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어렸을 땐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달력

112019  이전 다음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어렸을 땐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오늘 박완서님의 <그 남자네 집>을 끝냈다.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침대 머리에 달린 아이패드로 나머지를 다 읽었다.   이 책의 뒷부분은 그 소설에 대한 어느 평론가의 평론이었기 때문에 소설은 상당한 페이지를 남기고 생각 보단 빨리 끝났다.

 

소설 배경이 50년대 625 전쟁직후의 서울이라 읽는 내내 50년대 나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서울에서도 바로 내가 살던 곳이 혜화동 이화동 원남동이라 소설에 나오는 대학천, 이화동, 동대문, 청계천등은 내 뇌리에 새겨진 지난날들과 중복되었다.

 

여러가지로 박완서님은 내 인생역정과도 비슷하다.  그 분도 늦깎이로 40이 되던 1970년 소설가로 등단한다.  내가 서울대 물리학과에 부임하여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해가 바로 1970 년이다.   ( 2013/12/16 - [일상, 단상] - 응답하라 1970 - 내 생애의 전환기 )

    

그 분이 문리대 국문학과에 입학하자마자 625가 나 학교를 졸업하진 못했으나 실질적으로 내 문리대 선배가 된다.    625 전쟁에서 받은 쓰라린 가족사는 내 가족사와 거의 비슷하다.   아니 어쩌면 그 때 생존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족사일 수도 있겠다.

 

나도 원래 물리학자의 꿈을 꾸기전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625 직전에 한 때 이화동의 셋방에 살았다.  그때 종로에서 이화동으로 꺾어 들어 가는 왼쪽 길 가에 세(貰)책집이 있었다.  어머니가 소설을 좋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 오는 길에 그 세책집에서 책 빌려오는 심부름을 하곤 했다.  난 어머니가 빌린 책도 읽었지만 나만의 취향인 추리소설들을 읽곤 했다.    김래성 방인근의 소설들을 어머니 심부름인양 하고 빌려서 열심히 읽었다.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탐정소설이 좋아서 탐정소설작가를 꿈꾸었다.     월북 소설가 <이 태준>이 쓴 <소설작법>인지 <소설창작법>인지 그런 책도 헌 책방에서 사서 공부하기도 했었다.  

 

사실 이 꿈은 그 후에도 탐정소설(지금은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많이 들 하지만)을 많이 읽으면서 계속해서 속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은퇴해서 그 꿈을 실현해 보고 싶다는 말을 아내에게도 한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은퇴후엔 소설 쓰기 보단 프로그램 하는 것에 더 매료되어 소설 써본다는 생각은 잊어 버렸다.    그 대신 플래시를 배워서  주사위를 그렸다 .  

2014/03/05 - [일상, 단상/잡문] - 내 끈질김 - 내 플래시의 첫 작품 주사위

 

윗글 마지막 부분에 쓴 멘트

 

"Donald Knuth 교수는 프로그래밍은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하는 것과 같은 심미적 체험을 안겨 준다고 말했다."

 

가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욕구를 만족시켜 준 것 같다.

 

내 프로그래밍은 실용적 프로그래밍이기라 보단 무모하달 만큼 비실용적이다.   그래서 그게 어쩌면 시나 소설을 쓰는 산고(産苦)를 주고 만족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역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 이런 잡문이라도 쓰면서 충족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박완서의 <그남자네집> 엔 아래와 같은 사진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이 사진들은 소설에 있는 사진이 아니라 google 이미지 검색에서 찾아 낸 것들이다.

주로 미국 소스다.   당시에 이런 사진이나마 남길 사진 작가가 얼마 없었을 것이다.

몇년전에 "서울 타임캡슬을 열다" 란 사진전에서 이런 비슷한 사진 몇점을 본 것 같다.

 2009/01/11 - [뚜벅이 기행] - 종로내기의 종로 나들이

 


 

 

 

  전쟁직후의 청계천

 

 

 

 1950년대의 건어물전

 

Posted by Satsol 샛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ski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4.01 00:10

    청계천 사진은 충격이네요..@.@ 지금 우리는 옛날 임금이 누렸던 사치보다 더 한 사치를 누리고 있는데도 그 욕심이란게 한이없는것 같습니다.
    소설가....아직 늦지않았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4.01 10:33 신고

      청계천은 그랬습니다. 땅 높이의 하꼬방은 점포였고 그 위에 일어 설 수 없는 높이의 다락방은 살림집이었습니다. 개울물가의 하꼬방(판자집)밑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넝마주의나 거렁뱅이의 잠자리였고 살림터였습니다.
      소설쓰기는 이 블로그 쓰기로 충분합니다.

  2. sierrabird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4.01 05:44

    60년대 중반 저희가 대학 다닐때만해도 동대문 북쪽 청계천은 저 모양이었습니다
    소설가는 직업상 거짓말을 많이 해야되겠죠 ?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4.01 10:26 신고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좋게 이야기해서 fiction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박완서님의 데뷰작 <나목>도 박수근 화가를 회고하는 글을 쓰다고 너무 쓸 분량이 적어서 살을 붙여 fiction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남자네 집>도 자기의 첫사랑의 회고담인데 살을 많이 붙였겠지요. 그련에 사람의 기억은 굉장히 부정확해서 기억에 바탕둔 회고록도 fiction 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러 거짓말을 안한다 해도 미화하는 쪽으로 기억이 남이 있을 것 같네요.

  3.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4.01 09:55

    요즘에 저보다 약간 선배들이 은퇴하신 후에 수필(or 자서전?)을 써서 책만들어 돌리시곤 합니다.
    선생님은 블로그의 글 량 만으로도 책 몇권 쓰셨습니다. 소설아닌 수필로..
    고정 독자도 꽤 많으실테니 소설가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ㅋ

  4.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4.07 19:05 신고

    감사합니다. 옛날 이야기에 관삼같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이것 저것 많이 써 댓더니 하루 방문객이 꽤 늘었습니다. 최근의 방문객 증가는 잶은 친구 한분에 태그를 많이 달아 보라고해서 그렇게 했더니 그 효과인것 같고 특히 블루링크에 관심이 많아서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도 충족되고 제 메모리 리프레셔 역할도 하고 이렇게 하루에 방문하는 3,4 백 명 독자도 있고 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5. Jellyb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1.19 18:49 신고

    저희 어머니가 청계천 이야기를 늘 해주시곤 하셨어요. 하꼬방이란 단어랑.. 늘 물이 들어찼다고.
    저런데였군요 청계천이. 저런 모습이었군요.
    거기서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하던 사진도 있어요.
    엄마도 애였죠. 그걸 잊어요. 눈에 당장 보이지 않으니까.
    더 훌륭한 자식이 되고 싶어요.
    엄마의 인생을 보상해줄 수는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어요. 인생은 각자의 것이니까요. 하지만 부모 자식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면. 그들도 아이였다는 것을 기억해드린다면. 가끔 아이로 돌아가도 좋다고 알려준다면. 그것보다도 큰 효도가 있을까 저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부모가 될 순 없어요. 그게 안타까워요.
    대신에 나의 아이를 낳게 되면 최선을 다해 키워야겠죠... 내 부모를 대하듯이.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가보죠.
    저는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내려온 자손이니까. 그분들이 살아서 저를 보신다면 또 얼마나 예쁘겠어요.
    친척 아이들만 봐도 내 자식같고 귀여운데. 자기 자식은 얼마나 예쁘겠어요. 자기 손주는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 분들의 노고와 인생과 사랑에 힘입어 제가 이만큼 살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샛솔님의 연륜과 살아오신 세월에 존중하는 마음이 들고, 이렇게 사진을 올려주셔서 잠깐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6.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1.20 22:18 신고

    긴 댓글 감사합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와 똑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군요. http://boris-satsol.tistory.com/84
    모든 사람은 자기의 업을 갖고 살아 갑니다. 우리 세대는 우리세대대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억울한 것도 아쉬운 것도 없습니다. 청계천은 새로 단장하면서 조금 복원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관광자원용으로 사실보다 고급스럽게 판자집을 지어 놓았습니다. 청계천 문화관 앞입니다. http://boris-satsol.tistory.com/235