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제2차 북미회담을 보며 - 다시 읽는 한국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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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회담을 보며 - 다시 읽는 한국전쟁사 


1차 북미회담도 뭔가 허탈하게 끝났다는 느낌이었는데 2차 북미회당은 아예 결렬되고 말았다.


뭔가 커다란 기대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허탈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이렇게까지 갈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른다.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지금은 그래도 한국사람을 어느정도 사람 대접은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 지휘부는 한국 사람을 그저 야만인 Savage 로 생각했다. 


한국전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2018/04/23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날 )  휴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전쟁고아"나 마찬기지 신세로 전락한 나는 이 동안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휴전회담이 시작할 무렵에는 가족에 알릴 여유도 없이 영등포시장에서 잡혀 트럭에 실려 고랑포 영국 기지에서 건설 노동자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탈출하여 돌아와서는 영등포 오비 맥주공장에 차린 미군 보급 기지에서 하역 노동자로도 일했다.  (2010/06/25 - [이것저것/정치, 경제, 금융] - 전쟁이란 무엇인가 - 625 전쟁의 생존기 )


내가 전쟁 동안 겪은 미군의 대 한국인관은 그들이 한 눈을 팔면 그냥 물건이나 훔쳐가는 좀 도적떼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다.   내가 영등포 맥주공장에서 일할 때 임금으로 주는 쌀을 모자에 받게 했다.  그리고 쌀 받은 모자를 두손으로 들어 뻗게 하고는 요즘 보안검사대를 지나갈 때 보안검사관이 하듯 몸을 샅샅히 뒤졌다.   모든 노동자를 잠정적 좀도둑으로 본 것이다.  하긴 거기에는 좀도둑이 있긴 했다.  그렇다 해도 당하는 입장에서의 모멸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전쟁에 대해 유달리 관심이 많고 나중에 많은 책을 읽었다.  그건 내가 196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 Univ. of Wash.  대학서점에서 사서 읽거나 아내가 일하는 Far Eastern 학과 도서관에 있는 책을 빌려 읽으면서 공부한 것이다.   지금은 그 때 샀던 책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책 하나는  

"This kind of War" 라는 책이다. 





60년대 읽었던 한국 전쟁사



이 책에도 1951년 7월초에 시작한 휴전회담이 1953년 7월 27일 조인될 때 까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었다.   평화협정도 아니고 당장 3년 남짓 지속되었던 적대행위를 멈추자는 휴전 협정도 2년 넘게 걸렸는데 70년간의 적대행위를 종결하려는 북미 핵협상이 그렇게 쉽게 진전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북미관계를 낙관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미국이나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은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지금 북한은 엄청난 제재를 받고 있지만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1 - 1953 년은 미국의 북폭은 세계사에서 도 유례를 보기 힘든 혹독한 것이었다.  




7,8년전에 출간된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인 Bruce Cumings 가 쓴 "Korean War  A History" 라는 책을 보면 잘 기술되어 있다. 



Cumings, Bruce (2010-07-21). The Korean War: A History (Modern Library Chronicles Series Book 33) (Kindle Locations 2457-2458).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Kindle Edition.





북한은 전쟁 발발 며칠 만에 완전히 제공권을 잃었고 북한의 상공은 아무 저항 받지 않고 들락 거릴 수 있는 미국 공군의 놀이터였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시기에도 휴전 조인 몇 분 전까지 어마어마한 폭탄을 북한의 인구 밀집지역에 투하했다.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하는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24분전 까지 미국 공군은 북한에 폭탄을 투하했다. 


(At 10:00 P.M. on July 27 the air attacks finally ceased, as a B-26 dropped its radar-guided bomb load some twenty-four minutes before the armistice went into effect.)


미국은 북한 땅에 총 635,000 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32,557 톤의 네이팜 탄을 투하했다.   이 양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일본에 투하한 폭탄 503,000 톤을 능가하는 숫자이고 이 폭탄으로 일본의 60개의 도시가 평균 43% 붕괴된 것과 비교하면 그 양의 엄청남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엄청난 북폭의 결과 북한의 도시는 40에서 90% 까지 소멸되었다.    


평양 75%,  청진 65%, 함흠 80%, 흥남 85%,  사리원 95%, 신안주 100%,  원산 80%....



 The United States dropped 635,000 tons of bombs in Korea (not counting 32,557 tons of napalm), compared to 503,000 tons in the entire Pacific theater in World War II. Whereas sixty Japanese cities were destroyed to an average of 43 percent, estimates of the destruction of towns and cities in North Korea “ranged from forty to ninety percent”; at least 50 percent of eighteen out of the North’s twenty-two major cities were obliterated. A partial table looks this: Pyongyang, 75% Chongjin, 65% Hamhung, 80% Hungnam, 85% Sariwon, 95% Sinanju, 100% Wonsan, 80% 






Bruce Cumings 의 한국 전쟁사



군사목표물이 아닌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폭격을 자행한 것은 휴전회담에서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휴전협정이 2년여만에 끝난 것도 그  포화 북폭의 덕이었다고 미군 지휘부는믿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포화 북폭을 지휘한 미 공군의 "오토 웨이랜드" 장군은 24시간 계속되는 포화북폭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공포와 통제 불능상태" 가 휴전협정을 성립시킨 중요 요인이라고 자화 자찬하기도 했다. 



After the war the air force convinced many that its saturation bombing forced the Communists to conclude the war. The air force general Otto Weyland determined that “the panic and civil disorder” created in the North by round-the-clock bombing was “the most compelling factor” in reaching the armistice. 


뿐만 아니라 이 남녀 노소 무차별 북폭의 배경에는 북한사람을 야만인로 얼마던지 죽여도 된다는 인종 우월 의식이 깔려 있다.(Apart from this astonishing distortion, note the logic: they are savages, so that gives us the right to shower napalm on innocents.)



북폭이 전쟁 종결을 앞 당겼다는 사실을 이  역사학자는  부정한다.


2차 대전 때에도 그랬고 나중에 월남 전쟁에서도 보았지만 "포화 폭격"은 전쟁을 종결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다만 상상을 초월하는 무의미한 파괴만 가져 왔을 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He was wrong, just as he had been in World War II, but that did not stop the air force from repeating the same mindless and purposeless destruction in Vietnam. Saturation bombing was not conclusive in either war—just unimaginably destructive. 


Cumings, Bruce (2010-07-21). The Korean War: A History (Modern Library Chronicles Series Book 33) (Kindle Locations 2458-2463).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Kindle Edition. 


어제의 북핵 회담도 닮은 꼴이다.   북폭 대신 "제재" 로 북한 주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전략이 북핵 해결의 지랫대가 될 수 있을까?


북한이 핵을 그렇게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 한국 전쟁때 "북폭"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작년 평창 올림픽 때 북한 대표단의 단장을 맡았던 서열 2위의 김영남 국가 수반(1924년생)은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다.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이 트라우마에 벗어 날 수 있을 만한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의 반 트럼프 언론과 반 트럼프 민주당은 이런 미국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는 게 진전을 가로 막는 문제의 핵심이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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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3.01 12:38 신고

    들려주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 마다 피부로 느낄수있습니다
    당시 기억이 선명하신 선배님 말씀을 듣고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것 같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9.03.01 13:46 신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국만 안전하면 한국에 사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평화이외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핵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평화와 번영이 올 터인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