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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선생님의 추억 본문

이것저것/역사

J 선생님의 추억

샛솔 2020. 2. 7. 21:47

전에(2011-12-15)에 썼던 글인데 업데이트하려다 보니 최신글로 둔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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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다닐 때 나보다 5,6년 선배인 문리대 철학과를 나온 J 선생님을 따라 다닌 일이 있다.

 

내가 직접 배운 일은 없지만 철학과를 나오시고 명문고교 독일어 선생님을 하시기 때문에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따라 다닌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50년대엔 석박사과정은 소위 "구제(舊制)" 로 강의 같은 것은 없고 논문만 써서 통과하면 학위를 주던 시대였다.

 

대개 박사는 교수급이 논문을 써서 학위를 땄고 석사는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고교선생을 하던지 조교를 하던가 하면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땄다. 

 

J선생은 한동안 우리집에서 하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알게 되었고 그 후에도 가끔씩 만났다.    그 때 J 선생은 <헤겔>에 대해서 논문을 썼다.   헤겔은 방대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을 주제로 하여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논문이 거의 완성될 쯤해서 초고를 나에게 읽어 봐달라고 했다.

 

물리학과 학부생인 나에게 왜 자기의 철학 석사학위 논문을 읽어 달라고 했는가하면 당시 한국의 새로 상륙한 과학철학의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내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당시 철학과엔 박종홍,  고형곤 두 한국철학계의 거두가 계셨고  김준섭교수가 과학철학을 강의했다.    거두 철학교수는 별로 강의를 하지 안했는데  박종홍 교수가 강의를 한다하면 교실이 메어질 정도로 학생이 모였다. 문리대 명강으로 소문난 몇개의 강의중의 하나였다.        그 때 그 분이 지은 철학개론이란 책은 대학생사이엔 필독서였다.   

 

칸트 헤겔 등의 독일 관념철학이 주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부분에는  키에르케골 사르틀 등 실존철학이야기도 나왔고 새로 대두하는 과학철학 이야기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기 때문에 J 선생과는 과학철학 얘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김준섭교수의 과학철학강의를 청강하기도 했다.  김준섭교수는 강의를 많이(상대적으로) 했는데 과학철학을 공부하면서 배우려는 뜻에서 강의에 비교적 열성이었던 같다.    내가 교수생활을 해서 느낀 것은 가르치는 것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관심이 되었던 비선형동력학에 들어 가게 된것도 대학원 특강으로 "비선형 동력학" 강의를 두학기를 하면서 배운 것이고 강의 준비를 하다 보면 새로운 연구 트렌드를 배울 수 있고 연구 테마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준섭교수의 과학철학 강의는 그분이 물리학의 배경이 없으니 물리학과 학부생의 수준의 물리도 잘 알지 못했다.          과학철학을 창시한 비엔나 학파 (또는 Berlin Circle) 의 대부분은 물리학을 공부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수식을 쓰지 않았지만 내용은 고급 물리내용이 들어 있었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등이 나오는데 그분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과학철학의 창시자중의 하나인 Hans Reichenbach 를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그의 대표작 "The Rise of Scientific Philosophy"  가 1951년에 출판되었는데 한국에서 구할 수 없었다.  

 

50년대에 한국 철학계에서 이 과학철학이 일종의 새 트랜드로 들어 온 것 같은데 당시 과학철학이 세계 철학계에 미친 impact 가 대단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이 책을 구한 것은 60년초 미국 유학생활을 할 때에  학교 책방에서 paperback 으로 나온 것을 발견하고서다.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에 대한 애착이 꽤 있는 것 같다.

 

Reichenback 는 그 책 서두에 Hegel 을 "깠"다.   Reichenbach는 헤겔같은 철학을 사변철학(speculative philosophy)의 대표적인 보기로 들고 사유만을 통해서 어떤 현상(역사까지 포함)을 설명하는 철학적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볼가능하다는 것이다.   

 

변증법이란 것도 이미 일어난 사건에 꿰맞추는데 그럴듯 해 보이지만 예측능력이 있는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칙이 법칙이 되려면 뉴턴의 운동의 법칙처럼 예측능력(predictive power)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 타러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Compoutrainer 만 타다 보니 블로그에 쓸 건데기가 없어 이런 옛날 추억을 끄적여 본다.  

 

 

 

60년대에 샀던 이 책이 아직 내 책꽂이에 남아 있다.



 2020 Feb 07 가필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의 한글 번역판을 보게 되었다.  기특하게도 e북으로도 판다.  그래서 한권 샀다.  참으로 추억이 많이 밴 책이다.  역자는 바로 J 선생님이다.

 



오늘 산 e-book 라이헨바하의 명저 "과학철학의형성" 한글 번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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