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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본문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내가 박완서씨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동시대를 산 사람으로 그 소설에서 묻어 나는 정서가 내 삶과 넘 잘 교감하기 때문이다. 그 정서란 "아픔"이다.
<여름에 인민군이 들어오고도 어떻게 된 게 그의 형은 숙청 대상이 안 되고 계속해서 안정된 신분을 유지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양다리밖에 없으니까 양다리 이상은 걸칠 수가 없다는 건 자명한 이치, 석 달 만에 인민군이 후퇴할 때 그도 따라서 북으로 가버렸다. 처음엔 처자식과 노부모를 남겨놓은 단신 월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또 한 번 뒤집혀 겨울에 인민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했을 때 형이 가족을 데려가려고 나타났다. 처자식은 두말 없이 따라나섰겠지만 부모는 달랐다. 왜냐하면 인민군이 후퇴하고 서울이 수복된 동안에 막내가 국군으로 징집됐기 때문이다. 막내가 국군이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그 집 식구들이 월북자 가족으로 받아야 할 핍박을 많이 줄여준 건 사실이지만 노부모에게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결국 노부부는 헤어지는 쪽을 택했다. 아버지는 큰아들네 식구를 따라 북으로 가고 어머니는 남아서 군인 나간 막내아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그 남자가 넓적다리에 부상을 입고 명예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 큰 집에 늙은 어머니 혼자 달랑 남아 있었다. 그동안에 파파 할머니가 돼버린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무슨 효도를 보려고 자기를 기다렸느냐고 들입다 구박만 했다. 저 노모만 없었으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요새도 맨날맨날 구박만 한다고 했다. 한번 뒤집혔던 세상이 원상으로 복귀해서 미처 숨 돌릴 새 없이 다시 뒤집혔다가 또 한 번 뒤집히는 엎치락뒤치락 틈바구니에서 우리 집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고 그 남자네 집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국가라는 큰 몸뚱이가 그런 자반뒤집기를 하는데 성하게 남아날 수 있는 백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여 우리는 서로 조금도 동정 같은 거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김치하고 밥처럼 평균치의 밥상이었으니까. 만약 아무도 죽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고 온전한 가족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얌체 꼴을 참을 수 없어 그 집 외동아들이라도 유괴할 것을 모의했을지도 모른다.> " 그 남자네 집" 중에서
이 소설을 그냥 읽어 내려 갈 수 가 없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김치하고 밥처럼 평균치의 밥상이었으니까 라고 한다해도 아픔은 아픔이요 고통은 고통이다. 공포는 공포요 불안은 불안이다. 슬픔은 슬픔이요 서러움은 서러움이다.
모두가 다 당했으니 뭐 대수로운가! 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
우리집도 6남매중에서 둘은 북으로 넷은 남으로 갈라졌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형이 형수와 간난쟁이 조카 둘을 남기고 북으로 간 것이다. 서울이 인민군치하에 있을 때 맹산에서 두째 매형에게 붙인 엽서를 흘 깃 본 일이 있다. 검열받는 엽서에 무슨 개인적이 생각을 적을 수 있겠냐만 엽서에 대한 내 느낌은 북은 형이 그리던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였다는 것 같았다.
14 후퇴로 서울이 다시 인민군치하에 돌아 왔을 때에도 형은 형수나 아들을 데리려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형수는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형이 안오면 자기가 아들 둘 데리고 남편을 찾으려 북으로 갈 결심을 한다.
어머니는 그 자랑스러워한 조선 갑반의 종부 답게 종부와 종손을 젊은 며느리의 손에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며느리와 손자 둘을 따라 월북을 결심한다.
나와 어머니에게는 행운이요 형수에겐 불운하게도 십리도 못가 미군의 폭격에 형수의 뒷굼치에 부상을 입는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뒤굼치가 아믈 때엔 이미 서울은 다시 미군과 국군이 들어 왔을 때였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중3인 어린 나이에 난 어머니와 생이별하는 전쟁고아가 될 번 했다.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형수는 끝내 독수 공방 외로은 삶을 살다 세상을 뜬 것이다. 이민 가서 살고 있는 두 아들이 있는 Los Angeles 에서 재작년에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했다.
LA 에서 가끔 만났을 때 혹시나 형님 소식 못들었느냐고 묻곤 했다. 이산 가족 상봉이니 해도 월북한 사람이 남에 남겨 놓은 가족을 찾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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