 없다.  거기 친구들이 기빨이 되어 준다.  

 

이번 여행에서는 혼의자유인님 내외,  수문장님 내외와 자전거는 함께 타지 않지만 호텔옆에서 <계룡식당(현: A Twosome Place ) >하시던 여인용씨 내외 분의 환대가 넘 과분해서 고맙기를 넘어 황송할 지경이었다.  

 

 

아래는 내 아이폰 사진들

 

 

 

 

토요일 수문장 내외가 안내 해준 등총꽃마을 자전거길(갑천 누리길의 끝)

 

 

 

 

누리길 중간 쉼터에서

 

 

 

 

증촌꽃마을 정자

<증촌정>

 

 

 

 

증촌정 느티나무

수령이 약 400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2005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한다.

 

 

 

 

수문장님 마님이 준비한 피크닉 음식

 

 

 

 

증촌동 논 벼

 

 

 

 

혼의 자유인님의 Penny Farthing

사람들은 Bean Pole 자전거라고 부른다.

 

 

 

 

대전 중앙로의 목척교

 

 

 

 

1942년에서 부터 한 2년간 다닌 초등학교

 

 

 

 

첫날은 대전 국립묘지에 갔었고

 

 

 

 

다음날은 수문장님  내외와

증촌꽃마을 에서 끝나는

갑천 누리길을 달렸다.

 

 

 

 

일요일날은 혼의자유인 내외와

목척교와 선화초등학교를 갔다 왔다.

 

 

 

 

 ************혼의 자유인, 수문장님이 찍어 준 사진들 ***********

 

 

 

 

 

대전 국립 현충원 가는 길

이날 혼의자유인님의 자전거는 Scorpion 삼륜자전거였다.

 

 

 

 

수문장님 내외분과 함께

 

 

 

 

누리길 가는 길에 또 하나의 천연기념물 보호수가 있었다.

 

 

 

 

목척교 가는 길에서

혼의 자유님 마님과 함께

 

 

 

 

선화초등학교 가는 날은 그 유명한

Penny Farthing을 타고 오셨다.

 

 

 

 

A Twosome Place 의 여인용씨 부인과 따님과 함께

 

 

 

 

목척교 가는 길가에어서

 

 

 

 

목척교 다리 밑에서

 

 

 

 

 선화 초등학교 교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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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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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0.10 10:23

    저도 대전에 회의 등으로 자주 가곤 하는데 (예전엔 아이가 카이스트에서 석사까지 6년 있었기에..)
    자전거는 한번도 못 타봤습니다. 이담에 일부러 잔차타러 여행을 가봐야겠습니다.
    선화초등학교와 선생님이 다니신 코스 위주로... 잘 구경했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3.10.10 20:13 신고

      감사합니다. 대전 자전거도로는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보다 사람도 많지 않아 쾌적한 잔차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