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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주의자의 고백 본문
금연주의자의 고백
지난 토요일 늘 보는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 "이난영"씨의 "다방의 푸른 꿈" 이란 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그 노랫말의 첫 머리에 "담배연기"란 말이 나온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추억...
멋 있는 가사다.
담배의 명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의 라스트 신이다.
Joseph Cotton 주연의 1949년 영국 영화 "The Third Man" 의 마지막 장면
Greham Greenee 원작의 이 영화는 1999년 영국 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가 영국 영화 역대 최고의 작품
(greatest British film of all time.)으로 선정했다.
https://youtu.be/_pV6zRGeeGM
옛날에는 담배는 이처럼 멋이 있었다.
담배 연기하면 나도 추억이 있다. 극렬한 금연주의자인 나도 한 때 담배를 피웠다.
2년에 한 번씩 공단 건강검진 문진표를 작성하다 보면 옛날에 내가 지은 죄를 고백하게 만든다. 담배를 언제 얼마동안 하루에 몇가치 피웠는가를 되새기게 한다. 아 2년전에도 물었는데 또 이걸 묻네....
이 문진표의 답을 미리 말하면 난 스물 한 두살때 부터 마흔이 되기 한, 두해 전까지 하루 반갑 (열가치) 정도의 양을 피웠다.
내가 담배를 배울 땐 담배의 해독에 대해서 알려진 것도 없었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멋을 부리는 것과 비슷하게 받아 들였다.
남자가 술 담배 못하면 뭣에 쓰노? 할 만큼 남자면 술 담배 정도는 해야 남자라 불릴 수 있다는 식이었다.
1956년 내가 대학 2,3 학년 무렵에 쓴 일기장엔 담배연기를 자연(紫煙 보라빛 연기)이란 낱말로 멋을 부려 표현했다.
1956년 3월 18일 (일요일) 에 쓴 내 일기장의 일부
Viceroy는 그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양담배 이름이다.
내가 담배를 배우게 된 계기는 내가 대학생 때 가정교사를 하고 나서였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혜화동 일대에서는 쪽집게 A급 가정교사로 소문이 났었다. (2007/08/04 - [일상, 단상] - 강남엄마 따라잡기 - 쪽집게 과외선생)
그 때 그 글에서도 내가 담배를 배우게 된 동기를 간략하게 쓴 일이 있다. 과외를 맡긴 엄마들이 과외비를 낼 때가 되면 날 찾아와선 과외비와 함께 당시로는 최고의 선물인 양담배를 한 두 보루(10갑)씩 대 주었다. 자연히 담배를 자꾸 피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1959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양담배를 대 놓고 피게 되었던 것이다. Chesterfield 와 Philip Morris 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 종류를 잘 갖다 주었다. 일기장에 적힌 Viceroy 도 한 동안 그 logo 가 한국 공군 마크를 닮았다해서 "공군담배"라는 닉네임이 붙어서 뜨던 담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는데 군대에서는 "화랑" 담배를 대 주었다. 화랑담배는 그냥 보통 종이 포장이라 배급을 받을 때면 담배는 바짝 마른 풀가루였다. 연기가 너무 매워서 담배를 꺼꾸러 물고 입김으로 적셔서 불을 붙이곤 했다. 훈련소에서 노는 시간에 할 일 이 없으니 담배 피우는 일이 휴식의 전부였다. 화랑 담배를 꺼꾸러 물고 입김을 불어 넣던 생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대하고 419 가 났고 그 해 8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 다음 해 아내와 결혼했지만 담배 피우는 습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60 년 초반에 담배의 유해성 공방이 처음 일었다. 미국의 담배 회사와 보건 담국이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담배갑에 담배 유해성 경고를 넣어야 하느니 마느니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막강한 자금을 동원한 담배회사들은 로비와 광고, 사이비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반격이 만만찮았다.
내가 박사논문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론물리 전공 대학원 학생은 Annex 라고 불렀던 물리학과 뒷켠 목조 건물에 연구실을 배당 받았다. 그 연구실을 쓰던 대학원생 대부분은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내 office mate 인 Nori 만 담배를 피웠다. 그래서 자연히 우리는 담배 피는 Office mate 끼리 방하나를 나눠 쓰게 되었다.
우린 대부분 올빼미족이었다. 낮에는 시끄러워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저녁을 먹고 다시 연구실에 와서 밤샘 공부들을 했다. 자정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고 두시 세시에 집에 돌아 갔다. 자연 다음날은 늦잠을 자고 10시 아니면 11시에 학교에 왔다.
그러다 보니 자정 쯤 되면 출출해져서 캠퍼스에서 1 마일은 떨어 진 45가의 "Rainbow" 라는 Tavern (피맥)에 가선 피자를 사 먹곤 했다. 다시 연구실에 돌아 가지 않을 땐 생맥주도 한 두잔 했다.
그 때 옆방의 Ed Fizet 라는 친구는 의자 팔거리에 걸친 내 오른 손 손가락사이에 끼운 담배와 왼 손으로 잡은 맥주 Pitcher의 포즈를 쳐다 보고는 멋 있는 "Classic pose" 라고 칭찬해 주곤 했다.
난 그저 무심히 자연스럽게 취한 포즈인데 그 친구의 "classic pose" 라는 칭찬이 아직도 귓가에 맴 돈다.
담배는 내겐 그런 멋이었다.
1964 년경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이던 물리학과 선배 한 분이 UW 에 연수를 오셨다. 물리학과 선배이기 때문에 같이 많이 다녔는데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다.
내 담배 피는 모양을 사진 찍어 준 것이 있다. 아마도 멋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앨범에 붙어 있었던 같아 찾아 보니 있었다.
캐나다 Vancouver의 UBC 에서 포닥(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에도 금연을 못하고 담배를 피울 때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양담배를 금지하였고 공무원이 양담배를 피우다 들키면 엄중한 처벌을 내렸다. 그 땐 전매청에서 팔 던 최고품 담배는 "백양"이었는데 "청자"가 최고품으로 대체되던 시기였다. 전매청 담배는 양담배에 비하면 값도 만만찮은데 질은 형편 없었다.
내 옆방에 내 동갑내기 교수가 있었는데 우리는 둘이 이 참에 담배를 끊자고 제안했다. 둘이서 끊으면 서로 격려하면서 감독하면서 금연이 용이하지 않을까 해서 였다. 그러니까 70년대 초에 내 최초의 금연 노력이 시작되었다.
"금연" 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금연 다시 흡연등 여러번 끊고 피우고를 반복하다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이사 간 다음엔 완전히 끊었다. 그러니까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싯적" 못된 버릇을 청산한 셈이다.
1977 - 78 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USC 에서 방문교수로 1년 지낼 때 미국의 금연상황은 굉장히 발전해 있었다. 그래도 Semiar 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 둘 있었지만 재털이는 치운 상태라 담배갑에 재를 터는 궁상을 떨었다.
1965-66 년 Brown 대학에 1년 방문했을 땐 물리학과 건물 자체가 금연 빌딩이었다.
작년에 노벨상을 탄 Kosterlitz교수가 추운 겨울에도 건물 밖 현관에서 떨면서 담배를 피던 딱한 모습이 떠 오른다.(2016/10/04 - [일상, 단상/잡문] - 2016년 물리학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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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선생을 할 때 엄다들이 갖다 주던 Chesterfield 담배
아마 이 담배로 담배를 배우지 않았나 싶다.
공군 담배로 닉네임이 붙었던 양 담배
Viceroy
1956 년 일기장에 썼던
Viceroy 의 자연(보라빛 연기) 주인공
1963년이나 64년 무렵 담배에 불을 붙이던 내 모습
Seattle 에서
당시 UW 에 연수왔던 경북대 L교수가 찍어 준 사진
당시엔 크루컷(Crew Cut)이 유행이라 나도 한 동안 크루컷 머리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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