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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일상, 단상 (476)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1948년 중학교 1학년 국어를 맡으신 M선생님은 시를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국어시간 수업이 끝나기 10분전이면 의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 하시고는 한 두편의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50분이라는 수업시간도 감당하기 힘든 1학년생에게 어떤 때로는 수업종료 타종을 넘기며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눈을 감고 갇혀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시를 배운지 한달 두달 지나면서 나는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소월 김영랑, 정지용, 김기림 노천명등 우리나라 시인들 시뿐 아니라 헤르만 헷쎄라든가 괴테같은 외국시도 번역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를 읊어 주실뿐 아니라 그 시의 배경까지 멋들어진 해설로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적어도 저만은 그랬습니다. 그때 배운 시중에는 아직도 몇수는 온채로 읊조릴 수..
만남, 사랑, 애정, 변심, 이별, 아픔, 미움과 원망, 분노, 회한, 상처, 그리고 원한, 이것이 되풀이 되는 것이 삶의 번뇌 라던가. 세상에 태어 날 때 부모를 만나고 그 인연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것이다. 내가 나를 의식할 때 나는 부모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모와 자식의 인연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일 때가 많다. 진화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다만 종족 번식의 본능의 변형일 뿐이다. 동물의 세계에도 제 새끼를 위한 헌신적인 어미들을 만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효" 를 가르친다. 그러나 효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자연에 거역하는 문화다. 언젠가 일본 영화 한편을 본 일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 백년전 일본도 가난하기 그지 없을때 한 산골 마을에는..
몇 년전Barnes and Noble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시를 San Dimas 호텔에서 오늘 아침 이른 잠에서 깨어나 정지용시인의“유리창”을 떠 올리면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버이의 슬픔은 동서와 시간을 뛰어 넘어 한결 같네요. 내 아이를 잃고 (1832) 아이헨도르프 지음 멀리 시계종 소리가 들리네밤도 이미 늦은 시간이네호롱불도 줄여 놓았네그러나 네 작은 침대는 개킨 채이네 바람은 아직도 잦지 않고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네우리는 집안에 외로이 앉아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네 세찬 바람 소리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네너는 길을 잃고 헤매다 조금 늦어이제서야 집에 온 거구나 우리야 말로 어리석구나우리야 말로 길을 잘못 들어아직도 어두움에 헤매고 있네너는 이미 영원한 안식의 잠..
오 대한민국 1968년도 다 저물어 가던 어느날 나는 씨애틀의 한 할인 매장에서 50 cent 짜리 made in Korea 라는 라벨이 붙은 싸구려 와이셧쓰를 본 일이 있습니다. 참으로 조잡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쌀 때이라 해도 50전 짜리 와이셧쓰라니 말입니다. LP 판 한장이 4~5불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콧등이 시큰하더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고국을 떠나온지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떠나 올 때 한국은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리움과 서글픔이 북바쳐 펑펑 울었습니다. 우는것이 부끄러워 뒤켠 주차장에 나와 남이 보지 못하는 구석에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그것이 미국에 와서 처음 본 한국제 수입품이 었습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서 하루 14시간 피땀 흘려 만..
늙음은더욱아름다워라 몇해전2월에는 나는LA에서지냈습니다. LA는둘째누님이살고있습니다. 미수를넘긴누님은그전해만하여도건강해서조카들과하이킹도갔었는데 그해겨울은너무약해졌습니다. 두번째입원했을때나는 문병을갔었습니다. 병원은LA다운타운에있는카톨릭계병원이었습니다. 한국병동이따로있어마치한국병원같았습니다. 나는 한한국인간호사를보았습니다.이마에무엇인가를부치고다녔습니다. 이상하다싶어자세히보니재를발랐는데그것이떨어질까봐반창고를십자가모양으로붙였던것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그날이재의수요일이었습니다. 내가성당을쉬고있은지몇해째인가그래서그날이재의수요일인것을까맣게 잊고있었던것입니다. 나는재의수요일의식을카톨릭의가장아름다운의식으로생각합니다. 사순절이시작하는수요일아침미사에서신부님은축성한재를“사람은흙에서왔으니흙으로돌아갈것을생각하십시오”하면서이마에발..
아침형 인간대학원생때 이후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지요. 교직에 있다 보니 아침 강의에 맞추어 출근하여야 하니깐요. 그런데 점차 극단적인 아침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새벽 다섯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5시 36 분 선능발 전철 2호선 첫차에 맞추자니 자연 그렇게 일찍 일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아직 분당선이 개통하기 전이었고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보통 걸음으론 10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버쓰를 잘 시간 맞추어 탄다면 4, 5분 거리였습니다. 첫차는 항상 비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좋았고 낙성대역에서 하차하고는 걸어서 관악산 캠퍼스에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처음에는인헌 초등학교 뒷길 강감찬 장군에 태어 났다는 낙성대 집터 앞을 지나 서울대 뒷문으로 향하는길을 따라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올빼미형 인간이론물리 전공인 우리는 물리학과 건물에서 떨어진 목조 간이 건물의 방들을 연구실로 쓰고 있었다. 본 건물과 떨어져 있어 남의 눈에 띄이지 않아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나는 나와 같은 지도 교수 밑에서 논문을 쓰는 미하라 노리히꼬라는 일본 3세와 함께 연구실을 나눠쓰고 있었다. 올빼미형 인간은 몇사람 더 있었으나 항상 올빼미는 나와 "노리" 와 "에드" 라는 친구였다. 우리는 밤 12시가 조금 넘으면 출출해져 한 15 분거리의 피자집에 가서 밤참을 하곤 했다. 나와 노리는 담배를 피웠고 에드는 담배를 피지 않았다. 언젠가 에드는 내가 담배를 오른손 손까락 사이에 끼고 생맥주핏쳐를 든 포즈를 "멋있다", "크래식" 이라 칭찬해주곤 했다. 에드가 먼저 박사학위를 받고 떠났고 그..
황성의 달 (荒城の月) 5~6년전 늦가을 필자는 후꾸오카에서 열린 한 국제 학술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이 있다. 컨퍼런스 중간에 후꾸오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가량 가는 온천 리조트에서 하루밤을 자면서 갖는 리셉션에 참가하였다. 참가자의 80 퍼센트는 일본인이었고 한국에서도 한 10 여명이 참가하였다. 만찬후 여흥으로 가라오케가 단상에 등장하고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C대의 P교수가 있어서 가라오케 노래 리스트에 오른 한국 가요를 앵콜을 받아 가며 여러 곡을 불렀다. 대부분 조용필의 노래였는데 스크린에는 물론 일어가사가 나왔는데도 대강 기억하는 한국말 가사로 불렀다. 그런데 일본의 T대에서 온 S교수가 지명되어 단상에 올랐는데 가라오케 리스트에도 없는..
비극의 유산 --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어머니 비극의 유산 ---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어머니 ------- 어머니는 조선 근대사를 몸으로 살다 간 사람이었습니다. 19세기 한말의 가난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집에서 언문은 깨쳤지만 그 이상의 교육은 없었지요. 큰 외삼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뛰쳐 나갔다가 1920년대 미국을 휩쓴 독감에 걸려 샌프란시스코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해방 후 어머니는 한참 영화를 누리던 "이기붕"씨와 함께 찍은 외삼촌의 사진을 꺼내 보며 못내 아쉬워 하셨지요. 어머니는 세살 아래 아버지에게 시집을 갔고 아들 하나 딸 셋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나이 많은 사촌에 보증을 잘못 서 준 탓에 가산을 하루 아침에 모두 날리고 야반 도주하다시피 일본으로 건너 ..
……. 변한건 아무것도 없는데 단 한사람만 없는 느낌…… 1930년대 아직 페시시린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폐렴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향수라는 노래의 노랫말로 더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은 5 살 난 어린 딸을 폐렴으로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어린 딸이 떠나 버려 텅 빈 병실 유리창에 기댄 정시인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한편의 주옥 같은 명시로 승화시켰습니다. 반세기도 훨씬 넘은 그 옛날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이 슬프고 아름다운 시를 나는 아직도 온 채로 읊조릴 수가 있습니다. 유리창 유리의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얼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 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은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