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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인연의 빨간 실 – 첫 데이트 60주년 본문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인연의 빨간 실 – 첫 데이트 60주년

샛솔 2021. 4. 3. 12:43

월하노인의 전설, 인연의 빨간 실 첫 데이트 60주년

 

부부의 연은 어떤 연 보다 질기고 길고 막중하다.   대부분의 부부는 자식을 낳고 키우고 그래서 부모 자식의 인연을 만들고 그들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또 그 연은 이어지고 그들이 또 짝들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계속 인연은 이어진다.

 

우리 부부가 너는 우리 비타민이야하고 귀여워하는 손자도 따지고 보면 우리 부부의 만남의 산물이다.  

 

부부의 인연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다고 한다.   중국에서 연유한 빨간 실의 설화는 짝이 되는 남녀에게는 태어날 때 빨간 실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내 환원주의 세계관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Causality(인과율) 라는 물리학에서 잘 쓰는 용어는 자연현상에서 일어 나는 현상은 인과율에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초자연현상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는 많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 수록 처음에는 초자연현상이라 믿었던 현상들이 다 과학의 영역인 자연현상으로 들어왔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causality에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떻던 causality 와 환원주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에겐 빨간 실의 설화는 단지 설화가 아니라 진실이다.  

 

우리 부부 둘은 1 1개월 24일 간격으로 태어났고 태어나는 순간 우리 둘은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달 뿐이다. 

 

캐오스 이론이 밝혀지고 제임스 글리크의 책 Chaos가 세상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부분의 세상사는 긴 시간으로 보면 모두 Chaotic System이고 이 시스템의 미래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하다는 것(inherently unknowable)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임스 글리크의 "카오스".  한글 번역판은 1993년에 나왔다.

 

이 책을 번역한 두 사람은 모두 서울대 물리학과 내 제자들이다. 고맙게도 번역본 한 권을 보내 줬다.

 

다시 말해 인과율은 성립하되 미래는 본질적으로 알 수 없다는(inherently unknowable) 것이다.

 

운명의 남녀다.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빨간 끈이 매여 있었는지 모른다. 왼쪽은 1942년 4월 18 일 촬영하였고오른쪽도 거의 같은 때로 추정된다.이들은 19년 후인 1961년 6 월 16 일 결혼한다. 왼쪽은 일본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이고오른쪽은 한국의 서울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두 남녀는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만났고 둘은 1961년 4월 1일 첫 데이트를 한다.   내 데이트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리고 실제로 둘이 함께 영화를 봤다는 것은 내 고백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시체 말로 하면 그저께인 2021년 4월 1일은 우리의 "데이 60년"이다. 

 

재작년에도 우린 데이 58년 기념라이딩을 했다.    그래서 그저께도 데이 60년 기념라이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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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April Fool's Day 라 기억하고 있다.  

 

코니를 만난 것은 그 전년 1960년이 저믈어 가던 12월 말이었다.    University of Washington의 Winter Quarter 가 시작되자 캠퍼스에서 자주 만났지만 첫 데이트를 신청하고 함께 영화를 본 날은 1961년 4월 1일이었다.  아마도 Spring Quarter 가 시작하기 전 며칠간의 휴가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날 본 영화는  새로 개봉한 "The World of Susie Wong" 이었다.   William Holden (Stalag 17 - "제17 포로수용소"에서 명연기를 펼쳤던)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그때 코니는 Mrs. States라는 혼자 살고 있는 이혼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주말에 이 중노 부인은 Cameno island의 별장에서 지내기 때문에 우리가 데이트 한 날은 아마도 주말이 었던지 코니가 사는 아파트에 나를 데려갔다.

 

아이스크림을 대접하겠다고였는데 아이스크림을 퍼 주고 숟가락을 주지 않았다.   "숟가락은요?"  하고 내가  한 말에 무척 당황해 하던 모습을 5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우린 파멸적  열애에 빠졌고 내 Spring Qauarter 의 중간시험은 엉망이었다. 

2007/06/27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운명의 인연

 

첫 데이트 후 두달하고 16일 되던 1961 년 6월 16 일에 우린 결혼했다.

 

첫 데이트후 그 2 달 반은 악몽이었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415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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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이켜 보면 우리의 인연은 너무 운명적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아내를 만나기 전에 아내와 너무 가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1960년 8월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나는 서울 혜화동 두 째 누님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내가 살 던 곳에서 직선거리로는 불과 35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아내가 고3 근방일 때 그리고 내가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을 때 쯤 아내는 내가 사는 곳에서 불과 35m 떨어진 곳으로 이사 왔고 내가 1960년 8월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살다가 아내도  그 해 12 월경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애틀로 따라왔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살던 두 째 누님댁은 혜화동 10번지 9호였다.   아내는 거기서 직선거리 35 m 떨어진 거리의 한옥에 내가 미국유학을 떠날 때까지 한 5년 살았다.  두 집은 서로 몰랐지만 우리집의 이웃 몇집은 아내의 집도 잘 아는 공동 이웃이었다.  

 

당시의 세류는 청소년의 남녀가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직도 결혼은 중매위주였고 중매쟁이 매파는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연결해 주었고 연애나 자유 만남 같은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연결고리는 있었다.   

혜화동누님집에서 가까운 곳에 625 전쟁 때 일본으로 돌아간 둘째 누님의 일본인 동서의 집이 있었다.   집을 비우고 전쟁 때 가족을 모두 동반 일본으로 갔기 때문 그 집은 비었었고 두 째 누님이 관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내 재당질녀(7촌조카)가 안양 친가의 동네에 사는 같은 학교 반우를 데리고 그 빈집에서 자취를 했다.    나도 빈 집이기 때문에 자주 가서 그 집에 있는 영문 타자기를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두 여학생이 아내와 한 반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후라빠"라 불릴 만큼 끼가 있는 여학생이었던 반면 내 당질녀는 전교 1등을 하는 모범생이었다.   서울대학교 의대를 수석 합격할 만 큼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함께 자취했던 여학생은 내겐 별로로밖에 안 보였다.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 사대에 들어갔지만  내 관심밖이었다.

 

그러니 아내가 내 운명의 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를 연결시켜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내 당질녀는 한 때 초딩인 내 처제(7살 터울) 가정교사 노릇도 조금 했다고 했다.  아내의 집에도 들락거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사실 사춘기인 나도 이성에 대한 갈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다음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다.  "내 짝은 어디에 있을까?"   20살 안팎의 나이니 이성에 대한 욕구가 솟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20살 연하와 결혼할 확률은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내 짝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알았다면 연애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불과 35m 거리밖에 안 되는 곳에 살고 있었고 또 자주 보는 내 재당질녀와 동급생이었다니....    뭔가 조금 아쉽달까 억울하달까 하는생각이 든다.

 

내 재당질녀는 서울의대 수석 합격할 만큼 공부를 잘했으니 아내는 노트도 빌려 공부도 했다고 한다.   아내도 E 대에서는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 영문과에 합격했으니 공부도 못한 편은 아니다.  그 정도로 친했는데....

 

당시 고딩이었던 아내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미래의 짝을 그리워했는데  6년 후에 이역 만리에서 만나 열애에 빠져 첫 데이트 후 두 달 반 만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러 이제 diamond anniversary(결혼 60주년)를 두 달 반 남기고 있다.

 

언젠가  몸이 아파 우울했던 날 부질없는 망상을 하고 여기에 글을 쓴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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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듣고 좋아했던 노래가 바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다.  세레나데는 애인을 위해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왜 그 노래는 애조를 띄웠는가?      슈베르트의 가곡은 하나같이 슬프다. 

 

youtube.com/watch?v=Cw23vYfkOZ0

 

그런데 유독 이 노래가 더 슬피 들리는 것은  어쩌면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떠내 버린 내 청춘이 회한이 되어 그리 들리는지 모른다. 

 

그때 아내는 내가 살던 혜화동 누님 집에서 불과 30~40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제 52 년째 해로하고 있는 고딩이었던 그녀를 위해 그 세레나데를 내가 부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망상을 해 본다.

2007/06/27 - [사랑, 운명, 인연] - 운명의 인연

  

난 그녀의 집 창가를 수없이 지나다녔는데 내가 이 노래를 불러 그녀를 불러 낼 수는 없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 2007/07/02 - [사랑, 운명, 인연] - 인연의 나선 궤적을 따라서 )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search/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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